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시대 군비경쟁의 마침표를 찍은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이 무력화될 상황에 처했다. 미국이 러시아와 체결한 INF 조약의 이행을 중단하고 6개월 후 탈퇴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 1일(현지시간) “러시아가 협정 준수로 복귀하지 않으면 조약은 종결될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간 러시아가 9M729 순항미사일을 개발해 실전 배치하자 INF 위반이라며 폐기를 주장해온 반면 러시아는 이 미사일이 INF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맞서왔다. INF 존속을 위한 양국 간 협상이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서 미국의 ‘탈퇴 선언’으로 이어진 양상이다. 미국의 선언 배경에는 INF의 구속을 받지 않고 중거리 미사일 전력을 확장해온 중국을 겨냥한 측면도 다분하다. 러시아는 미국의 탈퇴 선언에 맞대응해 INF 참여 중단 방침을 밝힌 데 이어 5일 INF에서 금지하던 지상발사 미사일 시스템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INF 파기 시 우려되던 군비 경쟁이 현실화되는 재앙적 신호다.

 

INF는 냉전이 한창이던 1987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체결했다. 사거리 500~1000㎞의 단거리와 1000~5500㎞의 중거리 지상발사 탄도·순항 미사일의 생산과 시험, 실전 배치를 전면 금지하는 게 조약의 뼈대다. INF에 따라 양국은 1991년까지 중·단거리 미사일 2692기를 없앴다. 냉전시대 군비경쟁의 종식을 이끌어낸 조약으로 평가받는 이유이다. INF는 이후에도 국제 군축 체제의 핵심으로 기능해 왔다. INF 폐기는 국제 안보질서의 근간인 무기 통제체제의 붕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미국의 탈퇴로 냉전의 망령을 가둬둔 INF 잠금장치가 풀리면 유럽과 아시아 등 국제사회에서 미사일 개발과 핵군비 경쟁이 재연될 공산이 커진다. 미국이 러시아에 대응해 유럽에 신규 미사일을 배치하고 중국 견제를 위해 동아시아에 무기를 증강하려 들 경우 이 지역의 안전과 평화는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미·중·러 간 군비 특히 미사일 개발 경쟁이 점화되고, 북핵 문제 해결에도 잠재적 위협 요소가 될 수 있다. INF 파기는 전 세계를 더 위험하게 만들 뿐이다. 미국의 탈퇴가 발효될 때까지 향후 6개월이 INF 조약을 유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의 창’이다. 미국과 러시아가 적극적인 대화를 통해 파국을 막고 해결책을 도출해야 한다.

 

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