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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사인(私人)이다. 범죄자 취급하는 것이 몹시 불쾌하다.”

지난 1일 열린 일본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버럭 화를 냈다. 자신의 부인인 아키에(昭惠)가 명예교장으로 있던 사립초등학교의 재단이 국유지를 헐값에 매입한 의혹과 관련해 야당 의원들이 아키에의 행동을 질타한 데 따른 것이다. 아베는 부인이 아무런 공직도 갖고 있지 않다는 점 등을 내세우면서 아키에의 행동을 ‘사인’의 입장에서 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일본 국민이나 야당 측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퍼스트레이디인 아키에가 국제사회의 외교무대에까지 나가 활동하는 등 공인(公人)의 영역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 소속 공무원 등이 아키에의 이런저런 일들을 거들고 있는 것도 그를 사인으로 보지 않는 이유다.

 

아키에는 우익 성향의 이념을 주입시켜온 사학재단 소속 학교의 명예교장직으로 있으면서 강연회를 여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개교가 예정된 학교의 홈페이지에는 아키에의 인사말까지 올라와 있었다. 많은 일본 국민들은 아키에가 현직 총리의 부인이 아닌 평범한 시민이었다면 해당 재단이 아키에를 명예교장으로 임명했겠느냐고 묻는다. ‘총리 부인’이라는 아키에의 신분이 이 재단으로 하여금 9억5600만엔(약 96억3542만원)짜리 국유지를 1억3400만엔이라는 헐값에 살 수 있게 한 배경이 됐을 것이라는 시각도 많다.

 

아키에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의혹은 사실상 ‘공인’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사인’처럼 처신하면서 빚어진 것이다. 아키에가 일국의 총리 부인이 아니라 평범한 개인, 즉 ‘사인’이었다면 그가 명예교장으로 활동한 것에 대해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왼쪽)가 11일(현지시간)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부인 아키에 여사와 함께 미국 플로리다주 딜레이비치에 조성된 일본식 정원 박물관인 모리카미박물관을 둘러보고 있다. 딜레이비치 _ AP연합뉴스

 

한국에서는 그 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머리 위에 올라앉아 국정을 농락한 최순실은 누가 봐도 ‘사인’이다. 그가 한때 유치원 원장으로 일을 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를 공인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는 오랜 기간 국정을 쥐고 흔들었다.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치는 행위나 정부 부처의 주요 인사를 임명하는 행위 등은 사인이 관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검찰 수사 결과 등을 보면 최순실은 그런 행위를 한 것은 물론 국정의 깊은 곳까지 들어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왔음이 드러나고 있다. 공인 중의 공인인 대통령의 업무가 사인에 의해 좌지우지된 꼴이다.

 

아키에와 최순실의 사례를 자세히 보면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총리와 대통령이라는, 두 나라에서 최고의 책임을 요구받고 있는 공인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사달이 났다는 것이다. 아직 진상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아베 총리는 자신의 부인이 유치원생들에게 “아베 힘내라”라는 구호까지 외치게 하는 우익 사학재단과 친하게 지내는 것을 알고도 묵인했을 수 있다. 아니 은근히 즐겼을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최순실 국정농단의 피해자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국민들은 ‘박 대통령이 국정을 최순실의 손에 넘겨주고 자신은 피부미용 등 엉뚱한 일에만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고 있다.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유명인 등을 공인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어디까지가 공인이고 어디까지가 사인인지에 대한 구별은 명확하지 않다. 법적으로 딱 떨어지는 규정도 없다. 공인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사인은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답은 분명하다. 공인은 가족이나 지인 등 측근들을 확실하게 관리하고, 사인은 공인의 영역을 넘보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사인을 위장한 공인, 안하무인의 사인들이 나라를 뒤흔드는 일 따위는 없어질 것이다.

 

도쿄 | 윤희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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