미국 민주당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대해 탄핵조사에 돌입하면서 미 정국이 탄핵의 회오리에 휩싸였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전화 통화하면서 민주당 대권주자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그의 아들에 대한 비리조사를 압박했다는 것이 골자다. 백악관이 25일(현지시간) 공개한 녹취록을 보면 명시적 청탁이나 노골적 압력은 없었지만 바이든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조사를 종용한 정황이 확인된다. 공화당은 “대가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며 결백이 드러났다고 주장한 반면, 민주당은 “대통령이 정치적 이득을 얻기 위한 직위의 명백하고도 충격적인 남용”이라고 맞섰다. 민주당은 국무부·백악관에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한편 조지프 매과이어 국가정보국장 대행을 불러 청문회를 열기로 하는 등 정국은 격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민주당이 다수당인 하원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된다고 해도 공화당이 과반을 점하는 상원에서 처리될 가능성은 낮다. 그럼에도 탄핵정국이 장기화되면서 내년 대통령 선거로까지 이어지게 된다면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수행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은 작지 않다. 더구나 공교롭게도 탄핵정국이 북·미 대화가 재개되려는 시점에 전개되게 된 점은 안타깝다. 북·미 실무협상이 이달 말이나 10월 초 재개될 예정인 데다 연내 3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이 거론될 정도로 분위기가 호전되고 있던 참에 돌발변수가 등장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국내의 ‘급한 불’을 끄느라 대외 현안을 미루게 되면 북·미 협상에 차질이 불가피해진다. 물론 탄핵정국이 빠르게 해소돼 트럼프 대통령이 더 자신감을 갖고 북·미 협상에 속도를 낼 가능성도 열려 있다. 어찌 됐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재가동을 위해 노심초사해온 한국에는 여간한 악재가 아닌 셈이다.


물론 미국의 모든 대외정책이 중단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트럼프 행정부가 외교정책에서 북·미 협상을 최우선 과제로 삼을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가 북·미 협상이 모멘텀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야 한다. 정국 추이를 지켜보면서 적절한 방식으로 미 조야를 상대로 외교노력을 벌이는 것도 방법이다. 상황관리에 주력하는 수동적 태도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또다시 한국이 중재·촉진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할 시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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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전격 경질했지만 의외는 아니었다. 미국 언론에서 볼턴 경질설이 처음 나온 것은 올봄이었다. 이후 나온 경질설을 모두 합치면 그는 족히 서너 번은 밀려났어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반년 가까이 참았거나, 볼턴이 용케 잘 버텼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미국과 경쟁 혹은 적대관계에 있는 상대는 물론이고 전통적인 동맹 및 우방을 상대로 변칙적인 외교를 펼쳤다. 공 여러 개를 공중으로 연속해서 던지고 받는 저글링 묘기를 하는 것처럼 중국, 이란, 북한, 시리아, 탈레반, 베네수엘라 등을 상대로 ‘압박’과 ‘대화’를 오갔다.


23일 오후(현지시간) 뉴욕 인터콘티넨탈 바클레이 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대통령과 정상회담에 앞서 모두발언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욕 _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실적은 빈약하다. 작년 5월 이란핵합의(JCPOA)를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이란에 ‘최대의 압박’을 펼쳤지만, 이란은 미국이 내건 12가지 요구에 화답하기는커녕 핵합의가 제한했던 핵활동 빗장을 하나씩 풀어가며 저항 중이다. 호르무즈 해협 인근 유조선 피습, 미군 드론 격추,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시설 피습 등을 겪으며 중동정세는 악화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2차례 정상회담을 하고 판문점 ‘번개’ 회동에선 군사분계선 이북 지역을 밟았지만, 북한 핵보유량은 계속 늘고 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불법정권’으로 규정하고 임시 대통령을 자처한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을 적극 지원했지만 마두로는 권좌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9·11테러 18주기를 코앞에 두고 탈레반 지도부를 캠프 데이비드로 불러들여 평화협정을 맺는 이벤트를 기획했다 불발돼 미국 내 반발만 샀다.


‘거래의 기술’을 자랑해온 그로선 머쓱한 상황이다. 볼턴을 경질함으로써 분위기 쇄신이 필요하다고 느꼈음직하다. 다음 미국 대선이 15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상황이다.


실제로 그는 볼턴이 이른바 ‘리비아 모델’을 북한 비핵화 방식으로 거론한 것은 ‘재앙’에 가까운 실수였다며 이미 잘린 그를 김정은 위원장에게 유화적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지렛대로 활용 중이다. 사우디 석유시설 피습 사건으로 가능성이 낮아지긴 했지만 “나는 매우 유연한 사람”이라면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여지를 살려두려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대통령은 한 국가의 최고지도자로서 막강한 권력을 누린다. 특히 외교는 다른 분야에 비해 대통령의 권한이 폭넓게 인정된다. 그럼에도 외교정책 결정과정에는 정부 내 여러 조직, 정부를 둘러싼 다양한 정치세력이 펼치는 논리와 경쟁과 저항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 민주국가에선 제약이 더 심하다. 집권 3년밖에 되지 않은 트럼프 대통령이 네번째 국가안보보좌관을 앉혔다는 사실은 그의 ‘까탈스러운’ 성벽을 증명하는 것일 수 있지만, 기성 관료 및 정치권의 이견과 반대를 뚫고 자신의 정책을 밀고나가기 위한 투쟁의 과정에서 생긴 불가피한 결과였을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을 경질한 뒤 한 말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후임 국가안보보좌관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나와 함께 일하는 것은 매우 쉽다. 왜 쉬운지 아는가? 내가 모든 결정을 내리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자신이 국가안보보좌관 역할까지 할 테니 누가 국가안보보좌관이 되든 그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이념형 매파’ 볼턴이 퇴진한 상황에서 미국 외교가 어떻게 변모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와 아이디어가 관철되는 비율이 높아질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극적인 반전을 연출해 자신이 그 중심에 서는 상황도 더 자주 보게 될 것이다. 그럴수록 세계가 감내해야 할 위험도 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저글링하는 공의 개수를 늘리거나 속도를 높일수록 공을 떨어뜨릴 위험이 더 커지는 건 당연한 이치다.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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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관계가 몇 년 새 이렇게 빠른 속도로 미국 주도 국제정치의 중심으로 진입하고 소멸하는 과정을 반복한 사례가 언제 있었나 싶다. 싱가포르(2018·6·12)와 베트남 하노이 회담(2019·2·27~28), 그리고 판문점에서의 회동(2019·6·30)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의 ‘케미’가 어떠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여기에다 사이사이 주고받은 연서(戀書) 같은 서신은 북·미관계의 청신호들로 해석되기에 충분하고도 강력한 증거였다. 46년생 대 84년생이라는 연령 차이만큼이나 이질적인 두 정치지도자가 어떤 동기로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게 됐을까?


첫째, 두 지도자는 비현실적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 국제정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는 주어진 현실을 비틀어 보기로 작심한 지도자들이다. 이들의 신념은 국제정치의 이단(異端)이다. 트럼프 등장 이후 국제정치 이론을 다시 써야 한다는 농담 같은 이야기가 그래서 나온다. 트럼프와 김정은은 현실은 끊임없이 재구성된다고 믿는, 좋게 해석하면 국제정치학 용어로 구성주의자로 분류할 수 있다. 국제정치가 국가들이 간주관적으로 서로 공유하는 아이디어, 규범, 가치 등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게 구성주의의 골자다. 구성주의자들은 국가의 정체성도 상호교류를 하면서 변한다고 인식한다. 이들의 눈에 국제체제의 구조는 관념적이다.


둘째, 두 지도자는 ‘접촉’을 통해 상대방의 생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싱가포르 회담에서 김정은은 “우리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고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이 때로는 우리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는데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왔다”고 했다. 트럼프 역시 김 위원장에 대해 “매우 훌륭하고, 똑똑한 협상가”라고 치켜세웠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행위가 그릇된 고정관념들을 변화시킬 거라는 믿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역사적 만남이었다. 그 결과 현재까지 무사히(?)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셋째, 김정은과 트럼프 모두 국내 정치적 요소를 가볍게 여겼다. 특히 트럼프는 워싱턴 주류들만의 ‘외교문법’들을 무시하고 파격적 방식으로 협상에 나섰다. 싱가포르 회담 합의문과, 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트럼프가 ‘도발적’이고 ‘전쟁게임’이라고까지 칭한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내비친 것들이 대표적이다. 동맹의 이름으로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전폭기가 한국까지 비행하는 것을 순전히 ‘돈’의 문제로만 인식하는 트럼프를 목전에서 지켜본 김정은 입장에서는 여차하면 주한미군 감군 또는 철수, 핵우산 철폐까지 트럼프가 실행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싱가포르 회담에서 새로운 북·미관계 구축이라는 문구를 성안시켜 1승을 거둔 김 위원장은 하노이 회담에서는 이렇다 할 성과를 도출하지 못했다. 산 넘고 물 건너 달려온 김정은으로서는 모욕적인 회담 결과였다. 이제 북·미 정상회담이 연내에 개최돼 영변비핵화와 연락사무소 맞교환 이상의 합의문을 작성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북한은 ‘선(先) 비핵화, 후(後) 국교정상화’를 고집한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의 퇴장을 긍정적인 신호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북·미관계가 획기적으로 진전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우선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핵심 석유시설 피격이라는 난기류를 만났다. 미국 외교정책에서 중동 문제가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면 북핵 문제는 트럼프 외교팀의 최우선 해결과제는 아니다. 둘째, 시간이 촉박하다. 이전의 실무회담 경험에도 불구, 추수감사절(11·28)과 내년 대통령 선거 일정 등을 고려하면 의제, 장소 등을 확정하는 데 시간적 여유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트럼프가 외국 정상과 통화하면서 국가안보 측면에서 부적절한 발언을 한 게 발각돼 트럼프 자신이 내부 고발을 당한, 정치적 인화성이 높은 사건이 발생했다. 셋째, 로버트 오브라이언 신임 안보보좌관은 냉전 종식을 이끈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힘을 통한 평화’의 사도이자 수호자이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해피 토크’ 회담이 사그라질 암운이 감돈다. 다시 긴장할 때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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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8일(현지시간) 북·미 협상과 관련해 “ ‘리비아 방식’을 언급했던 것이 우리를 지연시켰다”며 “어쩌면 새로운 방식이 매우 좋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이에 지난 20일 북·미 실무협상 수석대표인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가 “보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조·미관계에 접근해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현명한 정치적 결단을 환영한다”고 화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북한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우호적인 발언을 잇따라 내놓고 북한이 호응하면서 북·미 협상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리비아 방식’은 북한이 먼저 비핵화를 하고 나면 미국이 제재완화·안전보장 등 상응조처를 하겠다는 방식으로, 최근 경질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주장해온 것이다. 트럼프의 말은 리비아 방식을 포기하고 새로운 협상안을 들고 나갈 용의를 밝힌 것이어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대북 접근법에 대한 중대한 방향전환으로 봐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지난해 재개된 북·미 비핵화 협상은 미국이 ‘선 핵폐기’에 집착하면서 답보를 면치 못했다. 북한은 양측 간 신뢰가 없는 상황에서 먼저 핵을 폐기하라는 것은 ‘강도적 요구’라며 반발해 왔다. 트럼프의 발언은 이런 상황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시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방식’에 대해 부연하지 않았다. 다만 ‘선 핵폐기, 후 보상’ 방식이 아니라면 ‘동시적 접근법’이 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요구해온 ‘동시적·단계적’ 접근법과 일치하지는 않지만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초기 행동 조치’를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절충 가능성은 작지 않다. 비건 대표는 지난 6일 미시간대 강연에서 “미국과 북한이 대결로부터 불가역적 결별을 했음을 선언할 중대 조치에 신속히 합의할 수 있다”고 했다. 


북한은 올해 말을 비핵화 협상 시한으로 못 박은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도 내년이면 대통령 선거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질 것이다. 연말까지 석달 남짓한 기간 동안 북·미 협상을 본궤도에 올려야 하는 셈이 된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양측이 최대한 유연성을 발휘하면서 의기투합한다면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의 큰 그림(로드맵)에 합의하면서 1단계로 실천 가능한 ‘주고받기’를 이끌어내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와 한·미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22일 뉴욕으로 출발했다. 북·미 실무협상을 앞두고 이뤄지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그 어느 때보다 중차대하다. 이번 실무협상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를 향한 톱니바퀴가 다시 움직일 수 있도록 한·미 정상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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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역사 속에서 한국과 일본은 다양한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세계적으로 볼 때 가장 인접한 국가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과거 한국이 일본에 점령당한 아픈 역사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언어, 문화, 생활 등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기에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일본에 대한 한국의 대응은 그동안 뫼비우스의 띠 같은 궤적을 그리고 있으며 이제 새로운 전환기에 들어서고 있다. 일본과의 여러 가지 국면에서 한국의 갈 길을 찾을 수 있다.


우선 항일은 일본에 대항한다는 의미다. 봉오동전투, 청산리대첩은 독립군의 빛나는 항일을 보여준다. 극일은 일본을 극복하고 넘자는 것이다. 한국의 부품 국산화는 극일의 단면을 반영한다. 배일은 일본을 배척한다는 것인데 일본제품 불매운동처럼 다소 감정적이지만 파급력이 있다. 반일은 일본보다는 한국 내부를 방향으로 하고 있다. 해방 이후 일본 식민지 시대에 친일과 반민족 행위를 한 친일파를 단죄하려 했다가 실패한 반민족특위, 그 이후 친일인명사전에서 반일을 찾을 수 있다. 벌일은 일본을 정벌한다는 뜻이다. 한국 역사에서 북벌 추진이 있었듯이 남벌도 있었다. 광개토대왕, 고려의 여몽연합군, 세종의 대마도 정벌 등이 그것이다. 탈일은 일본의 영향을 최소화하여 일본에 없거나 일본이 할 수 없는 것을 이루는 것이다. 우리에게 삼성전자가 반도체 부품을 국산화하는 것은 극일이지만 반도체에 몰입하지 말고 기계보다는 휴먼메타기술 같은 다른 먹거리를 개발하면 탈일이 된다.


반면 이 모든 것과 다르면서 오래된 미래인 용일은 일본을 이용하는 것이다. 일본 입장에선 일본의 정한론, 조선 도자기, 치욕적 일제 식민지 시대, 지금의 부품전쟁은 용한(用韓·한국을 이용)에 가깝다. 현재도 비슷한데 과거엔 명나라를 침략하려고 조선에 길을 열어달라고 했지만, 지금은 핵, 국제정세 등으로 한국은 지정학적 완충 방패막이로 쓸모가 있다. 


역으로, 용일은 한국을 중심으로 일본을 도구화하는 명분과 실리를 찾는 것이다. 예전에 일본 소니 제품은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지금 삼성의 갤럭시 폰은 선망을 넘어서 필수품이 되었다. 그것은 극일보다는 용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용일은 여러 가지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어렵지만 방사능 오염 위험이 있는 도쿄 올림픽 일부 경기를 좋은 시설을 갖춘 한국 경기장에서 할 수도 있다. 우수한 한류와 한국문화를 바탕으로 21세기 문화적 밀정을 심을 수도 있다.


대전환의 시대에 지울 수 없는 울분과 냉철한 열기를 간직한 채 어떻게 일본과 다시 만날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강병노 | 서울한영대학교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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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매파’ 존 볼턴의 경질이 한반도와 주변 국가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미국이 패권국가라 해도 고위인사 한 사람이 물러났다고 국제 정세나 특정 국가의 기본 입장이 달라지기는 어려울 터이다. 그러나 볼턴이 누구인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내에 자리잡은 근본주의자 아닌가. 미국 매파는 볼턴을 통해 자신들의 견해와 의지를 트럼프에게 전달했다. 더구나 볼턴은 매우 강한 성격이다. “볼턴은 망치이고 모든 것을 (때려 박아야 할) 못으로 본다”(인디펜던트)는 평가가 잘 말해준다. 그는 시리아, 이란, 북한에 대한 강경정책을 주도했으며, 자기 의견 관철을 위해 트럼프와도 격렬하게 싸우는 터프가이였다. 지난해 3월 트럼프가 그를 백악관으로 불러들였을 때 관련 당사국들 사이에 희비가 엇갈렸다. 남북한은 우려했고, 일본은 환영했다. 볼턴이 경질된 지금 상황은 정반대다. 기상 용어로는 ‘문재인 대통령 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화창, 아베 신조 총리 비’로 표현할 수 있겠다. 문 대통령에게 볼턴 하차와 북·미 대화 재개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멈춰서 있던 한반도 평화 시계가 다시 돌아가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우연한 행운은 아니다. 과거 뿌려놓은 북·미 대화의 씨앗이 움트고 자라나 열매를 맺은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 등 보수의 공세가 위축되는 효과는 덤이다. 볼턴이 지난 7월 방한 때처럼 정부 당국자들보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와 먼저 만나는 의도적인 외교적 무례도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됐다. 장기화되는 한·일 갈등과 남북관계 교착에 ‘조국 사태’까지 3개의 ‘전쟁’을 동시에 치르고 있는 문 대통령의 어깨가 조금은 가벼워질지 모르겠다.


지난 2월7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여성들의 글로벌 개발과 번영’ 이니셔티브에 서명하는 모습을 존 볼턴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왼쪽)이 지켜보고 있다. 워싱턴 _ 로이터연합뉴스


김 위원장은 ‘종합선물세트’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북 주민 앞에서 핵담판 성공을 장담했지만 그간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면서 구겨진 체면을 살릴 계기가 마련됐다. ‘하노이 노딜의 치욕’을 만회할 기회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1994년 북핵사태 이후 25년간 악연을 쌓아온 “인간오작품 볼턴”(북 외무성 대변인)의 퇴장이 반가울 것이다. 볼턴은 북한 정권 붕괴를 선호하고, 북한이 거부하는 ‘리비아 모델’을 고집한 데다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의 배후이기도 하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기피인물을 경질하라는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고, 리비아 모델 폐기도 시사했으니 기쁨 2배다. 미국이 빅딜 대신 ‘다른 셈법’을 들고나올 것으로 기대할 만하다.


그러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는 나쁜 소식일 수밖에 없다. 미국에 대한 일본의 전략적 레버리지가 대폭 약화될 위기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북·미 협상이 성공하면 북한은 미국과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중국에 대한 미국의 버퍼링 역할을 하게 될 수 있다. 가뜩이나 중국의 부상과 트럼프 행정부의 아시아 전략 모호성으로 인해 일본의 존재감이 위협받던 차다. 여기에 협력적 연대 속에 미 행정부를 연결해온 볼턴마저 실각했으니 우려 위에 우려가 쌓이는 격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환경 변화가 아베 총리가 야심차게 전개해온 ‘문재인 때리기’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때리기는 과거사 갈등이 촉발했지만 기저에는 일본의 전략적 이익을 위협하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흔들어야 한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평화 무드를 조성하는 문재인 정부는 일본 옆구리에 박힌 가시”라는 미국 정치학자 조지 프리드먼의 분석이 정곡을 찌른다. 돌아보면 아베 총리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전후해 한국 정부에 한·미군사훈련 재개와 대북제재 강화를 요구했었다. 한·일 사이에 과거사 갈등이 불거지기 전의 일이다.


한반도 정세 기상도는 변화가 심하다. 어제는 화창해도 오늘은 비가 쏟아질 수 있다. 꼼꼼히 대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문 대통령은 북·미 협상의 중재자에서 한발 물러나 있다. 그동안에는 남북관계 개선이 북·미관계 진전으로 이어졌지만 이제는 북·미 협상의 진전이 남북관계 진전으로 연결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김 위원장은 절박한 심정일 것이다. 기피인물도 사라지고 리비아 모델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이번 협상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다시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번 정세를 기획한 트럼프 역시 부담이 크다. 대선을 위해 협상에서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협상 무대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아베 총리로서는 초조할 것이다. 주변국과 불화하는 대외정책을 펴온 결과다.


‘하노이’ 이후 6개월여 만에 ‘트럼프와 김정은의 시간’이 돌아왔다. 결코 놓쳐서는 안될 드문 기회이다. 이번에야말로 북핵 해결과 한반도 평화의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 협상이 여의치 않다면 한반도 정세는 악화될 수밖에 없다. ‘볼턴’도 다시 등장할 수 있다.


<조호연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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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한 지 19일로 꼭 1년이 된다. 문 대통령은 당시 남측 최고지도자로는 처음 15만 평양시민을 향해 “70년 적대를 완전히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 걸음을 내딛자”고 역설했다. 남북이 평화공존의 탄탄대로를 달리리라는 기대를 갖게 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하지만 1년이 흐른 지금 남북관계는 정체 중이다. 남북관계 진전을 통해 북·미 대화를 추동하리라는 기대와는 딴판이다. 


손을 맞잡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12월 27일 오전 9시30분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 사이 군사분계선 북측 지역으로 넘어 갔다 다시 남측 지역으로 넘어오고 있다. 서성일 기자


지난 1년의 성과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평양선언에 담긴 비핵화와 군사 긴장완화, 경제 협력, 이산가족 상봉, 문화·체육 협력 등 5개 분야에 걸친 남북 간 합의 중 일부는 시동이 걸렸다. 지난해 10월 남북은 고위급회담을 열어 철도·도로 연결과 산림 협력 등 분야별 이행 일정을 마련했다. 특히 9·19 남북군사합의는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완화에 적잖이 기여했다. 남북이 비무장지대 내 초소를 시범적으로 폭파하고, 휴전선을 가로질러 도로를 연결한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이후 남북관계는 더 이상 진전되지 못했다.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 복구와 화상 상봉 등을 논의할 적십자회담은 아예 열지도 못했다. 군사 긴장완화를 위한 공동지뢰제거작업 등 후속조치도 남쪽만의 행동에 그쳤다. 이렇게 된 데는 대북 제재의 유지와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지지부진한 탓이 크다.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은 더욱 남측을 외면하고 있다. 심지어 단거리 미사일 등 신무기 시험발사를 10차례나 하며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지난 1년은 남북관계 진전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인지를 일깨웠다. 남북 모두 더 많은 인내와 노력, 그리고 의지로 관계개선의 재시동을 걸어야 한다. 북·미가 곧 비핵화를 위한 실무협상에 나선다. 북한이나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모두 외교적 성과가 절실하다. 북한이 그제 비핵화에 대한 상응 조치로 ‘제도 보장’을 미국에 요구했다. 체제안전보장은 물론 경제 제재 해제가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제시한 것이다. 미국의 전향적 응답이 필요하다. 다음주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북·미 간 협상을 촉진하는 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이 필요하다. 지난 1년 동안 하지 못한 북한 비핵화와 남북관계 발전이 선순환하는 구조를 만들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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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민이 지난 6월 도쿄 2020 올림픽과 패럴림픽 로고가 새겨진 건물을 지나가고 있다. 도쿄_AP연합뉴스


“오. 모. 테. 나. 시.”


2013년 9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총회에서 2020년 도쿄올림픽 유치위원인 아나운서 다키가와 크리스텔이 손동작에 맞춰 한 음절씩 끊어 말한 ‘오모테나시’ 연설이 화제를 모았다. 


‘오모테나시’는 특별한 대접을 뜻한다. 다키가와는 “오모테나시는 손님을 마음으로부터 맞이한다는 깊은 의미가 있다”고 했다. 이 연설은 올림픽 유치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모테나시’는 그 해 일본 유행어 대상에 올랐다. 다키가와는 지난달 ‘차기 총리감’으로 거론되는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상과 결혼을 발표했다. 


그렇게 유치한 도쿄올림픽 개최까지 1년이 채 안 남았지만, ‘오모테나시’ 전선에 먹구름이 가시지 않고 있다. 줄곧 지적돼온 폭염 등 날씨 대책을 좀체 찾지 못하고 있다.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7월24일부터 8월9일까지 도쿄의 날씨조건은 최악이다. 그나마 작년보다 나았다는 올해 도쿄 도심의 최고기온은 모두 30도를 넘었다. 그 중 6일은 35도 이상이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때 평균기온이 27도, 2012년 런던올림픽 때는 24도였다. 


도쿄올림픽 조직위는 골머리를 싸고 있다. 이미 마라톤, 경보 등의 시작시간을 새벽으로 앞당겼다. 일부 도로에 열 차단제를 입히고 있지만, 사람 키 높이에선 오히려 기온과 자외선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난 13일 조정 시범경기가 열린 경기장 관중석에 인공 눈을 뿌리는 실험을 했지만, 관중석 온도는 별반 변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험이 이뤄진 수상경기장은 예산 문제로 관중석 절반만 지붕을 설치했다. 지난달 도쿄 오다이바 해상공원에서 열린 오픈워터 시범경기에선 화장실 같은 악취가 났고, 파라트라이애슬론 시범경기에선 상한의 2배를 넘는 대장균이 검출됐다.


방송중계권 수입 때문에 7~8월 개최를 요구한 IOC에도 문제가 있지만, 일본 측 대응에는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이 많다. 일본은 도쿄올림픽 유치신청서에 “이 시기는 맑은 날이 많고 따뜻해 선수에게 이상적인 기후”라고 했다. 


한 일본 언론인은 도쿄올림픽 준비 과정에서 일본의 ‘열화(劣化·열등화)’를 본다고 했다. 철두철미와 세심함은 옛말. 근본적인 대책보다 땜질식 처방으로 넘어가려 한다는 것이다. 폭염 대책으로 우치미즈(국자로 물을 떠서 거리에 뿌리는 풍습)를 제안하면서 “오모테나시 문화를 알리자”라고 우기는 데선 ‘정신 승리’를 보는 것 같다.


‘오. 모. 테. 나. 시.’ 


도쿄올림픽의 ‘오모테나시’는 무엇을 지향하는 걸까. 아베 신조 정권은 도쿄올림픽을 ‘부흥 올림픽’으로 삼을 뜻을 노골화하고 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원전 사고를 복구했다는 점을 전 세계에 과시하겠다는 것이다. 2013년 도쿄올림픽 유치 연설에서 후쿠시마 원전이 “언더 컨트롤”(관리하에 있다)이라고 한 ‘정치쇼’가 되풀이될 공산이 크다. 


 ‘오모테나시’는 누구를 위한 걸까. 일본 정부는 도쿄올림픽 때 욱일기를 경기장에 들고 오는 게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과거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일본 우익들의 ‘헤이트(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데모’에 등장하는 욱일기가 ‘평화의 제전’에 펄럭이는 장면을 기어코 보겠다는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현재 일본에선 혐한 감정이 고삐 풀린 채 분출하고 있고, 아베 정권은 이런 분위기를 정권 부양에 활용하고 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일본의 식민 지배와 침략 전쟁, 후쿠시마 원전 문제에는 공통점이 있다. 철저한 반성과 책임, 자기혁신이 빠져있다는 것이다. 도쿄올림픽에선 이 둘을 대충 덮고 넘어가려 하고 있다. ‘부흥(復興)’ 올림픽의 미명하에 ‘부인(否認)’ 올림픽이 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도쿄|김진우 특파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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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또다시 대화의 훈풍이 불고 있다. 9월9일 오후 11시30분 북한 최선희 제1부상은 9월 하순에 북·미 실무회담을 열자는 담화를 발표했고, 그 다음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경질했다. 최선희의 담화는 공교롭게도 아프간 평화협정의 체결을 하루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협상 중단을 선언한 뒤에 나온 것이다.


이런 일들은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다. 미국의 아프간 평화협상 파기는 북한에 위기로 느껴진 것 같다. 작년에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된 볼턴이 리비아 해법을 주장하고 5월12일 이란 핵합의 파기를 앞두자, 김정은 위원장이 다급히 다롄으로 달려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지원을 요청했던 일을 연상하게 한다. 트럼프도 북한이 대화에 나올 뜻을 밝히자 볼턴이라는 걸림돌을 제거한 것이다. 트럼프는 볼턴을 경질하면서 그가 리비아 해법을 고집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아프간 평화협상이 중단된 마당에 트럼프로서도 한반도 비핵화 카드는 외교업적으로 살리고 싶었을 것이다.


초강경파인 볼턴을 경질함으로써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은 어느 때보다 성공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양측의 입장차이가 여전히 커서 협상결과를 낙관하기는 이르다. 북한은 트럼프 리스크 탓에 단계적 접근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제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 명의로 담화를 발표해 이번 실무협상에서 대안을 갖고 오지 않으면 북·미 대화가 기로에 서게 될 것이라고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볼턴의 경질로 미국이 실무협상에서는 ‘유연한 접근법’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지만, 3차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그대로 적용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 트럼프로서는 내년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어 미국 내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북·미 비핵화 협상의 장애물은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이지만, 그에 못지않은 것이 트럼프 리스크이다. 첫 번째 트럼프 리스크는 트럼프가 내년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할지의 불확실성에 따른 것이다. 만약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한다면, 새로운 민주당 정부와 비핵화 협상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 북한으로서는 섣불리 트럼프 1기 행정부와 ‘빅딜’에 합의하기를 꺼리는 이유다. 두 번째 트럼프 리스크는 설사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다고 해도 현재와 같이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다. 전임 오바마 행정부 때 합의한 이란 핵합의를 파기한 경력이 있는 트럼프가 재선된 뒤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이러한 두 가지 트럼프 리스크를 우려해 북한은 단계적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작년 3월26일 김정은 위원장은 북·중 정상회담 때 단계적, 동시행동적 접근을 제시했다. 단계적 접근법은 미래핵, 현재핵은 트럼프 제1기 행정부와 합의하고 이행하지만 과거핵(핵무기, 탄도미사일)은 2021년 1월에 들어설 미국 행정부와 협상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일부 전문가들이 북한이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든 요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트럼프 리스크와 북한의 비핵화 단계론을 극복하고 3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2월 말 하노이 회담에서 미타결된 쟁점은 크게 ‘비핵화의 공동정의’와 ‘추가조치’에 관한 것이다. 


비핵화의 대상과 범위에 대해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프로그램, 중장거리 및 대륙간 탄도미사일의 포기를 주장한다. 반면 대북 강경론자들은 여기에 더해 생화학무기, 단거리·중거리 탄도미사일도 포함시키라고 요구한다. 핵시설 이외의 추가조치에 대해 북한은 과거핵을 차기 미 행정부와 협상하겠다고 고집한다. 반면 볼턴과 같은 초강경파는 리비아 방식처럼 당장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의 해외이전을 주장하고, 미국 내 협상파는 어느 시점에서 포괄적 신고를 할 것인지에 대한 약속을 하라고 요구한다. 


이처럼 두 가지 쟁점을 둘러싸고 북·미 양측이 팽팽히 맞서고 있기 때문에, 실무회담을 넘어 연내 3차 정상회담이 열려도 한반도 비핵화 로드맵을 타결짓기 쉽지 않다. 연내 타결을 위해선 미국뿐만 아니라 북한도 셈법을 바꾸어야 한다. 미국은 비핵화의 대상과 범위를 확정지어 불확실성을 없애야 한다. 북한도 어느 시점에 과거핵의 포괄적 신고를 할 수 있는지 조건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북·미 실무협상을 앞두고 한·미 정상회담을 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직접 설득하고, 대북 특사나 번개회동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을 설득할 수 있다면 한반도 비핵화에 큰 진전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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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조종으로 움직이는 무인비행체를 뜻하는 ‘드론(Drone)’은 비행할 때 벌의 윙윙거리는 소리(drone)와 비슷한 소리가 난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1920년대 군사 분야에서 시작된 드론은 인간생활 전 영역으로 활용도를 넓혀가고 있다. 아마존의 ‘프라임 에어’ 같은 드론 택배서비스는 유통업의 지도를 바꿀 전망이고, 제조업과 농업, 일기예보는 물론 지진 현장에서 인명구조와 수색, 화재 진화나 자연생태계 보호에도 드론이 활용되고 있다. 영화 <엑시트>에서는 대규모 드론이 고립된 주인공들을 세상과 이어주는 유일한 끈으로 역할을 했다. ‘착한 드론’의 무궁무진한 활용도로, 머잖은 장래엔 개개인이 휴대전화처럼 드론을 소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부카이크에 위치한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의 아브카이크 탈황 시설에서 14일(현지시간) 예멘 반군 소행으로 추정되는 무인기 공격으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시커먼 연기가 치솟고 있는 사진은 미국의 위성사진 업체 플래닛랩스가 촬영했다. 부카이크|AP연합뉴스


지난 14일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석유회사 아람코의 최대 석유시설 두 곳이 예멘 반군의 드론 공격을 받아 가동이 잠정 중단됐다. 드론이 주요 시설을 공격한 첫 사례다. 지난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공개 연설 도중 드론 폭발물 공격을 받거나, 몇 년 전 미국 백악관 건물에 드론이 충돌하고, 일본 총리 관저에 방사성물질이 함유된 드론이 떨어지는 등 이따금 국제 뉴스의 가십 정도로 소개됐던 드론이 이번엔 주역으로 등장했다.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폭격과 화재 속에 세계 원유 공급의 5%에 달하는 생산차질이 예상되며 전 세계 원유시장이 출렁이고 있다.  


이처럼 테러나 범죄 등에 악용되는 ‘나쁘고, 위험한 드론’의 사례가 늘고 있다. 맞물려 나쁜 드론을 무력화하는 이른바 ‘안티드론’에 대한 논의와 연구도 활발하다. 우리도 드론특기병을 뽑기 시작했다. 특히 인공지능(AI) 기술과 드론이 결합한 자율비행드론의 예상치 못한 파괴력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구글은 미국 국방부와 함께 AI 기술을 적용해 사람의 얼굴을 식별하는 드론을 개발하는 ‘메이븐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특정인 살해에 이용될 수도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계획을 접기도 했다. 미국 영화 &lt;아이, 로봇&gt;은 2035년 시카고를 배경으로 한다. 인간을 위한 AI 로봇이 세상을 지배하는 내용이다. 자율비행드론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다면, 2035년쯤 실제로 만나게 될 위험한 세계일지도 모른다.


<송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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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12일 지면기사-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1일 개각을 단행했다. 2012년 이후 최대 규모로 정치적인 색채도 분명히 드러냈다. 각료 19명 가운데 17명을 교체하면서 극우 성향의 측근들로 자리를 채운 것이다. 자위대의 헌법 명기를 위한 개헌드라이브의 포석으로 보인다. 새 내각은 아베 주변 인사 및 영토 문제 등과 관련한 망언과 억지주장으로 논란을 빚었던 인물들로 채워졌다. 따라서 향후 한·일관계는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평화를 흔드는 아베 정권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맨 앞줄 세번째)가 11일 개각을 단행한 뒤 총리 관저에서 새 각료들과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도쿄_EPA연합뉴스


새 내각에는 건전한 우파를 넘어 극우 성향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많다. 문부과학상에 기용된 하기우다 고이치 자민당 간사장 대행이 대표적이다. 그는 아베 총리를 대신해 일제 침략전쟁의 상징인 야스쿠니신사에 공물을 전달한 인물이다.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폄훼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향후 일본 교과서 등에서 역사왜곡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다시 총무상에 임명된 다카이치 사나에도 일본의 침략전쟁을 옹호하고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한 극우 인사다. 아베 총리가 대표적인 반한 강경 인사인 고노 다로 외무상을 방위상에 임명한 것은 한국에 ‘결전’의 신호를 보낸 것이나 다름없다. 고노 신임 방위상은 한국 대사를 부른 자리에서 수차례 말을 끊고, 장관급 인사로서 국가 원수인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하는 외교적 결례를 저지른 인물이다. 그릇된 역사인식으로 비난받은 바 있기도 하다. 그런데도 아베 총리는 “(고노가 교체될 경우)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면서 방위상으로 보직 이동시켰다. 한·일 갈등을 해결할 의사가 없다는 뜻을 다시 한번 시사한 것이다. 


한·일관계는 과거사 갈등에서 출발해 경제, 안보 갈등으로 확산되면서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한국은 11일 일본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한 정치적 동기에서 한국을 겨냥한 차별적 조치’로, WTO 규칙을 위반했기 때문이다. 한국으로서는 불가피한 조치다. 사태를 해결하려면 명분 없는 수출규제로 문제를 촉발시킨 일본이 먼저 손을 내미는 게 맞다. 하지만 아베 정권은 우익 일색의 내각 개편으로 그럴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렇다면 이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사태에 대한 책임 역시 아베 정권이 온전히 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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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12일 지면기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전격 경질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 보좌관의 경질을 알리는 트윗에서 “나는 그의 많은 제안에 대해 강하게 의견을 달리했다”고 언급했다. 미국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볼턴 보좌관이 아프가니스탄, 이란, 베네수엘라, 북한 문제 등에서 이견을 노출해 왔다고 보도했다. 볼턴 보좌관은 이란과의 직접 협상과 러시아를 주요 8개국(G8) 일원으로 복귀시키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에 반대해왔다. 특히 지난 8일 예정됐던 트럼프 대통령과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지도자들 간 비밀회동이 전격 취소된 것은 이에 반대하는 볼턴 측이 이를 언론에 유출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군사력에 기반한 패권주의를 추구하는 ‘네오콘’ 출신의 볼턴은 지난해 4월 백악관에 합류한 이래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대북 강경론을 주도해왔다. 그는 ‘선 핵포기, 후 보상’이라는 리비아식 해법을 앞세워 북한을 줄곧 압박해 왔다. 지난해 1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는 “북한 핵무기를 테네시주로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해 북한의 반발을 초래하면서 회담이 무산될 위기를 맞기도 했다. 지난 2월 하노이 2차 정상회담이 결렬된 데도 볼턴의 책임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볼턴의 강경일변도 대북 노선이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구상에 차질을 빚게 하는 요인임은 부인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6월 말 판문점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회동할 당시 볼턴을 몽골에 보낸 것은 북한의 반감을 의식한 조치라는 관측이 나올 정도였다.


볼턴은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국무부 차관이던 2002년 북·미 제네바 합의 파기에도 개입했고, 유엔 대사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대북 강경책을 주도하는 등 북한과의 ‘악연’은 뿌리가 깊다. ‘슈퍼 매파’ 볼턴의 퇴장이 미국의 대북정책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적어도 임박한 북·미 대화에는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북·미 실무협상을 할 뜻을 밝힘으로써 하노이 이후 반년 만에 북·미 대화가 재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의 핵포기 의지를 의심하면서 일괄타결 방식의 ‘빅딜’을 고수해온 볼턴 보좌관의 경질은 미국이 북한에 ‘새로운 계산법’을 들고나올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높인다. 마이크 폼페이오 장관이나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의 최근 대북 발언도 전향적이다. 새롭게 열린 기회를 북한이 놓쳐선 안된다. 실무협상에 능동적으로 임해 비핵화 방법론에서 양측 간 이견을 좁히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진전시켜 나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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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대표하는 건축물인 톈안먼(天安門) 일대는 지금 ‘공사 중’이다.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의 초상화가 걸린 톈안먼 맞은편에는 붉은색 무대가 설치되고 있다. 근처에 위치한 첸먼(前門)도 새 단장이 한창이다.


지난 7일 밤부터 8일 새벽까지 이곳 톈안먼 일대에서 역대 최대 9만명이 동원된 대규모 연습이 진행됐다. 다음달 1일 이곳에서 열리는 중국 건국 70주년 경축 행사와 열병식, 퍼레이드 합동 연습이 처음 치러진 것이다.


관영 매체들은 분위기 띄우기에 분주했다. 인민일보, 신화통신은 앞다퉈 “이번 연습이 질서 정연하게 조직되고 예상 목표를 달성했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국경절 경축 행사를 성대하게,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한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 베이징 인근 경비는 물론 온라인 통제가 한층 강화됐고, 베이징 주변 공장 가동도 제한되고 있다. 전 세계에 중국 건국 70주년 성과를 과시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높아진 통제와 과도할 정도로 분위기를 띄우는 현 상황을 보면 오히려 중국 지도층의 불안감이 읽힌다. 


중국이 처한 현실은 안팎으로 복잡하다. 안으로는 홍콩 시위 사태의 장기화, 밖으로는 미·중 무역전쟁의 파고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범죄인 인도 조례(송환법) 반대로 촉발된 홍콩 시위는 3개월 넘게 지속되면서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는 민주화 운동으로 확대됐다. 지난 4일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이 시위를 촉발시킨 송환법 철회를 공식 선언했지만 시위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송환법 반대 목소리가 끓어오르던 지난 6월에 철회 발표를 했다면 어땠을까. 중국 중앙 정부의 고민이 길어지는 사이 홍콩 정부와 시위대의 반목의 골은 너무 깊어졌다. 호미만으로는 막기 어려워졌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미·중 무역전쟁에서도 비슷한 전략을 구사했다. 미국과 무역협상을 이어온 중국은 150쪽짜리 무역협정 초안을 작성했다. 합의안에 사인하기 직전, 중국은 그간의 입장을 철회하며 내용 수정을 요구했다.


이후 상황은 급격히 나빠졌다. 미·중이 관세 폭탄을 주고받으면서 추가 관세를 부과할 제품을 더 찾기 힘들 정도가 됐다. 경제 하방 압력에 시달리고 있지만 시 주석은 버티기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시 주석은 지난 3일 “우리가 마주한 각종 투쟁은 단기가 아니라 장기적일 것”이라면서 경제, 외교, 홍콩, 대만 문제 등을 언급했다.


10월 초 미·중은 워싱턴에서 고위급 무역협상을 진행한다. 양국 간 대화가 지속되고 있음을 과시하면서 국경절 경축 행사를 치러낼 계획이다. 그러나 미·중 무역전쟁도, 홍콩 사태도 완전히 해결된 것은 없다.


어려운 상황에 꺼내든 것은 대장정 정신이다. 시 주석은 ‘위대한 장정 정신’ ‘강대한 정신 동력’을 연일 강조하고 있다.


중국 홍군은 1만5000㎞에 달하는 고난의 대장정을 치러냈고, 정권을 잡은 공산당이 중국을 이끌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홍콩 사태와 미·중 무역 갈등이 대장정 정신을 앞세운 버티기 작전으로 해결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지금의 중국은 홍군이 정신력으로 버텨냈던 낙후하고 고립된 1930년대와 다르다.


중국 지도층은 애국심으로 불안감을 희석시키는 모양새다. 


10일 중국 관영 CCTV는 56개 민족 학생 대표단과 올림픽 메달리스트 등 수만명이 톈안먼 광장에 모여 오성홍기를 흔들며 ‘사랑해요 중국’ 노래를 부른 장면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이 노래는 ‘아름다운 청춘을 당신에게 바친다/내 어머니/내 조국’이라는 가사가 담겼다.


과연 중국이 안팎의 고난을 해결하고, 가사처럼 아름답고 화려한 국경절을 맞을 수 있을까.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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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9일 밤 담화를 통해 “우리는 9월 하순경 합의되는 시간과 장소에서 미국 측과 마주 앉아 지금까지 우리가 논의해온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토의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미국이 요구하는 제3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협상에 두 달 넘게 호응하지 않던 북한이 갑자기 대화 의사를 밝힌 것이다. 미 국무부는 “아직 발표할 만남은 없다”고 했지만 그동안 미국은 협상할 준비가 돼 있다고 해왔다. 지난 6월30일 남·북·미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난 뒤 2~3주 걸린다던 북·미 대화가 2개월여 만에 가시권에 들어왔다. 대화 재개를 환영한다. 


북한은 하노이 담판이 결렬된 이후 체제안전보장이 최우선 과제임을 명확히 밝혀왔다. 북한이 최 부상의 대화 제의 담화를 발표한 지 반나절도 채 안되는 10일 아침 단거리 발사체 2발을 잇따라 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북한은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남측의 첨단무기 도입 등에 맞서 체제를 수호하려면 신무기가 필요하다며 시험 발사를 계속해왔다. 이날 발사도 안보 우려가 해소되지 않으면 협상에 나설 수 없다는 뜻을 강조한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최근 인터뷰에서 “모든 나라는 자신을 스스로 방어할 권리가 있다”며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주한미군 감축의 교환을 전략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북한이 가장 우려하는 체제의 안전을 미국이 보장하겠다는 뜻을 당국자들이 거듭 밝힌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역시 북한의 정권교체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국이 북한의 요구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협상 결과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한다. 


북한은 올해 말을 미국과의 협상 시한으로 제시했다. 북·미는 앞으로 남은 넉달 동안 비핵화 로드맵과 상응 조치에 합의해야 한다. 양쪽의 조건을 맞추는 일은 간단치 않다. 북한의 안전보장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과 맞물려 있다. 미국은 여전히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의심하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중국의 과도한 개입도 경계 대상이다. 북·미 양측이 하노이 담판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톱다운 방식의 한계를 인정하고 실무협상을 통해 최대한도의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북·미가 올해 말을 넘겨 미국이 대선 국면을 맞게 되면 북·미 대화는 어려워질 수 있다. 최근 미국과 이란의 핵 협상이 지지부진하다. 북한은 이 점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늦은 만큼 북·미 간 실무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돼 북핵 문제가 시원하게 해결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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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시위 사태를 보면서 뜻밖의 뉴스에 눈이 쏠렸다. 학창 시절 큰형님으로 여겼던 성룡(成龍·청룽)이 시위가 한창이던 지난달 중순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서 ‘14억명이 오성홍기의 수호자다’ 캠페인에 동참했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또 다른 형님 주윤발(周潤發·저우룬파)은 홍콩 시위에 침묵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그들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스스로 ‘아재 인증’을 한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둘의 엇갈림이 홍콩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싶어, 글을 쓰기로 했다. 요즘은 중국어 발음으로 표기하지만, 아재에게 익숙한 한글식 발음으로 풀어가겠다. 


아재의 학창 시절 성룡은 추석과 설 극장가의 단골손님이었다. <폴리스 스토리> <용형호제> 시리즈에서 대역을 쓰지 않는 성룡의 고난도 액션은 현란했다. 액션영화였지만 잔인한 장면은 없다시피 했고, 웃음까지 적절히 섞여 영화를 보고 나면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따거(大哥)’가 큰형님을 뜻한다는 말도 성룡의 영화를 통해 알았다. 영화를 찍다가 그가 크게 다쳤다는 뉴스를 보고 낙담했던 기억도 난다.    


그랬던 성룡이 중국 관영방송을 통해 “중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며, 오성홍기는 전 세계인의 존경 대상”이라고 했다. 시위대가 오성홍기를 끌어내린 것에 격분해 한 발언이라지만,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강경 진압하는 홍콩 경찰 편을 드는 따거의 모습은 낯설었다. 과거 뉴스를 찾아보니, 그는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위원이며, 2009년엔 “중국인은 강력한 통제를 받아야 한다. 지나친 자유는 홍콩과 대만처럼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고 했다고 한다. 1989년 톈안먼 시위 때 학생 지지 콘서트까지 열었던 그는 어떻게 친중 인사가 됐을까.


또 다른 형님 주윤발은 어떤가. 발목 근처까지 내려오는 롱코트와 선글라스, 비장한 표정으로 더러운 배신자를 처단하는 형사나 킬러의 모습으로 아재의 기억에 남아 있다. <영웅본색> <첩혈쌍웅>에서 그는 수십발의 총알을 맞아도 죽지 않는 불사신이었다. 반드시 악당을 처단하고 복수를 완성한 후에야 비장하게 눈을 감았다. 아재의 고교 시절, 그를 따라 수많은 청소년들이 다리가 짧아도 롱코트를 입고, 담배도 못 피우면서 성냥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가 CF에서 어색한 한국어 발음으로 “싸랑해요”라고 했던 청량음료는 불티나게 팔렸다. 


그랬던 주윤발은 입을 닫고 있다. 2014년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며 벌어진 ‘우산혁명’ 시위 때 “학생들은 이성적이고 용감하다. 정부가 시민과 학생들이 만족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면 위기가 끝날 것” “평화시위에 무력대응은 필요 없다”고 했던 사실을 감안하면 대조적이다. 우산혁명 때 시위대 편을 들었다가 중국 당국이 작성한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관측만 나온다. 


시위 사태로 갈라진 홍콩 연예계를 따져보자는 것은 아니다. 둘로 나뉜 홍콩 영화계의 모습, 한때 아시아 할리우드로 불렸던 홍콩 영화계의 몰락은 영화산업 자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생각이 미친 것이다. 가령 1980~90년대 홍콩 영화는 하나의 장르였다. 할리우드 영화의 정교함에 비할 순 없었지만, 독특한 유머와 다소 허황된 액션은 나름의 스타일을 창조했다. 그런데 지금의 홍콩 영화는 예전의 명성을 잃었다. 기술은 발전하고 스케일은 커졌지만 재기가 사라졌다.


‘왜 이렇게 됐을까’ 생각하던 터에 두 사람의 소식을 계기로 나름의 추론을 내리게 됐다. 홍콩 영화의 몰락은 1997년 중국 반환 이후 경직된 홍콩 사회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 아닐까. ‘일국양제’를 부정하는 중국 당국이 본토와 다른 홍콩의 자유분방함을 억눌렀고, 그 여파가 영화에까지 미친 것은 아닐까. 최근 홍콩 영화 중 중국 민족의 우수함을 암시하는 국뽕 영화가 많은 것도 이런 분위기와 연관됐을 것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지난 3일 중국 당국 블랙리스트에 오른 연예인이 최소 55명에 이른다며 “중화권 연예인들은 중국 중앙정부에 대한 지지나 애국심을 표현하지 않았을 때 그들이 치러야 하는 중대한 ‘대가’를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어쩌면 두 따거의 선택도 강요된 것일지 모른다.


홍콩 영화계의 문제는 단순히 대중예술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자유로운 상상력과 창의력이 억눌린 사회의 앞날은 어떻겠는가. 송환법은 철회됐다지만, 중국 당국의 경직된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홍콩 영화, 홍콩 사회의 봄날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박근혜 정부 시절 블랙리스트로 몸살을 앓았던 게 엊그제 일이다. 그래서일까. 성룡이, 주윤발이, 그리고 홍콩이 더 안타깝게 느껴진다.


<이용욱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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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지난 6일 언론 인터뷰와 공개강연을 통해 북한에 실무협상 재개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미 지역방송 인터뷰에서 “모든 나라는 스스로 방어할 주권을 갖는다”는 ‘자위권’을 거론하면서 북한이 비핵화를 실행할 경우 체제안전보장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비건 특별대표는 같은 날 미시간대 강연에서 “(북·미) 양측 모두 각각의 국민과 전 세계를 향해 대결로부터 불가역적 결별을 했음을 선언할 중대한 조치들에 신속하게 합의할 수 있다”며 그 예로 ‘항구적 평화체제’를 제시했다. 


이날 대북 발언들에서 눈에 띄는 것은 미국이 ‘향후 1년간’의 협상시간표를 제시한 점이다. 비건 대표는 북·미가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많은 이슈들에서 진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 1년 동안 이런 목표를 향한 중대한 진전을 이루는 데 전적으로 전념하고 있다”고 했다.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미국이 취해온 ‘속도조절론’ 기조에서 벗어나 협상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임을 시사한 것은 긍정적이다. 


두 당국자의 발언에는 북·미 정상이 지난 6월 말 ‘판문점 회동’에서 실무협상 재개를 합의한 지 두 달이 넘었음에도 북한이 대화에 응하지 않는 데 따른 초조감도 엿보인다. 비건 대표가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과의 대화를 소개하는 형식을 빌려 북한 비핵화가 실패할 경우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을 언급한 것도 북한을 대화에 이끌어내기 위한 압박성 발언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북한이 실무협상에 응하지 않고 있는 것은 미국의 입장이 하노이 회담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관측돼 왔다. 그렇다면 북한은 이날 발언들을 심도 있게 읽을 필요가 있다. 북한의 ‘자위권’을 언급하면서 안전보장을 제공하겠다는 폼페이오의 발언이나 비건의 ‘항구적 평화체제’ 발언, 지난 4일 북한의 정권교체를 바라지 않는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등은 태도 변화의 신호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하노이’ 이후 반년의 시간이 덧없이 흘러갔다. 북·미 간 교착이 더 길어지면 협상 동력 자체가 사라질 우려도 있다. 북한은 실무협상 대화 테이블에 조속히 나와 비건이 밝힌 ‘향후 1년’을 북·미 양측에 더없이 귀중한 시간으로 만들어가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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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30 판문점 회동에서 ‘2~3주 후 실무협상’을 갖자고 약속했을 때, 그렇게 될 것 같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하고 김 위원장이 수락한 것이기 때문이다. 비핵화 협상의 고비마다 돌파구가 됐던 톱다운 방식의 재연이었다. 하지만 2주가 한 달이, 다시 두 달이 돼도 만난다는 얘기는 들려오지 않았다. ‘비핵화 담판이 시작되는 건데 시간이 걸리는 것 아니겠냐’는 우려와 ‘8월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끝나면 만나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교차했다. 최근 양측에선 협상 재개의 신호는커녕 외교수장들끼리 “독초” “망발”(리용호 외무상) “불량정권” “가장 강력한 제재”(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와 같은 험한 말만 주고받았다.


상황이 이러니 대화 의지도 의심받는다. 그럼에도 대다수 전문가들은 북·미 실무협상이 연내에 이뤄질 것으로 전망한다. 북한이 비핵화 협상 시한을 올 연말로 설정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북·미 정상 간 관계가 틀어졌다고 볼 만한 일은 없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냈고,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관련 얘기만 나오면 “관계가 좋다”고 말한다. 미 국무부와 유엔 북한대표부를 잇는 뉴욕 채널이나 판문점 채널 등과 같은 비공개 채널도 열려 있다.


도대체 북·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미국 당국자들은 “북한으로부터 답을 듣는 대로 협상에 관여할 준비가 돼 있다”는 말만 반복한다. 북한이 준비되면 언제든지 달려가겠지만, 연락을 하지 않는 걸 보니 준비가 안돼 있다며 북한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


북한이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내놓은 메시지를 보면 완전한 비핵화와 체제안전보장을 교환하는 문제를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협상은 주고받기다. 서로의 생각을 알아야 맞춤형 카드를 내놓을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미국의 구상을 파악하고 있는지는 불투명하다. 하노이 만남 이후 양측이 진지하게 마주했던 것도 아니고, 미국이 제재와 대화 여지만 반복해서 거론하기 때문이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미국과의 대화에 대한 기대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고 말한 것에서도 그런 불만이 읽힌다.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에 속도를 내길 원한다. 미국의 제재에 묶여 있으면 괄목할 만한 경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김 위원장은 ‘핵·경제 병진’에서 ‘경제 우선’으로 방향을 이미 틀었다. 내년에는 북한의 경제개발 5개년 전략이 끝난다. 경제 상황이 지지부진한데도 여유롭다면 그게 더 의아한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경제적 잠재력을 강조하지만 제재라는 족쇄를 풀지 못하고 관계개선을 하지 못하면 경제발전은 요원하다. 베트남이 1987년 도이머이(개혁) 정책을 채택했지만 경제발전은 1995년 미국과의 관계개선 이후 본격화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이 ‘제재 완화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오히려 안전보장 문제를 꺼내는 것이 미국에 ‘제재 완화를 못해주겠다면 안전보장은 해주겠다는 거냐’고 따져묻는 듯하다. 이를 모르지 않을 미국이 먼저 대화의 손을 내밀지 않는 건 미국도 제재 해제나 안전보장에 대한 분명한 답변을 준비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부른다.


북한은 ‘하노이 트라우마’가 있다. 하노이 회담 전 폼페이오 장관이 방북하고 실무 라인에서 의제를 논의했지만 정상회담장에선 미국 측이 다른 얘기를 했다. 김 위원장이 빈손으로 귀국 열차에 오른 이유다. 이후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등 협상팀이 바뀌었다. 북한 협상팀은 미국이 ‘뒤집히지 않을’ 성의표시나 분명한 입장을 확답해야 만날 수 있다고 하고, 미국은 만나기 전에는 미리 패를 깔 수 없다고 하는 형국이다.


리용호 외무상이 이달 하순 뉴욕 유엔총회에 불참키로 한 것은 미국과의 접촉을 의도적으로 피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만나봐야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북·미가 겉도는 사이에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실무협상의 물꼬를 트지 못하는 교착 국면이니 언제 고위급 협상을 거쳐 정상회담으로 이어질지 알 수 없다. 서로가 솔직해져야 한다. 비핵화와 상응조치를 두고 각자가 원하는 것, 할 수 있는 것을 명확히 구분지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핵실험과 중장거리미사일을 쏘지 않는 ‘현상유지’ 상태를 치적으로 부각하지만, 올해 안에 협상이 진전되지 않으면 대화의 동력은 급속히 사그라들 수 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자극적인 언사를 피하는 등 대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북한이 지금 남한을 뒷전에 놓고 있지만 한국은 미국에 북한의 상황을 적극 설명해 적극성을 발휘하도록 움직일 필요가 있다.


<안홍욱 정치·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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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행정 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이 4일 홍콩 시위를 촉발한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을 철회하겠다고 선언했다. 시위대가 요구해온 5개 사항 중 첫째 조건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로써 중국 정부의 시위대에 대한 강경진압 예고로 제2의 톈안먼(天安門)사건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은 넘겼다. 홍콩 정부가 시위대의 요구를 전부 수용하지도 않았고, 시기적으로 조치가 너무 늦기는 했지만 홍콩 정부의 진일보한 결정을 환영한다. 국내 소요 사태에 대해 늘 강경하게 대응하는 중국 중앙정부임을 감안하면 결코 작은 성과가 아니다. 


홍콩 캐리 람 행정장관. 로이터 연합뉴스


이번 송환법 철회는 민주화를 열망하는 홍콩 시민의 승리다. 홍콩 시민들은 지난 3월 초 홍콩 당국이 송환법 제정을 추진하자 6월부터 본격적으로 반대 시위에 나섰다. 송환법이 홍콩에 있는 반중·인권 운동가를 중국으로 압송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후 지난 14주 동안 쏟아진 장대비도, 중국 정부의 위협도 시민들의 민주화 의지를 막지 못했다. 특히 당국의 방조하에 자행되는 백색테러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비폭력으로 맞선 홍콩 시민을 지켜보면서 세계인이 응원했다. 중국 정부가 특수부대를 인접 도시에 배치하고 시위 지도부를 체포했지만, 시민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해 집회를 이어갔다. 물론 이번 철회 조치는 다음달 1일 ‘신중국 건국 70주년’ 분위기를 망치지 않기 위해 강경 대응을 자제한 결과인 것은 맞다. 그러나 홍콩 시민들의 견고한 민주화 의지와 세계인들의 눈을 부릅뜬 감시와 지지가 없었다면 이번 조치는 결코 나올 수 없었다. 이 점에서 홍콩 시민의 승리이자 세계인의 승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송환법은 철회됐지만 사태가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 시위대는 나머지 4가지 요구, 즉 경찰의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와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등을 요구하고 있다. 홍콩 및 중국 중앙정부는 이를 거부하고 있다. 오는 주말로 예정된 15차 시위와 이후 상황에 따라 사태의 추이가 결정된다. 중국 정부가 나머지 4개 요구를 적극 수용하지 않는 한 시위대는 물러서기 어렵다. 시위대에 대한 백색테러와 홍콩 경찰의 방조를 경찰 자체 위원회로 조사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중국이 세계의 지도국을 자처한다면 시위대의 민주화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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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결정은 ‘강한 우려와 실망’이라는 미국발 파도를 불러왔다. 파도는 한·미관계에 새로운 갈등 요소를 드러냈다.


미국의 불만어린 표현은 즉각적이고 직설적이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마크 애스퍼 국방장관 등 미국 외교·국방 고위 당국자는 ‘문재인 정부’를 지목해 강한 유감과 실망을 쏟아냈다. 민주당 엘리엇 엥겔 하원 외교위원장, 공화당 마이클 맥카울 하원 외교위원회 간사 등 여야 구분도 없었다. 워싱턴 싱크탱크 전문가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겠다. 문재인 대통령은 나의 아주 좋은 친구”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응이 어리둥절할 지경이었다.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22일 열린 반일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정부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결정에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은 지난 2달 동안 일본이 전략물자 수출 통제를 믿을 수 없다면서 반도체 소재 등 3개 품목의 한국 수출을 규제하고, 한국을 수출절차 우대국(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동안 한·일 양국에 ‘상황을 악화시키는 추가 조치 자제’를 요청하는 원론적 입장을 고수했다. 그런데 한국이 일본과의 군사정보 교류를 목적으로 체결한 협정을 종료하겠다고 하자 펄쩍 뛰고 나섰다.


GSOMIA가 자국 안보 이익에 직결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일관계에 합리적 시각을 갖고 있다고 평가받는 워싱턴의 한 동북아 전문가는 “문재인 정부가 일본을 향해 극도의 불만을 나타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정보 공유는 한·일 두 나라뿐 아니라 미국까지 포함되는 상호 이해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일본을 압박한다면서 남의 다리를 긁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2016년 11월 전격적으로 한·일 GSOMIA를 체결하면서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일본과의 정보 협력이 우리 안보 이익에 부합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목도하듯 미국이 부여한 위상은 그 이상이었다. ‘인도·태평양 전략’이라는 이름 아래 대중국 포위전략을 펼치고 있는 미국은 일본의 군사화를 지지하는 한편 한국과 일본이 역사 갈등을 해소하고 안보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동북아에서 대중국 봉쇄축 역할을 맡기를 바란다. 이른바 미·일동맹 하부구조로 한·미동맹 편입론이다.


한·일 역사갈등 봉합을 도모한 것이 한·일 위안부 합의였다면, GSOMIA는 안보 협력의 핵심이었다. 공식 파기 선언은 없었지만 한·일 위안부 합의는 사실상 파기 상태다. 이에 더해 한·일 GSOMIA까지 깨져나갈 상황이다. 미국으로선 동북아에 세웠던 대중국 봉쇄축 약화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제 화난 표정일지언정 미국도 무대 위로 올라왔다. 미국은 한국이 11월 22일 GSOMIA 효력 정식 종료 이전 재고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힌 상태다. 미국이 이를 위해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까지 포함한 중재안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나설지, 한국에 재고만 요청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설사 한·일 갈등이 해소되고 미국 바람대로 한국이 GSOMIA 종료 결정을 번복한다면 이번에는 중국의 반발이 예상된다. 칼을 뽑기도 어려웠지만, 다시 칼집에 넣기도 쉽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앞서 청와대는 한·일 GSOMIA 종료 결정을 발표하면서 “미국은 우리 정부의 결정을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에서 쏟아진 반발을 보면 청와대가 미국 측 이해 정도를 과장했거나, 예상되는 반발을 과소평가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전자였다면 정직하지 못했고, 후자였다면 나이브했다. 미국에 자제를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제는 “미국 입장을 이해한다”는 애매한 말로 일관하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는 더 솔직하고 진지해져야 한다. 한·미갈등의 파도를 헤쳐나갈 국민적 지지를 모으기 위해선 더욱 그렇다.


<워싱턴|김재중 특파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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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미국이 북핵 해결을 위한 실무협상을 두고 두 달째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다. 북한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은 지난달 31일 담화를 통해 “미국과의 대화에 대한 우리의 기대는 점점 사라져가고 있으며, 우리로 하여금 지금까지의 모든 조치들을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로 떠밀고 있다”고 말했다. 미 재무부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북한 정제유 제품의 불법 환적 등에 연루됐다며 대만인 2명과 대만 및 홍콩 해운사 3곳에 대한 제재를 추가로 시행했다. 한·미 연합훈련만 끝나면 곧바로 북·미 실무협상이 열릴 것이라는 전망과 전혀 딴판이다.


북·미가 최근 주고받은 발언을 보면 이것을 과연 실무협상을 앞둔 기싸움으로 치부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북한은 외교수장 리용호 외무상에 이어 대미 협상 실무 총책인 최선희 제1부상까지 나서 미국을 비난했다. 최고위 협상가들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는가 하면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와 핵실험 중단,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등을 거꾸로 되돌릴 수 있다고 공언하고 있다. 미국 또한 대북 제재를 풀 생각이 없어 보인다. 특히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달 30일 세계 강제실종 희생자의 날을 맞아 발표한 성명에서 북한의 약점인 인권문제까지 건드렸다. 북·미가 이렇게 신경전만 벌이는 것은 북핵 문제 해법에서 접점을 찾지 못해서다. 북한은 미국을 향해 체제 안전보장 등 카드를 제시하고 나오라는 것이다. 반면 미국은 일단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식이다. 북·미 모두 협상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지만 북한이 대미협상의 시한으로 설정한 연말까지 양측이 만날지조차 장담하기 쉽지 않다.


북·미가 당장 협상에 나서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북한은 리용호 외무상의 오는 9월 유엔 총회 참석을 취소했다고 한다. 북·미 외교수장이 만날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지금 북·미 간에 시급한 것은 실무협상을 조기에 개최하는 것이다. 만약 북·미 실무협상 개최가 미뤄지거나 열려도 아무 성과 없이 끝날 경우 북·미관계는 언제든 대치 국면으로 치달을 수 있다. 특히 내년에는 미국의 대선이 있어 불확실성이 커진다. 서로 대화 의지를 버리지 않고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사이에 신뢰가 남아 있는 동안 북·미는 협상을 시작해야 북핵 협상의 결정적 해법을 낼 수 있다. 북·미는 당장 소모적인 신경전을 중단하고 속히 실무협상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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