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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는 2006년 장 출혈로 물러난 뒤 애용하던 군복을 벗고 독일산 아디다스 운동복을 입고 다녔다. 왜 아디다스인가에 대해서는 쿠바 서민들이 좋아하는 브랜드이고 올림픽 때 쿠바 대표팀을 후원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부터 적대국인 미국산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얘기까지 설이 분분하다.

 

카스트로가 스포츠를 국위 선양의 도구로 활용했다는 것은 알려진 얘기다. 쿠바는 야구와 복싱 강국이다. 1992년 LA올림픽에서는 야구에서 금메달을 땄다. 이런 영웅들이 고액연봉을 위해 목숨을 걸고 미국으로 망명한 것은 카스트로에게는 아이러니였을 것이다.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2006년 7월21일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 정상회의에 대항해 만들어진 대안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아르헨티나 코르도바를 찾아 대중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코르도바 _ AFP연합뉴스

 

북한과의 관계도 빼놓을 수 없다. 카스트로는 2013년 당 기관지 ‘그란마’ 기고에서 “1982년 소련 서기장에 취임한 유리 안드로포프가 우리에게 미국 공격 시 자력으로 싸워야 한다고 얘기했다. 다른 친구에게 무기 제공을 부탁했다. ‘경험 많고 나무랄 데 없는’ 김일성 동지는 1센트도 요구하지 않고 AK소총 10만정과 탄약을 보내왔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2013년 봄 북한의 휴전협정 파기 선언으로 한반도 긴장이 높아지자 “전쟁 회피 의무는 미국에 있다”고 한 것도 카스트로였다.

 

이런 카스트로가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체 게바라 등 동지들이 타계한 터라 남미 좌파 마지막 혁명가의 죽음이라 할 만하다. 1953년 정부군을 습격하다 체포된 뒤 혁명의 권리에 대해 일갈한 법정진술은 유명하다. 그는 ‘정치적 권력은 인민에게 있다, 인민은 폭군을 몰아낼 의무가 있다’(존 밀턴), ‘정부가 권리를 침해할 때 불복종은 인민의 신성한 권리이자 절박한 의무’(프랑스혁명 인권선언) 등을 예시하며 “폭정에 항거한 반란은 권리”라고 주장했다. 2년 복역 뒤 석방된 그는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권력을 장악했다. 이후 그 자신 장기독재의 길에 빠진 것 또한 아이러니다.

 

한국에선 매주 토요일 전국의 광장에 시민들이 모여 혼군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전 세대의 혁명이 몇몇 혁명가 주도로 이뤄졌다면 지금은 다수 시민들에 의한 비폭력·평화혁명이 진행 중이다. 카스트로가 하늘에서 한국의 ‘피플파워’ 풍경을 보고 있다면 어떤 평가를 내릴까.

 

박용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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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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