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이끄는 집권 자민·공명당이 22일 치러진 총선에서 개헌 발의선(310석)을 확보하는 압승을 거뒀다. 아베로서는 그동안 추진해 온 안보·경제 정책을 계속 밀어붙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전쟁 가능한 국가’를 향한 개헌 논의를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도 있게 됐다. 실제로 아베가 개헌을 추진한다면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를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베 신조 총재는 시즈오카 현 야 이즈현의 선거 운동 기간에 연설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개헌은 아베의 정치적 숙원이다. 개헌 총리로 교과서에 이름을 남기고 싶어 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아베는 그동안 개헌 행보에 신중을 기했다. 2012년 말 재집권한 이후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인정하는 안보법제를 밀어붙이면서도 개헌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지는 않았다. ‘전쟁 가능한 국가로의 변신’이나 ‘군국주의 회귀’와 같은 국내외의 비판을 우려해서다. 하지만 자민당은 자위대의 합헌화를 핵심으로 하는 아베의 개헌 방향을 이번 총선 공약에 포함시켰다. 이는 전쟁 포기와 전력 보유 금지를 명시한 평화헌법 9조를 건드리지 않고 자위대의 법적 지위를 명시하는 것이다.

 

아베는 연립여당이 독자적인 개헌 발의선을 확보함으로써 개헌 추진을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게 됐다. 그럼에도 아베가 개헌을 실행에 옮길지는 불투명하다. 국민투표가 부결될 때 정계에서 은퇴해야 하는 위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추진하더라도 내년 가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의 3연임 도전과 2020년 도쿄 하계올림픽까지 염두에 두고 신중하게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아베의 압승이 한반도에 미칠 영향은 우려스럽다. 아베의 압승은 경제 호조, 야당 분열과 함께 북한 핵·미사일 위기가 주효했다. 사학 스캔들로 퇴진 위기에 몰린 아베가 조기 총선 카드를 선택해 기사회생하게 된 데는 북한 리스크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북한 미사일의 일본 상공 통과는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이었다. 아베는 이에 적극 대응함으로써 북한 리스크를 관리할 적임자로 떠올랐다. 북핵 위기가 계속될 경우 아베의 강경 대응 기조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대북 강경 대응은 언제든 북한을 자극해 위기를 고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운 일이다. 더욱이 독도 영유권 문제나 위안부 문제 등을 둘러싼 한·일관계도 악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안 그래도 한반도 안보 상황은 북핵 위기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군사대국을 꿈꾸는 아베의 우경화 독주는 여기에 기름을 붓는 꼴이다. 북핵 위기를 함께 풀어가야 할 문재인 정부로서는 더 강경해진 아베를 상대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아베의 승리는 일본을 넘어 한국에도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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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겸허하고 정중하게 국민이 맡겨준 책임에 부응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겠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난 3일 개각을 단행한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눈을 감은 채 머리를 깊숙이 숙였다. 그 상태로 8초 정도 있었다. “다시 한번 반성한다” “사과드리고 싶다”. 아베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시종일관 저자세로 일관했다. 지난 4월 특파원 부임 이래 보아온 아베 총리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아베 총리의 몸 낮추기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 5일 요미우리TV에 나와 “마음가짐에 교만이 생겼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친구가 이사장인 가케(加計)학원의 수의학부 신설에 총리 측이 특혜를 줬다는 의혹을 둘러싼 국회에서의 답변 태도를 ‘반성’한 것이다. ‘일생의 과업’이라던 개헌에 대해서도 “일정이 정해진 게 아니다”라면서 한발 물러섰다. 그러면서 “최우선 과제는 경제 살리기”라고 했다. 마치 “나 이렇게 변했어요”라고 홍보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3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날 단행한 개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도쿄 _ AFP연합뉴스

 

아베 총리 태도가 180도 달라진 것은 물론 지지율 추락으로 ‘아베 1강’ 체제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는 높은 지지율을 배경으로 이론(異論)을 틀어막는 ‘1강 체제’를 구축해왔다. 자신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적’으로 규정하는 ‘대결형 정치’로 정권 구심력을 유지해왔다. 이런 정치 자세에는 한때 70%를 넘봤던 높은 지지율, 2012년 정권 탈환 당시의 중의원 선거를 포함해 4번의 전국 선거에서 연승을 기록해온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대결형·강압적 정치가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도쿄도의회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의 ‘역사적 참패’와 지지율 급락으로 벼랑 끝에 몰리면서 개각으로 ‘민심(民心)의 일신(一新)’을 도모해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아베 총리의 개각과 저자세 행보는 일정한 효과를 얻고 있다. 각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추락은 일단 멈췄다. 언론사마다 차이가 있지만 아베 내각 지지율은 전달보다 2~9%포인트 정도 상승한 35~44.4% 수준이다.

 

하지만 지지율이 회복세로 들어섰다고 말하기는 일러 보인다. 지지율 상승이 개각에 따른 반짝 효과일 가능성도 있다. 각 언론사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지지한다’는 응답을 상회하는 등 아베 총리에 대한 불신은 여전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3~4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베 총리의 자민당 총재 3연임에 반대한다는 의견도 54%로, 찬성 36%를 웃돌았다.

 

한 저널리스트는 이번 새 내각에 대해 ‘잊어주세요 내각’이라고 이름붙였다. 개각을 통해 가케학원 특혜 의혹, 모리토모(森友)학원에 대한 국유지 헐값 매각 의혹, 남수단 평화유지활동(PKO) 자위대의 문서 은폐 의혹 등 3개의 문제를 덮으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집권 자민당은 가케학원 의혹의 핵심 인물인 가케 고타로(加計孝太郞) 전 이사장이나 자위대 문서 은폐 의혹과 관련한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전 방위상의 국회 출석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또한 아베 총리가 “정해진 일정이 없다”고 했지만 개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철회한 것도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각료들의 면면이 아니다. 국민에 대해 겸허하고 정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아베 총리 자신이 바뀌느냐에 있다. 아베 총리는 지금까지 안보 관련법 성립, 원전 재가동, 공모죄법 성립, 개헌 추진 등 ‘아베 노선’을 일방통행식으로 달려왔다. 비판이나 의문의 목소리에 대해선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 후과가 지금 ‘아베 1강’의 붕괴로 나타나고 있다.

 

일본 국민들은 이미 그를 불신에 찬 눈으로 주시하고 있다. 만약 아베 총리가 이번에 자신을 바꾸기는커녕 ‘호박에 줄 긋기’식으로 넘어가려 한다면, 그에게 권한을 위임한 일본 국민들이 그를 바꿔버릴지도 모른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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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사인(私人)이다. 범죄자 취급하는 것이 몹시 불쾌하다.”

지난 1일 열린 일본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버럭 화를 냈다. 자신의 부인인 아키에(昭惠)가 명예교장으로 있던 사립초등학교의 재단이 국유지를 헐값에 매입한 의혹과 관련해 야당 의원들이 아키에의 행동을 질타한 데 따른 것이다. 아베는 부인이 아무런 공직도 갖고 있지 않다는 점 등을 내세우면서 아키에의 행동을 ‘사인’의 입장에서 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일본 국민이나 야당 측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퍼스트레이디인 아키에가 국제사회의 외교무대에까지 나가 활동하는 등 공인(公人)의 영역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 소속 공무원 등이 아키에의 이런저런 일들을 거들고 있는 것도 그를 사인으로 보지 않는 이유다.

 

아키에는 우익 성향의 이념을 주입시켜온 사학재단 소속 학교의 명예교장직으로 있으면서 강연회를 여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개교가 예정된 학교의 홈페이지에는 아키에의 인사말까지 올라와 있었다. 많은 일본 국민들은 아키에가 현직 총리의 부인이 아닌 평범한 시민이었다면 해당 재단이 아키에를 명예교장으로 임명했겠느냐고 묻는다. ‘총리 부인’이라는 아키에의 신분이 이 재단으로 하여금 9억5600만엔(약 96억3542만원)짜리 국유지를 1억3400만엔이라는 헐값에 살 수 있게 한 배경이 됐을 것이라는 시각도 많다.

 

아키에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의혹은 사실상 ‘공인’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사인’처럼 처신하면서 빚어진 것이다. 아키에가 일국의 총리 부인이 아니라 평범한 개인, 즉 ‘사인’이었다면 그가 명예교장으로 활동한 것에 대해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왼쪽)가 11일(현지시간)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부인 아키에 여사와 함께 미국 플로리다주 딜레이비치에 조성된 일본식 정원 박물관인 모리카미박물관을 둘러보고 있다. 딜레이비치 _ AP연합뉴스

 

한국에서는 그 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머리 위에 올라앉아 국정을 농락한 최순실은 누가 봐도 ‘사인’이다. 그가 한때 유치원 원장으로 일을 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를 공인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는 오랜 기간 국정을 쥐고 흔들었다.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치는 행위나 정부 부처의 주요 인사를 임명하는 행위 등은 사인이 관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검찰 수사 결과 등을 보면 최순실은 그런 행위를 한 것은 물론 국정의 깊은 곳까지 들어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왔음이 드러나고 있다. 공인 중의 공인인 대통령의 업무가 사인에 의해 좌지우지된 꼴이다.

 

아키에와 최순실의 사례를 자세히 보면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총리와 대통령이라는, 두 나라에서 최고의 책임을 요구받고 있는 공인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사달이 났다는 것이다. 아직 진상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아베 총리는 자신의 부인이 유치원생들에게 “아베 힘내라”라는 구호까지 외치게 하는 우익 사학재단과 친하게 지내는 것을 알고도 묵인했을 수 있다. 아니 은근히 즐겼을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최순실 국정농단의 피해자인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 국민들은 ‘박 대통령이 국정을 최순실의 손에 넘겨주고 자신은 피부미용 등 엉뚱한 일에만 빠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고 있다.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유명인 등을 공인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어디까지가 공인이고 어디까지가 사인인지에 대한 구별은 명확하지 않다. 법적으로 딱 떨어지는 규정도 없다. 공인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사인은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답은 분명하다. 공인은 가족이나 지인 등 측근들을 확실하게 관리하고, 사인은 공인의 영역을 넘보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사인을 위장한 공인, 안하무인의 사인들이 나라를 뒤흔드는 일 따위는 없어질 것이다.

 

도쿄 | 윤희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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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어제 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들어 첫번째 군사적 도발이다. 한반도를 넘어 아시아 평화와 안녕을 위협하는 행위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북한 미사일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아니고, ‘무수단급(사거리 3000~3500㎞)’ 개량형 미사일로 추정된다. 획기적으로 사거리를 늘리거나 운반 능력을 높인 미사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본격적인 도발이라기보다는 트럼프 미 신임 대통령이 꾸린 행정부의 반응을 떠보려는 시험적 성격이 짙다. 그렇다고 미사일 발사의 부당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핵·미사일 실험을 금지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들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다. 선제 북한 타격론까지 운위되는 미국 새 행정부의 정책 점검 및 조정 시기에서 북한이 도발로 얻을 이익은 사실상 전무하다. 오히려 격동하는 동아시아 정세 속에서 스스로를 험지로 몰 가능성이 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11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팜비치 _ AFP연합뉴스

 

이는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10일(현지시간)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간 정상회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양국은 북핵과 미사일 위협 대처, 미·일동맹 등 안보 및 통상 협력 방안 등을 골자로 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이를 통해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영향력 확대를, 일본은 군사력 확대를 상호 보장하며 중국 견제라는 공동의 이익에 뜻을 같이했다. 북 미사일 발사는 이런 양국 주장에 정당성을 더해준 셈이다.

 

북한은 우방인 중국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미·중관계는 냉랭했으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트럼프 대통령 간 통화를 계기로 정상회담까지 거론되고 있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를 통해 중국의 대북지원 명분을 약화시켰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문제는 한국 정부의 대응이다. 정부는 어제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어 북 도발을 규탄하고 강력하게 대응키로 의견을 모았다. 북 미사일 발사의 부당함을 규탄하고 도발 억제 의지를 천명하는 것은 당연한 조처다. 그러나 강경 대응만 고집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당장 효율적인 강경 대응 수단도 없는 상황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면서 한반도 정세는 엄중해졌다. 더구나 한국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사태로 리더십 공백 상황이다. 무엇보다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의 안정적 관리가 중요한 시점이다. 북한의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하면서 주변 국가들과 함께 역내 불안정성을 완화하기 위한 노력을 벌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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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소녀상. 옛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하는 의미와 함께 앞으로의 인류사에서 위안부 문제와 같은 비극이 재발해서는 안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 소녀상이 한국은 물론 미국·호주 등 해외 곳곳에 자꾸만 생겨나고 있다. 최근에는 부산의 일본총영사관 앞에도 설치됐다. 일부 지방의원들은 독도에도 소녀상을 세우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소녀상을 볼 수가 없다.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일본에도 소녀상이 딱 하나 있기는 하다. 조각가 김서경·김운성씨 부부가 평화의 소녀상을 만들 때 맨 처음 제작한 소녀상이 현재 도쿄에 있다. 김씨 부부가 ‘소녀상의 원형’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 소녀상은 그러나 언제 어디서 가해질지 모르는 테러의 우려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한 채 누군가의 집 서재 등에 숨겨져 있다.

 

일본 정부가 철거를 요구한 부산 동구 초량동 일본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에 7일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소녀상이 갖고 있는 의미를 생각하면, 일본이야말로 소녀상 건립이 꼭 필요한 곳이다.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일으킨 당사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어디에서도 위안부 문제에 대한 반성의 뜻을 담은 메모리얼(기념물)을 만들겠다는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독일이 베를린 도심에 홀로코스트기념관을 건립하고 자신들이 과거 유대인들에게 저지른 잘못을 계속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권은 위안부 관련 메모리얼을 설치하기는커녕 피해국가인 한국 등에 설치된 소녀상의 철거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베 정권은 최근 부산 일본총영사관에 소녀상이 설치된 이후 주한 일본대사 등을 일시 귀국시키는 강공을 이어가고 있다. 아베 정권은 2015년 12월 한·일 합의대로 10억엔(약 103억원)을 출연한 것 이외에 과거 잘못에 대한 ‘사과의 뜻’을 담은 총리 명의의 편지 발송 등 위안부 피해자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아베 내각 각료들은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이어가는 등 피해자들의 상처를 후벼파는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

 

일본의 상당수 지식인들조차 위안부 문제의 가해국인 일본이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하거나 재발방지 조치를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것은 앞뒤가 바뀐 일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또 아베 정권의 그런 태도가 ‘새로운 소녀상’을 부르고 있다고 보고 있다. 아베 정권이 소녀상에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결국 소녀상이야말로 일본이 감추고자 하는 과거 잘못을 다시 들춰내고 반성을 촉구하는 데 가장 유효한 수단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의 비인도성 등 역사가 담고 있는 진실을 아베 정권 측에 다시 각인시켜주는 데 소녀상만 한 것이 없다는 얘기다.

 

타국에 설치된 소녀상의 철거에 골몰하고 있는 아베 정권이 자국에 위안부 관련 메모리얼을 세울 가능성은 사실상 거의 없다. 그러나 과거 잘못에 대한 진정한 반성이 없는 상태에서 소녀상 철거만 무작정 요구하는 아베 정권의 ‘야리카타’(일처리 방식)로는 시민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생겨나는 소녀상을 없앨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지구상에 평화의 소녀상이 자꾸만 늘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일본이 먼저 나서서 반성의 뜻을 담은 메모리얼을 자국의 어딘가에 설치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일본의 한 시민운동가는 적합한 설치 장소로 우에노(上野)공원·도쿄(東京)역 앞·국회의사당 앞 등을 거명했다.

 

아베 총리 등 일본 지도자들이 그 메모리얼 앞에서 과거 잘못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한국이나 미국 등 각국에서 일고 있는 소녀상 건립 붐은 자연스럽게 누그러질 것이다. 그리고 일본대사관이나 총영사관 앞의 소녀상도 보다 안전한 장소로 옮겨져 ‘평화의 메신저’ 역할에 충실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도쿄 | 윤희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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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사변으로 시작한 전쟁의 역사를 충분히 배우고, 앞으로 일본의 존재 방식을 생각하는 것이 지금 무척 중요하다.”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2015년 1월1일 ‘신년소감’에서 내놓은 이 말은 일본 국내외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일본이 과거 일으킨 전쟁이 아시아 지역 국가들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향후 평화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중요함을 언급한 것으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과거 역사를 부정하려는 움직임을 선명하게 드러내온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 대한 일종의 견제로 풀이되면서 한국·중국 등 주변 국가로부터도 큰 관심을 끌었다.

 

많은 사람들은 일왕이 일본의 패전 70주년이 되는 시점을 앞두고 만주사변을 언급한 것에 특히 주목했다. 만주사변은 1931년 일본이 중국 동북지방을 침략할 목적으로 일으킨 전쟁이다. 류탸오후(柳條湖)에서 일본 군대가 철도를 폭파해 놓은 것을 일본은 중국의 짓이라 뒤집어씌우면서 전쟁을 벌였다. 일본은 이후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잇따라 일으키면서 아시아 국가들에 큰 피해를 입혔다. 하지만 일본은 패전 이후 미국과 벌인 태평양전쟁에는 신경을 쓰면서도 아시아 지역에 끼친 피해는 소홀히 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출처: 연합뉴스)

 

아키히토 일왕의 이런 발언을 접한 일본의 한 대학 교수는 “일본이 일으킨 전쟁이 ‘만주사변’으로 시작됐다는 사실을 일왕이 직접 거명하면서 평화의 의미를 되새긴 것은 처음”이라면서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아시아 지역 국가들을 무시한 채 전쟁의 길로 가려고 하는 아베 총리에게 강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일왕의 의도가 느껴진다고까지 평가했다.

 

아키히토 일왕은 그해 8월15일 일본 무도관에서 개최된 전몰자 추도식에서 ‘과거 전쟁에 대한 반성’의 뜻을 직접 밝혀 다시 한 번 관심을 모았다. 일왕은 이날 “과거의 대전(전쟁)에 대한 깊은 반성과 함께 향후 전쟁의 참화가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이는 전날 아베 총리가 ‘전후 70년 담화(아베담화)’에서 과거 총리들이 언급한 반성과 사죄로 자신의 뜻을 대신한 것과 비교되는 것이었다.

 

즉위 이듬해인 1990년부터 매년 신년소감을 발표하던 아키히토 일왕이 올해는 메시지를 내지 않았다. 83세인 일왕은 지난 2일 황거(皇居)를 찾은 일반인 방문객들에게 “우리나라와 세계 사람들의 평안을 기원한다”는 신년인사를 했지만, 별도의 신년소감은 발표하지 않았다. 궁내청은 앞서 일왕의 업무부담을 줄이는 차원에서 올해부터 신년소감을 내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 8월 일왕이 “점차 신체가 쇠약해져서 상징적인 존재인 일왕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아 걱정”이라면서 ‘생전 퇴위’ 의사를 밝힌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일본은 ‘아베 1강’ 체제로 완전히 굳어지고 있다. 아베에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은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제1야당인 민진당이 10% 이하의 지지율 속에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을 정도로 야당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언론도 ‘아베의 얼굴색을 살피는 데 여념이 없다’는 지적을 받을 정도로 약화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키히토 일왕은 아베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존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다수 일본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일왕의 한마디 말은 아베 총리도 함부로 여길 수는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왕이 ‘평화’의 메시지를 가득 담아 발표해온 신년소감을 내지 않기로 함에 따라 아베의 독주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견제자’는 사실상 사라지게 됐다. 국민의 고령화 문제가 사회적인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왕실의 고령화가 일본 사회에 새로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도쿄 | 윤희일 특파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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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권이 국민의 노후자금인 연금에 본격적으로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2014년 10월의 일이다. 일본의 공적연금 적립금을 운용하는 연금적립금관리운용독립행정법인(GPIF)은 정권의 방침에 따라 연금투자 기준을 대폭 바꿨다. GPIF는 당시 국내 및 해외의 주식투자 비율을 24%에서 50%로 올리는 대신 국채 등 국내 채권에 대한 투자비율을 60%에서 35%로 내렸다.

 

당시 일본의 상당수 언론과 국민들은 아베 정권과 GPIF의 결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정권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를 살리기 위해 국민의 노후자금에 손을 댔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엔저를 바탕으로 대기업의 수출을 늘리고 주가를 끌어올리는 것이 핵심인 아베노믹스가 힘을 발휘하지 못하자, 연금 적립금을 주식시장에 쏟아붓게 됐다는 것이다.

 

언론과 국민들은 또 연금기금의 손실을 우려했다. 그런 우려는 GPIF가 2015년에 입은 운용손실만 5조엔(약 51조원)대에 이르는 등 현실로 나타났다. 이후 아베 정권이 연금기금의 주식 투자 비율을 대폭 높인 것이 손실의 주된 원인이라는 보도가 나왔고, 국민들 사이에서 “아베 정권이 국민의 노후자금인 연금을 주식 투자로 날려버리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일본의 공적연금 적립금을 운용하는 연금적립금관리운용독립행정법인(GPIF).

 

GPIF의 운용실적은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와 도널드 트럼프의 차기 미국 대통령 당선 등 시장상황의 변화와 이에 따른 주가의 등락으로 수시로 변하고 있지만, 일본 국민들의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 국민들 중에 아베 정권이 특정 개인이나 사기업의 이익을 위해 연금 적립금에 손을 댔다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주가 부양’이라는 허용할 수 있는 범위 내의 ‘정책적 판단’이 연금에 손을 댄 이유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연금 논란은 일본의 그것과 상황이 전혀 다르다. 많은 사람들은 국민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이 최순실과 그 가족, 그리고 삼성이라는 사기업의 이익을 위해 이용당했다고 보고 있다. 야당과 시민단체 등은 국민연금이 지난해 7월 있었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삼성 편을 들어준 배후에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들은 삼성이 최순실을 지원한 것은 국민연금의 역할에 대한 ‘보답’ 차원이라고 주장한다.

 

합병 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삼성전자 등에 대한 지배력은 강화됐다. 합병 당시 최종 열쇠를 쥐고 있던 것은 국민의 노후자금을 관리하고 있는 국민연금이었다. 국민연금의 찬성 없이는 합병이 물 건너갈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국민들의 노후자금으로 특정 기업이나 개인의 사익을 챙기려 했던 것이 사실일까. 삼성 측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양사의 시너지 효과와 미래가치를 위해 한 것이므로 최순실과는 무관하다”고 해명하고 있다.

 

또 합병 후 국민연금이 보유한 삼성물산의 주식가치가 하락한 것도, 평가시점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손실을 봤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민들의 의구심은 완전히 가시지 않는다. 당사자들에게 분명한 답을 요구하고 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고 있다.

 

지금 우리 국민들은 자신들의 노후자금에 누군가가 손을 댔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나라 바로 세우기에 여념이 없다. 국가는, 사법당국은 국민의 노후자금을 둘러싼 의혹을 분명하게 해소해야 한다. 국민의 노후자금을 건드리려 한 사람이 있었는지, 그것을 도운 사람이 있었는지, 그렇다면 그 사람은 누구였는지를 밝혀내 처벌해야 한다.

 

그게 나라를 지켜내기 위해 이 추운 날에도 거리에서 촛불을 밝히고 있는 국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도쿄 | 윤희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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