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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에 무엇에 대해 글을 써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 질문에 돌아온 대답이 ‘밖에서 본 안’ 혹은 ‘안에서 못 느꼈던 밖’ 이라는 것에 꽤나 당혹스러웠다는 걸 인정해야 겠다. 외국에서 살고 공부하면서 한국에 대해 생각해보고, 공부하는 내용(내 경우는 ‘환경’이다. 환경을 파괴하지 못해 안달난 나라에서 살다가 온 내가 지금 이 곳에서 ‘환경을 파괴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를 공부하고 있다)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려울 수도 있고 쉬울 수도 있다. “왜 이런 거 있잖아, 완전 희한하지 않냐?” 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은 많다. 책임지지 않아도 되니, 그런 이야기를 꺼내 놓는 것은 쉽다.
하지만 나라는 한 인간이 느끼거나 배울 수 있는 절대적인 경험치는 분명히 존재하고, 그것을 단순히 어떻더라 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이건 이렇다’라고 단순화시키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스스로 피하고자 하는 부분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재미는 있다. 파시즘도 원래 모든 것을 단순화 시키고 흥미롭고 왠지 나름의 논리가 개인적인 체험과 맞물려 말이 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니까. 아, 너무 멀리 나갔다. 그저 앞으로 내가 말하는 것이 때로는 자의식 과잉에 편견 섞인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점을 먼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 뿐이다. 약간은 불친절할지도 모르는 글에 대해 ‘이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하는 정도의 포용을 바라는, 미리 드리는 사과문으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다.


나는 현재 뉴욕주립대에서 환경공부를 하고 있다. 시러큐스(Syracuse) 라는 작은 도시에 있는 환경산림대학원에서 논문과 고군분투하는 중이다. 시라큐스는 어감이 예뻐 좋아했는데 근처 로마(Rome)나 트로이(troy) 같은 지명으로 짐작해보건대 이탈리아 어딘가의 마을 이름이지 않을까 싶다.
인구대비 공원 수가 가장 많은 도시 중에 하나라고도 한다. 뉴욕이 세계 무역의 중심지였을 무렵, 뉴욕과 캐나다를 잊는 수로가 지나가는 주요도시 중 하나가 이 곳이었고, 그 시절의 잠시 동안 깜짝 번성기간이 있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할 얘기가 정해졌다. 대 호수(Great Lake)와 뉴욕시티(NYC)를 잇는 Erie canal, 이리 수로 혹은 운하.

무려 1825년에 완공된 이리(Erie) 운하는 위에서 잠시 말했듯, 뉴욕과 맞물려 있는 대서양으로 물건을 운송하기 위해 만든 교통시설이다. 미국은 땅덩이가 실제로 보고 느껴봐야 정말 크구나 하고 체감하게 될 정도의 넓은 나라라 내륙에서 해안으로 물건을 운송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택배를 신청하면 아주 빨라야 3일, 평균 일주일, 늦으면 한 달도 걸리는 곳이니까.
그런 지역에 있으면 좀 더 빠른 운송수단을 찾는 일은 ‘그렇게 이상하지 않은’ 일이 된다. 어딘가의 ‘정비’ 사업과는 다르게.



어쨌든 1807년에 사업을 신청한 이 새로운 운하는 뉴욕시티를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콘크리트의 정글로 만드는데 이바지했다. 그리고 그 다른 쪽 끝인 그레이트 레이크의 도시 버팔로(Buffalo), 수로가 지나가는 도시들, 로마, 유티카(Utica), 시러큐) 그리고 마지막 알바니(Albany) 또한 호황을 누렸다.
그 호황은 190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덕분에 미국의 많은 인구가 뉴욕 주로 이주하게 되었고, 많은 관련 산업들이 발전했다. 그 때 이주했던 사람들의 후손들은 이 초록이 많은 곳을 떠나지 않고, 그 산업의 아주 일부 역시 남아있다.
그 때의 사람과 그리고 주인이 떠난 산업 현장들은 아직도 그 때의 영광을 되살리기 위해 아직도 노력하고 있다. 이미 이리 운하를 대신한 뉴욕주 바지 운하(New York State Barge Canal)도 그 쓰임새가 사라졌지만 말이다.

그래서 지금은 어떤가. 이리 수로의 물은 거의 다 말라붙었고, 말라 붙지 않은 물이 남아 있는 역사적(!)인 곳들은 주민들이 찾는 관광지가 되었다. 실제로 운송이 행해졌던 곳들은, 마치 이란의 페르세폴리스 같은, 그 정도의 아우라는 없지만 당연하게도, 그런 유적지 같은 느낌만 남아 있다.

사실 페르세폴리스는 좀 과장이지만, 길을 잃어 버팔로 시내 어딘가를 지나갈 때, 그 항구의 모습은, 몇해 전 페르세폴리스의 폐허에 야생화만 피어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와 같은 애잔함이 느껴졌다.
그 잠깐의 호황은 황홀했었고, 인간의 기술력에는 한계가 없는 듯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운송의 어려움과 동시에 실업률까지 해결한 그 곳에 남은 것은 후광조차 없는 쓸쓸함이라니. (그럼 대체 이 정도의 이유도 없이 진행될 많은 사업들은 어떤 종말을 맞을까.)



환경공부를 하고 있자면 이런 폐허의 이미지를 자주 떠올리게 된다. 개발(Development)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은 무엇을 말하는 건가? 과연 지속가능한 개발(sustainable development)은 양립 가능한 말인가?
세상을 이렇게 만든 원인은 뭔가? 세상을 움직이고 있는 경제(economy)는 뭔가? 그렇다면 대안으로 나온 생태적 경제(ecological economy)는 어떤 점에서 대안인가?

이런 물음에 부딪칠 때면 나는 언제나, 현 체제에 문제가 있어 나온 대안 역시 인간이 만든 제한적인 것들이고, 이미 존재하는 문제 많은 프레임에 다른 재료만을 슬쩍 올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은 저렇게 전부 폐허가 되고 말 텐데.

하지만 그래서야 세상이 멸망할 때 사과나무를 하나 더 심는 마음가짐이 되겠냔 말이다. 수송이 필요했던 이 곳에서도 남은 것이 애잔함뿐이라면, 필요하지 않은 곳에서의 이유 없는 파괴 정도는 막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가능성이 보이지 않지만 옳다고 여기는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것, 바로 이익이 오지 않더라도 전체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그게 어쩌면 환경을 공부하며 혹은 세상을 알아가며 희망이 없다고 여겨질 때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아닌가 싶다. 나부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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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
임혜지 님은 한국에서 태어나 독일로 이주, 칼스루에 공과대학 건축과에서 공부하고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뮌헨에서 살면서 프리랜서로 독일 문화재청 문화재 실측조사와 발굴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여기 실린 글들은 임혜지 님의 개인 블로그 <빨간 치마네 집>(http://hanamana.de)에 실린 것을 옮겨오는 것임을 밝혀둡니다.


원래 뮌헨은 운하의 도시였다. 12세기 건립 이래 19세기까지만 해도 베니스처럼 운하가 뮌헨 시내에 실핏줄처럼 촘촘히 얽혀 있었다. 지금은 시내의 거의 모든 운하가 자동차 도로와 지하철에 밀려 복개되거나 폐쇄되었지만 인구 몇 만의 작은 도시였을 때에도 총 운하 길이가 70km였다니 그 장관을 상상할 수 있겠다.


 

오늘의 피스터 거리(Pfisterstr.)에 있던 피스터 천, 1907년 사진. (출처 위키페디아 링크)

 

Mueka_Stadtplan15

1613년 뮌헨 지도 (출처 위키페디아 링크)



뮌헨과 인접해 흐르는 이자르 강은 알프스를 흐르는 산악하천답게 물살이 빠르고 계절에 따라 물이 불었다 줄었다 해서 수위가 불안정하고, 수많은 잔가지를 만들며 이리저리 구불구불 흐르다가 홍수라도 한번 나면 엉뚱한 곳에 새 물길을 내기 일쑤였다. 그래서 주민들은 물을 안전하게 이용하기 위하여 이자르 강보다 높이 위치한 도심 쪽으로 운하를 파서 강물을 시내로 끌어들였다.

주민들은 운하의 물을 이용해 농사짓고 물레방아를 돌려 밀가루를 찧었다. 운하는 도시의 오폐수를 흘려보내는 하수구로 이용되기도 했고, 이자르 강을 통해 먼 곳에서 온 와인이나 건축자재를 도심으로 운송하는 뱃길 역할도 했다.


Mueka_Pfisterbach15

밀가루를 빻아 왕궁에 조달하는 빵을 굽던 뮌헨의 물방아간. 오른쪽에 보이는 난간 밑으로
1960년대까지 운하가 흘렀다. (현재의 Pfistererstr와 Sparkassestr 모퉁이)




옛날부터 이자르 강의 홍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어서 계절 따라 강물이 넘쳤지만 강 주변을 넓게 비워두어 인간에게 미치는 범람 피해는 거의 없었다. 인간은 수만 년 동안 강을 이용하면서도 강의 본성에 적응하며 살았다.

유럽에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인간과 강 사이에 처음 변화가 생겼다. 많은 농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오자 도시 인구가 갑자기 늘어났다. 인구가 급증하니 집값이 올랐고 가난한 이들은 범람의 위험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땅값이 싼 강변에 집을 마련했다.
이때부터 홍수가 날 때마다 인명피해와 재산피해가 나기 시작했고, 인간은 산업혁명으로 발달한 과학기술의 힘을 빌려 강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강물이 이리저리 넘치며 흐르지 않도록 강바닥을 깊이 팠고 강변에 둑을 쌓아 강물을 가두었다.

1888년부터 이자르 강에도 이런 공사가 있었다. 그러자 강변으로 넘쳐나며 흐르느라 힘을 소진하던 물살이 강변이 강둑으로 막히자 남아나는 힘으로 강바닥을 강타하여 깎아냈다.
강바닥이 낮아지자 강변 지하수도 내려갔다. 질척질척하던 강변 토지에서 물이 빠져버리니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고 집을 짓고 살기에도 좋아졌다. 가용할 땅도 생겨, 홍수도 막아,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었다. 물방아간이나 증기기관차 공장처럼 물을 이용하는 시설을 이제는 강가에 세울 수 있게 되었으니, 도심에 있는 운하의 필요성도 점차 줄어들었다.

때마침 산업혁명의 꽃이라 불리는 전기가 발명되자 독일은 2차 산업혁명의 기수답게 19세기에 이미 이자르 강에 수력발전소를 건설했다.(주1)

강변에는 전기와 증기를 이용한 공장들이 세워졌다. 수력발전은 일정하게 흐르는 물을 필요로 했기에 강 옆에 수로를 만들고 강물을 빼돌려 가둬두었다가 이용했다. 물이 인간의 유일한 동력자원이던 시절, 유럽에서는 이렇게 강을 중심으로 공업이 발달하고 강변 도시가 새로 생기거나 발전했으므로, 그곳에 흐르는 강에도 그런 역사적 흔적이 남았다.



Mueka_Tivoli15

뮌헨 티볼리 수력발전소. 1896년 건설, 증기기관차 공장과 제분소를 위한 전력 생산.
1985년 문화재 등록, 0.9MW (현재 유럽에 세워지는 신형 풍차 한 대의 전력은 5MW).



Mueka_Baeckermuehle15

뮌헨의 개인소유 수력발전소 벡커뮐레. 원래는 역사적인 물방아간이었는데
1988년부터 터빈을 달아 소량의 전력 생산(0.138 MW).  


그런데 강을 굴착하고 직선화한 지 20년 쯤 지나자 이자르 강에 이변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니, 공사의 후유증은 진작부터 있었지만 이때부터 인간에게 피해를 입힐 만큼 커졌다는 말이 맞겠다.

강바닥과 지하수가 내려가고 강변 토지에서 물이 빠져버리자 그 땅을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문제는 강바닥과 지하수가 계속 하강했다는 점이다.
1910년경에는 강바닥이 공사 이전에 비해 10m 더 내려갔다. 그러자 나무가 뿌리를 내려도 지하수에 도달하지 못해 인근 숲이 죽어갔고 농사를 지을 수도 없었으며 우물을 깊게 파도 지하수에 도달할 수 없어 주민의 안녕이 위협받게 되었다.

1910-1920년 사이에 이자르 강에서는 다시 한번 대대적인 하천공사가 일어났다. 이번에는 지난 공사의 후유증인 지하수의 하강을 막기 위한 조치가 취해졌다. 강바닥에 200m 간격으로 일정하게 50-60cm 높이의 콘크리트 단을 만들어 강바닥을 강타하던 물살의 힘을 그곳으로 유도했다.
바닥 경사가 특히 급한 곳에는 콘크리트로 강화한 인공폭포나 폭포수 계단을 만들기도 했다. 이를 통해 강바닥이 더 깊이 패는 현상과 그에 따르는 지하수의 하강을 일단 막을 수 있었다.

이렇게 인공으로 인한 피해를 더욱 강력한 인공구조물을 통해 막아나가는 동안 강은 점차 본연의 모습을 잃어갔다. 수목과 모래톱이 어우러졌던 물가는 검푸른 이끼로 미끌거리는 콘크리트와 돌 벽에 갇혀 흐르는 수로로 바뀌었지만 사람들은 그런 모습에 점차 길들여져서 문명 세계의 강은 다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문명 세계의 강은 외형만 변한 것이 아니었다. 옛날에는 자연의 법칙에 의해 들고 나던 강이 이제는 시도 때도 없이 예기치 않게 넘쳐올라 인명과 재산을 위협했다. 사람들은 보다 나은 과학기술의 힘으로 보다 강력한 둑을 지어가며 이에 맞섰다.

그러나 두 차례 세계대전을 치루고 자연과 맞서는 인간의 능력이 최고조에 달한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유럽인들의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홍수의 재앙이 날로 심각해지는 이유가 바로 선조들의 하천공사에 있다는 것을(주2)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주3)
어떤 기술로 어떤 둑을 쌓아도 인공적으로는 홍수의 위력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이 수학적으로 계산되고 증명되었다.(주4)


Mueka_Rhein640
라인 강 보 설치와 100년 빈도 홍수의 상관관계. 세로축은 홍수 수위, 가로축은 보 설치 년도.
1928년 최초의 보 설치 이후 1950년대부터 보를 줄줄이 건설하기 시작하면서 라인강의 홍수 간격은 짧아져
100년 빈도 홍수가
최근에는 몇 년 간격으로 일어난다. 아울러 라인 강에서 전혀 일어나지 않던
식물성장기 홍수마저
일어나는 이변이 생겼다(검은 막대).

(출처: 독일연방 자연보호ㆍ생태계 연구소, 휘긴/헨리히프라이제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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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강을 자연으로 되돌리는 작업만이 가장 저렴하게 홍수 재앙을 막을 수 있다는 인식이 정부와 학자들 사이 팽배했지만, 하천 건설업계의 로비 또한 치열했다.
일단 보나 댐을 건설해 강을 막으면 그 후유증을 막기 위해 하류 쪽에 보나 댐을 계속 건설해야 하므로(주5) 건설업체의 입장에서 보나 댐 공사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그런 이유로 도나우(다뉴브) 강에 보나 댐을 설치하려는 RMD AG(라인-마인-도나우 운하를 건설한 업체)에 대항하기 위해, 독일에서는 여전히 강변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이 매년 대대적인 데모를 벌이고 있다.(주6)

유럽인을 홍수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유럽연합은 2000년부터 ‘물관리 기본지침’을 시행하고 있다. 이 지침은 2015년까지 가능한 한 모든 강을 자연으로 되돌리고, 불가능할 경우라도 되도록 자연에 가까운 상태로 복원하도록 정하고 있다. 또한 엄중한 벌칙금 제도를 통해 회원국들을 단속하고 있다.(주7)
유럽에서는 큰 강이 인접하는 여러 국가를 거치면서 흐르기 때문에 상류에 위치한 회원국이 잘못해서 환경이 파괴되면 그 피해가 하류에 위치한 다른 회원국에 전가되기 때문이다.

2015년이 5년 앞으로 다가온 현재, 모든 회원국은 국내법을 ‘물관리 기본지침’에 맞추어 크고 작은 강의 재자연화 공사를 시행하고 있다. 특히 독일 이자르 강의 뮌헨 구간 복원공사는 성공사례로 손꼽혀 미국과 러시아까지 벤치 마킹하기 위해 답사단을 파견하고 있다.

뮌헨 이자르 강 복원공사의 매력이자 어려움은 인구밀도가 매우 높은 도심 구간을 되도록 자연으로 되돌리는 시도를 했다는 데 있다.
독일의 3대 대도시이자 독일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뮌헨 시내를 관통하는 이자르 강이니, 건물이며 도로들이 강변에 얼마나 바짝 붙어 들어섰겠는가? 그럼에도 홍수피해를 막고 시민에게 도심 휴식처를 제공하기 위해 강변에 남은 자투리 땅을 이용해 복원공사를 벌인 수고가 얼마나 컸겠는가?



Mueka_Flaucher15

이자르 강 시내구간의 재자연화공사



또 다른 이자르 강의 핸디캡은 역사의 흔적이 상처처럼 남아 있는 강이라는 점이다.

이자르 강에는 산업화 과정을 보여주는 고색창연한 수력발전소 뿐 아니라 하천공사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강바닥에 박아놓은 인공 폭포수 계단 같은 인공구조물들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손댈 수 없다. 그
러나 포기하지 않고 강을 한 뼘이라도 자연으로 되돌리려는 독일인들의 노력이 얼마나 눈물겨운지... 독일을 오늘의 기술 강국으로 키워준 조상의 업적은 그대로 존중하고 보존하되 미래를 살아갈 후손이 입게 될 환경피해는 조금이라도 줄여주기 위해 안간힘 쓰는 마음씨가 갸륵하다.

제 나라에서 이렇게 극진히 보살핌 받는 이자르 강이 요즘 엉뚱하게도 남의 나라에서 수난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측 전문가들은 이자르 강바닥이 더 내려가지 않도록 100년 전에 설치한 구조물을 새로 만든 보와 댐이라 우기고(주8) 수많은 보들이 물을 막고 있어 이자르 강물이 깨끗한 것이라고 법정에서 위증하고 있다.(주9)
이자르 강 뮌헨 전체 구간에 위치한 수력발전소 8개를 합쳐도 오늘날 북해에 줄줄이 설치되는 현대식 풍차 세 대가 생산하는 전력량에도 못 미치는데,(주10) 이를 두고 "독일은 강을 활용하는 선진국"이라서 잘 산다고 말한다.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건지 금방 들통 날 거짓말을 상습으로 하는 건지, 참 예의도 없고 자존심도 없다.



Mueka_Fall15

한강소송  법정(2010. 6. 18.)에서 정부측 전문가가 이자르 강의 보라고 위증한 구조물.

이 구조물은 강을 가로막는 보가 아니라 두 개의 섬 사이에 위치한 낙차공이다.

이 장소는 중세시대부터 뗏목이 정박하던 선착장이었고, 이자르 강보다 높이 위치한
뮌헨 시 가까이로 뗏목을 대려고 강을 일부 막아 수위를 끌어올렸다.
높아진 물이 이자르 강으로 되돌려지는 곳에는 낙차가 생겨 그 부분의 강바닥을 보호하기 위해
인공폭포처럼 생긴 낙차공을 만들었다. 1873년 건축, 문화재 지정.

(이자르강 총 책임자 슈테판 키르너씨가 2010월 7월 5일 오후 2시 필자와 전화통화에서 확인)


 
Mueka_kaskade15

위의 뗏목 선착장과 함께 문화재 앙상블로 지정된 5단 짜리 카스카덴(폭포 계단).

이자르 강 직선화공사 이후 강바닥이 패는 현상이 생기자 100년전에 설치했다.
(이자르강 총 책임자 슈테판 키르너 씨가 2010년 7월 5일 오후 2시 필자와 전화통화에서 확인)


 
IsarFl3

한강소송 법정(2010. 6. 18.)에서 정부측 전문가가 이자르 강의 보라고 위증한 구조물.
이 구조물은 정부측 전문가가 주장하듯이 유량확보를 위해 물을 막는 보가 아니라
강바닥을 보호하는 하상보호공이다(높이 2.5m). 위에 얹은 다리가 100년 되었으니까
그 밑에 있는 하상보호공은 더 오래된 것이다.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철거하지 못하는 이유는,
철거하려면 물의 압력을 분산시키기 위해 강변에 좀 더 많은 공간이 필요한데 공간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장소(Flaucher)는 중세 때부터 뮌헨으로 들어가는 운하가 시작되던 곳이다.

(이자르강 총 책임자 슈테판 키르너 씨가 2010년 5월 10일 오전 8시 필자와 인터뷰에서 확인)
 


우리 조상들은 독일과 같은 기술강국의 초석을 놓지는 못했지만 그 대신 독일처럼 강을 손상시키지 않고 잘 보존해주었다. 어찌 보면 우리는 전화위복의 행운아들이다.
그런데 현재 정부는 강을 훼손해서 조상의 공덕을 단숨에 날리고 후손에게 재난과 빚만 물려주려 하는데, 우리는 이를 방관하고 있으니 정말이지 조상과 후손에게 면목이 없다.

지금 망쳐지는 강은 다시 되돌릴 수 없고, 그 피해는 가지를 치며 퍼져나간다. 이것이 자연의 섭리다. 이것은 역사상 처음으로 자연에 도전해 강을 굴복시켰다고 믿었던 산업혁명의 기수들이 150년 만에 깨달은 과학적 진실이다.

내 가족을 위해 밥짓는 일이 아무리 급하더라도 동네로 들어오는 산불부터 끄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리 바쁘더라도 조상이 물려준 집도 날리고 어린 자식들에게 빚만 잔뜩 남기는 계약서에 찍히는 도장 단속부터 해야 하지 않겠는가? 4대강 사업은 아직 반도 끝나지 않았다. 한 삽이라도 더 뜨기 전에 막아야 한다.


9월 11일 토요일, 저의 몸은 독일에 있지만 저의 영혼은 서울광장의 10만 명 인간 띠잇기 행사에 참여할 것입니다. 부디 저와 함께하셔서 4대강 사업을 기필코 막겠다는 국민의 의지를 표현해주세요. 지방에 계시는 분들도 그날 가까운 곳에 행사가 있는지 살펴서 꼭 참여해주세요.

거짓말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누구 말이 옳은지 모를 수밖에 없는 국민들을 위해 한글로 옮겨진 독일 자료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방문해주세요.



뮌헨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임혜지 드림.




<주>

주1: "1894에 건설된 뮌헨의 이자르베르케 (Isarwerke GmbH)는 독일에서 최초로 지역 공급을 담당한 수력발전회사였다." (독일 엔지니어 연맹이 발간한 '전기의 역사' 링크)

주2: "홍수 발생의 주 원인들: ...하천에 대한 공사가 특히 주 원인이다. 개천과 하천에 대한 직선화, 강기슭의 강화, 강바닥의 준설 등의 공사는 강물이 흐르는 속도(유속)를 높인다. 강 상류에서 물이 불어난 경우 강물은 매우 빠른 속도로 강 하류로 흐르고 강 하류에 위치한 주거지역은 홍수의 위협에 처한다. 일종의 문제전이(Problemverlagerung)현상이다." (독일 연방환경부에서 2009년에 제작한 교사용 학습교재 "강, 물 이상의 존재" 50쪽, 원문 링크, 번역 링크.

주3: “오늘날의 하천공사는 근대에 있었던 초기의 수리시설공사와 확연히 구별된다. 지난 수십 년간의 경험을 통해, 하천환경의 어느 한 곳에 변화를 주면 국지적 이익을 얻을 수 있지만 그로 인해 하천체계는 폭넓게 손상되고 그 피해효과는 오래 지속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뮌헨 공대의 수리학연구소 소장인 동시에 오버나하 수리모형실험연구소 소장을 역임한 테오더 슈트로블(Theoder Strobl) 교수가 2006년에 공저한 전공서적 <Wasserbau(수리학)> 81쪽. 번역 링크)

주4: "세계 최대의 재보험사 뮌헨재보험은 .... 자연재해가 지난 40년간 추세대로 향후 60년간 증가한다면 전 세계 국민총생산액을 다 합쳐도 피해를 복구하기에 충분치 않을 것이라고 2002년 이미 예측한 바 있다. 습지의 홍수예방과 기타 생태적 기능을 고려할 때 전 세계 습지의 연간 경제적 가치는 580억 유로(약 87조 7천억 원)에 이른다고 독일 연방자연보호청장은 말한다." (2005년도 독일 연방자연보호청 자료, 원문 링크, 번역 링크)

주5: 2008. 4. 29. 독일 바덴뷔르템베르그 주정부 수로청 토사 담당 트롬페터(Trompeter)씨 인터뷰. 2008. 5. 1. 독일 니더알트아이히에서 열린 도나우 데모에서 독일연방의원(사민당) 이르버(Brunhilde Irber) 씨 연설, 같은 날 독일환경보호연맹 회장 바이거 교수(Prof. Weiger) 인터뷰.

주6: 매년 5월에 도나우 강변의 니더알트아이히 마을에서 열리는 도나우데모에는 주민, 환경단체, 정치가들 뿐만 아니라 시장, 공무원, 종교지도자들이 앞장서서 도나우 강에 보를 세우려는 건설회사를 고발하고 성토하여 장장 20년 전부터 이들의 로비에 굳건히 맞서고 있다.

주7: "유럽연합 법규를 충실히 이행하지 않거나 이행기한을 어기는 회원국에 대해서는 유럽연합법원의 유럽연합 법규위반 관련 소송절차를 거쳐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사안의 경중에 따라 벌금은 1일 최고 75만유로까지 부과한다[12.8]." (뮌헨공대 테오더 슈트로블(Theoder Strobl) 교수가 2006년에 공저한 전공서적 <Wasserbau(수리학)> 559 쪽. 번역 링크)

주8: 2010. 8. 27. 부산지방법원 낙동강 소송

주9: 2010. 4. 2.  부산지방법원 낙동강 소송 (신문 링크)

주10: 이자르 강의 수력발전소 리스트에 따르면 뮌헨 구간에 위치한 수력발전소 8개의 전력은 총 13.65MW (자료 링크), 풍차공원에 즐비한 현대식 풍차 한 대당 전력은 5MW.(자료 링크)



<참고문헌>
- 번역연대 http://www.hanamana.de/dul    
-테오도르 스트로블(Theoder Strobl), 수리학(Wasserbau), 2006  
-독일 연방환경부 제작 교사용 학습교재, 2009 http://www.bmu.de/files/pdfs/allgemein/application/pdf/wasser_de_handreichung.pdf    
-독일 연방자연보호청 자료, 2005  http://www.bfn.de/pm_33_2005.html    
-이자르 강 http://de.wikipedia.org/wiki/Isar, http://regiowiki.pnp.de/index.php/Isar    
-뮌헨의 운하 http://de.wikipedia.org/wiki/M%C3%BCnchner_Stadtb%C3%A4che    
-전기의 역사(Aus der Geschichte der Elektrizität), 독일 엔지니어 연맹 정보지 http://www.vdi.de/fileadmin/vdi_de/redakteur/bvs/bv_thueringen_dateien/Ausgaben_2004/3_2004/geschichte.pdf
-풍차공원 http://de.wikipedia.org/wiki/Windpark
-부산지방법원 낙동강 소송 2010. 4. 2. 신문기사 http://www.ihknews.com/news_PDF/news20100407.pdf

사진 출처
- 피스터 천, 1907년 사진. (출처 위키페디아) http://de.wikipedia.org/w/index.php?title=Datei:M%C3%BCnchen_-_Pfisterstr._%28heute_Sparkassenstr.%29_1907.jpg&filetimestamp=20090716185605
-1613년 뮌헨 지도 (출처 위키페디아)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c/c0/Volckmer_Munich_1613_streams.png
- 티볼리 수력발전소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d/d5/Tivoli-Kraftwerk_Muenchen.JPG
- 벡커뮐레 수력발전소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6/65/Munich_Auer-Muehlbach_Powerstation-Baeckermuehle_from_north.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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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