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역사와 전설의 세계로 들어와 영광을 누린 인물.’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편집장으로 활동하면서 틈틈이 피델 카스트로와 100시간이 넘는 인터뷰를 한 이냐시오 라모네가 피델을 묘사한 대목이다. 2006년 건강상의 문제로 쿠바의 최고 권좌에서 물러난 피델이 2016년 11월25일 90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피델은 혁명의 이론가, 혁명군 사령관, 새로운 쿠바 정부 수립의 주도자, 쿠바 혁명 체제의 주요 정책 결정자로서 압도적인 위상을 지녔다. 그의 마지막 공식 직함은 국가평의회, 즉 인민권력의회 상임위원회의 의장이었다. 혁명 체제의 쌍두마차인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가 이상을 대변한다면, 피델은 현실의 관리자였다. ‘마르크스·레닌주의자이자 기독교인’을 자처한 피델은 갈등과 긴장 상태 속에서 열정적인 지지와 환호, 강력한 비판과 미움을 동시에 불러일으킨 엄청난 논란과 영향력의 중심에 있었다.

 

1956년 11월 망명지 멕시코에서 선언한 대로 혁명을 통해 민주주의, 경제적 주권 회복, 사회정의를 이루고자 대담한 정책을 추진한 피델은 오랜 경제 봉쇄 속에서도 쿠바에 전례 없는 사회경제적 평등, 비교적 높은 수준의 무상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실현했다. 그가 변혁의 모범으로 삼은 인물은 ‘영원한 혁명의 상징인 체 게바라와 19세기 말 쿠바 독립 투쟁의 신화적 인물 호세 마르티’였다.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사망한 지 이틀이 지난 27일(현지시간) 한 남성이 멕시코의 쿠바 대사관 앞에서 애도의 뜻으로 피델의 초상화가 든 액자를 들고 서 있다. 멕시코시티 _ AFP연합뉴스

 

하지만 미국 대통령 당선자 도널드 트럼프를 비롯한 반대자들은 피델을 잔혹한 독재자, 자유의 억압자, 인권의 침해자 등으로 규정한다. 이는 쿠바에서 쫓겨난 독재자 풀헨시오 바티스타 일파 등 반혁명 세력에 대한 처리와 응징 과정, 달리 말해 모든 혁명적 변화의 불가피한 요소에서 강화된 이미지였을 것이다. 물론 정치적 민주주의 구현보다 권력 집중과 대중 동원을 통해 장기집권 체제를 구축한 여느 제3세계 혁명 투사들과 마찬가지로 피델을 보편적 인권의 대변자나 인도주의자로 규정하긴 어려울 듯하다.

 

중요한 것은 언제, 어떤 맥락에서 그런 논란과 대조적 평가가 강화됐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냉전 대립에 근거한 시각의 극복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냉전시대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진로에 끼친 부정적 영향은 막대했다. 이 지역 지도자들이 대개 이데올로기적 선호에 따라 미국과 소련 중 한편과 긴밀히 협력하고 때로는 국민 대다수에게 재앙이나 다름없는 발전 방식을 추종했기 때문이다. 부족한 사실과 넘치는 편견에서 비롯된 이분법적 묘사와 이데올로기적 재단을 걷어내면 피델의 다른 면모가 엿보인다. 피델은 마르티의 정신과 실천을 계승하려는 민족민주 혁명가, 30대 초반의 젊고 활력이 넘치는 지도자, 정적조차 인정할 정도로 축재하지 않은 검소한 지도자, 3~4시간을 넘기는 공개 연설을 즐기는 놀라운 말솜씨, 뛰어난 기억력의 소유자로 평가돼왔다. 미국인들은 전가의 보도처럼 ‘인권 탄압’을 빼들지만 과거 여러 미국 대통령들이 적극 지원한 20세기 라틴아메리카의 군부 독재자들이 쿠바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인권 수호란 정치적 공세의 명분일 따름이었다.

 

피델의 사망은 2018년쯤으로 예상되는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의 권력 이양과 더불어 쿠바인들에게 한 시대의 마감을 의미한다. 쿠바인들에게는 혁명의 성과를 유지하면서 더 자유롭고 빈곤에서 벗어난 사회를 이뤄야 할 난제가 놓여 있다. 불확실한 시대의 막이 오른 셈이다.

 

미국의 공적 제1호로서 수백차례 암살 위협에 시달리는 등 고단한 삶을 살아온 ‘20세기 세계 정치의 마지막 괴물’이 사라졌다. 몬카다 병영 습격 실패 이후 1953년 10월16일 피델이 법정 최후 진술에서 역설한 대로 역사는 그에게 무죄를 선고할까? 12월4일 피델의 유해는 마르티가 안장돼 있는 동남부 도시 산티아고데쿠바의 묘지에 안치될 예정이다. 아디오스, 피델!

 

박구병 | 아주대 교수·서양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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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는 2006년 장 출혈로 물러난 뒤 애용하던 군복을 벗고 독일산 아디다스 운동복을 입고 다녔다. 왜 아디다스인가에 대해서는 쿠바 서민들이 좋아하는 브랜드이고 올림픽 때 쿠바 대표팀을 후원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부터 적대국인 미국산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얘기까지 설이 분분하다.

 

카스트로가 스포츠를 국위 선양의 도구로 활용했다는 것은 알려진 얘기다. 쿠바는 야구와 복싱 강국이다. 1992년 LA올림픽에서는 야구에서 금메달을 땄다. 이런 영웅들이 고액연봉을 위해 목숨을 걸고 미국으로 망명한 것은 카스트로에게는 아이러니였을 것이다.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2006년 7월21일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 정상회의에 대항해 만들어진 대안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아르헨티나 코르도바를 찾아 대중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코르도바 _ AFP연합뉴스

 

북한과의 관계도 빼놓을 수 없다. 카스트로는 2013년 당 기관지 ‘그란마’ 기고에서 “1982년 소련 서기장에 취임한 유리 안드로포프가 우리에게 미국 공격 시 자력으로 싸워야 한다고 얘기했다. 다른 친구에게 무기 제공을 부탁했다. ‘경험 많고 나무랄 데 없는’ 김일성 동지는 1센트도 요구하지 않고 AK소총 10만정과 탄약을 보내왔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2013년 봄 북한의 휴전협정 파기 선언으로 한반도 긴장이 높아지자 “전쟁 회피 의무는 미국에 있다”고 한 것도 카스트로였다.

 

이런 카스트로가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체 게바라 등 동지들이 타계한 터라 남미 좌파 마지막 혁명가의 죽음이라 할 만하다. 1953년 정부군을 습격하다 체포된 뒤 혁명의 권리에 대해 일갈한 법정진술은 유명하다. 그는 ‘정치적 권력은 인민에게 있다, 인민은 폭군을 몰아낼 의무가 있다’(존 밀턴), ‘정부가 권리를 침해할 때 불복종은 인민의 신성한 권리이자 절박한 의무’(프랑스혁명 인권선언) 등을 예시하며 “폭정에 항거한 반란은 권리”라고 주장했다. 2년 복역 뒤 석방된 그는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권력을 장악했다. 이후 그 자신 장기독재의 길에 빠진 것 또한 아이러니다.

 

한국에선 매주 토요일 전국의 광장에 시민들이 모여 혼군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전 세대의 혁명이 몇몇 혁명가 주도로 이뤄졌다면 지금은 다수 시민들에 의한 비폭력·평화혁명이 진행 중이다. 카스트로가 하늘에서 한국의 ‘피플파워’ 풍경을 보고 있다면 어떤 평가를 내릴까.

 

박용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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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53년 만에 쿠바에 대한 제재를 풀기로 했다. 지구상에서 미국의 적대국으로 남은 세 나라 중에 먼저 관계회복의 장을 열게 됐다. 현재 이란과 미국이 다자회담의 형태로 핵문제 해결과 더불어 국교정상화를 모색하고 있으니 그 뒤를 잇는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이란과 쿠바와 비교하면 북·미관계는 최악이라 북한만 홀로 남겨진 셈이다.

냉전이 붕괴된 지 20년도 지났다. 얼음은 벌써 녹아버렸어야 하는데 끈질기게도 이어왔다. 무엇보다 단절과 고립의 차가운 겨울을 온몸으로 받아내온 민초들에게 고통의 시간들이 아닐 수 없다. 이 겨울을 만든 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이란의 회교정권일까? 카스트로 형제와 김씨 일가일까?

두말할 필요 없이 그들은 오랜 시간 독재 권력을 휘두르며 다수 민중을 탄압해온 주범들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세상 전체를 얼게 만드는 얼음광풍의 진원지라고 할 수는 없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냉전이 붕괴된 지금 그들은 각자가 흩어져 악착같이 버티는 조각얼음에 불과하다. 얼리는 것도, 녹이는 것도 힘을 가진 측의 선택이다. 이는 미국과 쿠바의 관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쿠바는 끊임없이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원해왔지만, 미국이 얼음바람을 멈추지 않았다. 미국이 마침내 이를 인정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긴 세월 미국이 쿠바의 고립을 목표로 한 정책을 추진했으나 쿠바 정부가 자국민을 억압하는 명분을 주었을 뿐이라며, 실패한 낡은 접근방식을 버리고 쿠바와 미국 국민, 그리고 전 세계를 위한 더 나은 미래를 선택했다고 고백했다.

오바마의 남은 임기 동안 그 훈풍이 북한까지 닿아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비관적이다. 이란보다 심각한 핵문제가 있고, 쿠바와는 비교할 수 없이 열악한 인권문제가 있다는 점, 그리고 대중 견제도 고려해야 한다는 점에서 미국은 북한에 대해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북한은 스스로 몸을 녹일 생각이 없고, 한국 정부도 해빙을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 2년 전 북한을 향해서는 신뢰 프로세스를 내세우고, 안으로는 국민통합을 위한 따뜻한 보수를 지향한다고 했던 박근혜 정부는 기억상실증에 걸려있다. 기억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면, 그 기억의 실체가 원래부터 없었던 것이다.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오른쪽)이 17일(현지시간) 수도 아바나에서 미국에 수감됐다 이날 석방된 쿠바인 헤라르도 에르난데스, 라몬 라바니노, 안토니오 게레로(왼쪽부터)를 환영하고 있다. _ AP연합


국내 정치도 온통 얼어붙고 있다. 헌정사상 초유로 정당이 정부에 의해 해산되었다. 통합진보당의 이념과 정강정책에 동의하지 않지만, 사실 그들은 북한처럼 조각얼음일 뿐이다. 조각얼음을 녹이려면 다양성을 인정하는 민주적 관용이 답이지만 정부는 얼음을 녹일 생각이 아예 없는 것 같다. 더 고립시키고 더 얼게 만든다. 행동의 결과가 아닌 생각의 다름을 선거로 심판하지 않고, 공권력으로 처벌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본에 대한 침해이자 헌법과 역사의 후퇴이다. 스스로 시대착오적 고립을 자초하는 북한의 집단적 이성 탈출이 남한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쿠바 때문에, 북한 때문에 이 세계가 얼어버릴 수 있을까? 그것은 21세기 인류문명과 세계시민의 수준을 무시하는 것이다. 정부 말대로 ‘종북좌빨’이 존재한다 해도 그들의 시대착오적 조각얼음으로 국민 전체를 종북으로 만들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식민지와 전쟁, 독재를 핏빛 희생으로 극복해온 우리 민족의 역량을 모독하는 것이다.

2년간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하고 내치와 외교에서 모두 흔들리는 박근혜 정부가 국면 전환을 위해 정국을 얼려버리는 것으로 잡은 듯하다. 비선 의혹으로 추락하는 지지율을 공안의 얼음광풍으로 잡으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그래서인지 올겨울은 유난히 춥다. 시간은 흐르기에 2015년의 새해도 밝고, 봄도 오겠지만 한반도는 안팎으로 상당 기간 꽁꽁 얼어붙을 것 같은 우울한 세밑이다.


김준형 |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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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생각해보게 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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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각으로 12월18일 새벽 미국과 쿠바 양국의 대통령은 TV 생방송을 통해 약 54년간 지속된 적대관계의 극적인 전환을 동시에 발표했다. 양국 정부는 관계 개선의 걸림돌로 작용해온 수감자 문제를 맞교환 방식으로 처리하고 외교관계의 정상화를 전격 선언했다. 1961년 1월 양국 관계가 단절된 뒤 태어난 오바마 대통령은 “수십년의 고립정책이 민주적이고 번성하며 안정적인 쿠바의 출현을 촉진하려는 미국의 지속적인 목표를 성취하는 데 실패했다”고 밝혔다. 친형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게릴라 전사로 출발해 혁명정부의 요직을 거친 쿠바 혁명의 1세대 지도자 라울 카스트로는 봉쇄조치가 지속되는 상황이 속히 끝나야 한다고 역설했다.

1898년 미국-스페인 전쟁 이후 ‘스페인의 마지막 식민지’ 쿠바는 사실상 미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미국은 쿠바 관타나모만에 해군기지를 설치하고 쿠바 헌법을 수정해 내정에 개입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등 1950년대 말까지 쿠바를 좌지우지했다. 하지만 민주주의 회복, 경제적 독립, 사회 정의를 내세워 친미 독재자를 축출한 뒤 1959년 1월 출범한 쿠바의 혁명정부는 이런 흐름을 뒤바꾸고자 했다.

쿠바의 농업개혁과 기간산업의 국유화 정책에 맞서 미국 정부는 금수(禁輸)조치와 해상 봉쇄, 단교, 반혁명 세력의 쿠바 침공 지원, 수백회에 이르는 피델 카스트로 암살 시도 등 일련의 강경책을 펼쳤다. 반면 1962년 1월 미주기구에서 축출된 쿠바는 소련에 더 의존했다. 1962년 10월 소련의 미사일이 배치돼 핵전쟁 일보직전의 위기에 내몰렸던 쿠바는 미-소 냉전 대립의 단층선이 되었고 소련 몰락 후에도 냉전의 굴레에 묶여 있었다. 비교할 수 없이 작은 적성국에 대한 미국의 압박은 1990년대에 더 강화되었다.

1962년 4월 민주당 상원의원 제임스 W 풀브라이트는 카스트로 정권을 가리켜 “미국의 몸에 박힌 하나의 가시일 뿐이지 심장에 겨누어진 대검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보수 강경파는 국가안보를 강조하면서 ‘뒷마당’에 있는 적대세력의 위협을 과장해왔다. 또 1959년 이래 쿠바를 떠난 이들은 미국 플로리다에 정착촌을 만들어 ‘장거리 내전’을 지속했다. 현재 미국에 거주하는 쿠바 출신은 200만명(70%가 마이애미를 비롯한 플로리다에 거주)에 이르며 55%가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다.

그동안 협상을 통한 해결책이 꾸준히 선호되었고 미국인의 70%가 쿠바 경제봉쇄에 반대했으며 유엔총회에서도 반대 의견이 늘었다. 또 쿠바계 미국인 사회에서 젊은 세대의 비율이 늘면서 예전과 다른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쿠바계 미국인 중 65세 이상은 41%가 외교관계의 재개에 찬성하는 반면, 18~29세는 찬성률이 88%에 이른다. 향후 쿠바의 자유화가 좀 더 진전되고 망명자들의 보복 욕구도 약해지면서 언젠가 모두 장거리 내전을 끝낼 방법을 모색하게 되리라 예견되는 가운데 이런 역사적인 정상화 조치가 발표된 것이다.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와 미국 내 쿠바인 수감자의 송환 소식을 들은 쿠바 아바나 시민들이 17일(현지시간) 두 팔을 흔들며 기뻐하고 있다. _ 로이터


이제껏 쿠바를 향한 미국의 포용정책이 두드러지진 않았지만, 이 전환은 작년 초부터 캐나다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중재 아래) 바티칸에서 진행된 비밀회담의 성과로 알려졌고 오바마 행정부의 업적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앞으로 오바마 행정부는 이 전환을 ‘미국의 패배 인정’으로 여기는 쿠바계 상원의원 마르코 루비오와 공화당 의원들의 공세를 비롯해 ‘불량 국가 쿠바의 잔혹한 독재에 정당성을 부여해준 배신’이라고 비난하는 보수적 여론을 넘어서야 할 것이다.

사실 이 전환은 라울 카스트로가 지적한 대로 양국 간에 존재하는 큰 차이를 인정하는 첫걸음일 수밖에 없다. 미국인과 쿠바인들의 마음속에 어렵사리 빛이 생겼을 뿐이다. 덧붙여 소련 해체 뒤 ‘특별시기’의 내핍생활을 버텨낸 쿠바인들의 생존력과 분투, 그 와중에 전 세계인에게 전해준 낙천성에 경의를 표하며 냉전 구도 속에서 왜곡된 쿠바 혁명의 길이 좀 더 공정한 평가를 받게 되길 바란다.


박구병 아주대 교수·서양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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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너무너무 달라요 2014.12.20 14:20 신고
    이제는 북한만 남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어제 통진당이 해산당한직후 더욱더 민주주의가 암울해질때 뚱돼지 김정은이 개혁개방을 노력한다는뜻에서 제발 북한도 개방을 해야 한반도가 통일이 될수있다는것을 알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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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쿠바가 53년 만에 국교 정상화에 나선다. 21세기 세계사에 기록될 역사적인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미국과 쿠바가 국교 정상화 첫발을 떼면서, 이제 시선은 ‘평양’으로 향하고 있다. 양국의 수교가 이뤄지면, 북한만이 미국의 유일한 적대국가, 평양만이 미국 대사관 없는 수도로 남는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수십년간 미국의 국익을 증진해 나가는 데 실패해온 낡은 접근방식을 끝내고 양국 관계를 정상화해 나갈 것”이라며 “미국은 그동안 쿠바의 고립을 목표로 한 정책을 추진해 왔으나 쿠바 정부가 자국민들을 억압하는 명분을 제공하는 것 외에는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이 53년 동안 유지해 온 쿠바 봉쇄정책이 실패한 것임을 공식 시인한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은 대쿠바 봉쇄정책을 대폭 완화한다는 방침 아래 조만간 쿠바 수도 아바나에 미국 대사관을 재개설할 것임을 밝혔다. 쿠바의 테러지원국 해제 검토, 쿠바 여행과 송금 제한 대폭 완화, 다음달 이민 대화 공식 착수 등의 조치도 지시했다. 국교 정상화 추진 과정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를 조만간 방문할 가능성도 열어놨다. 카스트로 의장 역시 전국 라디오 방송을 통해 국교 정상화 논의를 선언했다. 바야흐로 양국 간 모든 현안을 일괄 타결하겠다는 기세다. 국교 정상화 추진 일정이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 선언을 바라보는 마음이 착잡하다. 태평양 건너 남의 잔치를 축하하면서 기뻐할 수만도 없다. 북·미관계의 현실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점차 북·미관계도 꿈틀거릴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정부가 마지막 남은 미수교 국가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보다 적극적으로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 오바마 정부는 쿠바 사례를 원용해 상황 전개와 북한의 태도를 봐가며 관계 개선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군중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3주기 하루 전날인 지난 16일 평양 만수대의 김일성 주석(왼쪽), 김정일 국방위원장 동상을 향해 허리를 숙이고 있다. _ 로이터


최근 들어 북한이 미국인 억류자들을 풀어주면서 북·미관계에 해빙 기류가 형성되는 듯한 느낌이다.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가정보국장(DNI)이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간접 전달하면서, 북·미관계 변화가 주목됐다. 대니얼 러셀 미국 동아·태차관보는 12월16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중 공동과제와 협력 전망’ 세미나에서 ‘북·미 대화를 하는 데서 주저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미국은 성 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방북 가능성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 선언은 북한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다. 쿠바는 북한이 형제국가라 칭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다. 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하면서 미국과 적대관계를 형성해온 점도 유사하다. 북한은 자국만이 미국과 적대국가로 남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북·미관계 개선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안이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행보를 하게 만드는 촉매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당장은 북한이 미국에 대해 쿠바에 대한 봉쇄정책처럼 대북 적대시 정책도 실패했음을 인정하라는 주장을 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양국의 국교 정상화 선언은 국제적인 고립에 처해 있는 김정은 체제에 대미관계 개선에 적극 나오라는 신호로 읽힌다.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라는 큰 산을 넘기 어려운 시점에, 북한 인권문제가 국제사회의 이슈로 부상한 지금, 당장은 북·미관계 개선이 뜬구름잡기일 수 있다.

대화를 통한 북핵문제의 해법이 윤곽을 잡을 때, 오바마 대통령과 김정은 제1위원장이 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도 첫출발은 뜬구름 위에서 시작됐다.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 선언은 향후 남북관계에도 많은 영향을 줄 것이다. 강대강(强對强)의 대결구도를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이 보다 차가워질 것은 자명하다.

해방 70년을 맞이하는 세모에,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 선언은 북·미관계, 남북관계에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한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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