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결과는 뜻밖이었다. 하지만 국내의 반응은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 마치 페이스북을 통해 조작된 뉴스를 보고 도널드 트럼프에게 투표했다는 미국인들처럼, 특히 일부 진보 인사들은 잘못된 사실관계를 기반으로 해 엉뚱한 방향으로 감정이입을 하고 있다. 하나씩 짚어보자.

‘트럼프는 미국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

 

틀렸다. 현지시간으로 11월17일 현재, 힐러리 클린턴의 총득표는 6282만5754표, 반면 트럼프는 6148만6735표에 그치고 있다. 약 130만표 차가 나는 것이다. 게다가 아직 500만표가량 개표되지 않은 표가 남아있다.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 국민들은 클린턴을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당선된 것은 미국이 연방국가이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은 국민들의 대표이기도 하지만 50개의 주로 이루어진 연방국가의 대표자이기도 하다. 트럼프의 당선은 민주주의적 원칙보다 연방주의적 원칙이 우선시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선이 확정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성조기를 배경으로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다. ㅣAP연합뉴스

 

‘트럼프 지지층은 분노한 노동자들이다?’

천만에. 트럼프의 지지층은 상대적으로 부유한 백인들이다. 숫자를 보자. 미국인의 중위소득은 5만6000달러다. 출구조사에 따르면 클린턴과 버니 샌더스의 지지자들은 약 6만1000달러의 중위소득을 나타내고 있다. 반면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사람들의 중위소득은 7만2000달러로, 클린턴 지지층에 비해 1만달러가 높을뿐더러 평범한 미국인들에 비해서도 1만6000달러나 더 높다. 이것은 평균이 아니라 중위값이므로 ‘슈퍼 리치’들이 공화당을 지지해서 왜곡된 통계가 아니다. 주요 트럼프 지지층이 ‘가난하고 분노한 노동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샌더스가 나갔다면 이겼을 것이다?’

어림도 없다. 샌더스는 클린턴에게 경선에서 패배한 후보다. 특히 민주당의 ‘미래 지지 기반’인 히스패닉 및 소수자 집단의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이 경선 패배의 원인이었다. 승리를 위해서는 전국 득표력이 필요하다. 샌더스는 백인 밀집 지역인 ‘러스트 벨트’에서만 상대적 우위를 갖는 약한 후보였다. 게다가 샌더스가 트럼프와 1 대 1 토론에서 어떤 처참한 꼴을 당했을지 상상해봐야 한다.

 

미국 대선 관련 주요 이벤트를 모두 시청했기 때문에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샌더스는 트럼프의 상대가 못된다. 트럼프는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잽 부시를 문자 그대로 짓뭉개버렸다. “닥쳐”(You shut up)라며 손가락질을 해대고 목청을 높이는 트럼프를 부시 집안의 세번째 대통령 출마자는 감당해내지 못했던 것이다. 트럼프는 온갖 부동산 거래뿐 아니라 리얼리티 쇼와 프로레슬링 무대 등으로 단련된 ‘미디어 인파이터’다. ‘남자 대 남자’로 맞대결해서 그를 이길 수 있는 정치인은 없다. 점잖게 나오면 말을 안 들어먹고, 똑같이 진흙탕 싸움을 하면 이쪽이 더 손해를 본다. 클린턴처럼 소수자에 속하는 누군가가 품위 있는 태도로 맞서는 것만이 해법이었다. 샌더스는 트럼프를 이길 수 없었다.

 

정리해보자. 트럼프는 클린턴보다 최소 130만표 뒤졌지만 선거인단을 많이 확보해 승리했다. 게다가 트럼프 지지자들은 평균적인 미국인뿐 아니라 클린턴과 샌더스의 지지자들보다 잘사는, 교외에 거주하는 겉보기에 점잖은 백인 중산층들이다. 이번 미국 대선의 키워드는 ‘분노한 민중’이 아니라 ‘소수자를 혐오하는 기득권층’인 것이다.

 

그런데 왜 미국 대선을 ‘가난한 노동자의 반란’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이토록 많을까? 한국식으로 치자면 여성, 세월호 희생자, 삼성반도체 백혈병 환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외국인 노동자, 중국계 동포 등을 모욕하며 증오를 선동하고 대통령으로 당선된 ‘일베 스타’가 바로 트럼프다. 일부 인사들은 그러나 승자에게 감정이입하여, 트럼프의 승리에 어떤 ‘진보적 가치’를 투영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는 안된다. 우리는 전 세계의 시민들과 연대하여 다양성과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한다.

 

노정태 |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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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가 오는 11월8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26일 첫번째 TV 토론을 벌였다. 미국 주류 정당에서 처음 탄생한 여성 대통령 후보와 부동산 재벌 출신 정치 아웃사이더 간 대결인 데다 예측불허의 접전을 보이면서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1차 TV 토론의 주된 관심사 중 하나는 ‘막말 정치인’ 트럼프가 미국을 이끌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자질과 올바른 생각을 갖고 있는지였다. 국정경험이 풍부한 클린턴과 달리 트럼프는 외교적으로 신고립주의, 미국 우선주의를 내걸고 있으며 강한 보호무역주의를 주창하고 있어 그가 집권하면 전 세계에 상당한 충격을 몰고 올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미국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왼쪽)와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이 26일(현지시간) 뉴욕 헴스테드 호프스트라대에서 열린 대선후보 1차 토론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이날 토론에서 트럼프는 초반에 공격 기세를 올렸으나, 또박또박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클린턴에게 전반적으로 밀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헴스테드 _ AFP·AP연합뉴스

 

트럼프는 “우리가 일본, 독일, 한국, 사우디아라비아를 보호하지만 그들이 정당한 몫을 지불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북대서양조약기구 28개 회원국 중 많은 수가 적절한 자신들의 몫을 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내 보수 우파의 표심을 겨냥한 것이나 기본적으로 트럼프가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경제적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기업가적 마인드로 무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트럼프는 기존 자유무역협정을 재앙으로 표현하면서 모든 협정의 전면 재검토를 주장해 왔다. 토론회에서도 “자유무역협정 때문에 일자리가 없어졌다”며 “재협상을 통해 도둑 맞고 있는 일자리를 찾아오겠다”고 말했다. 클린턴도 예전보다 보호무역주의적 성향으로 많이 이동했다고 하나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는 거의 확신범 수준이다.

 

대선 후보 선출과정에서 이미 넘어선 안될 선을 넘은 트럼프의 막말 퍼레이드는 여전했다. 초반에 선전하는가 싶더니 클린턴의 공세에 평정심을 잃었고 클린턴을 향해 “스태미나도 없고 대통령이 될 얼굴도 아니다”라고 비아냥거렸다. CNN 여론조사에서 ‘트럼프가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는 비율은 43%에 그쳤으며 55%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트럼프는 트럼프라는 평가가 딱 맞는 셈이다.

 

클린턴이 승기를 잡았다고 보기엔 아직 반전의 여지가 많다. 모든 이의 예상을 깨고 트럼프를 공화당 대선 후보로 만든 미국 정치의 구조적 변화, 양극화에 신음해 온 유권자들의 변화 욕구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예측불허다. 클린턴도 사적 e메일 사용 논란 등으로 유권자들에게 비호감이긴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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