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전격적인 중국 방문 및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은 갈등으로 치닫던 북·중관계 회복과 한반도 비핵화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북·중 정상회담에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총서기의 유훈에 따라 비핵화는 우리의 변함없는 입장”이라고 천명한 것은 의미가 있다. 시 주석 면전에서 직접 육성으로 밝힘으로써 비핵화가 흔들림 없는 정책 목표임을 대내외에 선언한 것이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이달 초 평양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사단 면담석상에서도 같은 발언을 했지만 이후 한국과 미국 일각에서 진정성을 의심하는 문제제기가 나왔다. 비핵화를 내세운 북한의 갑작스러운 대남, 대미 관계 개선 시도가 대북 제재를 피해 핵개발을 하려는 시간 벌기일 뿐이라는 우려다. 김 위원장이 이런 의구심에 쐐기를 박음으로써 유사한 논란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이 지난 2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과 함께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베이징 _ 연합뉴스

김 위원장은 또 북·중 정상회담에서 “남한과 미국이 선의로 우리의 노력에 응해 평화 안정의 분위기를 조성해 평화 실현을 위한 단계적인 조치를 한다면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단계적 비핵화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미국이 먼저 평화 실현 조치를 하면 비핵화할 수 있다는 김 위원장의 ‘선(先) 조치, 후(後) 비핵화’ 방안은 향후 핵심 당사국들과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미국은 아직까지 북한의 핵포기를 주장할 뿐 이에 상응하는 보상조치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김 위원장의 제안이 문 대통령의 일괄타결 방안과 조화될지도 주목된다. 비핵화의 길이 험난할 수도 있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비핵화가 필수적이라는 남북한과 미국의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향후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견해차를 좁힐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북핵 폐기와 평화협정 등을 단계별로 맞교환하는 해결책을 담은 9·19합의 등 비핵화 논의에 참고할 만한 기존 합의와 구상들도 많다. 중요한 것은 상대에 대한 신뢰와 진정성이다. 과거 북·미 간에 여러 차례 비핵화 합의를 하고도 번번이 깨진 것은 불신의 벽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북·중 정상회담은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개최가 결정된 상황에서 끼어드는 형국으로 갑작스럽게 열렸다. 이것이 새로운 변수가 되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가 있다. 북·중관계 정상화는 일차적으로 비핵화 등 한반도 문제 해결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국 역시 비핵화를 원하기 때문이다. 중국으로서는 한반도 영향력이 약화되는 이른바 ‘차이나 패싱’ 우려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중국이 한반도 정세에 대한 자국의 역할 확대를 미·중 패권 경쟁에 활용하려 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북·중관계 회복이 대북 제재의 끈을 헐겁게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두 나라가 관계 발전의 일환으로 경협 활성화를 논의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대북 제재 강화가 아니라 정밀한 비핵화 로드맵 마련과 착실한 이행으로 풀어야 한다. 한반도 문제의 핵심당사국인 중국이 남·북·미 간 관계개선과 비핵화 논의에 참여하는 것은 시점의 문제였을 뿐 불가피한 일이다. 일본과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주변국 모두의 노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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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일 간에 대화의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지난주 가을 정상회담을 갖자는 내용의 아베 신조 총리 친서에 박근혜 대통령은 전과 달리 부드러운 반응을 보였다. 유엔총회 기간 한·일 외무장관 회담 개최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다음달 초에는 한·일 차관급 대화가 열릴 예정이다. 이런 대화 복원 속도로 미루어 10월 혹은 11월 다자회담 때 자연스럽게 한·일 정상회담도 개최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양 국 정상이 취임 후 한 번도 회담을 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최근 양국 간 대화 분위기는 늦은 감이 있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정부가 전략적으로 주도한 결과라기보다 외부 상황에 수동적으로 끌려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북·일이 납치자 문제로 접근하고 일본이 중·일 정상회담을 적극 추진하자 외교적 고립 상태에 처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대일 접근법을 바꾼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전환이 자연스럽지는 않다. 정부의 경직된 위안부 문제 연계 때문이다.

정 부는 그동안 일본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없이는 한·일관계 정상화도 없다는 강경 입장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일본은 한국 요구를 수용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조건으로 할 경우 대화 복원 가능성이 낮다는 걸 뜻한다. 게다가 내년은 한·일관계 정상화 50주년, 광복 70주년이다. 남북관계 단절 상황에서 한·일 갈등까지 겹치는 걸 그대로 두기가 부담스럽다. 대일 강경 입장을 철회하는 것이 불가피해졌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외교적 실책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정부는 당초 위안부 문제를 한·일 정상회담의 조건으로 묶기보다 분리·병행해야 했다. 위안부 문제는 역사적 사실의 문제일 뿐 아니라 과거사 인식의 문제이기도 하다. 아베 정권의 인식을 바꾸는 일을 단기 과제로 삼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반면 일본과의 대화 복원은 단기적 과제다. 위안부 문제와는 성격이 다르다. 따라서 이를 연계시키면 자칫 한·일 정상회담 때문에 위안부 문제 해법이 왜곡되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위안부 문제가 섣불리 양보할 문제가 아니라면 분리·병행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 동안 한·일 정상회담은 일상적인 대화 통로였다. 따라서 정상회담 한 번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고 큰 성과를 얻는다는 목표를 세울 필요가 없다. 정상회담 한 번으로 양국 현안을 최종 해결할 수는 없는 일이다. 박근혜·아베 회담은 문제 해결의 시작일 뿐이다. 정부는 문제 해결의 출발선에 서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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