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이 선포되기 하루 전인 1949년 9월30일. 인민정치협상회의 대표들이 모여 국가주석을 선출했다. 마오쩌둥(毛澤東)의 만장일치 당선을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결과는 찬성 575표, 반대 1표.


지지자들은 당황했다. 반대표를 버리자는 말까지 나왔다. 마오쩌둥이 “대표들이 마오쩌둥을 선택할 권리도 있고, 선택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면서 “그대로 두라”고 했다.


5년 후인 1954년. 중국의 의회에 해당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설립됐다. 국가주석 선출을 비롯한 법률의 제정·수정은 전인대에서 표결로 결정한다. 그러나 지난 66년간 어떤 안건도 부결된 적은 없다.


지난달 28일 전인대 전체회의에서는 홍콩의 반(反)중국 활동을 처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이 압도적 표차로 통과했다. 찬성 2878표, 반대 1표, 기권 6표가 나왔다. 홍콩 민주진영과 국제사회에서 홍콩 자치권을 보장한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에 위배된다며 비판을 쏟아낸 것을 감안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표차다.


전인대 성립 초기에는 거수, 박수, 무기명 투표방식이 혼재돼 있었다. 문화대혁명 때는 맹목적 박수가 대신했다. 정치생명을 걸어야 하는 반대표는 던지기 힘들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전자투표가 시작됐지만 여전히 ‘반대’ 목소리는 내기 어려워 보인다.


이 때문에 1992년 3월 전인대 당시 싼샤댐 건설 프로젝트 안건은 상징적 사건으로 꼽힌다. 창강(長江) 중상류의 협곡을 잇는 싼샤댐은 환경 및 생태계 파괴 우려가 제기됐다. 싼샤댐에 반대하는 황순싱(黃順興) 대표는 사전에 발언을 신청했지만 묵살됐다. 황 대표 등 25명은 회의장을 나갔고 기표하지 않는 것으로 항의했다. 싼샤댐 안건은 찬성 1767표, 반대 177표, 기권 664표가 나왔다. 전인대 역사상 이례적으로 반대·기권표가 많았던 사례다.


최근에는 반대표를 보기가 더 어렵다. 2013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선출 때 나온 반대표는 단 1표였다. 2018년 시 주석의 장기집권을 가능하게 하는 국가주석 3연임 이상 금지 조항 폐기 개헌안 표결 때도 반대는 2표에 불과했다.


중국에서 반대 목소리를 내기가 얼마나 힘든지는 과거 사례가 입증한다. 마오쩌둥에게 반대표를 던진 사람은 베이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정치학자 장둥쑨(張東蓀)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51년 미국 간첩 사건에 연루돼 정치 생명이 끝났고, 옥살이하다 감옥에서 사망했다. 본인은 간첩 행위 사실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싼샤댐에 반대한 황순싱 대표도 이듬해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홍콩보안법 반대 1표를 두고는 여러 추측이 나왔다. 보안법 수정안에 반대의견을 낸 홍콩 전인대 대표 마이클 톈(田北辰)이 지목됐다. 결국 톈 대표는 “찬성표를 던졌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한 군데로 쏠린 집단사고는 때로 큰 사고를 일으킨다. 중국은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의 교훈도 있다. 다수의 합의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와야 더 나은 해결책이 나오고 사회도 발전한다. 그런 점에서 반대 없는 사회는 위험하다. 반대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라면 더더욱 큰 문제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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