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에 해당되는 글 31건

  1. 2019.01.30 [특파원칼럼]트럼프의 ‘비핵화 프로세스’
  2. 2019.01.29 [조성렬의 신 한반도 비전]한·일관계의 새판 짜기가 필요하다
  3. 2019.01.29 [사설]한·일관계 악화일로인데 시정연설에서 한국 외면한 아베
  4. 2019.01.28 [동서남북인의 평화찾기]오키나와 정체성의 표상, 다마키 데니
  5. 2019.01.28 [사설]개성공단 기업인 자산점검 차원 방북도 못하나
  6. 2019.01.28 [시론]일본 초계기 도발과 그 이면의 의미
  7. 2019.01.25 [사설]비핵화협상 중인데 핵개발하자는 한국당 당권주자들
  8. 2019.01.25 [편집국에서]트럼프는 왜 ‘스타워스’를 쏘아올렸을까
  9. 2019.01.24 [사설]일본 초계기 또 위협비행 도발, 저의를 묻고 싶다
  10. 2019.01.23 [조호연 칼럼]초계기 논란, 고백도 참회도 없는 일본
  11. 2019.01.23 [조호연 칼럼]초계기 논란, 고백도 참회도 없는 일본
  12. 2019.01.23 일본의 ‘#미투’를 응원한다
  13. 2019.01.22 [송두율 칼럼]반북 강박장애
  14. 2019.01.22 [사설]‘레이더 증거’ 내놓지 않고 협의 중단 일방선언한 일본
  15. 2019.01.21 [정동칼럼]한국 안보의 딜레마
  16. 2019.01.21 [사설]2차 북·미 정상회담 성사, 항구적 평화 전환점 되길
  17. 2019.01.16 [기고]일본은 불필요한 갈등 만들지 말라
  18. 2019.01.16 [이대근 칼럼]‘맹목적 북핵 비관론’이라는 섞어찌개
  19. 2019.01.16 [사설]미 국무장관의 “미 국민 안전 우선” 발언 우려할 일 아니다
  20. 2019.01.16 미·중 스파이 전쟁

북·미 비핵화 대화가 본격화되면서 20년 전의 ‘페리 프로세스’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1998년 북한이 대포동 1호 미사일을 발사하자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을 대북정책조정관으로 임명해 대북정책을 재검토하도록 했다. 페리 전 장관은 1999년 10월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을 권고하는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보고서는 북한이 핵과 장거리미사일을 제거하면 북·미 관계를 정상화하고 경제제재를 완화하는 등 “북한에 기회를 제공하는 긍정적인 단계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최근 북·미 관계는 마치 페리 프로세스가 추진되던 20년 전의 데자뷔를 보는 듯하다. 2000년 10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조명록 국방위 부위원장이 사상 처음으로 워싱턴을 방문해 미국 대통령과 면담했다.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은 그 18년 후인 지난해 5월에 이어 지난 17~1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워싱턴을 찾아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다. 2000년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미국 각료 중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해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논의했다. 지난해 4월에는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 겸 국무장관 내정자가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로 북한을 찾았고 정상회담 준비가 본격화됐다.

 

페리 보고서는 현시점에서도 참고할 부분이 많다. 보고서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미사일 개발 중단이란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방법론으로 단계적이고 상호적인 접근법을 제안한다. 북·미가 역사적 정상회담으로 완전한 비핵화와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에 합의하고도 이행에선 한발도 나아가지 못한 것은 이 충고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선핵폐기론은 북·미 불신의 역사를 고려할 때 현실성 없는 항복 요구에 가깝다. 트럼프 정부가 2차 정상회담을 앞두고 비핵화와 상응조치의 단계적 이행을 수용한 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선택이다.

 

물론 시간이 흘렀고 상황도 달라졌다. 북한은 2017년 말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과거 핵개발 권리를 주장하는 북한과 협상했다면 이제는 핵 프로그램을 보유한 북한과 협상해야 한다. 그만큼 협상은 더 어려워졌다. 회의론이 커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이상론만 설파하며 상황 악화를 방치해서도 안된다. 미국인의 안전을 우선시해야 하는 트럼프 정부는 북한의 핵탄두를 미국 본토로 실어 나를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을 중단시키는 게 급선무다. 북한이 가진 핵무기를 봉쇄하고 억지하는 게 우선이다. 비현실적 기대는 협상을 망칠 뿐이다.

 

페리 프로세스는 제대로 시행도 못해보고 폐기됐다. 대선 패배로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은 무산됐다. 후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1년 3월 미국을 찾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북한과의 대화 중단을 통보했다. 그는 다음해 국정연설에서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페리 전 장관은 회고록에서 부시 대통령의 선택과 이어진 북한의 핵개발을 두고 “미국 역사상 가장 실패한 외교”라고 지적했다.

 

20년 만에 북한 비핵화와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한 외교전이 다시 시작됐다. 북한에 대한 군사적 옵션까지 경고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을 열고 ‘트럼프 프로세스’의 본격화를 알렸다. 정상국가를 바라는 북한이나 핵위협을 제거하려는 미국이나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기회의 창을 계속 열어두기 위해서는 2월 말~3월 초로 예상되는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프로세스를 돌이킬 수 없는 단계로 진입시켜야 한다. 이제는 말이 아닌 행동이 필요하다. 다행히 공화당 출신 대통령의 평화 프로세스는 민주당에서도 부정하기 어려운 만큼 생명력이 더 강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결국 트럼프 프로세스는 페리 프로세스의 실패를 극복할 수 있을까. 신뢰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희망을 버리지는 말자.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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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일 갈등이 치킨게임의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한·일 화해치유재단의 해산과 대법원의 징용공 배상 판결과 같은 역사문제에다가 일본 해상자위대 초계기의 우리 군함에 대한 위협 비행과 같은 안보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한·일 갈등은 양국의 국민감정까지 개재되어 있는 터라 어느 한쪽의 양보나 승리로 끝나기는 어렵다.

 

현재 진행 중인 한·일 갈등이 아베 총리가 자신이 추진하는 개헌을 위해 국내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이러한 해석은 지난해 9월 3연임에 성공한 아베 총리가 2020년까지 개헌을 완료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면서 설득력을 얻었다. 오는 7월 참의원 선거에서 3분의 2 의석을 지켜내 올해 내로 국회에서 개헌안을 발의한 뒤, 도쿄 하계올림픽의 열기가 고조됐을 때 국민투표에 부쳐 과반수를 얻어 통과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해석에 동의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아베 집권 이전인 민주당 노다 정권 때부터 한·일 갈등이 시작됐고, 근년에 들어와 일본 내에서 이른바 ‘리버럴’(친한파 지식인 그룹)이라고 불리는 일본 인사들도 반한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갈등이 발생하더라도 조용한 외교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왔지만, 최근 수년간의 한·일 갈등은 초기에 관리되지 못하고 오히려 증폭되면서 장기화되는 추세이다. 특히 일본은 과거사 문제를 경제문제와 결부시켜 왔고, 최근 들어서는 안보문제로까지 연계하고 있는 것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1월7일 (출처:경향신문DB)

 

과거사 문제를 경제 문제와 연계한 대표적인 예가 한·일 통화스와프 계약이다. 2011년 700억달러까지 늘었지만,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자 노다 정권은 만기 도달한 570억달러의 연장을 거부했고, 아베 정권은 2015년 2월 잔여금액도 만기가 도래하자 종료시켰다. 우리 측이 통화스와프 재개를 요청해 협상이 시작됐으나 2017년 1월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위안부 소녀상이 설치되자 이를 빌미로 중단시켰다. 지난해 9월 대법원의 징용공 배상 판결이 나오자 11월 일본 정부는 반도체 세척용 불산의 한국 수출을 제한했고, 최근 자민당 내에서 한국산 제품에 고율 관세를 매겨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렇다면 최근 수년간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해 강경 입장을 펴는 배경은 무엇인가? 일본의 대한 강경론의 근저에는 위기감이 자리 잡고 있다. 일본은 유일한 아시아국으로 활동하던 G7이 2008년부터 G20 정상회의로 확대되고 여기에 한국, 중국 등이 참가하면서 아시아 대표의 자리를 잃었다. 또한 일본은 2010년에 제2 경제대국의 자리를 중국에 내주었고, 2018년 한국은 5000만 인구에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가 넘는 ‘3050클럽’에 세계 7번째로 가입하게 되었다. 일본 국력이 중국에 역전된 데 이어 한국에도 바짝 추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제 아베 정권은 과거사 문제를 안보 문제로 연결시키면서 전후외교를 총결산하고 대국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일본의 군사 도발 양상들을 보면, 모두 일본이 주장해 온 배타적 경제수역(EEZ) 내에서 발생했다. 해상자위대가 스스로를 ‘일본해군(Japan Navy)’이라고 부른 것도 문제지만, 아직 확정되지도 않은 일본 주장의 EEZ와 인접한 동해와 이어도 근해에서 한국 함정에 대해 노골적으로 위협비행을 감행한 것은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 해상자위대의 우리 군함에 대한 근접 위협비행은 광활한 EEZ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려는 일본의 중장기 전략 속에서 나온 행동이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우리 정부는 역사와 안보 문제를 분리해 대응한다는 투트랙 대일외교 원칙을 천명해 왔다. 하지만 일본은 두 문제를 연계시키고 있어 현 아베 정권하에서는 우리 정부의 투트랙 외교가 적용되지 않고 있다. 더구나 올해 한·일관계 전망도 밝지 않다. 아베 정권의 개헌 야심에 더해, 올해는 3·1절과 임시정부 출범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고 일본에서는 5월1일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생존한 일왕이 퇴임하고 새로운 일왕이 등극하게 된다. 자칫 한·일 양국의 민족주의가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이제 정부는 과감하게 지금까지 견지해 온 대일 투트랙 외교를 재검토하고 변화된 정세에 맞게 한·일관계의 재정립을 위해 새로운 대일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현재 일본은 중장기 전략하에서 외교적 수단뿐만 아니라 경제, 안보적 수단을 동원해 우리를 압박해 오고 있다. 우리 정부도 한·일관계를 단지 외교적으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경제와 안보 등 다측면에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범정부적인 대일외교 종합대책 TF를 만들어 중장기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이제 한·일관계의 새판짜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조성렬 | 전 국가안보전략연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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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북한과의 불행한 과거를 청산해 국교를 정상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겠다”고 밝혔다. 반면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레이더-초계기 저공비행 갈등’으로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한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북한과 관계 개선을 하겠다는 아베 총리의 구상은 평가한다. 하지만 한·일 양국 간 갈등을 해소하려는 노력은 고사하고 한국을 일부러 무시한 것은 온당한 처사가 아니다.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정기국회 첫날인 28일 중의원에서 올해 첫 국회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도쿄 _ 로이터연합뉴스

 

아베 총리는 지난해 한국에 대해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가까운 이웃’이라는 표현을 생략한 채 짧게만 언급해 홀대했다는 말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북한과의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고 국교 정상화를 목표로 하기 위해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도 긴밀히 연대한다”고만 언급했다. 중동 국가들에 대한 적극적인 외교와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원조까지 언급해 놓고 정작 이웃나라인 한국에 대해서는 원론적인 입장조차 밝히지 않은 것이다. 의도적으로 한국을 무시함으로써 일본 내 보수층의 반한 감정을 건드리겠다는 심산이 보인다.

 

한·일관계가 좋을 때라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양국 관계는 군사교류를 올스톱하는 최악의 국면으로 가고 있다. 해군은 다음달로 예정했던 1함대사령관의 일본 해상자위대 기지 방문 계획을 취소했고, 이에 맞서 일본 방위성도 오는 4월 해상자위대 함정의 부산항 입항을 취소하는 쪽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간다면 오는 8월 연장 여부를 결정하는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에 부정적 기류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때 일본 총리가 한 해의 시정 방향을 밝히는 연설에서 양국 갈등을 해소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은 채 의도적으로 외면한 것은 무책임하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4월 지방선거와 7월 참의원 선거를 겨냥한 것이라는 의심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한·일관계가 악화된 상태에서는 북한과의 수교도 어렵다. 과거사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사죄는 북·일 수교를 위한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양국이 지금처럼 일일이 맞대응하는 방식으로는 갈등 해소가 어렵다. 양국 모두 차분하고 절제된 행동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28일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를 만난 것은 적절했다. 해군 제독으로 미군 태평양사령관을 역임한 해리스 대사를 통해 한국의 입장을 전달할 필요가 있다. 한·일 양국은 미국에 중재를 맡기고 추가적인 대응을 멈춰야 한다. 그리고 이 갈등이 정치권으로 더 이상 비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양국 정치권의 냉정한 대응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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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의 시민운동단체 ‘한몸평화’와 함께 오키나와에 다녀왔다. 기행의 막바지에 이에지마(伊江島)를 찾았다. 오키나와 북부의 모토부(本部)항에서 뱃길로 30분, 10㎞도 안되는 거리다. 둘레 18㎞, 인구 4500명의 땅콩깍지 모양의 조그만 섬에는 2차대전 당시 동양 최대의 군용비행장이 있었으며 섬의 최고봉, 172m의 성산을 둘러싼 공방에서 일본 군민 3500명이 죽고, 1120명의 미군 사상자가 나오는 격전이 벌어졌다. 섬을 점령한 미군은 비행장을 확장하여 훈련장으로 사용했다가 6·25전쟁이 터지자, 북한을 겨냥한 모의핵폭탄 투하훈련장으로 이용했다.

 

섬의 절반(지금은 20%)이 군용지로 강제 수용되어 주민들은 2년 동안 수용소 생활을 하다 집도 땅도 빼앗기고 내동댕이쳐졌다. 농민들은 1954년부터 토지의 반환과 보상, 미군의 폭력 반대를 외치고 목숨을 건 투쟁에 나섰다. 그때부터 수백명의 남녀노소는 섬을 나가서 오키나와의 마을마다 걸식하면서 미군의 포악과 농민들의 곤경을 호소하는 ‘거지행진’을 벌였다. 같은 처지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켜 전 오키나와를 뒤흔드는 ‘시마구루미’(온 섬, All Okinawa) 투쟁으로 발전하니, 1958년 미군은 토지사용료의 대폭 인상을 약속하게 되었다.

 

지난해 10월1일 열린 일본 오키나와현 지사 선거에서 다마키 데니 전 중의원 의원이 당선된 후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시마구루미’ 투쟁이 다시 주목을 받은 것은 2014년 당시, 자민당 소속 나하시장이던 오나가 다카시(翁長 雄志)가 당의 정책을 거슬러 헤노코(野古) 기지 건설 반대를 표명하여 출당되면서도, 범야권 후보로 현(縣)지사에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오나가는 “이데올로기보다 아이덴티티”라는 구호로 초당파적 선거태세를 만들어 ‘All Okinawa’라고 불렀다. 일본에 의한 오랜 오키나와 지배와 차별, 그리고 일본 면적의 0.6%에 지나지 않는 오키나와에 주일미군기지의 70%가 몰려있는 부조리를 권력과 돈으로 밀어붙이려는 아베 정권의 오만은 오키나와 사람들의 비위를 거슬러 그들을 각성시켰다. 그래서 오나가 지사는 아베의 헤노코 기지 건설 강행에 완강하게 맞서다가, 작년 8월에 갑자기 암으로 죽었는데, 9월에 다마키 데니(Deny 玉城)라는 이색적 인물이 현 지사로 뽑혔다.

 

그는 미 해병과 이에지마 출신의 아메라시안(미국인과의 혼혈아) 여성 사이에 태어났다. 다마키는 미국으로 가버린 아버지의 이름도 주소도 모른다. 그는 고교를 졸업하고, 라디오의 MC, 프로듀서로 일하면서 경묘한 우치나구치(오키나와 말)로 노인들의 인기를 모았다. 2009년에 민주당 후보로 중의원에 출마하여 내리 4선을 했는데, 소수정당 소속의 그가 국회의원이나 현 지사가 된 것은 다분히 운이 작용했지만, 미군병사를 생물학적 아버지로 둔 가난한 미혼모의 아이가 지사가 된 것은 미군이 버리고 간 아메라시안 아이들이나, 미군기지에 성적 착취를 당하며 사는 여성들이 신기하지 않은, 오키나와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이번 지사선거에서 다마키는 39만6632표를 얻어 자민당 후보에 비해 8만표가 많은, 역대 최대 표차로 승리했다. 선거 출정식을 벽지인 어머니의 고향 이에지마에서 연 것은 정체성에 대한 그의 집착을 시사해준다. 그의 승리요인에는 요즘 보수화되어 가는 젊은이들의 높은 지지율도 있다고 한다. 노래 부르고 춤추고 쉽게 말하는 다마키는 권위에 얽매이지 않는 젊은이들의 호감과 지지를 받았다. 오만불손한 아베에게 감연히 맞서는 그 모습은 포스트모던적인 동아시아의 표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오키나와가 아베의 과거회귀 구상에 걸림돌로 버티고 있다. 오키나와는 태평양의 요석(Key Stone)으로 미국의 냉전 최전선의 구실을 해왔다. 한국도 그 미국의 동아시아 군사지배체제의 구도 속에 위치해 왔다. 바로 그 ‘요석’이 다마키라는 표상을 얻어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아베의 뒤통수를 치려 하고 있으며, 미국의 동아시아 군사지배에 심각한 균열을 내고 있다. 오키나와는 우리 문제이기도 하다.

 

<서승 우석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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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기업인들의 방북 승인이 또다시 유보됐다. 이번이 벌써 7번째다. 통일부는 지난 25일 개성공단기업협회에 공문을 보내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방북 승인을 유보한다는 방침을 통지했다. 정부는 “관계부처 간 협의, 국제사회의 이해 과정뿐 아니라 북한과도 구체적인 협의가 필요하다”며 “여건들이 다 충족되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기업인들은 시설 점검을 위해 1사1인씩 모두 179명이 하루 일정으로 방북하겠다는 신청서를 지난 9일 제출한 바 있다.

 

정부는 한·미 워킹그룹 등 채널을 통해 미국과 기업인 방북에 대한 내용을 상세히 공유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과의 공감대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는 뜻이냐’는 질문에 정부 당국자는 답변을 피했지만 미국이 북·미 협상을 앞두고 기업인들의 방북을 탐탁지 않게 여겼을 개연성은 있다. 개성공단 문제는 북·미 협상의 핵심 의제 중 하나이고, 이르면 오는 2월 말로 예상되는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재가동 문제가 협상수단이 될 가능성이 있다.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아름드리홀에서 개성공단기업비대위 주최로 열린 개성공장 점검 위한 방북승인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우철훈 기자

 

하지만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방북은 어떤 전략물자 반입도 동반하지 않는 ‘맨손 방북’이다. 이들은 개성공단 재가동이 북·미 협상 진전과 연동돼 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만큼 방북 목적을 벗어나는 행동을 할 가능성도 낮다. 그렇다면 사실상 방북 승인의 키를 쥐고 있는 미국이 지나치게 경직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런 미국에 한국 정부도 소극적인 태도로 동조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스럽다.

 

미국의 경직된 태도는 최근 독감 치료제 타미플루의 대북 지원 문제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한·미는 지난해 말 워킹그룹 회의에서 타미플루 대북 제공에 합의했다. 정부는 이에 따라 약품 전달을 준비해왔으나, 미국이 약품 수송차량이 대북 제재에 저촉될 가능성을 문제 삼으면서 약품 전달이 지연되고 있다는 말이 돈다. 사실이라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타미플루 제공은 겨울철이 지나면 실효성이 떨어진다.

 

미국과 국제사회는 북한 핵·미사일에 대응해 대북 제재를 견고하게 구축해왔다. 남북교류도 제재의 틀을 준수하면서 진행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도적 지원이나 제재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남북교류에 대해서조차 강경 대응하는 것이 무슨 실익이 있는지 미국에 묻고 싶다. 한·미 양국은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방북을 조속히 허용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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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초계기 도발이 상궤를 넘어가고 있다. 우리 정부와 군은 침착하게 대응했다. 처음부터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비화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대응의 수준도 낮추었다. 그간 우리군과 일본 자위대는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 등 현안에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에 유엔사 후방기지가 위치하고 있다는 점도 많이 고려한 듯 하다. 그러나 그 이후의 계속된 도발로 우리 정부와 군의 침착한 대응은 의미가 무색해지고 말았다. 첫번째 사건을 우발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이후 세 번의 도발은 명백하게 의도적이다.

 

문제는 일본의 의도적인 도발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이다. 일본의 의도적인 도발을 한 것은 그 뒤에 벌어질 수 있는 군사적인 충돌까지 고려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 정부와 군은 일본의 계속되는 도발이 군사적 충돌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듯하다. 우리 군이 사격통제 레이다를 가동했다면 일본은 이를 빌미로 우리 해군함정을 공격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후 세 번의 도발에 우리 함정을 무방비로 노출시킨 것은 지나치게 안이한 대응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사진 가운데)이 지난 26일 해군 초계기 조종사용 가죽점퍼를 입고 부산 해군작전사령부에 정착 중인 세종대왕함 전투통제실을 방문해 일본 해상초계기의 근접 위협비행에 강력한 대응을 지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사건은 기본적으로 외교적으로 대응해야 할 일이었다. 이번 도발이 징용배상이나 위안부 문제 등과 같이 최근의 불편한 한일 관계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것이던, 아베 정권이 국내 정치적 지지를 올리기 위한 것이던 간에 모두 정치적 문제이지 군사적으로 대응해야 할 사안은 아니다. 일부에서는 일본 자위대가 우리 해군의 사격통제 레이다 주파수를 획득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런 주장은 설득력이 별로 없을 듯 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확보한 주파수를 공개한다면 누가 이것을 믿을 것인가. 이번 사건의 본질은 일본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군사적인 방법을 이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군사적으로 대응한다면 그것은 일본의 의도에 말려드는 것이다. 

 

일본이 군사 실무급 문제 해결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알려진 싱가포르 회담 이후에는, 즉각 외교 당국이 개입하여 한일 간의 대화는 물론이고 유엔 등 국제사회에 사건의 본질을 밝히고 이같은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국제사회의 주의를 환기시켰어야 했다. 지금처럼 일본 방위성 장관이 초계기 부대를 방문해서 격려하고, 우리 국방장관이 해군 작전사령부를 방문하여 강력 대응하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이다. 정말 강력 대응해서 일전을 벌일 준비가 되어 있으며 각오가 되어 있는지 묻고 싶다. 만일 교전이 벌어져서 우리 장병들의 인명 손실이 생기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무엇보다 지금의 상황이 군사적인 충돌로 나가야 할 정도의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번 일본의 초계기 도발로 인해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발생했다. 먼저 한국군의 평시작전권 행사와 관련된 문제이다. 이제까지 한미동맹은 북한의 남침이나 도발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국군의 평시 작전권도 유엔사령부의 정전시 교전규칙에 따르게 되어 있었다. 이제까지 미측은 어떠한 경우에도 한국군이 유엔사의 정전시 교전규칙에서 벗어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나 만일 한일 간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게 된다면 우리 군은 유엔사의 정전시 교전규칙에 얽매일 수 없는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그럴 경우 한국 공군과 해군은 독자적 교전규칙을 수립해서 적용해야 한다. 당연히 평시작전권의 행사를 위한 사령부의 역할과 성격도 달라지게 될 것이다. 특히 최근 중국의 공세적 행동까지 계속되는 상황은 어떤 방식으로든 한미동맹의 성격을 바꾸어 놓을 가능성이 크다. 

 

둘째로 한미동맹의 성격과 역할에 관한 문제이다. 미국은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을 동시에 유지하고 있다. 비록 한국과 일본이 직접적인 동맹을 맺지는 않고 있지만 미국의 동맹구조 때문에 한·미·일은 잠정적인 군사동맹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만일 일본이 군사적 도발을 계속한다면 그동안 유지되어 오던 동북아 지역의 한미일 관계의 변화가 불가피할 수도 있다. 그동안 미국은 한국과 일본 간의 문제에 대해서는 개입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입장이었다. 한·일 간의 갈등이 역사문제일 경우 미국이 개입하지 않는 정책이 옳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일 간 군사적인 충돌의 가능성에 관한 문제라면 그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미국은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한·일 간의 관계에 분명한 입장을 취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일본은 너무 나가버렸다. 국내적이든 국제적이든 잘못한 것은 책임을 져야 한다. 일본이 이번 사건으로 우리가 처한 안보현실을 분명하게 깨우쳐 준 것을 고맙게 생각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한설 예비역 준장·전 육군군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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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당권 도전에 나선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핵개발 논의를 촉발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오 전 시장은 자유한국당 북핵 의원모임이 지난 23일 주최한 세미나에서 “핵개발에 대한 심층적 논의를 촉발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그는 “한국이 그런 움직임을 보인다는 뉴스가 전 세계로 타전되면 미국과 중국의 셈법이 복잡해질 것”이라면서 “외교적 부담이 되는 것을 알지만 야당발로 시작됐다는 점만으로 전략적 이익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참으로 뜬금없고 무책임한 주장이다. 미국과 중국은 물론 국제사회가 북한 비핵화에 뜻을 모으고 있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조차 비핵화 의지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한국 제1야당 대표 경선에 나선 인사가 핵개발을 주장하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하다. 더구나 비핵화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돼 성과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시점 아닌가.  


한국의 핵개발은 명분도, 현실성도, 실익도 없다. 당장 북한 비핵화를 주장할 명분이 사라질 뿐 아니라 우리도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를 받게 될 수 있다. 수출주도형 국가인 한국이 제재를 받게 되면 경제가 쓰나미를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 미국이 주도하는 ‘핵확산 방지’를 한국이 거스르게 된다면 한국당이 그토록 중시하는 한·미동맹도 파탄을 맞을 수 있다.


오 전 시장은 “외교안보에 전략적 도움이 되는 선택지”라고 했지만, 한반도 핵문제를 둘러싼 국제정치의 냉엄한 현실에 비춰 본다면 너무도 순진한 주장일 뿐이다.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핵개발’ 주장을 하루속히 거둬들이는 것이 온당한 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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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 레이건과 트럼프는 닮은 점이 많다. 우선 역대 1, 2위 고령 대통령이다. 또 워싱턴 정치와는 거리가 먼 아웃사이더 출신이다. 특히 트럼프는 선출직 경험이 없는 첫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돼서도 옛 직업의 엔터테인먼트 능력을 활용한다는 점도 같다. 하나 더 든다면 두 사람 모두 핵전쟁 두려움에 사로잡혀왔다는 점일 게다. 레이건이 옛 소련과의 핵전쟁 공포에 시달렸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나온 게 ‘스타워스’로 불리는 전략방위구상(SDI)이다. ‘우주에 탐지와 요격을 위한 센서와 무기를 배치해 적의 미사일을 발사 후 상승단계에서 파괴한다’는 계획은 매혹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천문학적 비용이 들고, 기술적으로 실현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레이건의 구상은 옛 소련의 붕괴로 중단됐다. 하지만 그의 후임자들은 스타워스 유혹에서 못 벗어났다. 빌 클린턴 행정부 때 시작해 8년 주기로 발표되는 핵태세점검보고서(NPR)는 그 방증이다. 이들은 우주 요격체는 삭제했지만 선제타격이나 적 공격에 대한 핵무기 보복은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누구보다도 레이건을 닮고 싶어 한 트럼프도 예외가 아니다. 취임 두 돌을 사흘 앞둔 지난 17일 그는 ‘우주의 전장화’를 선언했다. 새 미사일방어검토보고서(MDR)를 발표하면서 트럼프는 “우리는 우주가 우주군이 이끄는 새로운 전투영역임을 인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1983년 스타워스를 떠올린다”고 했다. MDR은 트럼프의 스타워스 부활 선언인 셈이다. 젊은 시절부터 핵 공포에 사로잡혀온 그는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핵 집착증을 보여왔다. 미국에서만 아니면 핵전쟁이 나도 괜찮다고까지 했다. 우주의 전장화 선언에 앞서 지난해 6월에는 우주군 창설 계획을 밝혔다. 실현되면 육·해·공군, 해병대, 해안경비대에 이은 6번째 미군이 된다. 우주군 창설과 우주의 전장화는 우주의 평화적 이용을 선언한 1967년 우주선언(OST)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트럼프의 스타워스 부활 선언은 뜬금없어 보이지만 전략적 계산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 몇 가지가 달라졌다. 첫 번째가 지난해 10월 중거리핵전력(INF)협정 파기 발언이다. 1987년 미·소 정상은 우여곡절 끝에 INF 협정을 체결했다. 사거리 500∼5500㎞인 중·단거리 탄도 및 순항미사일의 생산·실험·배치의 전면 금지와 기존 무기 폐기가 핵심으로, 냉전시대의 군비경쟁을 종식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트럼프는 파기 이유로 러시아의 합의 위반과 중국의 위협을 들었지만 신냉전 우려를 낳았다. 두 번째는 최근 시리아 철군과 아프가니스탄 주둔군 감축, 세계 경찰 노릇 중단 선언 등 일련의 전쟁 중단 움직임이다. 이는 트럼프가 오랫동안 비판했던 역대 행정부의 ‘끝없는 전쟁’에서 벗어나 반개입주의를 실천에 옮기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집권 3년차 진입을 앞두고 벌어진 이 같은 변화는 무엇을 의미할까. 이 대목에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트럼프 집권 상반기를 상징하는 ‘어른들의 축’의 퇴진이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마이크 폼페이오로,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전보좌관은 존 볼턴으로, 존 켈리 비서실장은 믹 멀베이니 대행으로 바뀌었다. 짐 매티스 국방장관도 2월 말이면 물러난다. 나이 든 어린아이에 비유되던 트럼프와 달리 이들은 끝없는 전쟁의 지지자들이다. 이들은 트럼프에게 군대 증강과 국방예산 확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들의 퇴진은 트럼프의 홀로서기를 의미할 수 있다.


스타워스의 부활은 지난 2년간 ‘후견’ 기간을 보낸 트럼프의 고민의 결과가 아닐까. 그는 ‘전쟁은 평화’라는 조지 오웰식 현실 인식 아래 중국과 러시아를 굴복시키고 싶어 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그들의 군비경쟁을 부추겨 세계를 핵전쟁 위험 속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 트럼프는 스타워스 구상을 발표하며 “향후 예산은 우주에 기반한 미사일방어 기술에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 의회는 2019년 미사일방어(MD) 예산으로 103억달러를 승인했다. 트럼프의 스타워스 실행 시 그 예산은 급등할 게 뻔하다. 트럼프 집권 이후 국방예산은 그 이전보다 이미 1330억달러 (23%)나 늘었다. MD는 국방부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된 사기극이라는 말이 있다. 스타워스가 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트럼프의 일련의 전쟁 중단 움직임은 이를 위한 선제적 조치일 수 있다.


이 글이 지면에 실리는 날 새벽이면 ‘운명의날 시계’가 조정된다. 지금은 핵전쟁에 의한 지구종말을 의미하는 자정 2분 전에 멈춰 있다. 트럼프가 쏘아올린 스타워스가 운명의날 시곗바늘을 자정 쪽으로 더 다가가게 할까 우려된다.


<조찬제 국제·기획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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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해상자위대의 P-3 초계기가 23일 오후 2시쯤 남해 이어도 인근 해상에서 작전 중인 한국 구축함에 접근해 위협비행했다. 서욱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은 이날 “일 초계기는 해군함정을 명확하게 식별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거리 약 540m, 고도 약 60~70m로 저고도 근접 위협비행을 했다”면서 “이를 명백한 도발행위로 간주하며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이어 “또다시 이러한 행위가 반복될 경우 강력하게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일본이 지난달 20일 동해에서 광개토대왕함이 자국 초계기를 향해 레이더를 쐈다고 논란을 일으킨 데 이어 또다시 저공비행 도발을 가해온 것이다. 


이어도 인근 해역은 한·일 양국 해군의 작전수역이 겹치는 곳이다. 비록 양국의 영해 밖이라 하더라도 함정에 지나치게 근접비행하는 것은 위협이다. 일본은 이날 광개토대왕함에 150m까지 근접한 것보다 더 낮은 60~70m 고도까지 초근접비행을 했다. 초계기는 20여차례의 경고 통신도 무시한 채 공격모의 비행까지 했다. 더구나 이런 저고도 위협비행은 지난해 12월 이후 4번째다. 저공비행이 의도적인 행위임을 뒷받침한다. 합참이 이날 “일본 정부에 재발방지를 요청하였음에도 또다시 저고도 근접 위협비행을 한 것은 우방국 함정에 대한 명백한 도발행위”라고 평가한 것은 온당하다. 일본은 지난 21일 레이더 논란에 대한 협의를 일방적으로 중단하면서 ‘한·미·일 3국 간 군사협조는 이어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래 놓고 이틀 뒤 저공비행으로 도발한 것은 이율배반이다. 이날은 한·일 외교장관이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만나는 날이기도 했다. 어디까지 가자는 심산인지 일본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10월 강제징용자에 대한 대법원의 배상 판결 후 일본이 대응기조를 바꾼 듯하다. 하지만 징용자 배상 판결은 과거 한일협정이 개인의 권리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법원의 독립적인 판단이다. 삼권분립이 엄연한 민주국가의 정부라면 판결을 존중해야 한다. 그런데 일본은 이를 이성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한국이 국가 간 약속을 일방적으로 뒤집은 것인 양 주장하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가 한·일관계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할 뿐이다. 일본은 추가 도발을 멈추고 레이더 발사 사실 확인에 진지하게 응해야 한다. 일본의 자중을 요구한다. 군은 일본의 도발행위에 엄정하게 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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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21일 돌연 ‘초계기 위협비행-레이더 조준 갈등’에서 ‘휴전’을 선포했다. 일방적으로 협의 중단을 선언한 것이다. 사태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자신의 주장에 허점이 보이자 교묘한 언설로 책임을 한국에 떠넘기며 봉합해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일본 측은 협의 중단에 대해 “한국 측이 객관적인 사실을 인정할 자세를 보이지 않아 협의를 계속해도 진실규명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를 댔다. ‘팩트 체크’가 필요하다.


한국 군함의 일본 초계기 레이더 조준은 객관적 사실인가. 아니다. 객관적 사실은 충분한 증거가 뒷받침되고, 그것이 일반적으로 인정받아야 성립된다. 일본은 사태 현장을 담은 동영상과 초계기의 전자파 접촉음을 증거로 제시했지만 둘 다 사실 입증과는 거리가 멀었다. 동영상에는 “한국 군함에서 추적 레이더가 나오고 있다”는 초계기 승무원 발언과 “우리를 향하는 한국의 추적 레이더를 감지했다”는 초계기 기장의 발언이 나온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는 제시되지 않았다. 객관적 사실로 인정할 수 없다. 일본 측이 추가 증거로 제시한 초계기의 전자파 접촉음 역시 탐지일지, 방위각, 전자파 특성 등이 첨부돼 있지 않다. 그러니 “실체를 알 수 없는 기계음일 뿐”(국방부 평가)일 수밖에 없다. 일본이 객관적 사실이 아닌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문제 삼는 것은 억지다. 


국방부가 4일 한일 '레이더 갈등' 일본 측 주장을 반박하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했다. 사진은 조난 선박 구조작전 중인 광개토대왕함 상공에 저고도로 진입한 일본 초계기 모습(노란 원)으로 해경 촬영 영상이다. 연합뉴스


그렇다면 일본 초계기의 한국 군함에 대한 위협비행은 어떤가. 일본 측 동영상을 보면 초계기는 한국 군함의 옆구리 쪽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는 전형적인 공격적 기동으로, 명백한 도발행위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과거 쿠바 해상봉쇄 때 미군기가 러시아 선박의 측면으로 파고들며 위협하는 사진을 연상시킨다. 공격의사가 없다면 선박과 나란히 비행하면 된다. 초계기가 군함으로부터 500m 거리에서 150m 고도로 근접비행한 것부터 결코 정상적인 초계활동이라고 볼 수 없다. 일본은 위협비행이 아니라고 하지만 어선 구조활동 중인 군함에 왜 그렇게 가까이, 그리고 측면에서 접근하는 비행을 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고 있다. 


사실 당시 초계기의 활동 전체가 의문스럽다. 일본 측 동영상을 보면 초계기가 위협비행을 하면서 육안으로 군함의 어선 구조 상황을 파악한 승무원이 특이사항이 없다고 복창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다면 초계기의 임무는 끝난 것이니 귀환하면 될 터인데, 선회한 뒤 다시 군함 쪽으로 다가와 사진을 찍는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촌각을 다투는 어선 구조작업 중인 군함을 자극해야 할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알고 싶다. 오히려 일본 초계기가 북한 어선 구조활동을 도왔다면 한국과 갈등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도 좋은 신호가 되었을 것이라 본다. 당장 구체적인 성과로 나타나지 않더라도 북한의 신뢰 기억의 창고에 저장될 것만은 분명한 일이었다. 물론 다 지나간 이야기다. 


애초 이번 사태는 양국이 실무 차원에서 사실관계를 규명하고 그에 따라 뒤처리를 하면 그만일 사안이었다. 일본이 아베 신조 총리까지 나서서 문제를 키운 것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사실관계 확인은 소홀히 한 채 국내외를 상대로 여론전만 벌였다. 확인되지 않은 일방적 주장을 사실인 것처럼 호도해 국제사회에 공표하고, 미국에 중재를 요청했다가 거부당하기도 했다. 한국은 양국 전문가가 참여한 가운데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검증을 하자고 요구했지만 일본은 응하지 않았다. 문제 해결보다 갈등 조장을 목적으로 한 것 아닌가 의심스럽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감소하자 새로운 군사적 위협을 제기해 지지층을 결집하고 군사력 증강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화해·치유재단 해산과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불만이 이번 사건에 투영됐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한국인들이 이번 사태에서 운요호 사건의 그림자를 떠올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1875년 일본 군함 운요호는 측량 명목으로 조선 해안에 침투해 조선군의 공격을 유도한 뒤 이를 빌미로 불평등한 강화도조약을 맺었다. 현대의 민주국가 일본은 제국주의 일본과 전혀 다르지만 트집과 억지로 주변국을 흔드는 행태는 놀랍게도 닮아 있다. 일본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축소지향의 일본인>의 저자 이어령은 일본에는 고백은 있으되 참회는 없다고 말했다. 지금 일본에서는 고백조차도 찾아보기 힘들다. 일본은 이번에 신뢰 자산을 크게 잃었다. 향후 갈등이 불거졌을 때 일본이 순리대로 대응할 것이라고 누구도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보수 우경화와는 별개의 문제다. 경제대국 일본의 위상은 갈수록 작아지고 있다.


<조호연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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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21일 돌연 ‘초계기 위협비행-레이더 조준 갈등’에서 ‘휴전’을 선포했다. 일방적으로 협의 중단을 선언한 것이다. 사태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자신의 주장에 허점이 보이자 교묘한 언설로 책임을 한국에 떠넘기며 봉합해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일본 측은 협의 중단에 대해 “한국 측이 객관적인 사실을 인정할 자세를 보이지 않아 협의를 계속해도 진실규명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를 댔다. ‘팩트 체크’가 필요하다.


한국 군함의 일본 초계기 레이더 조준은 객관적 사실인가. 아니다. 객관적 사실은 충분한 증거가 뒷받침되고, 그것이 일반적으로 인정받아야 성립된다. 일본은 사태 현장을 담은 동영상과 초계기의 전자파 접촉음을 증거로 제시했지만 둘 다 사실 입증과는 거리가 멀었다. 동영상에는 “한국 군함에서 추적 레이더가 나오고 있다”는 초계기 승무원 발언과 “우리를 향하는 한국의 추적 레이더를 감지했다”는 초계기 기장의 발언이 나온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는 제시되지 않았다. 객관적 사실로 인정할 수 없다. 일본 측이 추가 증거로 제시한 초계기의 전자파 접촉음 역시 탐지일지, 방위각, 전자파 특성 등이 첨부돼 있지 않다. 그러니 “실체를 알 수 없는 기계음일 뿐”(국방부 평가)일 수밖에 없다. 일본이 객관적 사실이 아닌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문제 삼는 것은 억지다. 


그렇다면 일본 초계기의 한국 군함에 대한 위협비행은 어떤가. 일본 측 동영상을 보면 초계기는 한국 군함의 옆구리 쪽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는 전형적인 공격적 기동으로, 명백한 도발행위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과거 쿠바 해상봉쇄 때 미군기가 러시아 선박의 측면으로 파고들며 위협하는 사진을 연상시킨다. 공격의사가 없다면 선박과 나란히 비행하면 된다. 초계기가 군함으로부터 500m 거리에서 150m 고도로 근접비행한 것부터 결코 정상적인 초계활동이라고 볼 수 없다. 일본은 위협비행이 아니라고 하지만 어선 구조활동 중인 군함에 왜 그렇게 가까이, 그리고 측면에서 접근하는 비행을 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고 있다. 


사실 당시 초계기의 활동 전체가 의문스럽다. 일본 측 동영상을 보면 초계기가 위협비행을 하면서 육안으로 군함의 어선 구조 상황을 파악한 승무원이 특이사항이 없다고 복창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다면 초계기의 임무는 끝난 것이니 귀환하면 될 터인데, 선회한 뒤 다시 군함 쪽으로 다가와 사진을 찍는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촌각을 다투는 어선 구조작업 중인 군함을 자극해야 할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알고 싶다. 오히려 일본 초계기가 북한 어선 구조활동을 도왔다면 한국과 갈등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도 좋은 신호가 되었을 것이라 본다. 당장 구체적인 성과로 나타나지 않더라도 북한의 신뢰 기억의 창고에 저장될 것만은 분명한 일이었다. 물론 다 지나간 이야기다. 


애초 이번 사태는 양국이 실무 차원에서 사실관계를 규명하고 그에 따라 뒤처리를 하면 그만일 사안이었다. 일본이 아베 신조 총리까지 나서서 문제를 키운 것이다. 그러면서도 정작 사실관계 확인은 소홀히 한 채 국내외를 상대로 여론전만 벌였다. 확인되지 않은 일방적 주장을 사실인 것처럼 호도해 국제사회에 공표하고, 미국에 중재를 요청했다가 거부당하기도 했다. 한국은 양국 전문가가 참여한 가운데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검증을 하자고 요구했지만 일본은 응하지 않았다. 문제 해결보다 갈등 조장을 목적으로 한 것 아닌가 의심스럽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감소하자 새로운 군사적 위협을 제기해 지지층을 결집하고 군사력 증강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화해·치유재단 해산과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불만이 이번 사건에 투영됐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한국인들이 이번 사태에서 운요호 사건의 그림자를 떠올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1875년 일본 군함 운요호는 측량 명목으로 조선 해안에 침투해 조선군의 공격을 유도한 뒤 이를 빌미로 불평등한 강화도조약을 맺었다. 현대의 민주국가 일본은 제국주의 일본과 전혀 다르지만 트집과 억지로 주변국을 흔드는 행태는 놀랍게도 닮아 있다. 일본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 


&lt;축소지향의 일본인&gt;의 저자 이어령은 일본에는 고백은 있으되 참회는 없다고 말했다. 지금 일본에서는 고백조차도 찾아보기 힘들다. 일본은 이번에 신뢰 자산을 크게 잃었다. 향후 갈등이 불거졌을 때 일본이 순리대로 대응할 것이라고 누구도 기대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보수 우경화와는 별개의 문제다. 경제대국 일본의 위상은 갈수록 작아지고 있다.


<조호연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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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를 상징하는 말로 ‘#미투(MeToo)’를 빼놓을 수 없다. 2017년 10월 미국 할리우드 영화계의 거물 하비 웨인스타인에 대한 폭로를 시작으로 성폭력을 고발하는 여성들이 잇따랐다. 이것이 ‘#미투’ 운동으로 미국은 물론 전 세계로 퍼졌다. 한국도 지난해 1월 서지현 검사 이후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피해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에서도 움직임이 있었다. 지난해 ‘신조어·유행어 톱 10’에 ‘#미투(MeToo)’가 포함됐다. 하지만 상황은 좀 달랐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이토 시오리가 2017년 5월 유명 방송기자에게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폭로했지만 반향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난 18일 일본 도쿄 시모기타자와 B&B서점에서 열린 조남주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 북 토크에서 이 책을 번역한 사이토 마리코(오른쪽)와 서평가 구라모토 사오리가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진우 기자

 

지난해 4월엔 재무차관의 여기자 성희롱 문제가 발생했다. 이에 대해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장관은 “(여기자에게) 속아넘어간 게 아니냐는 다양한 의견이 있다” 등의 발언으로 비난을 자초했다. 아베 신조 정부는 아소 부총리의 발언을 뒷받침하듯 각의(국무회의)에서 “성희롱으로 처벌하는 취지를 규정한 법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답변서를 결정했다. 지난 9일 인터넷 투표에선 ‘2018년 최악의 성차별 발언을 한 정치인’으로 아소 부총리가 선정됐다.

 

그렇게 2019년이 시작된 지 3주일, ‘#미투’ 사안이라고 부를 만한 일들이 속출하고 있다.

 

우선 남성용 잡지 ‘주간SPA!’의 ‘성관계 쉬운 여대생 순위’ 논란. 후지산케이그룹 산하로 보수 성향의 후쇼샤(扶桑社)가 출판하는 ‘주간SPA!’는 지난달 25일 크리스마스 특집호에 성관계하기 쉬운 여학생들이 많은 여자대학 5곳의 순위를 실었다. 이에 인터넷을 중심으로 “준강간죄를 조장한다” “여성 경시다” 등의 비난이 빗발쳤다. ‘여성을 경시한 잡지 출판을 멈추고 사과하라’는 제목의 온라인 서명에는 5만명 가까이가 참여했다. ‘주간SPA!’ 편집부는 결국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친밀해지기 쉬운’이라고 표현해야 할 부분에 선정적인 단어를 쓰게 됐다” 등의 해명이 더욱 비난을 불렀다.

 

또 하나는 여자 아이돌그룹 멤버 피습 사건. NGT48의 야마구치 마호가 지난 8일 인터넷 동영상을 통해 자택에서 괴한에게 습격을 받은 사실과 함께 소속사가 한 달간 아무런 대처도 없었다고 폭로했다. 그런데 지난 10일 팬미팅에서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며 고개 숙인 것은 야마구치였다. 폭력 피해자가 자신이 겪은 공포를 눈물로 호소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 것도 모자라, 소속사는 피해자가 사과하도록 해 사태를 서둘러 수습하려 한 것이다.

 

이번 사건을 대하는 ‘남성’들의 대응은 한술 더 떴다. 일본의 유명 개그맨 마쓰모토 히토시는 후지TV의 한 프로그램에서 NGT48과 자매그룹인 HKT48의 사시하라 리노가 대책을 호소하자 “그건 자신 있는 몸을 사용해 어떻게 해보든지”라고 말했다. 여성이 출세하기 위해 ‘성’을 무기로 사용한다는 편견을 여과 없이 노출한 것이다. 이런 차별적 발언을 후지TV에선 편집하지 않은 채 그대로 내보냈다.

 

해가 바뀌어도 일본 사회가 남성 중심의 철옹성임을 보여주는 사례들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난 19일 소설 <82년생 김지영> 일본어판 간행 기념 행사에서 서평가 구라모토 사오리는 “1980년대 얘기라고 생각했던 게 지금 일어나고 있다”고 변하지 않는 일본의 현실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하지만 인터넷 서명운동과 면담을 통해 ‘주간SPA!’의 사과를 이끌어낸 것은 야마모토 가즈나 등 여대생들이었다. ‘조직과 사회의 조화’ 등의 명목 아래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에 당당히 맞서는 젊은 세대들이 있는 것이다. 아베 정권이 내건 ‘여성이 빛나는 사회’라는 구호는 허상에 불과하다. 그 허상에 분노를 표현하고, 연대하고, 현실을 바꾸려는 누군가가 있다. 시대는 변하고 있는 것이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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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궁금하게 여겼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사 내용을 확인하려고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컴퓨터를 켰다. 그런데 먼저 눈에 들어온 독일 매체들의 기사 제목은 하나같이 북한이 다시 미국을 협박한다는 자극적인 내용이었다. 그래서 곧 미국에서 나온 기사와 논평을 찾아보니 이와는 조금 달랐고, 일부 언론은 신년사에 나온 남북관계 개선과 북한의 경제발전 전략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한반도와의 직접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같은 사실의 보도 내용도 이같이 서로 다르다.


이런저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외국 언론매체는 역시 신년사에서 단 한 번 언급된 ‘새로운 길’의 내용에 주목하고 이를 해석하는 데 매달렸다. 새로운 길이 북·미 협상을 재촉하는 북한의 협박인지, 아니면 오히려 절박감의 호소인지를 둘러싸고 엇갈린 해석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새로운 길을 현재 진행 중인 북·미 협상을 파기하고 비핵화를 포기하겠다는 내용으로 확대 해석하며, 북한이 미국을 다시 위협하고 있다고 논평했다. 이러한 현상을 보면서 30년 전에 발표한 나의 논문 ‘북한 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다시 떠올렸다. 냉전시기에 북한을 보던 시각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일러스트_김상민 화백


이 글이 발표된 이후에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독일 통일, 소련의 해체, 톈안먼 사태에 이은 중국의 급격한 부상(浮上) 등, 일련의 큰 세계사적인 변화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북한에도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에 이어 김정은 체제가 등장했다. 이런 가운데 지속적으로 이어진 담론 중 하나가 북한의 붕괴였다. 심지어는 점을 치듯이 붕괴의 정확한 시점까지 예견하는 논문도 있었다.


1994년 10월 미국이 제네바에서 북한에 2기의 경수로 건설에 합의한 것도 경수로의 완공 이전에 북한이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도 시간은 기본적으로 북한에 불리하게 작용하기에 기다리면 북한이 스스로 항복의 길을 택할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북한은 오히려 그사이에 키운 핵무력을 바탕으로 두 번째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까지 왔다.


프로이트가 ‘반복강박장애’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비근한 예로 어떤 물건이 놓였던 장소에 그대로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계속 불안하기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놓았던 물건이 그대로 있는지를 확인해야만 하는 사람이 있다. 이에 대한 치료법의 하나는 환자로 하여금 정반대의 행동을 하게 하는 것이다. 즉 깨끗하게 정돈된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흐트러진 상태를 받아들이는 사고와 행동을 반복하게 만든다.


‘불량국가’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당연히 배제되어야 할 대상이라고 미국은 오랫동안 생각하고 행동했다. 여기에는 민주당이나 공화당이나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그래서 자신들의 예측과 다른 변화나 현상이 설사 나타나더라도 같은 생각과 행동을 늘 반복해왔다. 비교적 합리적인 논조를 지킨다는 뉴욕타임스 같은 매체도 예외는 아니었다. 얼마 전에 이 신문은 ‘숨겨진 북 미사일 기지’라는 과장된 보도로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다. 트럼프는 이렇게 반복되는 강박에서 벗어나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전임자나 여론의 사고와 행동과는 정반대로 정상회담이라는 파격적인 형식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을 직접 만나겠다는 결단을 내렸다.


이러한 만남과 대화 그리고 협상이 갈등의 근본적인 해소로 곧 연결되지는 않지만 어떤 경우든 대화 없는 갈등보다는 대화 있는 갈등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 상대방을 잘 알기 때문에 소통(疏通)이 가능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래서 탈코트 파슨스(1902~1979)의 구조기능주의와 니클라스 루만(1927~1998)의 사회체계이론은 서로가 상대방을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소통이 시작된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이는 ‘이중적 우연성(二重的 偶然性)’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바둑을 둘 때 서로가 상대방의 수를 대국 이전에 완전히 읽을 수 있다면 무슨 재미로 바둑을 두겠는가. 서로가 상대방의 수를 모르는 상황에서 대국은 시작되기 마련이다.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북·미 간에 여전히 펼쳐지는 상대방에 대한 요구, ‘네가 내가 원하는 것을 먼저 들어준다면 나도 네가 원하는 것을 해주겠다’는 팽팽한 기싸움도 실은 이런 이중적 우연성에 기인한다. 이는 서로가 상대방의 의도를 확실히 알 수 있다거나, 전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우선 배제한다. 이중적 우연성은 갈등 해결의 가능성을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해서 위험을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위험을 완전히 해소하기보다는 가능한 한 이를 축소하고자 하는 수단으로 우리는 많은 경우 법체계에 의존한다.


‘핵확산금지조약(NPT)’도 그러한 법적 장치의 하나다. 그러나 인도, 파키스탄 그리고 이스라엘의 핵보유에 대한 암묵적인 동의는 물론, 최근 핵무기 보유 선언국 사이에 다시 불붙는 핵무기의 현대화 경쟁은 이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보편적인 정당성을 밖으로 내건 국제법적인 체계보다 이를 실질적으로 구축한 미국과의 직접적인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의 길을 찾았다.


1차 북·미 정상회담은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 정착 그리고 북·미관계의 정상화에 대해 원론적인 합의를 도출했다. 2월 말에 열리게 될 2차 북·미 정상회담은 이를 바탕으로 비핵화와 제재 완화의 상호연동(聯動)에 관한 구체적 내용과 일정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합의를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에 여러 경로를 통해 북·미 간에 주고받은 메시지의 내용을 검토하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될 내용의 윤곽도 드러난다. 북·미 간에 걸린 이중적 우연성이 안았던 위험부담도 그간 상당히 감소되었기 때문이다. 회담 장소가 아직 발표되지 않았고, 비핵화가 될 때까지 제재가 계속될 것이라는 백악관 대변인의 브리핑을 토대로 비관적인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변화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판단한다면 무엇 때문에 다시 정상회담을 여는 데 북·미가 합의했겠는가.


‘꼬마 로켓맨’(2017·9·24)으로부터 시작해, ‘더 이상 북한으로부터 핵위험은 없다’(2018·6·13)를 거쳐 ‘다음번 정상회담을 갈망한다’(2018·12·24)는 트럼프의 트위터 내용의 변화를 보면 북핵을 매개로 시작된 북·미관계의 극적인 변화를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에 이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오히려 회의적인 시각을 갖는 사람도 많다. 반북(反北)강박장애를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와 행동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여전히 많다. 이들은 북한을 이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대화 자체가 아예 불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역사를 움직인 것은 목소리가 아니라 바로 귀였다’라고 이탈리아 작가 이탈로 칼비노(1923~1985)는 증언한다. 남의 이야기가 귀에 거슬리지 않는 경지를 의미하는 ‘육십이이순(六十而耳順)’이라는 공자의 가르침도 실은 같은 내용을 의미한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부터 대화는 시작된다.


<송두율 | 전 독일 뮌스터대학교 사회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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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방위성이 21일 ‘한국 레이더 조사(照射) 사안에 관한 최종견해에 대해’라는 성명을 홈페이지에 발표하고 “진실 규명에 이어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협의 계속은 이미 곤란하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또 한국군이 레이더를 쏘았다는 ‘새로운 증거’라며 ‘화기관제용 레이더 탐지음’ ‘수색용 레이더 탐지음’이라는 이름의 음성파일 2개도 함께 공개했다. 일본이 레이더 논란을 일으킨 지 꼭 한 달이 되는 날, 일방적으로 공세를 취한 뒤 협의 중단을 선언한 것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한·일 양국이 사실에 기초해 냉정하게 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지난 한 달간 이 문제를 대하는 일본의 태도를 보면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처음부터 공세를 취했다. 방위성은 연 사흘 동안 “명확한 적대행위로, 사죄하라”고 하더니 마지막에는 외무성이 나서 유감 표명과 함께 재발방지를 요구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일본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었다. 일본이 레이더의 종류를 착각했거나 사안을 과장한 정황이 강해졌다. ‘명백한 적대행위’로 규정하면서 초계기가 계속 저공비행하는 장면에 일본 내부에서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왔다. 일본 측은 지난 14일 싱가포르에서 개최한 한·일 장성급 협의에 레이더 전문가도 참여시키지 않았다. 문제를 풀겠다는 진실한 자세가 아니다. 


국방부가 지난 4일 유튜브에 공개한 한·일 ‘레이더 갈등’ 일본 측 주장을 반박하는 동영상. 위 사진은 조난 선박 구조작전 중인 광개토대왕함 상공에서 저고도로 진입한 일본 초계기(원 안) 모습이고, 아래 사진은 일본 초계기가 나타나기 직전 조난 선박 구조작전 중인 광개토대왕함 모습이다. 연합뉴스


일본이 새로 내놓은 탐지음이라고 하는 것은 해상초계기의 레이더 경보 수신기에 기록된 음이다. 하지만 이 경고음만 공개하면 어떤 레이더 전파에 맞았는지 규명할 수 없다. 당시 현장에는 여러 종류의 레이더가 운용되고 있어서 시간과 방위까지 다 밝혀야 레이더를 특정할 수 있다. 또 이 탐지음은 어디서든 찾아볼 수 있는 음파라고 한다. 황당하다. 결국 일본은 한 달 내내 일방적으로 자기 주장만 하다 증거를 내놓으라고 하자 협의 중단을 선언한 것이다. 


일본의 일방적 협의 중단으로 이 문제는 진상 규명이 사실상 어려워졌다. 하지만 이런 일을 그대로 두고 갈 수는 없다. 일본이 진정 한·일관계를 유지·발전시키고 싶다면 일본이 주장한 대로 증거를 통해 문제를 풀어야 한다. 초계기가 레이더 전파를 맞은 일시와 방위, 그리고 레이더의 주파수 특성을 확인할 수 있는 로그파일을 공개해야 한다. 이를 회피하는 것은 일본이 처음부터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가기 위해 한국군의 정상적인 작전을 논란거리로 만들었음을 자인하는 셈이다. 일본은 양국의 미래를 위해 결단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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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우리의 패트리엇 대공미사일과 공중급유기 도입을 남북군사합의서 위반이라고 항의했다. 남북군사합의서에는 “쌍방은 상대방을 겨냥한 대규모 군사훈련 및 무력증강 문제 … 등에 대해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가동하여 협의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되어 있다. 북한의 문제 제기는 부지불식 간에 우리의 시각을 남북 간 군사문제를 넘어 미·중 간 패권경쟁으로까지 확대시키고 있는 듯하다.

 

정부와 군은 북한의 문제 제기에 당황한 듯하다. 국방부는 남북군사공동위원회가 가동되면 대규모 군사훈련과 무력증강에 관한 내용의 수정을 요구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북한이 미·중 간 패권경쟁 상황에도 대비해야 하는 우리의 입장을 이해해주고 선선히 물러설 것 같지는 않다. 자칫하면 심각한 의견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다. 우리 안보 담당자들이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한 것은 실망스럽다. 군사력 건설보다 중요한 것은 상황을 예측하고 판단하는 지적 능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기본합의서의 내용은 전체적으로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군사적 긴장완화를 이야기하면서 등 뒤에 칼을 숨기고 있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합의서 내용에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상대방을 겨냥한’이라는 내용을 모든 군사력 건설을 의미하는 것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다. 군사력 건설은 통상 공격용과 방어용으로 나뉜다. ‘상대방을 겨냥한’이라는 의미를 고려하면, 방어용 군사력 건설은 남북군사합의서의 대상이 아니다.

 

반세기 넘게 적대관계를 유지한 남과 북이 말 한마디 글자 한 줄로 평화에 도달할 수 있을까? 특히 북한의 장사정포가 서울을 언제라도 포격할 수 있고, 남한 전역을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이 수천발이 되는 상황에서, 상대방의 선의만을 믿을 수는 없다. 현존하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그것이 방어적 목적의 무기라면 의문의 여지가 없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방어적 목적의 패트리엇이 아니라, 북한이 언제라도 발사할 수 있는 공격용 미사일이다. 남북군사공동위원회가 개최된다면 제일 먼저 상대방을 위협하는 공격용 무기를 제거하는 방안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협의”라는 말의 의미이다. 협의는 서로 의견을 나눈다는 뜻이다. 잘되면 합의에 도달할 수 있고, 잘 안되면 상호 입장 차이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 된다. 아직 남북 간 신뢰구축이 충분하지 못한 상황에서, 상대방을 겨냥한 무력증강에 대한 입장 차이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만도 상당한 진전이다. 유감스럽게 남과 북은 아직까지 그런 대화조차 하지 못했다. 북한의 문제 제기에 우리 군이 전전긍긍하는 것은, 남북군사합의서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조항의 해석능력 부족 때문이다.

 

일에도 순서가 있다. 지금 단계에서 남북한의 노력은 남북기본합의서가 규정하고 있는 군사분계선과 NLL 인근에서의 군사적 충돌 방지에 집중되어야 한다. 서로 수용할 수 있고 지킬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서 신뢰를 쌓아가는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신년사에서 군사적 긴장완화가 한반도 전체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했다. 남북군사합의의 성과를 확대시키고자 하는 취지로 이해된다. 그러나 비무장지대의 군사적 긴장완화와 한반도 전체의 안보문제를 혼동해서는 안된다. 남북 간 적대적 관계 해소가 우리 안보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미·중 간 패권경쟁으로 인한 안보불안에 대비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상황에 처해 있다. 우리 정부가 해·공군 위주의 군사력 건설을 내용으로 한 국방개혁을 추진한 것도 이런 안보상황 때문이다. 공중급유기를 확보하는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북한의 위협만을 고려한다면 굳이 공중급유기까지 확보할 필요가 없다.

 

미·중 간 패권경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역사적으로 패권경쟁으로 인한 군사적 충돌은 가장 약한 힘의 고리에서 일어난다. 중국은 군항기로 KADIZ를 침입하는 한편, 서해에서도 해군으로 무력시위를 감행하고 있다. 부지불식 간에 한반도는 중국의 패권도전 무대가 되어가고 있다. 약한 힘의 고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강력한 힘을 가져야 한다.

 

북한의 문제 제기는 의도치 않게 우리가 처한 안보현실을 명확하게 인식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우리는 남북 간 군사적 긴장완화와 미·중 간 패권경쟁으로 인한 안보불안이라는 딜레마를 헤쳐나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는 북한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것이다. 큰 범주에서 보면 남북한은 이미 한배를 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설 | 예비역 준장·전 육군군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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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달 말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열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현지시간) 김 위원장 특사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전날 만난 것에 대해 “북한 측과 2시간 동안 매우 좋은 만남을 가졌다”며 “비핵화에 관한 한 많은 진전을 이뤘고 다른 많은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상회담 개최지도 이미 결정했다며 곧 발표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2차 북·미 정상회담 성사를 환영한다.

 

이제 관건은 북한의 비핵화 실행조치와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미국이 어떻게 주고받느냐이다. 북한의 영변 핵시설에 대한 사찰과 폐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 약속과 미국의 대북 제재 완화 등을 맞교환하는 문제가 남은 것이다. 양측은 김 부위원장의 방미를 통해 어느 정도 접점을 찾은 것 같다. 하지만 아직 결과를 예단하기는 이르다. 백악관은 김 부위원장의 방문 직후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를 볼 때까지 대북 압박과 제재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 당국 역시 김 부위원장의 방미와 정상회담 성사 사실을 주민들에게 알리지 않고 있다. 북·미 간 이견이 남아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8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으로부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전달받고 있다. 댄 스커비노 백악관 소셜미디어국장은 19일 자신의 트위터에 이 사진을 공개했다. 댄 스커비노 트위터

 

김 부위원장이 귀국길에 오른 날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3박4일간 실무협상에 들어갔다. 2차 정상회담에서 주고받을 카드를 구체적으로 조율하는 지난한 밀고 당기기에 돌입한 것이다. 양측 모두 한발씩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김정은 위원장이 그동안 여러 차례 ‘과감한 결단’을 언급한 것은 북·미 간 협상을 반드시 성사시키고 싶다는 국제사회를 향한 호소이다. 미국은 북한을 몰아붙이기만 할 게 아니라 핵을 포기시킬 실효적 방안을 찾아야 한다. 완전한 비핵화로 한꺼번에 가기는 어렵다. 일단 북한의 핵시설과 ICBM의 폐기를 둘러싼 초기 조치와 개성공단 재가동 등 부분적 제재 완화를 맞교환하는 것으로 그 여정을 출발시켜야 한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은 70년 묵은 적대관계를 청산한다는 상징성에 비중을 뒀다. 이번 2차 정상회담에서는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와 북·미관계 진전 방안이 도출돼야 한다. 한국 정부도 온 힘을 다해 양측을 중재해야 한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이것이 김 위원장의 방남으로 이어져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정착에 전환점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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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한·일관계는 억압과 갈등으로 점철돼 있다. 하지만 한 국가의 장래를 좌우하는 외교·안보 사안에 관해서는 감정적 대응보다 실리적 접근이 우선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일본 해상초계기 저공비행’ 사안에 대한 일본의 대응은 미래지향적 관계 개선이 아니라 불행한 과거로 회귀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일본은 지난해 12월20일 동해상에서 조난당한 북한 어선에 대한 인도적 구조 활동을 벌이던 우리 해군의 광개토대왕함이 자국 초계기를 향해 사격통제 레이더 중 하나인 추적레이더(STIR)를 조사(照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우리 해군은 해당 레이더를 가동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일본 초계기가 인도적 구조 활동을 수행하던 광개토대왕함 상공으로 위협적인 저공비행을 했다며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사안 자체는 명확하다. 당시 광개토대왕함은 조난 선박을 구조하고 있었기에 미식별 표적에 대응하기 위한 전투배치 상태가 아니었고 따라서 일본 초계기가 위협을 느낄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백번 양보해 일본 초계기 조종사 등이 광개토대왕함의 추적레이더 위협을 인지했다 해도 조금만 현장 상황을 파악했더라면 우리 함정이 온전히 구조 활동을 펼치고 있고 자신들에게 위협행동을 할 하등의 이유가 없음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일본이 자국 해상초계기의 저공 위협비행에 대해 민간 항공기에 적용하는 ‘국제민간항공안전협약’을 들먹이며 150m 거리를 유지했으니 문제 없다고 답변하는 건 자기합리화를 위한 견강부회일 뿐이다. 타국 군용 항공기가 군함에 접근하는 것만으로도 심각한 군사적 위협이며 그렇기 때문에 적정 접근거리에 대한 국제적 기준 자체가 없다.

 

사건 발생 일주일이 지난 12월27일 양국은 실무자급 화상회의를 통해 사실관계와 기술적 분석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향후 관련 실무협의를 계속하기로 합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일본은 총리를 필두로 관방장관과 방위상까지 총출동하여 공세를 펼칠까? 이번 사안이 일본의 안보에 심대한 사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침소봉대하는 데에는 특별한 배경이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최근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정부의 ‘위안부 재단 해산’ 등으로 쌓여온 한국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또 아베 정권의 지지율을 반등시키고 일본 우익 지지세력을 결집하기 위함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과거 고이즈미 정권은 2001년 12월 ‘북한 공작선 추정 괴선박 사건’을 빌미로 20년 이상 끌어온 ‘유사법제’ 입법화를 추진한 사례가 있다. 당시 일본은 이 사건이 일본 안보의 근간을 흔드는 위중한 사건인 양 대대적인 보도를 하여 여론의 지지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결국 유사법제는 2003년 6월 참의원을 최종 통과하여 시행되었다. 이로써 패전 58년 만에 그리고 일본 정부가 1977년 ‘연구’라는 이름으로 검토에 착수한 이후 4반세기 만에 ‘전시(戰時)’ 대비 국가체제 정비를 목적으로 한 법률이 효력을 갖게 되었다. 또한 일본은 그 후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를 빌미로 군사 대국화와 우경화를 추진해왔다. 결과적으로 북한의 괴선박 사건 그리고 핵과 미사일은 ‘울고 싶은 일본의 뺨을 때려준 격’이었다. 따라서 이번 초계기 사안에 대한 아베 정권의 대응 배경 역시 지금까지 일본이 일관되게 취해온 전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임한규 | 국방개혁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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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미국인 동북아 전문가가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는 쪽에 내기를 걸었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최근 2차 회담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2차 회담이 열리고 일정 성과를 내서 후속 협상도 할지 모르는 일이다. 그래도 한·미 양국, 특히 미국에 널리 퍼져 있는 생각, 즉 북한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비관론은 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핵을 포기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체제’라는 구조적 비관론 같은 것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핵 포기는 개혁·개방을, 개혁·개방은 체제 붕괴를 초래한다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북한이 협상하는 척 할 수는 있어도 핵을 포기할 수는 없다. 현시점에서 비핵화가 어렵다는 판단을 부정할 수는 없다. 진지한 협상은 없었다. 북한은 아직 의미 있는 비핵화 조치를 하지 않았다. 비관론, 일리 있다.

 

핵 개발도 핵 포기도 아닌, 과도적인 현 ‘비핵화 공약 국면’은 상당 기간 지속될지 모른다. 상줄 수도 없고 벌주기도 애매한, 그래서 북한을 조심스럽게 대해야 하는 상황을 북한이 즐길 수도 있다. 그러나 비관론을 뒷받침하는 논리가 모두 타당한 것은 아니다. 가장 흔한 비관론은 북한이 과거 그랬듯이 협상-파기-핵 개발을 반복할 것이라는 견해다. 하지만 북한의 과거로 북한의 오늘을 모두 설명하는 것은 무리다. 흔히 김일성·김정일 시대를 구분하지만 우리가 아는 북한은 김정일 작품이다. 그게 김일성·김정일 시대는 똑같아 보이고, 김정은 시대는 조금이라도 달라 보이는 이유다. 김정은은 사실상 선군정치를 폐기하고 시장을 확대했다. 김정은 시대가 김정일 시대와 다름없다고 장담하는 일은 피하는 게 좋다. 핵 불사용 천명, 핵군축, 미국의 핵우산 철거를 전제로 한 한반도 비핵화도 비관론의 근거로 거론된다. 이 모두 핵 협상 때 북한이 활용할 수 있는 카드다. 본격 협상도 안 한 상태에서 스스로 폐기 처분할 이유가 없다. 북한이 미국 혹은 남측과의 공식 회담에서 핵군축, 핵우산 철거를 주장한 적도 없다.

북한 논리는 이렇다. 핵 무력 완성으로 억지력을 확보함으로써 경제·핵 병진노선이 의도한 목표를 달성했다. 이제 경제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억지력 확보로 미국과 협상할 여건이 마련된 만큼 비핵화 협상도 해야 한다. 본래 핵무장의 목적은 핵보유가 아닌, 비핵화였다. 여기서 비관주의자는 잠깐 하며 가로막는다. ‘북한이 병진노선을 공식 폐기하지는 않았다.’ 맞다. 헌법의 핵보유국 조항도 그대로다. 공식 폐기는 핵문제 완전 타결을 기다려야 한다. 섣불리 폐기했다가 협상이 결렬되면 곤란해진다. 그래도 비관주의자는 물러서지 않는다. ‘김정은이 올해 신년사에서 핵 사용도 확산도 않겠다며 핵보유국 지위를 부각했다.’ 김정은은 2018년 신년사에서도 그렇게 말했다. 그랬던 김정은이 올해 신년사에서는 뭐라고 했나? “핵무기를 만들지 않겠다”며 핵동결을 추가했다.

 

과거 보다 한발 전진했다. 궁지에 몰린 비관주의자, 최후의 일격을 날린다. ‘지난해 9월 태형철 김일성 종합대 총장 겸 고등교육상이 뉴욕 토론회에 서면으로 제출한 발표문, 지난달 20일 조선중앙통신 정현의 논평은 뭔가? 핵우산 철거 없으면 비핵화도 없다고 했다.’ 정확한 말이다. “우리의 일방적 핵 폐기로는 미국의 핵위협이라는 실체가 아무 영향을 받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고는 “한반도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실질적인 핵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비핵화라고 했다. 그런데 이 문제에 관한 태형철의 해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러는 핵 국가지만 북한은 이들로부터 핵위협을 느끼지 않는다.

 

우리와 우호적 관계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비핵화를 위해서는 북·미 양국도 적대하지 않을 것을 약속해야 한다. … 북·미관계 정상화를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으면 한반도 비핵화의 희망도 사라질 수 있다.” 관계 정상화가 보장된다면 핵우산, 주한미군은 핵 폐기의 변수가 안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9월 평양공동선언 내용이다. 제대로 조명 받지 못했지만 남북이 핵우산, 주한미군 문제 해법에 공감할 수 있음을 말해주는 합의다. 비관론은 경청할 만하다. 그러나 비관론이 북한으로부터만 연유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태도, 북·미관계의 복잡성이 적지 않은 몫을 차지한다. 그럼에도 북한 주장을, 전후 시차와 공식 비공식 발언의 구분 없이, 대내외 언명의 차이, 최대 목표와 현실적 목표의 간극을 무시한 채 맥락 없이 범벅해서 맹목적 비관론이라는 정체불명의 섞어찌개를 차려 내놓는 전문가들이 있다. 그건 전문가다운 태도도 아니고 정직한 자세도 아니다.

 

<이대근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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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북·미 협상에 대해 “궁극적으로 미국 국민의 안전이 목표”라고 한 지난 11일 발언이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다. 국내 보수언론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 초점이 ‘완전한 비핵화’에서 미 본토를 위협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로 옮아가는 징조일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협상 성과에 급급해 미국에 대한 실질적 위협인 ICBM 생산 중단과 개성공단 등 남북경협 재개를 교환하는 ‘스몰딜’을 하는 데 그칠 것이라는 억측도 나온다. 게다가 주일미군이 홈페이지에 북한을 중국, 러시아와 함께 동북아에서 핵보유를 선언한 국가라고 언급한 영상을 공개하자 미국이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할 뜻을 비친 것 아니냐는 의문도 나온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살면서 김정은 정권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고 보수세력은 걱정한다. 아무리 우려라지만 도가 지나치다. 

 

중동을 방문 중인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13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에서 카타르 외무장관과 공동 기자회견을 하면서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도하 _ AP연합뉴스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은 지극히 온당하다. 어떤 대외 협상도 궁극적으로는 자국민의 안전을 우선시하는 것이 모든 국가의 목표 아닌가. 폼페이오는 이 발언 뒤에 “최종적이고 완전한 비핵화에 도달해야 한다. 핵심명제는 전혀 변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폼페이오의 ‘미국민 안전’ 발언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앞뒤 맥락을 잘 살펴봐야 한다. 이는 미국 언론이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 대북 제재를 풀 가능성을 질문한 것에 대한 답변에서 나온 것이다. 최종적인 비핵화로 이르는 도중에 북한과의 ‘주고받기’가 필요한 것이 현실이며 이 과정의 어떠한 거래도 미국인 안전에는 영향이 없을 것임을 강조한 발언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폼페이오의 발언은 한반도 비핵화가 신뢰구축과 병행해야 하는 과정임을 트럼프 행정부가 비로소 인식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지난해 6월 북·미 정상회담에서 발표된 공동성명에 이미 담겨 있다. 공동성명에는 “상호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한반도 비핵화를 증진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제시한 ‘선 신뢰구축-후 핵신고’의 비핵화 로드맵에도 접근한 것이다.

 

“완전한 비핵화 때까지 제재 해제는 없다”던 트럼프 행정부의 비현실적 대북정책이 뒤늦게나마 현실감각을 찾은 것은 환영할 일이다. 불필요한 기우에 사로잡힐 것 없이 곧 시작될 북·미 고위급회담과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차분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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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11월, 미국 연방수사국(FBI)은 중국 출신의 전 미 중앙정보국(CIA) 간부 진우다이(金無怠)를 간첩과 사기 탈세 등 17가지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미국 이름은 래리 우 타이 친. CIA 아시아 지역 총책임자였던 그가 40년 넘게 중국의 간첩으로 암약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미국은 충격에 빠졌다.

 

옌징대학(현 베이징대)에서 신문학을 전공한 진우다이는 뛰어난 영어 실력을 바탕으로 상하이와 홍콩에 있는 미국 영사관에서 통역관으로 일했다. 6·25전쟁 당시 한국에 근무하면서 중국군 포로 통역을 맡았다. 이때 저우언라이(周恩來)에게 포섭된 것으로 알려졌다. CIA 해외방송정보국(FBIS)에서 근무하다 분석관으로 승진했고 이후 CIA 아시아 지역 총책임자로 중국·대만·일본·한국 지역 기밀정보를 다뤘다. 6·25전쟁, 베트남전의 미군 전략 등 주요 정보가 중국으로 넘어갔다.

 

그는 1970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중국과 수교를 희망한다는 사실도 미리 중국에 전달됐다. 그는 스파이 대가로 중국으로부터 100만달러의 보상을 받았고 카지노를 들락거리면서 도박으로 돈의 출처를 숨겼다. 대만 유명 앵커였던 아내도 체포될 때까지 남편의 정체를 까맣게 몰랐다. 1981년 CIA에서 정년퇴직한 후 CIA가 진우다이에게 계속 일해 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위장은 완벽했다. 간첩 행각이 드러난 것은 1985년 위창성(兪强聲) 중국 국가안전부 북미정보국장의 망명 때문이다. 위창성은 망명 대가로 미국 측에 간첩 정보를 넘겼다. 미국 내 중국 핵심 첩보망이 전부 파괴됐다.

 

진우다이는 판결 직전인 1986년 2월 감옥에서 자살했다. 주미 중국대사가 “진우다이 사건은 반중세력이 꾸며낸 것이며 중국 정부는 미국에 간첩을 보낸 적이 없다”고 그의 존재를 부정한 직후였다. 부인은 회고록 <나의 남편 진우다이>에서 남편 자살에 의혹을 제기했다. 미국은 그를 변절자로 여기지만 중국은 ‘홍색 간첩’ ‘중국 최강 간첩’이라고 치켜세우고 있다. 위창성은 망명 2년 뒤 남미에서 중국 측 요원들로 보이는 이들에게 쫓기다 익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위창성은 현 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인 위정성(兪正聲)의 형이다.

 

대만의 핵개발 계획을 무너뜨린 것도 간첩이다. 장셴이(張憲意) 대만 중산과학연구원 원자력연구소 부소장은 1988년 1월 일가족과 미국으로 망명했다. 핵무기 연구 핵심 책임자였던 그는 20년 가까이 CIA의 비밀 간첩으로 활동했다. 대만의 핵무기 개발 배경과 과정이 담긴 수많은 기밀자료가 그의 손을 거쳐 미국에 전달했다. 장셴이가 망명한 다음날 장징궈(蔣經國) 대만 총통이 심장마비로 급서했다. 미국의 개입으로 대만의 핵개발은 완성 직전에 중단됐다. 이로써 대만은 중국의 무력통일을 저지할 전략적 무기를 잃고 국제사회에서 세력이 약화된 계기가 됐다.

 

중국에서는 스파이를 첩혼(諜魂)이라고도 쓴다.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있지만, 혼은 국가에 있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냉전시대 간첩들의 활동은 중국과 미국뿐 아니라 세계의 역사를 바꾸었다. 탈냉전시대에도 첨단 기술을 둘러싼 산업 스파이들의 전쟁은 여전하다. 미국은 화웨이와 중국 정부의 긴밀한 관계를 근거로 화웨이 장비가 보안에 취약하다며 동맹국과 보이콧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 화웨이 유럽 지사 간부가 폴란드에서 스파이 혐의로 체포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유학생은 모두 스파이라고 했고, 올해 미국의 명문 매사추세츠공대에 합격한 중국 출신은 한 명도 없었다. 중국은 2014년 반간첩법을 제정하고 간첩 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했다. 베이징시는 간첩 신고자에게 최고 50만위안(약 8289만원)의 포상금을 준다. 그럼에도 중국에서 활약하는 간첩은 11만명에 달하며 이 중 4만8000명 정도가 외국인이라는 통계가 있다. 간첩만큼 효율적으로 상대를 공격할 수단도 찾기 힘들다. 미·중 대결이 격화될수록 스파이 전쟁도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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