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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뉴스를 다루는 기자들의 일과 중 하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위터를 확인하는 것이다. 기사거리가 될 만한 돌발 발언을 트위터에서 즐겨 하기 때문이다.

기자들은 10분마다 한 번씩 컴퓨터 자판의 ‘F5’ 키를 눌러 트위터 타임라인을 ‘새로고침’하면서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주시해야 한다. 6·12 북·미 정상회담처럼 주요한 행사를 앞둔 시기엔 더욱 그렇다.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은 선수가 트위터로 설화를 일으키자 “트위터는 시간 낭비”라고 일갈한 바 있는데, 미국 대통령의 트위터는 그 자신뿐 아니라 전 세계 외교관과 기자들의 시간까지 축내고 있다.

 

그러나 트위터를 확인하는 외국 기자들의 수고는 트럼프가 ‘우리 대통령’인 미국 시민들과 기자들의 피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이처럼 하루가 멀다 하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언행을 일삼는 대통령이 미국 현대사에 또 있었을까. 가장 최근의 사건은 지난 8일부터 이틀간 캐나다 퀘벡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벌어졌다. 앞서 미국이 캐나다와 유럽연합, 멕시코산 철강·알루미늄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탓에 캐나다와 유럽 정상들은 이 회의에서 트럼프의 양보를 받아내겠다고 잔뜩 벼르고 있었다.

 

북·미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11일 서울역 대합실의 TV 화면에 나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얼굴을 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AP연합뉴스

 

애석하게도 트럼프의 정신은 온통 북·미 회담에 팔려 있었다. 그는 북·미 회담을 핑계로 퀘벡에 다른 정상들보다 늦게 도착했고 일찍 떠났다. 비공개로 진행된 회의에서도 성의가 없었다. 그는 토론에 집중하지 않고 회의장을 어슬렁거려 다른 정상들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회의 마지막 날 그는 G7 정상회의 공동성명에 대한 지지를 (이 또한) 트위터로 돌연 철회하고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를 “정직하지 않다”고 비난하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트럼프가 공동성명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고 일찌감치 퀘벡을 떠난 뒤, 트뤼도가 기자회견에서 “미국에 대한 보복관세를 예정대로 7월1일부터 부과하겠다”고 말한 게 이유인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무능한 대통령을 둔 대가’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트럼프가 미국인의 일상에 재앙을 불러올 시간이 머지않았다고 내다봤다. 칼럼은 그 전조로 지난해 미국령 푸에르토리코를 강타한 허리케인 ‘마리아’의 사례를 들었다. 지난달 29일 외신 보도를 보면 하버드대 연구진이 푸에르토리코 3299가구를 직접 방문 조사한 결과 지난해 9~12월 마리아로 숨진 사망자는 최소 4645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가 발표한 공식 사망자 64명의 70배가 넘는 수치다. 수천명이 숨지는 대형 재해였지만 트럼프가 무엇을 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무기력했던 푸에르토리코 정부를 비난한 것 외엔 눈에 띄는 발언이 없었다.

 

대통령이 외교·통상에서 저지른 실책이 시민들의 삶에 피해를 주기까지는 얼마간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자연재해나 신종 감염병 등 재난 상황에서 대통령의 무능이 시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즉각적이다. 마리아는 미국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을 할퀴고 지나갔지만 또 다른 재난이 본토를 위협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미국 지식인들은 트럼프의 임기가 흘러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그가 임기 4년 동안 차근차근 쌓아올린 과오와 무능이 미래의 어느날 엄청난 액수의 청구서가 돼 시민들에게 돌아올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무이자할부로 여기저기서 야금야금 카드를 긁었다가 결국 빚이 산더미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특히 안타까운 대목은 이 무능한 대통령이 하필이면 ‘세계 대통령’인 미국 대통령이라는 사실이다. 미국 대통령이 저지른 실정의 결과는 언젠가 세계인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때 세계가 느끼게 될 피로감은 대통령 트위터를 새로고침하는 수고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미국 투표권이 없는 한국의 기자는 그저 차기 미국 대선에서 유권자들이 현명하게 투표하기를 바랄 뿐이다.

 

<최희진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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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비핵화 퍼즐의 답을 찾은 것 같다.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 요구를 부분 수용하고, 종전선언을 시사했다. 불신이 팽배한 북·미관계를 고려하면 먼저 비핵화하면 보상한다는 미국의 구상은 비현실적이었다. 비핵화와 체제보장의 교환은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단계별로 이행사항을 결정하고 실천하는 게 합리적이다. 종전선언은 북 체제보장의 첫번째 절차에 해당한다. 미국의 추가 대북 제재 유예 조치도 평가할 만하다. 북한의 핵 및 미사일 시험 중지와 맞물려 생각하면 양측은 낮은 단계의 모라토리엄을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비로소 북·미 사이에 정상적인 토론과 협상이 가능한 무대가 마련된 셈이다.

 

6·12 북·미 정상회담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비핵화를 넘어 분단·냉전 구조 해체와 평화 정착 등 한반도의 미래와 우리의 운명이 걸려 있다. 통상의 국제회담은 깨져도 관련국 간의 일시적인 관계 경색 정도에 그친다. 하지만 이번 회담은 실패 시 군사긴장 고조로 이어지고 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다. 그럼에도 세기의 회담을 대하는 미국의 태도는 진지하지 않았다. 협상 타결을 위한 협의가 아니라 일방적 항복 요구나 다름없었다. 패전국 다루듯 하는 미국 강경파들에 대한 북한의 반발로 회담은 한 차례 취소 사태를 겪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1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대남담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악수하고 있다. 워싱턴 _ AP연합뉴스

 

트럼프의 정책 전환은 미국 사회 주류의 완고한 반북정서와의 투쟁 속에서 나온 것이어서 값지다. 그들은 북한이 체제유지의 수단인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은 체제모순으로 붕괴할 것이기 때문에 대화와 협상을 할 필요가 없다고도 본다. 심지어 빌 클린턴 같은 대화파도 처음에는 북한 붕괴론을 철석같이 믿었다. 북한에 대한 경수로 제공을 의회가 반대하자 “경수로 완성 시점에 북한 정권은 사라질 테니 걱정 말고 투자하자”고 설득할 정도였다.

 

현재까지 트럼프의 노력은 성공적이다. 대북 강경파 존 볼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 그 증표다. 중대한 외교이벤트가 진행 중인데, 이를 총괄해야 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침묵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트럼프가 입을 막은 것이다. 그와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트럼프가 김영철을 면담하는 자리에도 배석하지 않았다. 북한 입장에서는 트럼프가 자신들을 대화 상대로 존중한다고 믿을 만한 사례일 것이다.

 

그간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둘러싼 문제제기들은 상식선을 넘은 게 많았다. 북한이 핵무기 일부를 은폐할 것이라는 발상부터 우습다. 핵은 보유 사실을 공개해야 효과를 발휘하는 정치무기, 외교무기다. 예컨대 이스라엘은 공식적인 핵보유국은 아니지만 필요할 때마다 보유국임을 시사한다. 김정은이 직접 나선 회담을 국제사기극으로 몰고 가는 행태는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정말 북한이 신격화하는 지도자의 권위를 훼손하면서까지 외교사기를 칠 수 있다고 보는 건가. 북한 입장에서 이번 회담은 외무성 관리들이 맡았던 기왕의 회담과는 성격 자체가 다르다. 절대 권력자가 나선 만큼 반드시 개최돼야 하고, 실패해서도 안되는 회담이다. 체제의 생존은 물론 회담 종사자들의 안위까지 걸려 있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의 방향 전환이 과연 북한의 이런 속사정까지 파악한 뒤에 나온 결정인지는 알 수 없다. 어찌됐든 그의 결단이 한반도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대단히 소중하다는 사실만큼은 변할 수 없다.

 

하지만 아직 낙관은 금물이다. 북·미 정상회담 성사 이후 미 주류세력의 공격은 더욱 거세졌다. 언론과 보수세력의 공격 목표는 북한에서 트럼프로 바뀌었다. “트럼프가 북한에서 양보를 얻어내기도 전에 북한의 선전전에 승리를 안겼다”(뉴욕타임스)는 식이다. 북한이 아무런 비핵화 양보 조치를 하지 않았는데도 대북 제재의 끈을 늦추고 관계 개선을 지향하는 제스처를 보였다는 비난이다. 그럼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하고 억류 미국인 3명을 석방한 것은 뭐라고 봐야 하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도 트럼프 공격에 가세했다. 한국 보수가 미국은 무오류의 국가, 미국 대통령은 무비판 대상이라는 금기까지 깨는 것을 보니 북·미 정상회담은 성공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트럼프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두 장의 사진이 눈길을 끈다. 2000년 클린턴과 조명록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그리고 4일 트럼프와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함께 찍은 사진이다. 클린턴과 조명록은 북·미 수교를 담은 공동코뮈니케를 도출했지만 이후 북·미관계는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의 집요한 방해로 공전하다 뒤이어 등장한 조지 부시 정권의 대북 강경책으로 파국을 맞았다. 이번 회담은 그때와 다르고, 또 달라져야 한다.

 

<조호연 논설위원>

 

Posted by KHross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미국 뉴욕으로 날아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만났다. 역사적인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불과 13일 앞두고서다. 세 번째 만남이지만 그 의미는 앞의 두 번과 비교가 안된다. 만남 자체가 회담의 청신호다. ‘회담이 성사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을 없애는 쐐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예상 밖의 기대감까지 일게 한다. 33년 전 미·소 정상회담을 앞두고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1985년 11월4일 조지 슐츠 미 국무장관은 모스크바로 날아갔다. 회담을 꼭 보름 앞둔 때였다. 로널드 레이건과 미하일 고르바초프(고르비)는 11월19~2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한 터였다. 슐츠는 왜 모스크바로 날아갔을까.

 

김영철 북한 노동당 대남담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왼쪽)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30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 38번가에 있는 주유엔 미국 차석대사 관저에서 만찬을 하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뉴욕 _ AFP연합뉴스

 

1985년 미·소 정상회담은 훗날 냉전 종식의 기틀이 됐다는 평가를 받지만 추진 과정은 쉽지 않았다. 당시 미·소관계는 북·미관계 못지않게 나빴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주둔, 폴란드 민주노조 탄압은 미국의 반발을 샀다. 강경한 냉전 전사 이미지의 레이건도 문제였다.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낙인찍고, 군축을 말하면서 ‘별들의 전쟁’으로 불리는 전략방위구상(SDI)을 발표해 소련을 자극했다. 그러면서 ‘평화의 십자군’을 자임했다. 소련은 그런 레이건을 ‘현대판 히틀러’라고 비난했다. 소련 지도자들의 건강 악화와 잇단 사망도 장애물이었다.

 

오지 않을 것 같던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다. 레이건이 신호탄을 쐈다. 그는 1984년 1월 “이 핵무기 시대를 살아나가려면 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선언했다. 레이건의 변화를 이끈 이가 슐츠다. 슐츠는 레이건을 정상회담으로 인도한 ‘셰르파’였다. 1982년 7월 국무장관이 된 슐츠는 레이건을 유연하고 실용적인 사고를 갖도록 이끌었다. 1년 뒤 기회가 찾아왔다. 1985년 3월 체르넨코의 사망과 젊은 지도자의 등장이었다. 고르비였다. 그는 레이건보다 20살 어렸다. 레이건은 친서를 보냈다. “빠른 시일 안에 워싱턴으로 초대하고 싶다.” 고르비는 긍정적이라면서도 장소와 시기를 이유로 시간을 끌었다.

 

그 바탕에는 레이건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었다. 그에게 레이건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일 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7월3일 두 나라는 정상회담에 합의했다. 고르비는 25년 동안 외교장관을 지낸 그로미코를 사임시키고 셰바르드나제를 앉혔다. 외교정책 변화의 신호였다. 하지만 10월이 되도록 의제조차 합의하지 못했다. 슐츠가 모스크바로 간 이유는 마지막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셰바르드나제와 고르비를 처음으로 만나 이견을 조율했다. 마침내 레이건과 고르비는 제네바에서 마주 앉았다. 그러나 세계가 놀랄 만한 합의는 나오지 않았다.

 

북·미 정상회담을 1985년 미·소 정상회담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상황도, 의제도 다르다. 두 주인공 트럼프와 김정은도 닮은 것 같으면서도 다르다. 그럼에도 북·미 정상회담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미·소 정상회담의 교훈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체제가 다른 강대국 간 회담은 한 차례로 성공할 수 없다는 점과 당장의 성과는 없더라도 계속 만나야 일이 풀린다는 점이다. 회담 성사는 군비감축에 대한 레이건의 의지와 미국과의 관계 개선과 내부 개혁을 원한 고르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만남도 마찬가지일 터이다. 미·소 정상회담은 ‘셔틀 회담’이라는 새 형식을 낳았다. 레이건과 고르비는 제네바 회담을 시작으로 1988년 뉴욕 회담까지 모두 5번 만났다. 그 결과 1987년 중거리핵무기폐기협정(INF)을 체결하는 등 군비경쟁을 줄이고 냉전의 마지막 시간을 평화적으로 바꿀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모든 정상회담은 향후 협상의 무대를 위한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데이비드 레이놀즈 교수는 1985년 미·소 정상회담 등을 분석해 펴낸 <정상회담>에서 효과적인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 지도자와 국가의 힘이 비슷해야 하고, 상호 신뢰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한다고 해도 북·미 간 군사력 차이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과거 트럼프와 김정은의 상호 비방의 역사를 보면 신뢰가 움틀 틈조차 없었다. 하지만 두 정상은 모든 악조건을 극복하고 정상회담에 합의했다. 레이건과 고르비의 일련의 정상회담에서 보듯 중요한 것은 두 정상 간의 화학작용, 보좌진의 상호 신뢰, 끈질긴 인내심이다. 6·12 북·미 정상회담에서 어떤 합의가 나올지 알 수 없다.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도 있다. 한반도 평화 정착의 중차대한 기로에 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낙관도, 비관도 아니다. 차분하게 지켜보는 일이다.

 

<조찬제 국제·기획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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