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일 20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율을 기존 10%에서 25%로 인상했다. 이에 맞서 중국도 600억달러 규모의 미국산 수입품에 대해 상응하는 관세 보복 조치를 내놓아 양국 간 무역갈등은 한층 고조되는 양상이다.


현재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이 언제까지 이어질지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4일 언론사 기자들에게 “중국과 약간 티격태격하고 있지만 우리는 아주 유리한 위치에 있다. 우리는 중국에 이기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양국 무역전쟁에서 중국이 일방적으로 당하진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그 이유인즉, 중국이 세계시장에서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는 희토류라는 희소광물 카드가 비장의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앞줄 왼쪽)이 20일 미·중 무역협상 중국 측 대표인 류허 부총리(뒷줄 오른쪽에서 두번째) 등을 대동하고 장시성 간저우시에 있는 희토류 생산업체를 시찰하고 있다. 간저우 _ 신화연합뉴스


희토류는 첨단산업에 쓰이는 필수 원료다. 희토류 없이는 휴대전화, 반도체, 전기차, 심지어 미사일과 레이더 등 첨단 군사무기 제조를 할 수 없다. 또 희토류는 철강, 세라믹 등 전통 산업분야와 최근 각광받고 있는 신재생에너지, 의료, 항공, 농업분야에도 빠지지 않고 쓰인다. 그래서 희토류를 “첨단산업의 비타민”으로 부른다.


희토류는 대중국 무역에서 미국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미국에 대항할 관세 무기를 대부분 소진한 중국이 협상 지렛대로 활용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세계 최대 희토류 생산국이다. 세계 소비량의 80%를 공급하고 세계 매장량의 47%를 차지한다. 미국 역시 중국산 희토류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다. 미국이 지난해 수입한 희토류 가운데 중국산이 88%를 차지했다. 


미국도 중국 다음으로 세계 두 번째로 큰 희토류 광산이 있다. 캘리포니아 마운틴 패스 광산이다. 그러나 1985년 채굴이 중단됐다. 환경문제와 채산성 때문이었다. 결국 자체 생산이 아닌 수입에 의존해 희토류를 조달하게 되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4일 루이지애나주 방문을 마치고 백악관에 귀환하고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미국은 현재까지 희토류를 중국 이외의 다른 나라에서 조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미국은 이미 상당량의 희토류를 비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2015년부터는 인력을 투입해 광산 재가동에도 총력을 쏟고 있다. 그러나 희토류 원료를 제품으로 만들어 사용하려면 대략 9단계의 복잡한 추출·제련·가공 공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미국은 희토류 처리 시설과 기술이 부족하다. 특히 희토류 원료를 합금으로 제련해, 목적에 맞는 형태로 제작하는 종말 단계 기술이 취약하다. 


이 때문에 미국이 자체적으로 희토류 소재를 조달해 사용하려면 적어도 2년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 무역대표부가 희토류 이외에 천연흑연, 합금을 만드는 데 쓰이는 안티몬 등 주로 금속광물 제품을 관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중국이 희토류를 무역전쟁에서 전략무기로 활용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최근 중국 관영매체들은 강경파 목소리들을 연일 전하고 있다. 진창룽 중국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부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대미 보복 카드로 희토류를 언급했다. 로이터통신은 중국이 향후 미국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로 희토류 수출 규제에 들어선 것으로 분석했다.

중국은 2010년 일본과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이 일어나자 대일 희토류 수출을 통제해 3일 만에 항복을 받아냈다.


<강천구 |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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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 방문에서 거듭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한 신뢰를 언급하고 북한과 대화하려는 의지를 밝혔다. 지난 27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유엔 제재 결의 위반”이라는 아베 총리의 말을 면전에서 반박했다. 그 전날에는 트윗을 통해 “북한이 작은 무기들을 발사했다. 이것이 다른 사람들의 신경을 거슬렀지만 나는 아니다. 김 위원장은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해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발언도 정면으로 뒤집었다. 최근 두 차례에 걸친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도 불구하고 대북 유화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을 국빈 방문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함께 가나가와현 요코스카 기지에서 해상자위대의 이즈모급 호위함 가가에 승선한 뒤 환영하는 자위대 대원과 미 해군 장병에게 인사하고 있다. 요코스카 _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유화 제스처는 정치적으로 계산된 측면이 보인다. 2020년 말에 치러지는 대선에서 자신의 외교 치적으로 자랑해온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중단이 타격받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노이 정상회담 후 북·미 대화가 석달째 열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대화 의사를 견지하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역대 어느 미국 대통령도 이처럼 견고한 대화 자세를 보여준 적이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비핵화를 촉구하면서 “북한과 많은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중요한 것은 2년간 핵실험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에 대한 신뢰의 표현도 톱다운 방식의 협상에 대한 동력을 유지하면서 대화에 힘을 싣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전략적이다. 협상 전문가답게 북한과 대화하고 나아가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호 신뢰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 북한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기만 하는 일본과 한국 내 보수세력은 트럼프의 이런 현실감각을 배워야 한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차기 대선 국면에서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외교적 성과로 공인받으려면 이 정도로는 안된다. 트럼프는 이날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자”면서 “나는 서두르지 않는다. 엄청난 제재가 북한에 가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북 압박을 유지하면서 기다리는 방법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말이 아닌,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낼 실질적인 유인책을 제시해야 한다. 북한 역시 트럼프의 대화 의지에 화답해야 할 것이다. 한국도 중재 노력을 배가해야 한다. 여러 측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대화 의지가 무한정 이어질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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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에서는 ‘996’ 정신이 필요하고, 생활에서는 ‘669’를 지켜야 합니다.”


매년 5월10일은 ‘알리데이’다. 알리바바그룹 직원들의 축제인 이날 최고 하이라이트는 102쌍이 올리는 합동결혼식이다. 주례는 마윈(馬雲) 회장이다. 올해 주례사의 핵심은 996과 669였다. 마윈은 “알리바바의 남성들은 생활에서 669를 지켜야 한다”면서 6일에 6번 그리고 ‘오래’를 기준으로 제시했다. 9(九)의 중국어 발음인 ‘지우’는 오랠 구(久)와 같다. 주례를 한 마윈 회장도 웃었고 신혼부부와 내빈들도 웃었다. 669가 성적 의미가 담긴 야릇한 말이라는 사실은 현장에 있던 이들도, 또 동영상이나 기사를 통해 본 중국인들도 모두 다 안다. 


마윈 알리바바 회장(가운데)은 지난 10일 102쌍의 부부가 참석한 합동 결혼식의 주례로 나섰다. 사진 펑파이


마윈은 장시간 노동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담긴 996을 옹호했다가 철퇴를 맞았다. 996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일주일에 6일씩 일하는 중국 IT 업계 근로 문화를 말한다. 마윈은 “여러분이 젊을 때 996을 하지 않으면 언제 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가 젊은이들에게 ‘꼰대’로 낙인 찍혔다. 이날 주례사는 마윈이 여전히 알리바바에서는 996 정신은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669가 불러온 야한 농담 논란이 996 꼰대 논란을 덮었다.


지난해 알리데이 합동결혼식에서도 마윈은 묘한 주례사를 했다. 그는 “결혼의 중요한 키포인트는 딩딩(釘釘)을 많이 쓰는 것”이라고 했다. 딩딩은 알리바바가 만든 채팅 프로그램이다. 모바일 채팅 앱 1위인 웨이신(微信) 대신 자사의 딩딩을 사용해 대화를 많이 하라는 뜻으로도 읽힌다. 그러나 딩딩은 남성 성기를 뜻하는 딩딩(丁丁)과 발음이 같다. 마윈은 말미에 “행복한 결혼의 관건은 딩딩”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중국에서 적응이 되지 않는 것 중 하나가 매일 오후 7시가 되면 여러 채널에서 동시에 같은 뉴스를 방송하는 일이다. 관영방송 CCTV의 <신원롄보>는 베이징TV에도, 상하이TV에도 똑같이 나온다. 몇 시간 후에 똑같은 신원롄보를 재방송하는 것을 보면 더 놀란다. 뉴스가 취재 경쟁의 산물이라기 보다 최고 지도자와 당의 움직임과 지침을 알리는 선전 도구라는 전제를 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주재하는 회의에서 고개를 숙이고 받아적고 있는 간부들의 모습도 단골로 등장한다. 뉴스 내용은 다음날 인민일보 1면에 똑같이 실린다. 번뜩이는 비판의 칼날보다는 칭송의 시가 많다. 


선전도 시대에 맞게 옷을 갈아 입고 있다. 디지털 시대를 맞춰 공산당은 지난 1월 정책선전용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쉐시창궈(學習强國·학습강국)’을 내놓았다. 연설문과 다큐멘터리 등 시 주석의 사상과 정책을 집중 홍보하고 있다. ‘시(習)’자가 시 주석을 가리키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일부 기업에서는 앱 이용 횟수로 직원들의 점수를 매겨 포상을 한다고 한다. 지난달 출장길에서 만난 한 지방 간부들은 너도나도 자신의 쉐시창궈 순위를 자랑했다. 지도자의 말을 잘 숙지하면 높은 점수를 딸 수 있는 이 앱은 알리바바가 개발했다. 


마윈의 ‘669’는 야해서가 아니라 알리바바의 선전 욕심 때문에 문제가 됐다. 알리바바는 마윈이 주례사를 마친 후 소셜미디어를 통해 669를 새로운 개념이라고 홍보했다. 이 669론이 기업 안팎에서 인정을 받았다는 코멘트도 했다. 노골적으로 성적 암시가 들어있는 이 말은 마윈은 물론 알리바바의 이미지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마윈의 사회적 영향력을 감안하면 더 그렇다. 그러나 되레 새로운 개념으로 널리 알리기에 나서 지적을 받았다. 앞서 마윈의 996 옹호 발언을 널리 홍보한 것도 알리바바의 소셜미디어였다. 지도자의 말은 발언의 적절성을 판단할 대상이 아니라 무조건 학습의 대상이라는 관념이 뿌리 깊게 박힌 중국식 문화가 반영된 결과인 듯하다.


<베이징|박은경 특파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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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칭짱철도는 서부대개발의 상징이다. 수도 베이징에서 남서쪽으로 내달려 티베트 자치구의 주도 라싸에 이틀이면 도달한다. 높이 5000m가 넘는 산악지역을 통과해 ‘하늘 열차’라고도 불린다. 중국은 라싸에서 시가체로 연결되는 구간을 개통한 데 이어 야둥, 강토크까지 이른바 ‘친디아 철도’ 공사를 벌이고 있다. 2020년까지 네팔, 부탄, 인도 접경지역까지 철도를 이어 ‘철도 실크로드’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중국 정부는 칭짱철도 개설이 낙후된 티베트 지역 개발에 전기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티베트 접근성이 용이해지면서 많은 관광객이 몰리고 지역경제도 급속도로 발전할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 더해 라싸 일대에 테마파크를 조성하고 예술촌, 민속촌, 문화창의단지 등을 만들겠다고 했다.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티베트인들의 반중 정서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당근책인 것이다. 


티베트는 2000년 이상 독립국이었다. 그러나 1950년 중국의 침공 이후 그 지위를 잃었다. 1959년 3월28일 중국 총리 저우언라이는 티베트 완전정복에 나섰고, 티베트는 살육의 현장이 되었다. 사망자 수는 8만7000명에 달했다. 계엄령이 선포됐고 중국 공산당의 철권통치가 시작됐다. 종교와 문화도 마찬가지였다. 티베트에서 번성했던 라마교는 타격을 입었다. 수천개의 사원이 파괴되고 수십개밖에 남지 않았다. 1959년 봉기에 실패한 14대 달라이 라마 톈진 갸초가 라싸의 포탈라궁을 떠나 망명길에 올랐다. 포탈라궁은 티베트 왕 손챈감포가 세운 궁전으로 정치의 중심이자 티베트 불교의 본산이다.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망명한 지 올해로 60년이 된다. 하지만 티베트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2009년 이후 157명의 티베트인들이 중국의 핍박에 항의하기 위해 분신을 했다고 한다. 중국은 ‘티베트를 봉건 정치체제에서 해방시켰으며 중국의 발전된 경제 혜택을 함께 누리고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 22일 미·중 무역갈등이 격화된 가운데 테리 브랜스태드 주중 미국대사가 라싸의 포탈라궁을 방문했다. 그는 “중국이 달라이 라마와 대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국을 자극하는 언행이지만 틀린 것은 아니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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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서 채택이 불발된 뒤 남북관계의 교착국면이 계속되고 있다. 4월11일 한·미 정상회담 때 합의에 따라 우리 정부가 대북 인도적 지원을 결정했지만, 북한매체들은 우리 정부가 근본 문제를 제쳐둔 채 인도주의 지원과 교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면서 생색내기라 비난하고 있다. 


북한당국은 제재가 쉽게 풀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장기전에 대비하며 대화 재개에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하노이 회담 결렬 직후 리용호 외무상은 비핵화의 상응조치로 부분적 제재 해제 문제를 꺼내든 이유를 미국이 아직 안전담보와 같은 근본 문제를 다룰 준비가 안됐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4월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제재 해제 문제 따위에는 이제 더는 집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북한이 말하는 근본 문제란 무엇인가. 주한미군도 근본 문제의 하나지만, 금년 1월 김영철 부위원장이 워싱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되더라도 주한미군 문제를 거론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인지 더 이상 언급이 없다. 최근 북한매체가 거론하고 있는 경성안보 현안은 한·미 군사연습 문제다.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관계정상화 같은 연성안보 문제도 있지만 이는 남북 간만의 직접현안은 아니다. 


근본 문제와 관련된 남북 간의 현안으로 9·19 군사합의서 이행과 같은 경성안보 문제가 있다. 아직 군사공동위원회 구성도 안됐고, 북한의 단거리미사일 시험이나 군사분계선 일대를 벗어난 군사훈련은 새로운 쟁점이다. 당장 대북 제재가 계속되어 교류·협력이 어려운 상황에서, 서로를 적대하는 법제도 개정을 논의하거나 통일방안을 논의하는 것은 연성안보를 풀어가는 의제가 될 수 있다.


우선 주목되는 연성안보의 근본 문제는 통일방안에 관한 논의이다. 올해 1월1일 신년사에서 김정은은 “전 민족적 합의에 기초한 평화적인 통일방안을 적극 모색”할 것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1월23일 정부, 정당, 단체연합회의 명의의 호소문도 통일방안의 모색을 촉구하였으며, 재일 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도 “사상과 제도, 지역과 이념, 계급과 계층의 차이를 초월하여 겨레의 의사와 이익에 맞게 공명정대하고 합리적이며 현실적인 통일방안을 모색해나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남북은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 때 발표한 ‘6·15공동선언’에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점이 있다고 인정하고,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했다”고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논의를 진행하지 않았다.


남북이 논의하는 대신 이명박 정부는 ‘3대 공동체(통일)방안’을 내놓고 통일항아리운동을 벌였으며, 박근혜 정부는 통일대박론에 이어 통일준비위원회를 만들었다. 이와 같은 움직임에 북측은 흡수통일을 꾀하는 제도통일론이라고 반발하며 핵·미사일 개발을 촉진하는 명분의 하나로 삼았다. 이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가진 첫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정권의 교체나 붕괴를 원하지 않으며 인위적으로 통일을 가속화하지 않겠다는 원칙이 담긴 ‘대북 4No정책’을 표명한 것이다.


사실 문재인 정부는 작년부터 남북합의나 대북제안을 통해 우리 측 통일 구상을 하나씩 구체화해 왔다. 4·27판문점선언에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설치키로 한 데 이어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상호대표부 교환을 제안했다. 9·19군사합의서에서 군사공동위원회 설치에 합의하였고 금년 3·1절 기념사에서는 경제공동위원회를 제안했다. 군사, 경제에 이어 문화, 보건의료, 과학기술 등 부문별로 공동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잘 운용된다면 남북은 사실상 협의체적 공동정부의 틀을 갖추게 된다. 이러한 평화체제와 경제공동체의 토대 위에 남북연합으로 발전될 수 있다. 이는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현실에 맞게 적용한 것이다. 


이처럼 연성안보 의제인 통일방안에서 논의를 시작하는 것은 대북 제재로 꽉 막힌 국면을 돌파해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북측의 요구를 받아들여 대화로 이끌어낸다는 점 외에 지금 전개되고 있는 평화공존의 노력이 자칫 분단고착화 분위기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문 대통령도 인위적으로 통일을 가속화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바 있듯이, 새롭게 통일 논의를 시작한다는 것과 조급하게 통일을 추진한다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른 얘기다. 민간 차원에서 먼저 논의를 시작한 뒤 어느 정도 공감대가 마련되면 정부가 이를 공론화하면 된다. 북측은 전민족회의를 우선적으로 개최를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 모든 가능성은 열어놓되, 체제 차이나 사안의 장기성을 고려해 우리 내부의 논의를 수렴하는 것에서부터 단계적인 접근이 바람직하다.


<조성렬 |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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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만 해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거칠 게 없었다. 2017년 10월 공산당대회에서 연임해 집권 2기를 열었고, 다섯 달 뒤 두 번, 10년만 할 수 있는 주석 임기제를 폐지했다. 주석은 임기가 있고, 황제는 임기가 없다. ‘시 황제’의 등장이었다. 헌법에는 ‘시진핑 사상’을 집어넣었다. 잠재적 경쟁자들은 집권 1기 때 사정의 칼날로 정리해둔 상태다. 권력의 정점에 시진핑이 있고, 지배사상에도 시진핑이 있다. 2010년 일본을 제친 세계경제 2위, 2030년 미국을 추월한 경제최강국, 2050년 군사력이 뒷받침된 세계 최강국. 20년 주기로 도약해 ‘중국몽(중화민족의 부흥)’을 그의 손으로 만들고 싶어했을 것이다.


시진핑이 가려는 길 앞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서 있다. 트럼프가 무역 문제를 건드릴 때만 해도 이런 상황이 전개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지난해 중국의 대미 수출은 수입의 5배다. 중국이 미국산 수입량을 늘려 미국에 어느 정도는 적자폭을 줄여주고 싶어도 워낙 격차가 크다. 지난해 12월 양측이 휴전을 선언하고 류허 부총리의 주도로 협상해 초안까지 마련했다. 그런데 시진핑이 “내가 책임지겠다”며 뒤집으면서 상황은 순식간에 변했다. 트럼프의 격앙된 반응은 예상됐던 바다. 시진핑이 작심했다는 얘기다. 


무역전쟁이 다시 격화된 이후 시진핑이 장시성 위두현을 찾아갔다. 1934년 국민당군에 포위된 홍군이 370일에 걸쳐 8400㎞를 이동한, 대장정의 출발지다. 시진핑은 “지금 우리는 새로운 대장정을 시작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9년 대장정은 미·중 무역전쟁의 승리를 위한 길임을 해석하기 어렵지 않다.


시진핑은 왜 판을 엎었을까. 물론 합의 내용이 만족스러웠다면 그랬을 리는 없다. 지난 10일 워싱턴 고위급 무역협상 결렬을 확인한 류허 부총리가 “원칙 문제에선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고 했지만, 이번 협상은 애초에 중국의 양보를 전제로 진행됐다. 미국에 최대한 적게 내주고 상황을 봉합하는 게 중국의 협상 목표였을 것이다. 트럼프는 “중국이 최근 협상에서 너무 심하게 당하고 있어 2020년 대선까지 기다리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시진핑 입장에선 곱씹을수록 ‘너무 심하게 당할’ 합의는 늦더라도 최종 서명하기 전에 없던 일로 만들어야겠다고 여겼을 수 있다. 이는 국가적 자존심의 문제일 수도 있고, 여기서 미국에 굴복하면 ‘만년 2인자’밖에 안될 것이라는 걱정 때문일 수도 있다. 재선이 급한 트럼프가 협상 타결을 간절히 원할 테니 나은 조건으로 다시 협상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힘과 힘의 충돌은 현실이 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이 ‘중국제조 2025’라는 야심을 위해 자국 기업에는 보조금을 남발하고, 외국기업에는 기술이전을 강요하고, 지식재산권을 도둑질하는 등 불공정한 무역 관행이 일어나고 있다고 인식한다. 관세 폭탄으로 무역전쟁의 포문을 연 미국은 중국 기술혁신의 상징인 화웨이 공격으로 목을 죄기 시작했다. 여기에 중국의 환율조작 문제를 겨누고 있다. 미국은 1985년 일본의 부상을 눌러놓기 위해 엔화의 평가절상을 하도록 만든 플라자합의를 만든 전력이 있다.


시진핑은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가. 관영매체들은 무역전쟁을 “중국 굴기의 마지막 관문이자 역사적 기회”로 본다. ‘중국몽’을 위해선 어차피 미국과는 맞붙을 수밖에 없었던 만큼, 지금을 기회로 삼자는 것이다. 무기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다. 중국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동력인 중국식 발전 모델은 여전히 유효한 카드로 여긴다. 실제 시진핑은 “애국주의의 본질은 애국, 애당을 견지하고 사회주의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외교부 대변인도 나서 “무역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전쟁을 건다면 끝까지 상대해주겠다”고 말했다.


밖으론 ‘할 테면 해보라’ 식의 자신감이 충만하지만 내부에선 불안감이 엄습한다.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나라에는 막대한 부가 쌓였지만 ‘중국 특색’ 이름으로 자유와 인권을 억누르고 노동자의 희생에 기댄 모델은 극심한 양극화를 낳았다. 계층 간, 지역 간 불균형은 중국 사회의 내재된 갈등 요소다. 


무역전쟁의 불투명한 전망은 중국몽이 안갯속에 빠지는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시진핑의 정치적 미래와도 직결된다. 공산당이 통치 정당성을 가지며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경제적 성과였는데 무역전쟁에 따른 경제 하향, 인민생활의 어려움이 깊어질 경우 그 정당성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절대권력자 시진핑에게 책임을 묻게 될 것이다.


미·중 정상이 한 달쯤 뒤에 일본 오사카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만난다. 당초 무역전쟁의 종전 선언장으로 예상됐던 이 만남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안홍욱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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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3년차에 접어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외정책이 혼란 상태다. 북핵 협상은 위기 상태이고, 미·중 무역협상은 보복관세를 주고받는 악순환에 빠졌고, 이란과는 전쟁 위기다. 트럼프의 협상 스타일이 혼란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트럼프의 협상 스타일은 최근 미국 조야의 최대 관심사인 이란 문제에서 확인된다. 그는 20일(현지시간) 트위터에서 “이란과의 협상준비 보도는 가짜뉴스”라며 협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전날에는 “이란이 싸우길 원한다면 그것은 이란의 공식적인 종말이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라크 바그다드의 미국 대사관 근처에 로켓 포탄이 날아든 데 대한 반응이었다. 트럼프는 멀쩡하게 지켜지던 이란 핵합의를 파기하고, 이란의 원유수출 금지 제재를 부활하고, 이란 정부가 운영하는 군대를 테러단체로 지정했다. 이란이 반발하자 항공모함과 B-52 폭격기를 급파했다. 그러면서 뒤로는 대화를 모색 중이다. 백악관은 이란에서 미국 대표부 역할을 하고 있는 스위스 정부에 직통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트럼프가 전화를 기다린다고 전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CNN은 보도했다.


대북 정책에도 같은 협상 패턴이 적용됐다. 그는 2017년 여름 북한에 대해 “완전한 파괴”와 “화염과 분노”를 위협했다. 하지만 정상회담이 시작된 후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사랑에 빠졌다”며 180도 달라졌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좋은 관계를 강조하면서 한편에선 관세폭탄을 퍼붓고 있는 미·중 무역협상에서도 전형적인 스타일을 볼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4일 루이지애나주 방문을 마치고 백악관에 귀환하고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트럼프의 협상법은 이른바 ‘미치광이 전략(madman strategy)’에 비유된다. 미국 대통령이 핵전쟁도 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인물이라고 상대국들에 믿게 해서 쉽게 저항하지 못하게 하려는 전략이다. 리처드 닉슨 정부 당시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이 고안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스콧 케네디 선임고문은 트럼프의 미·중 무역협상을 ‘미친 삼촌 전략(crazy uncle strategy)’으로 평가했다. 테리 매컬리프 버지니아 주지사는 하루 종일 폭탄 트위터를 날리는 트럼프를 향해 “다락방에 사는 미친 삼촌 같다”고 말했다.


극단적인 대결로 치닫는 치킨게임에서 미치광이 전략은 통할 수 있다. 진심을 알 수 없는 트럼프의 발언들은 예측 불가능성을 키워서 협상력을 높인다. 트럼프이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할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상당하다. 실제 트럼프의 전격적인 1차 북·미 정상회담 취소 발표에 김정은은 공손한 표현의 친서를 보낸 바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에서 두번째)이 20일 장시성 간저우시에 있는 희토류 생산업체 진리영구자석과기유한공사에서 희토류 생산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간저우_신화연합뉴스


하지만 한계도 분명하다. 이 전략은 한두 번은 몰라도 계속해서 통하지는 않는다.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성은 이제 예측 가능한 스타일이 됐다. 실제 중국, 북한, 이란 어느 나라도 트럼프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는다. 케네디는 “트럼프의 미친 삼촌 전략은 피로감뿐 아니라 듣는 이들이 그의 폭발에 익숙해지고, 그 폭발이 순간적 불만인지 실질적 위협인지를 구분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무색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집권 3년차에 접어들면서 트럼프의 전략은 완전히 노출됐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이그나시우스는 “트럼프 대외정책의 문제는 집권 2년이 넘으면서 해외 국가들이 그를 간파했다는 점”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트럼프의 파괴적인 스타일은 중국과 북한 정책에서 수익률을 떨어트렸다”고 지적했다. 또 강경책과 외교 사이를 오가는 그의 언급이 “한때 협상력을 만들어 줬지만 이제는 혼란만 야기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식 협상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예측 불가능성은 미국의 신뢰 추락으로, 특히 불확실성은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 치킨게임 당사자들이 모두 미치광이 전략을 구사한다면 상황은 더욱 위험해진다. 트럼프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백악관에는 ‘전쟁을 속삭이는 자’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도 있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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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3개월 동안 많은 일이 일어났다. 미국은 북한의 석탄운반선을 나포했고 북한은 두 차례에 걸쳐 미사일을 발사했다. 대화의 문을 열어 놓았다고 하더니 점차 대결적 구도로 가는 듯하다.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음에도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 작금의 상황이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북핵을 북한과 미국 간 해결할 문제라고 규정하는 순간 우리는 제3자가 되어버렸다.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북핵 문제 당사자라고 주장해도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북한이 핵폐기 의사가 없다고 비난하는 것 정도이다. 북한을 유인하기 위한 어떤 행동도 불가능하다.


정치권의 행태는 실망스럽다. 그들에게 북핵이란 존망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을 현혹하기 위한 정쟁의 도구에 불과한 듯하다. 소위 보수권은 현정부가 미국 보수층으로부터 비난받는 것을 즐기는 듯하다. 안에서는 싸우더라도 밖에 대해서는 단결해야 한다는 당연한 보수적 원칙도 무시되고 있다. 정적에 대한 증오심과 국익 추구를 구분하지 못하는 분별력의 결여는 안보에 여야가 없다는 격언을 빛바랜 포스터로 만들었다. 북한 핵을 비난한다고 당사자 자격을 획득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 해결 과정에 개입해야 당사자다. 비난만 하는 것은 방관자다.


하노이 회담 실패에는 미국이 금번 협상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측면이 있는 듯하다. 이번 북·미 회담은 북한이 핵무장능력을 완성했다고 선언한 다음 이루어졌다. 과거의 회담과 차원이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사안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실패했다. 미국의 강경파들은 원칙고수를 주장하며 북한의 핵폐기 의사가 없다고 비난하는 데 집중했다. 언론들도 이에 동조했다. 잘못된 북한의 행동을 그냥 넘기면 안된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이번 회담 결렬의 의미에 대한 반성적 성찰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미국은 제재를 강조했다. 지속적인 제재로 북한의 입장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제재로 북한이 손을 들 가능성은 거의 없는 듯하다. 북한이 제재에 굴복하지 않고 북한체제도 붕괴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북한이 하고 싶은 대로 그냥 놔둘 것인가? 이런 당연한 질문에 대한 고민을 하는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번 하노이 회담 결렬이 아쉬운 것은 북한의 완전한 핵무장을 막을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것은 북핵 문제 해결보다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사 보수주의적 분위기 때문이다. 몇 차례 북한의 핵무장을 지연하고 중지시킬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린 것은 미국과 한국의 강경파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황변화에 관계없이 강경책만을 고수하는 것은, 비난을 감수할 도덕적 용기가 부족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는 절제심의 결여 때문이다. 지식인들과 언론이 비판적 사유라는 본질적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 백악관을 출발해 위스콘신 주(州)로 떠나기 전 손을 흔들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30년 넘게 진행된 북핵 협상의 역사를 살펴보면, 북한이 핵문턱의 마지막을 넘는 지금의 상황에서 제재의 효과를 운운하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 수 있다. 북한이 연말 이후 자신의 길을 가겠다고 한 말은 최후 통첩이나 마찬가지다. 회담 결렬 이후 전례없이 매우 절제된 북한의 태도는 자신만만함에서 나온 듯하다. 우리는 북한의 자신만만함을 읽지 못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연말이 지나면 북한이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이제까지 전문가들이 북한의 행동 예측을 제대로 한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미 수소폭탄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및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능력을 확보한 상황에서 더 이상의 실험은 무의미하다. 시간을 허비하면, 내년 초 우리는 만수대광장에서 북한 전략군사령관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ICBM과 SLBM의 작전배치 완료를 보고하는 광경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북한 전략핵무기 작전배치 이후 전개될 수 있는 상황에 무관심한 정치지도자들과 책임자들의 태도가 개탄스럽다. 북한의 전략핵 작전 배치는 동북아 및 태평양의 안보상황을 불확실하게 판을 바꿔버릴지도 모른다. 그것이 북핵 자체보다 더 큰 위협이다.   


6월 말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에 기대가 크다. 하수는 원칙을 주장하고 고수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것은 고금의 상식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상책이라는 병서의 지혜도 있다. 한·미 대통령이 그런 상식과 지혜를 굳이 거스르지 말고 실질적인 해결책을 강구해주기 바란다. 적을 친구로 만드는 것이 진정 지혜로운 전략가다. 더 이상 우물쭈물할 여유가 없다.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다.


<한설 예비역 육군준장·순천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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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년 이후 미군은 수천 번 중남미에 개입했으며, 수십 차례 점령했다.” 미국 템플대 중남미 전문 역사학자 앨런 맥퍼슨 교수의 주장이다. 미 대외정책 비판가이자 작가인 윌리엄 블룸은 1995년 쓴 <킬링 호프>에서 1945년 이후 미국이 ‘정권 교체’를 시도한 경우가 55차례 있었다고 했다. 미 여성 평화주의 단체 ‘코드핑크’ 공동설립자 미디아 벤저민은 그 후 13차례 더 있었다고 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정권 교체 시도는 적어도 68건이나 된다는 얘기다. 이 가운데 중남미 국가는 얼마나 될까. 에콰도르, 브라질, 페루, 도미니카공화국, 쿠바, 우루과이, 칠레, 볼리비아, 과테말라, 코스타리카, 자메이카, 그레나다, 수리남, 니카라과, 파라과이, 엘살바도르, 아이티, 온두라스, 베네수엘라 등 19개국이다. 전체 33개국의 절반을 넘는다. ‘중남미는 뒷마당’이라는 미국의 주장이 결코 빈말이 아닌 셈이다.


미국이 중남미를 자신의 뒷마당으로 여기는 근거가 ‘먼로 독트린’이다. 1823년 12월 제임스 먼로 대통령이 밝힌 미국 대외정책의 대원칙이다. 당시에는 유럽 식민주의자로부터 미주 대륙을 보호한다는 데 방점이 찍혔다.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의 중남미 개입을 노골적으로 정당화하는 명분이 됐다. 중남미에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좌파 정권은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대개 ‘침공-점령-정권교체’ 단계를 밟는다. 소극적 고립주의를 표방해 온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미 중앙정보국(CIA)이 지원한 쿠바 피그만 침공 58주년이던 지난 4월17일 먼로 독트린의 부활을 공식 선언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먼로 독트린은 살아 있다”고 말했다. 아니, 먼로 독트린이 종식된 적이 있었던가.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13년 11월 존 케리 국무장관은 “먼로 독트린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한 바 있다. 물론 말뿐이었지만. 5년반 만에 부활한 트럼프의 먼로 독트린은 더 강력해졌다. 타깃이 쿠바에서 니카라과와 베네수엘라로 확대됐다.


베네수엘라 사태는 먼로 독트린의 최신판이다. 미국은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쫓아내기 위해 전통적인 문법을 따르고 있다. 우선 독재자 낙인찍기다. 혹독한 경제제재도 병행된다. 경제 위기로 정국 혼란을 초래해 내란을 유도하기 위함이다. 이어 꼭두각시를 내세운다. 후안 과이도다. 올해 1월 초만 해도 무명 정치인이던 과이도는 1월23일 임시 대통령을 자처하면서 세계적인 인물로 떠올랐다. 이틀 뒤에는 그를 지원·조종할 특사를 내세웠다. 엘리엇 에이브럼스다. 레이건 및 아들 부시 행정부에서 중남미 정책에 깊숙이 개입한 네오콘이다. 특히 니카라과 좌익정부를 붕괴시키기 위한 이란-콘트라 사건에 개입해 유죄를 받을 만큼 미 공작정치의 대표 인물이다. 그 사이에 가짜뉴스도 퍼뜨렸다. “마두로는 대선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위기는 마두로의 사회주의 정책 탓이다.” 모든 것이 준비됐다. 쿠데타 시도만 남았다. 과이도는 지난 4월30일 이런 각본에 따라 쿠데타를 시도했다. ‘러시아가 마두로의 쿠바 망명을 막고 있다’ ‘베네수엘라 군부가 마두로를 버렸다’ ‘쿠데타는 성공적이다’ 같은 가짜뉴스도 동원됐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트윗으로 쿠데타를 옹호했다. 하지만 군부 지지를 받지 못한 쿠데타는 실패했다.


흔히 베네수엘라 혼란 원인으로 정부의 무능과 부패를 든다. 하지만 유가 하락과 미국의 경제제재 탓이라는 분석도 많다. 미 컬럼비아대 제프리 색스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지난 4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지난해 8월 이후 베네수엘라 국민 4만여명이 미국의 경제제재에 따른 식량 및 의료품 부족으로 숨졌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의 경제제재는 베네수엘라 경제를 망가뜨려 정권교체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베네수엘라 국민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는, 무익하고 비정하고 불법적이고 실패한 정책”이라고 꼬집었다. 한국에서 빈곤퇴치의 전도사로 각광받는 색스 교수의 보고서는 미 주류 및 국내 언론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미 주류 언론이 국익을 앞세워 외면하고, 이에 의존하는 한국 언론의 보도 관행이 빚은, 어이없는 촌극이다.


중남미 대표 작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미국이 어떤 나라를 구할 때마다 미국은 그 나라를 정신병원이나 무덤으로 바꾼다”고 했다. 먼로 독트린이라는 유령은 지난 200년 동안 중남미를 떠돌며 주민들을 사지로 내몰았다. 미국이 먼로 독트린을 강조하는 이유는 국익과 헤게모니를 지키기 위한 것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중남미를 자신의 뒷마당으로 여기는 미국의 오만이 절대 멈출 수 없는 이유다. 쿠데타 시도가 실패한 지금, 미국은 여전히 베네수엘라에 군사 개입할 명분을 찾고 있다.


<조찬제 국제·기획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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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 초청으로 다음달 한국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하기로 했다고 한·미 양국 정부가 발표했다. 지난달 11일 미국 워싱턴 정상회담 이후 두 달 만으로, 두 정상은 한반도의 비핵화를 통한 평화체제 구축과 한·미동맹 강화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라고 청와대가 설명했다. 


트럼프의 방한 결정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으로 북·미 협상이 자칫 궤도를 이탈할 가능성을 방지하는 한편 협상재개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방한 시기는 미국 민주당이 2020년 대선을 앞두고 대선주자 토론회를 시작하는 때와 겹쳐 있다. 북한의 무력시위가 이어지면서 ‘북한 리스크’가 부각될 경우 대선 정국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도마에 오를 수 있다. 이를 차단하는 일이 급선무가 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외교 분야의 치적으로 내세워 온 북·미 협상에서 손에 잡히는 성과를 내야 하는 부담이 커졌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미국의 외교정책에서 후순위로 밀려났던 북핵 문제를 우선 과제로 복귀시킨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7년 11월 청와대에서 확대 정상회담을 하며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로서는 한반도 정세 전환의 모멘텀을 새로 확보하게 됐다. 그렇다면 정상회담에 앞서 비핵화 방법론의 북·미 간 입장차를 좁힌 절충안을 가다듬는 것이 중차대한 과제다. 그러기 위해선 소강국면인 남북대화의 활성화가 필수다. 대북특사 파견 혹은 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의 원포인트 정상회담도 추진해야 한다. 


북한도 시급히 대화에 응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 편에 보낸 메시지를 확인한 뒤 비핵화 방법론을 한국과 숙의하는 게 교착국면 해소의 답이다. 한·미 정상회담까지 남은 기간은 40일 정도다. 문 대통령이 북한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한 채 정상회담을 하게 된다면 미국의 협상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수 있다. 북한은 협상의 중대 분수령이 될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4월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단독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제공


남북 간에는 대북 식량지원이 현안으로 떠오른 상태다. 정부는 식량지원의 시기와 방식, 규모 등에 대한 의견수렴 작업을 앞으로 1~2주 더 진행하겠다고 한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대북 여론이 나빠진 만큼 정부의 신중한 태도는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인도적 지원은 정세와 무관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점, 식량 지원은 시기를 놓치면 효과가 반감된다는 점을 감안해 서둘러 결정할 것을 당부한다. 세계식량계획에 따르면 북한 식량난은 7~9월에 가장 심각해질 것이라고 한다. 직접적 식량지원의 경우도 1~2개월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북한도 자존심만 내세울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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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타격했다. 외견상 군사도발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정치적 공격이었다. 미사일 발사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자해적 행동’을 한 것은 한국과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서였을 터이다. 이 시도는 일단 성공적인 모양새다. 한·미 양국에서 대북정책 실패론이 들끓고 있다. 두 대통령은 정치적 손상을 입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수세에 몰렸다. 제재해제를 중간 목표로 세운 순간 약점을 잡혔다. 하노이에서는 영변 핵시설까지 걸었지만 미국에 거부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미국 주도의 제재 체제에 목을 매는 구도 속에서는 동등한 협상이 되기 어려웠다. 북한은 ‘레드라인’을 넘지 않는 군사행동조차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북한의 난감한 처지를 십분 활용했다. 일방 항복이나 다름없는 빅딜만 고집하며 협상에서는 미적댔다. 인내심이 바닥난 김 위원장은 북·미 협상 프레임을 ‘비핵화-제재해제 교환’에서 ‘비핵화-체제안전 교환’ 방식으로 전환했다. 제재해제 목표를 포기한 셈이다. 중간 단계를 빼고 최종 목표만을 설정하는 바람에 협상 성공 가능성은 낮아졌다. 북한은 ‘발톱과 이빨’을 다시 세웠다. 


화력시범 지도하는 김정은 북한이 지난 9일 평안북도 구성 일대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도로 단거리 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를 발사했다고 10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조선인민군 전연(전방) 및 서부전선방어부대들의 화력타격훈련을 망원경으로 참관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북정책은 문재인·트럼프 대통령의 치적이다. 문 대통령은 비핵화 협상 성사의 중재자로, 남북관계 복원의 주역으로 각광받았다. 군사적 긴장 완화 등 평화 조성과 ‘한반도 리스크’ 완화의 공적도 당연히 문 대통령의 것이었다. 트럼프 역시 국내정치에서 북한 핵·미사일 실험 중단의 덕을 봤다. 차기 대선에서도 주요 업적으로 내세울 게 분명하다. 그러나 미사일 발사가 판을 흔들었다. 두 대통령의 장점이 약점으로 바뀌었고, 급기야는 두 사람을 겨누는 창이 되었다.  


그럼에도 한국과 미국 정부는 저강도 대응을 선택했다. 문 대통령은 “대화와 협상 국면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고 싶다”면서도 한반도 평화 추진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도 “(미사일은) 단거리이며, 신뢰 위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로써 혼란스러웠던 상황은 다소 진정됐다. 한·미 보수세력의 ‘외교 실패’ 주장은 현실과 다르다. 문제는 앞으로다. 북한은 무력시위의 강도를 높여갈 가능성이 크다. “나라의 평화와 안전은 강력한 물리적 힘에 의해서만 담보된다.” 김 위원장의 입에서 군사력이란 용어가 다시 등장한 것은 심상찮다. 북한 내부는 고무된 분위기다. 매체들은 연일 공격적 언어들을 쏟아내고 있다. 마치 대결시대의 북한을 연상케 한다.  


김 위원장은 기선제압에 성공했다고 평가할지 모른다. 그러나 미사일이 외부 세계뿐 아니라 북한 내부도 타격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북 식량지원 문제가 그 증거다. 세계식량계획(WFP)은 최근 북한에서 주민 1010만명이 기아에 시달릴 것이라며 향후 3주 안에 130만t의 긴급식량지원이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이에 한국과 미국은 인도적 식량지원 추진에 합의했지만 미사일 발사 후 “북은 미사일 쏘는데 남은 식량 지원하느냐”는 강력한 비판에 직면했다. 한국 정부는 여론이 악화되자 속도조절에 들어간 상태다. 정세 변화에 따라 식량지원 계획 자체가 장기간 유보되거나 아예 취소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식량지원에 차질이 빚어지면 누구보다 북한 주민이 큰 피해를 입게 된다. WFP의 대북 식량지원 규모 130만t은 생산활동은커녕 가만히 누워 있기만 할 수 있는 ‘생명유지 최소열량’을 기준으로 산정한 것이다. 1000만명이 당장 먹지 못하면 ‘생명유지’조차 쉽지 않은 중대 사태에 직면할 것이라는 얘기다. 


김 위원장은 그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인구의 40%를 기아선상에 내몰고도 정치적 이유로 외부 지원까지 막는다면 무자비한 독재자라는 비난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난관에 봉착하자 무력시위로 돌파하려는 구태 역시 그동안 쌓아온 국제사회의 지도자 이미지를 갉아먹을 것이다. 내부적으로도 ‘인민친화적 지도자’로서의 위상에 손상을 입을 수밖에 없다.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부귀영화를 누리자는 것”(2012년 4월 연설), “인민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결심”(2017년 신년사) 등의 공언은 언제든 김 위원장을 공격하는 논리로 활용될 수 있다.  


김 위원장의 최종 목표는 체제안전과 경제강국이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문재인·트럼프 대통령의 협력이 필수다. 그렇다면 두 대통령의 리더십 약화는 독이다. 결국 김 위원장은 미사일로 자신까지 타격한 꼴이다.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지면 아무 소용이 없다. 김 위원장의 성찰과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조호연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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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한국에 비해 ‘사건·사고’나 ‘격변’이 많지 않은 나라라고들 말한다. 사회가 안정돼 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반면 한 일본 시민운동가는 변화의 열망이 시들한 일본 사회를 한국과 비교하면서 한숨 쉬기도 했다.  


이런 일본에서 일왕 교체로 인한 ‘개원(改元·연호가 바뀜)’은 수십 년 만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사건’임에 틀림없다.(앞선 개원은 30년 전인 1989년 1월에 있었다.) 지난 4월1일 새 연호 ‘레이와(令和)’ 발표부터 4월30일 아키히토 일왕 퇴위, 5월1일 나루히토 일왕 즉위, 4일 일반 국민 참하(參賀·궁에 들어가 축하함)까지 눈길을 끌어모으는 이벤트들이 줄줄이 있었다.  


TV에는 “좋은 시대가 오면 좋겠다”는 식의 시민 인터뷰가 반복해서 나왔고, ‘새 시대’라는 단어가 흔하게 사용됐다. 전·후임 일왕의 일대기, 일왕가 역사 등 왕실 관련 보도도 쏟아졌다. 


공영방송 NHK가 아키히토 전 일왕이 참배한 이세신궁을 소개하면서 “왕실 선조인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神)를 모시는 곳”이라고 보도한 것은 기억해둘 만하다. 신화와 역사를 섞어 일왕을 신격화한 보도 사례였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달 1일 총리 관저에서 새 연호 ‘레이와’ 선정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도쿄_EPA연합뉴스


개원 휴일이 포함된 사상 최장의 ‘골든 위크(4월27~5월6일)’가 끝났지만, 들뜬 분위기는 아직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 70대 여성은 “연호가 바뀐다고 내 생활이 바뀌는 건 하나도 없다”고 했다. 그렇다. 연호가 바뀌었을 뿐이다. 연호가 바뀌었다고 ‘새 시대’가 오는 것도 아니다. 2019년이 2020년이 된다고 ‘새 시대’가 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게 되길 바라거나, 그렇게 여기도록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을 뿐이다. 


개원 열기의 이면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본 언론들은 고전에서 유래한 새 연호 결정에 아베 총리의 의향이 강하게 반영됐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1989년 ‘헤이세이(平成)’ 연호 발표 때와 달리 총리가 직접 마이크를 잡고 ‘새 시대, 새 일본’을 강조한 것은 정치적 이용에 다름 아니다.  


정치학자 시라이 사토시(白井聰)는 최근 아사히신문에 “연호 발표부터 개원까지 전개된 것은 이 나라의 폐색감(꽉 막힌 느낌)을 속이기 위한 정치쇼”라고 말했다. 과거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미디어를 이용한 ‘극장형 정치’ 수법이 탁월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정치적 제자인 아베 총리도 못지 않다. 국민들의 눈과 귀를 잡아두는 데는 일본 왕실만한 무대장치는 없다. 


개원 열기와 함께 아베 정권의 발목을 잡던 통계부정 문제는 쏙 들어갔다. 모리토모·가케학원 스캔들 등 아베 정권의 각종 의혹들이 뚜렷한 진상 규명 없이 덮인 것과 마찬가지 패턴이다. 


공교롭게도 개원과 함께 아베 총리는 ‘전제조건 없는 북·일 정상회담’을 공언하고 나섰다. 지난해 “대화를 위한 대화는 의미가 없다”던 모습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실제 교섭이 진행되고 있다기보다 북한과의 대화 국면에서 일본만 빠져있다는 비판을 의식해 ‘뭔가 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정치쇼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물론 개원에 이어 국민들의 눈과 귀를 잡아끄는 효과는 있을 것이다. 이런 정치쇼를 계속 연출하는 게 장수 정권의 비결일 지도 모르겠다.


아마 아베 정권은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감바로(힘내자)” 분위기를 끌어올릴 것이다. 하지만 정치쇼에 국가와 시민사회의 근간들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들은 새겨들을 만하다. 극장형 정치는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진지한 토론을 사라지게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지난 11일자 사설에서 “(아베 총리가) 정중한 설명도 없이 태도를 뒤집는 것은 지금까지도 봐온 광경”이라면서 “설명 없는 방침 전환은 위험하다”고 밝혔다..


<도쿄|김진우 특파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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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매체들이 연일 대남비판에 열을 올리고 있다. 대외 선전매체 메아리는 13일 ‘북남선언들을 이행하려는 의지가 있는가’라는 글에서 개성공단 재가동 문제를 포함한 남북 간 협력사업을 대북 제재의 틀 안에서 논의한다는 남측의 입장을 거론하며 “남조선당국이 자체의 정책 결단만 남아있는 개성공업지구의 재가동을 미국과 보수세력의 눈치나 보며 계속 늦잡고 있으니 이를 북남선언들을 이행하려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북한은 12일에도 ‘조선의 오늘’을 통해 개성공단 재가동은 미국의 승인을 받을 문제가 아니라면서 “(남측이) 승인이니, 제재의 틀이니 하면서 외세에게 협력사업에 대한 간섭의 명분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메아리는 같은 날 “근본적인 문제들을 뒷전에 밀어놓고 그 무슨 ‘계획’이니, ‘인도주의’니 하며 공허한 말치레와 생색내기나 하는 것은 북남관계의 새 역사를 써나가려는 겨레의 지향과 염원에 대한 우롱”이라고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이 지난 4일 강원도 원산 인근 호도반도에서 단거리 발사체의 발사 장면을 참관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발사훈련에 대해 대구경 장거리 방사포와 전술유도무기가 동원된 화력타격훈련이었다고 보도했다. AP연합뉴스


지난해 남북관계 복원 이후 한동안 자제해왔던 북한의 대남비판이 최근 들어 빈발하고 있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특히 개성공단 재가동이 남측의 결단만으로 가능하다는 온당치 않은 논리에는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다. 남북경제협력은 문재인 정부로서도 오매불망의 숙원이다. 하지만 개성공단 재가동은 유엔의 대북 제재를 피해가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게다가 미국은 단독제재를 통해 북한과의 모든 무역과 투자를 금지하고 있다. 이런 사정을 익히 알고 있을 북한이 짐짓 모르는 체하며 문재인 정부를 비판한다고 무슨 득이 있을지 납득하기 어렵다.  


북한의 대남비판은 문재인 정부가 대북정책에서 좀 더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자율적으로 행동할 것을 촉구하려는 취지로 보인다. 정부가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방북신청을 8차례나 불허한 것도 빌미를 제공했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인도적 지원에 대한 비판은 대북 식량지원 추진을 겨냥했다기보다 정부가 방침만 내놓은 채 좌고우면하며 시기를 놓치거나 지연해온 과거 사례를 꼬집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더라도 한반도 정세를 고려할 때 이런 대남비판은 대북여론만 악화시킬 뿐이다. 아쉽고 서운한 점은 직접 만나 풀어야 한다. 대화에는 응하지 않은 채 대남비판에 열을 올리는 것은 남북관계를 판문점선언 이전으로 후퇴시키는 행위라는 점을 북한은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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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10일 0시1분(현지시간)을 기해 2000억달러(약 235조원)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 5745개 품목에 대한 관세율을 10%에서 25%로 인상했다. 미·중은 무역협상 합의에 실패했다. 양국은 앞으로 3~4주간 더 협상한다. 이 기간 ‘대타협’에 이르지 못하면 미국은 “모든 중국산 수입품목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터다. 협상은 경제적 득실 외에 정치적 셈법까지 작용, 타결까지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과 미국은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교역량의 35%가 넘는 주요 무역상대국이다. 한국 수출에서 중국 비중은 27%나 된다. 그중 원료 등 완제품에 들어가는 중간재가 79%다. 중국의 대미 수출이 위축되면, 우리 수출도 그만큼 타격을 받는다. 국제무역연구원은 미국의 대중국 관세 부과의 직·간접적 영향으로 한국의 수출이 총 0.14%(8억7000만달러) 이상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미국이 관세부과 효과를 높이기 위해 한국 등 주요 수입국에 대한 관세율 인상을 적용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을 ‘남의 일’로 가볍게 볼 수 없는 이유다.


정부는 “논의 상황에 따라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수출부진을 내수로 뒷받침하려면 재정확대가 필요하다. 상황에 따라선 수출 기업에 대한 유동성 지원 등 ‘핀셋 처방’도 요구된다. 기업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불필요한 규제의 개선도 이뤄져야 한다. 무엇보다 이번 위기를 ‘산업구조 개편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어차피 중국도 세계 교역무대에서 우리의 경쟁국이다. 미·중 협상을 통해 중국의 불투명한 경제규범이 바로 서고, 과도한 정부보조금 정책이 폐기되면 한국 경제도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올해 1분기 중국의 대미 수출은 8.8% 감소한 반면 같은 기간 한국의 대미 수출은 12.9% 증가했다. 미·중 무역긴장으로 최종재에 대한 한국 의존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걱정만 할 게 아니다. 기업이 경쟁력으로 재무장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 정비에 적극 나서야 한다. 노동자들의 원활한 이동을 위한 정부 차원의 교육시스템도 갖춰야 한다. 실업·빈곤 등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사회안전망도 촘촘하게 다져야 한다. 기업도 혁신을 위한 투자와 함께 수출 판로 다변화에 나서야 한다. 국회도 정부의 재정확대, 제도 개선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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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9일 오후 단거리 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 2발을 동해 방향으로 발사했다. 합동참모본부는 “9일 오후 4시29분과 4시49분경 평안북도 구성 지역에서 단거리 미사일로 추정되는 불상 발사체 각각 1발씩 2발을 동쪽 방향으로 발사했다”고 밝혔다. 추정 비행거리는 각각 420여㎞, 270여㎞이며 고도 50㎞를 날아 동해로 떨어졌다고 합참은 설명했다. 발사체가 발사된 평안북도 구성지역은 인민군 전략군의 탄도미사일 기지가 있는 신오리에서 서북방으로 40여㎞ 떨어진 곳이다. 


출처:경향신문DB


북한이 발사체를 쏘아올린 건 지난 4일 이후 닷새 만이다. 비행거리도 당시의 240㎞보다 크게 늘어났다. 시점도 여러 면에서 공교롭다. 불과 이틀 전인 지난 7일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화 통화를 하면서 인도적 차원의 대북 식량 지원에 공감한 바 있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지난 8일부터 한국을 방문 중이기도 하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대화 모멘텀을 찾기 위해 한·미 양국이 머리를 맞대고 있는 상황 속에서의 북한의 무력시위는 당혹스럽고 유감스러운 일이다. 손을 내밀려는 데 찬물을 끼얹은 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KBS 특집 대담에서 “북한의 이런 행위가 거듭 된다면 지금 대화와 협상 국면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합참은 이번 발사체가 단거리 미사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지난 4일에 이어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위반 논란이 가열될 수밖에 없다. 한국과 미국의 보수세력들은 지난 4일 발사체 발사와 관련해 양국 정부에 강경대응을 촉구하고 있는 참이다. 

이번 무력시위에 대해서도 트럼프 행정부는 대응을 자제한 채 당분간 상황을 주시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레드라인’을 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행동이 반복되더라도 미국의 비핵화 접근법이 변화할 가능성은 낮은 반면 대북 여론을 악화시키고 대화파의 입지만 좁힐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도발수위를 끌어올려 금지선을 넘는다면 2년 전의 위기를 재연하는 것 외에 북한이 얻을 건 없다. 벼랑 끝 전술이 먹힐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한·미 양국은 이번 워킹그룹 회의에서 북·미 대화의 물꼬를 트는 창의적인 방안을 마련할 것을 주문한다. 북한도 더 이상의 무력시위는 중단하고 남북대화에 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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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일 밤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한국이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에 식량을 제공하는 것이 매우 시의적절하며 긍정적인 조치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미 양국은 대북 식량지원에 공감해왔지만 정상 차원에서 이렇게 분명하게 지지의사를 밝힌 적은 없었다. 두 정상의 진전된 입장을 환영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AP연합뉴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등에 따르면 북한의 식량 사정은 최근 10년 사이 가장 심각하다. 국제기구들은 현지조사를 토대로 긴급을 요하는 식량 부족분이 136만t이라고 밝혔다. “북한 어린이들이 지금의 어려운 시기를 넘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호소에 이의가 있을 수 없다. 한·미 양국은 대북 인도적 지원은 정치 상황과 무관하게 집행해야 한다면서도 실제론 그러지 않았다. 정부는 2017년 9월 유니세프와 세계식량계획(WFP)의 북한 모자보건·영양지원 사업에 800만달러를 지원하기로 결정하고도 미국의 대북 압박 기조에 따라 집행하지 못했다. 당국은 밀린 이 약속부터 지체없이 이행해야 한다. 


관건은 대북 인도적 지원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가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그러려면 남북한과 미국 모두 식량 지원을 둘러싼 부정적 시각을 불식해야 한다. 북한은 식량 지원을 수용하되 대미 외교의 승리인 것처럼 선전하는 일을 자제해야 한다. 한·미의 보수층도 북한이 식량을 전용한다는 등 주장으로 인도적 지원을 방해해선 안된다. 국제기구를 통한 간접지원을 넘어 남북 당국이 직접 지원 방안을 협의할 필요도 있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8일 방한했다. 한·미가 대북 인도적 지원을 신속히 집행함으로써 북·미 대화의 물꼬를 트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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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2년, 한반도에는 북한이 지난 4일 쏜 발사체가 날린 먼지가 아직 가라앉지 않고 있다. 미국의 강경파들은 “미사일 도발”이라며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북한은 한·미 군사훈련을 비판하며 무력시위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국방부는 9·19 군사합의 취지에 어긋난다며 우려했다. 한반도 정세의 시계가 2년 전으로 돌아간 듯한 형국이다.


2017년 5월 북한은 중장거리탄도미사일 ‘화성-12형’을 발사했고 9월에는 6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대북 군사행동을 시사하며 한반도 정세를 일촉즉발의 위기로 몰아갔다. 이런 와중에 임기를 시작한 문 대통령은 남북 화해 협력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구상을 견지했다. 문 대통령의 뜻은 평창 동계올림픽 북한 참가와 남북대화 복원을 거쳐 두 차례의 북·미 정상회담과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으로 펼쳐졌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육성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천명하는 괄목할 만한 진전도 있었다. 하지만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문 대통령의 구상은 암초에 부딪힌 상태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5월9일 (경향신문DB)


그간의 정책을 돌아보면 안타까운 점이 적지 않다. 정부는 남북관계의 진전으로 확보한 ‘대북 지렛대’로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선순환이 초기에는 제대로 작동했다. 북한도 남북대화에서 핵문제를 논의하지 않던 관행을 깨고 한국의 중재역할에 기대를 실었다. 하지만 하노이 담판 결렬 이후 미국은 한국을 메신저 정도로 여기는 태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북한은 북한대로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그만두라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이런 정세 조성의 가장 큰 이유는 일괄타결식 비핵화를 고수하는 미국, 단계적 비핵화를 주장하는 북한이 접점 찾기에 실패한 데 있다. 하지만 지난해 3월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밝혔을 때 정부가 구체적인 비핵화 설계도를 만들어 북·미를 설득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 비핵화의 최종단계와 로드맵을 원하는 미국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한 채 대북 제재 완화 등 상응조치에만 신경 쓴 것 아니냐는 지적도 피할 수 없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선순환은 북·미 협상 교착이 남북관계 진전을 가로막는 악순환으로 뒤바뀌었다. 미국이 남북관계의 독자적 진전에 제동을 걸었던 탓도 있지만, 정부가 미국에 너무 순응하면서 스스로 자율성을 잃어버린 측면이 크다. 대북 제재하에서도 가능한 남북관계 사업들조차 미국을 의식하는 바람에 판문점선언 합의 이행이 상당부분 지체됐다. 이는 정부에 대한 북한의 신뢰저하로 이어지며 한국의 중재역량을 약화시켰다.   


북핵외교 과정에서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국과의 관계에 소홀했다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은 중국, 일본, 러시아에도 이해관계가 지대한 사안이다. 주변국의 탄탄한 지지가 필수적인데도 정부가 북·미 외교 외길만 걸어온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김정은은 연말까지 미국의 변화를 기다리겠다고 했고, 미국이 대화의지를 보인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문재인 정부는 하반기에 본격화될 북·미 협상에 대비해 외교의 폭을 넓히고 주변환경을 다져야 한다. 가능한 모든 자원을 동원해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고 신뢰를 구축하는 한편 한·중 및 한·일 관계 진전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능동적인 외교를 위한 인적쇄신도 검토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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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웨이신·웨이보 같은 중국 소셜미디어에는 체리 한 개를 든 사진이 심심치 않게 올라온다. 체리에는 가격표가 붙어 있다. 한 개 가격은 2위안 정도. 300원이 넘는다. 사진에는 ‘나는 언제쯤 체리 자유(車厘子自由)를 누릴 수 있냐’는 한탄의 글이 함께 있다.


저렴하고 다양한 과일을 먹을 수 있는 중국에서도 체리는 선뜻 사기 힘든 과일이다. 500g당 80위안 정도로 다른 과일에 비해 3배 수준이다. 중국산에 비해 당도가 높은 외국산은 비싸도 인기가 높다. 체리가 자유의 상징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올 초 ‘26세, 월급 1만위안, 그래도 체리는 못 먹는다’는 글이 화제가 되면서다. 대학원 졸업 후 베이징의 금융회사에서 일하는 26세 여성. 겉으론 대도시의 멋진 커리어우먼이지만 실제론 체리도 마음껏 먹지 못할 정도로 생활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내용이다. 체리 자유에 공감하는 젊은이들이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물론 체리보다 더 비싼 과일도 있다. 그러나 지금 중국에서 체리는 열심히 돈을 벌어도 마음껏 사 먹을 수 없는 ‘화중지병’의 대명사가 됐다.


현재는 체리가 그렇지만 60년 전 중국에선 망고가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과일이었다. 1968년 파키스탄 대표단은 중국에 오면서 마오쩌둥 주석에게 망고를 선물했다. 과일에 관심이 없던 마오쩌둥은 ‘수도 노동자 마오쩌둥 사상 선전대’에 망고를 선물했다. 지금은 하이난, 대만산 망고를 전국에서 쉽게 볼 수 있지만 당시만 해도 망고를 본 사람이 얼마 없었다. 게다가 마오 주석이 내린 것이니 그야말로 신성한 과일이었다. 중국 전체를 혼란으로 밀어넣은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시작된 이듬해였으니 더했다. 처음 망고를 받은 단체는 칭화대학교 사상 선전대였다. 마오 주석이 내린 신성한 물건을 손댈 수 없다며 먹지 않고 전시했다. 베이징 방직 공장에서는 노동자들이 망고에 절하며 경의를 표했다. 마오 주석의 성물에 대한 소문은 금세 퍼졌다. 그러나 망고는 고작 열댓 개에 불과했다. 수요를 감당할 수 없자 결국 플라스틱으로 가짜 망고를 만들었다. 이 플라스틱 망고는 광저우까지 갔다. ‘마오 주석님 만수무강하십시오’라는 글이 적힌 유리 상자에 담긴 플라스틱 망고가 광저우공항에 도착하자 수백명의 노동자들이 북을 치며 환영했다고 한다. 문화대혁명 시대에는 망고도 성물로 변할 수 있었다. 


문화대혁명은 수십 년 전 끝났다.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 중국 젊은이들은 그만큼 자유로워졌을까. 체리 자유는 당초 글을 쓴 여성이 언급한 15단계 자유 중 6단계에 불과하다. 매운맛 불량식품 라티아오 자유를 1단계로 시작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회원 가입, 스타벅스에 이어 여섯 번째다. 상위권에는 여행, 연애, 내 집 마련의 자유가 자리하고 있다. 여러 상황으로 인해 연애, 주택 구입 등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N포세대와도 통한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취업을 했지만 월급이 물가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도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에 집을 사려면 수십 년이 걸린다. 기약 없는 경쟁에 내몰린 젊은 세대들이 체리에 빗대 자조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젊은이들의 소비 과시 행태가 체리 자유라는 말로 드러난 것이라고 비판한다. 


중국 정보통신기술(ICT) 기업과 스타트업에는 ‘996 근무제’가 일반적이다.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9시에 퇴근하고 일주일에 6일 근무하는 것을 뜻한다. 최근 경기 둔화로 중국 기업체들이 신규 채용을 줄이는 등 인력 감축에 나서면서 996 근무가 일상이 되고 있다. 삶의 질과는 더 멀어진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도 힘들다. 중국의 대표 기업인 마윈 알리바바 회장은 “젊었을 때 996을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느냐”며 “하루에 편안하게 8시간만 일하려는 이들은 필요 없다”고 했다. 아프니까 청춘인 것일까, 청춘이니 아파야 하는 것일까.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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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의 외눈박이 키클로페스 삼형제는 어둠에 갇혀 있다 제우스 도움으로 풀려난다. 대장장이인 삼형제는 보답으로 제우스에게 무기를 만들어 준다. 아르게스는 번개, 브론테스는 천둥, 스테로페스는 벼락을 만들었다. 막강한 힘을 갖게 된 제우스는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우주의 새 주인으로 등극한다.


실제 번개의 위력은 무시무시하다. 전압은 10억볼트, 전류는 5만암페어, 발생 열은 태양의 5배나 되는 2만~3만도에 달한다. 지구상에는 하루 500만회 넘게 낙뢰가 떨어진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는 번개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는 숙명이다.


나치 독일의 자랑거리였던 비행선도 번개에 꺾였다. 1937년 ‘힌덴부르크호’가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떠나 미국 뉴저지주 비행장에 착륙하려던 순간 갑자기 내리친 낙뢰 감전으로 연료탱크가 폭발해 추락했다. 승객과 승무원 35명이 숨진 이 사고로 비행선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항공기는 동체가 전도성 좋은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낙뢰의 위험에서 크게 벗어났으나 ‘완전’하지는 않았다. 1963년 12월 미국 메릴랜드 상공을 날고 있던 팬암 214 여객기 날개를 번개가 직접 때려 날개 하단의 연료탱크에 불이 붙었다. 조종사는 다급하게 ‘메이데이’를 외쳤지만 항공기는 이내 추락했고 81명의 탑승객 전원이 사망했다.


이 사고로 미국 연방항공청은 미국 상공을 운항하는 민간항공기에 낙뢰사고를 방지하는 ‘방전장치’(static discharger) 부착을 의무화했다. 지금은 세계의 모든 민항기에 방전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번개의 고압전류는 날개와 꼬리 등에 설치된 방전장치를 통해 밖으로 배출된다. 방전장치가 피뢰침 역할을 하기에 날벼락이 떨어져도 항공기는 무사한 것이다.


러시아 모스크바 국제공항에서 5일 국내선 여객기가 비상착륙 과정에서 기체에 화재가 발생해 41명이 숨지는 참사가 났다. 현지 언론은 “기체에 대한 번개 타격”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이륙 직후 낙뢰를 맞고 급히 회항해 비상착륙을 하다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안타깝다. 과학기술에 힘입어 아무리 대비를 하더라도 자연의 습격은 어쩌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번개쯤’은 하고 무리한 운항을 한 인간의 오만의 대가일까.


<양권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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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5일(현지시간)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 발사에 대해 “(북한의 발사체가) 중거리 미사일이나 장거리 미사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아니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면서 “우리는 여전히 북한이 비핵화하도록 그들과 좋은 해결책을 협상할 모든 의사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무력시위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협상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미국의 절제된 반응을 평가하며 대북 대화 의지를 피력한 것에 주목한다.


마이크 폼페오 미국 국무장관. 로이터 연합뉴스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으로 볼 때 미국은 북한의 발사체 발사를 본격적인 도발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 우선 “(북한의 발사체가) 국제적 경계선을 넘지 않았다”고 언급한 것은 북한의 발사체들이 단거리용인 데다 발사 방향 등으로 볼 때 미국과 일본에 위협을 가하려는 의도가 없다고 평가한 것이다. 북한의 발사가 유엔의 미사일 모라토리엄(동결) 위반이냐는 질문에도 그는 “(미사일 동결은) 미국을 위협하는 ICBM 시스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북한의 발사체 발사는 대화 교착 국면을 오래 끌면 좋을 게 없다는 북한의 독촉장으로 인식하고 대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고 볼 수 있다. 전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은 나와의 약속을 깨고 싶어하지 않는다”며 “합의는 이뤄질 것”이라고 말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북한의 추가 도발을 경계하면서도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내기 위해 대화 의지를 강조한 것이다.


당장 북한이 대화의 장에 나오기는 어려워 보인다. 내부 불만 세력을 설득하려면 오히려 추가 도발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추가적인 도발은 북한에 재앙이 될 것이다. 최근 국제기구의 조사에 따르면 가뭄과 홍수 등으로 올해 북한의 식량 사정이 10년 만에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 136만t의 식량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식량 등 인도주의적 지원이 교착에 빠진 북·미 협상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 폼페이오 장관도 이날 “인도주의적 대북 지원은 허용된다”며 대북 제재와 식량 지원은 무관하다고 밝혔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9일 북·미 대화 재개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방한한다. 정부는 비건 대표와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 인도적 지원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는 2017년 유니세프와 세계식량계획의 대북 지원사업에 800만달러를 제공하기로 의결해 놓고 아직 집행하지 못하고 있다. 한·미는 차제에 이 문제를 논의해 대북 인도적 지원을 적극 허용할 필요가 있다. 비건 대표의 방한이 북·미 간 협상의 동력을 되살리는 계기로 작용하기를 기대한다.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