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북·미 정상 공동선언을 역사적 의미나 상징성을 제외한 ‘북핵 협상’이라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논의해야 할 의제의 순서를 바꾸기로 합의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싱가포르 공동선언은 신뢰구축을 통해 북·미 간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고,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 노력하면서 그 결과물로 비핵화에 이르게 한다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진전시키면 이에 상응하는 경제·정치적 조치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왔던 그동안의 ‘선(先) 비핵화’ 논의 구조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은 2008년 12월 6자회담이 중단된 이후 북한이 줄곧 요구해왔던 것이었다.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좋은 합의를 해도 이행이 안된다는 것이 증명됐으니 비핵화보다 신뢰구축을 통한 평화체제 논의를 먼저 해보자는 주장이었다. 북한은 2010년 1월11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이 같은 제안을 공식화했다. 당시 북한은 성명에서 “조선반도 비핵화 과정을 다시 궤도 위에 올려세우기 위해서는 조·미 사이의 신뢰를 조성하는 데 선차적인 주목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 우리가 도달한 결론”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조·미 사이에 신뢰를 조성하자면 적대관계의 근원인 전쟁상태를 종식시키기 위한 평화협정부터 체결되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지금 주장도 8년 전 이 성명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이에 대해 한·미는 ‘비핵화 논의가 상당히 진행되어 궤도에 오르고, 평화체제 논의를 시작해도 비핵화 진행이 방해받지 않는 상태에 이르면 평화체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기본 입장을 유지해왔다. 그런데 싱가포르 합의에서 미국은 비핵화보다 신뢰구축을 앞세워야 한다는 북한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북한의 입장에서 싱가포르 합의는 외교적 승리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싱가포르 합의를 ‘독특한 방식’이라고 표현하면서 “훌륭한 결실을 맺을 것”이라고 한 것은 비핵화보다 신뢰구축과 평화체제 논의를 먼저 하기로 한 약속을 잊지 말라는 의미다.

 

그러나 싱가포르 합의 이후 진행되는 상황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은 여전히 북한에 의미 있는 비핵화 조치를 먼저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의 이 같은 태도는 약속 위반이다. 지난달 7일 북한 외무성이 평양을 방문했다가 돌아가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뒤통수에 대고 “싱가포르 수뇌상봉과 회담의 정신에 배치되게 CVID요, 신고요, 검증이요 하면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을 들고나왔다”고 거칠게 쏘아붙인 것도 이 때문이다. 신뢰구축 조치를 비핵화보다 앞세우기로 한 ‘조·미 수뇌분들의 약속’을 미국이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합의를 할 때 북한의 요구를 ‘통 크게’ 수용하고 새로운 협상의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보기로 결정했다가 나중에 생각이 바뀐 것인지, 아니면 협상 방식의 변화가 갖는 의미를 간과한 채 합의를 한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함으로써 북한이 비난할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 평화구축 작업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비핵화가 먼저냐 신뢰구축이 먼저냐’의 논쟁이 아니다. 이 같은 논쟁은 현재 한반도 현실 앞에서는 의미가 없다. 비핵화와 신뢰구축은 선후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꼬리를 물고 있는 순환적 관계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상호 신뢰를 먼저 쌓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북한에 대한 미국의 신뢰는 비핵화 진전이 있어야만 생긴다. 애초부터 미국이 북한과 협상을 시작한 이유도 북한의 핵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북한이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종전선언 문제만 봐도, 신뢰구축과 비핵화가 동전의 앞뒷면 같은 관계임을 알 수 있다. 북한은 종전선언이 신뢰구축을 위한 선차적 요소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북한이 종전선언을 강하게 주장하면 할수록 미국의 비핵화 요구도 강해진다.

 

북한의 핵능력이 고도화된 지금 ‘선 비핵화’를 내세운 협상은 가능하지 않다. 또한 북한 핵미사일이 미국의 직접적인 안보위협으로 떠오른 상태에서 핵문제를 그대로 두고 북·미 간 신뢰를 조성하겠다는 것도 비현실적 발상이다. 결국 비핵화와 평화체제 논의를 낮은 단계부터 병행추진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 외에는 다른 해법이 없다. 국제정세와 동북아시아 역학 구도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응축된 북핵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한반도 평화정착은 매우 길고 험난한 여정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해야 할 시점이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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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스바흐와 배스케즈는 개별국가의 제안이나 요구가 글로벌 의제로 등장하기 위해서는 그 의제가 강대국에 아주 중요한 문제로 인식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 과정을 의제정치(agenda politics)로 명명했다. 북한 비핵화에 앞서 종전선언과 평화체제 문제가 미국, 중국에 주요 의제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종전선언의 주체로 휴전협정 당사국인 중국을 포함시킬 것인가를 두고 이해 당사국들 간 밀고 당기는 물밑 외교전이 치열하다.

 

평화협정이 결혼식이라면 종전선언은 약혼식이다. 연내까지 종전선언을 하겠다고 천명했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약혼식이 여차하면 무산될 기미도 보인다. 그렇다면 결혼식도 장담하기가 어려운 것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다. 사실 ‘전쟁이 끝났다’는 종전선언은 하지 않아도 된다. ‘전쟁을 끝내자’는 평화선언이 적확하다. 미래 어느 시점에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참여하는 4자체제의 평화협정만 체결되면 그것으로 족하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오른쪽)과 리선권 북측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13일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진행된 남북 고위급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회담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북한이 미국에 평화협정을 체결하자고 처음 제시한 때는 1974년 3월 최고인민회의 5기 3차 회의에서 채택된 ‘미국 의회에 보내는 편지’에서였다. 내용을 보면 당시 북한은 닉슨 독트린 발표(1969) 이후 주한 7사단 철수와 닉슨의 방중(1972) 및 일본·중공 국교수립(1972), 그리고 미국이 월맹과 파리평화협정 체결(1973)에 따라 베트남 주둔 미군을 철수한 후 베트남이 공산화된 것 등에 고무됐다.

 

이후 북한은 1984년 1월에 ‘남북불가침공동선언 및 대미 평화협정의 동시 체결’이라는 3자회담을 제시했다. 이는 베트남 문제 해결을 위한 파리회담 방식을 원용한 것으로 북한이 미국과 회담의 주당사자가 되어 평화협정 문제를 처리하고 그 과정에서 ‘종속적 당사자’인 한국과는 불가침 체결로 돌파하겠다는 책략이었다. 이에 대해 노태우 대통령은 1988년 10월 유엔총회에서 정전협정을 항구적 평화체제로 대체하는 문제를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평화협정에 대한 한국 정부 최초의 공식제안이었다.

 

북한이 종전선언에 집착하는 이유 중 하나는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과 무관치 않다. 정부는 주한미군 철수 여부는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른 동맹의 문제로 종전선언과 무관한 것으로 선을 그었지만 북한이 현상타파 차원에서 종전선언 후 끈질기게 이를 문제 삼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분담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등이 여의치 않을 경우 미군 철수를 고려할 수 있다고 언급한 사실을 북한이 잊을 리가 없다.

 

여기에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지난 9일 이란에 가서 ‘핵 지식은 보존하겠다’고 했다. 이는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 해체 이외에 6·12 북·미 공동합의문 4항 미군 유해 일부를 송환했으니 선행 조항인 새로운 북·미관계의 수립(1항)과 평화체제 구축(2항)을 미국이 준수하라는 압박차원의 대미(對美) 메시지로 해석됐다. 그럼에도 핵 지식 보존 운운은 해서는 안될 이야기였다. 민감한 시점에 고위 당국자가 할 말 못할 말을 모두 내뱉을 경우 신뢰구축은 불가능하다.

 

이쯤에서 정리하자. 중국을 포함하는 4자 형태의 종전선언이 금상첨화지만 미국의 중국 견제가 만만치 않다면 차선책으로 북한과 미국 간 양자 종전선언도 고려해봄 직하다. 북한의 등거리 외교노선을 감안하면 김정은이 중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다. 관건은 미국이 중국의 대체재가 될 수 있음을 어떻게 선명하게 보여주느냐에 달려있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면 종전선언을 없던 일로 하는 것이다. 신뢰구축 후 군축을 하고서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이 통상적인 평화체제 순서이기 때문이다.

 

서울, 평양, 워싱턴 모두 조바심이 나있다. 북·미는 비핵화라는 같은 책을 갖고 서로 다른 쪽만 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서둘러 북·미가 같은 쪽을 보도록 유도해야 한다. 미국의 11월 중간선거를 감안하면 시간이 많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합의문에 따라 과감하게 톱다운 조치를 취하는 게 꼬일 때로 꼬인 매듭을 푸는 최선의 방법인 듯하다.

 

<이병철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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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지 한 달이 됐다. 한국전쟁 이후 68년간 적대관계를 벗어나지 못했던 북·미의 정상이 처음으로 만나 새로운 관계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비핵화에 합의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의 시대를 여는 ‘세기의 회담’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1개월이 지난 현재 국면은 기대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듯하다. 후속협상에서 ‘비핵화 일정표’ 같은 성과물이 나오지 않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의 ‘선의’를 믿고 성급하게 나섰던 것 아니냐는 비판도 일고 있다. 특히 지난 6~7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 결과가 미국 언론들의 혹평을 받았고, 미 의회에서는 한·미 연합훈련 카드를 다시 꺼내라는 강경론이 불거졌다. 북한은 북한대로 미국이 “강도 같은 비핵화 요구”만을 했다고 비판했다. 북한은 폼페이오가 ‘비핵화’ 요구만 내놨을 뿐 종전선언 등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방안을 내놓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았다. 이런 흐름을 보면 ‘이번에도 또 잘 안되는 것 아니냐’는 비관론에 빠질 수도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오른쪽)이 7일(현지시간) 이틀 간에 걸친 고위급 회담을 마치고 북한을 떠나기 직전 평양 순안국제공항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이 시점에서 북·미 공동성명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공동성명의 첫번째 항목은 새로운 북·미관계의 수립, 두번째가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이고, ‘한반도의 비핵화’는 세번째에 배치돼 있다. 북·미 정상이 서명해 전 세계에 공개한 공동성명이 이런 순서로 구성돼 있다면 후속협상에서도 각 항목에 최소한 동등한 무게감을 갖고 다룰 필요가 있다. 비핵화에 대한 상응조치로 최소한 종전선언을 해야 한다는 북한의 문제 제기는 이유가 있는 셈이다. 종전선언은 잠정적인 대북 안전보장책이자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을 위한 예비조치의 성격이 있는 만큼 북한이 비핵화로 나서는 발걸음을 가볍게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싱가포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이 되는 올해 종전을 선언하는 것이 목표”라며 연내 종전선언 추진에 나선 것은 시의적절하다. 미국도 그간 종전선언에 찬성 입장을 표명해온 만큼 더 이상 미룰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북한도 비핵화 문제에서 국제 사회의 의구심을 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협상의 교착을 풀기 위해 북·미에 지금 필요한 것은 ‘역지사지’의 자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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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간 6~7일 평양 고위급회담에서 비핵화에 대한 양측의 이견이 드러났다. 미국은 비핵화 로드맵과 검증 문제에서 합의 도출을 추진했으나 북한은 단계적·동시적 접근법을 고수함으로써 원만한 성과를 내지 못했다. 6·12 북·미 정상회담의 후속으로 열린 이번 회담에서 양측이 핵심 사안인 비핵화에서 중대한 진전을 이루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쉽다.

 

실제로 이번 회담에 대한 평가는 높지 않다. 폼페이오 장관은 회담 후 기자들에게 “우리는 비핵화 등 거의 모든 핵심 이슈에 대해 진전을 이뤘다”고 자평했다. 그렇지만 폼페이오 장관은 구체적인 성과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을 자제했다. 이에 대해 미국에서는 언론을 중심으로 비핵화 시간표를 마련하지 못했다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오른쪽)이 7일(현지시간) 이틀 간에 걸친 고위급 회담을 마치고 북한을 떠나기 직전 평양 순안국제공항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회담 직후 북한 외무성이 미국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한 비핵화’(CVID) 요구를 비판하는 담화를 낸 것도 좋은 신호라고 볼 수 없다. 향후 협상에서 유리한 입장을 차지하기 위한 회담 전략의 의도도 있겠지만 비핵화 방식에 대해 북·미의 입장 차가 큰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가급적 빨리 비핵화 달성과 한반도 평화 구축을 염원하는 한국 입장에서 보면 실망스러운 결과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은 이제 막 시작됐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북·미는 비핵화 협상에서 최고지도자들이 원칙적 합의를 하고 이어 고위급과 실무그룹이 구체적인 로드맵을 마련하는 이른바 ‘톱다운’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는 실무협상에서 비핵화 로드맵을 만들어 정상들의 추인을 받아 이행하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자연 로드맵 마련에 진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협상은 이견을 좁히고 양보함으로써 현실적인 방안을 찾아내는 것이다. 양측이 비핵화라는 목표에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협상 과정에서 드러나게 마련인 이견을 지나치게 의식할 필요는 없다. 폼페이오 장관이 “비핵화를 핵무기와 미사일을 망라해 광범위하게 정의한다”면서 “북한도 이를 이해하고 있으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고 밝힌 것도 주목된다.

 

이런 점에서 미국이 신봉하는 CVID가 과연 유일무이한 방안인지 따져볼 때가 되었다. 일방적인 ‘핵무장 해제’를 요구해 북한의 거부감이 심한 방안이기 때문이다. 마침 이번에 북한도 구체적인 자체 안을 제시한 만큼 미국이 이를 진지하게 검토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이라는 최종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면 그게 어느 쪽이 낸 방안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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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보 당국과 언론이 최근 잇따라 북한의 비밀 핵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 재료인 농축우라늄 생산을 늘리고 있다거나 핵탄두 및 핵관련 시설의 숫자를 줄여 신고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2010년부터 영변 외 제3의 장소에서 대규모 지하 우라늄 농축 시설을 가동해왔다는 보도도 나왔다. 북·미 정상회담 후 소강상태였던 비핵화 협상이 막 재개된 시점에 왜 이런 의혹들이 쏟아져 나오는지 이해할 수 없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오는 5일부터 7일까지 2박3일간 북한을 방문, 6·12 북미정상회담에 이은 후속 비핵화 협상을 한다고 미국 정부가 2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한 지 23일만에 북미 간 고위급 회담이 열리는 것으로, 양국이 합의한 '완전한 비핵화' 프로세스가 급물살을 탈 지 주목된다. 사진은 지난달 28일 폼페이오 장관이 워싱턴 국무부에서 '2018년 인신매매보고서'를 발표하는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이런 의혹은 대부분 근거가 미흡한 것들이다. 미국의 정보기관이 북한의 ‘강성’ 지역에서 2010년부터 대규모 지하 우라늄 농축시설을 가동해왔다고 보고 있다는 워싱턴포스트 보도가 대표적이다. 이 신문은 어떤 정보기관이 그 같은 정보를 갖고 있는지 취재원을 밝히지 않았다. 미국방정보국(DIA)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량을 65개 정도로 추산하고 있으며, 북한이 미국 정부를 속이고 이보다 훨씬 적게 신고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이 신문의 또 다른 보도도 문제가 많다. 북한 핵무기가 65개로 매우 많은 것으로 추산하지만 맞는지 알 수 없는 데다 신고도 하기 전에 축소신고를 할 것이라고 예단하며 북한에 대한 의심을 부추겼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와 핵관련 성실신고 여부는 국제사회 사찰과 신고, 폐기, 검증으로 이어지는 비핵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과거 미국에서는 북핵 문제가 해결 국면을 맞을 때마다 비밀 핵 의혹이 등장했다. 1990년대 초반의 플루토늄 축소신고 의혹이나 1998년 금창리 핵 의혹 시설 논란, 2002년의 고농축 우라늄(HEU) 논란이 대표적이다. 이로 인해 북·미 비핵화 협상은 모두 무산됐다. 하지만 추후 이들 의혹은 미국의 대북 강경파에 의한 거짓 정보로 밝혀지거나 실체가 불분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점에서 현재 미국에서 제기되는 의혹들의 배경과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비핵화 협상은 중대 국면을 맞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금명간 방북해 북측과 북·미 정상회담의 후속협상을 벌일 예정이다. 정상회담에서는 큰 틀의 원칙만 합의했기 때문에 본격적인 협상은 사실상 지금부터라고 볼 수 있다. 비핵화 로드맵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변수를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실체가 불분명한 의혹들 때문에 비핵화의 기조가 흔들려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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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미국의 비핵화 협상이 3주 만에 재개됐다. 성 김 필리핀 주재 미국대사와 북측 인사가 지난 1일부터 판문점에서 만나 비핵화 후속 조치들을 협의하고 있다. 오는 6일에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이 예정돼 있다.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소강상태였던 북·미대화가 재가동된 것이다. 지난 20일간의 북·미대화 공백은 비핵화 협상의 불안정성을 잘 보여준다. 비핵화 대화가 끊긴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비핵화 의지에 대한 의구심이 커진 것이 이를 증명한다. 특히 북한의 소극적인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북·미 사이에 미군 유해 송환 작업이 진행되고, 남북 간에는 이산가족 상봉 개최 합의 등 4·27 판문점선언이 이행되고 있었지만 정작 본질적 사안인 비핵화 프로세스와 관련해서는 가시적인 후속 움직임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1일 판문점에서 북측 인사를 만난 성 김 주필리핀 미국대사(왼쪽)가 2일 오전 숙소인 서울 종로 포시즌스호텔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대북 강경파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이 북한 핵프로그램을 1년 내에 해체하는 방안을 고안했다면서 북한의 결단을 촉구하고 나서 그 배경에 의심이 간다. 볼턴은 리비아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국가들의 핵폐기 작업에도 수년의 시간이 걸린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북한은 리비아의 무조건적인 핵폐기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왔다. 상황이 이런데도 몰아붙이는 태도가 걱정스럽다. 그의 발언은 미국의 공식 입장이 무엇인지 헷갈리게 한다. 폼페이오 장관은 당초 2020년까지 비핵화 완성을 목표치로 제시했다가 최근 구체적인 시간표를 설정하지 않겠다고 한발 물러선 바 있다. 폼페이오와 볼턴이 북한에 대해 강온병행 전략을 구사하는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미국의 대북정책이 조율되지 않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가 확인된 이상 굳이 이런 자세를 드러내야 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 북·미 사이에는 무엇보다 일관된 입장과 언행일치의 태도가 요구된다.

 

비핵화 대화의 왕도는 없다. 하지만 합의 번복이나 무산의 경험이 많은 북·미 사이에는 합의 이행은 물론 후속 협상의 속도와 방법도 매우 중요하다. 상호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에 대화의 공백기간이 길어지면 동력이 약화되고, 반대로 너무 서둘러도 낭패를 볼 수 있다. 서로 동시적·단계적 행동을 주고받으면서 대화를 차곡차곡 진전시키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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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29일 북한은 미국 동부를 타격할 수 있는 실질적 사거리 능력을 확보한 화성-15 ICBM의 시험비행에 성공했다. 북한은 단거리전술미사일부터 장거리미사일까지 모든 유형의 탄도미사일 개발을 완료하며 핵보유국임을 선언했다. 작년 내내 북한 핵미사일 위협이 고도화됨에 따라 우리 군은 대응체계로 ‘한국형 3축 체계’ 구축을 서둘렀고 관련 예산도 급증했다. 3축 체계는 북한 핵미사일의 공격징후를 포착하여 선제타격하는 ‘킬 체인’(Kill-Chain), 북의 핵미사일을 요격하는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 그리고 핵미사일 공격 시 지휘부 및 핵심시설 등을 무력화하는 대량응징보복(KMPR) 작전개념으로 구성된다.

 

정부는 올해 들어 남북관계의 변화, 종전선언, 평화체계 구축 및 북한 비핵화 등의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하에 기존의 국방개혁 2.0(안)을 재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의 국방개혁 2.0(안)은 북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3축 체계와 공세적 작전개념 수립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한반도 안보환경의 변화는 위협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유도하고 이는 곧 군사전략 및 전술의 변경을 요구한다. 따라서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응체계인 한국형 3축 체계도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그동안 한국형 3축 체계는 천문학적인 예산 소요에 비해 군사적 실용성은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평가되어왔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 오찬 후 호텔 주변을 산책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비핵화는 아직 시작도 못한 상황이다. 미국은 한편으로 한·미 연합훈련을 유예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각종 제재는 풀지 않으며 북한의 실체적인 비핵화 프로세스를 유도하고 있다. 아직은 북한 핵미사일 위협이 상존한다는 의미다. 현재까지 비핵화를 추진한 리비아 등의 모델이 거론되지만 실제 북한의 비핵화는 이들 국가와 차원이 다르다. 북한은 이미 6차례의 핵실험과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다양한 미사일을 개발 완료했기 때문이다. 실제 단계적으로 핵탄두, 핵물질, 핵시설, 기술과 인력의 완전한 폐기 및 검증 등의 비핵화를 시행하는 데 최소 2년에서 10년 이상이 소요될 수도 있다.

 

북·미 정상회담 후 트럼프는 북한이 이른 시일 내에 동창리 서해발사장의 액체엔진시험시설을 파괴할 것이고, 이는 곧 비핵화의 시작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사거리 1만㎞를 넘는 ICBM용 쌍둥이엔진 백두산을 개발한 북한으로서는 더 이상 엔진연소시험시설이 불필요할 것이다. 시설 파괴 후라도 지상연소시험시설이 필요하면 1~2개월 내에 이러한 시험시설을 구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기술적 측면에서 보면 액체엔진시험시설 파괴를 비핵화의 상징적 행위로 간주할 수 있으나 비핵화 프로세스를 시작한 것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북한의 비핵화 프로세스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남북의 전력 및 군 구조 변화가 필수적으로 논의될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와 같이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에서 핵미사일 대응체계인 3축 체계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 군과 정부는 향후에 전개될 수 있는 남북관계의 개선 및 악화를 모두 고려한 두 가지 트랙의 국방정책을 입안할 필요가 있다.

3축 체계 중 킬 체인은 광역감시자산의 제한과 핵미사일의 명확한 발사징후 식별이 기술적으로 어려워 성공확률이 극히 낮다. 투자 대비 군사적 효용성도 낮다. 공격개념의 작전이기 때문에 정치외교적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KMPR의 경우도 공세적 개념의 작전을 수행하기 때문에 다양한 정보전력과 특수전력을 갖추지 못하면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한편, KAMD는 핵미사일뿐만 아니라 재래식탄두의 미사일 공격에 대한 요격이 가능하고 동북아 환경에서 독자적인 전력구조로서 반드시 필요한 체계이다. 이러한 장단점을 파악하여 남북관계의 개선 및 악화 시에 대해 각각의 3축 체계 개념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현 정부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비한 3축 체계를 조기 구축하고 이를 연계해 임기 내 전작권을 전환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현 정부도 이전 정부의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 정책을 그대로 계승하여 전작권 전환에서 스스로 발목을 잡는 상황을 연출했다. 왜냐하면, 전작권 전환의 충족조건인 어떤 전력을 어느 수준까지 구축했을 때 전작권을 전환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설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핵화와 평화체제 논의가 진전되면 한국형 3축 체계를 변경하고 이에 따라 전작권 전환의 선결조건을 수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3축 체계 및 전작권 전환 검증위원회’를 구성하여 두 가지 트랙에서 3축 체계 변경 및 전작권 전환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장영근 | 한국항공대 항공우주기계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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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비핵화 퍼즐의 답을 찾은 것 같다.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 요구를 부분 수용하고, 종전선언을 시사했다. 불신이 팽배한 북·미관계를 고려하면 먼저 비핵화하면 보상한다는 미국의 구상은 비현실적이었다. 비핵화와 체제보장의 교환은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단계별로 이행사항을 결정하고 실천하는 게 합리적이다. 종전선언은 북 체제보장의 첫번째 절차에 해당한다. 미국의 추가 대북 제재 유예 조치도 평가할 만하다. 북한의 핵 및 미사일 시험 중지와 맞물려 생각하면 양측은 낮은 단계의 모라토리엄을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비로소 북·미 사이에 정상적인 토론과 협상이 가능한 무대가 마련된 셈이다.

 

6·12 북·미 정상회담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비핵화를 넘어 분단·냉전 구조 해체와 평화 정착 등 한반도의 미래와 우리의 운명이 걸려 있다. 통상의 국제회담은 깨져도 관련국 간의 일시적인 관계 경색 정도에 그친다. 하지만 이번 회담은 실패 시 군사긴장 고조로 이어지고 전쟁으로 비화될 수 있다. 그럼에도 세기의 회담을 대하는 미국의 태도는 진지하지 않았다. 협상 타결을 위한 협의가 아니라 일방적 항복 요구나 다름없었다. 패전국 다루듯 하는 미국 강경파들에 대한 북한의 반발로 회담은 한 차례 취소 사태를 겪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1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대남담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악수하고 있다. 워싱턴 _ AP연합뉴스

 

트럼프의 정책 전환은 미국 사회 주류의 완고한 반북정서와의 투쟁 속에서 나온 것이어서 값지다. 그들은 북한이 체제유지의 수단인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은 체제모순으로 붕괴할 것이기 때문에 대화와 협상을 할 필요가 없다고도 본다. 심지어 빌 클린턴 같은 대화파도 처음에는 북한 붕괴론을 철석같이 믿었다. 북한에 대한 경수로 제공을 의회가 반대하자 “경수로 완성 시점에 북한 정권은 사라질 테니 걱정 말고 투자하자”고 설득할 정도였다.

 

현재까지 트럼프의 노력은 성공적이다. 대북 강경파 존 볼턴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 그 증표다. 중대한 외교이벤트가 진행 중인데, 이를 총괄해야 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침묵을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트럼프가 입을 막은 것이다. 그와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트럼프가 김영철을 면담하는 자리에도 배석하지 않았다. 북한 입장에서는 트럼프가 자신들을 대화 상대로 존중한다고 믿을 만한 사례일 것이다.

 

그간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둘러싼 문제제기들은 상식선을 넘은 게 많았다. 북한이 핵무기 일부를 은폐할 것이라는 발상부터 우습다. 핵은 보유 사실을 공개해야 효과를 발휘하는 정치무기, 외교무기다. 예컨대 이스라엘은 공식적인 핵보유국은 아니지만 필요할 때마다 보유국임을 시사한다. 김정은이 직접 나선 회담을 국제사기극으로 몰고 가는 행태는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정말 북한이 신격화하는 지도자의 권위를 훼손하면서까지 외교사기를 칠 수 있다고 보는 건가. 북한 입장에서 이번 회담은 외무성 관리들이 맡았던 기왕의 회담과는 성격 자체가 다르다. 절대 권력자가 나선 만큼 반드시 개최돼야 하고, 실패해서도 안되는 회담이다. 체제의 생존은 물론 회담 종사자들의 안위까지 걸려 있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의 방향 전환이 과연 북한의 이런 속사정까지 파악한 뒤에 나온 결정인지는 알 수 없다. 어찌됐든 그의 결단이 한반도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대단히 소중하다는 사실만큼은 변할 수 없다.

 

하지만 아직 낙관은 금물이다. 북·미 정상회담 성사 이후 미 주류세력의 공격은 더욱 거세졌다. 언론과 보수세력의 공격 목표는 북한에서 트럼프로 바뀌었다. “트럼프가 북한에서 양보를 얻어내기도 전에 북한의 선전전에 승리를 안겼다”(뉴욕타임스)는 식이다. 북한이 아무런 비핵화 양보 조치를 하지 않았는데도 대북 제재의 끈을 늦추고 관계 개선을 지향하는 제스처를 보였다는 비난이다. 그럼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하고 억류 미국인 3명을 석방한 것은 뭐라고 봐야 하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도 트럼프 공격에 가세했다. 한국 보수가 미국은 무오류의 국가, 미국 대통령은 무비판 대상이라는 금기까지 깨는 것을 보니 북·미 정상회담은 성공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트럼프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두 장의 사진이 눈길을 끈다. 2000년 클린턴과 조명록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그리고 4일 트럼프와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함께 찍은 사진이다. 클린턴과 조명록은 북·미 수교를 담은 공동코뮈니케를 도출했지만 이후 북·미관계는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의 집요한 방해로 공전하다 뒤이어 등장한 조지 부시 정권의 대북 강경책으로 파국을 맞았다. 이번 회담은 그때와 다르고, 또 달라져야 한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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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을 열고 6월 북·미 정상회담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문 대통령은 회담에서 “북한의 의지를 의심할 필요가 없으며 북·미 간 실질적·구체적 비핵화와 체제안전에 대한 협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수용하면 정권안전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경색된 비핵화 정세 속에서 나온 두 정상의 발언에 주목한다. 마침 북한도 태도를 바꿔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를 취재할 남측 취재단의 방북을 허가했다. 이를 계기로 비핵화와 남북교류 시계가 다시 작동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환하게 웃으며 대화하고 있다. 워싱턴 _ 연합뉴스

 

물론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미 정상회담을 둘러싼 우려가 완전히 해소될 것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그러기에는 트럼프의 발언부터 모호하다. 회담에 대한 기대를 내비치면서도 취소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우리가 원하는 특정한 (비핵화) 조건들이 충족될 것으로 생각한다”면서도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으면 회담이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비핵화를 압박하기 위한 것이겠지만 회담을 코앞에 둔 시점에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트럼프 대통령이 구체적인 체제안전 보장책을 제시하지 않으면서 CVID를 거듭 천명한 것도 거슬린다. 북한이 절대적 안보자산인 핵을 포기하겠다고 나선 상황임을 고려하면 좀 더 진지하게 나설 필요가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에 대해 북한이 원하는 단계적 방안을 수용할 것처럼 시사한 것은 청신호다. “일괄타결이 바람직하다”면서도 “한꺼번에 이뤄진다는 것은 물리적인 여건으로 봤을 때 불가능할 수도 있으니 단시간에 거래가 이뤄졌으면 한다”고 밝혔다. 두 정상이 기대와 달리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의 구체적 로드맵을 깊이 있게 논의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북한의 강경한 태도로 경색된 국면을 타개하고 북·미 정상회담의 동력을 되살리는 게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목표였다. 회담 결과 북·미 정상회담의 모멘텀을 유지할 수는 있게 됐지만 성공적인 회담을 보장할 정도라고 보기는 어렵다. 향후 회담 성공을 위한 남북한, 미국의 매진이 중요한 이유다. 신뢰 기반이 취약한 남북 및 북·미관계에서는 긍정적인 자세가 대단히 중요하다. 엇갈리는 신호들 가운데 부정적인 것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긍정적인 것을 적극 살리는 실용적 태도가 필요하다. 이번에 논의되지 않았거나 미진한 대목이 있더라도 향후 협상을 통해 얼마든지 조율할 수 있다. 낙관주의가 성공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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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중단과 핵실험장 폐쇄 발표를 전 세계가 환영했지만 자유한국당만 쇼라며 평가절하했다. 홍준표 대표는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핵동결 발표를 마치 핵폐기선언 한 것처럼 호들갑 떠는 것은 2008년 영변 냉각탑 폭파쇼를 연상시킵니다. 남북평화쇼를 하고 있는 문 정권은 참으로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습니다.” 통상적인 아무말대잔치나 독설을 넘어서는 위험수위 발언이다. 상황 왜곡과 악의가 담겨 있다.

 

지금 한반도에는 상상을 불허하는 사변적 사건들이 연이어 전개되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 표명이 나왔고, 이를 논의할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이 잇달아 열릴 예정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중단과 핵실험장 폐쇄는 한·미 정상과의 담판 시 협상 카드로 쓸 것으로 예상했는데 회담 전에 선제적으로 양보한 것이 합리적인 상황 판단일 것이다. 국가 최고 정책결정기구인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결정한 것이니 실천력도 담보됐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지금 시점에서 비핵화를 장담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실패할 것이라고 예단하는 것은 더욱 위험한 행태다.

 

문재인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나흘 앞둔 23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남북한과 미국은 비핵화를 위해 지난 4개월여간 일관된 노력을 전개해왔다. 이 같은 노력이 없었더라면 한반도는 지금 전쟁의 광기에 휘말렸을지 모른다. 벌써 군사 충돌이 발생했을 수도 있다. 다행히 지도자들의 결단으로 비핵화 협상이 진행되면서 북한은 5개월째 핵·미사일 실험을 하지 않고 있고, 북·미 간에는 ‘말폭탄’ 대신 평화의 언어가 오가고 있다. 이 모든 게 쇼라면 차라리 쇼를 선택하고 싶다.

 

비핵화는 보수에게 위기로 작용할 것이다. 비핵화는 단순한 북핵폐기를 넘어 북한의 정상국가화 즉 외부세계와 외교관계를 맺고 교류하는 국가로의 변신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노동당 전원회의를 통해 핵·경제 병진노선에서 경제건설 총력노선으로 국가 전략을 전환한 것은 이를 위한 안배로 해석된다. 그러나 북한의 정상국가화는 남북 대결구도에 안주해온 한국 보수의 정체성을 위협할 것이다. 북한 체제는 시대착오이고 모순이기 때문에 그냥 놔둬도 스스로 붕괴할 것이라는 케케묵은 대북관 탓이다. 보수가 ‘나쁜’ 북한을 비난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과시하고 권력을 잡을 수 있었던 호시절이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착해진’ 북한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현명한 자세일 것이다. 그러지 않고 비핵화 노력을 깎아내리고, 그것도 모자라 실패할 것이라고 악담을 퍼붓는 것은 입지를 축소하게 될 것이다. 북핵 해결이 아니라 북한 붕괴를 시도하다 북핵 고도화를 방치하고 시간만 낭비한 과거에 대한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라도 달라져야 한다.

 

비핵화 프로세스의 폭풍은 동북아 질서도 근본적으로 뒤흔들 가능성이 크다. 비핵화로 인해 북한의 위협이 감소되면 한·미 동맹의 기반은 침식당할 수밖에 없다. 이는 다시 한·미동맹의 대척점에 서 있던 북한과 중국, 러시아의 정치적 입장을 재설정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한반도 정세구도가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양상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이런 변화를 가늠할 수 있는 단초적 현상은 벌써 작동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비핵화의지를 북한이 아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확실하다”고 확인해주고, 북한이 핵포기 대가로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지 않는다고 문재인 대통령이 해명해주는 현실이 그것이다. 조만간 김 위원장이 한·미 정부의 입장을 대신 해명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누구도 장담 못할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남·북·미 3국 지도자가 비핵화와 평화체제에 대한 서로의 입장을 공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핵화 3각 협의체’라고 부를 만하다. 이는 향후 비핵화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면서 ‘남·북·미 동맹’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이 같은 현실은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 개최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시사한다. 한국 보수는 여기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김 위원장은 못 믿을 테고, 문 대통령은 믿기 거북할지 모르지만 최소한 트럼프 대통령만은 믿어야 하지 않겠는가.

 

현재 한반도의 비핵화 및 평화 체제 바람은 역사가 손짓했을 때 3국의 지도자가 순응한 결과물이다. 하지만 한국 보수는 시대착오적 미망을 버리지 못한 채 역사의 전환점에서 방황하고 있다.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선 악마화된 북한 관념에서 벗어나 변화하는 북한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평가하면 된다. 현실을 부정하지 말기 바란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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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 남북 군비통제를 통한 전쟁 위협 제거. 남북 경제통합을 기초로 한 점진적 통일 지향. 실용적인 미·중·일·러 등 주변 4강 외교. 국방개혁 및 국방 문민화. 임기 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대선후보 문재인’이 내세웠던 외교안보 분야 주요 공약이다. 한국의 외교안보 환경은 강대국이나 다른 평범한 국가와 다르다.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외부 변화에 적응하고 경쟁해야 한다. 이 공약들은 국가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자 목표다. 국민들이 선거에서 문 후보를 선택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외교안보라인 인선을 발표하던 날 이 공약들을 다시 꺼내 읽어봤다. 임명된 사람들은 과연 문재인 정부의 공약을 추진할 적임자인가.

 

문재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에 임명된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햇볕정책과 평화번영정책에 대한 이론 구축 작업에 깊숙이 관여했던 저명한 국제정치학자이다. 정부와 학계 모두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문 교수는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개최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을 수행해 평양을 방문하는 등 햇볕정책의 전도사 역할을 수행했다. 사진은 통일외교안보특보에 임명된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연합뉴스

 

청와대는 국가안보실장에 정의용 전 주제네바 대사를 임명했다. 여권의 ‘원조 외교관 출신’ 인사로 오랫동안 문 대통령과 여당을 위해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에서 예우를 받아 마땅한 인물이다. 외교부 장관에는 강경화 유엔 사무총장 정책특보를 발탁했다. 유엔 사무총장 3대에 걸쳐 중용된 다자외교의 실력자다. 하지만 이 인선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지향하는 외교안보 정책을 추진해 나가기 위한 전략을 발견할 수 없다.

 

강경화 유엔 사무총장 정책특보 내정자

 

강 내정자는 외교부의 유리천장을 깬 사상 최초의 여성 장관인 데다 탁월한 실력까지 갖췄다. 더구나 그는 비(非)외무고시 출신이다. 외교부에 만연한 정치권 줄서기와 파벌, 순혈주의에 강한 충격을 줄 수 있는 인물이다. 대중들은 그를 외교장관에 임명한 것에 열광하고 있다. 그 하나만으로도 이번 외교안보라인 인선 전체를 ‘잘했다’고 평가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강 내정자는 지금 한국 외교가 맞닥뜨리고 있는 위기 상황과는 상관 없는 업무를 해온 인물이다. 유엔 업무는 한 나라의 생존전략을 다루는 개별 국가의 외교와 다르다. 그는 한국에 사활적 문제인 북핵과 한반도 정세에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중·일·러 등 주요국과의 양자 업무 등을 해본 적이 없다. 10년 이상 한국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국내 환경에도 익숙지 않다.

 

강 내정자는 훌륭한 외교관이다. 하지만 적재(適材)를 적소(適所)에 쓰는 것만이 인사의 전부는 아니다. 얼마나 적시(適時)에 기용하느냐도 매우 중요하다. 핵·미사일 능력을 극도로 키우고 있는 북한과는 아무런 긴장관리 장치가 없고, 중국·일본과의 관계는 최악의 상태에 빠져 있으며, 외교안보를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미국에 한·미동맹을 위협하는 언사를 일삼는 예측불허의 대통령이 앉아 있는 엄혹한 시기는 그를 외교장관으로 기용하기에 적절한 때가 아니다.

 

청와대는 강 내정자 인선 배경으로 다자외교에 익숙하고 국제인권분야 전문가라는 점을 들었다. 역시 납득할 수 없다. 다자외교를 잘못해서 한국 외교가 지금 이 지경이 된 것은 아니지 않은가. 또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인권 상황이 지적받는 이유는 선거 개입·언론 장악·간첩 조작·노동 탄압 같은 정부의 잘못 때문이지 외교장관이 인권에 무지해서가 아니다.

 

강 내정자 인선에 의구심을 표시하는 기자들의 질문에 청와대 측은 “외교는 장관(만)이 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컨트롤타워인 청와대가 리드하고 보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청와대 사정도 마찬가지라는 게 문제다. 정의용 신임 안보실장은 통상교섭조정관, 국제노동기구(ILO) 의장 등을 지낸 통상 전문가다. 그의 경력은 외교·통일·국방·정보 분야를 아우르며 외교안보 전략을 총괄하는 국가안보실장과는 거리가 멀다.

 

정부가 국가안보실 기능을 강화한 것은통일·외교·국방 정책을 통합관리하면서 국가전략을 지휘하는 인물이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 자리는 현역에서 물러난 지 십수년이 지난 원로 통상관료 출신에게 돌아갔다. 청와대는 이 같은 약점을 의식한 듯 2명의 외교통일안보 분야 특보를 신설했지만 문 대통령이 가장 신뢰하는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인 문정인 특보는 비상임이라 역할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홍석현 특보는 문 대통령과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동지적 관계가 아니다. 안보실 차장 인사가 남아 있지만 이들은 실무자이지 국가전략을 짜는 사람은 아니다. 도대체 누가 청와대에서 외교부를 리드하고 보완한다는 말인가.

 

다시 ‘문재인 후보의 외교안보 공약’으로 돌아가 보자. 하나하나가 모두 사력을 다한다는 각오로 매달려도 될까 말까한 중대한 사안들이며 각각 유기적으로 연결된 고차방정식이다. 매 사안마다 넓고 높게 바라보고, 세밀하게 계산하고, 거칠게 싸우고, 끈질기게 설득해야 진전을 이룰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의 외교안보라인은 목표 의식을 갖고 난제를 해결하려는 인선이 아니라 환영과 찬사를 얻기 위해 안배와 외형 관리에 치중한 인선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 훌륭한 공약들을 그대로 내팽개칠 참인가. 아직 배가 출항한 지 2주밖에 지나지 않았다. 부디 초심을 잃지 않기 바란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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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형법에 만들어진 간통죄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폐지됐다. 하지만 20여년 전에 만들어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유령처럼 죽지 않고 여전히 한반도를 떠돌고 있다. 비핵화 공동선언의 연원을 거슬러 가보자. 때는 1991년 여름과 가을 사이, 한·미 양국은 하와이에서 남한 내에 배치된 전술핵 철수와 관련해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 노태우 정부의 김종휘 청와대 안보수석과 아버지 부시 행정부의 국방차관 폴 월포위츠가 각각 대표로 나섰다. 이 회동 결과로 부시 대통령은 1991년 9월27일 남한 내의 전술핵 철수를 공식 발표했다. 노태우 정권은 같은 해 12월18일 ‘대한민국 어디에도 어떤 형태로든 핵무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핵부재를 선언했다.

북한도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핵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남북 간 실무대표접촉이 1991년 12월26일부터 31일까지 판문점에서 열렸다. 여기서 북한은 그동안 주장해오던 비핵지대화 주장을 철회하고, 우리가 마련한 비핵화 선언에 응하면서 합의에 이르게 된다. 이어서 1992년 1월20일 남한의 정원식 총리와 북한의 연형묵 총리가 서명하고 남북고위급회담 6차 회담에서 서명한 문본을 교환하면서 2월19일자로 정식 발효됐다.

그 이후 강산이 두 번이나 변했다. 하지만 변한 것은 강산만이 아니었다. 그 사이에 북한은 2006년, 2009년 그리고 2013년에 핵실험을 했다. 세 차례 핵실험을 통해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을 하지 아니한다’는 비핵화 공동선언의 첫째 조항을 보란 듯이 내팽개쳤다. 북한은 결과적으로 ‘남과 북은 핵에너지를 오직 평화적 목적에만 이용한다’와 ‘남과 북은 핵 재처리 시설과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아니한다’는 나머지 조항들도 위반했다.

2007년, 당시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한반도의 비핵화 논의를 위해 북한으로 건너가 조선반도 북한 외무성미주국 리근국장과 만났었다. (출처 : 경향DB)


하지만 우리만 동 선언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마저 비핵화 공동선언이 유효하지 않다고 선언할 경우 오히려 북한 핵무장을 공고화시킬 것이라는 주장이 정부 내에서 우세하다. 그리고 이들은 우리의 핵비확산 정책에 대한 외부의 의심과 미국 등으로부터 외교적 압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미국이 비핵화 공동선언의 이른바 ‘고스트 라이터’(ghost writer)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는 짧은 생각이다.

첫째, 우리는 이미 누더기가 된 비핵화 공동선언을 대체하는 성명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지 아니하고 동 선언만 폐기한다면 농축과 재처리를 포함하는 핵무기 물질 보유에 대한 국제사회의 의심을 충분히 살 만하다. 동시에 국민적 합의를 모은다는 차원에서 민의의 전당인 국회도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둘째, 대체할 문건에는 핵비확산에 대한 우리의 독자적인 의지가 담겨져야 함은 물론이다. 원자력 기술을 포함하는 플랜트 수출을 고려한다면 세계가 보편적으로 수용하는 기준에 맞는 비확산 관련 법들을 새롭게 제정하거나 기존의 각종 규정들도 신속하게 재정비하여야 한다. 무엇보다 오늘날 세계경제의 질서가 책임은 지지 않고 권리만을 주장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핵비확산을 위한 정책적 고려를 한층 강화하여야 한다. 이를테면 핵무기 보유는 어떠한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는 국민적 합의가 지금보다 훨씬 넓게 퍼져 나가야 한다. 핵비확산이 국제규범으로 자리 잡아가는 상황에서 우리도 하나의 운동으로서 비확산 문화 프레임을 잡아 나가야 한다. 조금씩 성숙해져 가는 시민운동이 있기에 하는 말이다.


이병철 | 평화협력원 비확산센터 소장

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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