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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없는 과세(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 1969년부터 미국 워싱턴시에 사는 수전 헤이든(63)은 다른 시민들처럼 차량 번호판 아래에 이 문구를 새기고 다닌다. 16일 오후 워싱턴 조지타운의 주택가에 막 주차를 마친 헤이든은 “우리는 다른 미국인들처럼 모든 세금을 내지만 연방 상·하원 의원 투표권은 없다”며 항의 표시로 이 번호판을 달고 다닌다고 했다.

워싱턴시와 인구가 65만명 정도로 비슷한 버몬트주는 상원의원 2명, 하원의원 1명이 있는데 비해 워싱턴 시민들은 연방의회에서 그들을 대표할 상·하원 의원 자리 자체가 없다. ‘그래서 불편한 점이 있느냐’는 물음에 헤이든은 “낙태허용 법안, 건강보험 개혁법안, 이라크전 파병 관련 결의 등 의회가 처리하는 수많은 법안과 결의안에 내 의사는 전혀 대표되지 못했다”고 답했다. 부동산중개업자인 그는 “나 역시 생업에 바쁜 보통사람일 뿐이지만, 온전한 시민이 될 수 없는 것이 늘 개탄스럽다”고 했다.

워싱턴은 1790년 연방의 수도로 정해질 때 어느 주에도 속하지 않은 특별구로 시작해 지금에 이른다. 행정부와 입법부의 권력분립, 50개 주들 사이의 형평성 등을 고려한 조치였다. 그것은 ‘건국의 아버지’들이 미처 헤아리지 못한 설계의 결함들 중 하나였다. 도읍을 정할 당시 워싱턴 거주민 대부분은 연방정부 관계자였지만 이제 헤이든처럼 정부와 관련 없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1980년부터 시작된 워싱턴의 51번째 주(州) 승격운동에 대한 의미있는 반박 논거는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의회에서 법을 개정하려는 시도는 늘 좌절됐다. 워싱턴의 인구 구성이 흑인이 과반이고, 민주당 지지자가 75%인 데서 오는 정치적 이유가 크다. 15일 미 상원에서 워싱턴을 ‘뉴컬럼비아주’로 승격하자는 법안 공청회가 처음으로 열렸다. 이른 시일 내 이 법안의 통과 가능성은 낮다. 헤이든은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시민이 되기 위한 싸움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코틀랜드 애버딘대학 교직원으로 일하는 마커스 비즐리(44)는 요즘 열심히 스코틀랜드 독립 찬성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있다. 그는 잉글랜드 남부 브랙넬이 고향이지만 이젠 스코틀랜드가 삶의 터전이다.

안보와 경제 논리로 무장한 독립 반대론에 맞서 비즐리가 독립을 찬성하는 이유는 더 많은 대표성을 가진 정치가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공동체가 됐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영국 의회)에 있는 내 지역구 의원은 36.5%의 사람들만 대표한다. 그것은 스코틀랜드 지역구뿐만 아니라 영국 다른 지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반면 홀리루드(스코틀랜드 의회)의 의원은 적어도 내 지역민 90%의 의사를 반영하고 있다.” 18일이면 결정될 스코틀랜드 독립투표가 이번에도 문턱에서 좌절할 수도 있다. 하지만 비즐리 같은 사람들의 요구는 이미 영국 연방정치에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주민투표가 실시된 18일 이른 아침, 에든버러 인근 도시 포르토벨로의 한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줄지어 투표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_ 뉴시스


워싱턴 주 승격 운동이 지방정부가 좀 더 온전한 연방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으려는 것이라면 스코틀랜드 독립은 지방정부가 연방에서 떨어져 나가려는 운동이라는 점에서 반대다. 스코틀랜드 독립에 대한 언론의 관심에서 보듯 파급 효과도 차원이 다르다. 하지만 정치가 내 행복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 시민들의 고민이 담겼다는 점에서 둘은 비슷하다. 국가라는 이기기 어려운 존재를 상대로 한 싸움이기에 번번이 패할 수밖에 없었지만 30년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오며 조금씩 현실에 다가가고 있는 점도 비슷하다.

2014년 한국에서 시민으로서 내 의사는 얼마나 정치적으로 대표되고 있는가. 이제는 사표가 되어버려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48% 유권자들, 혹은 투표하지 않은 사람들의 얘기를 하자는 것도 아니다. ‘한번만 도와달라’며 당선된 대표자들, 앞으로 1년8개월간 선거로 심판받을 일 없는 집권세력을 선택해준 유권자들이라도 행복하게 하고 있는가.


손제민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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