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 1920. 앞의 숫자는 영국 여성이, 뒤의 숫자는 미국 여성이 참정권을 얻은 연도이다. 물론 거저 주어지지 않았다. 쟁취되었다. 20세기 초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가(서프러제트·Suffragette)들은 초기엔 평화적·합법적 캠페인에 주력했다. 그러나 번번이 배신만 당하자 ‘말이 아닌 행동’을 구호로 급진적 투쟁으로 전환한다. 1913년 에밀리 데이비슨은 경마대회에서 국왕의 경주마에 몸을 던진다. 그로부터 5년 후(1918년) 영국 여성들에게 투표권이 부여된다. 서프러제트의 물결은 대서양을 건너고, 1920년 미국 여성들도 투표권을 갖게 된다.

 

서프러제트가 주로 입었던 흰옷은 이후 ‘서프러제트 화이트’로 불리며 여성 참정권의 상징이 됐다. 영미권 여성들은 주요 정치적 행사 때 흰옷을 입는 것으로 연대의 메시지를 발신한다. 미국에서 1984년 주요 정당의 첫 여성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제랄딘 페라로, 2016년 주요 정당 첫 여성 대통령 후보가 된 힐러리 클린턴 모두 후보직을 공식 수락하며 흰색 정장을 입었다. 역대 최연소 하원의원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도 최근 의회 개원식에서 흰옷 차림으로 선서했다. 그는 “앞서 길을 닦은 여성들에게 존경을 표하기 위해서”라고 트위터에 밝혔다.

 

여성 참정권을 존중하는 의미로 흰옷을 입은 미국 민주당 여성의원들이 5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여성들이 의회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하자 환호하고 있다. 워싱턴 _ 로이터연합뉴스

 

5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국정연설에서도 ‘서프러제트 화이트’가 눈길을 끌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부터 초선의 오카시오-코르테스까지 민주당 여성 의원들이 일제히 흰옷을 입고 나타난 것이다. 모든 여성에 대한 연대를 표명하고, 성차별적 언행으로 악명높은 트럼프에 항의하는 뜻에서다. 연설 도중 이들은 대체로 냉랭했으나 트럼프가 미국 여성들의 성취에 대해 언급할 때는 기립박수를 하며 환호했다. 딘 필립스 하원의원 등 일부 남성 의원도 흰색 슈트나 리본으로 지지 의사를 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5일(현지시간) 워싱턴 연방의회에서 신년 국정연설을 하기에 앞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오른쪽)과 인사하는 모습을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지켜보고 있다. 워싱턴 _ 로이터연합뉴스

 

흥미로운 것은 검은색 옷차림의 멜라니아·이방카 트럼프와 달리 트럼프의 차녀 티파니가 흰옷을 입은 점이다. 소셜미디어에서는 그의 의도를 두고 갑론을박이 오갔다. “티파니 트럼프가 아버지의 심장마비를 유발하는 것 아니냐”는 글이 트위터에 올라올 정도였다. 트럼프는 딸의 ‘서프러제트 화이트’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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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시대 군비경쟁의 마침표를 찍은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이 무력화될 상황에 처했다. 미국이 러시아와 체결한 INF 조약의 이행을 중단하고 6개월 후 탈퇴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1일(현지시간) “러시아가 협정 준수로 복귀하지 않으면 조약은 종결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간 러시아가 9M729 순항미사일을 개발해 실전 배치하자 INF 위반이라며 폐기를 주장해온 반면 러시아는 이 미사일이 INF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맞서왔다. INF 존속을 위한 양국 간 협상이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서 미국의 ‘탈퇴 선언’으로 이어진 양상이다. 미국의 선언 배경에는 INF의 구속을 받지 않고 중거리 미사일 전력을 확장해온 중국을 겨냥한 측면도 다분하다. 러시아는 미국의 탈퇴 선언에 맞대응해 INF 참여 중단 방침을 밝힌 데 이어 5일 INF에서 금지하던 지상발사 미사일 시스템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INF 파기 시 우려되던 군비 경쟁이 현실화되는 재앙적 신호다.

 

INF는 냉전이 한창이던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체결했다. 사거리 500~1000㎞의 단거리와 1000~5500㎞의 중거리 지상발사 탄도·순항 미사일의 생산과 시험, 실전 배치를 전면 금지하는 게 조약의 뼈대다. INF에 따라 양국은 1991년까지 중·단거리 미사일 2692기를 없앴다. 냉전시대 군비경쟁의 종식을 이끌어낸 조약으로 평가받는 이유이다. INF는 이후에도 국제 군축 체제의 핵심으로 기능해 왔다. INF 폐기는 국제 안보질서의 근간인 무기 통제체제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미국의 탈퇴로 냉전의 망령을 가둬둔 INF 잠금장치가 풀리면 유럽과 아시아 등 국제사회에서 미사일 개발과 핵군비 경쟁이 재연될 공산이 커진다. 미국이 러시아에 대응해 유럽에 신규 미사일을 배치하고 중국 견제를 위해 동아시아에 무기를 증강하려 들 경우 이 지역의 안전과 평화는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미·중·러 간 군비 특히 미사일 개발 경쟁이 점화되고, 북핵 문제 해결에도 잠재적 위협 요소가 될 수 있다. INF 파기는 전 세계를 더 위험하게 만들 뿐이다. 미국의 탈퇴가 발효될 때까지 향후 6개월이 INF 조약을 유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의 창’이다. 미국과 러시아가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 파국을 막고 해결책을 도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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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2차 정상회담이 오는 27~28일 베트남에서 열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미 의회 국정연설을 통해 “대담하고 새로운 외교의 일환으로 한반도 평화를 향한 역사적인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며 2차 북·미 정상회담 일정을 밝혔다. 이와 동시에 서울에 와 있던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이날 미군기를 이용, 평양으로 직행해 카운터파트인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와 정상회담 합의문 조율 등 실무협상에 나섰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왼쪽)가 6일 오전 서울 시내의 한 호텔에서 차를 타고 나오고 있다. 비건 대표는 이날 평양에서 협상 카운터파트인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작은 사진)와 만나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협상을 가졌다. 연합뉴스

 

북·미가 평양에서 실무협상을 벌이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사소한 부분에서까지 신경전을 벌이던 과거와 달리 장소에 구애받지 않을 정도로 양측 간 협상이 진전되고 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앞서 비건 대표는 최근 김 위원장이 지난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에게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시설 전체의 폐기를 약속했다고 공개하는 등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인정했다. 또 미측은 완강한 ‘선비핵화’에서 비핵화와 관계 정상화의 ‘동시적·병행적’ 이행으로 태도 변화를 보였다. 이견을 보여온 비핵화 방안에 대해 양측이 접점을 찾아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관건은 북한의 비핵화에 상응해 미국이 취할 조치이다. 북·미 간 연락사무소 설치 이외에 개성공단·금강산관광의 재개가 포함되느냐는 것이다. 당초 개성공단 폐쇄는 한국 정부의 독자 제재로 출발한 만큼 개성공단을 국제제재 대상에서 제외할 명분은 충분하다. 미국은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허용으로 대북 관계 개선 의지를 보일 필요가 있다. 다자협의를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평화체제는 북한이 원하는 체제 보장의 안전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도 만난다. 북·미, 미·중 정상회담에서 평화체제 논의의 물꼬를 트고 머지않은 미래에 남·북·미·중 정상이 종전을 선언한다면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 평화에 역사적인 일이 될 것이다.

 

6일 비건 대표가 탑승한 것으로 추정되는 비행기가 오산 미군기지에서 이륙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차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북한의 비핵화 및 북·미관계 개선에 대한 포괄적 합의에 초점을 맞췄다면 2차 회담의 목표는 그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 것이다. 북·미 정상이 2차 회담의 일정을 1박2일간으로 잡은 것도 그런 의지의 표현이다. 두 정상은 역지사지의 태도와 담대한 결단으로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체제’의 빅딜을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 한국 정부도 회담의 촉진자 역할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성과가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 그리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으로 이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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