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과거사를 미화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달리 부인 아키에 여사는 ‘친한파’였다. 한류 사랑이 유별나 배우 박용하씨가 요절했을 때 조화를 보내기도 했다. 아베 정부의 원전 확대에 반대한다는 글을 여러 차례 페이스북에 올렸고, 이로 인해 부부싸움까지 했다. 이른바 ‘가정 내 야당’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일본 우익으로부터 ‘국가의 적’으로 낙인찍혔다. 그래서일까. 2015년 한국과 일본이 위안부 합의를 한 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한국인들은 배신당했다며 가슴을 쳤다.

 

“아이들에게 손 떼라” 미국 텍사스 토닐로에서 17일(현지시간) 시민들이 불법 입국자 자녀에 대한 격리 수용 정책에 항의하며 “아이들에게서 손을 떼라” 등 문구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토닐로 _ 로이터연합뉴스

 

역대 대통령 전기를 보면 부인들은 충돌하는 요구에 직면한다. 남편이 올바른 결정을 내리도록 직언해야 한다거나 정치에 끼어들지 말라는 것이다. 물론 전기에서는 부인이 대체로 훌륭한 가정 내 야당 역할을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육영수 여사에 대해 “내 옆에 지독한 야당 총재께서 앉아계시니 조심들 합시다”라는 농담을 자주 했다. 실제로 육 여사는 1963년 박 전 대통령이 군정연장을 시도하자 주미대사에게 미국이 반대하도록 설득하라고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는 가장 엄격한 비판자로 평가를 받는다. 반대로 이승만 전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는 대통령의 건강을 지나치게 챙기면서 심기를 거스르는 정보를 차단했다는 부정적 평가를 받는다. 어쩌면 ‘오만한 안방권력’과 ‘현명한 조언자’는 종이 한 장 차이인지도 모른다.

 

미국 영부인 멜라니아 트럼프 . AFP 연합뉴스

 

불법 입국한 부모와 자녀를 따로 수용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무관용 정책’에 부인 멜라니아 여사가 반대했다. 그녀가 “국가는 가슴으로 통치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를 압박하자 워싱턴 정가는 놀란 표정이다. 하지만 이 주장은 전적으로 인권에 부합하는 것이다. 그녀는 슬로베니아 이민자이기도 하다. 지난 3월에는 사이버 괴롭힘을 악으로 규정하고 백악관 대책회의를 열기도 했다. 버락 오바마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트위터를 계속해온 남편에 대한 명백한 ‘반란’이다. 그녀는 회의에서 “옳다고 알고 있는 일을 하는 것은 나를 멈추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 이상 ‘밀랍인형’으로 살아가지 않을 것을 선언한 셈이다. 기록에 따르면 부인의 반대는 관철된 적이 많지 않다. ‘멜라니아의 반란’은 어떻게 끝을 맺을까.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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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엔과 일본 정부의 관계가 미묘하다. 유엔 특별보고관이 일본 국내 문제에 대해 잇따라 우려를 표명하자 일본 정부가 대놓고 반박하고, 한·일 위안부 합의를 유지하기 위해 ‘여론 호도’를 서슴지 않으면서다. 급기야 유엔 측이 “위안부 합의에 동의한 적 없다”고 진화에 나서는 일까지 벌어졌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은 28일(현지시간) 논평에서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위안부 문제는 한·일 간 합의에 따라 해결할 사안이라는 데 동의했다”면서 “구체적인 합의 내용이 아니라, 위안부 해법의 본질과 내용을 규정하는 것은 양국에 달렸다는 원칙에 동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외무성은 구테흐스 총장이 지난 18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회담하며 “위안부 합의를 지지하고 환영한다”고 말했다고 발표했다. 두자릭 대변인은 또 “특별보고관은 독립적인 전문가로 유엔 인권이사회에 직접 보고한다”고 밝혔다. 일본은 특별보고관의 우려 표명에 항의했고 구테흐스 총장도 항의에 공감했다는 듯이 발표했는데, 두자릭 대변인은 이 또한 부인한 것이다. 일본 정부가 면담 내용을 호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게 됐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AFP연합뉴스

 

일본 정부는 유네스코 분담금 지급을 보류하면서 유네스코의 난징(南京)대학살 자료 등재에 반발하고, 한·일 위안부 자료의 심사 및 등재를 막아왔다. 유엔 인권최고기구 산하 고문방지위원회가 한·일 위안부 합의를 개정하라고 권고한 것에 대해서도 “개정할 필요가 없다”는 반론문을 제출했다. 국제무대에서 국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적극적인 외교전을 펼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일본의 외교전에는 위안부 문제 등 보편적 인권이나 민주주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빠져 있다.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반인도 범죄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적극적으로 과거사를 반성하고, 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지키는 데 앞장서는 일이다.

 

일본 내 인권·민주주의 상황에 대해 유엔 특별보고관들의 우려가 잇따르고 있는 점도 되새겨볼 대목이다. 유엔은 ‘감시사회’ 논란을 일으킨 공모죄 법안,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대운동을 해온 시민운동가의 장기 구류, 언론 통제 등을 두고 인권과 표현의 자유 침해를 지적했다. 일본 정부는 이런 우려를 되레 반박하고 있다. 심지어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표현의 자유 침해를 우려한 특별보고관의 서한에 대해 “무언가 배경이 있는 것 아니냐”고까지 했다.

 

일본은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이다. 북한 납치 피해자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왔다는 이유로 특별보고관에게 국가훈장을 준 적도 있다. 다니구치 마유미(谷口眞由美) 오사카국제대학 부교수는 전날 TBS 방송에 나와 일본 정부가 “두 개의 혀”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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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가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 설치한 ‘평화의 소녀상’은 해당 구청의 철거와 압수, 시민들의 반발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다시 제자리에 놓였다. 소녀상을 그 자리에 설치하는 것이 도로법 시행령 위반임에도, 일본과 외교적 갈등을 겪게 될 것이 분명해 보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소녀상 설치를 막지 못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도로점용 허가를 받을 수 없는 설치물인 소녀상을, 그것도 일본영사관 출입문에서 불과 30m 떨어진 담장 앞에 세우는 것은 바람직한 행동이 아니다. 하지만 부산 동구청이 소녀상을 강제 철거하자 전 국민이 들고일어났다. 한국 국민들의 법질서 의식이 약해서가 아니다.

 

국제 관행을 무시할 만큼 예의가 없기 때문도 아니다. 2015년 12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정부 간 합의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굴욕적이고 일방적인 위안부 합의가 없었다면 시민단체가 일본영사관과 지근거리에 소녀상을 설치하는 ‘과격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부산 동구청은 시민들의 기세에 눌려 소녀상 설치를 허용했다. 관청이 불법 설치물을 허용하는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소녀상을 공공조형물로 등록하도록 하는 고육책도 추진 중이다. 이처럼 소녀상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데 정작 위안부 합의의 주체인 정부는 힘도 권한도 없는 일개 구청을 총알받이로 내세워놓고 비겁하게 그 뒤로 숨어버렸다.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옆에 꽃다발과 화분이 놓여 있다. 이준헌 기자

 

정부는 소녀상을 일본영사관 앞에 설치하는 것에 반대한다. 한·일관계를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된다”고 말할 용기는 없다. 외교부는 지난달 30일 이 문제에 대해 “외교공관 보호에 관련된 국제 예양(禮讓) 및 관행이라는 측면에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적절한 장소에 대해 지혜를 모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는 공식 입장을 냈다.

 

정부가 말하는 ‘국제 예양 및 관행’이란 ‘영사관계에 관한 빈 협약’을 의미한다. 이 협약 22조 2항에는 “접수국(한국)은 파견국(일본) 공관의 안녕 교란, 품위 손상 방지를 위해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할 의무를 갖는다”고 돼 있다. 실제로 일본 측은 이 협약을 근거로 한국에 소녀상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소녀상이 일본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것인지, 위해를 유발할 수 있는 시설인지 등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없다. 또 협약에 저촉되지 않으려면 공관에서 얼마나 떨어진 곳에 소녀상을 설치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정도 없다. 일각에서는 외국공관 100m 이내에서 시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을 원용해 100m를 합리적인 거리로 보기도 하나 정해진 것은 아니다. 결국 협약 위반 여부는 적용하기 나름이고 정부의 판단에 달려 있다.

 

정부가 국제 관행을 내세워 사실상 소녀상 설치에 반대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부산 일본영사관 앞의 소녀상과 서울 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이 비엔나 협약 위반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일본의 소녀상 이전 요구에 대해 “민간단체의 일에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만 봐도 비엔나 협약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정부는 비엔나 협약을 걸고 넘어질 생각이 없으면서도 ‘외교 문제가 될 수 있으니 다른 데로 옮겨달라’고 요구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위안부 합의에 대해 ‘역대 어느 정부도 해내지 못했던 최선의 결과’라고 강변하고 있다. 하지만 위안부 합의의 적나라한 실상은 일본과 시민단체의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하고 있는 정부의 곤궁한 모습이다. 정부가 소녀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다. 일본에 추가 협상을 제의하는 것이다.

 

기존의 위안부 합의는 심각한 결함을 갖고 있다. 특히 위안부 문제에 대한 법적 책임 부분을 좀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일본이 법적 책임을 명시적으로 인정하도록 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최소한 정부 차원에서 공개적으로 부인하지는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야 한다. 한국이 “일본이 지급한 10억엔은 배상금”이라고 명시적으로 말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일본이 “배상금이 아니다”라고 공개적으로, 반복적으로 말할 수 있는 합의를 했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여기에 일본 총리의 사과 서한을 피해자들에게 전달하는 추가 조치를 더한다면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은 갖출 수 있다.

 

정부는 추가 협상을 일본이 거부할 경우 ‘국민들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기존의 합의에는 더 이상 구속되지 않겠다’고 선언할 수 있는 결의를 가져야 한다. 추가 협상 제의나 기존 합의 무효 선언이 외교적 부담을 가져올 수 있겠지만, 그것은 대일외교에 실패한 박근혜 정부의 업보로 받아들여야 한다. 국가적 자존심과 바람직한 한·일관계의 미래를 위해 차기 정부가 감내할 수밖에 없다.

 

유신모 |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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