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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되었다. 한·중 FTA는 1990년대 이후 전개된 FTA 네트워크 운동의 한 획을 긋는 사건이다. 이전과 같은 FTA 찬반 논의가 있긴 하다. 경제계가 한·중 FTA 타결을 환영한다는 신문 광고가 나왔다. 협정 타결을 반대하는 시민단체 기자회견도 있었고, 피해를 우려하는 농민들의 시위도 이어졌다. 그러나 한 국가를 기준으로 한 개방 찬성론과 반대론의 구도로는 한·중 FTA 타결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한·중 FTA는 1990년대 초 이후 지역 차원에서 형성되고 있는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귀결이다.

한·중 FTA는 이전의 FTA에 비하면 ‘낮은 수준’ 또는 ‘중간 수준’의 FTA이다. 발표된 바에 의하면 한·중 FTA에서 한국이 20년 내에 관세를 완전 철폐하는 품목은 전체의 92%로 미국, 유럽연합과의 FTA에서의 96%보다 낮은 수준이다. 특히 쌀을 비롯해 농산물 중 민감 품목이 상당 부분 양허 대상에서 제외됐다. 중국도 자국 산업에 충격을 줄 수 있는 제조업 품목에 대해서는 전략적으로 대처했다.

한국과 중국의 산업을 크게 비교하면 한국은 농업에 대해 비교열위에 있고, 제조업에서는 품목별로 우세와 열세가 교차하고 있으며, 서비스 산업이나 투자부문에서는 대체로 비교우위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중 FTA를 ‘높은 수준’으로 가져가면 한국은 농업과 일부 제조업에서 후퇴를 감수하고 서비스·투자 부문에서 깊숙이 파고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서비스시장은 매우 정교한 재산권제도를 필요로 하는 곳이다. 중국 내부의 재산권 제도의 투명성과 개혁 가능성 여부가 매우 불확실한 영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높은 수준’의 FTA가 서비스·투자 부문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높은 수준’으로 가면 한국으로서는 피해는 ‘확실’하지만 이익은 ‘불확실’해진다. 중국 입장에서도 ‘높은 수준’의 FTA를 추진해본 경험이 없다. 이번에 한국·중국은 동아시아 발전단계의 특성을 감안하여 ‘중간 수준’에서 이익의 균형을 맞춘 것으로 볼 수 있다.

11일 국회정문 앞에서 한중FTA중단농축산비상대책위원회 소속 농축산인들이 한중FTA 졸속타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출처 : 경향DB)


한·중 FTA가 협상 개시부터 타결까지 걸린 시간은 30개월이다. 비준까지는 얼마간의 시간이 더 소요되겠지만, 발효까지 73개월이 걸린 한·미 FTA에 비하면 순조로운 편이다. 이에 대해서는 한국 내에서 한·중 FTA에 대한 정치적 반대 운동이 약했다는 점이 거론되기도 한다. 더욱 결정적인 요인은 한·미 FTA가 먼저 체결되었다는 점이다. 동아시아의 역학관계에서는 한·미 FTA에 앞서 한·중 FTA가 추진될 수는 없다. 역설적이지만, 한·미 FTA는 한·중 FTA가 타결될 수 있는 국제정치적 장애물을 제거했다. 그리고 미국의 동아시아 개입은 중국이 한국과의 관계를 진전시켜야 하는 동인을 제공했다.

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시야에서 보면 한·중 FTA를 추동한 동력은 1990년대 이후 각국의 경계를 넘어 형성되고 있는 동아시아 자본주의다.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뼈대를 만들고 있는 것은 생산 네트워크이고 그 혈액 흐름은 무역 확대로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는 1980년대부터 발전하기 시작했고 동아시아에서는 1990년대 초반부터 급속히 발전했다. 새로운 시스템은 처음에는 의류에서부터 시작하여 제조업은 물론 식품·서비스 분야까지 확대되고 있다. 동아시아 각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무역 확대 흐름은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형성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간 동아시아의 생산 네트워크를 추동한 것은 중국과 아세안이었다. 글로벌 생산 분업에서의 축이 선진국에서 동아시아로 이동했는데, 일본의 비중은 하락했으므로 중국의 비중이 증대한 것이 뚜렷한 동력이 되었다. 아세안은 생산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네트워크화의 정도가 높고 FTA 네트워크를 선도했다. 아세안은 1990년대 초부터 FTA 체결을 시작하여 2010년경에 그 네트워크를 완성했다.

동아시아 자본주의는 1990년대 이후 크게 진전했다. 그러나 이는 몇 가지 구조적 취약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 아세안 중심의 FTA 네트워크는 조밀하나 한·중·일 간에는 FTA가 결여되어 있었다. 둘째, 시장 통합의 힘은 강하나 비시장적·시민적 협력의 힘은 약하다. 셋째, 중국으로의 집중이 강하고 북한이라는 도넛 구멍의 문제가 심각하다. 한·중 FTA는 이러한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를 완화하기도 하지만 심화시키는 면도 있다. 이제 문제는 네트워크를 좀 더 균형화하는 것이다.


이일영 | 한신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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