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을 계기로 ‘종전선언’을 다시 꺼냈다. 3번째 시도다. 그만큼 종전선언에 애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북·미 모두에게 매력적인 카드라고 굳게 믿는 것 같다. 


종전선언은 노무현 정부의 구상이었다. 2006년 11월 하노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이뤄진 노무현·조지 부시 대통령의 한·미 정상회담이 시발점이다. 회담 후 송민순 당시 청와대 안보실장은 브리핑에서 대북 경제지원과 안전보장 외에 ‘평화체제 관련 상응조치’도 협의했다고 말했다. 다음날 백악관 대변인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미국이 취할 수 있는 행동 리스트에 한국전쟁 종료선언도 포함돼 있다”고 했다. 종전선언이 처음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당시 노무현 정부의 구상은 먼저 종전선언과 함께 협상을 개시하고 핵을 폐기하는 마지막 단계에서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이었다. 종전선언은 평화협정 협상을 시작하는 ‘입구’로, 실제 평화협정 체결은 협상의 완성을 의미하는 ‘출구’로 설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의 생각은 달랐다. 평화협정과 종전선언을 구분 없이 같은 개념으로 받아들였다. 미국이 “노무현 정부의 종전선언을 지지한다”고 수없이 밝혔지만 항상 그 앞에 ‘북한이 핵을 폐기한다면’이라는 전제가 달려 있었던 이유다.


노 대통령은 2007년 시드니 APEC 정상회의에서 다시 부시를 만나 종전선언을 거론했지만 부시는 “검증 가능한 핵폐기가 먼저다”라며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는 그해 10월 남북정상회담에서 ‘3자 또는 4자의 종전선언’을 북한과 합의했다. 그러자 알렉산더 버시바우 당시 주한 미국대사는 남북합의 직후 한 세미나에 참석해 한국의 외교장관과 6자 수석대표 면전에서 “평화협정 협상 개시는 모든 핵프로그램의 완전한 신고 이후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의 길로 나아간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점에 가능하다”며 쐐기를 박아버렸다.


사라졌던 종전선언은 2018년 판문점선언에서 되살아났다. 실제 북·미는 대화 과정에서 종전선언을 논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성과는 없었다. 미국은 종전선언 대가로 어떤 비핵화 조치를 할 것인지 북한에 물었고, 북한은 종전선언에는 조건이 없어야 한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종전선언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지만 하나의 시작이 될 수는 있을 것”이라며 한국이 미국을 설득해보라고 했다. 그냥 주면 받겠지만 종전선언을 얻기 위해 무언가를 내주지는 않겠다는 말이다. 북·미 대화가 진행 중이던 2018년 10월에도 북한은 “종전선언은 비핵화와 바꿔먹을 흥정물이 아니다”라고 했다. ‘조건 없는 종전선언’을 주장하는 북한과 ‘비핵화 조치에 따른 종전선언’을 주장하는 미국의 입장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바뀐 적이 없다.


지난 14일 국감에서 이수혁 주미대사는 “미국도 종전선언에 공감하고 있으며 북한만 설득하면 된다”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거꾸로 “북한은 찬성하니까 미국만 설득하면 된다”고 했어도 역시 틀린 말이 아니다. 어느 한쪽만 설득하면 된다는 건 말장난일 뿐이다. 북·미 입장 차이가 여전하기 때문에 이번 3번째 시도 역시 기대 난망이다. 


전쟁 종식은 육상·해상 경계선을 확정하고 복잡한 평화유지 방안에 합의한 뒤 조약을 체결해야 이뤄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핵 문제 해결이다. 이런 문제들을 그대로 두고 전쟁이 끝났다고 ‘선언’하는 것은 현실과의 괴리에 따른 혼란을 초래한다. 종전선언을 해놓고 입구로 들어갔는데 비핵화 협상이 진전되지 않아 평화협정 체결로 나갈 수 있는 출구를 찾지 못하고 미로를 헤매게 된다면 낭패다. 종전선언을 하더라도,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사이의 기간은 매우 짧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종전선언이 아니라 ‘북·미의 비핵화 선언’이다. 미국을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하려면 북한으로부터 최종 목표가 완전한 비핵화임을 확인받아야 한다. 또한 미국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같은 미국의 안보 위협만 해소하는 ‘부분적 비핵화’로 북한과 타협하고 한국은 북한의 핵 위협에 노출된 상태로 남겨지는 일이 없도록 “비핵화를 끝까지 추구하겠다”는 약속을 미국으로부터 받아내야 한다. 그것이 평화체제의 입구다. 종전선언은 지금 시급하지 않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kyunghyang.com>

Posted by 경향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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