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에 해당되는 글 26건

  1. 09:54:21 홍콩 민주화 시위의 ‘속살’
  2. 2019.08.20 [사설]한·미 훈련 종료, 비건 방한, 한반도 대전환 시동 계기로
  3. 2019.08.16 [세상읽기]한·일 문화 내셔널리즘을 넘어서
  4. 2019.08.16 [사설]새 일왕 “과거 깊은 반성”, 아베 총리는 안 들리나
  5. 2019.08.14 ‘죽음의 도구’와 통제능력
  6. 2019.08.13 핵미사일과 공격용 소통…시험대에 오른 인간의 통제 능력
  7. 2019.08.13 [사설]격화되는 홍콩 사태,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8. 2019.08.12 [사설]북·미 대화 재개 임박, 남북대화도 복원돼야
  9. 2019.08.09 [사설]동맹이라면서 잇따라 지나친 청구서 내미는 미국
  10. 2019.08.08 [한·일 경제전쟁 특별기고]먹어삼키거나 갈라놓거나…일본의 한반도 관리구도는 안 변했다
  11. 2019.08.08 [사설]북한의 군사도발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12. 2019.08.08 [사설]수출규제 품목 추가하지 않은 일본, 살라미식 전술인가
  13. 2019.08.07 [조호연 칼럼]한·일 갈등, 병 주고 약은 주지 않겠다는 미국
  14. 2019.08.07 [정동칼럼]한·중·일이 전쟁과 평화를 말하는 법
  15. 2019.08.07 [사설]‘북한을 다녀오면 미국 여행 어렵도록 하겠다’는 미국
  16. 2019.08.07 [사설]이번엔 환율조작국 지정까지, 격화되는 미·중 갈등
  17. 2019.08.06 [사설]한·일 군사협정 파기까지 거론되는 현실과 미국의 침묵
  18. 2019.08.05 [아침을 열며]한국 외교의 힘이 필요하다
  19. 2019.08.05 [사설]국제예술제서 ‘소녀상’ 전시 중단시킨 일본의 “역사적 폭거”
  20. 2019.08.05 [사설]INF 폐기 하루 만에 미사일 아시아 배치 들고나온 미국

올여름, 중국 대륙은 드라마 <장안십이시진(長安十二時辰)>으로 뜨거웠다. 새로운 줄거리는 아니다. 당나라 수도 장안성에 자객들이 침투해 장안성이 위험에 빠지자 군인 출신 사형수를 비밀 투입해 위기를 해결한다는 내용이다. 옛 시간 단위 ‘시진’을 끌어와 24시간 동안 일어나는 일을 속도감 있게 그려냈다.


미국 드라마 <24시>에서 구성을 따온 듯한 이 드라마가 ‘중국판 짝퉁’으로 전락하지 않은 것은 철저한 역사 고증 덕분이다. 시간적 배경이 되는 정월대보름의 풍속을 상세히 묘사하고 당나라 시대 화장법과 복식 등은 원형에 가깝게 고증했다. 단순한 역사 드라마가 아니라 다큐멘터리라는 찬사가 나왔다. 이 드라마는 다양한 기록을 근거로 제시한다. 직책이나 풍속을 설명하는 자막이 유독 많다. 역사 기록을 바탕으로 했지만 정사(正史)만 따르지는 않았다. 원작 소설 작가는 안녹산의 난에 대한 민간의 기록인 ‘안녹산 사적’을 참고했다고 밝혔다. 


아무리 훌륭한 역사라도, 혹은 참혹한 일이라도 기록돼야 기억된다. 많을수록 정확해진다. 당나라 황실로서 안녹산의 난은 반역의 역사다. 편파적일 수 있는 기록은 안녹산 사적이라는 민간의 목소리가 보완한다.


중국 정부가 발표하지 않고, 관영 매체가 보도하지 않은 목소리를 기록해 팔던 서점이 홍콩에 있었다. 홍콩 쇼핑몰이 밀집한 코즈웨이베이에 위치한 퉁러완 서점이다. 중국 본토에서 구할 수 없는 금서(禁書)를 살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해 중국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정치 비화를 담은 서적은 물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왕치산 부주석 등 지도자들을 풍자하는 책도 팔았다. 중국 정부로서는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2015년 이 서점의 주주와 직원 5명이 갑자기 실종됐다. 몇 달 만에 나타난 서점 점장은 중국 공안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이 서점은 문을 닫았다.


홍콩 시민들은 범죄인 인도 조례(송환법)가 통과되면 제2, 제3의 퉁러완 서점 사건이 나타날 것이라고 보고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다. 일국양제로 홍콩의 자치권이 보장될 줄 알았지만 중국의 의지에 따라 언제든 하나의 중국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홍콩인들이 직접 뽑지 않고 중국의 입김에 따라 좌우되는 행정장관 선거 제도 문제도 지적한다. 송환법 반대 시위가 보통 선거를 요구하는 민주화 운동으로 번진 이유도 이 때문이다.


홍콩 시민들이 송환법을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인 18일 밤 정부청사 앞 차도에 '광복홍콩 시대혁명'이라고 적혀 있다. 강윤중 기자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대만이 출판·언론의 자유가 충분치 않았던 시절에 자신도 책을 사러 홍콩에 갔다고 했다. 자유의 공기가 가득하던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후 자유를 잃었다. 금서를 살 수 있는 곳은 홍콩에서 대만으로 바뀌었다.


지난 17일 퉁러완 서점을 가봤다. 대로에 있는 푸른색 간판은 여전했지만 철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영업을 하지 않는다는 안내문 밑에는 ‘홍콩 힘내라’ ‘지지한다’는 글씨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서점의 문제가 아니라 자유의 문제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오성홍기를 흔드는 친중국 시위를 적극 보도한다. 친중국 시위는 단체 참여가 많다. 지난 17일 집회에서는 후이저우, 충칭, 광저우 등 중국 각 지역의 향우회가 플래카드를 들고 와 여기저기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중국 매체들은 홍콩의 송환법 반대 시위에 대해서는 최대한 적게, 일부분만 기록한다. 주로 폭도나 폭력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18일 송환법 반대 시위 현장에서 많은 이들을 만났다. 현장에서 노트북을 켰을 때 누군가 다가와 말없이 물을 건넸고, 우산을 씌워줬다. 난간을 넘을 때 손을 내밀어 잡아줬고, 한국어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이들의 따뜻한 마음까지는 기사에 담지 못했다.


이들의 목소리는 더 자세히 기록돼야 한다. 폭도라는 짧은 단어로 표현해서는 안된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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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20일부터 22일까지 사흘간 한국을 방문한다. 이날은 열흘간 일정으로 진행돼온 한·미 연합훈련이 종료되는 날이기도 하다. 비건 특별대표가 이 시점에 맞춰 방한하는 것은 북·미 실무협상 재개에 속도를 내겠다는 미국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0일 트윗을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친서에서 이 훈련이 끝나는 대로 실무협상의 재개를 희망했다고 전한 바 있다. 북·미 양측 모두 실무협상을 조속히 열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셈이어서 비건 대표의 방한을 대화 재개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봐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북·미 실무협상 재개는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반년가량 멈춰 있던 ‘한반도 평화시계’의 재작동을 의미한다. 9월 유엔총회를 계기로 뉴욕을 방문할 예정인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간 고위급회담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가 된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로이터 연합뉴스


관심의 초점은 비건 대표가 한국에 머무는 사흘간 판문점에서 북한과 물밑접촉을 갖거나 실무협상을 전격 재개할지 여부다.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 국면에도 북·미 간 소통이 계속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해온 점을 감안하면 가능성이 없지 않다. 일각에서는 비건 대표의 전격 평양 방문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어떤 형태가 됐든 중요한 건 양측이 더 이상 시간을 끌지 않고 실질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성과를 위해서라면 형식과 절차에 구애받을 필요가 전혀 없다. 


물론 ‘하노이’ 이후 양측이 비핵화 최종상태 및 로드맵 등을 둘러싼 이견을 좁혔다는 징후는 뚜렷하지 않다. 따라서 성과를 낼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이번에는 북한이 ‘체제안전보장’이라는 의제를 들고나올 것으로 보이는 만큼 더 복잡해질 수 있다. 게다가 북한에 대해 비교적 유연한 입장을 유지해온 비건 대표가 오는 10월 러시아 주재 미국대사로 부임할 것이라는 관측도 걸리는 대목이다. 미국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만, 중차대한 협상 도중 대표가 교체되는 것은 달가운 일이 아니다. 만약 사실이라고 한다면 비건 대표가 추후 협상에 혼선이나 차질이 없도록 이번 방한기간 중 분명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남·북·미 대화 국면을 거론하며 “지금의 이 기회를 천금같이 여기고 반드시 살려내야 한다”고 했다. 이는 한반도 주민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북·미 모두 이번에 반드시 성과를 내 한반도 대전환의 시동을 걸겠다는 각오로 임해줄 것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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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4일, 일본 아이치트리엔날레2019 ‘표현의 부자유전(展) 그 후’에 출품된 김운성 작가의 ‘평화의 소녀상’ 전시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일본 극우파들의 위협이 예상되어 관객의 안전을 위해 주최 측이 내린 불가피한 결정이란다. 


전시회의 주제는 이미 논란을 예고했다. ‘평화의 소녀상’뿐 아니라 일본이 금기시하는 일왕과 군국주의를 문제 삼는 작품이 주되게 전시되었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의 중요함을 알리려는 전시회는 역설적이게도 표현의 자유가 얼마나 허망하게 침해되는지를 보여주었다. 


이번 전시 중단 사태가 갖는 특별한 점은 검열과 표현의 자유의 주체를 우리가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에 있다. 전시를 중단시킨 자는 누구인가? 


실제 전시 중단을 결정한 사람은 전시회 실행위원장을 맡은 오무라 히데아키 아이치현 지사이다. 그런데 오무라 지사는 애초에 이 전시를 승인한 사람이다. 반면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 시장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에 ‘평화의 소녀상’이 “일본인의 마음을 짓밟는 것”이라며 전시 중단을 오무라 지사에게 요구했다. 오무라 지사는 처음에는 그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일본 극우파의 테러위협이 가중되자 관객의 안전을 위해 전시 중단을 결정했다. 


나중에 오무라 지사는 이 결정이 일본 헌법 21조를 위반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검열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그런데 그가 그러한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일본 극우파들의 협박이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일본 정부가 예술제 보조금 삭감을 시사하며 전시 중단을 압박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번 전시 중단을 내린 실질적인 주체는 누구일까? 오무라 지사인가? 가와무라 시장인가? 일본 극우파인가? 아베 정권인가? 아니면 일본인들 그 자체인가? 오무라 지사가 실제로 전시 중단 결정을 내렸지만, 모든 책임을 그에게 전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안에는 포스트 군국주의 욕망을 둘러싼 일본 내부의 복잡한 역학관계가 내재해 있다. 


이제 표현의 자유를 주장한 자는 누구인가? 김운성 작가는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검열을 당했다. 그 사태에 항의하기 위해 한국의 박찬경, 임민욱 작가도 자발적인 전시 중단을 결정했다. 그리고 이번 전시 중단 결정에 대해 일본 측 전시 실행위원들은 ‘평화의 소녀상’ 전시 재개를 요구하는 질의서를 오무라 지사에게 전달했다. 일본의 양심적인 문화예술인들도 이번 사태를 강력하게 규탄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한국의 38개 문화예술단체들도 일본의 끔찍한 검열 행위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표현의 자유를 주장한 자들은 비단 한국 작가들, 한국 문화예술인들만이 아니고 일본의 문화예술인들, 이번 전시에 참여한 72명의 다양한 국적의 예술가들이다.  


대법원이 일제강점기 당시 강제징용 피해자들 보상을 확정 판결한 후에 곧바로 가해진 아베 정권의 경제보복 조치는 사실상 21세기 군국주의 부활의 욕망을 품은 정치적 조치이다. 이 조치는 ‘평화의 소녀상’ 전시 중단으로 이어지는 한·일 문화냉전의 대결구도로 이행했다. 


아베 정권이 노리는 것은 한국과 일본이라는 ‘네이션’, 한국인과 일본인이라는 ‘세계 시민’ 사이의 대결을 조장하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경계해야 할 것은 21세기 군국주의 부활과 그 효과로서의 문화내셔널리즘을 재생산하는 문화냉전 세력들이다. 


검열은 일본이 했고, 표현의 자유는 한국이 지켰다라는 일방적인 문화내셔널리즘의 이분법을 넘어서야 한다. 우리 안에도 검열의 주체들이 있고, 그들 안에도 표현의 자유의 주체들이 있다.


‘평화의 소녀상’ 사태가 주는 교훈은 아베의 포스트 군국주의가 재생산하려는 문화내셔널리즘을 경계하면서, 국경을 넘어 표현의 자유의 보편성을 위해 함께 연대하는 세계 시민의 감수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상상하는 것이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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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히토 새 일왕이 15일 도쿄에서 열린 전국전몰자추도식에서 “전후 오랫동안 이어온 평화로운 세월을 생각하고 과거를 돌아보며 깊은 반성을 한다”고 말했다. 태평양전쟁 패전 74주년을 맞는 날 “두번 다시 전쟁의 참화가 반복돼서는 안된다는 점을 간절히 원한다”며 세계 평화를 기원했다. ‘깊은 반성’은 지난 4월 퇴위한 아키히토 상왕이 2015년 추도사부터 해온 말이다. 갓 출발한 레이와(令和) 시대에도 부친이 견지해온 ‘평화주의’를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아베 정부의 경제·역사 도발로 한·일 두 나라가 얼굴을 붉히는 광복절이어서 새 일왕의 메시지는 다행스럽고 울림도 작지 않다. 


나루히토 일왕 내외가 15일 도쿄 지요다구 일본 부도칸에서 열린 전국전몰자추도식에 참석해 아베 신조 총리의 추모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새 일왕의 8·15 추도사는 어느 때보다 그 표현과 수위를 세계가 주목했다. 전쟁을 겪지 않은 일왕이고, 석달 전 즉위식 후 짧은 소감에서도 “세계의 평화를 간절히 희망한다”며 과거사엔 말을 줄인 그였다. ‘깊은 반성’은 4년 전 아키히토 상왕이 ‘깊은 슬픔’에서 사죄 수위를 격상시킨 표현이다. 그 촉발점도 그해 나온 아베의 담화였다. 아베 총리가 “전쟁과 아무 관계 없는 우리 아이들과 손자, 다음 세대 아이들에게 계속 사죄의 숙명을 짊어지게 해선 안된다”며 전쟁과 식민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무력화하자 일왕이 직접 견제·비판한 것이었다. 그 표현의 역사적 배경과 맥락을 새 일왕도 이어받았다. 국정에 간여할 수 없는 ‘상징적 국가원수’ 지위이지만, 침략국의 흑역사에 선을 그으려는 양심세력의 정점에 일왕 스스로를 매김한 셈이다. 일본 극우세력의 폭주에 또 하나의 ‘심정적 제동’이 걸리길 기대한다.


다시 눈은 오불관언하는 아베 총리로 향한다. 그는 오늘도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에 공물을 보내고, 300만명의 전몰 희생자 성격만 열거하며 가해자의 책임은 사죄하지 않았다. 이틀 전엔 외할아버지인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 묘소를 다녀오며 개헌 논의를 본격 추진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한 터다. 군국주의로 달려가는 ‘아베의 관성’과 ‘양심세력의 거울’이 공존하는 일본이다. 아베 총리는 그토록 새출발의 뜻을 키우려 했던 레이와 시대의 일왕까지 이어받은 ‘평화’ 메시지를 무겁게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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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미사일과 공격용 소총. 작동 원리와 파괴력이 판이한 두 무기가 최근 사람들의 근심거리로 새삼 떠오르며 이목을 끌었다.

 

미국은 지난 2일(현지시간) 중거리핵전력조약(INF)에서 탈퇴함으로써 세계 군축 역사의 한 페이지를 찢어냈다. 32년 전 미국과 소련은 INF를 통해 사거리 500~5500㎞ 탄도·순항미사일을 실험·생산·보유·배치하지 않기로 약속했었다. 이로써 핵미사일 능력을 제한해 ‘공포의 균형’을 이룰 수 있게 해줬던 기둥 하나가 무너졌다.

 

공교롭게도 INF가 무너진 것과 거의 같은 시기 미국 텍사스주 엘패소와 아이오와주 데이턴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잇따라 터졌다. 총기난사 사건이 일상화되다시피 한 미국이라지만 15시간의 시차를 두고 32명이나 숨진 사건의 충격은 컸다.

 

두 사건은 죽음의 도구를 통제할 능력이 있는지 묻는 시험대에 인류를 올려놓았다. 배경에 자리잡은 발달한 기술, 변화된 환경, 파편화된 세계는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미국은 INF 탈퇴 이유로 러시아가 INF 금지 미사일을 개발하고, 중국이 INF 바깥에서 미사일을 자유롭게 개발·배치하고 있는 점을 들었다. 이런 불만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들어 처음 나온 건 아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도 2014년 7월 러시아의 이스칸데르 미사일이 INF를 위반했다고 공식 항의한 이후 문제제기를 해왔다.

 

냉전 시절 미국과 소련이 체결한 군축 합의들이 전 세계 핵무기 비축량과 핵무기에 접근할 수 있는 행위자들이 늘어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 같은 맥락에서 시효가 2년 앞으로 다가온 ‘신전략무기감축협정’(뉴스타트)의 연장도 위태로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극초음속 미사일, 핵추진 순항미사일, 핵탄두 탑재 수중 드론 등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기존 군축 논의에서 거론되지 않은 것들이다.

 

그럼에도 트럼프 행정부의 행동은 충격적이다. 기존 군축 합의를 보완하고 폭을 넓히려고 노력하기보다 조약 자체를 허물어 버렸다. 미국의 선택이 새로운 군축 패러다임으로 가기 위한 ‘창조적 파괴’인지, ‘신군비경쟁’의 신호탄인지는 시간이 판명해줄 것이다. 미국이 INF에서 탈퇴하자마자 아시아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겠다고 나선 것을 보면 안타깝게도 전자일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미국 사회에서 재연된 총기규제 논쟁도 변화된 현실과 제도 사이의 괴리를 타고 흐른다. 엘패소와 데이턴의 총격범은 공격용 소총을 사용했다. 특히 데이턴 총격범은 30초 만에 41발을 쏴서 9명을 죽였다. 그는 총알이 100발이나 들어가는 탄창을 가지고 있었다. 더 빨리, 더 많은 총알을 더 멀리 보내 더 많은 이를 죽일 수 있도록 개발된 무기가 대형마트·유흥가에서 시민들을 죽이는 데 사용된 것이다.

 

이제 공격용 소총은 총기난사 사건의 필수 구성요소나 다름없다. 말 그대로 전쟁터에서나 사용될 법한 치명적인 총기류가 민간에 퍼져 있다. 그런데도 미국 연방의회는 지난 25년간 새로운 총기규제 법안을 단 한 건도 성공적으로 통과시키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놓은 대책은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그는 공격용 소총 판매 금지 같은 근본적 대책은 외면하고 총기난사범 사형 구형, 정신질환자 총기 소유 제한 등 사후적이고 소극적인 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2월 하원에서 총기거래자 신원조회 전면 확대 법안을 통과시킨 민주당은 상원을 장악한 공화당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지만 아직은 요지부동이다.

 

미국에서 총기규제는 민주당 지지자 78%가 지지하지만, 공화당 지지자는 불과 18%만 찬성(2017년 퓨리서치 조사)할 정도로 당파적인 주제다. 대선을 15개월 앞두고 새롭게 불거진 총기규제 논쟁의 향배는 미국 사회와 정치권이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공통의 인식에 도달할 능력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잣대가 될 것이다.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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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미사일과 공격용 소총. 작동 원리와 파괴력이 판이하게 다른 두 무기가 최근 사람들의 근심거리로 새삼 떠오르며 이목을 끌었다.


미국은 지난 2일(현지시간) 중거리핵전력조약(INF)에서 공식 탈퇴함으로써 세계 군축 역사의 한 페이지를 찢어냈다. 32년 전 미국과 소련은 INF를 통해 사거리 500~5500㎞ 지상발사 탄도·순항미사일을 실험·생산·보유·배치하지 않기로 약속했었다. 이로써 핵미사일 능력을 제한해 ‘공포의 균형’을 이룰 수 있게 해줬던 기둥 하나가 무너졌다.


공교롭게도 INF가 무너진 것과 거의 같은 시기 미국 텍사스주 엘패소와 아이오아주 데이턴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잇따라 터졌다. 총기난사 사건이 일상화되다시피한 미국이라지만 15시간의 시차를 두고 32명이나 숨진 사건의 충격은 컸다.


불법 총기류 근절을 요구하는 미국 시민들이 12일(현지시간) 뉴욕에서 ‘불법 총기류 범람 중단을 위한 행동 청원’ 기자회견에서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뉴욕_AFP연합뉴스


두 사건은 죽음의 도구를 통제할 능력이 있는지 묻는 시험대에 인류를 올려 놓았다. 배경에 자리잡은 발달한 기술, 변화된 환경, 파편화된 세계는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미국은 INF 탈퇴 이유로 러시아가 INF가 금지한 미사일을 개발하고, 중국이 INF 바깥에서 미사일을 자유롭게 개발·배치하고 있는 점을 들었다. 이런 불만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들어 처음 나온 건 아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도 2014년 7월 러시아의 이스칸데르 미사일이 INF를 위반했다고 공식 항의한 이후 문제제기를 해왔다.


냉전 시절 미국과 소련이 체결하고 탈냉전 후 러시아가 계승한 군축 합의들이 전세계 핵무기 비축량과 핵무기에 접근할 수 있는 행위자들이 늘어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 같은 맥락에서 시효가 2년 앞으로 다가온 ‘신전략무기감축협정’(뉴스타트)의 연장도 위태로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극초음속 미사일, 핵추진 순항미사일, 핵탄두 탑재 수중 드론 등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모두 기존 군축 논의에서 거론되지 않은 것들이다.


그럼에도 트럼프 행정부의 행동은 충격적이다. 기존 군축 합의를 보완하고 폭을 넓히려고 노력하기보다 조약 자체를 허물어 버렸다. 미국의 선택이 새로운 군축 패러다임으로 가기 위한 ‘창조적 파괴’인지, ‘신군비경쟁’의 신호탄인지는 시간이 판명해줄 것이다. 미국이 INF에서 탈퇴하자마자 아시아에 중거리 미사일을 새로 배치하겠다고 나선 것을 보면 안타깝게도 전자일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미국 사회에서 재연된 총기규제 논쟁도 변화된 현실과 제도 사이의 괴리를 타고 흐른다. 엘패소와 데이턴의 총격범은 모두 공격용 소총을 사용했다. 특히 데이턴 총격범은 30초만에 41발을 쏴서 9명을 죽였다. 그는 총알이 100발이나 들어가는 탄창을 가지고 있었다. 더 빨리, 더 많은 총알을 더 멀리 보내 더 많은 이를 죽일 수 있도록 개발된 무기가 대형마트와 유흥가에서 시민들을 죽이는데 사용된 것이다.


이제 공격용 소총은 총기난사 사건의 필수 구성요소나 나름없다. 말그대로 전쟁터에서나 사용될 법한 치명적인 총기류가 민간에 퍼져 있다. 그런데도 미국 연방의회는 지난 25년 간 새로운 총기규제 법안을 단 한건도 성공적으로 통과시키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놓은 대책은 이유를 짐작케 한다. 그는 공격용 소총 판매 금지 같은 근본적 대책은 외면하고 총기난사범 사형 구형, 정신질환자 총기 소유 제한 등 사후적이고 소극적인 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 2월 하원에서 총기거래자 신원조회 전면 확대 법안을 통과시킨 민주당은 상원을 장악한 공화당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지만 아직은 요지부동이다.


미국에서 총기규제는 민주당 지지자 78%가 지지하지만, 공화당 지지자는 불과 18%만 찬성(2017년 퓨리서치 조사)할 정도로 당파적인 주제다. 대선을 15개월 앞두고 새롭게 불거진 총기규제 논쟁의 향배는 미국 사회와 정치권이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공통의 인식에 도달할 능력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잣대가 될 것이다.


<워싱턴|김재중 특파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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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시민들의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가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시민들은 지난 주말에도 도심 곳곳에서 범죄인 송환법 완전 철폐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지난 6월9일 100만명이 시위에 나선 이후 10주째 주말시위를 이어나갔다. 일부 시위대는 화염병을 사용했고, 경찰은 최루탄을 쏘면서 부상자가 속출했다. 마침 시위 전날 홍콩 바로 옆 중국 도시 선전에서는 장갑차와 물대포로 무장한 중국의 무장 경찰이 집결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러다가 홍콩 시위대와 중국 중앙정부의 경찰·군대 간 충돌이 빚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12일 시위대의 점거로 여객기 운항이 전면 중단된 홍콩 국제공항에서 여행객들이 출·도착 안내 게시판을 지켜보고 있다.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 시위대가 경찰의 강경 진압에 반발해 연좌시위를 벌이면서 폐쇄됐던 홍콩 국제공항은 13일 오전 일찍 운영을 재개했다. 연합뉴스


시위대 일부가 화염병을 사용하기 시작하는 등 시위의 폭력성이 커지는 것은 사실이다. 시위대가 중국의 국가 휘장을 훼손하고 국기인 오성홍기를 바다에 버린 것은 중국 중앙정부를 긴장시킬 만하다. 하지만 그에 앞서 경찰의 시위 진압 방식이 지나치게 폭력적이었다. 더구나 지난달부터 중국 본토 출신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시위대를 마구 폭행하는 이른바 ‘백색테러’가 잇따르고 있다. 홍콩 경찰은 이들을 해산하기는커녕 비호하고 있다. 이 때문에 송환법 반대에 집중되던 시민의 목소리가 최근에는 ‘진정한 보통선거 실시’ 등으로 확대되는 등 시위가 반중국, 반정부 성향으로 바뀌고 있다. 시위를 둘러싼 국제 갈등도 고조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이 시위대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자 중국은 시위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며 내정간섭으로 몰아붙였다. 


범죄인 인도 조례(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 시민들이 12일 홍콩 국제공항 터미널에서 연좌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시위대 점거로 공항은 한국시간으로 12일 오후 5시30분부터 폐쇄조치에 들어갔다가 13일 오전 7시부터 운항을 재개한다고 밝혔다. 원래 예정에 없던 시위였지만, 전날 침사추이 지역 시위에 참여한 한 여성이 경찰이 사용한 진압장비에 맞아 실명 위기에 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분노한 시민들이 갑자기 공항에 몰려들었다. 홍콩 _ 로이터연합뉴스


홍콩이 특별행정구역으로 중국의 일부인 것은 맞다. 홍콩 기본법 18조는 홍콩에 안보상의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중앙정부가 개입할 수 있도록 했다. 최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등 매체들이 연일 시위대를 향해 경고하며 “홍콩 경찰은 반드시 엄정한 법 집행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한 것은 이 점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러나 홍콩 시민들의 기본적 권리는 존중돼야 한다. 이 시위는 중국 당국이 반정부 서적을 다루는 홍콩 시민을 체포해 구금고문한 데서 출발했다. 민주사회라면 시위를 주도한 시민이 살해 협박을 받고 백주에 백색테러를 당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특정 국가의 민주적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발언하는 것도 당연하다. 홍콩 시위는 어떤 경우에도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만일 중국이 홍콩의 시위대를 폭력으로 진압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중국은 국제사회의 엄청난 지탄에 직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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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한·미 연합훈련이 끝나는 대로 협상을 재개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시했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트위터에서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은 친서에서 한·미 연합훈련이 끝나자마자 만나서 협상을 시작하고 싶다고 매우 친절하게 말했다”면서 “너무 머지않은 미래에 김정은을 보기를 고대한다”고 했다. 


북·미 정상이 친서외교를 통해 ‘훈련 후 협상 재개’ 의사를 확인함으로써 북·미 실무협상의 재개가 임박했다. 실무협상은 20일까지 열리는 한·미 연합지휘소 훈련 뒤인 이달 하순이나 9월 초에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북·미 정상이 6월 말 판문점 회동에서 합의한 협상 재개 시점보다 한 달 이상 ‘지각’하게 됐지만, 그런 만큼 더 내실 있는 성과를 거두기를 희망한다. 실무협상이 다음달 하순 유엔총회를 전후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리용호 외무상 간 고위급회담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은 만큼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2월 말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때와 비교해 대화여건은 호전된 것으로 보인다. 북·미 실무협상 책임자인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는 줄곧 유연한 태도를 강조해왔다. 그가 주장해온 ‘동시적·병행적’ 접근법도 북한의 ‘동시적·단계적’ 해법과 괴리가 크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판문점 회동을 마친 뒤 “협상을 진행하다 보면 제재가 해제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한 것이나, 북한의 잇따른 군사행동에도 미국이 자제력을 잃지 않은 것은 북·미 협상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요인이다. 


다만 북한이 미국과 협상할 의지는 뚜렷하게 보이면서 한국 정부에 비난 강도를 높여가고 있는 점은 매우 유감스럽다. 북한은 11일 외무성 국장 담화를 통해 한·미 훈련을 즉각 중단하거나 이에 관한 해명 등을 하기 전에는 남북 간 접촉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의 최첨단 무기 도입과 한·미 훈련 등에 대한 불만을 표출함으로써 실무협상에서 체제안전 보장 의제를 부각하려는 의도일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청와대까지 겨냥해 거친 언사를 퍼붓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한반도 문제 해결의 기본축은 북·미 대화에 있다. 그러나 ‘통미봉남(通美封南)’식 태도가 한국 정부의 입지를 좁히고 대북여론을 악화시킨다면 자신들에게도 이로울 게 없음을 북한은 명심해야 한다. 북·미 대화의 물꼬를 틔우는 데 문재인 정부가 들여온 공을 생각해서라도 이래서는 안되는 것 아닌가. 북한은 대남 비방을 삼가고 남북대화를 복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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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두 국방장관과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이 9일 서울 국방부에서 회담을 열어 안보 현안을 협의할 예정이다. 이 회의가 관심을 끄는 것은 한국에 부담스러운 의제들이 줄줄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방위비분담금 인상 요구가 대표적이다. 이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트위터에 “한국이 북한으로부터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해 미국에 상당히 더 많은 돈을 내기로 합의했다”고 군불을 땠다. 앞서 방한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한국에 방위비분담금을 지금보다 5배 올려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한·일 갈등, 북핵 문제 등으로 미국 의존도가 높아진 한국을 공략해 방위비를 올리도록 한 뒤 여타 동맹국과의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런 태도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여전히 당혹스럽다. 미국은 한국이 기왕에 제공한 방위비분담금도 채 쓰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또다시 과도한 인상을 요구하는 것은 동맹을 ‘돈벌이 대상’쯤으로 여기는 것 아닌가 싶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 8월 9일 (출처:경향신문DB)


미국은 또 호르무즈해협 호위 연합체 참여, 아시아 지역 중거리 미사일 배치 등 부담스러운 요구들을 이번 회담에서 제기할 것으로 보인다. 호르무즈 긴장은 이란 핵 합의를 미국이 일방 파기하면서 촉발된 것이고, 유조선 피격사건도 진상이 오리무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주도의 연합군 구성과 활동에 한국군이 참여하는 것은 명분도 없고, 국익에도 맞지 않는다. 자칫 이란과의 관계 파탄은 물론 친이란 중동국가들과의 관계도 악화될 수 있다. 중거리 미사일 배치도 수용할 수 없는 문제다. 이로 인해 한국이 미·중 간 군비경쟁에 휘말리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한국은 이미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로 중국으로부터 혹독한 보복을 당했다. 중국은 “총알받이가 되지 말라”며 압박하고 있다. 북한이 반발해 북핵 문제 해결에 변수가 될 수도 있다. 국방장관 회담을 통해 단호하게 거부의사를 천명해야 한다. 


미국은 2011년 3월 이후 북한 방문 경험자의 미국 무비자 입국을 제한하기로 했다. 테러방지법에 따른 행정절차라고는 하지만 그 대상에 한국인이 가장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씁쓸하다. 한·미동맹이 한반도 평화체제의 기축이라는 점에 이의를 달 생각은 없다. 하지만 동맹의 처지를 배려하기는커녕 이익 챙기기에만 급급한 미국의 행태를 접할 때마다 ‘무엇을 위한 동맹’인지 혼란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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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일본 지배층과 식자들은 옛적부터 국력이 강해지거나 내분이 생기면 어김없이 해외팽창 세력이 주도권을 장악하여 침략전쟁을 일으켰다. 삼국시대 이래 왜구침략, 16세기 후반 7년간의 임진왜란, 20세기 초의 35년 식민지배 등이 꼽힌다.


아베 신조 정부의 무모한 경제도발은 이 같은 사력의 연장선상이다. 27개 화이트리스트 대상국 중 유일하게 한국을 찍어 수출절차 우대국 명단에서 제외시켰다. 사실상 경제전쟁을 선포한 셈이다. 1965년에 체결한 한일기본조약 전문의 “선린관계 및 주권상호존중의 원칙에 입각한 양국 간의 관계 정상화”에 대한 파기에 속한다. 


아베 정부가 처음에는 한국 대법원 판결에 대한 대응이라 했다가 전략안보물자 관리 문제라고 말을 바꾼 것은 저들 스스로도 ‘주권상호존중’ 원칙에 위배되는 내정간섭임을 알기 때문이다. 말을 바꿨다고 본질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아베의 도발에는 치밀한 준비와 배경이 있다. 첫째는 국내용이다. 평화헌법을 버리고 ‘보통국가’라 쓰고 ‘전쟁국가’로 해석되는 헌법 9조를 개정하여 침략전쟁을 준비하려는 것이다. 둘째는 한반도 상황이다. 자신들의 음모로 한반도가 분단되고 동족상쟁까지 치렀는데 남쪽은 어느새 ‘5030클럽’에 가입하는가 하면 촛불혁명으로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두 전직 대통령과 사법부 수장을 재판에 넘기는 민주화를 이루었다. 북한은 경제적 곤궁의 처지에서도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을 개발하여 일본과 미국을 위협한다. 남북의 통일은 일본으로서는 끔찍한 공포의 대상이다. 해서 문재인 정부를 흔들어 내년 총선을 겨냥하고 궁극적으로는 친일정권을 세우려는 음모가 깔렸다. 


셋째는 중국의 급속한 부상과 미·중 간의 무역전쟁 등 상황이 바뀌고 있는 동북아 판세에서 갈수록 왜소화되는 자국 자존심과 위상을 세우고자 약한 고리 한국을 치려는 것이다. 그래서 ‘미래의 먹거리’로 불리는 반도체 전 공정을 표적으로 삼았다. 한국 정부가 경제적 곤경에 빠지면 남북화해 정책의 추동력을 잃게 되고, 북·미 화해도 막히면서 종전대로 해양세력 대 대륙세력의 구도가 확보된다. 그리하면 일본은 한·미·일 삼각동맹의 중심축이 되고 한국을 하부구조로 거느릴 수 있다는 전략이다. 


일본의 전통적인 한반도 관리구도는 패전 이후에도 바뀌지 않았다. 힘이 세면 먹어 삼키고 역부족이면 분단 또는 중립화 획책이다. 임진왜란 때 세가 불리해지자 명나라에 조선 8도를 양분하여 나누자는 제안, 1882년 청국과 조선에서 패권을 다툴 때 미·영·프·독 4개국 협정을 통한 한반도중립화론, 러일전쟁을 앞두고 러시아에 한반도 양분 제안 등이 이에 속한다.


일본의 한반도 분단 음모가 성공한 사례는 2차 세계대전 말기다. 전쟁을 도발한 일본은 1945년 8월6일과 9일 원폭이 투하돼 자국민 16만명이 희생되었는데도 즉시 항복하지 않고 기회를 노리다가 소련이 참전을 선포한 후에서야 항복을 했다. 소련군이 참전하여 만주를 거쳐 한반도로 진격하면 전후처리 과정에서 대가를 요구할 것이고, 그 결과로 한반도가 분단될 것을 노린 것이다. 결국 연합국의 편에서 일제와 싸운 한반도는 분단되고 전범국가 일본은 무사해졌다. 당초 미합참본부의 비밀 보고서 ‘JWPC 358-1’은 미·영·중·소 4국이 일본을 분할점령한다는 전략이었다. 원폭 투하로 상황이 바뀌고 엉뚱하게 한반도가 두 쪽이 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외교무능이 해방 후 대일관계를 망친 측면도 보인다. 흔히 ‘외교에는 귀신, 내정에는 등신’이라 불리는 이승만은 1951년 9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48개국이 참가한 세계대전의 연합국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평화조약에 일본의 훼방으로 참가하지도 못했다. 이로써 35년 식민지배에 대한 정당한 배상권을 놓치고, 초안의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와 독도를 포함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한다”는 협정 내용에서 ‘독도’가 빠지게 되었다. 


박정희 정부의 한일협정도 굴욕적이었다. 무상 3억달러, 차관 2억달러에 35년 식민지배에 면죄부를 주었다. 그나마 일본은 청구권 자금이 아니라 ‘독립축하금’이라고 내세웠다. 국제적 관례는 국가 간의 청구권과는 별도로 개인청구권이 인정받고 있음에도 일본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일본은 짧은 기간 침략지배한 필리핀에 5억5000만달러, 미얀마에 2억달러, 남베트남 3900만달러, 인도네시아에 2억2300만달러를 지불했다.  


사태가 이 지경에까지 이른 데는 한·일 갈등을 중재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책임도 적지 않다. 포츠담선언에서 명시한 일본군의 무장해제, 전쟁범죄자 처벌, 군수산업 금지 등의 처리에 소홀히 했다. 도쿄전범재판을 주도하면서 다수의 전범을 풀어주고 사실상 침략전쟁의 우두머리인 천황제를 용납했다. 그리고 재무장과 군수산업에 눈감고, 지금 한국 정부의 남북 화해협력 정책에 딴지를 걸고 있다. 미국은 여전히 아시아 정책에서 일본을 상수로, 한국은 종속변수로 여긴다. 


아베의 폭주는 민주노총의 성명대로 일본제국주의 부활이다. 그나마 굴욕적인 채 유지된 ‘1965년체제’를 파기하고, 한국을 적대국으로 대하는 사실상 포탄 없는 전쟁을 획책한다. 이를 제어하는 길은 그나마 양심적 지식인과 국회뿐이다. 


‘지식인선언’이 보다 확산되고 의회가 나서야 한다. 일본 국회(중·참의원)는 1995년 6월6일 ‘종전 50주년’을 맞아 ‘역사를 교훈으로 평화에의 결의를 새롭게 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수많은 식민지 지배와 침략적 행위에 생각이 미쳐 우리나라가 과거에 행한 이러한 행위와 타국민 특히 아시아 제 국민에게 안긴 고통을 인식해 깊은 반성의 염을 표명한다. (…) 본원(本院)은 일본 헌법이 내린 항구평화의 이념 아래 세계 각국과 손을 잡고 인류공생의 미래를 열어나갈 결의를 여기에 표명한다”는 내용이다.


아베 내각은 불장난으로 자칫 제2의 원폭(핵) 투하와 같은 참화를 자초하지 말아야 한다. 한민족은 결코 1세기 전과 같은 유약한 민족이 아니다. 올해는 3·1혁명과 임시정부 100주년이고, 조선의열단 창설 100주년이다.


<김삼웅 | 전 독립기념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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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지난 6일 신형전술유도탄 위력시위 발사를 했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관했다고 7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통신은 이날 “우리나라 서부작전비행장에서 발사된 전술유도탄 2발은 수도권 지역 상공과 중부내륙 지대 상공을 비행하여 조선 동해상의 설정된 목표 섬을 정밀타격하였다”며 “김 위원장이 한·미 군사훈련에 적중한 경고를 했다”고 선전했다. 합참은 이 신형무기를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분석하면서 당 지도부가 대거 참관한 것으로 볼 때 완성 단계라고 추정했다. 북한의 위협이 한층 증가한 셈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불만 표출과 함께 북·미 협상을 앞둔 대미 협상력 제고, 내부 결속 등을 노린 것이다. 북한은 지난 5일부터 시작된 한·미 연합훈련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미국과 남조선 당국이 끝끝내 우리를 겨냥한 합동군사훈련을 벌려놓았다”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하지만 이번 훈련은 과거와 성격이 판이하다. 한국군이 전시작전권을 넘겨받기 위한 능력을 검증하는 성격이 가미된 데다 실병력의 기동이 없다. 이런 훈련까지 시비를 거는 것은 지나치다. 게다가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한 경제협력을 통한 평화경제가 실현되면 일본을 단숨에 따라잡을 수 있다”고 말한 이튿날 미사일을 쐈다. 북·미 간 중재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는 남측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자신들은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면서 상대방이 훈련하는 것을 비난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최근 동북아 정세는 매우 복잡해지고 있다. 한·일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중·러의 동해 합동 비행훈련 및 독도 영공 침범과 격화되고 있는 미·중 갈등,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아시아 지역 배치 언급 등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때에 북한의 미사일 실험은 군사적 긴장만 높일 뿐이다.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지난달 25일 이후 보름 동안 네 차례나 된다. 협상하겠다는 자세와는 거리가 멀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 도발을 즉각 중지하고 비핵화를 위한 대화에 나서는 게 옳다. 진정 주민의 삶을 개선하고 경제개발을 하고자 한다면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협상의 기회는 늘 오지 않으며, 남측과 미국의 인내심도 마냥 지속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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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7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공포했다. 그동안 일본은 전략 품목의 수출을 화이트리스트 국가와 나머지 국가로 나누어 관리했다. 그러나 이번 개정을 통해 A, B, C, D 등 4부류로 구분하는 체제로 바꾸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기존 화이트리스트에 포함됐던 국가 가운데 26개국은 A그룹에 포함시켰지만 한국은 B그룹으로 강등시켰다. 현안을 세분화해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살라미식’ 협상 전술을 연상케 한다. 


이번 개정안에 대한 한국의 관심은 일본이 수출규제 품목을 구체적으로 적시할지였다. 일본은 앞서 지난달 초 불화수소 등 3개 품목을 개별허가 품목으로 지정했으며 이후 이들 품목은 아직 한국에 수입되지 않고 있다. 한국 산업의 중추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에 연관된 부품의 부족으로 해당 기업들은 비상이 걸린 상태다.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는데 개별허가 품목이 추가되면 설상가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이번에 일본은 개별허가 대상을 적시하지 않았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도 반도체 관련 부품 외에 추가적인 수출규제 품목은 없다는 얘기다. 일단은 기업들이 추가적인 피해는 보지 않을 것 같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 8월 8일 (출처:경향신문DB)


그러나 일본이 경제전쟁의 확전을 유보했다고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일본의 대한국 압박기조에는 변함이 없다. 이번에 일본이 개별허가 품목을 추가하지 않은 이유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 것이 보복조치가 아니라는’ 명분 쌓기용 제스처일 수 있다. 국제사회의 비우호적인 여론을 감안한 조심스러운 접근인 것이다. 일본은 한국 정부의 대응과 민간 차원의 불매운동, 여론 등 상황을 살펴가면서 대응하겠다는 수위조절 의도가 다분하다.


일련의 과정을 보면 일본의 의도가 분명히 드러난다. ‘정밀한 수출관리’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한국을 궁지에 몰아넣으려는 조치일 뿐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6일 한국과의 대화를 거절하면서 ‘대법원의 징용소송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이번에도 악화 일로를 겪고 있는 한·일관계의 책임을 또다시 한국 측에 돌렸다. 한국이 한일청구권협정을 일방적으로 위반하면서 국제조약을 깨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사 문제가 일본의 의도대로 풀리지 않는다면 경제보복 중단은 없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일본은 언제라도 태도를 바꿀 수 있다. 고시를 바꾸고, 법적 틀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한국 기업들의 목을 죌 카드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일본의 조치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국가이익을 지킬 최선의 방안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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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정세는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의 산물이다. 한·일관계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일본의 경제침략 사태도 한·일 갈등이라는 표면을 한 꺼풀 벗겨보면 미국의 족적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번 사태는 당연히 한·일 양국이 풀어야 한다. 하지만 미국도 결자해지의 입장인 것은 분명하다. 


일본의 경제보복은 한국 경제의 높은 일본 의존도 탓에 가능했다. 그 같은 구조가 형성되는 데는 미국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1950년대 미국은 한국에 매년 2억여달러의 원조자금을 제공했다. 원조자금으로 일본 상품을 구매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일본을 공산권 견제의 교두보로 삼겠다는 전략 아래 일본의 경제부흥을 적극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한국은 자립경제 정책을 추구했지만 미국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한국은 일본 상품의 소비국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이런 지위를 이용해 한국을 괴롭혔다. 이를테면 한국의 주요 수출품인 무연탄과 고령토, 해산물 등의 반입을 억제했다. 한국에 필수적인 비료는 유독 한국에만 비싸게 팔았고, 어업수송선은 한국에만 수출을 금지했다. 전쟁의 늪에 빠진 데다 자립경제 기반이 전무한 신생국가 한국을 길들여 일본 의존도를 높이려는 의도였다. 지금의 경제보복과 많이 닮았다. 한국 덕에 패전의 늪에서 빠져나와 국가재건을 할 수 있었음에도 이런 치졸한 행태를 보인 탓에 한국인들로부터 ‘대국답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는 것을 일본은 알아야 한다. 결국 한국은 일본 경제 예속을 피하지 못했고, 일본은 70년 넘게 한국의 유일한 무역적자국이 되었다. 이번 사태에 대해 미국이 책임져야 할 첫 번째 사유다.


한일협정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미국의 주선과 개입, 압력에 의해 시작되고 합의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사실상 한·일 양자협정이라기보다 ‘한·미·일 3자협정’에 가깝다. 한국은 당초 일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받고 배상을 청구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이를 부정하는 일본의 손을 들어줬다. 결과적으로 일제 식민시기의 인권탄압과 착취는 미국의 ‘한·미·일 반공 안보체제 구축’ 전략에 묻혔다. 그런 점에서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은 억지로 ‘역사의 창고’에 구겨넣어졌던 진실이 분출한 것뿐이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인권의식이 높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불거진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문제도 미국의 연출로 이뤄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위안부 문제 합의 없이 한·일 정상회담은 없다”고 선언하자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전방위적 한국 압박에 나섰다.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공개 선언한 상황에서 무엇보다 위안부 문제의 봉합이 중요했던 것이다. 중국 전승절에 참석해 미국으로부터 ‘중국 편향’ 의심을 사던 박 전 대통령으로서는 미국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웠다. 결국 ‘대일 강경발언’ 2년 만에 위안부 합의에 동의하게 된다. 박 전 대통령 자신이 애초 공언했던 “당사자가 수용하고 국민이 납득하는” 위안부 문제 해결 원칙과는 정면 배치되는 내용이었다. 이 합의에 피해 할머니들은 피눈물을 흘렸지만 오바마는 “정의로운 결과”라고 높이 평가했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이 어떻게 한국인들을 역사의 피해자로 만드는지 잘 보여준다. 


미국은 일본의 경제침략 사태를 중재하거나 조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미 고위 관리들은 “한국과 일본 간 문제”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사태를 해결하려면 일본은 과거를 성찰하고, 한국은 그것을 전제로 대승적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한·일 갈등의 원인 제공자로서 미국이 방관하는 것도 중대한 직무유기다. 병 주고 약은 주지 않겠다는 태도 아닌가. 


인내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한·일 갈등은 양쪽이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한 전면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다. 임계치를 넘어서면 한·미 및 미·일 동맹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존립도 위협받을 수 있다. 이대로라면 미국의 동북아 전략은 곧 중대한 도전에 봉착할 것이다. 명분으로나 이해관계로나 미국의 방관은 오래가기 어렵다. 


미국에 당부한다. 이번 사태에 개입하려거든 제대로 하라는 것이다. 과거처럼 또다시 ‘한국 차별, 일본 우대’로 할 양이면 차라리 개입하지 말기 바란다. 일본은 한국전쟁 특수에 한국 원조자금 특혜를 받으면서 경제대국으로 거듭났음에도 여전히 역사를 직시하지 않고 있다. 한국만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방식은 더 이상 가능하지도 않다. 이번에야말로 미국이 진실의 편에 서기 바란다. 그것이 인권을 보장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공명정대한 길이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는 한·미·일 3국 모두에 이익이 될 것이다.


<조호연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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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에서 히로시마 원폭 기념일을 생각한다. 한국인들에게는 청년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총살한 곳으로 주로 기억되는 하얼빈에는 ‘731부대 죄증 진열관’이 있다. 일본군이 만주 침략 전쟁 중에 세균전을 벌이며 자행한 생체실험 등의 반인도적 죄상을 낱낱이 고발하고, 그 전쟁범죄의 증거를 진열하는 기념시설이다. 엄청난 규모의 전시관은 2015년에 개축된 것인데, 일본의 만행과 침략을 기억하는 중국인들의 태도는 눈여겨볼 만한 것이다.


그것은 ‘죄증 진열’이라는 말에 집약된다. 민간인까지 대규모로 희생시킨 비인간적 전쟁범죄를 단 한 점의 감춤도 없이 드러내고, 전 세계에 널리 보여주고자 한다는 것이다. 무료로 운영되는 진열관은 성능 좋은 영어, 한국어, 러시아어 통역기도 제공한다.


왜 ‘죄의 증거’를 전시해야 할까? 일본은 20세기 초반 내내 나치 못지않은 대규모 학살과 갖은 비인도적 전쟁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난징학살이나 위안부 문제처럼 이들을 부인하거나 미국의 비호를 받으며 전범 처벌과 역사청산에 게을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기억시설에 흐르는 ‘반일’ ‘반전범’의 정조와 인식은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 중국인들은 일본의 죄상을 고발하는 데 전혀 주저함이 없다. ‘반일 애국주의’는 중국의 지배이념이자 상식이다. 


한국은 어떤가? 일본의 전쟁범죄는 어떻게 기억되고 고발되었는가? 강제동원과 민간인 학살 등 조선인들이 받은 피해 사실 중에서 법정에 고발되고 처벌받은 사례가 있는가? 없다. 그 반대다. 한국이 전후 세계질서에서나 국제법적으로 전쟁 당사자나 피해자가 아니라 외려 전범국가의 식민지·부역자로 치부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에서 반일 민족주의란 무엇인가? 한국 사회의 일각은 반일, 애국, 민족주의를 경계하고 주저한다. 이승만·박정희의 폭압에 동원된 반일 민족주의의 부정적 역사에 대한 기억, 노동자 국제주의·세계시민주의·개인주의 등도 작용한다. 존중되어 마땅한 경우들이다. 그러나 이런 위기 상황에서도 정부와 행동에 나선 대중을 공격하는 데 여념이 없는 친일·극우 언론과 종교세력, 자유한국당·뉴라이트 등은 단죄되어야 한다.


한국 민족주의 또한 자기동일성의 논리지만, 강력한 제국주의의 시선과 내면화된 식민주의의 간섭 속에 전개돼온 것이다. 자존을 다치고 피해의 트라우마를 지닌 약자는 자기도 모르게 스스로 강자의 입장을 내면화한다. 평화란 궁극의 가치지만, 막연하고 맥락 없는 평화가 아닌 주체적이고 실질적인 ‘인간 안보’가 추구해야 할 바다. 약자가 두려워 숨죽이며 침묵하여 겉으론 아무 일도 없는 상태, 가해자가 가해조차 망각하거나 쉬운 면죄 때문에 거리낌이 없어 잠잠한 상태는 평화가 아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6일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열린 원폭 희생자 위령식에 참석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히로시마 _ AFP연합뉴스


히로시마의 대비극을 생각해본다. 히로시마에 있는 원폭 피해 기념 시설은 온통 ‘평화’의 키워드로 치장되어 있다. 실로 끔찍한 대규모 민간인 피해를 아주 상세히 보여주면서도, 가해와 피해의, 그리고 그 원인과 경과의 구체적 사정은 제거돼 있다. 일본의 평화가 어떻게 누구에 의해 깨져 원폭 같은 절멸의 사건으로 귀착했는지? 미친 전쟁을 일으킨 ‘천황제’ 파시즘과 군부, 그리고 거기에 조력한 지식인·정치인의 책임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물론 민간인 거주지역에 원폭을 떨어뜨려 수십만의 생명을 학살한 트루먼과 미군의 책임도 없다. 이는 결국 전도된 피해자 코스프레나 일본 전후체제의 모순이며, 일본의 ‘병’은 이런 데 있는 거라는 지적은 이미 많았다. 


이 초유의 역사적 사태를 어떻게 슬기롭게 헤쳐갈까? 촛불집회를 주도하는 ‘아베 규탄 시민행동’은 ‘동아시아 평화 수호와 아베 타도를 위한 한·일 민중연대’로 개편되어야 한다. 그리고 더 많은 시민이 반아베 평화운동에 동참하려면, 단지 ‘애국심’이 아니라 이 공동체의 ‘좋음’에 대한 신념과 민주적 참여가 필요하다. 차제에 문재인 대통령은 정치·사회 개혁의 과제에 박차를 가하고 친일·기득권 구조를 혁파하라. 이야말로 극일의 결정적 내적 조건이다. 반대로 대중의 애국심을 정치에 이용해먹으려는 일부 여당 인사의 획책과 양극화 극복에 역행하는 경제정책의 추진은 또 다른 ‘내부 총질’에 다름 아니며, 평화와 민주주의를 향한 대오를 흐트러뜨리는 일이다.


우리도 더 많은 평화의 소녀상과 함께 그간 연구자들이 쌓아온 성과를 바탕으로 위안부 문제와 강제동원의 ‘죄증’ 전시시설을 새로 만들어 일본인과 세계인들에게 알려야 하지 않을까? 소녀상은 고 김복동 선생이 ‘내 삶이 증거’라 하셨듯, ‘피해자의 평화’가 아닌 전쟁범죄 증거의 상징이며 인류 양심의 상이다. 일본 우익이 아이치 트리엔날레에서의 소녀상 전시를 철회케 한 일 또한 스스로 죄를 증명한 일이다.


<천정환 |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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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이후 한 번이라도 북한을 방문한 사람들은 앞으로 무비자로 미국을 방문할 수 없게 된다고 외교부가 6일 밝혔다. 이 기간 중 개성공단을 포함해 북한을 다녀온 3만7000여명은 ‘최대 90일 무비자 입국’ 대상에서 제외돼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별도로 비자를 받아야 한다. 미국 국토안보부는 “2011년 3월1일 이후 북한을 방문하거나 체류한 적이 있는 여행객이 ESTA를 통해 미국에 무비자 입국하는 것을 이날부터 금지한다”고 5일(현지시간) 밝혔다. ESTA는 비자면제 프로그램(VWP) 가입국 국민의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는 ‘전자여행승인제도’인데 한국은 2008년 VWP 가입국이 되면서 지금까지는 온라인으로 ESTA 승인을 받을 수 있었다.


미국은 이번 조치가 테러위협 대응을 위한 국내법에 따른 기술적·행정적 조치라고 했다. 미국은 2008년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했다가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망사건이 발생하자 2017년 11월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했다. 2011년 3월 이후 이란, 이라크, 수단 등 7개국을 방문·체류했다면 ESTA 발급이 불가능한데, 여기에 북한이 추가된 것이다. 이번 조치는 한국인뿐 아니라 한국 외 37개 VWP 가입국 국민 중 북한 방문 경험자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그러므로 ‘미국이 남북경협을 옥죄려는 것’이라는 일각의 반응은 지나친 감이 있다. 하지만 북·미 실무협상을 앞둔 시점인 만큼 ‘하필 왜 이때’라는 찜찜함은 남는다. 이번 조치가 테러지원국 지정 이후 20개월여 만에 나온 것은 미국 관련부처의 실무준비에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라고 외교부는 설명했는데, 그렇다면 꼭 이 시점을 택했어야 하는 건지도 의문이다. 38개국에 똑같이 적용된다지만 관련자들은 한국인이 가장 많을 것이다. ‘북한을 다녀오면 미국에 가기 어려워지도록 하겠다’는 이 조치가 앞으로 남북 교류협력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더구나 이런 중대한 조치가 시행 당일에야 발표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특히 방북 경험자 중 금명간 미국을 방문할 예정인 사람들은 급히 서류를 꾸며 제출하고 미국 대사관에서 영어 인터뷰를 하는 불편을 겪게 된다. 긴급할 경우 대사관의 ‘긴급예약신청’ 절차를 이용할 수 있다지만 방문 예정일 이전에 비자를 받지 못해 낭패를 보는 이도 있을 수 있다.


미국이 이런 방침을 한국에 알려온 것은 약 한 달 전이라고 한다. 내용을 보면 각별히 보안을 유지할 이유도 없어 보인다. 3만명이 넘는 시민의 생활에 상당한 불편을 끼칠 행정적 변화라면 정부가 사전예고하고 충분한 설명을 했어야 하는 것이 상식 아닌가. 외교부의 안이한 대응에 화가 치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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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지난 5일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1994년 이후 25년 만이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중국이 최근 며칠간 자국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는 조치를 취했다”고 말했다. 미국은 전날 위안화가 11년 만에 달러당 7위안을 돌파하는 ‘포치(破七)’ 상황이 중국 정부 용인 아래 이뤄졌다고 보고 있다. 이달 초 미국의 추가관세 부과에 중국이 위안화 환율 인상으로 대응하자 다시 미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물고 물리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세계 경제 G2의 갈등이 환율전쟁으로 번지면서 세계 경제는 큰 충격을 받고 있다. 양국 간 충돌은 경제의 바로미터인 세계 증시에 곧바로 반영됐다. 갈등 당사국인 미·중뿐 아니라 유럽, 아시아 주요국의 증시가 대부분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한국 증시도 한때 큰 폭으로 하락했다. 외환시장도 당분간 불안한 국면을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환율전쟁으로 비화된 양국의 갈등은 한국 경제에 엎친 데 덮친 악재일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한·일 간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강 대 강’의 무역전쟁 국면이다. 여기에 미·중 갈등 격화는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한국 경제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다.


환율조작국으로 판정되면 수출국에 다양한 압박수단이 동원된다. 수출국가는 수입국의 시장진입 규제나 환율압박으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이번 조치가 미 재무부로부터 환율조작 의심선상에 오른 국가들에는 충격적인 소식이다. 그런데 미국의 지난 5월 환율보고서에서 중국뿐 아니라 한국이 9개 관찰대상국에 포함됐다. 그러나 정부는 “한국은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미국의 태도를 예의주시해 대응해야 할 것이다.


중국 위안화가 급락하고 세계 증시와 환율시장이 요동친 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한 직원이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통화를 하고 있다. 뉴욕 _ AP연합뉴스


미·중의 충돌로 세계 경제에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다. 이번 환율조작국 지정은 미국 기업들의 대중국 진출 위축과 대미 수출 감소뿐 아니라 중국의 보복 대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중국 경제와 긴밀하게 연결된 한국의 수출과 내수 모두에 악영향을 줄 것이 자명하다. 또한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도 우려된다. 최근 한·일 간 갈등의 격화 와중에 악재가 중첩되고 있다. 정부는 대내외 상황 변화를 위험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살얼음판과 같은 상황으로, 조그만 방심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사태를 객관화하고 냉철하게 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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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내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 가능성을 거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5일 국회에서 “정부는 (그동안) 내부적으로 GSOMIA를 연장하는 것으로 검토해 왔지만, 최근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를 안보 문제와 연계했기 때문에 (파기를)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이 지난 2일 한국을 수출절차 우대국(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한 뒤 김현종 청와대 안보실 2차장이 ‘GSOMIA 폐기’를 언급한 이후 정부 내에서 파기론이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민주평화당과 정의당에서도 GSOMIA 파기를 선언하라는 목소리가 연일 터져나오고 있다. 오는 24일이 재연장 시한이어서 협정 파기가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무리스럽지는 않다. 



한국 측에서 협정 파기를 거론할 이유와 논리는 충분하다. 일본이 안보와 관련한 한국의 전략물자 관리를 믿지 못하겠다며 경제 제재를 시작한 만큼 안보에 가장 민감한 군사정보 교류를 계속하는 게 어려워졌다. 게다가 이 협정을 체결한 뒤 한·일 양국 간 26건의 정보교류가 있었지만 계속 줄어 올 들어서는 단 3건의 정보 교환이 있었다. 정보 교류에 대한 효용성이 떨어지면서 폐기에 대한 부담이 줄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이 7일 이후 고시 결과를 통해 또다시 한국에 추가 보복조치를 내리면 국내 여론과 정부의 판단은 GSOMIA 파기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GSOMIA를 파기하는 데 매우 신중을 기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협정이 아니라 미국 등 동맹국 간 핵심적 이해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민감한 연결고리이다. 미국의 중재노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압박 카드로서는 유용하지만 그 이상의 조치는 위험하다. 


이렇게 한·일 갈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미국의 방관자적 태도이다. 미국 당국자들은 “미국은 한·일 양국 갈등의 중재나 조정에는 관심이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미국이 개입해야 할 이유는 너무나 분명하다. 일본의 조치로 전 세계의 반도체 공급에도 문제가 생겨 미국 역시 막대한 피해를 보게 된다. GSOMIA를 유지할 책임의 상당 부분도 미국에 있다. 이 협정을 주도한 것이 미국이기 때문이다. 중국 견제를 위해 일본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해도 미국이 추구하는 원칙에 어긋나는 일본의 공격을 방관하는 처사는 실망스럽다. 미국은 한국의 GSOMIA 폐기를 만류하기에 앞서 일본을 향해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 중단을 요구해야 한다. 미국이 이 상황을 계속 방치한다면 그 피해는 미국에도 돌아가게 돼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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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가 빙하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관련 소재를 1차 타깃으로 삼았고, 한 달 뒤에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에서 한국을 예고대로 뺐다. 한국은 맞대응을 선언했다. 양측의 충돌, 피해는 점점 가시화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갈등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앞으로 어디까지 치달을지 알 수가 없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런 상황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올 초부터 ‘한국을 아프게 할’ 구체적 실행 계획을 짰고, 그 시나리오대로 일본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무역의 선도자처럼 굴더니 통상을 보복수단으로 삼는 것은 언행불일치 아니냐는 비판, 가뜩이나 불안정한 동북아 정세에 괜한 소란을 일으키냐는 국제사회의 우려에는 귀를 닫았다. 일본의 조치는 한국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이 절대 아니고, 문제가 있는 한국의 수출관리제도 때문이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그때그때 바뀌는 말은 장기간 준비치고는 논리 구조가 어설프다는 것을 드러낸다. 누가 뭐라건 한국을 집요하게 물고늘어지겠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한·일 갈등 상황은 빨리 수습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배상해야 한다는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 판결을 구실로 시작된 보복조치는 경제·무역 문제로 가시화했다. 민간 분야 교류도 줄어들고 있다. 안보 분야로 번질 조짐이다. 그동안 양국이 과거사와 독도 문제로 숱하게 얼굴을 붉혔지만, 한·일관계는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 정경분리가 밑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근간이 허물어지니, 양국관계는 파국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아베 총리를 비롯한 최측근들이 “한국과는 신뢰가 깨졌다”고 하는 말은 지금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하지만 그 책임을 온전히 한국에 묻는 것은 가당치 않다. 그럼에도 신뢰가 없다고 대화를 못하는 건 아니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대화의 필요성은 커진다. 문제를 풀 생각이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것이다. 관건은 지금 서로가 그럴 의지가 있냐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비판하면서도 “우리 정부는 지금도 대응과 맞대응의 악순환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일본이 한국으로선 납득 불가한 부당한 조치를 거둬들이면 대화할 뜻이 있음을 내비쳤다. 당장 일본이 반겨줄 리는 만무해 보인다. 외무성 부대신이 TV에 나와 문 대통령의 ‘적반하장’ 표현을 문제 삼으며 “품위 없는 말을 쓰는 것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무례하다”고 막말을 할 정도다. 


한국 시민들의 ‘NO 아베’ 움직임에 연대하는 일본 시민들이 4일 오후 도쿄 신주쿠 아루타 마에에서 ‘친하게 지내요’ 등 한국어가 함께 쓰인 손팻말을 들고 반아베 집회를 열고 있다. 도쿄 _ 연합뉴스


악화일로인 상황은 양국의 미래에 불안감을 던진다. 젊은 세대의 반일, 반한 감정이 가슴 깊숙이 새겨지면 다음 세대에서의 한·일관계도 힘겨워진다. 한·일관계사에서 2019년이 어떻게 기록될 것인지는 지금부터 양국이 하는 일에 달려 있다. 반전의 계기가 필요하다. 현재로선 양국 정부도, 국민도 너무 격앙돼 머리 맞대고 진지하게 얘기할 분위기가 아니다. 아베 총리의 구상이 한국과의 마찰을 유발해 숙원인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개헌을 실현하고, 중국의 부상으로 쪼그라든 위상을 회복하는 것이라면 한·일 충돌은 장기화·만성화된다.


한국은 미국을 쳐다본다. 미국의 주요 동맹 간 갈등이 미국 경제에 영향을 줄 수 있고, 동북아 안보 지형 관리에 파장이 미치게 된다. 한국의 대응 카드로 거론되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폐기도 그러하다. 이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한·미·일을 삼각끈으로 묶기 위해 미국이 강하게 원했던 사안이다. 그런데 GSOMIA에 대해선 강한 우려의 메시지를 던지는 미국 입장이 분명치 않다. 한·일 사이의 일이라고 거리를 뒀던 미국은 양국에 ‘현상유지 협정’으로 중재를 시도하는 듯하더니, 일본이 이를 무시하고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결정한 이후에는 ‘중재자’가 아니라 ‘대화 촉진자’ 역할을 할 뜻을 내비쳤다. 미국 국무부는 “한·일이 창의적 해법을 찾기를 권고한다”고 밝혔다. 미국이 계속 관여는 하지만 해결책을 모색할 당사자는 한·일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미국의 적극성에 기대기보단 한국이 주도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상황임을 보여준다.


일본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체제를 재편하려 한다면 일본의 진실한 사과와 반성이 없는 강제징용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지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해결을 장담할 수도 없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배상 판결에 응하지 않는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을 강제매각으로 현금화하는 시점이 또 한번의 중대 분수령이 될 터이다. 이대로 가면 예상 시기는 올해 말 또는 내년 초.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한국 외교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


<안홍욱 정치·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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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최대 국제예술제인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출품된 ‘평화의 소녀상’ 전시가 강제로 중단됐다. 일본 정부의 공공연한 압력과 오무라 히데아키 아이치현 지사가 일방적으로 전시 중단을 통보한 결과다. 트리엔날레 기획전으로 마련된 ‘표현의 부자유, 그후’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소녀상을 비롯해 그간 일본 정부의 외압으로 전시되지 못한 작품을 한데 모은 전시다. 양식 있는 일본 예술인과 시민들의 노력으로 어렵게 성사되어 ‘평화의 메신저’ 역할을 기대했던 소녀상이 사흘 만에 강제 철거되고, 해당 전시도 통째로 중단됐다. 한 일본 작가의 지적처럼 “역사 문제를 직시하지 않는 불관용과 인권의식이 없는 국가”임을 백일하에 드러낸 꼴이다. 전시회 이름처럼 ‘표현의 부자유’를 자인한 것이기도 하다.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에서 4일 관람객이 폐쇄된 전시장 입구를 촬영하고 있다. 나고야 _ 연합뉴스


이번 전시는 개막하자마자 일본 정부의 노골적인 중단 압력과 우익 세력의 위협에 부딪혔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보조금 중단을 거론하며 압박했고,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 시장은 ‘위안부 망언’을 퍼부으며 전시 중단을 요구했다. 우익 세력은 “가솔린 탱크를 몰고 전시장을 들르겠다”는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아이치트리엔날레 큐레이터들은 성명에서 “전후 일본 최대의 검열 사건이 될 것”이라며 ‘역사적 폭거’로 규정했다. 일본 정부의 ‘평화의 소녀상’ 전시 방해는 해외에서도 자행되고 있다. 독일 베를린의 ‘게독’ 전시관에서 지난 2일 시작된 ‘토이스 아 어스’에 소녀상이 출품 전시되자 공문을 보내 철거를 압박했다고 한다. 앞서 독일의 한 기념관에 상설 전시된 10㎝도 채 안 되는 작은 소녀상마저 일본 정부가 기념관 측을 압박해 철거하도록 한 사실도 뒤늦게 확인됐다.


‘역사적 폭거’를 되돌리려는 움직임이 일본 내에서 본격화하고 있다. 해당 기획전의 실행위원들은 법적 대응에 나섰다. 일본펜클럽은 전시 계속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아사히와 도쿄 신문 등 언론의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전시 작품 철거에 반대하는 온라인 서명운동은 하루 새 5000명을 돌파했다.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배상 판결 문제를 그것 자체로 풀지 않고 ‘경제침략’으로 전용해 한·일관계를 파탄으로 내몰고 있다. 그 무도함과 졸렬함이 상징적으로 드러난 게 이번 소녀상 전시 중단이다. 역사 왜곡과 ‘한국 때리기’를 위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예술의 의의마저 짓밟는 일본, 그 반문명을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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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부 장관이 3일 ‘지상발사형 중거리 미사일’을 아시아 지역에 배치하고 싶다고 밝혔다. 에스퍼 장관은 호주를 방문하는 중에 이같이 밝힌 뒤 “몇 달 내를 선호한다”고 말해 조기 배치를 희망한다는 뜻까지 피력했다. 뉴욕타임스는 중거리 미사일이 일본이나 한국에 배치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중거리 미사일 개발·배치를 전면 금지한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에서 탈퇴한 바로 다음날 ‘아시아 지역 중거리 미사일 배치’ 발언까지 한 것이다. 미국이 신속하게 대중국 포위 전략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일본과의 갈등을 포함해 외교안보 현안들이 중첩된 상황이라 한국으로서는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


아시아에 지상발사형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고 싶다고 밝힌 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 장관(왼쪽). 시드니(호주)_AP연합뉴스


미국의 INF 탈퇴는 그 자체로 기존의 국제안보 질서를 흔드는 행동이다. 게다가 미국이 2021년 만료되는 ‘신전략무기감축협정’까지 탈퇴하면 핵통제 체제의 양대 축이 모두 사라지게 된다. 패권국 간 군비경쟁을 촉발하는 위험한 행동을 미국이 주도한 것은 유감스럽다. 미국의 INF 조약 폐기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기도 하다. 미국은 미국과 러시아가 INF 조약에 묶여 있는 사이에 중국이 중거리 미사일 전력을 높여왔다고 판단하고 있다. 결국 양국 간 패권 경쟁이 무역갈등에 이어 안보갈등으로 확대된 것이다.


미국이 중거리 미사일 배치 지역으로는 괌 지역을 우선 검토하고 있는 모양이다. 국방부도 주한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한·중이 그 난리를 벌였는데 미국이 또다시 한국에 미사일을 배치하겠느냐고 분석했다. 하지만 에스퍼 장관은 중거리 미사일의 조기 배치를 언급하면서 “이는 동맹과의 논의 등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에스퍼 장관은 오는 9일 정경두 국방장관과 회담하기로 돼 있는데, 자칫 이 자리에서 중거리 미사일의 한반도 배치가 거론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만일 미국이 이번 한·미 국방장관회담에서 중거리 미사일 한반도 배치를 거론하면 그 파장은 가늠하기 어렵다. 중국의 강력 반발은 물론이려니와 북한과의 핵 협상까지 한꺼번에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한국의 의사에 반하여 미국이 중거리 미사일을 한반도에 배치하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 혹여 추후에라도 미국이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을 지렛대 삼아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압박한다면 한·미동맹은 심각히 위협받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