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관계가 몇 년 새 이렇게 빠른 속도로 미국 주도 국제정치의 중심으로 진입하고 소멸하는 과정을 반복한 사례가 언제 있었나 싶다. 싱가포르(2018·6·12)와 베트남 하노이 회담(2019·2·27~28), 그리고 판문점에서의 회동(2019·6·30)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의 ‘케미’가 어떠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여기에다 사이사이 주고받은 연서(戀書) 같은 서신은 북·미관계의 청신호들로 해석되기에 충분하고도 강력한 증거였다. 46년생 대 84년생이라는 연령 차이만큼이나 이질적인 두 정치지도자가 어떤 동기로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게 됐을까?


첫째, 두 지도자는 비현실적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 국제정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는 주어진 현실을 비틀어 보기로 작심한 지도자들이다. 이들의 신념은 국제정치의 이단(異端)이다. 트럼프 등장 이후 국제정치 이론을 다시 써야 한다는 농담 같은 이야기가 그래서 나온다. 트럼프와 김정은은 현실은 끊임없이 재구성된다고 믿는, 좋게 해석하면 국제정치학 용어로 구성주의자로 분류할 수 있다. 국제정치가 국가들이 간주관적으로 서로 공유하는 아이디어, 규범, 가치 등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게 구성주의의 골자다. 구성주의자들은 국가의 정체성도 상호교류를 하면서 변한다고 인식한다. 이들의 눈에 국제체제의 구조는 관념적이다.


둘째, 두 지도자는 ‘접촉’을 통해 상대방의 생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싱가포르 회담에서 김정은은 “우리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고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이 때로는 우리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는데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왔다”고 했다. 트럼프 역시 김 위원장에 대해 “매우 훌륭하고, 똑똑한 협상가”라고 치켜세웠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행위가 그릇된 고정관념들을 변화시킬 거라는 믿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역사적 만남이었다. 그 결과 현재까지 무사히(?)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셋째, 김정은과 트럼프 모두 국내 정치적 요소를 가볍게 여겼다. 특히 트럼프는 워싱턴 주류들만의 ‘외교문법’들을 무시하고 파격적 방식으로 협상에 나섰다. 싱가포르 회담 합의문과, 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트럼프가 ‘도발적’이고 ‘전쟁게임’이라고까지 칭한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내비친 것들이 대표적이다. 동맹의 이름으로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전폭기가 한국까지 비행하는 것을 순전히 ‘돈’의 문제로만 인식하는 트럼프를 목전에서 지켜본 김정은 입장에서는 여차하면 주한미군 감군 또는 철수, 핵우산 철폐까지 트럼프가 실행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싱가포르 회담에서 새로운 북·미관계 구축이라는 문구를 성안시켜 1승을 거둔 김 위원장은 하노이 회담에서는 이렇다 할 성과를 도출하지 못했다. 산 넘고 물 건너 달려온 김정은으로서는 모욕적인 회담 결과였다. 이제 북·미 정상회담이 연내에 개최돼 영변비핵화와 연락사무소 맞교환 이상의 합의문을 작성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북한은 ‘선(先) 비핵화, 후(後) 국교정상화’를 고집한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의 퇴장을 긍정적인 신호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북·미관계가 획기적으로 진전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우선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핵심 석유시설 피격이라는 난기류를 만났다. 미국 외교정책에서 중동 문제가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면 북핵 문제는 트럼프 외교팀의 최우선 해결과제는 아니다. 둘째, 시간이 촉박하다. 이전의 실무회담 경험에도 불구, 추수감사절(11·28)과 내년 대통령 선거 일정 등을 고려하면 의제, 장소 등을 확정하는 데 시간적 여유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트럼프가 외국 정상과 통화하면서 국가안보 측면에서 부적절한 발언을 한 게 발각돼 트럼프 자신이 내부 고발을 당한, 정치적 인화성이 높은 사건이 발생했다. 셋째, 로버트 오브라이언 신임 안보보좌관은 냉전 종식을 이끈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힘을 통한 평화’의 사도이자 수호자이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해피 토크’ 회담이 사그라질 암운이 감돈다. 다시 긴장할 때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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