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국과 일본에 대해 일정 기간 분쟁을 멈추는 ‘현상유지 협정’에 합의할 것을 양측에 촉구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또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을 열 계획이라고 이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강경화 외교장관과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을 만난 뒤 두 사람을 함께 만나 그들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도록 장려하겠다”고 했다. 폼페이오는 “그들은 모두 우리의 중요한 파트너”라면서 “우리가 좋은 대화를 나누고 좋은 돌파구를 찾도록 도울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일본의 반도체 3대 품목 수출규제로 시작된 한·일 갈등에 대해 관망 자세를 보이던 트럼프 행정부가 본격적인 중재에 나설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30일(현지시간) 워싱턴 인근 앤드루스공군기지에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을 위해 태국행 전용기에 오르고 있다. 워싱턴 _ AP연합뉴스


미국이 한·일 양국에 추가 행동을 멈추는 신사협정을 제안하면서 외교장관 간 대화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한 것은 이번 갈등이 심상치 않은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공히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 간 분쟁이 격화될 경우 동아시아 전략이 차질을 빚을 우려가 큰 데다 불똥이 미국 기업으로까지 튈 수 있다는 우려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사태의 심각성에 비춰 미국의 이번 중재가 갈등을 완전히 가라앉힐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한·일 양국이 일단 싸움을 멈추고 타협을 시도하는 기회가 제공된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미국의 중재 노력이 파국을 막고 한·일 갈등의 출구를 찾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 8월 1일 (출처:경향신문DB)


미국의 움직임과 별개로 한·일 양국 간 대화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무소속 서청원 의원을 단장으로 하는 국회의원단이 31일 일본의 주요 정계 인사들을 만나기 위해 1박2일 일정으로 방일했다. 지난 5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의원들을 냉대한 것과 달리 이번에는 집권 여당인 자민당의 실력자인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을 비롯해 누카가 후쿠시로 일한의원연맹 회장 등 주요 여야 의원들이 망라됐다. 1일에는 ARF 회의가 개최되는 태국에서 일본의 경제도발 이후 처음으로 한·일 외교장관 회담이 열리게 된다. ‘파국’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마련된 이번 대화가 결실을 맺기를 기대한다. 서청원 의원은 누카가 회장 등과의 오찬 간담회 후 기자들에게 양국 의원들이 “ ‘이렇게 가서는 안된다’는 것에는 공감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양국 국민 대다수의 심정이 그 말 그대로일 것이다.

Posted by KHross

북한이 31일 새벽 원산 갈마 일대에서 또 단거리 미사일 두 발을 동해로 발사했다. 지난 25일 호도반도에서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KN-23 두 발을 쏜 지 엿새 만이다. 이날 미사일은 약 30㎞ 고도로 250㎞가량을 비행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더딘 북·미 간 협상과 다음주 실시되는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미사일 발사는 대화 분위기에 역행하는 평화 위협 행위다. 국제사회와 함께 강력 규탄한다.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는 그 자체로 큰 위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도발 행위다. 북한의 이번 미사일 발사는 그 주기가 짧아지고 종류도 다양해졌다는 점에 위험성이 있다. 지난주에는 석달 만에 미사일을 발사하더니 이번에는 1주일도 채 안돼 쏘았다. 게다가 이번에는 종류가 다른 미사일을 실험발사했다.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과 한국의 F-35A 스텔스기 도입이 대화 분위기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또 자위력을 강화하기 위해 미사일 실험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미 연합훈련은 규모를 대폭 축소해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실시한다. F-35A는 9·19 군사합의 이전에 도입이 확정된 것이다. 거꾸로 북한의 미사일 발사야말로 탄도미사일의 실험을 금지한 유엔 결의안 위반의 소지가 다분하다.


다행히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려 신경 쓰고 있다. 북한 매체는 최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3발을 동시 탑재할 수 있는 신형 잠수함을 소개하며 “작전수역은 동해”라고 설명했다. 북한의 잠수함과 미사일이 미국을 겨냥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개의치 않는다며 여전히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신뢰를 표시했다. 지난주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당국자가 비무장지대에서 북측 당국자와 만났다. 이 자리에서 북측이 곧 실무협상을 재개할 의향이 있다고 전했다고 한다. 북·미 실무협상이 가시권에 들어온 셈이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북한이 모험적 행동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 미사일 도발을 일삼는 북한에 한·미가 마냥 인내를 발휘할 수는 없다. 북한은 지금껏 미사일과 핵 실험을 중단한 것 이외에는 특별히 보여준 게 없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추가 미사일 도발은 자기파멸적 행동이 될 수 있다. 미국에서 북한의 핵무기에 대비하기 위해 한·미·일 3국이 전술핵을 공유하자는 발상이 나오는 판이다. 과거 벼랑 끝 전술을 펼쳐 상대방을 압박하듯 북한이 함부로 미사일을 쏴댈 때가 아니다. 북한은 긴장을 고조시키는 미사일 발사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Posted by KHross

“당신 누구예요. 뭣 하는 사람이에요. 왜 우릴 두 번 죽일라카는 거예요.”


영화 <주전장(主戰場)>은 일본군 성노예로 고통스러운 삶을 강요당했던 이용수 할머니(91)의 호통으로 시작한다.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설명하러 온 임성남 외교부 1차관을 향해 이용수 할머니는 울분을 쏟아낸다. “(협상)하기 전에 먼저 피해자를 만나야 될 것 아니에요. 이렇게 한다고, 알려주어야 할 것 아니에요. 모른다고, 나이 많아서 모른다고, 무시하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지금 일본은 아베가 사죄했다, 사죄하고 전부 다 배상했다, 이렇게 보도해 가지고 외국까지 다 나가 있어요. 뭐 하는 거예요. 어데 외교통상부예요. 일본 외교부예요?”


<주전장>은 일본계 미국인 감독 미키 데자키(36)가 제작한 역사기록물이다. 일본 내 역사부정론자, 양심적 역사가들의 인터뷰와 실제 일어난 일들을 토대로 일본군 성노예 실체와 그로 인해 유린당한 식민지 여성의 인권을 파헤치고, ‘아베의 일본 우익’도 조명한다.

영화 '주전장' 포스터. 사진제공 시네마달


일본이 수출규제를 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일본의 공격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위자료 청구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한·일 위안부 합의 파기가 계기였다. 대법원 판결 요지는 일본이 불법적 한반도 강제점령을 인정하지 않은 점을 지적한 것이다. 강제노역도 인정하지 않았고, 배상도 이뤄진 적이 없기 때문에 개인 청구권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1965년 한일협정 내용을 들어 배상 문제는 해결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협정문 어디에서 ‘강제’라는 단어는 없다. 일본의 한반도 강제점령은 열강의 묵인하에 이뤄진 부정할 수는 없는 역사다. 일본은 위력을 동원하거나(한일의정서), 어새(御璽)·서명이 없거나, 매국노에 의한 불법 조약·협정(을사늑약·한일병합)을 통해 한반도를 강제 통치했다. 진실이 이런데도 일본은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과는 하면서도 “한국은 어리석은 국가” “조선 지배는 조선을 발전시키려 한 것” 등 망언들을 쏟아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고이즈미 준이치, 아베 신조 총리 등은 대놓고 태평양전쟁 A급 전범자들을 기리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기도 했다. 


<주전장> 후반부에선 아베를 중심으로 한 일본 우익의 실체를 확인하게 된다. 아베 총리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외손자다. 영화는 그가 일본의 교과서 왜곡과 일왕 중심의 입헌군주제인 ‘메이지 헌법 체제로의 복귀 운동’을 주도함을 증명해 나간다. 고바야시 세쓰 게이오대 교수는 “정말 무섭다. 그들은 전쟁 전의 일본을 신봉한다. 인권 감각은 없다. 그들은 헌법 개정에 곧 착수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1997년 창설된 일본회의다. 일본 내각의 대다수가 이 조직의 회원이라고 한다. 일본회의가 일본의 정치·행정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회의 의원연맹 도쿄본부장 가세 히데아키의 말에서 일본회의의 인식은 그대로 드러낸다. “중국은 붕괴될 것이고 한국은 일본에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 순간부터 한국은 이 세상에서 가장 친일적인 나라가 된다. 한국은 정말 귀여운 나라다. 버릇없는 꼬마가 시끄럽게 구는 것처럼 말이다.”


2019년 일본과 <주전장> 속 일본은 다 같은 ‘아베의 일본’이다. 그들의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100여년 전 일본으로 돌아가려 하고 그 지렛대로 또 한국을 삼은 것이다. 그런 일본을 상대로 완전한 해결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용수 할머니의 호통 속에 하나의 실마리가 있다. 국민이 다친 국가 간 분쟁에서 진실의 규명, 그리고 진심을 담은 사죄와 보상·배상이 없는 한 그 어떤 협정이나 합의도 일시적 봉합에 그칠 뿐이라는 것 말이다. 후세에까지 아픈 역사를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일 양국은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역사 청산작업을 해야 한다. 희망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일본의 지식인들은 최근 “식민지 지배를 인정하고 사죄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 대부분의 일본 국민의 공통 인식”이라며 경제보복 철회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영화 <주전장>이 진실에 다가갈 수 있었던 것도 고바야시 교수, 와타나베 미나 액티브 뮤지엄 관장, 도쓰카 에쓰로 인권변호사 등 양심적 일본인들의 증언 때문이었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를 기리는 ‘평화의 소녀상’이 일본 최대 국제예술제가 열리는 나고야에 전시되는 것 역시 일본인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했다. 이런 움직임이 모아지면 아베의 일본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한·일관계의 정립을 위해서라도 아직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미키 감독은 영화 말미에 위안부 지지자들에게 당부한다. “최악의 이야기, 과장에 초점을 맞추지 말아달라. 일본 우익들의 주장에 박차를 가할 뿐이며 일본인과의 공감대를 형성할 기회도 박탈시킨다.”


<김종훈 논설위원>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