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가 악화일로다.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 손해배상 판결, 11월 위안부 화해·치유재단 해산 발표, 12월 일본 초계기와 한국 군함 간 ‘위협비행-레이더’ 논란 등으로 갈등이 커지고만 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최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의 본질은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죄라면서 아키히토(明仁) 일왕을 ‘전쟁범죄 주범의 아들’이라고 한 것도 일본의 반발을 샀다. 지난 15일 한·일 외교장관 회담 당시 문 의장 발언에 대해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무상의 항의가 있었는지를 두고도 진실 공방이 벌어졌다. 한·일관계가 사실관계조차 엇갈리는 인식을 보이는 심각한 상태다.

 

이럴 때일수록 양국이 냉정을 유지해야 함은 물론이다. 현안 인식이 다를지라도, 상호 불신을 부채질하고 감정을 자극하는 발언은 삼가야 한다. 그런 면에서 최근 일본 정계의 움직임은 우려스럽다. 일본 언론은 여당인 자민당에서 한국에 대한 대응조치로 반도체 제조에 불가결한 불화수소 등 소재·부품이나 방위 물품의 수출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국제질서와 규범을 준수한다는 일본이 초법적인 조치를 거론하는 것은 긴장만 높일 뿐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달 4일 미에현 이세신궁을 참배하며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이세 _ 교도연합뉴스

 

일본 내 ‘혐한(嫌韓) 기류’에 편승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야마모토 도모히로 의원은 지난달 31일 레이더 문제와 관련해 “거짓말쟁이는 도둑의 시작이 아니라 도둑이 거짓말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원래 도둑이어서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 나카야마 야스히데 의원은 지난 13일 “만약 한국에서 태어나 대통령이라도 됐다면 그 마지막은 사형 아니면 체포 아니면 자살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발언들이 국회 질의나 당 회의에서 버젓이 나오고 있다. 자민당 소속인 두 의원은 모두 일본 최대 극우단체 ‘일본회의’ 산하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와 ‘다 함께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회원이다. 양국 정치인들이 비난전을 되풀이하면 이득을 보는 것은 누구일까.

 

신경 쓰이는 대목은 또 있다. 일본에선 한·일 갈등과 관련해 한국이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있다는 점을 빼놓지 않는다. 반일 감정이 높아져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에 역행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고노 외무상은 지난 15일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3·1운동 100주년으로 반일 감정이 부추겨져 한·일관계가 더욱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전했다고 일본 언론은 보도했다.

 

‘역지사지’가 필요하다. 일본에선 ‘3·1운동’을 쉽게 말하지만, 3·1운동의 배경과 진행 과정, 당시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갖는 의미를 살펴보려는 움직임은 드물다. 최근 남북 화해 움직임이나 재일한국·조선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헤이트 스피치’(혐오·차별 발언)가 넘쳐날 뿐 한반도의 질곡과 고통의 뿌리가 일제 식민 지배에 있음을 직시하는 이들은 소수다.

 

일본이 말하는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는 과연 무엇일까. “한국은 과거에 집착한다”는 언설에 역사적 과오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반성,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라는 원칙은 묻혀버린다.

 

“기억이 사라지면 없었던 일이 돼버린다. 그렇다고 비관해선 안된다. 새롭게 기억해 젊은 세대에게 계승해야 한다.”

 

지난 17일 도쿄 릿쿄대에서 열린 시인 윤동주 74주기 행사에서 야나기하라 야스코는 12년째 행사를 주관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도쿄 ‘2·8독립선언 기념자료실’의 다즈케 가즈히사 실장은 “미래를 지향한다면 과거를 알아야 한다”며 “2·8독립선언과 3·1운동 100주년이 과거 역사를 직시하고 극복할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얼마나 많은 일본인이 이런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지 모르겠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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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각료회의에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과 관련해 “그것은 올라가야 한다. 몇 년 동안 오르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양국이 지난 10일 올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 합의안에 가서명한 지 불과 이틀 만에 내년 분담금 인상을 거론한 것이다. 


트럼프가 이날 쏟아낸 발언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사실에 맞지 않는다. 그는 “한국이 분담금 5억달러를 더 내기로 했다”고 하는가 하면 “우리가 한국에서 쓰는 비용은 50억달러이며 한국은 약 5억달러를 지불해왔다”고도 했다. 한국이 분담금 5억달러를 더 내기로 했다는 말은 합의안과 명백히 다르다. 합의안에는 한국의 분담금이 지난해보다 8.2%, 즉 787억원 오른 1조389억원으로 돼 있다. 트럼프가 수치를 착각했거나 성과를 과시하기 위해 부풀렸을 수 있다. 주한미군이 50억달러를 쓴다는 것도 터무니없다. 한국의 분담금은 주한미군 주둔 비용의 50% 남짓으로 평가된다. 한국이 지난해 9억달러를 지불했으니 미국이 쓴 비용도 그 언저리일 것이다. 게다가 “전화 몇 통 걸었더니 5억달러가 나왔다”는 발언에선 모욕감마저 느껴진다. ‘약자의 팔을 비틀어 돈을 뜯어내는 불량배’를 떠올리며 분개한 한국인들이 적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각료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중국과의 '90일 무역협상' 시한으로 설정한 3월 1일을 다소 연장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이렇게 되면 3월 2일부터 예고된 추가적인 대중(對中) '관세 폭탄'도 잠시 유예될 수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가 과장과 자기 과시가 섞인 특유의 어법을 구사해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각료회의라는 공식 석상에서 던진 동맹국을 향한 망발마저 그대로 넘겨선 안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합의한 액수는 분명히 1조389억원”이라고 반박했지만 여기서 그치지 말고, 공식 외교경로를 통해 발언의 부적절함을 지적하고 유감을 표명해야 한다.


트럼프의 발언은 다음번 협상에서도 미국의 압박이 거세질 것임을 예고한다. 미국 측은 이번에 합의한 협정에서 종전 다년이던 유효기간을 1년으로 바꾸는 안을 관철해 매년 분담금을 인상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한국은 안보의 상당 부분을 주한미군에 의존하고 있지만, 미군의 한국 주둔은 미국의 패권과 동북아 전략적 이익에도 기여한다. 이를 고려하지 않은 미국의 합리적이지 못한 분담금 인상 압박은 동맹관계를 해칠 우려가 있다. 한국만이 수혜자라는 식의 ‘안보무임승차론’을 들먹이며 돈을 더 받아내려는 대국답지 못한 행동에 진저리 치는 한국인들이 적지 않음을 미국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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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당 의원 13명은 지난달 29일 미 국방장관 대행에게 편지를 보내 한·미 연합훈련을 재개하라고 촉구했다. 훈련이 핵 제거를 압박하면서도 외교적 노력은 해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지지부진하나마 그동안 북·미대화가 지속된 건 훈련 유예 덕분이다. 한반도 화해의 물꼬를 튼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는 훈련을 미뤘기 때문에 가능했다. ‘선 비핵화 후 제재 해제’라는 미국의 완고한 태도에도 북한이 대화를 포기하지 않는 것 또한 훈련 유예 때문이다. 훈련 유예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유일한 성의 표시였고, 협상 동력이었다. 훈련 재개는 협상을 깨는 최후통첩이 될 것이다. 당연히 외교적 노력을 해친다. 댄 코츠 미국 국가정보국장은 같은 날 의회 청문회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것 같지 않다고 밝혔다. 핵무기를 체제 생존에 대단히 중요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북한이 비핵화의 조건으로 외교관계 정상화, 제재 해제, 훈련 중단을 내세운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핵 폐기 조건을 놓고 이제서야 북·미 간 본격 협상 중인데 그는 협상 조건이 있다는 사실을 비핵화 의사가 없는 증거로 삼았다. 이상한 논리다.

 

북한이 여전히 핵 관련 활동을 하는 것도 핵을 포기하지 않을 근거로 들었다. 이에 조엘 위트 전 미 국무부 북한담당관은 ‘38 NORTH’ 기고문에서 자신이 미·소 간 핵군축 협상에 참여했던 경험을 들어 반박했다. 군축 협상 중 미·소 모두 핵무기 개발을 계속했다고 한다. 협상 실패에 대비하면서 협상력도 높이기 위해서였다. 그게 대체로 협상하는 방식이다. 협상 무용론과 비핵화 불가론은 훈련 재개 주장처럼 반트럼프의 당파성에 기인한 비논리적 주장이거나, 종전선언을 통해 미군 철수 혹은 한·미동맹 해체를 노린다는 음모론적 발상이 대부분이다. 정부 기관조차 북한에 대한 맹목적 불신에 사로잡혀 앞뒤 안 맞는 보고서를 낼 정도라면, 민간 차원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막연한 반북 감정과 북한 불신에 기댄 주장이라서 쉽게 반증할 수 있는, 설득력 없는 견해들이 서로 지지하고 섞이고 뭉치면서 상당한 힘을 발휘한다. 사정이 어떻든 이런 현상은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 8개월이 지나도록 실질적 비핵화를 못한 결과임을 부정할 수 없다. 1차 회담 때와 별로 다르지 않은,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의 풍경도 불가론을 강화한다.

사람들은 무용론·불가론에 얼마나 허점이 많은지가 아니라, 비핵화가 얼마나 진전되었는지에 관심을 둔다. 아무리 허구라 해도 세상을 지배하는 건 그런 것이다. 김정은이 속마음을 꺼내 보여주지 못하는 한 이 엄연한 현실을 피할 순 없다. 사실 인내심 있게 비핵화를 낙관하던 사람들도 점차 지쳐가고 있다. 북핵 협상은 중대 기로에 놓여 있다. 비관론을 잠재우고 낙관론에 다시 불을 붙이지 못하면 핵 협상의 앞날은 어둡다. 이 어둠을 걷어내는 유일한 해법은 김정은이 상당한 수준의 비핵화 조치를 하는 것이다. 미국과의 동시적 행동을 통해서건, 통 큰 양보로 선제적 행동을 하건, 어떤 과정과 절차를 거치든 2차 회담은 과감한 핵 폐기의 출발점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려면 밖에서도 껍질을 깨야 한다.

 

비핵화는 김정은의 노력과 의지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트럼프가 비핵화의 장애물을 제거해줘야 한다. 첫째, 제재 완화가 필요하다. 비핵화의 긴 시간 동안 전면 제재를 유지하며 일방적 폐기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제재의 틀을 유지하면서 비핵화를 유인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목표는 핵 폐기지 제재가 아니다. 둘째, 종전선언·연락사무소 설치 등 관계 개선에 나서야 한다. 북한 논리에 따르면 그것은 핵무장의 원인인 대북 적대가 사라지고, 따라서 핵의 정당성이 무너지는 걸 의미한다. 그동안 트럼프는 북한에 아무런 보상을 하지 않은 걸 자랑해왔다. 트럼프 비판을 일시 달래주는 데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그건 트럼프 자신을 감옥에 가두는 일이다. 보상도 없지만, 핵 폐기도 없는 감옥.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최초로 비핵화의 돌파구를 연 그가 자기 감옥의 수인(囚人)으로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 지금 사람들은 가시적 성과를 요구하고 있다. 보상한 적 없다며 알리바이를 내세울 단계가 지났다는 뜻이다. 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은, 좋은 거래였다고 평가받는 쪽으로 생각을 바꿔야 한다. 그렇게 하면, 세상의 시선도 대북 보상 문제가 아닌, 트럼프가 이루어낸 핵 폐기 성과에 쏠린다. 그 기회가 다가오고 있다. 트럼프, 당신은 감옥에서 탈출해야 한다. 하노이에서 멋진 장면을 기대한다.

 

<이대근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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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투자가인 로저스홀딩스의 짐 로저스 회장이 다음달 북한을 방문한다. 정부 관계자는 경향신문의 단독 보도에 대해 “로저스 회장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초청을 받았고 미국 정부도 그의 방북을 승인했다”고 확인했다. 김 위원장이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2월27~28일) 직후 로저스를 북한으로 불러들인 것은 자신의 개방과 경제발전에 대한 의지와 함께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대한 기대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로저스 회장의 방북이 대북 투자의 마중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로저스 회장은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와 함께 세계 3대 투자가로 꼽히는 인물로, 전부터 북한 투자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왔다. 지난달 KBS 프로그램에 출연해 북한을 1980년대 중국에 비교하며 “북한에 정말 투자하고 싶다”고 밝혔다. 2015년 CNN 인터뷰 때도 “전 재산을 북한에 투자하고 싶다”고 했을 만큼 수년째 대북 투자를 강조하고 있다. 실제 로저스는 지난해 12월 금강산에 골프리조트를 보유한 리조트 개발업체 아난티의 사외이사로 합류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망한 투자처가 북한 관광산업이라고 본 것이다. 서방 자본의 대북 선도 투자가 임박했다고 볼 수 있다.

 

세계적인 투자가이자 로저스홀딩스의 회장인 짐 로저스 회장이 2018년 7월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베트남식 또는 중국식 개방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김 위원장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장소로 베트남 하노이를 선택한 것은 그 현장을 보기 위함이다. 김 위원장이 로저스를 초청한 데는 대북 국제 제재를 풀어달라는 뜻도 담겨 있다. 그런 점에서 로저스의 방북은 대북 투자에 앞서 비핵화 협상의 보험이자 촉진제 성격을 갖는다. 

 

북·미 협상이 어떻게 될지 모르고, 대북 제재도 풀리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투자는 신중히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국의 성장 가능성을 가장 먼저 포착해 큰 수익을 거둔 로저스의 통찰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북한의 경제발전을 낙관하며 북한에 대한 민간 투자를 강조했다. 주목할 대목은 로저스가 남북한 경제발전을 하나로 본다는 점이다. 남한의 자본과 경영기술, 북한의 풍부한 천연자원과 값싸고 숙련된 노동력을 결합하면 엄청난 발전을 이룬다는 것이 북한 발전론의 핵심이다.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과 이웃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한다. 국내 기업도 차근차근 북한에 대한 투자를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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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톈진시 상무국장은 최대 명절인 춘제(春節·설) 황금연휴(2월4~10일)를 앞두고 베이징으로 ‘야간견학’을 왔다. 날이 저문 후 진행된 상무국장의 견학 루트는 술집이 밀집한 지역에 집중됐다. 이국적인 카페와 술집이 모여 있는 ‘베이징의 이태원’ 싼리툰 거리와 호수를 끼고 라이브바들이 성업 중인 호우하이를 둘러봤다. 그는 견학 후 “베이징의 성공사례를 바탕으로 톈진의 야간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겠다”면서 6개 야간경제 시범거리 조성, 심야영업 브랜드 육성 계획을 밝혔다. 톈진시를 ‘불야성’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다.

 

중국 정기국회에 해당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의 다음달 초 소집을 앞두고 지난달부터 지방 전인대 회의가 한창이다. 올해 각 도시의 핵심 정책을 논의하고 수립하는 지방 전인대의 최대 화두는 하나같이 불야성 만들기다. 톈진의 롤 모델 베이징도 야간경제 활성화에 소매를 걷어붙인 상황이다.

 

베이징시 정부는 경기 활성화를 위한 야간소비 촉진책을 내놓고 주요 골목 상권과 상가, 슈퍼마켓, 편의점의 영업시간 연장을 독려했다. 2020년까지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편의점을 50% 이상 늘리겠다는 목표도 내세웠다. 10군데의 특색 시범거리를 조성하고 100개의 프랜차이즈 기업을 육성해 야간소비 진작에 나서고, 이에 부합하는 농산품 도매시장, 노포 등에 각 10만위안(약 1654만원)의 보조금도 지급한다. 상하이시 정부는 국내외 관광객들의 심야소비 촉진을 위해 야시장 4~5개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충칭시는 2020년까지 전국적 명성을 가질 수 있는 야시장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역시 핵심은 야간경제 촉진이다.

 

중국은 야간경제를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쇼핑, 요식업, 관광, 엔터테인먼트 등 3차 서비스 경제활동으로 규정한다. 생활패턴 변화로 도시 인구의 60% 이상이 야간에 소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 시드니는 2017년 기준 야간경제 규모가 40억달러(약 4조4960억원)를 넘었고, 영국 런던은 야간경제로 13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는 통계가 있다.

 

미·중 무역전쟁 여파로 주가 하락, 부동산 가격 침체, 실업률 증가를 겪으면서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된 중국으로선 이보다 좋은 처방전이 없다. 경제활동 시간을 늘려 각종 시설 이용률을 높이고 고용 증대, 서비스업 확장, 관광객들의 소비지출 확대를 노리는 것이다. 대도시 회사원들의 퇴근시간이 늦고 올빼미족의 증가로 심야식당과 심야쇼핑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도 좋은 이유다.

 

베이징에는 자금성, 이화원 같은 유서 깊은 곳이 많아 국내외 관광객들이 몰린다. 그러나 타 도시에 비해 관광객 1인당 평균 소비액이 낮은 원인을 ‘밤소비’ 부족으로 보고 심야 문화예술 공연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중국 대도시들이 앞다퉈 야간경제 부흥으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 정부 주도의 불야성 정책에는 여러 한계가 보인다. 심야에 여는 식당과 상점이 늘어나더라도 대중교통 수단이 마땅치 않은 것이 문제다. 야시장을 늘리기 전에 심야버스부터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요식업계 관계자들은 야간영업 보조금보다 음식물 쓰레기 수거시간을 연장해줘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오랫동안 꺼져 있던 심야식당의 불을 켜기 위해서는 제반 여건이 우선이다.

 

베이징, 톈진 등은 북방 지역 특성상 겨울이 길고 일교차가 크다. 대부분의 식당과 상점이 오후 10시면 문을 닫는 이곳에서 불야성은 낯선 문화다. 무엇보다도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심야에도 나와 지갑을 열게 할 수 있는 매력적인 콘텐츠가 많아져야 한다. 경기 하방 압력이 높아지는 심각한 상황에서 야간경제는 좋은 대안이다. 그러나 빛을 보기 위해서는 중국 당국의 세심한 정책이 선행돼야 한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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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북·미 정상회담이 이달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된다. 작년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8개월 만이다. 이번 회담의 관전 포인트는 북한 비핵화의 세부 이행계획이 합의문에 포함되느냐 여부이다. 물론 이에 상응하는 미국의 조치가 무엇이냐에 따라 북한 비핵화의 범위, 방법(순서), 일정 등이 구체적으로 정해지게 된다. 비핵화 과정은 100m 달리기가 아닌 마라톤이다. 북한 핵무기 개발도 그랬다.

 

김일성이 계획한 핵무기 개발의 뿌리는 6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9년 평안북도 영변의 구룡강 근처 ‘가구공장’ 위장 간판을 달고 출발한 핵센터가 불편한 진실의 씨앗이었다. 이후 북한은 영변핵센터를 핵 단지(일명 ‘분강지구’)로 확장하면서 여기에다 핵무기 관련 시설들을 짓기 시작, 현재 건물만 390개에 달한다. 미국이 북한의 핵 활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시점은 5㎽ 흑연감속로를 착공 7년 만에 가동한 1986년부터였으며 이후 영변 핵시설들은 미국 정찰위성의 표적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며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되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의미를 밝히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13년 전 1차 핵실험을 거쳐 지금까지 여섯 차례의 핵실험을 마친 북한에 위장 간판은 더 이상 쓸모가 없다. 북한은 되레 2012년 4월 헌법 전문에다 핵보유국임을 명기했다. 이후 북한 비핵화는 가까이 가면 갈수록 멀어지는 ‘무지개’가 됐다.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 제네바합의, 6자회담, 9·19공동성명, 2·13합의, 남북정상회담 등은 무지개를 좇고서 남은, 말하자면 미완성 북한 비핵화의 훈장들이다.

 

비핵화를 두고 벌이는 유관국들 간 협력과 긴장 관계는 초식 동물들처럼 여러 개의 위(胃)를 거쳐야 완전히 소화가 되는 단계적이고도 복잡한 구조다. 그러다보니 안타깝게도 북한 비핵화는 두번째 위도 통과하지 못하고 수십년째 첫번째 위에서만 되새김질을 하고 있다. 비관론자들은 벌써부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끝나고서도 두번째 위로 넘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암울하게 전망한다.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라는 것이다.

 

누구는 이 불편한 진실과 이제는 작별을 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애당초 북한 비핵화는 실현 불가능한 환상이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는 완전한 비핵화가 대리석 바닥에 내던져진 유리컵이 됐다고 비웃는다. 핵무장 주장도 다시 스멀스멀 나오고 있다. 여차하면 ‘핵의병(核義兵)’들 주도로 팟캐스트 ‘우리도 핵 가질레오’가 등장할 수도 있겠다 싶다. 이 모두 비핵화 협상 실패라는 참사 뒤에 닥쳐올 ‘퍼펙트 스톰’이 한반도를 강타할 수도 있음을 자각하라는 경고이자 반동처럼 보인다. 동시에 전쟁터 참호에서처럼 숨죽인 채 우리의 시선은 북·미 정상회담 실무협상을 향해 있었다.

 

2박3일 동안 ‘평양대첩’을 치른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지난달 31일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의 한 연구소가 주최한 연설에서 김정은이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시설의 폐기 및 파기를 이미 약속했다고 밝혔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폭스뉴스 방송에서 피력한 북한 비핵화의 낙관적 전망에 앞서 금년 1월 퇴역한 빈센트 브룩스 전 한미연합사령관 역시 미국 공영방송(PBS)과 가진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핵무기를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으로 인식했다. 편견이 분석을 오염시킬 수 있는 위험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어도 비건, 폼페이오 그리고 브룩스의 주장 모두 ‘보면 믿겠다’가 아니라 ‘믿으면 보인다’에 방점이 찍힌 것으로 해석됐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말이 최소 ‘영변 플러스 알파’로 귀결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문재인 정부가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평양과 워싱턴을 연결하는 용접공 사고(思考) 너머의 국가책략을 어떻게 정교하게 짜느냐이다. 왜냐하면 나는 김정은이 1968년 1월 나포한 미국 정찰함 푸에블로호를 트럼프에게 정치적 선물로 되돌려 줄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용접외교’에서도 ‘시아게’(‘마무리’를 뜻하는 일본어)가 중요하다면 비핵화 협상 중 불씨가 한·미동맹의 부비트랩인 주한미군 감축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철회로 튀지 않도록 대비해야 한다. 관건은 현 상황에 대한 오인식을 서로 얼마나 최소화하느냐이다.

 

<이병철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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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슈카쓰(就活·취업활동)’에서 ‘취직 에이전트(대리인)’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대학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전임 ‘어드바이저(조언자)’가 붙어 희망과 적성에 맞는 기업을 소개하는 일종의 ‘취업 코디네이터’다.

 

대학생은 무료로 조언을 받으면서 취업 준비를 할 수 있는 반면, 기업은 원하는 인재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일손 부족으로 우수 인재 확보에 부심하는 일본 노동시장 상황이 반영된 것이란 풀이가 나온다.

 

일본 대학생들이 2016년 3월 도쿄에서 열린 취업 박람회에서 기업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11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인재·컨설팅회사인 DYM은 2010년부터 취직 에이전트 사업을 하고 있다. 2013년 2만명이었던 등록자는 2019년 봄 대학 졸업 예정자만 12만5000명으로 늘었다. 최근 1년 간 4000명이 DYM을 통해 전국 1500개사에 취직했다.

 

친구를 통해 DYM에 등록한 대학 3년생 구니이 유키(國井柚希)는 지난해 12월 어드바이저와 면담을 통해 흥미를 갖고 있는 차와 관련된 인턴십을 소개받았다. 어드바이저로부터 “일단 참가해 어떻게 느꼈는가로 앞으로를 생각해보자”는 조언을 받았다. 슈카쓰에는 입사지원서 쓰는 방법, 자기분석 등 모르는 것 투성이. 구니이는 “혼자라면 이 인턴십을 발견하지 못했거나 발견했다고 해도 참가해야 할 지 고민했을 것”이라면서 “불안이 가득하지만 ‘백(후원자)’이 있으니 어떻게든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시간이 부족한 대학생들로선 취직 에이전트의 조언을 받으면서 슈카쓰를 할 수 있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니혼게이자이는 전했다. 에이전트 이용비는 기업이 내기 때문에 대학생의 부담은 ‘제로’다. 입사가 결정되면 에이전트는 기업으로부터 성과 보수로 수십만엔을 받는다.

 

취직 에이전트를 이용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마케팅업체 마이케이는 5년 전부터 DYM의 ‘신졸(新卒·그 해 졸업자)소개’를 이용하고 있다. 이다 유(飯田裕) 회장은 “지금까지는 각지의 회사설명회에 참가해 학생을 모았다”면서 “비용과 시간, 노력이 상당히 소요되지만 입사 3년 만에 절반이 그만둔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올 4월 신입사원의 경우 에이전트로부터 소개받은 40명을 면접해 20명을 내정했고, 이 가운데 8명이 입사를 결정했다. 이다 회장은 “원하는 인재는 사전에 면밀하게 협의하기 때문에 ‘미스 매치’가 없어져 이직도 줄고 있다”고 말했다.

 

취업정보회사도 취직 에이전트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마이나비는 2017년 10월 신졸소개 부서를 독립시켰다. 마이나비 회원 가운데 면담을 통해 신졸소개 회원으로 등록한 올봄 졸업 예정 대학생은 2만명에 이른다. 지난해에는 신졸소개협의회도 설립됐다. 야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취직 에이전트 사업을 포함하는 신졸채용지원 시장규모는 2017년에 전년 대비 8.6% 증가한 1193억엔(약 1조2000억원), 2018년에는 전년보다 8.0% 증가한 1288억엔(약 1조3000억원)으로 전망되고 있다. DYM 오키노조 마사히로(沖之城雅弘) 이사는 “프로가 적성을 살펴 학생과 기업을 연결함으로써 쌍방에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면서 “이용하는 학생도 기업도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취직 에이전트로부터 ‘오와하라(취업이 확정된 대졸예정자에게 다른 회사를 더 이상 알아보지 말라고 요구)’를 받는 등 부작용도 생기고 있다. 한 대학의 슈카쓰 담당자는 니혼게이자이에 “싫은 것은 싫다고 말하고, 에이전트를 판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도쿄|김진우 특파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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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화법을 요약하면 ‘이전 행정부에선 하지 못했던 일들이 내가 대통령이 됐기 때문에 해결되고 있다’는 식이다. 북한 문제로 가면 목소리에 힘이 더 들어간다. 자신은 아직 북한에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았지만 북한은 억류한 미국인들을 돌려보냈고, 15개월 동안 핵 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를 중단했으며, 미군 유해를 송환했다고 강조한다. 만약 자신이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한반도에는 진즉 전쟁이 났을 것이라고 한다.

 

한반도 정세는, 또 북·미 관계는 지난 1년간 대결에서 대화로의 극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는 것을 전적으로 반박하기는 어렵다. ‘최대의 대북 압박’ 정책이 통했기 때문인지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조야의 우려에도 북한과의 대화에 드라이브를 건 것은 분명하다. 그는 이를 “대담하고 새로운 외교”라고 했다. 베트남 하노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관계가 좋다” “김 위원장의 지도력으로 북한은 경제강국이 될 것”이라고 하고, 북한도 “트럼프 대통령의 긍정적 사고방식을 믿는다”고 한다.

 

외교가에 실패하는 정상회담은 없다는 말이 있다. 어느 두 나라가 정상회담을 기획할 때 외교 라인들이 사전에 주요 의제에 대한 합의 도출 가능성을 타진하고 내놓을 게 있을 때 정상회담 일정을 확정하는 게 일반적인 패턴이기 때문이다. 북·미 정상회담은 다르다. 이번 역시 지난해 6월 싱가포르 1차 정상회담 때처럼 양 정상의 결정으로 회담 일정이 공개되고, 후속 실무협상을 통해 구체적인 합의안을 조율하는 방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차 회담을 앞두고선 말도 줄이고 있다. 트럼프답지 않게 신중하다는 인상마저 준다. 승리주의, 성과주의에 집착하는 그는 국정연설에선 “한반도 평화를 위한 역사적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 66년간 ‘제한 전쟁’ 상태인 한반도의 근원적 구조가 한두 번의 협상으로 끝날 것으로 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양측이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 항구적 한반도 평화 구축, 완전한 비핵화 등에 합의한 것은 출발이다. 함께 가야 할 공동의 목적지를 설정한 것이다. 이번에는 이를 위한 각각의 ‘행동 대 행동’ 계획을 구체화해야 한다. 북한은 실제로 핵무기를 포기할 의지가 있는지, 미국은 그에 상응한 조치를 할 의향이 있는지가 하노이에서 드러날 것이다. 서로에게 ‘진실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역사적 노력’이 어떤 결말을 그릴지, 현재로선 장담하기 어렵다. 그 역시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 있다”고 했다. 다만 그는 지난해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하지 않는 한 비핵화가 오래 걸려도 상관없다”고 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지난달 “궁극적으로 미국민의 안전이 목표다” “위험을 줄이고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 확장 능력을 줄이기를 원한다” 등의 언급을 했다. 그러다 보니 이번 회담이 ‘스몰 딜’, 즉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감축을 대가로 미국이 최소한의 상응조치를 제공하는 수준에서 그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정상회담에 대한 회의론도 고개를 든다. 애당초 핵을 포기할 생각이 없는 김 위원장을 만나봐야 시간 낭비라는 게 요지다. 트럼프 대통령도 눈에 확 띄는 합의가 없을 줄 알고 있으니 국정연설에서 북한 관련 메시지를 짧게 하고, ‘북한 비핵화’란 표현을 쓰지 않았으며, ‘역사적 노력’을 운운한 것 아니냐는 나름의 추론을 내놓는다. 한반도 운명이 기로에 선 지금, 중요한 것은 협상이 중단 없이 꼬리를 물고 지속되는 것이다. 도출한 합의를 서로 이행하고, 이를 기반으로 다음, 그다음의 합의와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런 연쇄적 움직임이 불신을 신뢰로 바꿀 수 있고 빅딜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8년이 선언의 해였다면, 2019년은 실천의 해로 만들어야 한다.

 

최종 목적지는 북한의 핵시설, 핵물질, 핵무기를 모두 없애는 비핵화와 체제보장이다. 소소한 딜로 기약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이 마냥 늘어져서는 곤란하다. 속도가 필요하다. 미국 내 사정도 느긋하지는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4년의 반환점을 돌았는데 러시아 스캔들 특검, 민주당의 하원 장악 등으로 국내정치 상황이 곤궁한 처지다. 하노이에서 양측이 잠재울 스몰 딜보다 큰 합의를 공개해야 북·미 협상 회의론을 희석시키고, 국제사회의 지지를 늘려 협상의 동력을 키워나갈 수 있다. 이번에는 ‘악순환’ ‘실패의 역사’로 덧칠된 사반세기 북핵 협상을 마무리해야 한다.

 

<안홍욱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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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개성공단 가동중단 조치를 발표한 지 10일로 꼭 3년이 됐다. 2016년 이날 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대응해 개성공단 가동중단 조치를 발표했다. 북한은 다음날 공단 폐쇄와 남측 자산 동결, 남측 인원 추방으로 맞대응했다. 입주 기업인들이 공장건물을 뒤로한 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귀환하던 처연한 광경이 지금도 생생하다. 개성공단은 12년간 남북 경제협력의 성공 모델이자 남북 군사적 긴장완화의 결실이었다. 남과 북은 물론 국제사회도 남북 상생을 위한 모범적 사업으로 평가해왔다. 그런 개성공단의 폐쇄가 남북관계에 미친 충격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지난 3년간 박근혜 정부가 탄핵된 뒤 문재인 정부로 바뀌었고, 남북관계가 복원되면서 지난해 남북정상회담이 3차례나 열리는 변화가 있었다. 북·미 정상회담도 사상 처음으로 열리면서 한반도 정세가 대전환을 시작했다. 그럼에도 굳게 닫힌 개성공단의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기업인들이 시설 점검을 목적으로 방북하겠다고 정부에 7차례나 신청했지만 번번이 불허됐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오는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것으로 확정됐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중대 분수령이 될 이번 회담을 위해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지난 6~8일 평양을 방문해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와 실무협상을 벌였다. 정상회담 합의문에 들어갈 비핵화 이행 조치와 미국의 상응조치를 집중 조율했던 것으로 관측된다. 방북 뒤 서울로 귀환한 비건 대표는 이번 방북 협의가 “생산적이었다”고 평가하면서 김 대표와 추가로 만날 것이라고 했다.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서 개성공단 재가동이 미국의 상응조치 목록에 포함될지는 현재로선 예단하기 어렵다. 개성공단 폐쇄는 한국 정부의 독자조치로 시작했지만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매듭이 추가돼 풀기가 간단치 않은 점도 있다. 하지만 개성공단 재가동은 북한만큼이나 한국 정부와 기업인들도 희망하고 있음을 미국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북한도 미국이 개성공단을 제재대상에서 풀어줄 명분을 제공해야 한다.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내놓는 것이 그 명분이다. 개성공단의 닫혔던 문이 활짝 열리는 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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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협상이 사실상 마무리됐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이수혁 의원은 7일 당 정책조정회의에서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타결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며 “금년도분만 결정하기로 했고, 국방비 인상률 8.2%를 반영해 1조500억원 미만으로 합의돼 가는 과정에 있다”고 전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르면 이번 주말에 협상안에 가서명한다고 밝혔다. 결국 협상은 미국 측이 주장한 ‘협정 유효기간 1년안’을 한국이 수용하는 대신 금액은 처음 요구한 것보다 다소 후퇴한 선에서 타결된 셈이다.

 

이번 방위비 협상이 전례없이 난항을 겪은 이유는 미국에 있다. 미국은 분담금을 1.5~2배 높이라고 요구하더니 막판에 돌연 방침을 바꿨다. 최상부에서 내려온 지침이라며 협정의 적용기간을 1년으로 하자고 주장한 것이다. 당시 양국 대표단은 미국의 10년안과 한국의 3년안을 놓고 협의해 ‘5년안’으로 이미 의견을 모은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협상은 원점으로 돌아가 해를 넘겼다. 막판 한국 정부는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미국의 요구를 외면하기 어려워 ‘유효기간 1년’안에 동의한 것 같다. 그러나 한국민으로서는 결코 달갑지 않다.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 광장에서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을 비롯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한국과 미국 정부가 사실상 타결을 제10차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에 대하여 재협상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이번 협상은 처음부터 합리적인 주장을 기반으로 한 밀고 당기기가 아니었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안보 무임승차론’을 앞세워 밀어붙였다. 한국이 내는 분담금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더라도 결코 적지 않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방위비 분담금 비율은 0.068%로 일본 0.064%보다 높다. 주한미군 평택기지 신설비용의 90% 이상이 한국이 낸 분담금에서 나왔다. 미군은 해마다 한국이 내는 분담금을 다 쓰지도 못하는 데다 어디에 쓰는지도 불투명하다. 진정한 협상은 이런 불합리한 내용을 고치면서 액수를 조정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번 협상은 지난해 3월 시작해 꼬박 1년이 걸렸다. 이대로라면 4월 국회에서 비준을 받자마자 다시 내년도 협상에 나서야 한다. 미국이 1년 조건을 고집하는 것을 두고 국내에서는 한반도 상황에 따라, 또는 무기 구입 등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분담금을 활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된다. ‘유효기간 1년’ 조항을 그대로 두는 한 협상은 소모적일 수밖에 없다. 한·미동맹에 이롭지 않은 분담금 협상은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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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 1920. 앞의 숫자는 영국 여성이, 뒤의 숫자는 미국 여성이 참정권을 얻은 연도이다. 물론 거저 주어지지 않았다. 쟁취되었다. 20세기 초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가(서프러제트·Suffragette)들은 초기엔 평화적·합법적 캠페인에 주력했다. 그러나 번번이 배신만 당하자 ‘말이 아닌 행동’을 구호로 급진적 투쟁으로 전환한다. 1913년 에밀리 데이비슨은 경마대회에서 국왕의 경주마에 몸을 던진다. 그로부터 5년 후(1918년) 영국 여성들에게 투표권이 부여된다. 서프러제트의 물결은 대서양을 건너고, 1920년 미국 여성들도 투표권을 갖게 된다.

 

서프러제트가 주로 입었던 흰옷은 이후 ‘서프러제트 화이트’로 불리며 여성 참정권의 상징이 됐다. 영미권 여성들은 주요 정치적 행사 때 흰옷을 입는 것으로 연대의 메시지를 발신한다. 미국에서 1984년 주요 정당의 첫 여성 부통령 후보로 지명된 제랄딘 페라로, 2016년 주요 정당 첫 여성 대통령 후보가 된 힐러리 클린턴 모두 후보직을 공식 수락하며 흰색 정장을 입었다. 역대 최연소 하원의원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도 최근 의회 개원식에서 흰옷 차림으로 선서했다. 그는 “앞서 길을 닦은 여성들에게 존경을 표하기 위해서”라고 트위터에 밝혔다.

 

여성 참정권을 존중하는 의미로 흰옷을 입은 미국 민주당 여성의원들이 5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여성들이 의회에서 일하고 있다”고 말하자 환호하고 있다. 워싱턴 _ 로이터연합뉴스

 

5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국정연설에서도 ‘서프러제트 화이트’가 눈길을 끌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부터 초선의 오카시오-코르테스까지 민주당 여성 의원들이 일제히 흰옷을 입고 나타난 것이다. 모든 여성에 대한 연대를 표명하고, 성차별적 언행으로 악명높은 트럼프에 항의하는 뜻에서다. 연설 도중 이들은 대체로 냉랭했으나 트럼프가 미국 여성들의 성취에 대해 언급할 때는 기립박수를 하며 환호했다. 딘 필립스 하원의원 등 일부 남성 의원도 흰색 슈트나 리본으로 지지 의사를 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5일(현지시간) 워싱턴 연방의회에서 신년 국정연설을 하기에 앞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오른쪽)과 인사하는 모습을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지켜보고 있다. 워싱턴 _ 로이터연합뉴스

 

흥미로운 것은 검은색 옷차림의 멜라니아·이방카 트럼프와 달리 트럼프의 차녀 티파니가 흰옷을 입은 점이다. 소셜미디어에서는 그의 의도를 두고 갑론을박이 오갔다. “티파니 트럼프가 아버지의 심장마비를 유발하는 것 아니냐”는 글이 트위터에 올라올 정도였다. 트럼프는 딸의 ‘서프러제트 화이트’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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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시대 군비경쟁의 마침표를 찍은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이 무력화될 상황에 처했다. 미국이 러시아와 체결한 INF 조약의 이행을 중단하고 6개월 후 탈퇴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1일(현지시간) “러시아가 협정 준수로 복귀하지 않으면 조약은 종결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간 러시아가 9M729 순항미사일을 개발해 실전 배치하자 INF 위반이라며 폐기를 주장해온 반면 러시아는 이 미사일이 INF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맞서왔다. INF 존속을 위한 양국 간 협상이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서 미국의 ‘탈퇴 선언’으로 이어진 양상이다. 미국의 선언 배경에는 INF의 구속을 받지 않고 중거리 미사일 전력을 확장해온 중국을 겨냥한 측면도 다분하다. 러시아는 미국의 탈퇴 선언에 맞대응해 INF 참여 중단 방침을 밝힌 데 이어 5일 INF에서 금지하던 지상발사 미사일 시스템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INF 파기 시 우려되던 군비 경쟁이 현실화되는 재앙적 신호다.

 

INF는 냉전이 한창이던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체결했다. 사거리 500~1000㎞의 단거리와 1000~5500㎞의 중거리 지상발사 탄도·순항 미사일의 생산과 시험, 실전 배치를 전면 금지하는 게 조약의 뼈대다. INF에 따라 양국은 1991년까지 중·단거리 미사일 2692기를 없앴다. 냉전시대 군비경쟁의 종식을 이끌어낸 조약으로 평가받는 이유이다. INF는 이후에도 국제 군축 체제의 핵심으로 기능해 왔다. INF 폐기는 국제 안보질서의 근간인 무기 통제체제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미국의 탈퇴로 냉전의 망령을 가둬둔 INF 잠금장치가 풀리면 유럽과 아시아 등 국제사회에서 미사일 개발과 핵군비 경쟁이 재연될 공산이 커진다. 미국이 러시아에 대응해 유럽에 신규 미사일을 배치하고 중국 견제를 위해 동아시아에 무기를 증강하려 들 경우 이 지역의 안전과 평화는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미·중·러 간 군비 특히 미사일 개발 경쟁이 점화되고, 북핵 문제 해결에도 잠재적 위협 요소가 될 수 있다. INF 파기는 전 세계를 더 위험하게 만들 뿐이다. 미국의 탈퇴가 발효될 때까지 향후 6개월이 INF 조약을 유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의 창’이다. 미국과 러시아가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 파국을 막고 해결책을 도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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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2차 정상회담이 오는 27~28일 베트남에서 열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미 의회 국정연설을 통해 “대담하고 새로운 외교의 일환으로 한반도 평화를 향한 역사적인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며 2차 북·미 정상회담 일정을 밝혔다. 이와 동시에 서울에 와 있던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이날 미군기를 이용, 평양으로 직행해 카운터파트인 김혁철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와 정상회담 합의문 조율 등 실무협상에 나섰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왼쪽)가 6일 오전 서울 시내의 한 호텔에서 차를 타고 나오고 있다. 비건 대표는 이날 평양에서 협상 카운터파트인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작은 사진)와 만나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협상을 가졌다. 연합뉴스

 

북·미가 평양에서 실무협상을 벌이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사소한 부분에서까지 신경전을 벌이던 과거와 달리 장소에 구애받지 않을 정도로 양측 간 협상이 진전되고 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앞서 비건 대표는 최근 김 위원장이 지난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에게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시설 전체의 폐기를 약속했다고 공개하는 등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인정했다. 또 미측은 완강한 ‘선비핵화’에서 비핵화와 관계 정상화의 ‘동시적·병행적’ 이행으로 태도 변화를 보였다. 이견을 보여온 비핵화 방안에 대해 양측이 접점을 찾아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관건은 북한의 비핵화에 상응해 미국이 취할 조치이다. 북·미 간 연락사무소 설치 이외에 개성공단·금강산관광의 재개가 포함되느냐는 것이다. 당초 개성공단 폐쇄는 한국 정부의 독자 제재로 출발한 만큼 개성공단을 국제제재 대상에서 제외할 명분은 충분하다. 미국은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허용으로 대북 관계 개선 의지를 보일 필요가 있다. 다자협의를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평화체제는 북한이 원하는 체제 보장의 안전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도 만난다. 북·미, 미·중 정상회담에서 평화체제 논의의 물꼬를 트고 머지않은 미래에 남·북·미·중 정상이 종전을 선언한다면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 평화에 역사적인 일이 될 것이다.

 

6일 비건 대표가 탑승한 것으로 추정되는 비행기가 오산 미군기지에서 이륙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차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북한의 비핵화 및 북·미관계 개선에 대한 포괄적 합의에 초점을 맞췄다면 2차 회담의 목표는 그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 것이다. 북·미 정상이 2차 회담의 일정을 1박2일간으로 잡은 것도 그런 의지의 표현이다. 두 정상은 역지사지의 태도와 담대한 결단으로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체제’의 빅딜을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 한국 정부도 회담의 촉진자 역할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성과가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 그리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으로 이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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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북·미 정상회담이 구체화되면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회의론과 북핵 협상 무용론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북한은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론과 미국은 북한의 완전한 핵폐기 대신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동결해 미국의 안보위협만을 해소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북한의 태도에는 불분명한 부분이 있다.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와 한·미가 요구하는 ‘완전한 비핵화’가 같은 개념인지도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또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겠다는 지난해 9월 평양 공동선언은 주한미군 철수와 핵우산 철폐를 염두에 둔 표현이라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이런 의구심들은 북핵협상 무용론의 근거가 되고 있다.

 

과연 북한은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는가. 트럼프는 정말로 완전한 비핵화가 아닌 핵·미사일 동결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 단계에서는 누구도 확신을 갖고 단언하기 어려운 질문들이다. 하지만 북한의 핵폐기 의지가 불분명하고 트럼프의 속셈을 알 수 없다는 것이 대화와 협상을 중단해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비핵화는 북한에만 요구되는 의무가 아니다. 미국이 말하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라는 개념 속에는 북한의 핵무기, 핵물질, 장비를 제거하는 것뿐 아니라, 북한이 핵을 포기한 뒤 다시 핵무장의 길로 되돌아갈 수 없도록 만드는 것도 포함돼 있다.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게 핵을 폐기하는 것은 북한의 의무지만, 북한이 핵을 폐기한 뒤 다시 핵무장의 유혹이나 필요를 느끼지 않도록 안정적인 안보환경을 유지하는 것은 미·중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 관련국들의 의무다. 북한에 비핵화의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달라고 요구하려면 미국 역시 핵폐기 이후 안보환경을 해치지 않고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북한이 ‘한반도 비핵지대화’ ‘핵위협 제거’ 등의 표현에 집착하는 것은 미군철수와 핵우산 철폐를 요구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미국 핵전략자산이 한반도에 미치지 않도록 만드는 것만이 핵위협을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미국뿐 아니라 중국·러시아 등 핵강국의 틈바구니에 놓여 있다. 하지만 남과 북이 중·러의 핵무기를 생존과 직결된 안보위협이라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중·러와 정상적인 국교를 맺고 있고 우호적이고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북한이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가 되면 미국의 핵위협이 사라지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북한이 훗날에 대비해 미군철수와 핵우산 철폐를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두려는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실제로 그런 요구를 할 것인지는 미국과의 협상 전개와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미국이 완전한 비핵화가 아닌 핵·미사일 동결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도 섣부른 예단이다. 동결은 비핵화를 위해 거쳐야 하는 단계다. 미국의 최우선 목표가 자국에 대한 위협 해소인 것은 틀림없지만, 핵비확산체제에 대한 도전을 막아내고 국제질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도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목표다. 핵·미사일 동결이 이뤄진다면 한국은 미·중을 설득하고 한국과 같은 입장에 처한 일본과도 협력해 조속히 핵폐기 단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 한다.

 

북핵 위기 발발 이후 북한이 핵문제에서 보여준 완강한 태도와 반복되어온 협상 실패, 이에 따른 불신,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진전된 북한의 핵능력 등을 감안했을 때 북한의 의도를 의심하는 것은 합리적일 수 있다. 또한 동맹의 가치를 거침없이 훼손하고 제멋대로 일을 끌고나가는 트럼프의 돈키호테식 돌진에 불안감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북한은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도 그런 북한을 강하게 추궁할 생각이 없을 것이다. 큰일 났다. 이런 협상은 그만둬야 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북핵 협상은 이미 정해진 결말을 향해 걷는 여정이 아니라 결과를 만들어가는 능동적 과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북핵 협상을 지지하는 이유는 문재인 정부와 트럼프 행정부를 정치적으로 지지하기 때문이라기보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된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또한 문재인 정부와 트럼프 행정부의 접근법을 가급적 비판적으로 바라보려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혹여 잘못된 길로 갈 것을 우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성공을 위한 비판과 망하기를 바라는 저주는 구별되어야 한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