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가 빙하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관련 소재를 1차 타깃으로 삼았고, 한 달 뒤에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에서 한국을 예고대로 뺐다. 한국은 맞대응을 선언했다. 양측의 충돌, 피해는 점점 가시화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갈등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앞으로 어디까지 치달을지 알 수가 없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런 상황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올 초부터 ‘한국을 아프게 할’ 구체적 실행 계획을 짰고, 그 시나리오대로 일본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무역의 선도자처럼 굴더니 통상을 보복수단으로 삼는 것은 언행불일치 아니냐는 비판, 가뜩이나 불안정한 동북아 정세에 괜한 소란을 일으키냐는 국제사회의 우려에는 귀를 닫았다. 일본의 조치는 한국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이 절대 아니고, 문제가 있는 한국의 수출관리제도 때문이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그때그때 바뀌는 말은 장기간 준비치고는 논리 구조가 어설프다는 것을 드러낸다. 누가 뭐라건 한국을 집요하게 물고늘어지겠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한·일 갈등 상황은 빨리 수습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배상해야 한다는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 판결을 구실로 시작된 보복조치는 경제·무역 문제로 가시화했다. 민간 분야 교류도 줄어들고 있다. 안보 분야로 번질 조짐이다. 그동안 양국이 과거사와 독도 문제로 숱하게 얼굴을 붉혔지만, 한·일관계는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 정경분리가 밑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근간이 허물어지니, 양국관계는 파국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아베 총리를 비롯한 최측근들이 “한국과는 신뢰가 깨졌다”고 하는 말은 지금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하지만 그 책임을 온전히 한국에 묻는 것은 가당치 않다. 그럼에도 신뢰가 없다고 대화를 못하는 건 아니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대화의 필요성은 커진다. 문제를 풀 생각이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것이다. 관건은 지금 서로가 그럴 의지가 있냐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비판하면서도 “우리 정부는 지금도 대응과 맞대응의 악순환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일본이 한국으로선 납득 불가한 부당한 조치를 거둬들이면 대화할 뜻이 있음을 내비쳤다. 당장 일본이 반겨줄 리는 만무해 보인다. 외무성 부대신이 TV에 나와 문 대통령의 ‘적반하장’ 표현을 문제 삼으며 “품위 없는 말을 쓰는 것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무례하다”고 막말을 할 정도다. 


한국 시민들의 ‘NO 아베’ 움직임에 연대하는 일본 시민들이 4일 오후 도쿄 신주쿠 아루타 마에에서 ‘친하게 지내요’ 등 한국어가 함께 쓰인 손팻말을 들고 반아베 집회를 열고 있다. 도쿄 _ 연합뉴스


악화일로인 상황은 양국의 미래에 불안감을 던진다. 젊은 세대의 반일, 반한 감정이 가슴 깊숙이 새겨지면 다음 세대에서의 한·일관계도 힘겨워진다. 한·일관계사에서 2019년이 어떻게 기록될 것인지는 지금부터 양국이 하는 일에 달려 있다. 반전의 계기가 필요하다. 현재로선 양국 정부도, 국민도 너무 격앙돼 머리 맞대고 진지하게 얘기할 분위기가 아니다. 아베 총리의 구상이 한국과의 마찰을 유발해 숙원인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개헌을 실현하고, 중국의 부상으로 쪼그라든 위상을 회복하는 것이라면 한·일 충돌은 장기화·만성화된다.


한국은 미국을 쳐다본다. 미국의 주요 동맹 간 갈등이 미국 경제에 영향을 줄 수 있고, 동북아 안보 지형 관리에 파장이 미치게 된다. 한국의 대응 카드로 거론되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폐기도 그러하다. 이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한·미·일을 삼각끈으로 묶기 위해 미국이 강하게 원했던 사안이다. 그런데 GSOMIA에 대해선 강한 우려의 메시지를 던지는 미국 입장이 분명치 않다. 한·일 사이의 일이라고 거리를 뒀던 미국은 양국에 ‘현상유지 협정’으로 중재를 시도하는 듯하더니, 일본이 이를 무시하고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결정한 이후에는 ‘중재자’가 아니라 ‘대화 촉진자’ 역할을 할 뜻을 내비쳤다. 미국 국무부는 “한·일이 창의적 해법을 찾기를 권고한다”고 밝혔다. 미국이 계속 관여는 하지만 해결책을 모색할 당사자는 한·일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미국의 적극성에 기대기보단 한국이 주도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상황임을 보여준다.


일본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체제를 재편하려 한다면 일본의 진실한 사과와 반성이 없는 강제징용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지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해결을 장담할 수도 없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배상 판결에 응하지 않는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을 강제매각으로 현금화하는 시점이 또 한번의 중대 분수령이 될 터이다. 이대로 가면 예상 시기는 올해 말 또는 내년 초.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한국 외교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


<안홍욱 정치·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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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최대 국제예술제인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출품된 ‘평화의 소녀상’ 전시가 강제로 중단됐다. 일본 정부의 공공연한 압력과 오무라 히데아키 아이치현 지사가 일방적으로 전시 중단을 통보한 결과다. 트리엔날레 기획전으로 마련된 ‘표현의 부자유, 그후’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소녀상을 비롯해 그간 일본 정부의 외압으로 전시되지 못한 작품을 한데 모은 전시다. 양식 있는 일본 예술인과 시민들의 노력으로 어렵게 성사되어 ‘평화의 메신저’ 역할을 기대했던 소녀상이 사흘 만에 강제 철거되고, 해당 전시도 통째로 중단됐다. 한 일본 작가의 지적처럼 “역사 문제를 직시하지 않는 불관용과 인권의식이 없는 국가”임을 백일하에 드러낸 꼴이다. 전시회 이름처럼 ‘표현의 부자유’를 자인한 것이기도 하다.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에서 4일 관람객이 폐쇄된 전시장 입구를 촬영하고 있다. 나고야 _ 연합뉴스


이번 전시는 개막하자마자 일본 정부의 노골적인 중단 압력과 우익 세력의 위협에 부딪혔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보조금 중단을 거론하며 압박했고,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 시장은 ‘위안부 망언’을 퍼부으며 전시 중단을 요구했다. 우익 세력은 “가솔린 탱크를 몰고 전시장을 들르겠다”는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아이치트리엔날레 큐레이터들은 성명에서 “전후 일본 최대의 검열 사건이 될 것”이라며 ‘역사적 폭거’로 규정했다. 일본 정부의 ‘평화의 소녀상’ 전시 방해는 해외에서도 자행되고 있다. 독일 베를린의 ‘게독’ 전시관에서 지난 2일 시작된 ‘토이스 아 어스’에 소녀상이 출품 전시되자 공문을 보내 철거를 압박했다고 한다. 앞서 독일의 한 기념관에 상설 전시된 10㎝도 채 안 되는 작은 소녀상마저 일본 정부가 기념관 측을 압박해 철거하도록 한 사실도 뒤늦게 확인됐다.


‘역사적 폭거’를 되돌리려는 움직임이 일본 내에서 본격화하고 있다. 해당 기획전의 실행위원들은 법적 대응에 나섰다. 일본펜클럽은 전시 계속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아사히와 도쿄 신문 등 언론의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전시 작품 철거에 반대하는 온라인 서명운동은 하루 새 5000명을 돌파했다.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배상 판결 문제를 그것 자체로 풀지 않고 ‘경제침략’으로 전용해 한·일관계를 파탄으로 내몰고 있다. 그 무도함과 졸렬함이 상징적으로 드러난 게 이번 소녀상 전시 중단이다. 역사 왜곡과 ‘한국 때리기’를 위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예술의 의의마저 짓밟는 일본, 그 반문명을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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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부 장관이 3일 ‘지상발사형 중거리 미사일’을 아시아 지역에 배치하고 싶다고 밝혔다. 에스퍼 장관은 호주를 방문하는 중에 이같이 밝힌 뒤 “몇 달 내를 선호한다”고 말해 조기 배치를 희망한다는 뜻까지 피력했다. 뉴욕타임스는 중거리 미사일이 일본이나 한국에 배치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중거리 미사일 개발·배치를 전면 금지한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에서 탈퇴한 바로 다음날 ‘아시아 지역 중거리 미사일 배치’ 발언까지 한 것이다. 미국이 신속하게 대중국 포위 전략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일본과의 갈등을 포함해 외교안보 현안들이 중첩된 상황이라 한국으로서는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


아시아에 지상발사형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고 싶다고 밝힌 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 장관(왼쪽). 시드니(호주)_AP연합뉴스


미국의 INF 탈퇴는 그 자체로 기존의 국제안보 질서를 흔드는 행동이다. 게다가 미국이 2021년 만료되는 ‘신전략무기감축협정’까지 탈퇴하면 핵통제 체제의 양대 축이 모두 사라지게 된다. 패권국 간 군비경쟁을 촉발하는 위험한 행동을 미국이 주도한 것은 유감스럽다. 미국의 INF 조약 폐기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기도 하다. 미국은 미국과 러시아가 INF 조약에 묶여 있는 사이에 중국이 중거리 미사일 전력을 높여왔다고 판단하고 있다. 결국 양국 간 패권 경쟁이 무역갈등에 이어 안보갈등으로 확대된 것이다.


미국이 중거리 미사일 배치 지역으로는 괌 지역을 우선 검토하고 있는 모양이다. 국방부도 주한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한·중이 그 난리를 벌였는데 미국이 또다시 한국에 미사일을 배치하겠느냐고 분석했다. 하지만 에스퍼 장관은 중거리 미사일의 조기 배치를 언급하면서 “이는 동맹과의 논의 등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에스퍼 장관은 오는 9일 정경두 국방장관과 회담하기로 돼 있는데, 자칫 이 자리에서 중거리 미사일의 한반도 배치가 거론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만일 미국이 이번 한·미 국방장관회담에서 중거리 미사일 한반도 배치를 거론하면 그 파장은 가늠하기 어렵다. 중국의 강력 반발은 물론이려니와 북한과의 핵 협상까지 한꺼번에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한국의 의사에 반하여 미국이 중거리 미사일을 한반도에 배치하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 혹여 추후에라도 미국이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을 지렛대 삼아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압박한다면 한·미동맹은 심각히 위협받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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