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정 | 작가, 파리 거주


 

2주 전 사임한 전 예산부 장관 제롬 카위작의 뒤늦은 자백이 프랑스를 발칵 뒤집고 있다. 그가 스위스에 계좌를 갖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지 4개월. 그동안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정치적 모함에 맞서 싸우겠다고 주장하던 그가 마침내 과오를 고백한 것이다. 이 아찔한 반전에 프랑스 정가는 물론, 사회당 정부에 한가닥 기대를 걸고 있던 사람들까지 충격에 휩싸였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올랑드 대통령은 “그는 국가원수, 행정부, 의회 그리고 프랑스인 모두를 기만했다. 이는 공화국에 대한 모독”이라고 카위작의 뒤늦은 자백에 분노를 표했다. 자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결백을 주장하는 카위작 장관의 말을 대통령은 믿었다. 그는 국회에서도 “나는 과거에도, 또 지금 현재도 외국에 그 어떤 은행계좌도 가진 적이 없다”고 공언한 바 있다. 지난 12월, 그의 스위스 계좌에 대한 소식이 처음 보도되었을 때, 그는 당장 해당 언론을 고소하겠다고 나섰다. 다음날 검찰은 수사에 착수했고, 결국 그의 스위스 계좌 정보가 사실로 드러남에 따라 스스로 장관직을 물러날 때에도 “나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남은 모든 에너지를 다 쓸 것”이라고 말했다. 갑자기 ‘자백’이라는 스펙터클한 반전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건, 변호사의 “더 이상 당신의 주장이 먹힐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조언에 따른 것.


정치인의 부정은 어쩌면 신문지상에 늘 오르내리는 단골 기사이기도 하다. 전직 대통령 자크 시라크도 공금 유용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집행유예 중이며, 사르코지도 로레알사의 상속녀로부터 받은 불법정치자금 혐의로 예비기소된 상태다. 그러나 이 우파정치인들이 저지른 부정은 상대적으로 덜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이 사실이다. 카위작 전 장관의 스위스 계좌가 이토록 큰 파장을 일으키는 것은 ‘사회당’이라는, 허울만 남은 듯하지만 여전히 ‘사회주의자’의 고갱이가 한줌 그 속에 있기를 바랐던 사람들의 믿음이 배신당한 데 있는 듯.


외과의사이던 카위작이 정계에 진출하면서 선택한 당은 ‘사회당’이었다. 사회주의라는 정치적 입장을 표방하면서 스위스에 계좌를 개설한다는 것부터가 일관성 없는 행보의 시작이었다. 더구나 세금탈루를 위해 외국으로 재산을 빼돌리는 부자들을 향해 칼을 빼든 현정부의 예산부 장관직을 맡았다. 그는 부유세를 팔 걷고 거둬들여야 하는 당사자였다. 그가 저지른 끔찍한 기만은 왜 사회당 정부가 힘 있는 개혁으로 나아갈 수 없는지를 잘 설명해 주는 사건이기도 하다. 그들 대부분은 사회주의란 옷만 걸치고 있는 부자들이며 신자유주의의 수혜자들이란 불편한 진실은 이렇게 다시 한번 드러난다. 게다가 지난 4개월 동안 정치적 모함의 희생양인 척 연기해오던 그의 태도는 올랑드 정부 전체를 최악의 지점으로 끌고 가버렸다. 그의 스위스 계좌를 지금까지 몰랐다면, 올랑드는 천하의 바보가 되는 셈이고 알았음에도 진작 그를 사임시키지 못했다면, 공모자가 되는 것이다. 


(경향DB)


올랑드는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고위공직자들의 재산을 공개하고 검증하는 법안을 제정해 여름부터 시행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탈세나 부패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들의 공직 진출을 원천적으로 막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다. 그나마 카위작이 진실을 털어놓을 수 있었던 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바로 수사에 착수할 수 있었던 검찰이 있었기 때문이다. 올랑드에겐 치명적인 상처를 주었지만, 프랑스가 지금의 모양이라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힘은 삼권의 명백한 분립, 특히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사법부의 존재이다. 그것만 갖추고 있어도 민주주의가 기본은 유지된다는 걸 카위작 사태는 보여준다. 한국 검찰들은 줄줄이 자진사퇴한 고위공직 지명자들의 부패 보따리 이력들을 왜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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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집권 후 첫 노동절 집회

ㆍ올랑드 “사르코지 노조 공격, 프랑스 분열시켜”


지난 1일 오후. 보름 만에 비가 갠 프랑스 수도 파리에서는 시민들이 전통적으로 노동절을 기념하는 작은 은방울꽃 다발과 화분을 주고받으며 간만의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해의 노동절 행사는 정치색이 강하다. 오는 6일 대선 결선투표를 닷새 앞두고 열린 노동절 행사는 ‘3당 3색’으로 진행됐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57)이 이끄는 집권 대중운동연합(UMP)은 에펠탑 건너편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17년 만에 정권교체를 노리는 사회당과 노동조합은 바스티유 광장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극우 국민전선은 오페라 광장에서 각각 행사를 열었다. 이 가운데 논란을 부른 집회는 사르코지 대통령이 진짜 노동(le vrai travail)’이라는 주제로 연 대안 노동절이었다. 


사르코지가 노동절 집회에 참석한 것은 집권 5년 만에 처음이었다. 청·백·홍 삼색 국기를 흔드는 수만명(주최 측 추산 20만명, 경찰 추산 3만명)의 인파가 모인 자리에서 사르코지는 “우리는 사회주의를 원하지 않는다. 규제를 완화해 프랑스 고유의 사회모델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는 “좌파가 노동을 옹호하는 척하면서 되레 악화시켰다”고 지적한 뒤 노동조합들을 겨냥해 “(혁명의) 붉은 깃발을 내려놓고 프랑스를 위해 헌신하라! 우리는 삼색 깃발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더불어 “중국도 정체성을 지키고 있는데 프랑스가 우리의 가치, 정체성과 국경을 못 지킬 이유가 없다”며 극우파적인 수사를 얹었다. 


햇볕에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인파 사이로 ‘투표 불참은 투표권을 외국인들에게 주는 것’ ‘외국인에게 투표권을 주면 안된다’ 같은 손팻말들도 보였다. 결선투표를 앞두고 세를 과시하기 위한 이날 집회에는 지방에 있는 대중운동연합 소속 당원들도 대거 참석했다.


사르코지가 강조한 ‘진짜 노동’의 정의는 뭘까. 행사 주최 측 소속인 마티유 마렌(30·공무원)은 “프랑수아 올랑드 후보가 속한 사회당은 노조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일 뿐 노동자를 위하는 정당은 아니다”라면서 “진짜 노동자를 위한 지도자는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여건을 만들 수 있는 지도자여야 하며, 그건 바로 사르코지다”라고 말했다. 사르코지가 모든 노동자를 포괄하는 정당으로 대중운동연합을 내세우겠다는 것이다. 지중해 휴양도시 코트다쥐르에서 기차를 타고 온 마리 삼포프랑소(27)는 “책임 있는 노동이 무엇인지 모르는 ‘진짜’ 노동자가 많다는 사르코지 말에 동의한다”면서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을 많이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대안 노동절’에 프랑스 지식인들은 사르코지를 1940년대 나치 협력자인 프랑스 총리 앙리 페탱에 비유할 정도로 강력하게 반발했다. 노동을 ‘진짜’와 ‘가짜’로 갈라 사회대립을 부추겼다는 비판도 나왔다. 작가 아니 에르노는 “사르코지는 집권한 이래 줄곧 ‘분리통치’를 꾀해왔다. 프랑스인과 이민자, 노동자와 수급자, 선량한 시민과 범죄자로 나누는 방식”이라며 “이번이라고 다르지 않다”고 르몽드 기고문에서 지적했다. 거리에서 만난 시민 장 바티스트(33)는 “사르코지의 말을 종잡을 수가 없다. 그는 부자들의 대통령이다. 그가 언제 노동자들을 위한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르코지가 난데없이 노동자 집회까지 연 것은 결선투표를 앞두고 극우표심에 호소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지난달 22일 1차 투표에서 약 18%를 득표하며 돌풍을 일으킨 국민전선 마린 르펜(44)의 지지층을 끌어들이지 않는다면 사르코지는 승산이 없다. 르펜의 지지층에는 신자유주의의 여파로 살림이 어려워진 노동계층이 상당히 포진해 있다. 하지만 르펜은 사르코지의 몰락을 그냥 지켜볼 참이다. 르펜은 오페라 광장에서 열린 국민전선 노동절 집회에서 해마다 그랬듯이 프랑스의 구국영웅 잔 다르크의 청동빛 모형에 경의를 표하면서 지지자들에게 “(사르코지와 올랑드 중) 누구도 지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의 희망은 오는 일요일(결선투표)에 있지 않다. 우리의 진짜 전투는 총선에 있다”면서 의회 진출을 통해 국민전선을 주류 정치세력으로 발돋움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차기 대통령이 유력한 사회당의 올랑드 후보(58)는 이날 바스티유 광장에서 열린 사회당 및 노조 주최의 노동절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프랑스 중부 느베르에서 열린 피에르 베레고보이 전 사회당 총리 사망 19주기에 참석한 그는 사회당의 마지막 대통령인 프랑수아 미테랑의 계승자가 될 것을 다짐하고 사르코지의 노동 분열책을 비판했다. 그는 “실업자가 400만명이나 되고 일자리를 잃는 사람이 100만명이 넘는 이때 누가 노동의 가치를 수호하고 이끌어나갈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사르코지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올랑드(54%)에게 8%포인트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2일 밤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 올랑드의 미숙함과 경험부족을 집중 노출시키려는 전략으로 막판 뒤집기를 노리고 있다. 프랑스 우파는 과거 TV토론을 통해 전세를 역전시킨 바 있다. 1974년 당시 우파의 지스카르 데스탱 후보는 1차 투표에서 사회당의 미테랑 후보에게 뒤졌지만 TV토론에서 “미테랑은 과거 인물”이라고 몰아붙인 끝에 당선됐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양자 대결에서 ‘토론의 달인’인 사르코지가 올랑드보다 우위를 보일 것으로 예상하지만 전세를 역전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프랑스 언론은 이날 TV토론에서 사르코지는 올랑드의 세금정책과 지출정책이 사회주의로 복귀하는 위험한 정책이라는 점과 노조 단체교섭권 폐지 등 노사관계의 새로운 프랑스 모델을 주창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반면 과거 동거녀이자 2007년 대선 때 사회당 후보였던 세골렌 루아얄로부터 조언을 받고 있는 올랑드는 “사르코지가 노조를 공격해 프랑스를 분열시키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최저임금 인상, 교사 6만명 신규 채용, 정년 62세로 2년 연장 등을 제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사르코지 지지자들은 그의 재선을 확신하고 있다. 사르코지가 연 노동절 집회에 참석한 파리1대학생 막심(19)은 “사회당은 행정경험이 부족하다”면서 17년 만의 사회당 재집권을 눈앞에 둔 “올랑드 후보가 장관직을 단 한 차례도 지내본 적 없는 인물이라 신뢰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민 발레리 댕빌(64)도 “사르코지가 경제정책에 실패했다지만 그가 아니었다면 2007년 이후 경제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었겠느냐. 사르코지는 위기에 강하니 마지막에 역전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유럽 각국의 정권교체 도미노로 이어지고 있는 긴축재정의 여파를 사르코지가 이겨낼 수 있을까. 유럽연합의 경제적 통합과 신자유주의에 따른 시민들의 피로도가 긴축정책으로 극에 달하면서 유럽연합의 방향과 통합속도도 갈림길에 선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프랑스 대선의 결과는 그 풍향계가 될 것이다.



파리 | 최민영 기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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