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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 발생 4주년을 맞아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취재하기 위해 현장을 다녀왔다. 후쿠시마 원전 주변의 모습은 처참했다. 상당수의 지역은 아직도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남아 있었다.

후쿠시마가 처한 현실을 구체적인 수치 등으로 알아보기 위해 후쿠시마현을 방문, 현 관계자로부터 이런저런 설명을 듣는 과정에서 최근의 지역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자료를 하나 발견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전에 비해 최고 60~70%까지 감소했던 외지 관광객 수가 2013년 들어 급격히 늘어났다는 통계가 그것이었다. 그해 9월 관광객 수는 사고 이전의 100% 수준까지 회복됐다. 상당수 지역의 방사능 오염이 여전한 후쿠시마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난 이유는 뭘까.

현 관계자가 설명한 이유는 간단했다. 일본의 공영방송 NHK가 제작·방송한 한 편의 드라마 덕분이라는 것이었다. 그해 NHK는 후쿠시마 지역을 주무대로 한 대하드라마 <야에노 사쿠라(八重の櫻)>를 방송했는데 이를 계기로 외지인들의 발길이 갑자기 늘어났다는 것이다. ‘후쿠시마 지역 활성화’라는 NHK의 기획 의도가 그대로 적중한 셈이다. 드라마가 종료된 뒤 다시 관광객이 급감한 사실을 통해 방송의 위력을 절감할 수 있었다.

NHK는 이전에도 드라마 등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활성화를 꾀하는 시도를 자주 했다. 2010년 내내 방송한 대하드라마 <료마덴(龍馬傳)>은 평균 20.3%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드라마의 무대인 고치(高知)현과 나가사키(長崎)현 등에 무려 8542억원의 경제효과를 가져다줬다.

NHK가 지역활성화 등 특정 목적으로 기획한 프로그램이 당초의 ‘의도’대로 잇따라 대박을 터뜨릴 수 있는 배경에는 ‘공영방송’인 NHK가 일본 사회에 미치는 엄청난 영향력이 자리하고 있다.

일본인들에게 NHK는 하나의 ‘표준’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일본 국민들은 ‘NHK에 나왔다’고 하면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데 최근 1년 사이 일본 국민들의 NHK에 대한 믿음을 뿌리째 흔들어놓는 소동이 잇따라 벌어지고 있다. 소동의 장본인은 이 방송사의 최고책임자인 회장이다.

모미이 가쓰토 NHK회장 (출처 : 경향DB)


“정부가 오른쪽이라고 하는 것을 (NHK가) 왼쪽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정부나 정권의 뜻에 맞춰 방송을 해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는 지난해 모미이 가쓰토 NHK 회장의 발언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이후 모미이 회장은 종전 70주년 특집 프로그램과 관련해서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정부의 공식 입장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방송하는 것이 타당한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면서 위안부 관련 프로그램을 정부의 입맛에 맞춰야 한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권력을 비판하고 정부가 바른길을 가도록 이끌어야 하는 언론기관의 수장이, 더구나 일본 국민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고 있는 NHK 회장이 이런 식의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실망감을 표시하는 일본인이 최근 크게 늘어나고 있다. 상당수 국민들은 잇따라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모미이 회장의 퇴진을 요구하면서 NHK 수신료 납부 거부 운동까지 나서고 있다.

‘역사수정주의’의 길을 가고 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 아래에서 나타나고 있는 모미이 회장의 이런 ‘정언(政言)유착’ 행보가 결국 NHK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굳은 믿음’을 깨는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이다.

한때 세계 최고수준의 공영방송으로 일컬어지던 NHK가 이런 식으로 신뢰를 잃게 된다면, 그 폐해는 고스란히 일본 국민들에게 돌아가게 된다는 사실을 모미이 회장과 아베 정권은 알고 있을까.


윤희일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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