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24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지린성 시찰은 다소 의외로 여겨졌다. 이번 시찰은 양쯔강 유역 홍수로 중국 남부지역이 몸살을 앓고, 미국이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을 72시간 내에 폐쇄하라고 통보하면서 미·중 갈등이 끓어오른 시점에 이뤄졌다. 대내외 불안정한 상황에서 민심 수습에 주력하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민심을 다독이려면 장화를 챙겨 신고 남부지역으로 가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다. 양쯔강 홍수가 발생했던 1998년 장쩌민 주석과 2007년 후진타오 주석은 그렇게 했다. 왜 시 주석은 홍수가 난 남부가 아닌 북쪽으로 향했던 걸까.

 

시 주석의 지린성 시찰 일정 첫 방문지는 쓰핑시 리수현에 있는 옥수수 생산기지였다. 그는 옥수수 밭에 들어가 작황을 살폈고, 농토 활용 현황과 농업 기계화 상황도 점검했다. 시 주석은 “식량 생산을 늦추지 말라”면서 “농민들이 가장 좋은 기술로 최고의 식량을 재배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지린성 시찰이 끝난 후 관영매체 신화통신은 연일 ‘시진핑 총서기 관심사’라는 제목으로 “백성들이 배불리 잘 먹게 하고, 식량 안보 기초를 다져 중국의 밥그릇을 튼튼하게 한다”는 내용의 선전성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중국은 최근 미국으로부터 대량의 옥수수를 사들였다.

 

미국 농무부는 지난 14일 중국이 미국산 옥수수 176만2000t을 구매했다고 발표했다. 곡물 거래량으로는 역대 네 번째로 큰 규모다. 앞서 10일에도 중국은 136만5000t의 옥수수를 구매했다. 중국이 지난 1월 미·중 1단계 무역합의를 이행하기 위해 미국산 농산물 구매량을 늘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남부 홍수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올여름 중국 남부는 장마철 평균 강우량보다 46% 넘게 비가 많이 내렸다. 대홍수가 있었던 1998년 같은 기간 강우량도 넘어섰다. 경작지의 약 20%가 침수된 것으로 추산돼 대규모 농작물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중국의 식량자급률은 100%에 달할 정도로 높지만 대두, 옥수수 등 일부 곡물은 수입으로 채운다. ‘신냉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미·중 갈등이 격화된 상황에 식량안보를 미국에 의존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인민을 배불리 먹이는 일이 시 주석의 최우선 임무가 된 것이다.

 

3년 전만 해도 시 주석의 행보에는 거침이 없었다. 2017년 10월 공산당 19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총서기로 재선출돼 집권 2기를 시작했고, 이듬해 3월에는 국가주석 임기제를 폐지해 종신집권의 길을 열었다. 그러나 미·중 무역전쟁으로 시작된 양국 갈등이 남중국해, 홍콩 등 전방위적으로 번졌고 총영사관 폐쇄라는 초유의 조치로 이어졌다. 코로나19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방역 조치와 경제 회복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데 대한 고민도 깊다. 표면적으로는 2분기 3.2% 경제성장률로 자신감을 강조하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불안감이 엿보인다. 경제적 발전으로 통치 정당성을 유지해 온 공산당으로서는 경기하향을 우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식량안보까지 위협받는다면 지도자의 위상은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지린성 옥수수 밭으로 간 시 주석의 행보에서 이 같은 고민이 깊게 묻어난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Posted by 경향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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