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국민 ‘탈원전 운동’ 수렴 실패 속 정치권은 우향우


일본 지바(千葉)현의 오다키마치(大多喜町)는 소규모 수력발전소를 반세기 만에 재가동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도쿄전력이 가동을 중단한 뒤 방치돼 있던 시설을 자치단체가 연말까지 보수해 재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도쿄만으로 흘러드는 마을 하천의 물을 유도관을 통해 끌어들인 뒤 낙하시키는 방식으로 생산되는 전력은 마을 110가구에 공급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에너지 자립을 위한 첫발을 뗐다는 데 의미가 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직후 태양광발전이 각광을 받은 데 이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농업용수로나 하수처리장에 수차를 설치하는 정도로 전기를 얻을 수 있는 소수력발전의 보급이 확산되고 있다.


3·11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전사고 이후 2년간 일본 각지에선 ‘에너지 지산지소’로 불리는 에너지 자립실험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지역에서 쓸 에너지를 지역에서 생산하자’는 움직임은 원전사고로 거대 전력회사의 독점 폐해가 백일하에 드러난 이후 기성질서로부터 벗어나려는 ‘원심력’이 작동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일본인 17만여명이 2012년 7월16일 도쿄 요요기공원에서 열린 원전 반대 집회 ‘안녕 원전’에 참석해 행진하고 있다. 이 집회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와 작곡가 사카모토 류이치 등이 주최했다. _ 경향신문 자료사진





▲ 아베노믹스·토건 부활·개헌… 약화된 ‘정치 구심’ 되살리기

지자체선 에너지 자립운동… 전력 독점구조 ‘이탈’ 움직임


정치권은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2년 전 대지진에 이어 지난해 중국과의 센카쿠(尖閣)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 등 안팎에서 위기가 조성되자 정치권은 급격히 보수화 흐름을 보였고, 민주당의 개혁실험은 좌절했다. 지난해 12월 총선을 통해 집권한 자민당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은 ‘강한 일본’을 외치며 재난 이후 약화된 ‘구심력’의 회복을 꾀하고 있다. ‘일본을 되찾겠다’는 자민당의 총선 슬로건의 속뜻은 50여년의 자민당 장기집권 과정을 통해 구축된 기성질서를 재확립하겠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안전이 확인된 원전은 재가동하겠다”고 선언해 ‘원전 마피아’의 이익을 보장하겠다는 의지를 비쳤다. 자민당 내각은 전력회사가 재생가능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을 의무매입하도록 한 제도에 대해서도 매입가격을 10%가량 낮출 것을 검토하는 등 재생에너지 확대에 제동을 걸 움직임을 보인다.


대담한 금융완화와 공공투자를 축으로 한 ‘아베노믹스’로 엔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수출 대기업은 쾌재를 부르고 있고, 대규모 건설기업들도 ‘토건주의 부활’에 대한 기대감에 들떠 있다. 반면 수입물가 상승은 가계의 주름살을 더 깊게 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기업들에 종업원의 임금 인상을 유도하는 등 유연한 태도를 보이곤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아베노믹스의 혜택은 대기업에 집중되고 있다. 일본 정치권에서는 헌법을 개정하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아베 정권의 우경화 노선을 견제할 세력이 보이지 않는다. 헌법의 개정요건을 완화하는 헌법 96조 개정에 자민당은 물론 민주당에서도 상당수 의원이 찬성하고 나선 것은 이런 현실을 뒷받침한다.


반면 원전사고 이후 ‘각성한’ 시민들의 움직임은 현실정치의 추진력이 되지 못한 채 고립분산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총선에서 ‘탈원전’을 내세운 정당들이 참패함으로써 구체제의 복귀를 막지 못하는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에너지 자립을 모색하는 움직임을 제외하면 뚜렷한 성과도 보이지 않고, 원전 2기의 재가동도 결국 저지하지 못했다. 지난해 도쿄 시내에서 17만명이 참가한 탈원전 집회를 개최한 시민그룹들이 오는 10일 전국 270곳에서 동시다발 탈원전 집회를 개최할 예정이지만 일과성 이벤트로 끝날 공산도 크다.


도쿄 | 서의동 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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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일 진보 학자 아사노 교수


“대학, 언론, 노동조합이 비판기능을 상실한 현재의 일본은 1920년대보다도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생각합니다.”


아사노 겐이치(淺野健一·64·사진) 일본 도시샤(同志社)대 교수(미디어학)는 5일 경향신문과의 전화인터뷰에서 동일본 대지진 2년을 맞은 일본 사회를 이렇게 진단했다. 그가 거론한 1920년대는 일본에서 민주주의 운동이 활발했던 ‘다이쇼(大正) 데모크라시(1911~1925)’ 시대를 가리킨다. 아사노 교수는 “당시엔 언론들이 침략전쟁을 반대하기도 했고 진보세력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껴가며 천황(일왕)제 폐지를 외치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집회와 언론 자유가 보장돼 있는데도 비판 주체들이 사회적 의제 설정이나 권력에 대한 비판을 등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사노 교수는 특히 지난해 12월 총선 결과에 대해 “후쿠시마(福島) 원전사고를 겪은 일본에서 원전추진 세력인 자민당이 압승한 것은 민주주의가 전혀 기능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원전사고를 계기로 독일이 원전정책을 폐기했고, 유럽에서 녹색당 등이 선전한 반면 일본에서는 원전사고가 난 후쿠시마현에서조차 자민당이 압승했다. 


그는 “비판기능이 상실되면서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일본유신회 대표의 인종주의적인 발언이 그대로 용인되는 반면 혁신세력들이 주장해온 일본의 ‘비무장 중립론’은 말조차 꺼내기 힘들어질 정도로 사회가 보수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이유로 아사노 교수는 “일본이 본래 민주주의 성향이 약한 데다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단죄하지 않은 채 넘어가기 때문”이라며 “아베 내각이 편협한 내셔널리즘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도 과거 역사에 대한 청산과 반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사고’가 아니라 안전불감증이 빚어낸 ‘형사사건’입니다. 철저한 검찰 수사를 통해 책임자를 가려내고 처벌하지 않으면 똑같은 실수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도쿄 | 서의동 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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