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치에서 국가 간 협상을 다루는 분석틀 중에 양면게임(two-level game)이라는 것이 있다. 국제정치학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조금 어려운 내용이 될지 모르겠으나 최대한 쉽게 풀어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흔히 국가 간 협상을 국가를 대표하는 협상 실무진 간의 협상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 실무진 간에 주고받기를 잘하여 서로 합의를 이루면 협상이 타결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실제 국가 간 협상은 이렇게 단선적으로 협상 실무진 간에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두 국가의 협상 실무진끼리 아무리 합리적인 타결을 보아도 그 타결된 안을 각기 국내의 이해 당사자에게 가져가 설득하지 못하면 그 안은 죽어버리고 만다. 특히 협상된 내용이 국회의 비준을 받아야 하거나, 국내 여론의 대폭적인 지지를 받아야 하는 것이라면 국내의 설득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국제와 국내의 양면에서 동시에 접점을 찾아야 협상이 타결된다는 의미에서 국제정치학에서는 국가 간 협상을 양면게임이라고 부른다.

이제 북·미 간의 비핵화 협상으로 눈을 돌려보자.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25일(현지시간) 미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출석, 발언하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미국의 목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 말까지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이루는 것이라고 밝혔다고 외신이 전했다. AP연합뉴스

 

비핵화 협상은 기본적으로 미국과 북한 양국 간에 이루어지는 협상이다. 그리고 양국이 아직까지 전쟁상태에 있기 때문에 북한이 일방적으로 자신의 최대 전쟁능력인 핵을 포기하는 협상은 북한의 입장에서는 비핵화 협상이 아니라 패전에 해당하는 무장해제라고 볼 것이다. 고난의 행군을 하면서까지 핵을 개발해 온 북한의 군부와 인민들이 미국 앞에서 무장해제와 패전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따라서 미국 및 남한과 대결적 전쟁상태가 지속된다면 김정은 위원장이 아무리 핵포기의 전략적 결단을 했다하더라도 이를 북한 국내에서 실행에 옮길 명분과 설득논리를 가질 수 없게 된다. 전쟁상태가 종식되고 미국, 그리고 남한과의 정상적인 국가관계가 성립된다는 확실한 신뢰가 있어야 북한이 핵심전력인 핵을 포기할 명분이 생긴다. 전쟁용으로 개발한 핵을 평화적 환경이 도래했으므로 포기하고 국가의 모든 자원을 경제건설에 투입하겠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비전이 국내적으로 설득력을 갖게 된다. 그래서 북한은 의미 있는 비핵화 과정에 들어가기 전에 미국과 한국이 우선적으로 ‘종전선언’을 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반면 미국의 입장에서도 국내적으로 이미 악마화되어 있는 북한에 선뜻 ‘종전’이라는 선물을 주기가 어려울 것이다. 종전을 선언했는데 북한이 비핵화를 질질 끌면서 제재의 완화만을 노린다면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 북한에 농락당하는 꼴이 된다. 거기다가 종전과 함께 정전협정이 사라지면 유엔사령부의 존재 및 주한미군의 존재에 대해 북한이 문제 삼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결국 한·미동맹의 문제까지 엮이게 되어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 남한과 미국의 매우 급격한 변동과 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는 안보적 우려 역시 존재한다. 북한의 술수에 말려들 수 있다는 생각에 종전선언에 대한 미국과 남한의 국내적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가운데),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20일(현지시간) 뉴욕 맨해튼의 유엔 주재 대한민국 대표부에서 회동을 하기에 앞서 환담하고 있다. 뉴욕 _ AFP연합뉴스

 

하지만 양면게임의 성격상, 그리고 전쟁용이라는 북핵의 성격상 전쟁이 끝났다는 것을 선언하는 종전선언은 본격적인 비핵화의 과정으로 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첫 관문이다. 북한도 북한 억류 미국인의 석방,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그리고 서해위성발사장 해체 및 ICBM 조립시설 해체라는 초기조치 등을 보여주면서 미국에 종전선언을 압박하고 있다.

 

그래서 여기서 우리가 해법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이 종전선언을 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종전의 시작’을 선언하는 것이다. 즉 종전도 과정으로 설정하고, 이제 종전이라는 과정의 시작을 알린다는 선언을 하는 것이다. 종전이라는 과정이 시작되면 전쟁용 무기인 핵을 해체하는 과정도 시작되고, 관계를 정상화하는 과정도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미국과 북한이 서로 만족할 만한 수준의 조치들을 취해감에 따라 신뢰가 쌓이고, 궁극적으로는 종전 과정의 끝을 선언하면서 바로 평화체제 수립의 단계로 들어갈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종전이 시작되었으므로 김정은 위원장은 핵폐기의 명분이 생기고, 종전이 완벽하게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 국내의 우려도 상당히 불식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종전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과, 종전 과정의 끝을 알리는 선언, 그리고 평화체제 및 관계정상화를 향한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로드맵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대안이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 외교가 종전선언을 놓고 미국의 선처만을 호소할 수는 없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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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걱정이 많다. 완전한 비핵화 협상이 제대로 타결될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또한 회담이 열리더라도 성과가 나올지 불확실한 탓이다. 게다가 회담 성과가 좋더라도 추후 제대로 이행될지 안심할 수 없다. 충분히 우려할 만하다. 근거도 있다. 70년간 분단된 남북이 그 시간 동안 서로 대립하고 갈등을 겪었기 때문이다.

 

합리적 의심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 신중한 행동으로 시행착오를 줄이고, 결정적 실수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협상의 실패 이유는 지키지 않아도 무방하거나 손해가 적었기 때문이다. 북한의 약속 위반에 대해 국제기구는 제재를 강화했다. 상호 감내할 만한 수준의 이러한 흐름이 장기간 반복, 순환됐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북한의 핵보유 위협이 국제사회를 실질적으로 위협하고, 북한에 대한 제재로 북한의 경제 취약성도 커졌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협상 성공의 시급한 여건이 형성됐다.

 

미국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오전 워싱턴 백악관 영빈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왼쪽),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가운데)과 만나 대화하고 있다. 워싱턴 _ 연합뉴스

 

상호 윈윈(win-win)의 내용이라면 국제사회와 북한이 마다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상호 혜택의 폭이 클수록 성공 가능성도 커진다. 완전한 비핵화는 표면상 북한에 불리해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북한이 핵을 필요로 하지 않을 정도로 많은 혜택을 누리고 경제 성장의 가능성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국제사회의 핵 불안이 감소한다는 점에서 모두에게 유리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 성공으로 미국 내외에서 얻게 될 긍정적 평가는 외면하기 어려운 막대한 보너스다. 그래서 북·미 모두에 충분히 매력적인 협상이다.

 

역사의 진보는 걱정과 협상의 조화로 이루어졌다. 상대를 의심만 하면 다음 협상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어떤 의심도 완전히 해소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걱정하지 말 것을 요구해서도 안된다. 걱정 없는 협상은 흔히 실수와 실패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선택할 것은 충분히 우려하면서 협상하는 것이다. 그럴 때 협상에서 실수와 실패를 줄이고 신뢰와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북·미 정상회담의 목표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다.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공감했다. 협상의 관건은 방법이다. 선 폐기, 후 제제해제 또는 폐기와 제재해제의 동시 진행 등이 논의된다. 갈등의 여지가 있다. 이유는 신뢰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북한과 미국 모두 서로를 믿기 어렵다. 걱정만 하면 현 상태가 지속된다. 걱정하지 않고 협상하면 실패의 역사가 반복된다. 그렇다면 걱정과 협상의 병행이 요구된다. 걱정한 내용을 협상에 반영하는 것. 걱정한 내용을 국제기구나 주변국이 보증하는 것. 사고에 대한 걱정을 해결하는 보험 시스템, 계약의 불안감을 줄여주는 담보 시스템의 활용 등.

 

물론 양측 다 속을 것을 걱정해서 계약서에 서명할 것을 주저한다. 일상생활의 경험에서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현대사회는 신용사회다. 약속 위반자와 사기꾼은 적발되고, 비난받고, 처벌받는다. 그 피해가 이익보다 크므로 약속을 지키려 한다. 국제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약속 이행으로 큰 도움을 얻는다면 약속을 지키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와 주변국의 역할이 크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가져오고, 북한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여 북한의 핵보유 필요성이 없도록 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모두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진로 | 영산대 교수·정치평론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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