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일 진보 학자 아사노 교수


“대학, 언론, 노동조합이 비판기능을 상실한 현재의 일본은 1920년대보다도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생각합니다.”


아사노 겐이치(淺野健一·64·사진) 일본 도시샤(同志社)대 교수(미디어학)는 5일 경향신문과의 전화인터뷰에서 동일본 대지진 2년을 맞은 일본 사회를 이렇게 진단했다. 그가 거론한 1920년대는 일본에서 민주주의 운동이 활발했던 ‘다이쇼(大正) 데모크라시(1911~1925)’ 시대를 가리킨다. 아사노 교수는 “당시엔 언론들이 침략전쟁을 반대하기도 했고 진보세력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껴가며 천황(일왕)제 폐지를 외치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집회와 언론 자유가 보장돼 있는데도 비판 주체들이 사회적 의제 설정이나 권력에 대한 비판을 등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사노 교수는 특히 지난해 12월 총선 결과에 대해 “후쿠시마(福島) 원전사고를 겪은 일본에서 원전추진 세력인 자민당이 압승한 것은 민주주의가 전혀 기능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원전사고를 계기로 독일이 원전정책을 폐기했고, 유럽에서 녹색당 등이 선전한 반면 일본에서는 원전사고가 난 후쿠시마현에서조차 자민당이 압승했다. 


그는 “비판기능이 상실되면서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일본유신회 대표의 인종주의적인 발언이 그대로 용인되는 반면 혁신세력들이 주장해온 일본의 ‘비무장 중립론’은 말조차 꺼내기 힘들어질 정도로 사회가 보수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이유로 아사노 교수는 “일본이 본래 민주주의 성향이 약한 데다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단죄하지 않은 채 넘어가기 때문”이라며 “아베 내각이 편협한 내셔널리즘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도 과거 역사에 대한 청산과 반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사고’가 아니라 안전불감증이 빚어낸 ‘형사사건’입니다. 철저한 검찰 수사를 통해 책임자를 가려내고 처벌하지 않으면 똑같은 실수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도쿄 | 서의동 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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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후쿠시마 원전엔 아직도 치명적 방사성물질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는 방사성물질 대량 유출사고가 발생한 지 2년이 지난 현재도 시간당 최대 1000만㏃(베크렐)의 방사성물질(세슘 기준)이 새어나오고 있다. ㏃은 방사성물질 측정단위로, 식품의 경우 세슘 허용치는 ㎏당 370㏃이다. 사고로 노심용해(멜트다운)된 핵연료봉은 현재 안정상태를 보이고 있지만, 무너져내린 건물 더미에 부착된 방사성물질이 끊임없이 공기 중으로 퍼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도쿄전력 직원들이 지난 1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4호기 앞에 모여 있다. 도쿄전력은 3·11 동일본 대지진 2주년을 앞두고 이날 언론에 원전을 공개했다. 후쿠시마 _ AFP 연합뉴스



▲ 연료봉 회수는 고사하고 오염물질 처리도 힘겨워

연내 원전 재가동 방침도 안전기준 강화로 불투명


도쿄전력은 2050년까지 후쿠시마 원전 폐쇄를 목표로 건물 잔해처리를 서두르고 있다. 4호기에선 오는 11월부터 저장수조에 있는 폐연료봉 회수가 진행된다. 


또 내년부터 2021년까지 원자로 격납용기 보수를 마친 뒤 2021년부터 녹아버린 핵연료봉의 회수와 건물 해체에 나선다.


하지만 노심용해된 연료봉 회수작업은 방사선량이 치명적이어서 현재로선 엄두조차 못내고 있다. 1호기 격납용기의 방사선량은 시간당 11㏜(시버트)로 노출되면 즉사할 수 있다. 1~3호 건물의 방사선량도 시간당 20~100m㏜(밀리시버트)나 돼 로봇이나 원격조종 크레인을 동원해야 한다. 1~3호기 원자로 내부에는 노심용해된 핵연료봉이 1496개, 1~4호기 저장수조에는 3106개의 폐연료봉이 있다. 1~3호기 원자로의 온도는 17~31도, 4호기 폐연료봉 저장수조는 20도 전후(3월1일 현재)로 안정상태를 보이고 있다. 


하루 수백t씩 불어나는 방사성물질 오염수도 골칫거리다. 1~4호기 주변의 오염수는 36만5000t(2월26일 현재)으로, 25m 크기 수영장 480개 분량에 달한다. 도쿄전력은 2015년까지 70만t 분량의 물탱크를 추가 설치하는 한편 내륙 쪽의 지하수가 원전부지로 유입되지 않도록 우물을 파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안전점검을 거쳐 원전들을 재가동하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지만 연내 재가동은 이뤄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우선 원자력규제위원회가 마련한 새 안전기준을 충족하려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한 데다, 활성단층이 속속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는 7월부터 시행되는 새 안전기준은 비상시에 대비해 원자로 중앙제어실에서 100m 정도 떨어진 곳에 제2제어실을 마련하고, 원자로 냉각을 위해 방수포를 설치하도록 했다.


비등수형은 격납용기의 압력을 낮출 수 있도록 필터형 배기구(벤트)를 갖춰야 한다. 원전을 지을 수 없는 활성단층의 판단기준은 12만~13만년에서 40만년으로 강화했다. 이런 기준을 연내에 충족할 수 있는 원전은 50기 가운데 5기 안팎에 불과하며, 비용 등을 감안할 때 원자로 폐쇄를 선택하는 사례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오는 18일까지 각 자치단체들은 원전사고 시 주민 대피를 비롯한 방재계획을 작성해 원자력규제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규제위는 방재계획을 제출하지 않을 경우 해당 자치단체에 있는 원전 재가동을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교도통신은 “재가동 신청을 하더라도 규제위의 안전심사가 연내 마무리되기 어려운 데다, 현재 가동 중인 간사이전력 오이 3, 4호기가 9월 정기검사에 들어갈 예정이어서 하반기에 재차 ‘원전제로’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3일 보도했다. 결국 아베 정권의 원전 재가동 의지에도 일본의 원전정책은 서서히 ‘감(減)원전’ 쪽으로 나아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도쿄 | 서의동 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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