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협상이 종전선언에 가로막혔다. 북한의 종전선언 요구와 미국의 비핵화 요구가 팽팽하게 맞서 있다. 형식 논리상 북한의 주장이 더 설득력 있다. 북·미 협상의 최종 목표는 비핵화와 체제보장이다. 그런데 체제보장은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 북·미 수교로 달성된다. 그 과정에서 종전선언은 체제보장으로 가기 위한 출발점에 해당한다. 따라서 종전선언을 최종적 조치인 비핵화와 교환하자는 요구는 불공평하다. 1만원 걸 테니 10만원 걸라는 식 아닌가. 더구나 미국은 8개월 내 핵탄두의 60~70%를 없애야 종전선언에 응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북한이 “강도적 요구”라고 발끈할 만하다.

 

미국은 종전선언의 개념과 방향에 대한 의견을 밝힌 적이 없다. 하지만 고위 인사들의 발언을 통해 드러난 인식을 보면 매우 완고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번 종전선언을 하면 후퇴할 수 없다”는 해리 해리스 주한 미대사의 언급이 대표적이다. 종전선언을 대단히 무겁게 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오류에 기반하고 있다. 먼저 종전선언은 후퇴할 수 없는 조치가 아니다. 통상적인 의미의 종전선언은 한반도 전쟁을 종료하겠다는 정치적 메시지로, 법적 구속력이 없다. 종전선언 후 북한이 상응하는 비핵화 조치를 하지 않는다?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약속을 어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그렇게 함으로써 얻을 편익이 없는데 왜 그렇게 하겠는가. 그래도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비핵화 협상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미국은 북한이 종전선언 후 주한미군 철수나 한·미동맹 역할 변화 등의 문제를 제기할 것으로 우려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는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서나 다룰 사안이지, 그전 단계인 종전선언 과정에서 거론할 이유가 없다. 특히 주한미군의 경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한국 주둔을 용인하는 발언을 한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미국이 불안하다면 종전선언에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방법도 있다.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일정표를 담는 것이다. 아예 종전선언 명칭에 ‘한반도 비핵화’를 담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예컨대 ‘한반도 전쟁종식과 비핵화를 위한 선언’은 어떤가. 북한과 미국의 요구가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북한도 종전선언을 “한갓 정치적 선언”이라며 의미를 낮춘 바 있으니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종전선언은 ‘한갓 정치적 선언’이 아니다. 지구상 최후의 냉전 지역인 한반도의 전쟁 상태를 종료시킬 이 선언은 정치·군사적으로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전쟁 종결을 선언함과 동시에 한반도 평화협정 논의를 시작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평화체제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효과도 각별하다. 먼저 미국이 북한을 외교관계를 맺고 경제협력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인정하는 수단이 된다. 북한 체제보장의 증표가 될 수 있다. ‘비핵화-체제보장 프로세스’ 도중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종전선언이 그 과도기의 안전을 보장하는 담보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전선언은 북한에 비핵화의 명분도 제공해줄 것이다. 북한은 종전선언을 9·9절을 맞아 김정은 위원장의 성과로 삼을 작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점에서 9·9절 방북을 검토 중이라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행보가 주목된다. 시 주석 스스로 선물이 된다면 김 위원장의 마음을 흔들 수 있다. 미국에도 아직 시간은 남아 있다.

 

사실 종전선언의 ‘저작권’은 미국에 있다. 2006년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이 처음으로 제안했다. 그 덕에 노무현·김정일의 ‘10·4 남북공동선언’에도 담을 수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사실상 종전선언에 합의했다. 앞서 미국은 ‘연내 종전선언’을 담은 4·27 판문점선언을 지지했다. 미국이 종전선언을 수락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미국이 멈칫거리는 것은 주류 정치인 등이 진을 친 반트럼프, 반북 세력의 반발과 공세 탓이 크다. 여야, 진보·보수를 넘어서는 이들은 북한과의 협상이 아니라 완전항복을 요구한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북·미 간의 불신 때문이다. 상대가 더 큰 이익을 보게 될 것이란 생각, 상대가 속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국가 간 협력을 어렵게 만든다는 미어샤이머의 법칙이 북·미 간에도 작용하는 것이다. 그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공식 또는 비공식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북·미는 핵실험장 폐기와 군사훈련 중단 등 신뢰조치들을 교환해왔다. 앞으로도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조치들을 지속적으로 주고받는 수밖에 없다. 종전선언도 그중 하나다.

 

<조호연 논설주간>

 

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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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을 거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추가 회담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이고 시기와 장소 등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이 임박한 시점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점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은 6·12 북·미 정상회담 이후 교착상태에 빠진 비핵화 협상이 중대 고비를 맞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폼페이오가 지난 12일 “머지않아 큰 도약을 만들어내길 희망한다”고 밝힌 것을 비롯해 최근 미 행정부 안팎에선 긍정적인 신호들이 감지된다. 폼페이오의 이번 방북에서 김정은 위원장과의 면담이 성사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양측 간 ‘빅딜’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북한이 미국의 요구대로 핵리스트 제출 등 비핵화 초기 조치에 나서고 미국은 북한이 희망하는 종전선언을 수용하는 형태가 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로이터통신과 인터뷰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트럼프의 발언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 것은 이런 기대감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폼페이오의 방북으로 북·미 협상이 타결되면서 2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놓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다. 설사 폼페이오의 방북 성과가 미흡하다고 해도 정상 간의 ‘큰 거래’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올 들어 본격화된 북·미대화가 ‘톱다운’ 방식으로 움직여온 데다 실무협상의 교착에도 불구하고 북·미 정상은 ‘친서외교’를 통해 신뢰를 쌓아왔기 때문이다. 정상외교가 교착국면을 해소하고 실무협상에 추동력을 불어넣을 수도 있다. 어떤 맥락에서건 북·미 정상이 다시 만나 꼬인 매듭을 풀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 힘을 불어넣을 필요가 있다.

 

트럼프의 발언은 9월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정상외교가 다시 한번 숨가쁘게 전개될 것임을 예고한 것으로도 읽힌다.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는 ‘정상외교 시즌2’가 펼쳐질 수 있다는 뜻이다. 9월 중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도 예상되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으로 ‘핵신고·종전선언 교환’이 타결되고, 시진핑 주석의 방북과 평양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지는 시나리오도 예상해볼 수 있다. 하반기 정상외교가 ‘종전선언’으로 귀결된다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가 크게 진전하게 된다. 폼페이오 방북이 성과를 내 하반기 정상외교의 시동이 힘차게 걸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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