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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3.07 ‘고기'의 재발견 (2)

1.
‘고기'는 초기 인류사회 진화과정의 상징이었다. 큰 동물 사냥은 인류가 집단을 이루고 협력해야만 했던 주요 활동이었고, 포획물의 각기 다른 부위에 대한 배분은 집단내 위계 및 지도력을 표현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인류 역사 속에서 ‘고기'는 항상 곡식이나 채소보다 더 희귀하고 가치있는 음식이었고, 육식과 사냥은 인류사회가 남성중심으로 집단화되고 위계화되는 초기 방식을 설명하는 핵심어이다.

시대와 사회에 따라 사람이 먹기에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고기는 각기 다르다. 먹어서는 안되는 고기를 규정하는 가장 고전적인 방식은 종교적 금기이다. 이슬람과 유대교에서 돼지를 더럽다고 생각하여 힌두교에서는 소를 신성시하여 그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은 대표적이다.

한편 말이나 개는 인간과의 친밀성 때문에 먹는 것이 금기시 되기도 하는데, 동물과 인간 사이의 친밀성에 대한 해석은 식용자원의 풍부함이나 경제적 정치적 조건에 따라서 달라진다. 오늘날에는 개를 가축으로 볼 지 반려동물로 볼 지에 따라, 개고기를 가난하던 농경시절의 단백질 보충용으로 볼 것인지 먹을 게 넘치는 시대의 정력음식으로 볼 것인지가 달라진다.


근대로 접어들면서는 산업화된 축산업이 고기소비 판도를 바꾸어 놓았다. 과거 유럽에서 곡물이 자라지 않고 인구밀도가 낮아 육식을 하던 곳에서는 주로 말고기와 양고기를 먹었고, 미 대륙의 초기 이민자들도 그랬다. 하지만 공장제 축산업이 도입되면서 고기 수요는 돼지와 닭 중심으로 바뀌었다. 이제 우리는 살을 찌우기 위해 고안된 좁은 공간에서 사료를 먹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사육되고 기계적으로 도살되는 고기를 먹는다. 비인본주의적 축산 상황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아예 ‘고기'를 먹지말자는 자발적 채식주의도 늘어나게 되었다. 이리하여 오늘날 후기산업 시대에는, 종교적 금기, 반려동물에 대한 배려, 공장제 축산업의 잔인성에 대한 비판 등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주장들이 특정 ‘고기'를 먹지 말아야할 근거로 공존한다.    

2.
겨울방학을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카빅 친구네 집에서 보내게 되었다. 수퍼마켓에 간 첫 날 진열된 고기류를 보고 난 ‘어어' 소리를 멈출 수가 없었다. 전 세계적으로 일반화된 소고기와 돼지고기, 닭고기가 있는 건 당연했지만, 양고기에 말고기까지 있었다.

이렇게 수퍼마켓의 고기가 다양한 것은 아이슬란드의 지리환경적 요인에 근거한다. 아이슬란드는 북극권으로 분류되는 북위 66도 바로 아래, 남한 면적의 84% 크기의 섬나라인데, 인구는 32만여 명으로 남한의 1/150에 불과하다. 나무나 곡식이 자랄 수 없는 화산 지형이라 전통적으로 주식은 육고기와 생선이었다. 아이슬란드는 특별한 산업 시설이 없지만 20세기 중반 이후 수산업의 부흥으로 급속하게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전통적으로 양을 키워왔고 체구가 작고 추위에 강한 토종말이 있어서, 산업화된 축산업 육고기 삼종세트 외에도 자연적 환경에서 자란 양과 말이 고기로 소비되는 것이다. 

특히 아이슬란드의 양은 봄에 들판에 풀어놓았다가 가을에 축사에 가두는 자연 방목 방식으로 자라기 때문에 양고기는 백프로 유기농 자연산이다. 양을 먹는 부위와 방식은 실로 다양하다. 우선 살코기는 그냥 요리해서 먹기도 하고, 염장이나 훈제로 보관했다 먹기도 한다. 양머리를 반으로 갈라 삶은 후 훈제한 것도 있고, 양머리에서 뼈를 발라내고 눌러 만든 양머리 편육도 있다. 양의 피나 양의 간을 호밀과 섞어 만든 소시지도 있고, 양의 고환을 쪄서 만든 편육도 있다. 고기뿐 아니라 양의 털에서는 울을 뽑고 가죽으로는 가방 등을 만든다. 

한편 아이슬란드에서는 육고기와 물고기의 중간급 범주라고 할 수 있는, 상어와 고래, 물개 고기를 맛보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개는 아이슬란드에는 거의 없고 가까운 그린란드에 많지만, 물개고기 메뉴를 갖춘 아이슬란드 전통 레스토랑들이 있다. 고래 고기는 금지조약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먹을 수 있다고 한다. 한편 아이슬란드에서는 모양상의 혐오를 이유로 오징어나 문어를 좋아하고 먹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3.
마침 내가 방문한 시기는 ‘쏘리(Þorri)'였다. (쏘리(Þorri)’아이슬란드 월력(月曆) 118일에서 24일 사이의 금요일부터 218일에서 24일 사이의 토요일까지인, 이 시기 내내 전통음식을 준비해놓고 집을 방문하는 친지나 친구들과 먹는다.)

겨울의 한 중간인 이 시기는 전통음식을 먹는 ‘쏘라블롯(Þorrablot) 이라는 축제기간이기도 하여, ‘쏘리(Þorri)'는 아이슬란드 월력(月曆) 상 1월 18일에서 24일 사이의 금요일부터 2월 18일에서 24일 사이의 토요일까지인데, 이 시기 내내 전통음식을 준비해놓고 집을 방문하는 친지나 친구들과 먹는다.

아이슬란드의 전통적인 고기 섭취방식을 잘 알 수 있었다. 축제 상차림에 포함되는 동물은 양과 고래, 상어, 청어 등이며, 상차림에 나오는 고기 요리는 모두 냉장이나 냉동장비가 없던 시절 보존용으로 조리된 것이다.   

초대받아 가 본 친구네 친척집의 상차림은 위와 같았다. 우선 아이슬란드 삭힌 음식의 대표격인 삭힌 상어고기(하우칼)가 있었다. 우리나라 홍어 삭힌 것에 버금가는 맛인데, 굵은 모래땅에 구멍을 파서 머리와 내장을 제거한 상어를 넣고 돌로 눌러 즙이 흘러나오도록 두어 달 둔 후 꺼내어 말린 것을 깍두기 모양으로 토막낸 것이다. 다음으로는 다양한 종류의 훼이(whey, 유장) 절임이 나왔다. 우유에서 지방과 단백질이 분리되면 시큼한 액체가 남는데, 여기에 고기를 절여서 보관하는 것이다. 앞서 설명한 양고기 머리 편육이나 양고환 편육, 양피 소시지, 양간 소시지, 그리고 고래지방 부분을 이 액체에 절여 두고 먹었는데, 예전 방식 그대로 오늘날의 축제 식탁에도 오른다. 그리고 양의 다양한 부위를 훈제한 요리가 있다.

훼이 절임은 소금 간 없이 시큼하고 물컹한 날고기 식감이라 처음 먹기엔 여간 고역스럽지 않았다. 정작 날 데려간 아이슬란드 친구는 손도 대지 않고 훈제고기만 먹었지만, 나로서는 궁금하기도 했고 외국손님에 대한 초대자의 기대도 만족시켜드리고자 종류별로 한 점씩 다 먹어 보았다. 기름진 우유의 신맛이 고기와 지방 특유의 질감과 만난 요상한 맛으로 세 점째부터는 정말 먹기 힘들었다. 반면 양머리훈제구이와 양고기햄은 양고기 특유의 강한 향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무척 친숙한 맛이라 반가운 맘으로 먹었다. 여기에 곁들이는 것은 단단한 질감의 검은색 호밀빵과 밀가루와 호밀을 섞어서 얇게 구은 납작빵이다. 감자와 콩요리도 함께 먹고 말린 대구포에도 버터를 발라 먹는다. 여기에 몰트라는 우리나라 식혜같은 발효음료를 오렌지맛 청량음료에 섞어 마신다.  


곡식을 키울 수도 야채나 과일을 재배할 수도 없는 환경에서, 양과 고래, 상어고기를 저장식으로 먹었던 아이슬란드는, ‘먹지 말아야할' 고기에 대한 금기가 가장 덜 발달한 문화권이 아닐까 싶다. 물론 오늘날의 아이슬란드에는 태국 쟈스민 쌀과 중남미 망고가 수입되고, 미국식 패밀리레스토랑에서부터 중국 음식점과 인디안 음식점도 성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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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