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선 투표일인 6일, 대세는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후보에게로 기우는 분위기다. 


이날 오전 9시. 찌뿌둥한 날씨 속에 파리 남부 콩방숑 지하철역 부근에 차로를 따라 늘어선 전통시장에서 파리 시민들을 만났다. 상인들과 장보러 나온 주민들은 “결과를 장담하기 힘든 선거”라고 말했지만, 정치인들에 대한 실망과 긴축재정에 대한 불만 속에 ‘갈아보자’는 목소리가 조금 두드러졌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샤를 드골이 프랑스 여성에게 참정권을 준 이래 나는 여태까지 한 번도 투표에 빠져본 적이 없다. 벌써 투표하고 나왔다.” 양말묶음을 고르던 올해 80세 조제트 할머니가 말했다. 한국 재즈가수 나윤선씨를 좋아하는 올랑드 지지자인 서점 주인 알랭(47)은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지지자인 친구가 서른 부쯤의 신문과 잡지를 배급하러 가게로 들어오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옥신각신 중이었다. “사르코지가 이번 선거에서 이길 거다.” “이봐, 보는 안목이 그렇게 형편없나!” 좌대 위에 갖가지 채소를 올려놓은 프레드(32)는 많은 유권자들처럼 “누가 더 나아서 찍는 투표가 아니라 덜 나쁜 후보를 찍는 투표”라고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사르코지 지지자들도 적지 않았다. 계란을 진열하던 상인 마르셀(61)은 “좌파(올랑드 사회당 후보)는 영 미덥지 못해서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표를 던질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에게 계란 꾸러미를 건네받던 돌스(66)는 “나도 투표권만 있으면 투표장에 갔을 것”이라며 투덜거렸다. 포르투갈 출신이라는 그는 “45년째 프랑스에서 일하느라 손이 곱았지만, 낼 세금 다 냈어도 투표권이 없다”고 서운한 듯 말했다. 그가 장바구니를 들고 자리를 뜨자 가게 주인 마르셀은 “내가 이래서 외국인에게 투표권을 주면 안된다는 사르코지를 지지한다”고 조용하게 말했다. 


휴일 아침 시내 중심가 샹젤리제에서 젊은이들도 만나봤다. “2007년 대선 당시에는 사르코지에게 한 표를 행사했다”는 나디아(37)는 “이번에는 올랑드가 프랑스 경제를 살릴 동기부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 그에게 표를 줬다”고 말했다. 맥도널드 직원 알리(21)는 “아직 투표할 후보를 결정하지 못해 망설이고 있다”면서 “사르코지는 대통령으로서 지금까지의 실적이 실망스럽다”고 평가했다. 플로랑스라는 시민은 “최저임금 인상, 공무원수 확대 같은 올랑드의 공약은 공공부채규모가 상당한 프랑스로서는 ‘자살’에 가까운 정책이지만, 사르코지에 반대하기 때문에 올랑드에게 표를 던졌다”고 AP통신에 말했다. 이번 선거가 ‘사르코지 응징’의 성격이 강함을 보여주는 얘기다. 


재선에 도전하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부인 카를라 브루니가 6일 파리 16구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치고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으며 나오고 있다. 파리 _ AP연합뉴스



유권자들이 전국 6만5000개 투표소에서 한 표를 행사한 이날, 두 대선후보도 투표소로 향했다. 사르코지는 파리 부유층 거주지구인 16구 투표소에 부인 카를라 브루니와 함께 나타나 지지자들의 환호 속에 회색봉투로 감싼 투표용지를 투명한 투표함 안에 넣었다. 올랑드는 자신의 지역구인 프랑스 중부 튈시에서 사실혼 관계이자 정치부 기자 출신인 여자친구 발레리 트리에베일레르와 투표에 참여했다. 투표율은 이날 정오 기준 30.66%로, 지난달 22일 1차 투표 때보다는 높았지만 34.11%를 보인 2007년 대선 결선투표에 비해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고 프랑스 내무부는 밝혔다.


이날 선거를 앞두고 막판 여론조사에서 올랑드와 사르코지의 지지율 격차가 일주일 전 10%포인트에서 4%포인트까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면서 이날 저녁 8시에 발표되는 출구조사 결과에서 막판 이변이 발생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일간 리베라시옹은 선거를 앞둔 주말판에서 “일요일에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1면 머리기사 제목을 뽑았다. 


하지만 사르코지의 뒷심이 역전극으로 이어지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분석 쪽에 무게가 실린다. 프랑스는 이날 저녁 8시 투표 종료에 앞서 예상결과 발표를 엄격히 제한하고 있으며, 이를 어길 경우 7만5000유로(약 1억11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든 간에 위기의 프랑스 경제를 개혁하고 유로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넉넉한 과반수의 득표를 얻어야 개혁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박빙의 승리보다는 큰 표차 승리가 요구되고 있다.


파리 | 최민영 기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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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2일 실시된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율은 79.47%. 10명 중 8명이 투표소를 찾았다. 프랑스 유권자들의 강한 정치참여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다. 이 같은 참여의식은 제도교육이 아닌, 부모세대의 높은 정치참여 태도가 자연스럽게 자녀세대에게로 전해지는 것이라고 지난 3일(현지시간) 파리에서 만난 젊은이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해야 한다’는 당위를 넘어서 정치를 ‘즐긴다’는 인상마저 줬다.


이날 오후 파리 4대학(소르본) 앞에서 만난 신디아(24·학생)는 “정치는 삶”이라고 말했다. “어릴 때 부모가 투표소에 갈 때 함께 가고, 다녀온 뒤 선거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면서 “정치를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다보니 각종 사회문제에 학생들이 단결해 항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06년 프랑스 대학생 수십만명은 정부가 청년층의 고용과 해고를 유연하게 만들려는 ‘최초고용제’에 반대하는 시위를 두 달간 노동조합들과 함께 이어가면서 결국 정책을 폐기시킨 경험이 있다. 신디아는 “프랑스에 비하면 미국에서는 학생들이 서로 연대하는 힘이 약했다. 프랑스와 상당히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최초고용계약(CPE)'의 철회를 요구하는 프랑스 청년들이 가두행진을 벌이고 있다. (경향DB)


대학생 마테오(22)는 “어릴 때 부모님이 친구들과 정치문제로 토론할 때 무관심한 척 옆에서 놀면서도 어떤 이야기인지 듣곤 했다”면서 “프랑스 중등교육 과정에는 정치참여를 교육하는 과정은 없지만 각 가정에서 자연스럽게 시민교육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오레이아(20)는 “15살 때 부모님들이 ‘선거는 꼭 해야 하는 거다. 투표소까지 가서 기권표를 행사하더라도 꼭 참여하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이렇듯 자연스럽게 참여정치를 몸에 익힌 프랑스 파리의 거리에서는 ‘투표참여’ 독려 포스터는 찾아볼 수 없다. 길에 붙은 각 정당의 선거포스터도 요란하지 않다. 다양한 색깔의 커다란 플래카드도 보이지 않는다. 눈썰미가 나쁘다면 프랑스가 대선기간이라는 것조차 눈치채기 어려울 정도다. 삶 속에 이미 들어온 정치를 부연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투표장으로 향하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두 명의 후보를 비교평가하는 대선후보 TV토론은 유권자의 절반인 2000만명이 시청했다.


정치에 대한 높은 관심은 날카로운 정책 비교평가로 이어진다. 대학생 엘레오노(21)는 “TV토론은 후보 각자가 자신의 공약을 지지자들뿐만 아닌 모든 국민 앞에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기회”라며 “후보 간 상호 비방이 격렬했던 이번 토론은 기대 이하였다”고 말했다. 대학생 브루노(25)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위기는 프랑스도 위태롭게 만들 수 있지만, 니콜라 사르코지나 프랑수아 올랑드 후보 모두 민감사안인 탓에 논의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차 투표율이 높았던 이유 중의 하나로 극우의 부상에 대한 경계심리가 꼽히기도 한다. 2002년 극우파인 장 마리 르펜 국민전선 후보가 결선투표에 진출한 사건에 큰 충격을 받았던 프랑스 유권자들이 그의 딸 마린 르펜의 부상에 위기감을 느껴 투표소로 향했다는 것이다. 한 남학생은 “르펜이 그럼에도 이번에 18%나 되는 지지율을 얻은 것은 상당히 충격이었다”면서 “이번 대선은 올랑드나 사르코지 둘 중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보다 ‘최악은 피하기 위해 누구에게 표를 던질 것인가’라는 얘기를 친구들과 한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경제위기에 뾰족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주류 정치인들에게 실망하면서도 프랑스 유권자들은 민주주의를 통한 사회변화 가능성을 굳게 믿는 셈이다.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대통령 후보인 마린 르펜 (경향DB)


이 같은 프랑스의 높은 정치참여는 불안했던 정치역사에서 기인한다는 분석도 있다. 1789년 혁명을 시작으로 프랑스는 여러 차례의 체제변화를 거쳤고 1960년대에는 알제리전쟁의 여파로 체제불안을 겪었다. 보통사람들은 사회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정보를 공유했고, 이것이 유럽 내에서도 정치성향이 두드러진다는 프랑스 사회의 특징으로 자리잡았다는 것이다.



파리 | 최민영 기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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