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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일본으로 부임할 때 새로 받아온 노트북 컴퓨터의 자판 중에 ‘ㅇ’과 ‘ㅂ’ 부분이 유난히 반질반질하다. 풋, 웃음이 나온다. ‘아베’라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얼마나 두드려댔으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부임 첫날 쓴 첫 기사에도 그의 이름이 어김없이 등장했다. 그렇다. 나는 ‘도쿄특파원’이 아니라 ‘아베특파원’이었다.

 

돌이켜보면 3년 전이나 지금이나 일본은 ‘아베의 세상’이다. 2012년 말 다시 총리 자리에 오른 그의 기세는 거침이 없었다. 2013년 말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아베 극장’의 예고편에 불과했다. 고노담화의 뼈를 발라낸 아베담화, ‘전쟁하는 나라’로 가는 길을 닦기 위한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 그리고 이를 반영한 안보법 제정 등 그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그때마다 한국 언론은 ‘아베의 폭주’를 운운하면서 떠들어댔고, 그 한복판에 나도 있었다. 한국 사회는 ‘아베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고 있다’고, ‘일본이 위험해지고 있다’고 소리를 질러댔다. 자판의 ㅇ과 ㅂ은 그래서 날이 갈수록 반질반질해졌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AFP연합뉴스

 

아베의 기세는 세계로 향했다. 지구를 부감(俯瞰)한다는, 그의 광폭 행보는 세계를 넘나들었다. 버락 오바마를 히로시마로 불렀고, 자신은 하와이의 진주만에 가서 ‘화해의 제스처’를 연출했다. 도널드 트럼프의 별장에 가서 골프를 치는 그를 세계는 주목했다.

 

그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는 도쿄 등 일부 대도시와 대기업을 위한 잔치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학교 문을 나서는 젊은이들의 취업률은 97%를 넘었다. 2015년 9월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베는 경쟁 후보를 주저앉히고 ‘아베 1강’의 성을 쌓아갔다. 지난 3월 자민당은 아베가 3년 더 총리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도록 당칙을 바꿔줬다. ‘아베의 세상’은 계속된다는 얘기다.

 

그 사이 한국에서는 세월호가 침몰했고, 국민들의 꿈과 희망은 그 배와 함께 바다 아래로 가라앉았다. 학교 문을 나선 젊은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일자리가 아니라 ‘헬조선’이었다. 얼마 전 ‘한국’이라는 배의 선장은 국민들의 힘에 의해 끌려 내려왔다.

 

요즘 일본에서는 ‘지는 벚꽃 남은 벚꽃도 (결국은) 지는 벚꽃(散る櫻殘る櫻も散る櫻)’이라는 구절이 회자되곤 한다. 에도시대의 한 승려가 남긴 이 말은 고령사회의 아픔을 그린 소설 <끝난 사람(終わった人)>에 인용돼 화제가 됐다. ‘지금 아무리 아름답게 피어 있는 꽃이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진다’, 대략 그런 뜻이다.

 

그렇다. 결국 다 진다. 그리고 모든 권력자는 권좌에서 내려오게 된다. 5년 임기 정도는 무난하게 채울 것 같던 박근혜는 4년 만에 권좌에서 내려왔다.

 

더 이상의 경쟁자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시진핑이나 블라디미르 푸틴도 결국 자리에서 내려올 것이다. 국제사회를 혼란으로 몰아넣고 있는 트럼프도 마찬가지다. 아베는 어떨까. 60%대를 유지하던 그의 지지율이 ‘아키에 스캔들’ 이후 흔들리고 있다. 아베가 이 난관을 극복하고 2021년까지 총리 자리를 지킬 수도 있고, 그 전에 강판될 수도 있다.

 

이제 우리는 아베를 뛰어넘어야 한다. 아베와 일본에 얽매이면 얽매일수록 우리는 그 테두리 안에 갇히게 된다. 일본을 통해 본 세상의 모습이 아니라 일본 그 너머의 세상을 보고 걸어가야만 한다. ‘지금의 일본은 5년 후, 10년 후 한국의 모습이 될 수 있다’는, 오래전 어떤 학자의 분석은 지금도 자주 맞아떨어진다. 아베에 매몰되지 않는 시각을 갖는다면, 지금의 일본을 통해 우리의 보다 나은 미래를 그려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앞으로, 도쿄특파원들의 자판은 ㅇ과 ㅂ이 아닌, 다른 글자가 더 반질반질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아베특파원’은 내가 마지막이어야 한다.

 

도쿄 | 윤희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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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경제규모가 세계 1·3위인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고 캐나다·멕시코 등 12개국이 참여하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이다. TPP가 자국 경제의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판단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과 함께 협정에 온갖 힘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핵심파트너인 미국 쪽의 상황이 급변했다. 오바마의 뒤를 이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취임하자마자 TPP 탈퇴를 선언해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베와 트럼프가 지난 주말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아베는 이 자리에서 트럼프에게 강력한 항의를 해야 맞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12개 나라가 그 긴긴 나날 머리를 맞대고 협의한 것을 하루아침에 없었던 일로 하자는 것은 말도 안되는 것이라고, 말이라도 한번 해야 했다. 그러나 아베는 트럼프에게 TPP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데 그치는 등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고, 두 정상은 결국 공동성명에서 ‘미국이 TPP에서 탈퇴했다’는 점을 확인했다. 12개 나라가 목표점으로 하던 ‘골대’의 위치가 미국에 의해 바뀐 것이 분명한 데도 아베는 아무런 항의도 하지 않은 것이다.

 

일본 아베 신조(사진) 내각의 이나다 방위상은 5일 NHK 프로그램 '일요토론'에 출연, 전날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과의 회담에서 "일본 주변 환경이나 아시아태평양 지역 현황에 대해 인식을 완벽하게 공유했다"며 "헌법의 범위에서 일본 자체 방위력의 질도 양도 공고하게 해 나가겠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나다 방위상은 전날 회담에서 미군에 의한 '항행의 자유 작전'을 지지한다고 표명했지만 "자위대가 거기에 가는 것은 아니다. 방위협력과 훈련에서 역할을 해 나갈 것"이라고 다시 한번 확인했다. AP 연합뉴스

 

도쿄(東京)도 신주쿠(新宿)에는 도쿄한국학교가 있다. 일본 내 한국인 자녀들이 주로 다니는 이 학교는 공간이 부족해 입학 희망자를 모두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안 마스조에 요이치(舛添要一) 전 도쿄도지사는 자국 고교가 쓰던 부지를 한국 측에 대여하기로 했다. 그러나 지난해 7월 선거에서 당선된 후임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지사는 “여기는 도쿄이고 일본이다”라면서 부지 임대 계획을 백지상태로 돌려버렸다. 일본의 지자체 장이 바뀌면서 ‘골대’가 옮겨진 사례로 기록될 수 있지만, 한국 정부나 일본 내 한국인들은 고이케의 행위를 드러내놓고 비난하지는 않았다. 모처럼 개선 분위기를 보여온 한·일관계 등을 고려해 말을 아끼고 참았다.

 

그런데 아베의 한국에 대한 태도는 달랐다. 지난해 말 시민단체 등이 부산 일본총영사관 앞에 위안부 소녀상을 세운 뒤 보여준 아베의 태도는 지극히 신경질적이었다. 그는 한·일 간에 진행되던 통화스와프 협상을 중단시켰고,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를 귀국시켜버렸다. 아베는 또 2015년 말의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10억엔(약 101억원)을 한국 측에 낸 점을 내세우면서 소녀상 문제를 해결하라고 압박했다. 주한 일본대사가 일본으로 온 지 1개월이 지났지만 한국으로 돌아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아베는 서울 옛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을 이전 또는 철거해 달라는 일본의 요구를 한국 정부가 아직까지 들어주지 않은 상황에서 부산에 소녀상이 생긴 것에 대해 분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기본적인 상황 인식이 잘못된 것이다. 부산소녀상 설치의 주체는 정부가 아니다. 시민들이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의지로 소녀상을 세운 것이다. 미국 정부가 TPP 탈퇴를 결정한 것이나 도쿄도가 학교부지 대여 방침을 백지화한 것은 골대를 옮긴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시민단체의 부산소녀상 설치는 골대 이동과 상관이 없다. 주체가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이번에 아베가 보여준 강경 자세는 향후 치러질 한국의 대통령 선거까지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한국에 새로 들어설 정권이 한·일 위안부 합의를 없었던 일로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본때를 보여주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 우익들의 역사수정주의적 태도가 위안부 문제를 키워왔다는 점에서 이런 막무가내식 조치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아베는 알아야 한다.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부 측의 보다 명확한 사죄와 관련 조치가 없는 상태에서 소녀상은 계속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게 한국의 상황이라는 얘기다.

 

도쿄 | 윤희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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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부산총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설치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지난달 9일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를 귀국시킨 지 한 달이 되었다. 1~2주 만에 복귀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대사의 귀임이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베 신조 총리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1년이든, 반년이든 상관없다. 소녀상 철거 때까지 안 보낸다”고 말했다. 이에 한국이 주일대사 소환으로 대응하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한·일관계가 어디까지 악화될 것인지 짐작하기도 어렵다. 

 

한·일관계의 역사에 비춰볼 때 주한 일본대사의 한 달 공백은 이례적이다. 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으로 양국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도 무토 마사토시 대사가 본국으로 소환됐지만 12일 만에 복귀했다. 2005년 독도 영유권 주장 때 다카노 도시유키 대사도 상징적인 항의 표시 후 곧 돌아왔다. 소녀상 문제 하나로 통화 스와프 협상과 고위급 경제회담 등을 취소한 데 이어 한 달 넘게 대사를 소환하는 것은 관례를 무시한 지나친 조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일본 정부는 최근 ‘위안부 소녀상’이라는 명칭 대신 ‘위안부상’이라는 표현을 쓰겠다고 통보했다.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상처의 치유를 조금이라도 생각하면 써서는 안될 용어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연합뉴스

 

이번 갈등은 한국이 자초한 점이 있다.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나 반성을 이끌어내지 못하면서 섣불리 합의해 빌미를 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협상문을 빌미로 삼아 양국 관계를 악화시키는 일본의 태도는 매우 유감스럽다. 특히 일본 총리가 공세를 주도한다는 점에서 더욱 실망스럽다. 아베가 러시아와 북방 4개 도서 반환 협상 실패로 떨어진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해 강수를 둔다는 말이 설득력이 있다.

 

앞으로도 양국 간 갈등 요소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일본 시마네현이 22일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열고, 문부과학성이 이르면 3월 중 독도 영유권 주장을 강화한 교과서 지침을 내놓는다. 양국 모두 감정적 대응을 자제해야 하겠지만 일본의 태도가 중요하다. 가해자가 큰소리치는 비상식적인 행동을 지속하는 한 양국 간 틈은 벌어질 수밖에 없다. 탄핵 정국에 따른 한국의 혼란상을 이용하자는 얄팍한 발상을 하는 한 관계 개선의 길은 험난할 것이다. 한국 정부는 아베의 비상식적인 외교적 도발에 의연하고 엄정하게 대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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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소녀상. 옛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하는 의미와 함께 앞으로의 인류사에서 위안부 문제와 같은 비극이 재발해서는 안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 소녀상이 한국은 물론 미국·호주 등 해외 곳곳에 자꾸만 생겨나고 있다. 최근에는 부산의 일본총영사관 앞에도 설치됐다. 일부 지방의원들은 독도에도 소녀상을 세우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소녀상을 볼 수가 없다.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일본에도 소녀상이 딱 하나 있기는 하다. 조각가 김서경·김운성씨 부부가 평화의 소녀상을 만들 때 맨 처음 제작한 소녀상이 현재 도쿄에 있다. 김씨 부부가 ‘소녀상의 원형’이라는 이름을 붙인 이 소녀상은 그러나 언제 어디서 가해질지 모르는 테러의 우려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한 채 누군가의 집 서재 등에 숨겨져 있다.

 

일본 정부가 철거를 요구한 부산 동구 초량동 일본영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에 7일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소녀상이 갖고 있는 의미를 생각하면, 일본이야말로 소녀상 건립이 꼭 필요한 곳이다.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일으킨 당사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어디에서도 위안부 문제에 대한 반성의 뜻을 담은 메모리얼(기념물)을 만들겠다는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독일이 베를린 도심에 홀로코스트기념관을 건립하고 자신들이 과거 유대인들에게 저지른 잘못을 계속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권은 위안부 관련 메모리얼을 설치하기는커녕 피해국가인 한국 등에 설치된 소녀상의 철거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베 정권은 최근 부산 일본총영사관에 소녀상이 설치된 이후 주한 일본대사 등을 일시 귀국시키는 강공을 이어가고 있다. 아베 정권은 2015년 12월 한·일 합의대로 10억엔(약 103억원)을 출연한 것 이외에 과거 잘못에 대한 ‘사과의 뜻’을 담은 총리 명의의 편지 발송 등 위안부 피해자들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아베 내각 각료들은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이어가는 등 피해자들의 상처를 후벼파는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

 

일본의 상당수 지식인들조차 위안부 문제의 가해국인 일본이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하거나 재발방지 조치를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것은 앞뒤가 바뀐 일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또 아베 정권의 그런 태도가 ‘새로운 소녀상’을 부르고 있다고 보고 있다. 아베 정권이 소녀상에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결국 소녀상이야말로 일본이 감추고자 하는 과거 잘못을 다시 들춰내고 반성을 촉구하는 데 가장 유효한 수단이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의 비인도성 등 역사가 담고 있는 진실을 아베 정권 측에 다시 각인시켜주는 데 소녀상만 한 것이 없다는 얘기다.

 

타국에 설치된 소녀상의 철거에 골몰하고 있는 아베 정권이 자국에 위안부 관련 메모리얼을 세울 가능성은 사실상 거의 없다. 그러나 과거 잘못에 대한 진정한 반성이 없는 상태에서 소녀상 철거만 무작정 요구하는 아베 정권의 ‘야리카타’(일처리 방식)로는 시민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생겨나는 소녀상을 없앨 수 없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지구상에 평화의 소녀상이 자꾸만 늘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일본이 먼저 나서서 반성의 뜻을 담은 메모리얼을 자국의 어딘가에 설치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일본의 한 시민운동가는 적합한 설치 장소로 우에노(上野)공원·도쿄(東京)역 앞·국회의사당 앞 등을 거명했다.

 

아베 총리 등 일본 지도자들이 그 메모리얼 앞에서 과거 잘못을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한국이나 미국 등 각국에서 일고 있는 소녀상 건립 붐은 자연스럽게 누그러질 것이다. 그리고 일본대사관이나 총영사관 앞의 소녀상도 보다 안전한 장소로 옮겨져 ‘평화의 메신저’ 역할에 충실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도쿄 | 윤희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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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사변으로 시작한 전쟁의 역사를 충분히 배우고, 앞으로 일본의 존재 방식을 생각하는 것이 지금 무척 중요하다.”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2015년 1월1일 ‘신년소감’에서 내놓은 이 말은 일본 국내외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일본이 과거 일으킨 전쟁이 아시아 지역 국가들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향후 평화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중요함을 언급한 것으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과거 역사를 부정하려는 움직임을 선명하게 드러내온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 대한 일종의 견제로 풀이되면서 한국·중국 등 주변 국가로부터도 큰 관심을 끌었다.

 

많은 사람들은 일왕이 일본의 패전 70주년이 되는 시점을 앞두고 만주사변을 언급한 것에 특히 주목했다. 만주사변은 1931년 일본이 중국 동북지방을 침략할 목적으로 일으킨 전쟁이다. 류탸오후(柳條湖)에서 일본 군대가 철도를 폭파해 놓은 것을 일본은 중국의 짓이라 뒤집어씌우면서 전쟁을 벌였다. 일본은 이후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잇따라 일으키면서 아시아 국가들에 큰 피해를 입혔다. 하지만 일본은 패전 이후 미국과 벌인 태평양전쟁에는 신경을 쓰면서도 아시아 지역에 끼친 피해는 소홀히 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출처: 연합뉴스)

 

아키히토 일왕의 이런 발언을 접한 일본의 한 대학 교수는 “일본이 일으킨 전쟁이 ‘만주사변’으로 시작됐다는 사실을 일왕이 직접 거명하면서 평화의 의미를 되새긴 것은 처음”이라면서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아시아 지역 국가들을 무시한 채 전쟁의 길로 가려고 하는 아베 총리에게 강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일왕의 의도가 느껴진다고까지 평가했다.

 

아키히토 일왕은 그해 8월15일 일본 무도관에서 개최된 전몰자 추도식에서 ‘과거 전쟁에 대한 반성’의 뜻을 직접 밝혀 다시 한 번 관심을 모았다. 일왕은 이날 “과거의 대전(전쟁)에 대한 깊은 반성과 함께 향후 전쟁의 참화가 두 번 다시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이는 전날 아베 총리가 ‘전후 70년 담화(아베담화)’에서 과거 총리들이 언급한 반성과 사죄로 자신의 뜻을 대신한 것과 비교되는 것이었다.

 

즉위 이듬해인 1990년부터 매년 신년소감을 발표하던 아키히토 일왕이 올해는 메시지를 내지 않았다. 83세인 일왕은 지난 2일 황거(皇居)를 찾은 일반인 방문객들에게 “우리나라와 세계 사람들의 평안을 기원한다”는 신년인사를 했지만, 별도의 신년소감은 발표하지 않았다. 궁내청은 앞서 일왕의 업무부담을 줄이는 차원에서 올해부터 신년소감을 내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 8월 일왕이 “점차 신체가 쇠약해져서 상징적인 존재인 일왕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아 걱정”이라면서 ‘생전 퇴위’ 의사를 밝힌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일본은 ‘아베 1강’ 체제로 완전히 굳어지고 있다. 아베에 대항할 수 있는 세력은 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제1야당인 민진당이 10% 이하의 지지율 속에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을 정도로 야당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언론도 ‘아베의 얼굴색을 살피는 데 여념이 없다’는 지적을 받을 정도로 약화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키히토 일왕은 아베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존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다수 일본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일왕의 한마디 말은 아베 총리도 함부로 여길 수는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왕이 ‘평화’의 메시지를 가득 담아 발표해온 신년소감을 내지 않기로 함에 따라 아베의 독주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견제자’는 사실상 사라지게 됐다. 국민의 고령화 문제가 사회적인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왕실의 고령화가 일본 사회에 새로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도쿄 | 윤희일 특파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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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29일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과거사를 언급했지만, 진솔한 사죄를 하지는 않았다. 그는 영어로 한 연설에서 “전후에 우리는 전쟁에 대한 깊은 반성의 느낌을 갖고 길을 걸어왔다”고 말했다. ‘깊은 반성’은 일본어 연설문에서 ‘통절한 반성’으로 표현됐다. 그가 진정 사죄의 마음을 갖고 있었다면 이렇게 이중표현을 구사하는 기교를 부릴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아시아 국가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 우리 행동들에서 눈을 돌려서는 안된다”는 추상적인 말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주변국을 침략하고 식민지 지배하며 수많은 사람의 인권, 생존권을 빼앗은 행위는 결코 ‘우리 행동’이라는 모호한 말로 대체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가 과거사를 정리하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기준은 이미 제시되었다. 식민지 지배, 침략, 사죄, 위안부 동원 인정이라는 네 개의 용어를 쓰느냐 안 쓰느냐 하는 것이다. 그가 교묘한 어법을 구사하는 것도 바로 그 선을 넘지 않으려는 치밀한 전략적 고려의 결과일 것이다. “나는 과거 총리들이 내놓은 견해들을 유지할 것”이라며 무라야마 담화 계승 입장을 밝혔지만 신뢰하기 어렵다. 그는 얼마 전 비동맹 운동을 태동시킨 반둥회의 60주년 기념식 때의 과거사 발언과 이번 연설을 통해 과거사 청산 의지가 없다는 것을 이미 드러낸 바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운데)가 27일(현지시간) 부인 아키에 여사(왼쪽에서 두번째), 홀로코스트 생존자들과 미국 워싱턴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방문해 묵념하고 있다. _ AP연합


그는 일본 자위대가 전 세계 어디서든 미군을 따라 후방지원하는 근거를 마련한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을 통해 미국에 협조한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과거사 사면을 받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또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미 의회의 환대를 통해 드러난 미·일 간 밀월이 미국으로부터 보통국가 일본을 승인받은 증거라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아시아 침략과 식민지 지배 문제는 미국이 아니라 당사국인 한국, 중국과 만나서 풀어야 할 문제다. 미국은 한·중의 동의 없이 일본을 사면할 자격이 없다. 과거사를 청산하지 못한 채 강화되는 미·일 동맹은 오히려 동아시아에서 불안요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미·일은 잊어서는 안된다.

아베 총리는 8월 아베 담화를 발표한다. 그의 미 의회 연설에도 불구하고 한·중 양국의 반응은 물론 세계 여론이 일본의 과거사 회피에 비판적이라는 사실을 그가 깨닫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한·중을 상대로 한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놓고 미국과 타협하는 건 변칙이다. 당당하게 과거사의 진실과 마주한 채 진지한 고백을 하지 않는 어떤 방식도 받아들여질 수 없다. 부디 8월이 동아시아에 평화와 협력의 새 기운이 솟아나는 계절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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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일본에서 중의원 선거가 있었다. 예상대로 자민당이 중의원의 모든 상임위원회 위원장과 반수가 넘는 위원을 확보할 수 있는 291석이란 절대적 안정 의석을 획득하였다.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의석까지 합하면 전체 의석 475석 가운데 326석을 차지하는 압도적인 승리였다. 한국과 중국 측이 가장 크게 관심을 보이고 있는, 개헌할 수 있는 317석을 넘어선 것이다.

반면에 자민당을 견제해야 할 제1야당 민주당의 성적표는 정말 초라하다. 당대표가 선거에서 탈락하고, 간 나오토 전 총리는 지역구 선거에서 자민당 후보에게 져 비례대표로 겨우 의원 자격을 유지하게 되었다. 민주당은 과반수를 밑도는 사람을 후보자로 추천하는 데 그쳐 정권교체라는 명분을 내세울 수조차 없었다. 194곳에서 ‘유신의 당’과 후보를 단일화하여 부족한 능력을 만회하려 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

이번 총선은 일본의 정치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남겼다. 양당제가 무너지고, 1강(强)의 자민당을 중심으로 연립여당의 독주체제가 거의 완비되었기 때문이다. 2016년 참의원 선거에서도 연립여당의 의석이 3분의 2를 넘는다면 아베 정권의 독주체제는 완비된다고 볼 수 있다. 아베 정권은 이때 국회에서 헌법을 개정하려 시도할 것이다. 아베 총리는 총선거가 끝난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개헌이 자신의 큰 목표이자 신념이라고 밝혔을 정도다.

그래서 2015년은 평화헌법을 개악하기 위한 터 잡기의 해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베 정권은 안보보장법제를 정비하여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계획이다. 침략을 부정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해 왔던 아베 정권은, 이미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진실을 훼손하였다. 그 다음 순서는 식민지 지배를 반성한 무라야마 담화의 훼손이다. 아베 담화는 이 연장선상에서 나올 예정이다.

서경덕 교수가 27일 페이스북을 통해 전 세계에 배포한 영상 광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만화 캐릭터로 등장, “일본이 국가적으로 여성을 성 노예로 삼았다는 근거 없는 중상이 전 세계에 퍼지고 있다”고 발언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2015년은 한국과 일본이 수교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국이 해방되고 일본이 패전한 지 7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어느 때보다도 뜻깊어야 할 2015년이지만, 한국으로서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경계의 눈초리를 일본에 보내야 하는 해가 될 우려가 있다.

그렇다고 한국 정부가 아베 정권의 정치 일정을 무산시킬 만큼의 외교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한·일관계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원만하지 못하다. 역사문제가 ‘100 대 0’ 아니면 ‘0 대 100’이어야만 풀릴 것 같은 상황이 이를 상징한다.

현실은 한국 정부로 하여금 양국 정상의 만남이 한·일관계를 더 진전시키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기 어렵게 하고 있다. 일본으로서도 정상 간의 만남을 이벤트 수준에 그쳐도 부담이 없다. 아베 정권을 떠받쳐 주고 있는 세력이 한·일관계를 그다지 고려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시점에서 정상회담이 막힌 한·일관계를 푸는 열쇠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한·일관계를 들여다보면 두 나라 정상 간의 회담만 없을 뿐, 장관을 비롯해 관계자들 사이의 대화는 중단되지 않고 있다. 역사문제가 두 나라 사이의 자유여행을 가로막고 있지도 않다. 역사와 경제도 분리되어 있어 양국 간의 교류와 활동을 근본적으로 제약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한·미·일에는 중국과 북한을 상대해야 하므로 3국의 동맹을 강조하며 정상회담 개최가 한·일관계의 회복인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종합적인 안보는 도외시한 채 국방 분야의 안보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 정당화하려 한다. 최근에 미국 정부조차 내년도 주요 외교정책의 하나로 한·일관계의 회복을 말하고 있다.

한·일간 역사문제는 학문의 영역을 넘어 외교문제화해 있다. 2015년에 한국이 주변 상황에 이끌려 이도 저도 아닌 상황에 직면하지 않으려면 주체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야 한다. 그 여지는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데서부터 마련해 가야 한다. 남북관계 개선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옹색한 선택을 강요받지 않고 한반도문제에 관한 한 오히려 두 강대국의 공통분모를 모아내기가 훨씬 용이하기 때문이다. 지금보다 좀 더 여유로워진 외교는 국방과 역사문제를 연계시켜 한국 외교를 더 폭넓게 확장할 수 있다. 2015년 초까지 그 전환점이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신주백 | 연세대 HK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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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의 중의원 선거 압승은 한·일관계, 나아가 동북아 안정에 좋지 않은 소식이다. 아베 총리의 승리가 자민당에는 반가운 일이겠지만, 주변국에는 불길한 그림자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선거에서 패배했더라면 주변국과의 갈등을 조장해온 외교정책을 성찰하며 화해를 적극 고민할 수 있었던 기회를 그의 승리가 앗아갔기 때문이다. 한·일관계 개선에 적극적이지 않은 그의 권력을 재확인한다는 건 한마디로 한국에 대한 일격이나 다름없다.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동아시아 패권을 추구하는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과 이를 견제하는 데 총력을 쏟고 있는 일본의 아베 총리가 각각 내부 권력을 강화하는 현상은 화해보다 갈등에 기여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아베 총리의 승리가 일본에 좋은 소식인 것도 아니다. 어떤 권력이든 견제와 감시가 필요하다. 그런데 일본 민주당은 견제라는 소극적 권력도 행사할 수 없는 지위로 떨어졌다. 일본인들의 시선에 야당이 아베 정권의 대안이 되지 못한 결과이다. 이렇게 견제 없는 권력의 탄생은 아베 총리의 질주라는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아베 총리의 장기 집권 전망이 우세하지만 실질적 득표율은 30%에 이르지 못한다. 아베 총리의 정책이 전폭적 지지를 받는 것은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그런데도 대내외 정책에서 밀어붙이기로 일관한다면 일본의 미래에 먹구름이 낄 수도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5일 자민당의 총선 승리 후 도쿄 자민당 본부에서 열린 기자회견 도중 질문할 기자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 _ 뉴시스


아베 총리가 현명하다면 이 같은 승리의 이면도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 승리는 어떤 의미에서 조급증을 벗어나 여유를 갖고 대외정책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다. 마침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오스트레일리아 미·일 정상회담에서 한·일관계 개선을 주문했다고 한다. 이는 아베 총리가 주변국 관계를 더 악화시킨다면 미국에도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아베 정권은 고립될 가능성도 있다. 아베 총리가 승리에 취해 사리분별을 잃어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아베 총리를 피할 길이 없게 됐다는 사실은 한국 정부로서 난감한 일이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아베 총리 상대하지 않기라는 소극성에서 벗어나 한·일 갈등 최소화를 위한 적극적 전략이 필요하다. 내년 한·일관계 정상화 50주년을 최악의 상황에서 맞이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한·일 양국 모두 생산적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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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21일 오전 11시. 일본 도쿄 나가타초에 있는 민주당 본부는 들뜬 분위기로 술렁거렸다. 중의원 해산 선포를 불과 2시간 앞둔 시각, 중·참의원 양원 총회에 모인 의원들의 눈빛에는 비장함이 감돌았다. 연일 계속된 선거 유세로 새카맣게 얼굴이 탄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대표가 연단에 올랐다. 민주당의 승리는 확실시됐고 하토야마 대표는 차기 총리로 유력한 상황이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은 자민당을 크게 앞서고 있었다. 하토야마는 흔들림 없는 표정과 차분한 어조로 연설을 시작했다. “이번 선거가 정치주도의 새로운 일본을 일으킬 커다란 혁명적 총선이란 사실을 명심하고 역사적 사명감을 가지고 임해야 합니다.” 장내에서는 일제히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나왔다.

그해 8월30일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은 예상대로 중의원 전체 480석 가운데 308석을 가져가는 압승을 거두며 54년 만에 선거에 의한 정권 교체에 성공했다.

얼마 전 도쿄특파원으로서 일본 총선을 취재했던 기억을 되살리며 수첩을 뒤적여보았다. 거기에는 ‘자민당 장기집권과 구태정치에 대한 염증’, ‘실업률 최악…경기 침체’, ‘격차 확대’와 같은 단어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비가 추적추적하게 내리던 총선 다음날 민주당에 거는 기대를 쏟아냈던 일본인들을 만났던 일도 다시 떠올랐다. 그들의 말에서 선거를 통해 자신들의 힘으로 여당을 심판했다는 자부심이 읽혔다.

일본 민주당의 ‘하토야마호’는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야심차게 출발했다. 하지만 신생 민주당 정권은 불과 몇 달도 지나지 않아 문제점들을 속속 노출하기 시작했다. 하토야마 총리의 ‘가벼운 입’ 때문에 당초 내놓았던 공약과 정책들은 갈팡질팡했다. 내각과 충분한 조율이나 재원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추진한 공약은 대폭 축소, 또는 철회됐다. 하토야마 총리의 정치헌금 허위 기재,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간사장의 정치 자금 스캔들은 유권자들에게 부패정치의 트라우마를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다. 출범 무렵 한때 70%에 달하던 지지율은 20%대까지 폭락했다. 급기야 정권 교체 8개월 만에 민주당의 총선 승리를 이끌었던 ‘투톱’ 하토야마 총리·오자와 간사장이 동반 퇴진하기에 이르렀다.

민주당이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대등한 미·일 관계’는 양국의 갈등을 초래했고 오키나와현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는 마찰을 표면화시켰다. 오키나와 미군 기지와 관련해 하토야마는 오락가락하는 행보를 보이다 결국 안팎의 압력에 굴복해 ‘오키나와 현내 헤노코 이전’에 합의했다. 이에 반발한 사민당은 연립에서 이탈하면서 하토야마 실각의 빌미를 제공했다. 이런 가운데 터진 2011년 3월 동일본대지진은 민주당 정권에 결정적인 타격을 안겼다. 결국 2012년 12월 민주당은 3년3개월 만에 자민당에 정권을 내줬다. 100석도 못 건지는 참혹한 패배가 민주당이 받아든 성적표였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4일 도쿄 자민당 본부에 설치된 선거 상황판 앞에서 총선 승리를 기뻐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_ 로이터


어제 일본에서는 딱 2년 만에 다시 총선이 실시됐다. 결과는 두 해 전과 같았다. 2년 전과 달라진 게 없는 야당은 그동안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에 이리저리 끌려다녔다. 아베의 경제 정책인 ‘아베노믹스’가 실패했는데도 일본 유권자들은 다시 한번 그를 밀어줬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의 무기력함과 대안 및 대책 부재는 일본인들의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사회 전반을 관통하는 보수우익의 흐름이 두드러졌던 것도 패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민주당은 이제 존재감마저 잃었다.

더 큰 문제는 지금부터다. 지리멸렬한 야당이 난립하는 상황에서 일본 정치의 좌표는 과거 자민당 ‘1당 독주’ 시대로 되돌아갔다. 양당제 구도는 사실상 무너졌다. 이미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의 포석을 다진 아베 총리는 자신의 종국 목표인 개헌을 향해 질주할 것이 뻔하다. 그가 내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해 장기 집권의 길로 들어선다면 일본은 더욱 ‘보수의 길’로 치달을 것이 분명하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군대 보유 가시화, 독도와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 및 역사왜곡에 따른 주변국과 심각한 마찰도 예상된다. 무엇보다도 가뜩이나 좋지 않은 한·일 관계가 한층 삐걱거릴 가능성이 크다. 군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한 고노 담화의 주인공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관방장관은 “벼랑 끝으로 치닫는 일본의 우경화 바람에 제동이 시급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돌파구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과거로 회귀해버린 일본 정치판을 보니 마음이 더욱 갑갑하다.


조홍민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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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가 11월21일 국회를 해산하고 12월14일 총선거 실시를 선포하였다. 2015년 10월로 예정된 소비세율 인상 실시를 1년반 연기하면서 이에 대한 시비와 자신의 경제정책, 이른바 아베노믹스의 평가를 국민에게 묻겠다는 것이다.

총리의 국회 해산권 행사는 이전 선거에서 상정되지 않았던 쟁점이 부각되거나 총리와 국회의 대립으로 정국이 교착 혹은 혼란 상태에 빠지는 경우 실시하는 게 일반적이다. 2005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역점사업인 우정(郵政)사업 민영화 법안이 국회에서 부결되자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를 결행해 327석이란 기록적인 승리를 거두고 법안을 가결시킨 바 있다. 그는 유권자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던 우정민영화를 고이즈미 개혁에 대한 찬반 투표로 프레임하였고 압도적 지지를 이끌어 냈다. 당시 고이즈미 총리 하에서 관방장관을 지냈던 아베는 이를 본받아 이번 선거를 “아베노믹스 선거”라 규정하였다.

그러나 야당이 아베노믹스에 대한 불신임을 선언하지도 않았고, 소비세율 인상 연기를 명시적으로 거부하지도 않았다. 2012년 만들어진 소비세 증세법은 2단계 소비세율 인상을 정하면서 경기가 악화될 경우 연기조항을 설정해 놓았기 때문에 총선의 명분은 더더욱 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회 안정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아베 총리가 국회 해산을 단행한 이유는 무엇인가.

아베 총리의 결정은 장기집권을 위한 정치적 판단의 결과이다. 60%를 전후하는 탄탄한 지지율을 보이던 아베 내각은 지난 9월 내각 개편 이후 연이은 각료 스캔들로 지지율이 50% 이하로 하락하는 추세에다, 일본이 지난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하는 쇼크에 가까운 결과에 향후 경제운영에 노란 불이 켜졌다. 내년 4월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고 9월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하여 2018년까지 총 6년간 장기집권하는 시나리오는 불투명해졌다. 일본의 여러 언론들은 아베의 결정을 지지율 하락과 경제상황 악화에 따른 불안정 요소를 해산-총선거의 승리로 반전시키고, 지방선거와 총재선거를 겨냥한 선제적 대응이라 판단하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연설 모습 (출처 : 경향DB)


이와 함께 아베의 속내를 읽으려면 그가 존경하는 외조부(祖父)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의 사례를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기시는 총리 재임 시절인 1960년 다수 국민이 거세게 반대한 미·일안보조약 개정을 단행한 후 중의원 해산-총선거를 추진했으나 조약 개정 과정에서의 혼란으로 퇴임하고 말았다. 훗날 그는 조약 개정을 내걸고 국회 해산을 단행, 선거 승리 후 조약 개정으로 갔다면 롱런하였으리라 애통해한 바 있다.

아베 총리의 궁극적 목표 즉, “전후 레짐으로부터 탈각”하여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고 헌법개정으로 자주적 일본의 귀환을 이룩하는 프로젝트는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 중대한 첫 단추로 지난 7월 총력을 기울여 성사시킨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의 각의 결정에 따라 자위대법 개정 등 일련의 안보정책 관련 법안들이 내년도 정기국회에서 처리되어야 한다. 아베 총리는 자신이 잘해온 경제사안을 이슈로 만들어 해산-총선거로 국민의 신임을 확보한 후, 이를 명분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안보(이념) 사안을 밀어붙이고자 꼼수를 쓰고 있다.

현재 상황은 아베 총리에게 나쁘지 않다. 교도통신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당지지도는 자민당 32%와 민주당 5%, 비례대표의 경우 자민당 37%와 민주당 13%로 일본 유권자들은 여전히 자민당을 선호하고 야당은 분열되어 지리멸렬의 상태이다.

만일 선거결과가 각 상임위를 지배할 수 있는 절대 안정 다수인 266석을 넉넉히 상회한다면 아베 총리는 경제운영에 대한 신임을 바탕으로 이념과 안보에 노력을 경주할 것이고 한·일관계의 어려움은 지속될 것이다. 반면 유권자가 해산-총선거의 꼼수에 심판을 가해 자민당 의석수가 과반수 선에 근접한다면 경제회생에 집중하면서 보다 실용적인 외교정책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는 2015년 한·일관계의 전도는 12월 선거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


손열 |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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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어제 국회 해산과 총선 일정을 발표하면서 일본이 선거 정국으로 돌입했다. 성장률 급락으로 아베노믹스가 한계에 봉착하자 민심을 묻겠다고 역공에 나선 것이다. 출혈이 있더라도 야당에 정권을 넘겨줄 만큼은 아니라는 정치적 셈법이 작용한 것이지만 경제 실정을 국회 해산으로 덮으려 한다는 비판도 커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다.

아베노믹스의 한계 노정은 일본을 흉내 내는 한국에도 음미할 대목이 많다. 일본의 총선 돌입은 그제 발표된 3분기 성장률(-1.6%)이 계기가 됐다. 2분기 성장률(-7.3%)은 4월의 소비세 인상에 따른 것이라 하더라도 3분기 마이너스는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아베 스스로도 “안타깝지만 좋지 않은 수치”라고 말할 정도다. 당장 돈 푸는 정책의 한계가 명확해졌다. 무제한 양적완화→엔저 유도→수출 대기업 이익 증가→임금 인상→내수 자극→경기확장의 선순환 예측도는 비용 증가를 우려한 기업이 임금 인상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어그러졌다. 여기에 무역적자가 25개월째 지속되면서 엔저가 수출기업들에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전제 자체가 의문시되고 있다. 오히려 엔저는 수입 물가를 밀어올리면서 소비를 위축시키는 양상이다. 내수·중소기업도 엔저 후폭풍으로 고통받고 있다. 더구나 한계기업 구조조정이 지연되면서 기업 경쟁력 전체를 갉아먹고 있지만 성장론에 밀려 지지부진한 상태다.

근심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아베 총리 (출처 : 경향DB)


총선의 직접 빌미가 된 소비세 인상 연기는 방만한 재정운영이 훗날 국가경제에 얼마나 부담이 되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일본은 1990년 거품 붕괴 뒤 건설 위주의 단기 부양책을 쏟아내면서 나랏빚이 눈덩이처럼 늘어 1038조엔(약 1경)에 달한 상황이다.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227%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아베 총리는 기존 5%였던 소비세를 지난 4월 8%로 올린 데 이어 내년 10월 10%로 올리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증세가 인기 없는 정책이고, 소비를 위축시키지만 후대를 위해 의미있는 시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결국 두번째 증세는 연기됐다. 증세를 강행하면 경기회복이 어렵다는 현실론을 앞세우지만 재정건전성을 위해 증세에 거부감을 갖는 국민을 설득하기보다는 정권 유지를 우선한 정치인의 한계를 넘지 못한 것이다. 일본경제의 침체는 저출산·고령화, 양극화, 기업 성장동력 부재 등 여러 경제사회적 요인에 선심성 재정투입 등 잘못된 정책에서 기인한 것이다. 한국의 상황 역시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문제는 돈을 쏟아붓고 기업들의 입맛에 맞는 정책을 쓴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일본경제에서 배워야 할 것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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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표적인 재계단체인 일본경제단체연합회의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신임 회장은 취임식을 하루 앞둔 지난 6월2일 일본 언론들과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 단체가 정치헌금 알선을 재개할지를 연내에 판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보통 ‘게이단렌(經團連)’이라는 줄임말로 더 유명한 이 단체는 한국의 전경련과 성격이나 위치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이 게이단렌은 1950년대 중반부터 정치헌금의 총액을 정한 뒤 각 기업의 자본금, 매출 규모 등에 따라 금액을 할당하는 등 자민당 정권과 깊은 유착 관계를 형성해 왔다. 게이단렌의 정치헌금 알선은 비(非)자민당 정권이 들어선 1993년 폐지됐다가 2004년 재개된 뒤 민주당 정권이 들어선 2010년 다시 없어졌다.

게이단렌 회장의 발언이 있고 난 다음날 일본의 정부·여당에서 놀라운 소식이 하나 전해졌다. 2015년부터 법인세를 인하하기로 방침을 결정한 것이다. 법인세 인하는 재계의 최대 숙원으로 꼽히는 정책이다.

일본의 한 시민단체 대표는 “정책을 돈으로 사는 악질적인 수법이 부활하고 있다”며 게이단렌과 일본 정부·여당의 이런 움직임을 강력히 비판했다. 일본에서 기업이 정치인 개인이 아니라 정당에 내는 헌금은 위법이 아니다. 하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정당을 지원하는 대신 기업이나 단체의 정치헌금을 폐지하는 쪽으로 일본 정치가 발전해 가고 있는 것으로 굳게 믿고 있던 상당수 국민들은 ‘정치헌금’의 부활 움직임에 충격을 받은 모습을 보였다. 도쿄신문 등 언론들도 게이단렌과 정권 사이에서 다시 등장한 ‘유착’을 비판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정권과 재계는 눈 하나 꿈쩍이지 않았다. 오히려 양측의 관계는 더욱 끈끈해졌다. 지난 7월24일 도쿄에서 열린 게이단렌의 하계 포럼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전격적으로 모습을 나타냈다. 사카키바라 회장은 “현직 총리가 포럼에 온 것은 8년 만”이라며 대대적으로 환영했다. 이후 사카키바라 회장 등 게이단렌 간부들은 지난 7월 말부터 8월 초에 이루어진 아베 총리의 중남미 순방에 동행하는 등 ‘정·경 일체화’ 분위기를 대내외에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정권에 비판적이던 전임 게이단렌 회장 재임 시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지난 8일 드디어 사카키바라 회장은 기업의 정치헌금을 재개하겠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그는 정치헌금을 ‘사회헌금’으로 규정한 2003년의 게이단렌 지침을 이어가겠다고 밝힌 뒤 1300여 게이단렌 회원사를 상대로 정치헌금을 알선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밝혔다.

아베 정권은 최근 법인세 인하·노동시간 규제완화·원전 재가동·엔저정책 등 ‘성장전략’이라는 이름이 붙은 선물 보따리를 잇따라 펼쳐놓으면서 ‘돈뭉치’를 흔들며 나타난 재계에 ‘통 큰 화답’을 내놓고 있다. 아베노믹스의 핵심인 이른바 ‘성장전략’은 대부분 기업들의 돈벌이를 밀어주고 도와주는 것들이다.

일본 게이단렌 회장에 취임한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회장 (출처 : 경향DB)


노동시간 규제 완화 정책은 기업들로 하여금 보다 쉽게 사람을 쓸 수 있게 할 것이고, 원전 재가동 정책은 기업들에 보다 싼 전기를 제공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베 정권이 ‘무기수출 3원칙’을 버리고 새로 취한 ‘방위장비 이전 3원칙’도 많은 기업들에 무기를 만들어 세계시장에 내다 팔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아베 정권은 심지어 일본 국민들의 노후를 지탱해줄 연금자산을 주식에 투자해 증시를 부양하는 정책까지 쓰기로 하는 등 ‘친기업’ 정책을 줄기차게 펼치고 있다.

노동시간 규제 완화 정책으로 인한 근로 조건 악화를 걱정하는 직장인들, 방사능 공포 속에서 늘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원전 인근 주민들, 그리고 연금 하나에 의존해 노후를 보내야 하는 수많은 보통의 일본 국민들은 정권과 재계 사이에서 화려하게 부활한 이런 유착관계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윤희일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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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잣집 도련님이 뭘 제대로 할 수 있겠어요.” 2006년 일본의 한 대학에서 연수를 할 때였다. 그해 9월 아베 신조(安倍晋三)가 총리에 오르자 알고 지내던 한 일본인 대학원생이 한마디 툭 던졌다. 아베가 역대 최연소(취임 당시 52세)에 전후 세대 첫 총리가 됐다는 점과 함께 ‘젊은 리더’에게 국가의 재생을 맡기는 것이 ‘시대의 요청’이란 평가도 들렸지만 그의 얘기는 달랐다.

아베가 총리에 오를 수 있었던 데는 전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 밑에서 관방장관을 맡으며 보여줬던 강단있는 모습이 적잖이 작용했던 것 같다. 아베는 2002년 고이즈미의 평양 방문 때 수행해 “안이하게 타협해서는 안된다”며 강경론을 폈고, 5명의 납치피해자 귀국이란 성과를 이끌어냈다. 샌님 같은 외모와 달리 ‘할 말은 하는’ 강한 이미지가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아름다운 나라, 일본’을 정권 공약으로 내건 아베는 ‘전후 레짐의 탈피’ ‘주장하는 외교’ 등을 주요 정책으로 삼겠다고 했다. 당시 총리 경쟁자였던 아소 다로(麻生太郞)나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의 공약집이 각각 25쪽에 달했지만 아베는 단 4쪽에 불과했다. 그만큼 국가경영에 자신이 있다는 의미와 동시에 젊은 리더로서 패기를 유감없이 발휘한 것으로 해석됐다.

딱 1년이 지나자 그가 돌연 총리직을 내던졌다. 2007년 7월 참의원 선거 참패에 대한 문책성 사임이었지만 사실 재임 기간 중 악재가 잇따랐다. 각료들의 비리 의혹 등이 터졌고 일본인에게 가장 민감한 부분인 원폭 투하를 두고 “어쩔 수 없었다”고 한 방위상의 발언이 물의를 일으켰다. 선거 패배 직후 미 하원에서는 ‘위안부 비난결의안’이 통과됐다. 17살 때부터 그를 괴롭혀온 궤양성대장염도 그의 발목을 잡았다.

아베가 다시 정치무대 전면에 등장한 것은 5년 뒤였다. 2006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일방적 표차로 승리해 총리에 오른 것과 달리 2012년 9월 선거는 접전으로 치러졌다. 1차 투표에서 이시바 시게루(石破茂)에게 뒤졌지만 결선에서 역전드라마를 연출했다. 1956년 자민당 총재 선거 사상 결선 투표에서 뒤집힌 것은 처음이었고, 한 차례 사임했던 총리가 재선에 성공한 것도 최초였다. 그런 자신감의 발로였을까. 이후 아베의 행보는 거침없었다. 법 해석을 바꿔 평소 지론인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하는가 하면, ‘무기수출 금지 3원칙’도 ‘방위장비 이전 3원칙’이라고 말을 바꿔 교묘하게 무기 생산과 수출의 길을 열었다.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해외를 순방하며 집단적 자위권의 용인이 오히려 전쟁을 억제한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주변에서는 “아니다”라고 하는데 자신은 “옳다”고 하며 현안들을 밀어붙였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는 결정을 한 뒤 기자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 _ 뉴시스



일본의 작가 한도 가즈토시(半藤一利)는 그의 저서 <쇼와시(昭和史)>에서 “일본인은 위기상황에서 추상적인 관념론을 매우 좋아해 구체적이고 이성적인 방법론을 전혀 검토하려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목표를 먼저 설정하고 그럴듯한 이유를 갖다붙여 ‘공중누각’을 그린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어떤 사안이 자신의 희망대로 움직일 것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2차 세계대전 역시 그랬다. <쇼와시>에 따르면 1941년 11월 일본 대본영 정부연락회의는 전쟁이 일어날 경우 전망에 대해 논의했다. 당시 참석자들은 “독일이 유럽에서 승전하면 미국은 전쟁을 계속할 의지를 상실할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미 해군 주력부대를 일본 근해로 끌어들여 물리친다는 계획도 세웠다. 여기에 언론의 선동, 국민적 열광이 더해지면서 일본은 전쟁의 길을 선택했다. 일본 해군은 미국에 대한 선제 공격에 반대했지만 내각을 사실상 장악했던 육군의 기세에 밀려 전쟁 찬성으로 돌아섰다. ‘개전(開戰)’ 분위기가 정해지자 다른 논리나 이성적 판단은 끼어들 틈이 없게 됐다. 하나의 잘못된 목표를 정해놓고 국가운영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면서 일본은 파멸로 치닫게 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아베의 행보 역시 자신의 생각대로 진행될 것이란 기대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일본 전체가 열광해 그의 뜻을 추종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곳곳에서 ‘폭주’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아베는 ‘역사에서 교훈을 배운다’는 평범한 진리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역사로부터 ‘반성의 재료’를 얻어 비극을 되풀이하지 말라는 의미다.

조홍민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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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국민 ‘탈원전 운동’ 수렴 실패 속 정치권은 우향우


일본 지바(千葉)현의 오다키마치(大多喜町)는 소규모 수력발전소를 반세기 만에 재가동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도쿄전력이 가동을 중단한 뒤 방치돼 있던 시설을 자치단체가 연말까지 보수해 재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도쿄만으로 흘러드는 마을 하천의 물을 유도관을 통해 끌어들인 뒤 낙하시키는 방식으로 생산되는 전력은 마을 110가구에 공급할 수 있는 수준이지만 에너지 자립을 위한 첫발을 뗐다는 데 의미가 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직후 태양광발전이 각광을 받은 데 이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농업용수로나 하수처리장에 수차를 설치하는 정도로 전기를 얻을 수 있는 소수력발전의 보급이 확산되고 있다.


3·11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전사고 이후 2년간 일본 각지에선 ‘에너지 지산지소’로 불리는 에너지 자립실험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지역에서 쓸 에너지를 지역에서 생산하자’는 움직임은 원전사고로 거대 전력회사의 독점 폐해가 백일하에 드러난 이후 기성질서로부터 벗어나려는 ‘원심력’이 작동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일본인 17만여명이 2012년 7월16일 도쿄 요요기공원에서 열린 원전 반대 집회 ‘안녕 원전’에 참석해 행진하고 있다. 이 집회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와 작곡가 사카모토 류이치 등이 주최했다. _ 경향신문 자료사진





▲ 아베노믹스·토건 부활·개헌… 약화된 ‘정치 구심’ 되살리기

지자체선 에너지 자립운동… 전력 독점구조 ‘이탈’ 움직임


정치권은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2년 전 대지진에 이어 지난해 중국과의 센카쿠(尖閣)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 등 안팎에서 위기가 조성되자 정치권은 급격히 보수화 흐름을 보였고, 민주당의 개혁실험은 좌절했다. 지난해 12월 총선을 통해 집권한 자민당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은 ‘강한 일본’을 외치며 재난 이후 약화된 ‘구심력’의 회복을 꾀하고 있다. ‘일본을 되찾겠다’는 자민당의 총선 슬로건의 속뜻은 50여년의 자민당 장기집권 과정을 통해 구축된 기성질서를 재확립하겠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안전이 확인된 원전은 재가동하겠다”고 선언해 ‘원전 마피아’의 이익을 보장하겠다는 의지를 비쳤다. 자민당 내각은 전력회사가 재생가능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을 의무매입하도록 한 제도에 대해서도 매입가격을 10%가량 낮출 것을 검토하는 등 재생에너지 확대에 제동을 걸 움직임을 보인다.


대담한 금융완화와 공공투자를 축으로 한 ‘아베노믹스’로 엔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수출 대기업은 쾌재를 부르고 있고, 대규모 건설기업들도 ‘토건주의 부활’에 대한 기대감에 들떠 있다. 반면 수입물가 상승은 가계의 주름살을 더 깊게 하고 있다. 아베 총리가 기업들에 종업원의 임금 인상을 유도하는 등 유연한 태도를 보이곤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아베노믹스의 혜택은 대기업에 집중되고 있다. 일본 정치권에서는 헌법을 개정하고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아베 정권의 우경화 노선을 견제할 세력이 보이지 않는다. 헌법의 개정요건을 완화하는 헌법 96조 개정에 자민당은 물론 민주당에서도 상당수 의원이 찬성하고 나선 것은 이런 현실을 뒷받침한다.


반면 원전사고 이후 ‘각성한’ 시민들의 움직임은 현실정치의 추진력이 되지 못한 채 고립분산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총선에서 ‘탈원전’을 내세운 정당들이 참패함으로써 구체제의 복귀를 막지 못하는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에너지 자립을 모색하는 움직임을 제외하면 뚜렷한 성과도 보이지 않고, 원전 2기의 재가동도 결국 저지하지 못했다. 지난해 도쿄 시내에서 17만명이 참가한 탈원전 집회를 개최한 시민그룹들이 오는 10일 전국 270곳에서 동시다발 탈원전 집회를 개최할 예정이지만 일과성 이벤트로 끝날 공산도 크다.


도쿄 | 서의동 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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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일 진보 학자 아사노 교수


“대학, 언론, 노동조합이 비판기능을 상실한 현재의 일본은 1920년대보다도 민주주의가 후퇴했다고 생각합니다.”


아사노 겐이치(淺野健一·64·사진) 일본 도시샤(同志社)대 교수(미디어학)는 5일 경향신문과의 전화인터뷰에서 동일본 대지진 2년을 맞은 일본 사회를 이렇게 진단했다. 그가 거론한 1920년대는 일본에서 민주주의 운동이 활발했던 ‘다이쇼(大正) 데모크라시(1911~1925)’ 시대를 가리킨다. 아사노 교수는 “당시엔 언론들이 침략전쟁을 반대하기도 했고 진보세력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껴가며 천황(일왕)제 폐지를 외치기도 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집회와 언론 자유가 보장돼 있는데도 비판 주체들이 사회적 의제 설정이나 권력에 대한 비판을 등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사노 교수는 특히 지난해 12월 총선 결과에 대해 “후쿠시마(福島) 원전사고를 겪은 일본에서 원전추진 세력인 자민당이 압승한 것은 민주주의가 전혀 기능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원전사고를 계기로 독일이 원전정책을 폐기했고, 유럽에서 녹색당 등이 선전한 반면 일본에서는 원전사고가 난 후쿠시마현에서조차 자민당이 압승했다. 


그는 “비판기능이 상실되면서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일본유신회 대표의 인종주의적인 발언이 그대로 용인되는 반면 혁신세력들이 주장해온 일본의 ‘비무장 중립론’은 말조차 꺼내기 힘들어질 정도로 사회가 보수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이유로 아사노 교수는 “일본이 본래 민주주의 성향이 약한 데다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단죄하지 않은 채 넘어가기 때문”이라며 “아베 내각이 편협한 내셔널리즘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도 과거 역사에 대한 청산과 반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사고’가 아니라 안전불감증이 빚어낸 ‘형사사건’입니다. 철저한 검찰 수사를 통해 책임자를 가려내고 처벌하지 않으면 똑같은 실수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도쿄 | 서의동 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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