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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한국 정부, 사고 전제 ‘원자력규제위’ 신설해야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한국의 원전 정책에도 적잖은 변화를 가져왔다. 대통령 직속의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생겼고 원전 추가 건설이 보류됐다. 그러나 원전사고로 인한 ‘대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는 원전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의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 경향신문이 마련한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달라진 한국의 원전 정책’이라는 주제의 좌담회에 참석한 국내외 원자력 전문가들은 “원전 정책은 사고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좌담회에는 김용수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국제원자력기구 원자로재료물성DB센터장), 오다 다쿠지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전 도쿄대 교수), 김익중 동국대 의과대학 미생물학교실 교수(경주환경운동연합 연구위원장)가 참석했다.


 

4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열린 좌담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이 국내 원전 대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김익중 동국대 의대 교수, 김용수 한양대 원자력공학과 교수, 오다 다쿠지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_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 사고는 예측불가 상황서 발생… 한수원 “안전할 것”만 되풀이

안전 자신하며 정보공개 꺼려… 최소한 ‘인재’ 막을 대책 필요


-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일본의 원전 상황은 어떤가.

 

오다 다쿠지= 전체 원전 54기 중 52기가 안점점검을 위해 멈춰 있는 상태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후쿠시마 사고는 예상치 못한 영역에서 발생했다”면서 “반성과 함께 재발 방지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 직후에 일본 원전 정책은 의외로 많이 변하지 않았다는 게 솔직한 생각이다. 원자력규제청(NRA)이 신설되는 등 조직은 바뀌었지만 내용적으로는 거의 달라진 게 없다.


김익중= 설문조사에 따르면 일본 국민의 70%가 원전 재가동을 반대하고 있다. 일본 정부도 여론에 따라서 ‘탈원전’을 추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가 탈원전 쪽으로 방향을 바꿀 것이다. 현재 원전을 새로 짓는 나라는 많지 않다. 한국과 중국, 인도 정도다. 미국 등 나머지 선진국은 이미 체르노빌 이후부터 원전을 계속 줄이고 있다. 지난 30년 동안 위험한 원전을 계속 정지시키고 있다. 


-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한국의 원전 정책은 얼마나 변화했나. 


김익중= 지난해 11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월성 1호기의 안전상태를 점검하면서 대규모 정전에 대한 대비책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이미 비상전원 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정전은 있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는 대형사고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 경주에 건설 중인 방사성폐기물처리장도 마찬가지다. 폐기물 유출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대형사고에 대해 여전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일본 원전사고를 타산지석으로 삼으려는 노력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김용수=원안위가 할 일은 선제적 안전조치인데 늘 뒷북만 치고 있다. 원전 고장 및 사고, 납품비리 등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또 원안위 산하기관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의 연구기능도 강화돼야 한다. 미국의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규제만 하는 게 아니라 규제를 위한 연구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반면 안전기술원은 예산이 없어 한수원의 연구자료를 참고하고 있는 수준이다. 축적된 지식이 있어야 규제기관에 힘이 실린다.


김익중=국내 원전 규제기관은 ‘원자력규제위원회’가 아닌 ‘원자력안전위원회’다. 일본 등 주요 원전 국가의 안전을 책임지는 기관 명칭에 ‘규제’가 포함돼 있는 것과 대조된다. 지금 원안위는 원전 안전보다는 한수원의 대변인 역할만 하고 있다.


-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원전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다는 비판도 많다.


김익중=정부와 한수원이 갖고 있는 원전 정보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한수원에 정보공개를 청구할 때마다 제대로 된 답변을 듣지 못했다. 토론회나 공청회도 마찬가지다. 원전이 정말로 안전하다고 생각한다면 꺼릴 이유가 없지 않나. 


김용수=시민과 정보를 공유하고 학계와도 소통을 강화하면 한수원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알게 될 수도 있다. 안전한 원전 운영을 위해서라면 충분히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다. 일본은 한국보다 원전 정보공개가 투명하게 이뤄지고 있지 않은가. 일부 원전의 운영상황을 폐쇄회로(CC)TV로 주민들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오다 다쿠지=일본도 후쿠시마 사고 이전까지는 지금의 한국처럼 투명한 정보공개가 이뤄지지 않았다. 


김용수=한수원이나 원안위로서는 ‘정보를 은폐하고 있다’는 비판이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외부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그렇게 보일 수 있다. 정보공개 수준이 여전히 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 원자력안전위, 한수원 대변만… 해외의 규제역할 강조와 대조

전 세계적으로 노후원전 증가… 폐로·해체 당면 과제로 부상


- 원전사고의 근본 원인은 무엇이고 대비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김용수=‘원전사고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지금까지 일어난 대형사고는 기계적 결함과 기술자의 실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원전 자체의 안전 여부 못지않게 관리하고 운영하는 사람의 능력과 자세도 중요하다는 뜻이다. 체르노빌 등 지금껏 발생한 대형 원전사고는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검토해 사고에 대비한다고 해도 실제로는 대책이 부족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다.


오다 다쿠지=원전 기술자에 대한 집중적인 교육이 안전을 완전히 담보하지는 못한다. 30~40년 전만 하더라도 일본 원자력 분야는 인기가 많아서 그때 일을 시작한 우수한 인재들이 현재 원전업계를 이끌고 있다. 그럼에도 2년 전에 대형 사고가 터졌다는 것은 아무리 우수한 인재라도 원전 안전을 완전히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김익중=세계에서 원전을 가장 많이 운영하는 국가는 미국이다. 현재 103기를 운영하고 있다. 다음은 프랑스(58기), 일본(50기), 러시아(33기), 한국(23기) 순이다. 이중 미국과 일본, 러시아에서 대형 원전사고가 일어났다. 원전을 많이 운영할수록 대형사고가 터질 확률이 높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결국 원전 개수를 줄여야만 대형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특히 노후 원전은 폐로(수명이 다한 원전의 원자로를 처분하는 것)해야 한다. 후쿠시마 사고 당시 이 지역의 원전 10기 중 30년 이상 운영된 4기에서 사고가 터졌다. 원전 수명연장도 사고의 원인이 된다는 뜻이다.


- 최근에는 체계적인 폐로에도 많은 준비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데. 세계원전안전해체학회도 창립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용수=한국이나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낡은 원전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지난 후쿠시마 사고는 원전의 안전한 운영뿐 아니라 안전한 해체까지 생각하게 했다. 


김익중=앞으로는 원전 건설 시장보다 원전 폐로 시장이 훨씬 커질 것이다. 전 세계에서 운영되고 있는 원전 450기를 언젠가는 없애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폐로 기술을 축적한 국가는 현재 많지 않다. 국내에서 먼저 준비하면 국내 원전 안전은 물론 한국 산업계에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다 다쿠지=안전과 폐로를 같이 생각해야 하는 시점이니만큼 지금부터라도 구체적인 준비가 필요하다.



유희곤 기자 hul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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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국민 ‘탈원전 운동’ 수렴 실패 속 정치권은 우향우


일본 지바(千葉)현의 오다키마치(大多喜町)는 소규모 수력발전소를 반세기 만에 재가동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도쿄전력이 가동을 중단한 뒤 방치돼 있던 시설을 자치단체가 연말까지 보수해 재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도쿄만으로 흘러드는 마을 하천의 물을 유도관을 통해 끌어들인 뒤 낙하시키는 방식으로 생산되는 전력은 마을 110가구에 공급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에너지 자립을 위한 첫발을 뗐다는 데 의미가 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직후 태양광발전이 각광을 받은 데 이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농업용수로나 하수처리장에 수차를 설치하는 정도로 전기를 얻을 수 있는 소수력발전의 보급이 확산되고 있다.


3·11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전사고 이후 2년간 일본 각지에선 ‘에너지 지산지소’로 불리는 에너지 자립실험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지역에서 쓸 에너지를 지역에서 생산하자’는 움직임은 원전사고로 거대 전력회사의 독점 폐해가 백일하에 드러난 이후 기성질서로부터 벗어나려는 ‘원심력’이 작동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일본인 17만여명이 2012년 7월16일 도쿄 요요기공원에서 열린 원전 반대 집회 ‘안녕 원전’에 참석해 행진하고 있다. 이 집회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와 작곡가 사카모토 류이치 등이 주최했다. _ 경향신문 자료사진





▲ 아베노믹스·토건 부활·개헌… 약화된 ‘정치 구심’ 되살리기

지자체선 에너지 자립운동… 전력 독점구조 ‘이탈’ 움직임


정치권은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2년 전 대지진에 이어 지난해 중국과의 센카쿠(尖閣)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 등 안팎에서 위기가 조성되자 정치권은 급격히 보수화 흐름을 보였고, 민주당의 개혁실험은 좌절했다. 지난해 12월 총선을 통해 집권한 자민당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은 ‘강한 일본’을 외치며 재난 이후 약화된 ‘구심력’의 회복을 꾀하고 있다. ‘일본을 되찾겠다’는 자민당의 총선 슬로건의 속뜻은 50여년의 자민당 장기집권 과정을 통해 구축된 기성질서를 재확립하겠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안전이 확인된 원전은 재가동하겠다”고 선언해 ‘원전 마피아’의 이익을 보장하겠다는 의지를 비쳤다. 자민당 내각은 전력회사가 재생가능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을 의무매입하도록 한 제도에 대해서도 매입가격을 10%가량 낮출 것을 검토하는 등 재생에너지 확대에 제동을 걸 움직임을 보인다.


대담한 금융완화와 공공투자를 축으로 한 ‘아베노믹스’로 엔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수출 대기업은 쾌재를 부르고 있고, 대규모 건설기업들도 ‘토건주의 부활’에 대한 기대감에 들떠 있다. 반면 수입물가 상승은 가계의 주름살을 더 깊게 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기업들에 종업원의 임금 인상을 유도하는 등 유연한 태도를 보이곤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아베노믹스의 혜택은 대기업에 집중되고 있다. 일본 정치권에서는 헌법을 개정하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아베 정권의 우경화 노선을 견제할 세력이 보이지 않는다. 헌법의 개정요건을 완화하는 헌법 96조 개정에 자민당은 물론 민주당에서도 상당수 의원이 찬성하고 나선 것은 이런 현실을 뒷받침한다.


반면 원전사고 이후 ‘각성한’ 시민들의 움직임은 현실정치의 추진력이 되지 못한 채 고립분산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총선에서 ‘탈원전’을 내세운 정당들이 참패함으로써 구체제의 복귀를 막지 못하는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에너지 자립을 모색하는 움직임을 제외하면 뚜렷한 성과도 보이지 않고, 원전 2기의 재가동도 결국 저지하지 못했다. 지난해 도쿄 시내에서 17만명이 참가한 탈원전 집회를 개최한 시민그룹들이 오는 10일 전국 270곳에서 동시다발 탈원전 집회를 개최할 예정이지만 일과성 이벤트로 끝날 공산도 크다.


도쿄 | 서의동 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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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1년 만에 다시 찾은 도호쿠… 주민들 상처 치유 안돼


지난해 3월에 이어 1년여 만에 다시 찾은 동일본 대지진 피해지 이와테(岩手)현 리쿠젠타카타(陸前高田)시와 미야기(宮城)현 게센누마(氣仙沼)시는 거의 변화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복구가 더뎌 보였다. 


지난달 26일 신칸센 정차역이 있는 이와테현 이치노세키(一關)시에서 렌터카를 몰고 1시간여 만에 도착한 리쿠젠타카타시는 해안에 남아있던 ‘기적의 소나무’가 사라진 것이 가장 큰 변화였다. 기적의 소나무는 일단 베어진 뒤 방부처리 작업을 거쳐 오는 22일 그 자리에 원상태로 복원될 예정이다. 연안 도심부는 1년 전과 마찬가지로 공사차량들이 부지런히 오가고, 몇 채 남은 건물들을 철거하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었다.


연안 도심부에 유일하게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다카다마쓰바라(高田松原)’ 휴게소 광장에는 추도시설이 들어섰다. 수백년 된 소나무 7만여 그루가 장관을 이루던 경승지다. 건물 부근에는 나무를 깎아 만든 개의 형상이 건물 철거현장 쪽을 향해 놓여 있었다.


남쪽 해안도로로 30분쯤 달려 도착한 게센누마는 1년 전에 비해 항구 주변이 말끔해졌다. ‘상어박물관’ 앞 공터에 덩그렇게 놓여있던 소형 어선도 치워졌고, 해안 부근의 공공기관 합동청사도 철거됐다. 쓰나미에 떠밀려온 60m 길이의 거대한 ‘제18 교토쿠마루(共德丸)호’에는 조그만 탁자가 마련돼 참배객들을 맞이했다. 게센누마시는 이 선박의 철거 여부를 주민들의 의견수렴을 거쳐 조만간 결정하기로 했다.


지진과 쓰나미를 피해 대피한 한 일본인 남매가 이시노마키시의 철길에 앉아 있다. (경향DB)


게센누마의 항구 부근에는 가건물로 부흥상가가 지어지는 등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지만, 주민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는 거의 치유되지 않고 있다. 교민 이미나씨(45)는 “대지진 이후 치매나 우울증에 걸린 노인들이 크게 늘어났고, 등교를 거부하거나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아이들이 많아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아사히신문이 동일본 대지진 피해지역인 이와테·미야기·후쿠시마(福島) 3개 현의 42개 시·정·촌 단체장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복구와 부흥작업 완료 시기를 6~10년 후로 전망한 응답이 절반을 넘는 22명에 달했다.



리쿠젠타카타(이와테)·게센누마(미야기) | 서의동 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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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오염 흙 걷어내고 채소 키웠지만, 양심상 내다 팔 자신 없어”


“정부는 돌아와도 좋다고 귀향을 권하지만, 슈퍼마켓도 의사도 제대로 없으니 돌아와봤자 소용없어.”


지난달 25일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20여㎞ 떨어진 후쿠시마현 히로노마치(廣野町)의 한 농가에서 만난 고하타 가쓰히로(木幡勝廣·70)는 “왜 귀환하지 않느냐”고 묻자 이렇게 되받았다. 고하타는 차로 30분쯤 떨어진 이와키(磐城)시의 임대주택에 부인과 살면서 1주일에 4~5번씩 히로노의 집에 들른다. 텃밭 일부에 설치한 비닐하우스에 무, 콩 등 채소를 재배해 먹는다. 방사능에 오염된 흙을 걷어낸 뒤 새로 흙을 깔고 최대한 신경써 재배했지만 양심상 내다팔 자신은 없다. 쌀농사도 진즉에 그만뒀다. 세슘 허용치가 ㎏당 100베크렐(㏃) 이하면 농산물을 출하해도 된다는 정부의 설명을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슘이 100㏃ 나오면 안되고 90㏃ 나오면 건강에 문제가 없다는 것인가. 젊은 사람들은 부모가 지은 쌀도 안 먹는 판인데 농사를 지을 수 있겠어?


후쿠시마 원전에서 3㎞ 떨어진 후타바마치(雙葉町)의 신축 아파트에 살던 딸네 식구들은 3·11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사고 이후 수도권의 사이타마(埼玉)현으로 피난한 이후 발길을 끊었다. 고하타의 집엔 고교 시절 소프트볼 선수였던 딸의 사진과 손자 사진이 벽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딸네 식구가 안 와 섭섭하긴 하지만 이런 곳에 아이를 놔둘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지….” 



방사능 오염 흙·나뭇가지 수거 지난달 25일 후쿠시마현 히로노마치의 한 농가에서 방사능 오염 제거 작업인부들이 농가의 밭 표면에서 걷어낸 흙과 나뭇가지들을 수거해 비닐포대에 담고 있다. 히로노마치(후쿠시마) _ 서의동 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 “슈퍼·의사 없어 귀향 꺼려” 첫 귀촌선언 마을 15% 그쳐

곳곳 제염작업… 누락 많아, 정부 목표치의 4배 오염도


■ “슈퍼마켓도 의사도 없어 돌아와도 헛일”


2011년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전사고가 발생한 지 2년을 맞아 지난달 25일 후쿠시마 원전 반경 10~30㎞ 권역인 후쿠시마현 히로노마치와 가와우치무라 현지를 찾았다. 히로노마치는 원전1호기가 폭발한 다음날인 3월13일 정장(町長·한국의 읍장에 해당)이 전 주민 피난지시를 내렸다. 주민들은 원전 반경 40~60㎞ 떨어진 이와키와 고리야마 등지로 대피했다. 1년이 지난 뒤인 지난해 3월 말 정장이 ‘귀환’ 메시지를 내렸고, 그로부터 또 한 해가 지났지만 귀환한 주민은 737명(2월 현재)으로 전체 주민(5541명)의 13%에 불과하다. 보육원과 초·중학교도 지난해 2학기부터 수업을 재개했지만 학생 수가 569명에서 103명으로 줄었다. 그나마 히로노마치에 거주하는 학생은 36명뿐이고 3분의 2는 25㎞ 떨어진 이와키에서 스쿨버스로 통학한다. 의료인력이 절반으로 줄어든 것도 귀향을 꺼리게 한다. 히로노마치에 치과의사는 단 한 명도 남아있지 않다. 


이날 방문한 히로노마치 일대의 방사선량은 0.2마이크로시버트(μ㏜) 안팎으로 도쿄의 4배 정도 수준이다. 정(町)사무소 입구에 설치된 측정기는 0.08μ㏜를 가리켰다. 2011년 말부터 1년 넘게 ‘제염’으로 불리는 방사능오염물 제거작업을 실시한 결과다. 렌터카를 몰고 돌아본 히로노마치 곳곳에서 방진마스크에 헬멧을 쓴 작업원들이 가로수 부근의 흙을 걷어 검은색 비닐포대에 담는 광경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주민들은 제염작업을 신뢰하지 않는다.


“정부가 생활반경 20m 전체에 대해 제염작업을 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론 빠지는 곳이 적지 않아요.” 


히로노마치 기초의원 하타나카 히로코(畑中大子·63)는 “트랙터가 들어가지 않는 텃밭 등은 업체들이 제염작업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고하타도 집 마당의 나무를 잘라달라고 요구했지만 미루는 바람에 30만엔(약 350만원)을 들여 벌목했다. 게다가 막대한 비용에 비해 효과가 신통치 않다. 아무리 고압살수기를 동원해도 콘크리트의 미세한 구멍에 들어가 박혀 있는 방사성물질은 걷어낼 수 없다. 고하타의 집 지붕도 제염을 했지만 시간당 방사선량이 정부 목표치(시간당 0.23μ㏜=연간 1밀리시버트(mSv))의 4배인 0.9μ㏜나 돼 지붕 교체를 요구하고 있는 중이다. 


“처음엔 마을 삼림도 제염하겠다고 하더니 차일피일 미루고 있어. 하긴 삼림에 쌓인 방사능 오염을 무슨 수로 제거할지 의심스럽기도 하고.”(고하타) 





■ 주민 떠나버린 마을엔 중장비와 대형트럭만 


히로노마치는 일본 정부에 의해 긴급사태 시 피난준비구역으로 지정됐다가 지난해 해제됐다. 700여명의 주민들이 돌아왔다고 하지만, 이곳에 머무른 3시간 남짓 동안 거리에서 마주친 것은 헬멧과 마스크를 쓴 작업원들과 대형 덤프트럭뿐이었다. 제염작업, 방사성폐기물 임시적치장 설치공사 등으로 히로노마치에만 75억엔(약 810억원)의 정부예산이 지원됐고, 이에 따라 3000명에 이르는 공사인력들이 히로노마치 곳곳에서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인부들이 이와키에서 차를 이용해 원전 부근 마을로 출퇴근을 하는 바람에 간선도로가 새벽부터 정체를 이룬다. 히로노마치의 제염사업을 수주한 회사는 일본 굴지의 건설업체. 이 회사는 원전 건설에도 참여하고 있다. 하타나카 의원은 “원전을 지으며 배를 불린 대형 건설업체들이 제염작업도 도맡으면서 이중으로 돈을 벌고 있다”며 혀를 찼다.


바다를 낀 산촌마을로 아름다운 풍광이 일품이던 히로노마치는 사고 이후 살풍경으로 바뀌었다. 주민들이 즐겨 찾던 후타쓰누마 종합공원에는 도쿄전력 하청기업의 사무실이 들어섰다. 공원 부지에는 작업차량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해변 쪽 화력발전소 부근에는 방사성폐기물 적치장 건설이 한창이었다. 전쟁으로 주민들이 떠나버린 마을을 점령군이 장악한 듯한 ‘부흥특수’의 기묘한 풍경이다. 


“우리 같은 노인들이야 어떻게든 돌아와 살겠지만 젊은이들은 살 수 있겠어? 나도 언젠가는 돌아와 살고 싶지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어.” 고하타의 이마에 팬 주름이 더 깊어졌다.




■ ‘부흥의 선두지역’조차 주민 귀환은 15%에 불과 


히로노마치에서 내륙으로 1시간쯤 달려 도착한 가와우치무라(川內村)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원전 반경 10~30㎞ 권역이지만 방사선량이 비교적 낮아 피난준비구역 중에서 가장 먼저 ‘귀촌선언’을 한 마을이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부흥의 선두지역’이라고 치켜올리기도 했지만 3800명의 주민들 가운데 지난달까지 422명(15%)만이 돌아왔을 뿐이다. 그나마 가와우치무라는 도쿄, 오사카 등에서 4개의 기업이 진출하면서 일자리도 생겼고, 지난 1월26일에는 독일 기업이 이곳에 대규모 태양광발전소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유기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이용한 채소공장도 4월부터 가동해 오염걱정 없는 신선채소도 공급된다. 주민 거주 공간의 방사선량도 정부의 목표치인 시간당 0.23μ㏜를 거의 달성했다. 촌사무소에서 만난 요코다 마사요시(橫田正義·51) 제염계장은 “피난지에서 취업을 하며 정착한 이들도 적지 않다”며 “완전한 귀환은 아니지만 피난지와 이곳을 오가며 생활하는 이들을 합하면 1000명쯤 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NHK방송이 이곳 엔도 유코(遠藤雄幸) 촌장의 귀촌분투기를 방영할 정도로 주목받은 마을이지만, 방사능오염폐기물 임시적치장을 확보하지 못해 비닐포대들이 밭이나 민가 주변에 그대로 쌓여 있었다.


■ 인적 끊긴 원전 주변 지역…‘소와 충돌 주의’ 입간판


후쿠시마에서 주민들이 거주할 수 있는 한계선은 히로노마치 정(町)사무소 부근이었다. 이곳 이북지역은 식당, 휴게소, 펜션 등이 모두 문을 굳게 닫았고, 편의점에 도시락을 사러 오는 작업복 차림의 인부들만이 눈에 띌 뿐 주민은 그림자도 찾기 어렵다. 원전 반경 16㎞ 나라하(楢葉) 마을 부근의 휴게소에서 차를 잠시 세우고 방사선량을 재자 0.4~5μ㏜로 뛰었다. 원전사고 직후 나라하 마을주민의 임시 대피시설로 쓰였던 국도변 휴게소에는 ‘소와 충돌, 감속’이라는 경고 입간판이 눈에 띄었다. 주민들이 돌보지 않아 야생화된 소들이 먹이를 찾아 도로변 쪽으로 출몰하면서 통행차량과 부딪치는 사고가 잦기 때문이다. 


원전 반경 12㎞ 도미오카(富岡)의 경찰통제선 부근의 폐쇄된 편의점 주변엔 철제 재떨이가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었었고, 인적 끊긴 주유소에는 지진으로 갈라진 콘크리트 바닥을 뚫고 잡풀들이 무성히 자라고 있었다.


히로노마치·가와우치무라(후쿠시마) | 서의동 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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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