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태국 방콕에서 한·일 외교장관회담이 열렸지만 현격한 입장 차만 확인한 채 무위로 끝났다. 강경화 장관은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문제를 제기하고 수출심사 우대 대상인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조치를 보류·중단할 것을 촉구했으나 “일본 측 반응에는 큰 변화가 있지 않았다. 양측 간 간극이 상당했다”(외교부 당국자)고 한다. 이날 회담은 미국이 적극적인 중재 입장으로 돌아선 시점에서 이뤄져 기대감을 갖게 했지만 일본은 수출규제 강화가 안보를 목적으로 한 정당한 조치라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는 데 그쳤다. 이날 도쿄에서는 한국 국회 방일 의원단이 일본 여당인 자민당의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을 면담하려다 불발에 그쳤다. 자민당 측은 전날 오후로 잡혔던 면담 일정을 이날 오전으로 연기하더니 다시 6시간 만에 내부 회의를 이유로 취소하겠다고 통보했다. 여야 중진의원들이 주축을 이룬 의원단을 석연치 않은 핑계를 들어 ‘문전박대’한 셈이다. 의회 간 대화조차 기피하는 일본의 태도는 무례라는 표현도 부족해 보인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7월21일 도쿄 자민당 당사에서 참의원 선거 승리에 대한 입장을 밝히며 웃고있다. 도쿄 _ AP연합뉴스


일본의 이런 태도로 미뤄 2일 오전 열리는 각료회의에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 관리령 개정안 의결을 강행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이달 하순부터 수출우대를 받는 27개 국가에서 제외돼 식품과 목재를 제외한 1115개 일반 공산품에 대한 수출규제가 강화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예고한 한·미·일 외교장관회담은 각의 결정 이후여서 ‘버스 지난 뒤 손 흔드는’ 격이 될 공산이 크다. 미국의 설득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좀처럼 자기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고 외교부는 보고 있다. 대외관계에서 모처럼 ‘미국 추종’을 벗어나려는 모습을 국민에 어필하려는 아베 정권의 얄팍한 태도가 안타까울 뿐이다.    


이제 한국으로서는 사태해결을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외교적 노력은 다한 셈이다. 공은 일본에 넘어가 있다. 일본이 도발을 멈추지 않는다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의연하게 맞설 수밖에 없다. 관련 부처들이 대책 마련에 만전을 기해줄 것을 당부한다. 


강 장관은 이날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유지와 관련해 고노 외무상에게 추가 보복을 결정하면 안보 협력의 틀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에 따르면 2018년 이후 양국이 교환한 군사정보는 4건에 그칠 정도로 빈약한 실정이라고 한다. 동북아 정세를 감안할 때 양국 갈등이 안보 분야로까지 번진 것은 위험하고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먼저 ‘안보우려’를 내세우며 도발한 쪽은 일본이다. 일본은 파국으로 가자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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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2월8일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백악관에서 군축 역사의 기념비적 합의문에 서명했다. 사거리 500~5500㎞의 지상발사 탄도·순항미사일을 생산·보유·실험하지 않기로 한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이다. 냉전 종식의 신호탄이었다. 이 조약에 따라 1991년까지 모두 2700기의 미사일이 폐기됐다. 소련 해체 이후에도 러시아는 이 조약을 승계했다. 


‘핵군축의 골드스탠더드’라는 평가와 함께 가장 성공적 핵군축 사례로 꼽히던 INF가 2일(현지시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미국은 지난 2월2일 국무부 성명을 통해 INF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했다. 러시아도 같은 날 즉각 탈퇴 선언으로 맞받았다. 그리고 6개월의 유예기간이 종료되는 이날부터 ‘포스트 INF’ 시대가 열린다. 31년간 이 조약이 유지되는 동안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INF가 결국 ‘미국 최우선주의’를 표방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종말을 고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INF 폐기를 지론으로 내세워온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 영향도 컸다.


INF 폐기로 양대 핵강국 미·러 간 군비통제 체제는 껍데기만 남았다. 이미 2002년 탄도탄요격미사일조약(ABM)이 폐기됐고 2007년에는 유럽재래식전력감축조약(CFE)이 러시아의 탈퇴로 무력화됐다. 1996년 9월 유엔총회에서 결의된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은 핵심 8개국의 비준을 받지 못해 지금까지 발효되지 못하고 있다. 2021년 만료되는 미·러의 신전략무기감축협정(뉴스타트)도 연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INF 폐기는 핵통제 체제 약화 이상의 의미가 있다. 특히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미국이 INF를 폐기한 것은 러시아와의 갈등 때문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중국에 대한 견제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미·러가 INF에 묶여 있는 동안 중국은 장외에서 마음껏 중거리미사일 능력을 확대했다. 그중 대부분이 동아시아의 미군 전력이 중국 주변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배치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우리만 조약을 지키는 상황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직접 중국을 겨냥했다.


문제는 INF 파기 이후 미국이 중국의 중거리미사일을 어떻게 다루느냐이다. 미국은 중국을 포함하는 새로운 조약을 지향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정말로 미국이 ‘보다 안전한 세계’를 만들기 위해 중국의 중거리미사일을 포함하는 새로운 군축 메커니즘을 원한다면 이런 식으로 INF를 깨지는 않았을 것이다.


군축은 적과의 대화를 통해 신뢰를 쌓아 합의에 이르는 힘든 과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공개적이고 진지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진정한 국제 통제체제가 되려면 중국 외에 중거리미사일 전력을 가진 나라들을 모두 포함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국제기구를 통한 공개적인 토론과 협의과정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트럼프는 그런 시도를 한 적이 없다.


중국과 양자 간 군축 협상을 하려는 것 같지도 않다. 미국이 보유한 핵탄두는 중국의 20배다. 핵전력이 열세인 중국은 비선제공격과 최소억제 원칙의 핵전략을 갖고 있으며 지상발사 중거리미사일은 중국 핵전력의 근간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미국이 중거리미사일을 만들지 않으니 중국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양자 간의 군축은 서로 똑같은 무기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수준에서 서로에게 가장 위협적인 무기를 제거하는 조치를 교환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 같은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중국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 뻔하다.


트럼프는 냉전 시대 유럽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시아에 새로운 중거리미사일을 집중배치하고 중국을 굴복시키려 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경우 동북아에서 중국·러시아와 미국 사이의 군비경쟁이 불가피하다. 미국은 한국에 미사일 기지나 탐지 레이더 등 MD 체계를 두려 할 가능성이 있다. 동북아에 냉전구도가 다시 펼쳐지는데 ‘한반도 냉전 해체 작업’이 제대로 될 리 없으므로 북핵 문제 해결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결국 동북아 군비경쟁의 최대 피해자는 한국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 중·러가 한반도 주변에서 합동초계비행을 하고 북한이 INF 위반 논란을 촉발시킨 ‘이스칸데르’급 미사일을 잇달아 발사하고 있는 것은 그 전조일지도 모른다.


INF 폐기는 장차 한국의 생존과 직결된 안보 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는 중대 사안이다. 


‘포스트 INF 시대’에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지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대비 전략이 현시점에서 마련되어야 한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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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베 정부의 불화수소 등 반도체 소재에 대한 수출규제 여파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우리 정부는 자동차나 항공기의 주요 산업 소재인 탄소섬유에까지 규제 불똥이 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관련법 개정, 행정절차 간소화 및 예산지원 등을 검토하며 소재 산업 지원 의사를 밝혔고, 기업은 정부와 함께 소재, 부품, 장비산업에 대한 국산화 가속화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를 소재와 부품산업 중흥의 기회로 만들자는 분위기다. 


그러나 보다 장기적이고 근원적인 대책이 빠졌다. 소재개발을 할 인재를 키우는 교육과 소재개발의 바탕을 이루는 기초과학의 육성이다. 최근 한 언론과 종로학원하늘교육의 공동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전국 4년제 대학의 48.9%, 서울지역의 32개 대학 중 8개 학교가 자연계 기초과학 관련 학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7월31일 (출처:경향신문DB)


국가정책을 만드는 많은 사람은 기초과학이 국가 발전을 이끄는가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 그들은 기초연구 결과가 응용연구로 이어지고, 나아가 국가의 산업발전과 생산물로 이어져야 한다는 기초과학의 선형적 모델을 중시한다. 그래야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


전자기학의 아버지 톰슨은 1916년의 한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산업에 적용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연구를 수행하지는 않죠. 단순히 자연의 법칙에 관한 지식을 확장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합니다.” 그는 한 예로 엑스레이를 들면서, 엑스레이가 수술실에서 총알 부상 부위를 찾기 위해 개발된 게 아니라, 전기의 본질을 찾는 순수과학에서 비롯된 것임을 강조한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장이었던 크리스토퍼 르웰린 스미스는 입자가속기가 물리학의 기초연구를 넘어서 반도체, 비파괴검사, 암 치료를 비롯한 의료, 핵폐기물처리 등 다양한 분야로 전파된 것을 예로 들면서 기초과학이 사회의 문화에 이바지하고, 경제적 가치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으며, 산업을 진작시킴은 물론 교육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언급한다. 


오늘날 많은 자동차에 이용되는 유도코일을 개발한 건 자동차회사가 아니다. 물리학을 사랑한 패러데이가 전자기 유도법칙을 발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하 273도에서 전기저항이 0이 되는 초전도성 이론은 물리학자에 의해 연구되어 오늘날 병원에서 이용하는 MRI(자기공명영상장치)까지 확대되었다. 오늘날 꿈의 컴퓨터라 불리는 양자컴퓨터 역시 물리학의 양자역학 원리 없이는 불가능하다. 1900년 독일의 플랑크가 에너지 양자 개념을 도입한 지 100년이 훨씬 지난 후에야 가능한 일이었다. “하늘은 왜 파란가요?” “무지개는 왜 생기죠?” 이런 질문이 현대의 고해상도 현미경을 만드는 분광학의 기초가 되었다. 


미국의 거대입자물리가속기연구소장이었던 밥 윌슨은 의회에서 가속기 연구소가 미국의 국방에 어떤 이바지를 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그는 이렇게 답한다. “아무것도 없어요. 그러나 우리 연구소는 국가 방위의 의미를 가치 있게는 할 거예요.” 


우리나라 역시 연구비를 따내기 위해 제출하는 연구계획서의 거의 마지막 부분의 질문 항목은 연구과제가 미칠 사회경제적 효과를 기술하는 것이다. 많은 연구자는 자기 믿음에 기반을 둔 천문학적 숫자를 경제적 효과로 적어낸다. 행여나 “청소년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음”이라고 기술한다면 과제로 채택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기초과학이 호기심을 원동력으로 해서 탄생한 것이라면, 응용과학은 특정 질문에 대해 답하기 위해 고안된 방법이다. 응용과학이 낡은 방법을 개선한다면, 기초과학은 혁명으로 이끄는 과정이다. 첨단소재, 부품, 장비산업은 분명 기초과학으로부터 시작한다. 꺼지지 않는 기초과학연구실의 불빛이 대한민국의 미래다.


<엄치용 미국 코넬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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