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 후 첫 해외순방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트럼프는 9일간 중동 및 유럽 5개국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28일 트위터에 “이번 순방은 미국에 큰 성공이었다”고 썼다. 트럼프의 첫 순방은 미국의 핵심이익인 중동과 전통적인 동맹인 유럽 국가에 맞춰진 만큼 대외정책의 근간인 미국 우선주의와 유럽 동맹국과의 협력관계를 엿볼 수 있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미국 우선주의라는 관점에서 보면 트럼프의 첫 순방은 그의 평가처럼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국익을 앞세운 나머지 미국과 유럽 간 동맹관계에 심각한 균열을 일으킨 점 또한 부인할 수는 없다.

 

트럼프의 중동 방문은 큰 이변 없이 순조로웠다. 이란 핵무장 반대, 이슬람국가(IS) 격퇴 등 동맹국들을 안심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에서 보인 행보는 달랐다. 유럽 안보나 러시아 위협은 안중에 없이 국익에만 치중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서 집단방위를 규정한 나토 협약 5조 준수 거부, 방위비 분담금 확대 요구는 회원국의 분노를 샀다. 1949년 나토 창설 이후 정상회의에서 협약 5조 준수를 거부하고 분담금 증액을 요구한 미국 대통령은 트럼프가 유일하다. 트럼프 관점에서 미국의 안보 우산에 기대고 제 역할을 다하지 않은 나토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파리기후협정을 유일하게 반대하고, 대미 무역에서 흑자를 보는 독일을 “매우 나쁘다”고 비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8일(현지시간) 뮌헨에서 열린 기민·기사당 합동 행사에 참가해 연설 도중 맥주잔을 들어보이며 웃고 있다. 뮌헨 _ AFP연합뉴스

 

미국 안에서는 트럼프의 유럽 순방을 두고 고립주의에 대한 단호한 거부이자 미국의 리더십을 재확인해 준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이기주의 관점에서 본다면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트럼프의 국익 우선주의가 장기적으로는 전통적인 동맹국 관계도 해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런 점에서 유럽 최강국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G7 회의를 마친 뒤 “미국은 독일이나 유럽에 믿을 만한 파트너가 아니다”라고 한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브렉시트와 미국 우선주의 속에서 미국과 유럽 동맹관계를 재검토해야 할 때가 됐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만일 미국 우선주의가 계속된다면 미국 주도로 구축된 유럽 질서는 변화할 수밖에 없고, 이는 다시 미국과 세계에 불확실성을 안겨줄 가능성이 크다. 또한 국제협력과 번영의 기회도 사라질지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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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형식 (봄내, 벨기에 리에쥬대학 사회적경제센터 박사과정 연구원, hseom73@hanmail.net)



가끔 이런 질문을 받곤 합니다. “유럽의 사회적 기업은 어떤가요?”

이 질문은 두 가지 지점에서 저를 곤혹스럽게 합니다. 한국에서 생각하는 유럽의 이미지와는 달리, 유럽, 적어도 유럽연합은 역사와 문화, 언어를 달리하는 27개국이 모여있는 ‘다양성’의 공간이기 때문이지요. 보다 본질적으로 어려운 것은 사회적 기업이 무엇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요즈음 사회적 기업이라는 단어가 유행이라, 사람마다, 조직마다 각각 나름대로의 정의를 내놓고 있습니다만, 제가 확언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정도입니다.

첫째, 사회적 기업은 역사적 개념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오래 전부터 사회적기업이라는 개념이 있다가 최근에 와서 발견되었다거나, 무언가 사회 적기업이라고 하는 이상적인 모델이 있다고 전제하는 접근법, 다시 말해 개념/이데올로기 자체가 실체인 것처럼 오해하는 ‘물신주의’를 주의해야 합니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기업이라 불리던, (제 표현을 사용하자면) 새로운 사회적 경제라 불리던 간에, 무언가 새로운 개념과 이름을 필요로 하는 ‘새로운 현상’이 역사적으로 존재했고, 현재도 발전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이 공간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이 ‘새로운 현상’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점차 그 이유를 설명하겠지만, 일단 저는 이 현상을 ‘새로운 사회적 경제’라고 부르고자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흔히 듣고 있는 사회적 기업도 이 현상의 일부라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유럽에서는 이미 주류화되고 있는 공정무역이나 로컬푸드, 아직 실험적이지만 지역화폐나 지역수준의 새로운 거버넌스 등도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현상에 포함됩니다.

새로운 사회적 경제가 뭐냐, 어떤 원리에 기반해서 작동하느냐,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느냐, 무엇이 새롭고, 무엇이 자본주의와 다르냐 등등의 이야기를 이론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이 연재의 목적은 아닙니다.
저는 이 연재를 통해, 제가 유럽에 머무르면서 모은 자료와 만났던 사람, 그리고 방문했던 조직들을 정리해보고, 이를 통해 여러분과 함께 현상의 이면에 무엇이 있는가를 질문해보고자 합니다.

‘새로운 현상’을 이야기할 때는, 무엇이 무엇에 비해 새로운가를 이야기할 필요가 있고, 이러한 맥락에서 새로운 사회적 경제의 이야기는 흔히 19세기 초반의 유럽에서 등장한 ‘전통적 사회적 경제’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전통적 사회적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을 통해 ‘공상주의자’라고 낙인 찍었던 (왜 공상적인지 우리가 판단할 여유도 없이!!) 푸르동, 푸리에, 생시몽, 오웬 그리고 마르크스에게 덜 찍혔는지, 아니면 마르크스가 관심을 가질 정도의 비중도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공상주의자’에서 열외가 된 뷔셰, 르 쁠레 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등장했던 ‘협동조합 공화국’에 대한 꿈과 20세기 자본주의의 발전과 복지국가의 형성에 따라 규모가 커지고, 덩달아 운동으로서의 정체성을 잊어간 협동조합, 상호공제조합, 민간단체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따라 나옵니다.

그런데, 이 장구한 역사이야기를 먼저 시작하려면, 별로 재미도 없고, 오늘의 이야기를 하기도 전에 지쳐버릴 것 같군요. 전통적 사회적 경제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좀 마음을 잡고, 준비를 잘 해서 여러분과 함께 나누겠습니다.

멀리 갈 것 없이 제가 살고 있는 벨기에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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