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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상당 기간 여론조사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국정운영 분야는 독특하게도 외교·남북관계였다. 하지만 지금 박근혜 정부가 외교를 잘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외교에 실패했다고 아우성이다. 이 같은 인식이 퍼지게 된 이유가 몇가지 있다. 최근 ‘미·일 신밀월 시대’ 분위기,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 그리고 중·일 간 화해 움직임 등이다. 한국만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외교 고립을 자초하고 위기를 맞았다는 비판의 근거다.

한국 외교가 고립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위기라는 지적에는 동의한다. 그런데 미·일 동맹 격상으로 한·미 동맹이 위축되고, 일본 자위대의 행동반경이 넓어져 한반도가 일본의 군사적 영향권 안에 들어가고, 중·일 화해로 한국의 입지가 축소돼 한국 외교가 위기를 맞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미·일 동맹 강화는 한국과 무관하게 양국 간 이해관계가 일치한 결과이며 미·일 가이드라인이 개정됐다 해도 일본의 군사력이 한반도를 넘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 중·일 화해 무드는 동북아시아의 긴장을 완화시켜 주기 때문에 한국에도 좋은 일이다.

한국 외교는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하지 못해서 위기에 처한 것이 아니라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해서 위기다. 주변 정세가 변할 때마다 한국은 관성적으로 한·미 동맹을 챙긴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미·일 가이드라인 개정 이후 정부가 가장 먼저 내놓은 것도 ‘한·미 동맹은 이상 없다’고 강조하는 것이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지난 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해 “미·일 동맹은 여전히 동맹의 완성도 측면에서 한·미 동맹과 격차가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기고문을 보내 “한·미 동맹은 아·태 지역 평화와 안정의 핵심이며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2012년 미국이 이른바 ‘아시아 재균형정책’을 본격화하면서 동북아에 격변이 예상되던 시기에도 한국은 가장 먼저 한·미 동맹에 매달렸다. 당시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한·미 동맹은 앞으로 어려운 결정을 수반하게 되겠지만 이는 동맹의 진전에 따르는 당연한 비용”이라며 “우리는 이를 기꺼이 지불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 발언은 한·미 동맹에 틈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의 중국 봉쇄에도 앞장서고 과거사 반성 없는 일본과 군사협력도 강화할 수 있다는 자기암시적 예언으로 들린다.

그토록 애달캐달 한·미 동맹에 매달렸건만 대가는 허망하다. 한국은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에 다가서면서 천문학적 규모의 무기구입을 강요받는다. 또 ‘한·미·일 안보협력’이라는 명분에 밀려 한국을 무시하는 일본과 억지로 손을 잡아야 한다. 한·미 동맹은 미·일 동맹의 하부구조로 편입돼 중국 견제의 첨병이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여전히 미·일 동맹과 경쟁하듯 한·미 동맹 강화를 내세운다. 한국 내 보수층들은 “한국이 중국에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미국과 더욱 밀착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주로 냉전시대 미국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학자들이 그러하다. 미국의 핵우산 아래로 들어가고,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고, 전쟁을 할 수 있는 권리마저도 미국에 주어버렸는데 한·미 동맹의 어디에 더 강화할 것이 있는지, 얼마나 더 밀착을 해야 안심할 수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열린 한·미·일 정보공유 약정 폐기 촉구 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아스팔트 바닥에 스프레이를 뿌려 ‘한미일 군사동맹 반대’ 문구를 새기고 있다. _ 연합뉴스


동북아 문제에서 미·일은 이해가 일치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특히 미국의 아시아정책의 틀에서 보면 한국과 미·일의 입장 차이는 선명해진다. 북한 핵문제에서도 한·미의 인식 차이는 크다. 북핵은 한국에 사활적 문제이지만, 미국에는 아직 지역적 문제일 뿐이다. 미국은 이미 핵을 가진 북한보다 핵을 가질 가능성이 있는 이란을 더 위협적으로 생각한다.

북핵 문제는 미국이 동북아에 군사력을 투사하거나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미·일을 한데 묶고 미사일방어 체계와 같은 군사적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을 뿐이다. 미국은 자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요인에 대해 ‘전략적으로 인내’하는 나라가 절대 아니다. 진정 미국이 북핵을 최대 안보 위협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면 이대로 방치하지 않고 뭔가를 했을 것이다.

한·미 동맹은 지금 이 수준으로 충분하다. 정부는 한·미 동맹을 어떻게 더 강화할 것인지 골몰할 게 아니라 동북아·북한 문제에서 독자적 영역을 개척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또한 동북아 안보 균형이 국가 간 군사동맹에 의지해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새로운 안보질서 구축에 눈을 돌려야 한다.


유신모 외교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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