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세계화'에 해당하는 글 1건


얼마전 인터넷시대의 사회변화를 전망한 글을 읽다가 200여년 전 토스터 발명시 나왔던 논란이 시선을 끌었다.[각주:1] 토스터가 발명되기 이전 서구에서는 얇게 자른 식빵을 긴 쇠막대 손잡이로 고정하여 일일이 화덕 속에 넣고 구웠다고 한다. 버튼만 누르면 잘 구워진 토스트가 알아서 탁 튀어오르는 기계의 발명은 당시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가져왔다. 일각에서는 토스트가 까맣게 탈 걱정을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는 새 시대가 열렸다고 반겼지만, 다른 일각에서는 토스터가 창조적인 아침식사 시대를 끝내고 기계로 똑같이 자른 식빵만 본 아이들이 통식빵을 모르고 자라게 될까 우려했다고 한다. 과거 미국 사회에서 토스터가 불러일으킨 사회적 반향을 전해듣자니, 50여년 전 한국 사회에 등장한 라이스 쿠커,’ 전기밥솥이 떠올랐다.

 

1.

과거, 밥짓기는 고도의 숙련을 요하는 살림살이 기본 과목이었다. 갓 결혼한 새댁들은 열이면 열 모두 밥짓기 때문에 곤혹스러워했고, ‘며늘아기가 올린 밥상에서 돌을 씹거나 삼층밥을 먹어야 했던 시아버지 이야기가 다양한 버전으로 회자되곤 했다. 밥짓기야말로 가족내 성별분업이 확실하던 시대에 여성의 살림능력 레벨테스트 1단계에 해당하던 종목이었다. 밥은 그냥 만들거나 요리하는 것이 아니라 짓는것이다. 밥 짓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쌀이 익은 정도와 수분 정도를 설명하는 한국어 표현 몇 개만 떠올려 봐도 확인된다. 진 밥, 된 밥, 탄 밥, 설익은 밥, 삼층밥 등등. 밥을 짓는 과정도 복잡했다. 돌 고르기, 쌀 씻기, 물 맞추기, 불 조절, 뜸 들이기라는 일련의 과정에서 각 단계는 모두 나름의 기술을 필요로 한다. 살림 사는 여자들라면 모두가 매일, ‘조석(朝夕)으로하루에 두 번씩, 이렇게 밥을 지었던 것이다.

재래식 부엌에서 가마솥에 밥을 짓는 아낙들

돌솥에 갓 지은 밥



이런 과정을 버튼 누르기 하나로 대체한 것이 전기밥솥이다. 예측하다시피, 전기밥솥은 일본에서 발명되었다. 이차대전 중이던 1937년 군대 식사 준비를 위해 네모난 나무통에 쌀과 물을 넣고 전선을 연결한 양극 막대기를 꽂아 밥을 끓인 것이 시초라고 한다.[각주:2] 이러한 시도는 1940년대 말이 되면 미쓰비시사의 상업화된 전기밥솥 제작으로 이어진다.[각주:3] 한편 한국 최초의 전기밥솥은 1965년 금성사에서 나온다.[각주:4]

1970년대가 되면 많이 알려지지만 널리 사용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식사에서 이 차지하는 중요성 때문에 한국 사람들의 밥맛에 대한 기대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런데 전기밥솥으로 지은 밥은 맛이 떨어지고 보온 기능을 사용하면 색과 맛이 변하였다.

 

1970년대 유행한 꽃무늬 전기밥솥


2.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기계의 발명과 도입은 상대적으로 쉽고 조용히 진행되는데, 산업화의 후발국 정서 때문일 것이다. 다들 무엇이든 신속히 들여오고 재빨리 따라잡아야 할 처지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전기밥솥은 냉장고나 세탁기에 비해 그 수용이 더딘 편이었다. 우리집 만해도 어머니는 밥맛을 이유로다루기 힘든 압력솥 사용을 고수하시면서, 상당히 오랫동안 전기밥솥 사용을 거부하셨다. 결국 이러한, 가사노동에 대한 한국 주부들의 엄격하고 까탈스런 자기 검열 결과, 1998년 쿠쿠에서 만든 한국형전기압력밥솥은 대성공을 하고, 일제보다 더 선호되기 시작하였다.

 

장담하건데 이제 전기밥솥이 없는 집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밥짓기는 더 이상 주부의 숙련분야가 아닌 귀찮을 수 있는 일상적 가사노동이 되었다. 계량컵으로 쌀을 담아 넣고 밥통 안의 금에 맞춰 물을 붓고 버튼만 누르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집의 부엌에서는 여전히 그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은 어머니나 아내 뿐이다. 두어 해 전 마닐라 공항에서 방학을 맞아 아이를 데리고 여행길에 오른 한국 여성을 만난 적이 있다. 아이 아버지가 혼자 집에 있다면서 덧붙이는 말이 햇반을 한 박스 사놓고 왔다는 것이다. 이처럼 생활의 틀을 유지하는 관습의 힘은 기술의 변화만으로 누그러지지는 않는 법이다. 한국 사회에서 전기밥솥이 얼마나 여성 해방적으로사용되었는지는 단언하기 힘들지만, 이제 의도를 가진 아동기 이상의 사람이라면 누구든 밥을 지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3.

세계시장의 확대와 자본의 흐름에 따라 서구의 생활방식은 이미 오래전에 전세계 대도시의 의식주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 반면 아시아식 생활방식은 사람들 이주의 흐름을 따라 서구로 전파된다. 하와이에서 아시아계는 전체의 1/4 가량을 차지한다. 이중 많은 수는 미국식 교육과 제도 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20세기초 농장 계약노동 이민자들의 2, 3세대 후손이며 또한 많은 수가 다른 민족과의 혼혈이기도 하다. 아시아에 대한 이들의 관심이나 소속감은 희미하지만, 밥을 먹는 식습관은 현지화된 방식으로 유지되고 있다. 예를 들면, 아침은 베이컨과 달걀, 토스트, 점심은 샌드위치, 저녁은 고기요리로 서양화된 식사를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저녁식사 고기요리에 곁들이는 것은 빵이 아니라 밥이다.

 

 아시아인들의 이주와 함께 전기밥솥은 전세계로 퍼져나갔다.[각주:5] 미국내에서 아시아계 인구가 가장 많은 하와이에서는 특히 전기밥솥을 아주 쉽게 그리고 싸게 살 수 있다. 주립대학의 구내서점 생활용품 코너에서도 판매할 정도이다.

세일품목의 경우 보온기능이 없는 소형 밥솥을 9.99(약 만천원)에도 살 수 있다. 한편 전기밥솥으로는 남유럽이나 동남아에서 먹는 것과 구분되는 동북아의 자포니카 쌀로 밥을 짓는다.
그렇기 때문에 전기밥솥의 전파는 특정한 밥요리의 세계화를 의미한다. 하와이에서 전기밥솥으로 지은 쌀밥은 요리 한가지와 함께 접시에 담아 내는 플레이트메뉴에서부터 한국식 비빔밥과 회덮밥, 김밥, 일본식 스시(생선초밥)와 오니기리(주먹밥), 미국식 캘리포니아롤, 하와이식 스팸무스비(뭉친 밥 위에 구운 스팸을 얹고 김띠를 두른 것) 등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이런 추세를 돌이켜 보니, 국제화된 한국식 쌀밥요리법을 개발하고 이런 요리법과 연관시킨 신개념의 글로벌전기밥솥 개발로 한식의 세계화를 시도하는 것은 어떨까하는 생각도 든다.

 


<세계화되어가는 쌀밥 요리>

캘리포니아롤

스팸무스비

오니기리

  1. "How the Internet gets inside us" by Adam Gopnik, The New Yorker, 2011년 2월 14일자. [본문으로]
  2. “Rice Cooker", Wikipedia. http://en.wikipedia.org/wiki/Rice_cooker [본문으로]
  3. Toshiba Science Museum. http://museum.toshiba.co.jp/history/1goki/1955rice.html [본문으로]
  4. 사이언스타임즈, 2011년 1월 3일. http://www.sciencetimes.co.kr/article.do?atidx=0000047286 [본문으로]
  5. 일본에서 발명된 전기밥솥이 과거 자유무역항 홍콩을 통해 전세계로 퍼져나간 과정을 다룬 책이 있다. Yoshiko Nakano의 Where There Are Asians, There Are Rice Cookers: How 'National' Went Global via Hong Kong, Hong Kong University Press (2009). 죄송하지만, 아직 읽어보진 못하였다. [본문으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WRITTEN BY
KHross

트랙백이 하나이고 , 댓글이 없습니다.
secr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