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인가 생시인가. 아마존 숲이 눈앞에서 불타고 있었다. 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었고, 나무 타는 냄새가 주변에 그득했다. 지난 밤 불길이 할퀴고 간 산등성이는 검게 그을려 있다. 황망한 기분 탓에, 난데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럼, 타잔과 치타는 이제 거리로 나앉게 되나?” 옆에서 화재 현장을 지켜보던 한 사람은 “ ‘지구의 허파’가 불타고 있다”고 한숨을 쉬며 말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는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아마존 열대우림은 지구 산소의 20%를 생산한다”고 말했다. 아뿔싸! 타잔을 동정할 일이 아니구나. 잘못하면 인류가 끝장날 수 있겠구나.


매캐한 연기 때문에 눈을 비볐다. 장면이 바뀌었다. 스웨덴의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미국 뉴욕 유엔총회 ‘기후행동 정상회의’ 연단에서 비장한 어조로 연설을 하고 있다. “생태계 전체가 무너지고 대멸종의 시작점에 있는데, 당신들은 영구적 경제성장이란 동화를 거론하며 오직 돈 타령만 하고 있다.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는가(How dare you?).” 회의장에 있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얼굴이 붉어졌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테라 앤 아쿠아 MODIS 위성이 지난 8월 15~22일 촬영해 합성한 아마존 열대우림 화재 사진. 출처 : NASA 웹사이트


잠시 눈을 깜빡였다. 이번엔 영국 런던 시내다. 수백명의 시위대가 웨스트민스터 다리, 트래펄가 광장, 정부 주요 관공서 주변을 점거했다. 트래펄가 광장에는 ‘우리의 미래’라고 적힌 관을 실은 영구차가 자리를 잡았다. 운전자는 스스로를 자동차에 묶었고, 시위대는 차량 주위에 드러누위 스크럼을 짰다. 순식간에 주변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환경운동단체 ‘멸종저항’ 회원들이다. 이들은 전 세계 27개국 60개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인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면서 “기후 비상사태를 선포하라” “2025년까지 탄소배출 ‘순 제로’를 달성하라”고 외쳤다. 경찰이 들이닥쳤지만 이들은 “감옥이 두렵지 않다”고 했다. 시위대 한 명이 경찰에 끌려가며 눈을 흘기는 듯했다. “구경만 할 거야?”


고개를 돌리니, 서쪽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다.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다. 영화제작사 워너브라더스 스튜디오까지 연기가 미쳤다. 영화를 찍던 배우·감독·스태프들이 황급히 스튜디오를 떠나는 모습이 보인다. 로스앤젤레스 산불은 한 달째 지속되고 있다고 한다. 남쪽 방향에서도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청정지역’이라는 호주의 하늘이 시커멓다. 대형산불이 호주를 덮쳤다고 한다. 어디선가 굵은 중저음의 호통이 들려온다. “다 이게 지구 온난화 때문이야. 식생이 메마르면서 산불이 잦아지는 것이라고!” 신의 경고인가.


다시 눈을 감았다 떴다. 유서 깊은 도시가 물에 잠겨 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다. 9세기 비잔틴 양식의 대표 건축물이라는 산마르코 대성당도 잠겼다. 무릎까지 물이 들어찼다. 사람들은 서로서로 손을 잡고 산마르코 광장을 힘겹게 가로지르고 있었다. 바닷물에 휩쓸린 가구, 건물 잔해, 쓰레기 등으로 광장은 뒤범벅이 됐다. ‘유럽의 응접실’로 불렸던 이 광장의 안온함은 온데간데없었다. 베네치아 시장은 현장에서 취재진에게 “기후변화의 여파다. 베네치아의 미래가 위태롭다”고 한탄했다.


심란한 마음에 눈을 감았다. 눈 뜨니, 다시 유엔총회장이다. ‘무분별한 개발허가’로 아마존 위기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는 브라질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이 연단에 보인다. 그는 아마존 열대우림 위기에 대한 전 세계적 우려를 두고 “주권침해”라며 개발을 계속하겠다고 주장했다. 갑자기 장면이 바뀌더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측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온실가스 배출 감소를 위한 파리기후변화협약 공식 탈퇴를 선언하는 성명을 읽고 있다. 기후위기는 아랑곳없는 듯했다. 동맹국들에 방위비 ‘삥’이나 뜯는 트럼프와 그 측근들에게 무엇을 기대할까.


낙담해 고개를 숙였다. 누군가 등을 도닥여준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과 눈이 마주쳤다. 자신을 아마존 카야포 부족의 라오니 메투크티레 족장이라고 소개한다. 아마존 열대우림 보호를 위해 평생을 바쳤다고 말했다. 가볍게 목례를 하고 말씀을 청했다. 족장이 말했다. “우리는 숲과 자연을 통해 숨을 쉰다. 벌목과 파괴를 지속한다면 백인들을 포함해 우리 모두 이 땅에서 사라질 것이다.” 족장의 언어를 몰랐지만 또렷이 들렸다. 모골이 송연했다.


‘앗’하는 짧은 비명과 함께 잠에서 깼다. 이불이 식은땀으로 푹 젖었다. 새벽 4시. 다시 누웠지만, 잠들지 못했다. “우리 모두 이 땅에서 사라질 것이다.” 아마존 할아버지의 말이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돈다. 뒤숭숭하다. 꿈인데, 꿈이 아닌 것 같다.


<이용욱 국제부장>

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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