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스타를 찾아 헤매는 언론들에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는 떠오르는 총아다. 1980년생 여성이 국가 최고지도자 자리에 올랐다는 것부터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노동당 소속의 아던은 지난해 10월 총리로 취임해 관습을 깨는 행보를 거듭하고 있다.

 

동거 파트너와 아기를 가진 아던은 지난 6월 딸을 출산했고, 육아휴직 중이던 7월 가족 관련 정책을 공개했다. 장소는 그의 집 소파였고 매체는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을 통해서였다. 화장기 없는 얼굴의 아던은 딸을 품에 안은 채 유급 육아휴직 확대, 양육수당 신설 등 새 정책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운데)가 여성 참정권 인정 125주년 기념일인 19일(현지시간) 오클랜드 아오테아 광장에서 열린 기념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뉴질랜드는 1893년 세계 최초로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했다. 아던 총리는 연설에서 “오늘날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참정권 운동에 참여한) 이 여성들 덕분”이라며 “성평등 달성을 나의 최우선 순위에 놓음으로써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겠다”고 말했다. AP연합뉴스

 

출산을 앞둔 지난 4월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버킹엄궁에서 주최한 만찬에 마오리족 전통 의상 ‘코로와이’를 입고 참석했다. 의상의 의미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 공세가 뒤따랐음은 물론이다. 아던은 지난달 미국 뉴욕에서 개막한 유엔 총회에서도 어린 딸을 동반하고 회의장에 입장해 주목받았다.

 

여성 정치인이 아기를 데리고 출근하는 게 처음은 아니다. 2010년 이탈리아의 여성 의원이 유럽의회에 어린 딸을 동반해 화제가 됐다. 그러나 국가 정상이 유엔 총회에 아기를 대동한 것은 전례가 없다. 아던이 내딛는 걸음 하나하나가 새 역사가 되고 있는 셈이다.

 

비판도 없지 않다. 아던은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얼마든지 동원할 수 있는 권력자다. 유엔까지 아기를 안고 간 것은 아기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라기보다는 모유 수유를 포기하는 게 싫어서였다. 지난달 초 나우루에서 태평양 제도 포럼이 열렸을 때 아던은 아기와 떨어지는 시간을 최소화하려고 전체 일정 중 하루만 소화했다. 이를 위해 당일치기 항공편을 별도 마련하도록 해 ‘혈세를 낭비했다’는 야당의 비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외신들은 아던을 새로운 유형의 21세기 지도자로 치켜세우고 있다. 진보적이고 온화한 카리스마를 지녔으며 결혼하지 않은 워킹맘 정상의 출현은 전에 없던 참신한 정치문화의 탄생을 기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아던이 유엔 총회 연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고립주의를 비판했던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애석하게도 미국에선 20세기의 구태가 되풀이됐다. 이날 미 상원 법제사법위원회에선 브렛 캐버노 연방대법관 지명자에 대한 청문회가 열렸다. 전국에 생중계된 이 청문회에는 크리스틴 포드 팰로앨토대 교수가 고교생이던 1982년 한 파티에서 캐버노에게 당했던 성폭력을 증언했다.

 

캐버노는 최선을 다해 포드 교수의 증언을 부인했고 “내 가족과 이름은 가짜 고발로 완전히 망가졌다”고 말했다. 과거의 잘못이 드러나 출세 길이 막힐 위기에 처한 남성이 여성 고발자를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이는 장면은 낯익다. 한국이었다면 포드 교수가 그날 짧은 치마를 입었다거나, 그러길래 왜 남자들이 많은 파티에서 술을 마셨느냐는 역공이 이어졌을 것이다.

 

캐버노와 그를 비호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아무도 여성 고발자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던 지난 세기를 그리워하겠지만 세계는 느린 걸음일지라도 진보하고 있다. 여성들은 성폭력 고발 운동 ‘미투’가 유력 남성들을 쓰러뜨리는 것을 목도했다. 30대 여성 정상이 아기를 안고 유엔을 활보하는 시대 또한 이전과 같은 세상일 수 없다.

 

미국 전국여성법률센터의 패티마 고스 그레이브스 대표는 한 인터뷰에서 “여성들이 (의회를) 지켜보고 있다. 우리는 싸울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50만명이 워싱턴 거리를 뒤덮었던 지난해 ‘여성들의 행진’에 필적할 규모의 시위를 준비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캐버노를 대법관 자리에 앉히는 데 성공하더라도 대가가 뒤따를 것이다. 11월 중간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최희진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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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 기간 쏟아진 미국 뉴욕발 뉴스들은 한가위 선물만큼이나 풍성하고 희망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4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머지않은 미래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두번째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며 “가까운 시일 내에 구체적인 장소와 일정이 발표될 것”이라고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공식화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머지않아 2차 정상회담의 최종 준비를 하기 위해 평양에 가게 될 것”이라며 실무 준비가 진행 중임을 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전쟁의 망령을 대담하고 새로운 평화추구로 대체하기 위해 북한과 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완전 파괴’를 경고하던 1년 전과 180도 달라진 태도였다. 북한과의 정상회담으로 ‘톱다운’ 방식의 새 합의를 도출해 비핵화를 이끌어가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가 한·미 정상회담과 유엔총회를 통해 재확인된 것이다. 3차 남북정상회담→한·미 정상회담→북·미 2차 정상회담의 흐름은 지난 몇달간 정체 상태였던 한반도 대전환 여정의 힘찬 재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북·미 2차 정상회담이 조속히 열려 한반도 대전환의 밑그림이 완성되기를 희망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오른쪽)과 리용호 북한 위무상이 26일(현지시간) 뉴욕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트위터 캡쳐

 

미국은 한·미 정상회담 브리핑에서 북한이 원하고 있는 종전선언을 비롯한 ‘상응조치’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두르지 않겠다”면서 ‘대북 제재 계속’을 거듭 확인한 점을 보면 성급한 낙관론은 경계할 일이다. 청와대도 “두 정상이 종전선언과 2차 북·미 정상회담의 날짜와 장소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했다”는 선에서 회담 결과를 전했다. 

 

하지만 비핵화 협상의 진전을 보여주는 움직임은 많다. 폼페이오는 지난 23일 인터뷰에서 “우리는 특정한 시설들, 특정한 무기 시스템들에 관해 이야기해왔다. 이러한 대화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9·19 평양공동선언에 포함된 것 이상의 비핵화 추가조치들이 꽤 구체적인 수준에서 협의되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25일(현지시간) 뉴욕에 도착한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폼페이오 장관 간의 ‘뉴욕회동’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에 올릴 ‘빅딜’ 메뉴들을 확인하는 작업이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많다. 문 대통령이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연내 종전선언 목표가 달성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 것은 일련의 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에서 나온 언급으로 보인다.

 

돌이켜보면 한 달 전만 하더라도 한반도 정세는 금방이라도 빗줄기를 퍼부을 듯한 짙은 먹구름 속에 휩싸여 있었다. 폼페이오의 4차 방북이 취소되고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개소일정도 미뤄지는 등 남북·북미 관계 모두 난관에 처해 있었다. 이 위기를 돌파할 수 있었던 것은 트럼프-김정은이 ‘친서외교’로 소통을 유지하고, 문 대통령과 한국 정부의 중재노력이 북·미 간 협상 모멘텀을 살려낸 덕분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문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남북 및 북·미 3각 채널이 앞으로도 작동될 것이란 점이다.

 

문 대통령은 뉴욕에서 미국 외교협회 등 주최로 열린 연설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거듭 강조했고, 종전선언을 비롯한 ‘상응조치’ 방안도 예시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제재완화를 한 뒤 북한이 약속을 어긴다면 다시 제재를 강화하면 된다”며 미국이 제재완화에 유연성을 발휘할 것을 주문했다. 종전선언 하나에도 인색했던 미국을 상대로 제재완화, 연락사무소 설치, 인도지원, 예술단 교류 같은 목록을 꺼내놓는 것은 시기상조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과감한 비핵화에 나선다면 미국도 ‘통 큰’ 상응조치로 화답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이 외교협상이다. 한반도 대전환을 이루고 새로운 북·미관계를 수립하려면 남·북·미 모두 양보와 상응조치로 ‘윈윈’하는 거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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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북한이 평양 선언문을 통하여 미국에 던진 메시지는 이것이다.

“전쟁 없는 한반도를 만든다는 의미는 남북 간에 종전을 선언한 것이다. 전쟁이 없는 한반도에서의 주한미군은 재래식 위협뿐만 아니라 핵위협으로부터도 안전하다. 그리고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하에 우선 영구적으로 폐기한다는 의미는 미국에 직접 위협을 가할 대륙간탄도탄(ICBM) 개발을 우선적으로 포기하고, 사찰, 검증을 받겠다는 의미다. 이렇게 되면 한반도와 미국에 거주하는 미국인에 대한 위협은 우선적으로 사라진다. 미국에 대한 위협을 이러한 방식으로 검증 가능하게 폐기할 터이니 이제 미국이 종전선언을 할 차례다. 미국이 종전선언을 하면 그다음 단계인 영변의 미래 핵을 검증 가능하게 폐기하겠다. 그리고 계속 평화협정과 북·미관계 정상화를 향하여 앞으로 나아가면서 현재 핵과 과거 핵까지 폐기하여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를 달성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한반도 전역의 전쟁 위험 해소 등을 담은 ‘9월 평양공동선언’에 서명한 뒤 합의서를 들어보이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이번 평양 선언문은 1조에서 4조에 걸쳐 남북관계, 특히 남북 간의 전쟁위험 제거와 근본적인 적대관계 방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지만, 비핵화와 관련된 5조는 행간을 읽어야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 간접적으로 기술되었다.

 

그동안 미국과 북한 간에 집요하게 줄다리기를 했던 북한의 핵신고와 미국의 종전선언에 대해서는 한 글자도 나오지 않았고, 그 의미가 포함될 수 있는 다른 말들로 문장이 처리되었다.

 

그래서 행간을 읽어보니 북한은 우선 미국과 미국민에 직접적으로 위협을 주는 것들을 검증 가능하게 폐기하겠다는 선언을 한 것으로 읽힌다. 아직 미완성 단계인 ICBM 개발과 관련된 시설을 검증 가능하게 폐기하겠다는 내용이 그것이고, 남북 간에는 종전이 되었으니 주한미군에 대해서도 위협이 사라질 것이라는 메시지도 보냈다.

 

이 메시지는 다분히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것이다. 왜냐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미국을 향한 북한의 도발을 멈춘 것이라고 지속적으로 주장하여 왔는데 이제 단순히 도발을 멈춘 것을 넘어서 위협을 검증 가능하게 폐기하겠다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선언을 하였으니 말이다. 트럼프가 본인의 치적으로 충분히 내세울 수 있을 만한 북한의 선물인 셈이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이에 상응하는 조치인 종전선언을 연내에 해준다면, 그다음에는 김 위원장도 다음 단계의 핵폐기를 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기고,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의 속도가 빨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계산했을 것이다. 물론 이 제안이 트럼프 대통령과 그 주변의 인물들을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추가적인 어떤 제안을 할 수 있다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했을 수도 있다.

 

평양 선언문의 이러한 문장과 구조는 절묘한 한 수다.

첫째, 완벽한 핵신고는 부담스러워서 못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가려운 곳을 확실하게 긁어주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성과로 자랑해 온 미국에의 직접 위협 중단을 검증 가능하게 폐기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둘째, 남북 간의 실질적인 종전선언을 하여 남북관계 때문에 미국민에 피해가 가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한반도에 주한미군을 보낸 미국 부모, 형제, 부부, 자식들에게 보냈다. 셋째, 일본에 대한 위협과 주일미군에 대한 위협 제거 내용이 빠져있다. 왜냐하면 일본과의 적대관계 청산을 언급하지 않았고, 일본을 향한 중거리 미사일에 대한 언급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은 이제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남겨두고 있는데, 주일미군에 대한 위협 때문이라도 일본 정부는 북한과 매우 빠른 시일 내에 정상회담을 하여 북·미관계와 보조를 맞추어 가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빠졌다. 조만간 북·일 정상회담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제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이 이를 받아서 종전선언을 할 수 있는가이다. 핵심은 트럼프 대통령이 과연 미국의 핵 비확산론자들과 강성 매파들의 견제를 넘어설 결심을 할 수 있을까이다. 미국에 대한 북한의 직접 위협 제거와 핵비확산은 다른 문제이다. 전자는 북한과 미국의 양자관계이지만 후자는 미국의 글로벌 전략이 걸린 문제다. 강경파와 비확산론자들은 확실한 비핵화의 증거가 있어야만 종전이 가능하다고 주장할 터이고, 정치인 트럼프는 미국과 동맹국에의 직접 위협을 검증 가능하게 폐기한다면 종전선언도 가능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무게중심이 어느 쪽으로 기울 것인가?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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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9일 정권수립 70주년(9·9절) 기념 열병식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등장시키지 않았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지난 2월8일 건군절 70주년 열병식에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화성14형’과 ‘화성15형’ 등 ICBM이 등장한 것과 비교하면 사뭇 절제된 모습을 보인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월 열병식에서 “침략자들이 우리 존엄과 자주권 0.001㎜도 침해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나 이번엔 연설하지 않았다. 대신 연설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경제적 목표를 강조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 기념 열병식 참가자들이 9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진행된 대규모 집회에서 행진하고 있다. 행렬 가운데 군용전차에 ‘경제건설에 총력을’이라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AFP연합뉴스

 

북한이 지난 4월20일 노동당 전원회의 결정으로 핵·경제 병진노선을 폐기하고 경제건설에 집중한다는 노선전환을 채택했던 점에 비춰보면 9·9절의 ‘조용한’ 열병식은 어느 정도 예상됐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열병식을 통해 북한은 대내외에 약속한 노선전환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으로 조성된 대화기조를 9월 이후에도 살려나가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아울러 판문점선언과 북·미 정상회담에서 밝힌 ‘비핵화’ 의지를 다시 한번 표명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때마침 평양 인근에 세워졌던 ICBM 조립시설이 완전히 해체됐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장기화되고 있는 북·미 협상 교착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달리 북한이 자제력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앞서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5일 방북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특사단에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내에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도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한 메시지가 담겼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도 9·9절 행사에 시진핑 국가주석이 직접 참석하는 대신 국가서열 3위인 리잔수 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을 보내는 등 ‘로키(low-key)’로 임했다. 중국의 대북접근 강화를 껄끄러워하는 미국을 의식해 중국 스스로가 북·미 협상의 ‘중국변수’ 가능성을 낮춘 셈이다.

 

이로써 9월 한반도 정세는 순탄한 흐름을 탈 가능성이 커졌다. 북·미가 다시 대좌할 환경이 최적화됐다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특사단 방북과 9·9절 열병식에서 드러난 북한의 대화 의지를 미국은 전향적으로 수용해 북·미 협상에 적극 나설 것을 희망한다. 양측이 비핵화 협상을 진전시킬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창의적인 대안이 나올 수 있다. 문재인 정부도 협상 재개를 위해 각고의 노력에 나서줄 것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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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5일 평양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사단과 만나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까지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북특사단장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6일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내에 북한과 미국 간 70년간 적대역사를 청산하고 북·미관계를 개선하면서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 일정에 대한 구상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처음이다. 더 이상 의심하기 어려울 만큼 강력한 비핵화 의지 표명이라고 본다.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협상의 촉진제가 되리라고 기대한다.

 

남북이 이달 18~20일 평양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한 것도 의미가 크다. 개최 합의는 이미 이뤄졌고 이번에 일정이 확정된 것이지만 남북관계가 순조롭게 발전하고 있다는 징표로 충분하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세번째 정상회담이 군사적 긴장 완화 등 신뢰구축을 구체화하도록 남북 모두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당장 눈앞의 최대 과제는 역시 비핵화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5일 인도 뉴델리 팔람 공군기지에 도착해 손을 흔들고 있다. 뉴델리 _ AFP연합뉴스

 

김 위원장이 제시한 비핵화 시간표는 지난달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거론한 ‘1년 내 비핵화’와는 1년가량 차이가 있다. 하지만 ‘1년 내 비핵화’는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의 제안에 김 위원장이 답한 형식이어서 동일하게 비교하기는 어렵다. 이번 시간표는 비핵화에 소요되는 시간과 검증 등 여러 변수들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제시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현실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 임기는 2021년 1월까지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제시했던 비핵화 시간표와도 일치한다.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는 북한 매체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조선중앙통신은 6일 김 위원장이 특사단에 “이 땅을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자는 것이 우리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에 대한 진전된 표현을 통해 진정성을 거듭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미국이 먼저 종전선언에 나서야 비핵화 조치를 하겠다는 취지의 종전 입장에 변화가 없는 것을 문제 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큰 틀에서 김 위원장의 의중을 파악하지 않고 이 점만을 떼어내 문제시한다면 단견이 아닐 수 없다.  

 

김 위원장도 자신의 비핵화 의지를 국제사회가 의심하는 것에 답답함을 토로했다고 특사단은 전했다. “여러 차례 분명하게 비핵화 의지를 천명하고 비핵화에 필요한 조치들을 선제적으로 실천해 왔는데 이를 선의로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이 특사단에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역할에 대한 기대감을 에둘러 표시한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임하는 문 대통령의 어깨가 더 무거워지게 됐다. 정 실장은 “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면 비핵화 진전을 위한 남북 협력의 구체적 방안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정상회담에서 비핵화를 위한 실천방안을 도출한 뒤 이를 토대로 북·미 협상을 재가동시키고, 제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빅딜’이 이뤄지도록 하는 임무가 주어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 4일 통화에서 문 대통령에게 북·미를 대표하는 수석협상가 역할을 요청한 바 있다.

 

이제 공은 미국으로 넘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를 언급한 것을 거론하며 “김 위원장에 감사한다. 우리는 잘해낼 것”이라고 화답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김 위원장이 ‘종전선언이 주한미군 철수 및 한·미동맹 약화와 무관하다’고 직접 밝히며 미국 일각의 의심 해소에 나선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비핵화 협상을 조속히 재개하길 바란다. 연기했던 폼페이오 방북부터 재개하는 것이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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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 11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빠르게 비핵화 조치를 한다면 미국은 북한이 한국과 같은 수준의 번영을 달성하도록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또 “김정은 위원장이 올바른 길을 선택한다면 북한에 평화와 번영으로 가득찬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북·미 정상회담 사전협상을 진두 지휘해온 폼페이오가 북한에 대해 ‘번영’이란 표현을 두 차례나 사용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폼페이오의 방북에서 미국이 원하는 수준의 비핵화에 도달하면 체제안전 보장은 물론 제재 완화와 경제적 보상을 하는 방안이 북·미 간에 심도 있게 협의됐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북한이 비핵화 행동에 나선 일정 단계에서 국제기구의 대북 융자나 외국기업의 대북 투자를 막아온 미국 국내법령이나 독자제재를 해제하는 방안을 미국이 염두에 두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11일(현지시간) 워싱턴 국무부 청사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웃으며 바라보고 있다. 워싱턴 _ AP연합뉴스

 

그동안 북·미대화에서 북한의 비핵화에 상응한 대북 체제 보장과 평화체제 구축 방안은 자주 거론돼 왔지만 경제적 보상은 거의 거론되지 않았다. 올 들어 조성된 한반도 대화국면에서 핵심 쟁점은 비핵화이지만, 북한으로서는 비핵화를 지렛대로 체제안전 보장은 물론 경제발전을 위한 제재 해제를 얻어내는 것이 주요 목표일 것이다. 이런 면에서 폼페이오의 ‘북한 번영을 위한 협력’ 발언은 북한의 비핵화를 향한 발걸음을 가볍고 빠르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북한의 움직임도 고무적이다. 북한은 오는 23~25일 풍계리 핵실험장을 갱도 폭파방식으로 폐쇄하는 행사를 열기로 했으며 미국과 중국, 러시아, 영국 및 남한 기자들을 초청하겠다고 12일 밝혔다. 북한은 국제 기자단을 위해 원산에 숙소와 기자센터를 설치하고 풍계리 핵실험장까지 특별전용열차를 편성하는 등 취재편의를 제공하기로 했다. 이는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에서 핵실험장을 폐쇄할 때 대외에 공개하겠다고 약속한 데 따른 후속 조치이자,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비핵화 의지를 국제사회에 확인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북·미 정상회담을 한달 앞두고 양측이 발신하는 긍정적 신호들은 회담 성공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양측의 긍정적 조치와 언급이 ‘불가역적인’ 약속으로 굳어지도록 문재인 정부가 힘을 보태야 할 것이다. 오는 22일 한·미 정상회담은 그래서 중요하다. 북·미 정상회담 직전 개최되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문 대통령이 참석해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에 대한 지지를 얻어낸다면 최선의 조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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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가 그제 미국 45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는 취임 연설에서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선언하며 국가주의를 강조했다. 도덕이 아닌 힘의 과시, 외국인 혐오 등 저강도 파시즘 색채도 숨기지 않았다. 세계 경찰을 자임해온 미국의 새 출발을 바라보는 세계인들은 착잡하고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살육되고 있다”는 살벌한 언사까지 동원하며 그 주체로 기성 정치권, 야당 등 반대파를 겨눴다. 국민을 동지와 적으로 나누는 ‘두 국민 전략’을 재임 기간에도 유지할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공존과 자유, 평등, 정의 등 미국 대통령이 단골로 제시하던 가치 대신 자국 이기주의로 연설문을 채웠다. ‘미국 우선 에너지 계획, 미국 우선 외교정책, 일자리 창출과 성장, 미군의 재건, 법질서의 회복, 모든 미국인을 위한 무역협정’ 등 백악관이 발표한 6개 국정과제도 같은 궤적 안에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가 워싱턴 백악관 뒤편 세인트존스교회로 향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내 단순한 두 가지 원칙은 미국산 제품을 사고, 미국인을 고용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내에서는 규제 완화와 감세정책을, 대외적으로는 무역장벽 강화를 공표한 것이다. 대미 수출국과 기업을 향한 관세장벽과 미국 직접 투자 및 고용 압력이 거세질 것이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재협상 대상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최강 미군 재건’ ‘동맹국의 안보 무임승차 비판’은 위험한 도박으로 보인다. 그는 “다른 나라의 군대에 보조금을 지급했지만 우리 군대는 매우 애석하게도 고갈되도록 했다”고 말해 동맹의 방위비 분담금을 증액하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제의 적을 오늘의 동지로, 어제의 동지를 오늘의 적으로 삼는 것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러시아와 손잡고 주요 2개국(G2)으로 떠오른 중국을 견제하면 동북아 정세는 더욱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주한미군 주둔 분담금이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북핵 문제 등까지 맞물린다면 한국은 거대국가들이 가하는 압박에 숨 막힐 수도 있다.

 

국수주의·파시즘으로 받아들여질 법한 섬뜩한 발언도 이어갔다. 그는 “우리는 모두 위대한 미국 깃발을 향해 경례한다”며 “극단 이슬람 테러리즘에 맞서 문명화된 세계를 단합해 이를 지구상에서 완전히 뿌리 뽑을 것”이라고 했다. 6대 국정과제 중 ‘법질서 회복’ 항목은 “불법 이민자를 막기 위해 국경에 장벽을 짓는 일 등에 전념할 것”이라고 못박아 놓았다.

 

무엇보다 국제사회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 행보의 불확실성과 포퓰리즘이다. 그는 벌써 공적 시스템을 통한 논의보다는 실세, 측근과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 시민과의 소통 방식도 한 게시물 글자를 140자로 제한한 소셜미디어 트위터에 의존하고 있다. 트위터를 통해 즉흥적으로 공언한 내용을 다음 순간 뒤집는 일도 다반사다. 세계는 지금 보편적 규범과 가치를 뒤로 돌린 채 미국 우선을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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