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이 19일 담화를 내고 “조선반도 핵문제의 근원인 미국의 대조선(대북) 적대시 정책이 완전하고도 되돌릴 수 없게 철회되기 전에는 그에 대해 논의할 여지도 없다”며 미국은 비핵화 협상에 대해 “꿈도 꾸지 말라”고 했다. 김영철 위원장은 “조미(북·미) 사이에 신뢰구축이 선행되고 우리의 안전과 발전을 저해하는 위협들이 깨끗이 제거된 다음에야 비핵화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도 했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고문이 전날 내놓은 담화와 거의 동일한 메시지다.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도 내달 북·미 실무협상 재개와 관련해 “미국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할 결단을 내리지 않는 한 조미 대화는 열리기 힘들게 되어있다”고 이날 밝혔다. 한·미 당국이 연합공중훈련을 전격 연기해 협상 재개의 명분을 제공했지만, 북한은 이를 평가절하한 채 미국이 한 발짝 더 움직여야 대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버틴 것이다.


북한이 경직된 태도를 나타내고 있는 것은 협상 의제 선점을 위한 기싸움의 성격도 있겠지만, 비핵화 협상의 ‘연말 시한’이 50여일밖에 남지 않은 데 따른 초조감의 발로로도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7일(현지시간)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향해 “당신은 빨리 행동해야 하며 합의를 이뤄야 한다. 곧 보자!”면서 3차 정상회담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북한을 설득할 카드를 미국이 들고 오지 않는 한 북한은 협상장에 나서기 힘들다는 입장을 시사해왔다. 지난 2월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의 악몽을 반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 터이다. 또한 임기가 1년이 채 남지 않은 데다 탄핵 정국에 몰려 있는 트럼프 행정부와 ‘큰 거래’를 하는 것이 타당한 건지 의문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북한이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단 등 ‘선제적 조치’를 무위로 돌릴 가능성까지 시사한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비상한 각오로 ‘통 큰 결단’에 나서달라고 주문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태도로는 시간만 허비하게 될 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북한의 비핵화 의지는 진정성을 의심받게 된다. 그렇다면 한·미 연합공중훈련 연기라는 모멘텀을 지렛대로 삼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미국도 좀 더 유연한 태도로 북한을 설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대북 제재 유지’에 집착하다 ‘큰 거래’의 기회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북·미 모두 결단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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