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 70주년을 맞은 중국이 국가 훈장인 ‘공화국 훈장’을 처음 수여했다. 중국 건설과 발전에 공헌한 인물들에게 주는 최고 영예다.


8명의 수여자 중 단연 눈에 띄는 인물이 바로 선지란(申紀蘭·90)이다. 


선지란은 평생 농촌개혁에 앞장서왔다. 고향인 산시성 핑쉰현 시거우촌에서 당 간부에 임명됐지만 30년간 월급을 받지 않았다. 관용차량도 거절하고 버스를 탔다. 출장에 가면 가장 싼 여관, 가장 싼 음식을 찾았다.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등 역대 중국 지도자들은 선지란을 직접 만나 격려했다.  


호찌민 전 베트남 주석과 김일성 북한 주석 같은 사회주의 국가 지도자들도 그와 만났다. 지난해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아 100인의 개혁선봉 표창 수상자에 선정된 데 이어 올해는 최고 영예인 공화국 훈장까지 받았다. 


중국이 건국 70년간 여정에서 선지란의 공로를 크게 인정한 이유는 비단 청렴함 때문일까. 


선지란은 중국 정치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선지란은 1954년 중국 의회인 제1기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로 선출된 후 13기까지 65년간 전인대 대표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유일무이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동안 모든 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진 유일한 대표이기도 하다. 수천만 인민들을 아사시킨 대약진운동과 인민공사 설립에 찬성했고, 중국 현대사 최대 비극으로 꼽히는 문화대혁명에도 찬성했다. 공산당이 대약진운동과 문혁에 대한 과오 청산에 나설 때도 찬성표를 던졌다. 류샤오치에 대한 평가가 극단적으로 바뀌는 과정에서도 한결같이 찬성했다. 공산당의 입장은 세월이 흐르며 바뀌었지만 그는 한 번도 ‘찬성’을 접은 적이 없다.


1949년 10월1일 마오쩌둥 주석이 톈안먼 성루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중앙인민정부가 오늘 성립되었다”고 선포한 이래 중국 경제는 비약적 발전을 했다. 그러나 정치체제도 ‘발전’의 방향으로 나아왔는지는 누구도 확신하기 힘들다. 


지난달 30일 베이징전람관에서 열리고 있는 건국 70주년 기념전을 찾았다. ‘위대한 역정·빛나는 성취’라는 주제에 맞게 중국의 과학기술, 경제, 군사 등 다방면의 발전 성과가 잘 전시돼 있었다. 1952년 679억위안에 불과했던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174배 성장했다. 2010년에는 일본을 넘어 세계 2위 경제체가 됐다. 베이징전람관은 원래 소련의 기술과 자본으로 지은 소련전람관이었다. 소련 붕괴 후 베이징전람관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중국 공산당의 성과를 과시하는 곳이 됐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기념전 관람 후 “70년간 역사적 성취와 변혁은 중국 공산당만이 중국을 이끌 수 있고, 중국 특색 사회주의 노선만이 중국에 번영과 부강을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올해로 중국 공산당은 소련 공산당의 69년 집권 기록을 깼다. 


그러나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는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 듯하다. 덩샤오핑의 유훈인 ‘집단지도체제’가 희미해졌다. ‘국가주석 3연임 금지’ 조항을 폐지해 장기집권이 가능해졌다. 헌법에 ‘시진핑 사상’을 삽입해 시 주석의 사상적 지위는 마오쩌둥 반열로 격상됐다. 시 주석이 2013년 국가주석으로 처음 임명될 때 찬성률은 99.86%였다. 반대표는 단 1표, 기권은 3표에 불과했다. 헌법 수정 표결 때도 반대는 2표뿐이었다. 


선지란은 “요즘은 거수 대신 전자개표기 버튼만 누른다”면서 “전인대 변화가 너무 빠르다”고 토로했다. 거수라는 공개 찬성을 통해 충성심을 과시할 수 있었던 과거가 그리운 것은 아닐까. 경제에서는 눈부신 개혁·개방 성과를 이뤘지만 개혁을 찾기 힘든 중국의 정치가 우려된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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