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글로벌칼럼 (3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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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혼돈의 79일’ 고어의 길, 후버의 길, 트럼프의 길 ‘혼돈의 인터레그넘.’ 3일 치러진 미국 대선 이후 상황을 설명하는 데 이보다 적절한 말은 없을 듯하다. 인터레그넘(interregnum)은 ‘정권과 정권 사이’라는 의미다. 역사적으로는 왕이나 교황 등 최고지도자가 없던 기간을 일컫는다. 미국에서는 대선일과 대통령 취임일(1월20일)까지 기간을 말한다. 통상 권력이양이 이뤄진다. 보통 11주 정도 되는데, 이번엔 79일이다. 올해 대선일 밤 풍경은 여느 때와 사뭇 다르다.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모두 ‘승복’ 대신 ‘승리’를 주장했다. 심지어 트럼프는 우편투표가 사기라는 주장을 펴며 대법원 소송을 공언했다. 박빙의 승부 탓이긴 하지만 패배 시 대선 불복 가능성을 예고하는 불길한 징조가 아닐 수 없다. 최악의 경우 승자 미확정에 따.. 2020. 11. 5.
[아침을 열며]트럼프 없는 세상 세상이 시끄럽다. 전대미문의 전염병과 보조라도 맞춘 것일까. 미국과 중국은 하루가 멀다 하고 으르렁댄다. ‘중국 공산당’이라는 단어가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입에서 나왔고, 중국은 “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행동”이라며 한국전쟁까지 소환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악의 제국’을 구소련에서 중국으로 대체한 007류의 영화가 다시 유행할 판이다. 미·중이 싸우는 틈바구니에서 러시아는 구소련 영광을 재현하려는 야심을 드러낸다. 우리는 어느 시대를 살고 있나. 난장판의 원흉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목된다. 그가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펴면서 끊임없이 중국을 압박하고, 코로나19 책임을 덮기 위해 중국 책임론까지 부각시킨 결과 미·중 갈등이 고조되고 세계가 시끄러워졌다는 것이다. 죄가 많다. 이란 .. 2020. 11. 2.
[세상읽기]트럼프와 음모론 ‘어두운 공생’ 2016년 미국 대선 직후에 에드거 웰츠는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수도 워싱턴까지 약 580㎞ 거리를 운전했습니다. 도착한 곳은 동네 피자가게. 자동소총을 들고 가게로 들어간 그는 지하실을 찾으며 총을 발사했습니다. 갇혀 있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서였죠. 좌파 지도자들이 유아 성학대를 일삼고 그 가게 지하에서 아이들을 거래한다는 글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가게에 아이들은커녕 지하실도 없었죠. 어이없는 해프닝으로 끝났습니다. 이후 웰츠는 잘못을 시인하고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음모론은 사라지지 않았죠. 사라지기는커녕 이제 정치세력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음모론을 추종하는 이들은 ‘큐어넌(QAnon)’으로 불립니다. 정부 최고 기밀 취급 등급(Q)에서 착안한 이름을 쓰는 ‘큐’가 이들의 지도자.. 2020. 10. 30.
티베트어의 현재와 미래 지난 17일 중국 시짱(西藏·티베트)자치구 르카쩌시 외곽의 한 주택단지. 티베트 전통복장을 입은 그는 서너 살쯤 된 아들과 함께 있었다. 그는 티베트어로 말했고 내가 구사할 수 있는 언어는 그와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몸짓으로 소통했다. 찍은 사진을 보내주고 싶다고 하고 연락처를 교환했다. 숙소로 돌아와 모자의 사진을 온라인으로 전송했다. 그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티베트어와 함께 꽃 사진과 강아지 동영상으로 답장을 했다. 번역기를 돌려보니 고맙다는 뜻이다. 외국 기자에게 취재는 물론 여행도 쉽게 허용되지 않는 ‘금단의 지역’ 티베트를 중국 당국 초청으로 일주일간 방문했다. 4개 도시를 돌며 만난 티베트인 중 대부분의 중노년층은 티베트어로 대화했다. 중국어는 간단한 소통만 가능했다. 현지 간부들은 티베.. 2020. 10. 21.
종전선언이 ‘평화협정의 입구’가 될 수 없는 이유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을 계기로 ‘종전선언’을 다시 꺼냈다. 3번째 시도다. 그만큼 종전선언에 애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북·미 모두에게 매력적인 카드라고 굳게 믿는 것 같다. 종전선언은 노무현 정부의 구상이었다. 2006년 11월 하노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이뤄진 노무현·조지 부시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이 시발점이다. 회담 후 송민순 당시 청와대 안보실장은 브리핑에서 대북 경제지원과 안전보장 외에 ‘평화체제 관련 상응조치’도 협의했다고 말했다. 다음날 백악관 대변인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미국이 취할 수 있는 행동 리스트에 한국전쟁 종료선언도 포함돼 있다”고 했다. 종전선언이 처음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당시 노무현 정부의 구상은 먼저 종전선언과 함께 협상.. 2020. 10. 16.
[특파원 칼럼]‘아카이빙 민주주의’의 단면 ‘미디어 정치’는 정치인들이 미디어를 통해 메시지를 시민들에게 전달하고 지지를 획득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미디어의 발달과 변화가 정치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인터넷의 보편화는 정치인과 정치집단이 전통 미디어에 기대지 않고 시민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시민 입장에서도 인터넷은 정치인에게 지지·반대·압력을 보낼 수 있는 통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고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대법관의 후임 대법관 후보를 지명하고 공화당이 인준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란은 아카이빙 민주주의 시대의 단면을 보여줬다. 트럼프 대통령은 긴즈버그 전 대법관이 별세한 다음날인 지난달 19일 후임 대법관 후보자 지명을 예고했다. 그리고 며칠 뒤 에이미 코니 배럿 제7.. 2020. 10. 7.
[여적]‘트럼프 서프라이즈’ 결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코로나19를 피하지 못했다. 지난 2일(현지시간) 스스로 확진 사실을 밝혀 전 세계에 긴급뉴스로 타전됐다. 전날 만찬 행사에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의 끝이 보인다”고 말한 지 불과 몇 시간 후였다. 군 병원에 입원한 트럼프는 하루 뒤 “많이 좋아졌다”는 영상 메시지를 냈지만 언제 회복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태이다. 74세 고령이고 비만 체형이라 고위험군에 속해서다. 입원 당일 산소호흡기를 썼다는 보도도 나왔다. 향후 48시간이 중요하다고 의료진은 전했다. 미국 대선 정국은 한순간에 혼돈에 빠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가족들의 유세까지 중단되고, 대선 캠프 핵심 인사들도 속속 양성 판정을 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감염이 선거전 막판 향방을 가르는 주요 사건을 뜻.. 2020. 10. 5.
[여적]긴즈버그의 유산 지난 18일 세상을 떠난 미국 연방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BG)는 ‘진보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법조인으로서의 긴즈버그의 삶은 ‘여성 차별과의 투쟁’ 그 자체다. 그의 최대 유산이기도 하다. 변호사 시절은 물론 대법관 시절, 그는 성차별적 법률을 폐지하며 여성권 신장에 앞장서왔다. 연방대법원 구성의 성비 불균형에 대해서도 가차 없이 비판했다. “나는 가끔 질문을 받는다. ‘연방대법원에 여성이 충분할 때가 언제인가.’ 내 대답은 ‘9명 있을 때’이다. 사람들은 놀란다. 하지만 9명 모두 남성이었을 때 아무도 그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의 또 다른 유산은 ‘자신보다 못한 사람과 개인이 아닌 공동체를 위한 삶’이다. 긴즈버그는 ‘노토리어스(악명 높은) RBG’로도 불린다. 그가 대법원에서 “나는.. 2020. 9. 28.
[특파원 칼럼]가난 물려받은 ‘싼허청년’ 중국의 싼허(三和)청년들은 하루 일해서 번 돈으로 사흘간 논다. 싼허청년은 선전시 싼허인력시장에 모이는 20∼30대 농민공을 뜻한다. 인력시장에서 택배배달, 경비, 건설노동 등 일용직을 구한다. 매일 출근을 싫어하기 때문에 월급 주는 직장을 원치 않는다. 그러나 싼허청년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중국의 사회 문제가 수십년간 얽히고설키면서 탄생한 ‘괴물’이라는 정체가 드러난다. 톈야라는 작가가 6개월간 싼허청년과 합숙하면서 쓴 에 따르면 이들은 착취와 압박, 차별 때문에 정규직을 갖기 싫어한다. 개혁·개방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농민공에 대한 비인간적 대우와 차별은 심각했다. 최저 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으면서 하루 12시간씩 공장에서 일했다. 공장이 제공한 숙소에서 사는 이들에게 출퇴근 경계도 모호했고 개인.. 2020. 9.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