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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까지 열흘 넘게 이어지는 중국 최대 정치행사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는 수많은 제안과 법안이 쏟아진다. 쑨밍보(孫明波) 칭다오맥주 회장은 이번 양회에서 “칭다오맥주를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시장 환경이 어떻게 변하든 품질은 브랜드의 기본”이라며 “맥주의 품질을 한 단계 높이겠다”고 말했다.

 

칭다오는 중국을 대표하는 맥주 브랜드다. 작년 12월 기준 칭다오맥주의 브랜드 가치는 357억8700만위안(약 5조9400억원)에 달한다. 100년 이상 기업에 부여하는 ‘중화노자호(中華老字號)’ 중 단연 으뜸이다. 그러나 널리 알려져 있다 보니 유명세도 제법 치른다.

 

지난달 17일 대만 국민당 기자회견장 테이블에 난데없이 칭다오맥주 캔 묶음이 올라왔다. 이날 기자회견을 연 국민당 부당재산위원회 측은 “칭다오맥주는 국민당의 재산”이라며 “조사해 환수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소 황당한 주장을 더 선명하게 각인하기 위해 맥주 캔까지 동원한 것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국민당의 제1호 재산은 1948년 산둥(山東)성 칭다오(靑島)에 세워진 치루(齊魯)기업이다. 이 기업 산하에는 칭다오맥주를 비롯해 밀가루, 유리, 식품 공장들이 있었다. 국민당은 낡은 자료 더미를 뒤지고 뒤져서, 1200억법비(국민당 정부 옛 법정 화폐 단위) 상당의 치루기업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는 증거 문서를 발견해냈다. 국민당이 대만으로 후퇴하면서 재산이었던 칭다오맥주를 잃어버렸다는 설명이다. 민진당 차이잉원 정부가 들어선 후 부정축재 의혹을 받고 있는 국민당 재산 166억대만달러(약 6400억원)를 환수하기 위해 당 재산 동결 등 조치에 나서자 “숨겨진 재산도 찾아와 환수하라”고 으름장을 놓은 것이다. 그러나 중국 본토에서는 물론 대만 민진당도 이들의 주장에 냉담하다.

 

칭다오맥주는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 소용돌이 속에서 탄생했다. 1903년 칭다오가 독일의 조계지였던 시절, 독일과 영국 사업가들은 맑기로 유명한 칭다오의 라오산 물에 주목했다. 독일에서 들여온 생산설비와 원료에 라오산 물을 더해 맥주를 만들었다. 첫해인 1903년의 연간 생산량이 2000t에 달했다. 칭다오맥주는 3년 후 독일 뮌헨에서 열린 맥주 세계 박람회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됐다.

 

1914년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전국이 되자 칭다오맥주의 주인은 일본으로 바뀌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야 중국의 손으로 돌아갔다. 칭다오맥주는 1949년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영기업이 됐다. 혼란한 역사 속에서 칭다오의 좋은 물, 독일의 설비, 일본의 생산기술이 합쳐져 중국 대표 브랜드로 성장했다.

 

중국 내 판매 1위 맥주는 스노(雪花·쉐화)이지만 해외에서는 칭다오맥주가 훨씬 더 유명하다. 독일에서는 저가 현지 맥주보다 3배 비싼 가격에 팔린다.

 

한국에서의 판매량도 증가하고 있다. 올 1~2월 매출이 급성장하며 이마트 수입맥주 순위에서 1위로 뛰어올랐다. 관세청에 따르면 중국 맥주 수입량은 지난해 3만6159t으로 6년 만에 7배 이상 증가했는데 이는 칭다오맥주의 공이 컸다. 이 때문인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로 중국이 보복을 본격화하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칭다오맥주 불매운동 주장도 일어나고 있다.

 

지금 칭다오맥주는 국영기업이 아닌 상장사다. 일본 아사히맥주회사가 20% 정도의 지분을 갖고 있다. 버드와이저로 유명한 벨기에 안호이저-부쉬인베브도 칭다오맥주의 지분을 사들였다. 칭다오맥주 불매운동이 중국에 직접 손해를 끼친다는 보장이 없다. 무엇보다 외교는 외교고, 경제는 경제다. 롯데마트나 소주, 한국 화장품이 사드 보복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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