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에 해당되는 글 29건

  1. 2018.11.14 [사설]뜬금없는 북 미사일 기지 논란, 비핵화협상 망칠 셈인가
  2. 2018.11.13 [세상읽기]트럼프의 ‘스노글로브’
  3. 2018.11.01 [사설]한·미 워킹그룹 합의, 비핵화 공조 강화의 계기 되기를
  4. 2018.10.19 [사설]교황의 방북 수락을 환영한다
  5. 2018.10.16 [세상읽기]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비핵지대
  6. 2018.10.01 [사설]‘비확산’까지 약속한 북한, 미 ‘종전선언’으로 응답해야
  7. 2018.09.28 문 대통령의 자주적 결단
  8. 2018.09.27 [사설]2차 북·미 정상회담 임박, 한반도 대전환 이정표 완성해야
  9. 2018.09.21 [정동칼럼]평양 선언문 속 ‘협상의 예술’
  10. 2018.09.17 [시론]한반도신경제가 유능한 진보다
  11. 2018.09.13 [사설]남북연락사무소 개소, 남북 넘어 북·미 간 연락도 맡기를
  12. 2018.09.12 [조호연 칼럼]연내 워싱턴-평양 연락사무소 개설을 기대한다
  13. 2018.09.11 [세상읽기]비핵화의 덫
  14. 2018.09.10 [사설]ICBM 없는 북 9·9절 열병식, 미국은 기다리기만 할 건가
  15. 2018.09.07 [사설]“트럼프 임기 내 비핵화” 공약한 김정은, 미국이 응답해야
  16. 2018.08.30 [사설]길어지는 ‘비핵화 교착’, 남북정상회담을 반전 기회로
  17. 2018.08.22 [조호연 칼럼]종전선언, 미국이 조금만 양보하면
  18. 2018.08.20 비핵화가 먼저인가, 신뢰구축이 먼저인가
  19. 2018.08.14 [세상읽기]종전선언의 종언
  20. 2018.07.13 [사설]북·미 정상회담 한 달, ‘비핵화’하려면 종전선언 필요하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가 ‘신고되지 않은 북한 : 삭간몰 미사일 운용 기지’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냈다. 북한 당국이 공식적으로 확인하지 않고 운용 중인 약 20곳의 ‘미신고(undeclared) 미사일 운용 기지’ 중 13곳을 확인했다는 내용이다.

 

CSIS는 한 민간 위성업체가 지난 3월29일 촬영한 위성사진을 근거로 들어 이같이 주장하고, 비밀 미사일 기지 중 한 곳이라며 황해북도 황주군 ‘삭간몰 기지’를 소개했다. 뉴욕타임스도 이 보고서를 인용, “위성사진은 북한이 큰 속임수를 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청와대와 군당국은 “한·미 정보당국이 이미 파악하고 있던 내용”이라며 “삭간몰 등 북한의 모든 미사일 운용지역을 한·미가 면밀히 추적 감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풀린 주장으로 북한을 비난한 보고서와 보도에 우려와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8년 11월 14일 (출처:경향신문DB)

 

CSIS 보고서는 한국 당국이 즉각 부인할 만큼 오류투성이다. 문제의 삭간몰 기지는 2016년 3월 북한이 스커드 미사일을 발사한 곳으로 군당국이 이미 정밀 감시하고 있는 대상이다. 민간에서 몰랐을 뿐 새로 밝혀진 것은 아니다. 보고서는 또 민간위성의 데이터를 근거로 이곳이 단거리 미사일뿐 아니라 중거리 미사일도 운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군사위성으로 더 자세히 관측하고 있는 당국은 이곳에서는 단거리 미사일만 운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더구나 단거리 미사일과 그 기지는 ‘신고’나 ‘폐기’ 대상도 아니다. 위성사진을 찍은 3월29일은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기도 전이다.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북한이 앞에서는 비핵화 협상에 응하면서 뒤로 핵·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계속하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과장이다. 미국과 협상하면서 왜 미사일 기지를 운용하느냐고 북한에 따지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북·미 간 신뢰가 부족한 상황에서 북한에만 무장해제하라는 주장이야말로 억지가 아닌가.

 

미국의 조야가  북한과의 협상을 앞두고 핵 신고를 압박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정확한 사실을 바탕으로 합리적 주장을 담아야 한다. 북·미 간 협상에는 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북한도 비핵화 의지를 의심받을 행동을 해서는 안되지만, 미국도 합리적 의심을 넘어서는 행동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간접적으로 비핵화 의지를 밝힌 만큼 미국도 그에 걸맞게 대응해야 한다. 1차 북핵 제네바 합의가 깨어진 데는 미국의 약속 파기도 한 요인이었다. 진정 비핵화를 바란다면 기싸움보다 북한의 선제 조치에 부응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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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간선거 유세 풍경은 마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흔드는 ‘스노글로브’(snow globe)를 연상케 했다. 트럼프가 한바탕 휘저어 놓은 의료보험, 이민, 관세, 무역, 인종, 남녀차별 등 복합적이고도 민감한 이슈들은 금세 ‘트럼프 대 반트럼프’의 이분법적 구도로 전환됐다. 스노글로브 속의 눈가루가 모두 내려앉은 현재, 트럼프는 내년 1월부터 시작될 민주당 지배의 하원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가 됐다. 트럼프의 독주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2020년 재선을 도모하는 트럼프로서는 와신상담,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사실 지난 2년 동안 공화당 주도의 의회에서 이렇다 할 견제도 없이 무소불위로 군림해 온 트럼프의 통치는 정치적 내상을 입었고, 그 결과 그의 일방적 질주는 사실상 끝났다. 의회의 승인 없이 대통령 독단으로 실행할 수 있는 중요 국가정책들은 많지 않다. 주요 정책 관련한 입법과 예산 집행에 앞서 열리는 하원 청문회는 사사건건 트럼프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될 게 분명하다. 예를 들어 당장 내년 초부터 북한,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 트럼프 일가 비즈니스 등과 관련이 있는 청문회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개최될 게 확실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전날인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파리 _ EPA연합뉴스

 

행정부 각 부처의 의회 대응전략을 놓고서 백악관의 현미경식 통제도 더욱 어렵게 됐다. 하원의 견제에 따른 트럼프의 권력 금단현상이 어떻게 진화할지 이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일촉즉발 워싱턴 정가가 정쟁(政爭)의 화약고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그 불똥이 언제, 어디로, 어떻게 튈지는 누구도 모른다. 북한도 다급해졌다. 북·미 고위급회담의 돌연 연기 배경에는 제재완화에 대한 이견도 있었겠지만 미국 의회권력의 이동을 주의 깊게 독해해야 하는 평양 수뇌부의 숨고르기와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만에 하나 김정은이 하원 권력을 넘겨준 트럼프를 오인식(misperception)하여 트럼프를 속일 경우 위기는 인화물질을 기다리는 기름이 될 것이다.

 

2003년 10월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한 북한은 15년이 지나도록 복귀는커녕 여섯 차례의 핵실험으로 핵보유국임을 국제사회에 성공적으로 각인시켰다. 통일부 장관도 북한이 핵무기를 20~60기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북한은 금년 4월 조선노동당 7기 3차 전원회의에서 채택한 결정서에서 “국가에 대한 핵위협이나 핵도발이 없는 한 핵무기를 절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며,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와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천명했다. 미국의 위협이 상존하는 한 최소한의 핵무기만 보유하겠다는 의지표명이자, 핵을 자발적으로 먼저 포기할 의사가 없음을 명백히 드러냈다. 한마디로 김정은의 핵전략은 ‘핵무기 미니멀리즘’이다.

 

북한은 핵무기 제조의 처음과 끝을 모두 섭렵한 핵무기 완성국이다. 다양한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 등으로 북한은 원하는 데이터를 확보했다. 추가 핵실험은 긴요하지 않다. 빵가게를 폐점하더라도 레시피만 갖고 있으면 언제라도 고유의 빵을 만들 수 있는 이치와 같다. 이런 까닭에 북한은 이미 공개된 핵 관련 시설들을 영구적으로 없애는 대신 이에 상응하는 대가를 미국에 끈질기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은 할아버지 때부터 시작하여 어렵사리 이룬 핵무기와 관련 시설들을 제값에 교환하고 그 대가를 자신의 정권유지에 활용하겠다는 전략적 계산을 이미 끝냈다. 이악스럽기는 해도 비합리적이지는 않다.

 

트럼프마저 비핵화를 서두르지 않겠다고 공언한 마당에 비핵화는 불확실성의 장기전에 돌입했다. 북한 비핵화가 남북관계 발전에 이르는 유일한 통로가 아니기는 해도 문재인 정부가 출범부터 높이 치켜든 비핵화 깃발은 당분간 외롭게 펄럭이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북·미 간 신뢰 에너지 역시 눈에 띄게 방전됐다. 북한이 핵무기를 신고하고 완전히 제거한들 워싱턴 매파들의 의구심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게 분명하다. 마찬가지로 트럼프는 비핵화, 제재, 레짐 체인지, 인권 등이 들어있는 스노글로브를 세차게 흔들 것이다. 안보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 대비하여 정부는 헤징(hedging)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이병철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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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가 대북 정책 조율을 강화하고 유엔 대북 제재 준수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워킹그룹(실무협의체)’을 운영하기로 했다. 미 국무부는 ‘비핵화를 위한 노력과 대북 제재 이행, 남북 협력에서의 유엔 제재 준수 문제 등에 대한 긴밀한 공조 강화’가 목적이라고 밝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워킹그룹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프로세스 전반에 대해 한·미 간 더욱 긴밀한 논의를 위한 기구”라고 성격을 규정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스티븐 비건 미 대북정책특별대표의 방한을 계기로 워킹그룹 설치가 합의됐지만 한국 측이 먼저 제의했다고 밝혔다. 워킹그룹은 이달 출범한다.

 

대북 제재를 둘러싼 한·미 간 입장차를 감안하면 워킹그룹은 반드시 필요하다. 한국은 남북관계 진전을 통해 비핵화 동력을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럽 순방 중 제재 완화를 공개적으로 언급했고, 정부는 남북 철도연결 공동조사 등을 제재 대상에서 제외할 것을 원한다. 반면 미국은 비핵화 이전에는 제재를 완화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은 최근 북한의 양묘장 현대화 사업을 지원하려는 산림청과 그룹 총수가 평양을 방문했던 대기업들과 접촉, 대북 사업 계획을 탐문했다고 한다. 지난달에는 한국 정부를 거치지 않고 국내 7개 국책·시중 은행과 접촉해 대북 제재 준수를 요청했다. 한국 입장에서는 내정 간섭이라고 볼 만한 여지가 충분하다. 미국이 한국 정부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이런 사실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한·미 이견이 실제보다 부풀려지고, 보수세력은 이를 한·미 사이의 중대 갈등으로 몰고가며 정부를 공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양국이 워킹그룹 신설에 합의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하다. 우선 한·미 간 이견이 갈등으로 번지지 않도록 관리할 수 있게 됐다. 톱다운 방식의 비핵화 작업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더 긴밀하고 빈번하게 소통할 필요도 있다. 다만 한·미 양국 모두 이 워킹그룹이 부정적으로 작동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특히 미국이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에 간섭하고 제동을 거는 통로로 이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북핵 해법을 놓고 한·미 간 입장이 항상 100% 일치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이견이 장시간 조정되지 않는다면 문제가 된다. 오는 6일 치러지는 미국의 중간선거 직후 북·미 고위급회담이 개최되는 등 북핵 해법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된다. 어느 때보다 양국 공조가 중요한 시점이다. 워킹그룹을 통해 양국의 공조가 더욱 굳건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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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이 18일 “북한으로부터 공식 방북 초청장이 오면 무조건 응답을 줄 것이고, 나는 갈 수 있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교황청을 공식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북 요청 의사를 전달받고 “문 대통령께서 전한 말씀으로도 충분하지만, 공식 초청장을 보내주면 좋겠다”며 이같이 밝혔다고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전했다. 교황이 사실상 방북을 수락한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또 “한반도에서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 중인 한국 정부의 노력을 강력히 지지한다”며 “멈추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다. 이로써 남북이 추진하는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행보가 큰 탄력을 받게 됐다. 교황의 방북 의지를 환영한다. 

 

교황과 마주앉은 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바티칸 교황청 내 서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단독 면담을 하고 있다. 바티칸 _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교황으로서는 방북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터이다. 북한에는 가톨릭 신자는 물론 진정한 의미의 종교인도 없다. 국제적으로 비난받는 북한의 열악한 인권 상황도 문제다. 따라서 교황의 방북 의사는 한반도 평화에 대한 강력한 지원 의지로 해석된다. 교황의 방북이 실현된다면 한반도 평화가 획기적으로 촉진될 수 있다. 무엇보다 현재 진행 중인 비핵화 작업을 추동하는 의미가 크다. 교황의 방북은 다른 국가 지도자의 방북과 상징성이 다르다. 김 위원장이 교황 앞에서 비핵화 뜻을 밝힌다면 비핵화 의지에 대한 세계인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평화를 주창해온 교황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지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만한 비핵화 동력은 또 없을 것이다.

 

교황의 방북은 북한의 정상국가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북한이 고립국가에서 탈피해 국제사회로 나오는 변화의 촉매제로 작용할 것이다. 또한 인권 개선과 민주화 등 북한 내부 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교황이 평양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북한 주민들과 직접 접촉함으로 인한 변화의 충격이 있더라도 이를 감수하겠다는 단안을 내렸을 터이다.

 

문 대통령과 교황의 만남에 앞서 교황청은 성베드로대성당에서 피에트로 파롤린 국무원장의 집전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특별미사’를 봉헌했다. 문 대통령도 미사에 참례한 뒤 연설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대장정의 성공을 기원하는 가톨릭 교단 전체의 축복은 상징성이 크다. ‘평화의 사도’라 불리는 교황의 방북은 비핵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을 통해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이루려는 역사적 흐름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추동력이 될 것이다. 북한은 즉각 교황에게 초청장을 보내 조속히 방북 일정을 잡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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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라는 용어의 시원은 1957년 10월 유엔 연설에서 폴란드 외무장관 아담 라파츠키가 동독, 서독,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등 중부유럽의 비핵지대(화)를 담은 일명 ‘라파츠키 플랜’에서였다. 라파츠키 자신이 ‘비핵화(denuclearization)’ 용어를 사용한 것은 아니며, 대신에 1958년 초 소련 제1외무부상이 중부유럽의 ‘비핵화’를 소련이 지지한다는 루머를 일축하는 가운데 이 용어를 사용했다. 당시 캐나다 국무차관도 라파츠키 플랜이 좌초될 것을 우려하는 내용이 담긴 비밀 전문에서 ‘비핵화’를 썼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라파츠키가 ‘비핵화’ 단어를 촉발시킨 장본인이 된 셈이다.

 

‘비핵화’ 활자가 드러난 대표적 사례는 ‘봉쇄정책의 아버지’ ‘냉전의 설계자’로 불리는 미국의 외교관이자 역사학자 조지 케넌이 프린스턴대 명예교수로 재직하면서 뉴욕타임스 1981년 10월11일자에 기고한 글이었다. 기고문 제목이 ‘비핵화’였다. 당시 미국과 소련 간 치열하게 벌인 유럽 내 핵무기 경쟁을 두고 케넌이 기고문에서 언급한 비핵화는 특정국가 내 지상 기반의 핵무기만 제거하는 것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7일 방북 직후 청와대를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그러나 이는 ‘특정 지역 내에서 국가 간 조약 또는 협약에 의해 핵무기의 생산, 보유, 배치 및 실험 등이 포괄적으로 금지된 지역’을 의미하는 비핵지대(Nuclear Weapon Free Zone)와는 결이 다른 핵무기 제거였다. ‘비핵지대’가 역내 조약 당사국들에 핵보유국(미국·러시아·중국·영국·프랑스)이 핵무기 사용과 위협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소극적 안전보장’(Negative Security Assurance)을 제공하고 있음에 반해 ‘비핵화’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처럼 조약이 아닌 정치적 선언이며 소극적 안전보장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인구가 집중된 지역을 최초로 비핵지대화한 1967년의 ‘중남미 핵무기 금지조약’의 애초 명칭도 ‘중남미 비핵화 조약’(Treaty for the Denuclearization of Latin America)이었다. 그러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권을 주장한 브라질 ‘비핵화’의 의미가 불명확하다는 이유를 내세워 명칭 변경을 요구, 현재의 이름으로 확정됐다.

 

북한 역시 남한의 핵무기 도입과 명칭에 민감했다. 북한이 핵무기 반입에 반대 입장을 처음으로 표명한 때는 1956년 11월 최고인민회의 제1기 12차 회의의 ‘조선반도 핵무기 반입 반대 결정’을 통해서였다. 이는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이승만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전술핵을 남한에 배치(1958년 1월)하기도 전에 이루어진 공세적 압박전략의 일환이었다. 1976년 비동맹 정상회담에서도 ‘조선반도 비핵지대화’를 제기했다. 이후 김일성은 1986년 6월 ‘조선반도에서의 비핵지대, 평화지대를 창설할 데 대한 제안’을 발표하고, 같은 해 9월 ‘조선반도에서의 비핵·평화를 위한 평양국제회의’에 80여개 국가 대표들을 초청, 전 세계의 비핵화를 요구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핵무기 야망을 분식하기 위한 속임수였다. 그러면서 북한은 한반도에서 사실상 미국이 핵무기를 철거하고 반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를 가지고서 접근 및 통과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는, 엄밀히 말해 한반도의 ‘비핵지대(화)’를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남북한과 미국이 마침내 종점이 북한 비핵화인지 아니면 한반도 비핵지대인지 모호한 버스에 탑승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두 번의 남북정상회담과 미증유의 북·미 정상회담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하지만 종착지도 불분명하고, 짙은 안개(사찰, 검증 등)로 시야 확보도 제대로 되지 않은 여정이 평탄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남북한을 포함한 유관 당사국들의 속내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마케팅과 선전이 다르듯, 비핵화와 비핵지대 역시 다른 개념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관련국들은 비핵화와 비핵지대 중 택일을 하고, 동시에 선택한 것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확정해야 한다. 그래야 핵무기가 없는 전경(全景)을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확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병철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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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29일 73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미국에 대한 신뢰 없이는 국가의 안전에 대한 확신이 있을 수 없으며, 그런 상태에서 우리가 일방적으로 먼저 핵무장을 해제하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리 외무상은 “비핵화를 실현하는 우리 공화국의 의지는 확고부동하다”며 “(그런데) 미국은 선 비핵화만을 주장하면서 (대북) 제재 압박 도수를 더욱 높이며 종전선언 발표까지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리 외무상은 또 “(북한은) 어떤 경우에도 핵무기와 핵기술을 이전하지 않을 것에 대해 확약했다”며 ‘비확산’도 새로이 언급했다.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면서 종전선언 등 북한의 체제보장을 위한 미국의 조치를 공개적으로 요구한 것이다.

 

리 외무상의 이날 연설은 본격적인 북·미 핵 협상을 앞두고 북한이 미국 측에 제시한 협상 조건이다. 임박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4차 방북에 맞춰 미국을 압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미국도 이제는 역지사지의 태도로 북한의 주장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동안 북·미 협상 과정을 볼 때 “(비핵화 조치에) 상응한 화답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북한의 주장은 무리가 아니다. 우선 북한의 비핵화 조치와 노선 변화에 대해 미국은 한·미 연합군사훈련 연기 이외에 딱히 양보한 것이 없다. 70년 동안이나 적대시해온 세계 최강국인 미국이 체제안전은 보장하지 않은 채 핵부터 포기하라고 한다면 북한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더구나 북·미 간에는 최소한의 신뢰조차 없다. 리 외무상이 이날 연설을 통해 ‘비확산’을 약속한 점도 주목된다.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핵무기 및 기술 확산 의심을 선제적으로 해소함으로써 미국과의 관계 진전을 바란다는 의지를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영변 핵시설 영구 동결에 더해 비확산까지 추가 확약한 것은 비핵화에 대한 또 다른 조치로 평가해야 한다.

 

다행히 북·미 간 대화가 진척되고 있는 듯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날 다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소개하며 “사랑에 빠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핵화 실행조치와 종전선언의 선후관계를 놓고 북·미가 신경전을 벌일 가능성은 상존한다. 미국 측이 11월 중간선거를 의식해 북한에 유화적인 입장만 취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기회는 다시 맞기 어렵다. 북한이 요구한 상응조치는 물론 종전선언과 제재완화이다. 미국이 ‘선 비핵화 후 제재완화’를 못박은 만큼 단시일 내에 가능한 것은 종전선언이다. 미국은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 조치의 진정성을 확인하고 연내 종전선언으로 화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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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20일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9월 평양공동선언’이 발표될 때 전 세계 언론은 온통 비핵화 문제에 관심을 쏟았지만, 사실 이번 평양공동선언은 비핵화보다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공동번영을 남북이 주도해 나갈 것임을 천명했다는 것에 더 많은 역사적 의미를 둬야 할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한반도에서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임을 선언하고 실천 방안을 명시한 군사분야 합의서를 채택했다. 사실상 ‘남북 간의 종전선언’이다. 특히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문 대통령이 15만 평양 군중에게 “나와 김 위원장은 우리 강산을 영구히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자고 확약했다”고 선언하는 장면은 70년 분단 역사에 가장 획기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한반도 안보 환경의 ‘패러다임 시프트’를 알리는 자주적 선언이라고 할 만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밤 평양 5.1 경기장에서 열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한 뒤 평양 시민들앞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평양공동선언은 문재인 정부의 진짜 목소리를 분명하게 드러낸 회심의 카드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와 대북정책에서 확실한 어젠다를 갖고 있다. 그동안 한반도 주변정세와 북한의 태도, 미국과의 관계 등을 고려해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과 이에 대응하기 위한 ‘확고한 한·미 군사동맹’은 지금까지의 한반도 안보환경에서 절대 변할 수 없는 상수였다. 문재인 정부는 국가 안위를 미국에 의존해야만 하는 이 같은 안보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리고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안보 지형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지금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북·미 비핵화 대화가 정체된 상황에서 이 같은 공동선언이 나왔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초기 ‘굴욕을 감내하면서 미국의 가랑이 밑을 긴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미국을 의식했던 것을 감안하면 실로 대담한 결정이 아닐 수 없다. 문재인 정부 내에서 남북관계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싱가포르 북·미 정상선언 이후 북·미 대화가 뒤처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미국을 기다려주기보다 남북관계를 가속화하여 북·미 비핵화 대화를 끌고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강해진 것이다.

 

문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남북관계 진전으로 비핵화를 견인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북·미 대화 정체를 아랑곳하지 않고 3차 남북정상회담과 미국이 그토록 불편해 하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설을 강행했다. 남북관계의 질적 변화로 비핵화 과정을 앞당길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이 자신감은 올해 초 대화에 나서기 시작한 김 위원장의 손을 잡아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도록 견인차 역할을 한 경험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또한 북·미 모두 되돌아갈 수 있는 단계를 이미 지났다는 판단도 과감한 행보에 힘을 실어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문제에 ‘마이 웨이’를 선언하기에 가장 부담 없는 타이밍은 북·미 비핵화 논의가 확실한 궤도에 오르고 평화체제 논의가 순항하기 시작하는 시점일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그 시점까지 기다리면 너무 늦는다고 생각한 것 같다. 어쨌든 주사위는 던져졌고 앞으로가 문제다. 남북의 구상이 순항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김 위원장의 표현대로 ‘탄탄대로도 아니고 역풍도 각오’해야 한다. 현실적으로는 아직 평양선언을 이행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탓이다.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와 남북 공동번영은 남북의 의지 외에 국제적 지지도 필요하다. 미국은 평양선언의 비핵화 방안과 북·미 대화 접점 마련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내고 있지만, 평양선언 전체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다. 미국은 앞으로도 ‘한·미가 같은 페이지를 읽고 있는지’ 끊임없이 확인하려 할 것이다. 일차적으로 북·미 비핵화 협상이 남북관계 진전을 뒷받침할 수 있을 정도로 신속히 본궤도에 오르지 못하면 한국 정부는 매우 곤란한 입장에 처할 것이다.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한·미 군사동맹이 장차 어떤 방향으로 성격 변화를 해야 하는지, 한반도 평화체제 이후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등에 대한 물음에 즉각 답할 수 있는 확실한 원칙을 지금 문재인 정부가 갖고 있는지 여부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은 김정은과 트럼프만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역시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했다. 퇴로가 없는 3자가 벌일 치열한 외교전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맹위를 떨치던 무더위가 스러지고 하루가 다르게 하늘이 높아지고 있다. 시간은 여느 때와 같이 무심하게 흐르고 있지만 지금 한반도는 운명의 변곡점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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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연휴 기간 쏟아진 미국 뉴욕발 뉴스들은 한가위 선물만큼이나 풍성하고 희망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24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머지않은 미래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두번째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며 “가까운 시일 내에 구체적인 장소와 일정이 발표될 것”이라고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공식화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머지않아 2차 정상회담의 최종 준비를 하기 위해 평양에 가게 될 것”이라며 실무 준비가 진행 중임을 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전쟁의 망령을 대담하고 새로운 평화추구로 대체하기 위해 북한과 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완전 파괴’를 경고하던 1년 전과 180도 달라진 태도였다. 북한과의 정상회담으로 ‘톱다운’ 방식의 새 합의를 도출해 비핵화를 이끌어가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가 한·미 정상회담과 유엔총회를 통해 재확인된 것이다. 3차 남북정상회담→한·미 정상회담→북·미 2차 정상회담의 흐름은 지난 몇달간 정체 상태였던 한반도 대전환 여정의 힘찬 재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북·미 2차 정상회담이 조속히 열려 한반도 대전환의 밑그림이 완성되기를 희망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오른쪽)과 리용호 북한 위무상이 26일(현지시간) 뉴욕에서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트위터 캡쳐

 

미국은 한·미 정상회담 브리핑에서 북한이 원하고 있는 종전선언을 비롯한 ‘상응조치’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두르지 않겠다”면서 ‘대북 제재 계속’을 거듭 확인한 점을 보면 성급한 낙관론은 경계할 일이다. 청와대도 “두 정상이 종전선언과 2차 북·미 정상회담의 날짜와 장소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했다”는 선에서 회담 결과를 전했다. 

 

하지만 비핵화 협상의 진전을 보여주는 움직임은 많다. 폼페이오는 지난 23일 인터뷰에서 “우리는 특정한 시설들, 특정한 무기 시스템들에 관해 이야기해왔다. 이러한 대화가 진행 중”이라고 했다. 9·19 평양공동선언에 포함된 것 이상의 비핵화 추가조치들이 꽤 구체적인 수준에서 협의되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25일(현지시간) 뉴욕에 도착한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폼페이오 장관 간의 ‘뉴욕회동’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에 올릴 ‘빅딜’ 메뉴들을 확인하는 작업이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많다. 문 대통령이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연내 종전선언 목표가 달성될 가능성이 있다”고 한 것은 일련의 상황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에서 나온 언급으로 보인다.

 

돌이켜보면 한 달 전만 하더라도 한반도 정세는 금방이라도 빗줄기를 퍼부을 듯한 짙은 먹구름 속에 휩싸여 있었다. 폼페이오의 4차 방북이 취소되고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개소일정도 미뤄지는 등 남북·북미 관계 모두 난관에 처해 있었다. 이 위기를 돌파할 수 있었던 것은 트럼프-김정은이 ‘친서외교’로 소통을 유지하고, 문 대통령과 한국 정부의 중재노력이 북·미 간 협상 모멘텀을 살려낸 덕분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문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남북 및 북·미 3각 채널이 앞으로도 작동될 것이란 점이다.

 

문 대통령은 뉴욕에서 미국 외교협회 등 주최로 열린 연설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거듭 강조했고, 종전선언을 비롯한 ‘상응조치’ 방안도 예시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제재완화를 한 뒤 북한이 약속을 어긴다면 다시 제재를 강화하면 된다”며 미국이 제재완화에 유연성을 발휘할 것을 주문했다. 종전선언 하나에도 인색했던 미국을 상대로 제재완화, 연락사무소 설치, 인도지원, 예술단 교류 같은 목록을 꺼내놓는 것은 시기상조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과감한 비핵화에 나선다면 미국도 ‘통 큰’ 상응조치로 화답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이 외교협상이다. 한반도 대전환을 이루고 새로운 북·미관계를 수립하려면 남·북·미 모두 양보와 상응조치로 ‘윈윈’하는 거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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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북한이 평양 선언문을 통하여 미국에 던진 메시지는 이것이다.

“전쟁 없는 한반도를 만든다는 의미는 남북 간에 종전을 선언한 것이다. 전쟁이 없는 한반도에서의 주한미군은 재래식 위협뿐만 아니라 핵위협으로부터도 안전하다. 그리고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유관국 전문가들의 참관하에 우선 영구적으로 폐기한다는 의미는 미국에 직접 위협을 가할 대륙간탄도탄(ICBM) 개발을 우선적으로 포기하고, 사찰, 검증을 받겠다는 의미다. 이렇게 되면 한반도와 미국에 거주하는 미국인에 대한 위협은 우선적으로 사라진다. 미국에 대한 위협을 이러한 방식으로 검증 가능하게 폐기할 터이니 이제 미국이 종전선언을 할 차례다. 미국이 종전선언을 하면 그다음 단계인 영변의 미래 핵을 검증 가능하게 폐기하겠다. 그리고 계속 평화협정과 북·미관계 정상화를 향하여 앞으로 나아가면서 현재 핵과 과거 핵까지 폐기하여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를 달성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9일 오전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한반도 전역의 전쟁 위험 해소 등을 담은 ‘9월 평양공동선언’에 서명한 뒤 합의서를 들어보이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이번 평양 선언문은 1조에서 4조에 걸쳐 남북관계, 특히 남북 간의 전쟁위험 제거와 근본적인 적대관계 방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지만, 비핵화와 관련된 5조는 행간을 읽어야 의미를 파악할 수 있게 간접적으로 기술되었다.

 

그동안 미국과 북한 간에 집요하게 줄다리기를 했던 북한의 핵신고와 미국의 종전선언에 대해서는 한 글자도 나오지 않았고, 그 의미가 포함될 수 있는 다른 말들로 문장이 처리되었다.

 

그래서 행간을 읽어보니 북한은 우선 미국과 미국민에 직접적으로 위협을 주는 것들을 검증 가능하게 폐기하겠다는 선언을 한 것으로 읽힌다. 아직 미완성 단계인 ICBM 개발과 관련된 시설을 검증 가능하게 폐기하겠다는 내용이 그것이고, 남북 간에는 종전이 되었으니 주한미군에 대해서도 위협이 사라질 것이라는 메시지도 보냈다.

 

이 메시지는 다분히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것이다. 왜냐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미국을 향한 북한의 도발을 멈춘 것이라고 지속적으로 주장하여 왔는데 이제 단순히 도발을 멈춘 것을 넘어서 위협을 검증 가능하게 폐기하겠다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선언을 하였으니 말이다. 트럼프가 본인의 치적으로 충분히 내세울 수 있을 만한 북한의 선물인 셈이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이에 상응하는 조치인 종전선언을 연내에 해준다면, 그다음에는 김 위원장도 다음 단계의 핵폐기를 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기고,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의 속도가 빨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계산했을 것이다. 물론 이 제안이 트럼프 대통령과 그 주변의 인물들을 충분히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추가적인 어떤 제안을 할 수 있다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달했을 수도 있다.

 

평양 선언문의 이러한 문장과 구조는 절묘한 한 수다.

첫째, 완벽한 핵신고는 부담스러워서 못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가려운 곳을 확실하게 긁어주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성과로 자랑해 온 미국에의 직접 위협 중단을 검증 가능하게 폐기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둘째, 남북 간의 실질적인 종전선언을 하여 남북관계 때문에 미국민에 피해가 가지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한반도에 주한미군을 보낸 미국 부모, 형제, 부부, 자식들에게 보냈다. 셋째, 일본에 대한 위협과 주일미군에 대한 위협 제거 내용이 빠져있다. 왜냐하면 일본과의 적대관계 청산을 언급하지 않았고, 일본을 향한 중거리 미사일에 대한 언급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은 이제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남겨두고 있는데, 주일미군에 대한 위협 때문이라도 일본 정부는 북한과 매우 빠른 시일 내에 정상회담을 하여 북·미관계와 보조를 맞추어 가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빠졌다. 조만간 북·일 정상회담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제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이 이를 받아서 종전선언을 할 수 있는가이다. 핵심은 트럼프 대통령이 과연 미국의 핵 비확산론자들과 강성 매파들의 견제를 넘어설 결심을 할 수 있을까이다. 미국에 대한 북한의 직접 위협 제거와 핵비확산은 다른 문제이다. 전자는 북한과 미국의 양자관계이지만 후자는 미국의 글로벌 전략이 걸린 문제다. 강경파와 비확산론자들은 확실한 비핵화의 증거가 있어야만 종전이 가능하다고 주장할 터이고, 정치인 트럼프는 미국과 동맹국에의 직접 위협을 검증 가능하게 폐기한다면 종전선언도 가능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무게중심이 어느 쪽으로 기울 것인가?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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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길은 북쪽에 있다. 북한은 지하자원, 관광, 노동력 등에서 노다지와 같다. 북·미 관계가 개선되면 우리가 덕 본다. 북한은 일본으로부터 배상도 받는다. 북한에 ‘퍼주기’라고 하는데 ‘퍼오기’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대륙 간 철도가 연결되면 물류비용이 30% 절약된다고 했다. 이렇게 되면 우리나라는 태평양의 물류거점이 된다. 물류가 일어나면 경제가 일어난다. 이런 것은 북한과 협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유라시아 대륙이 노다지판과 같다. 길게 보면 이렇게 경제를 살려야 한다.”

 

10년 전이다. 2008년 11월27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와의 면담에서 ‘북한은 노다지’라는 발언과 함께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강력 비판했다.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정신병자로 몰아붙였고, 보수언론들은 이를 대서특필했다. 하지만 지금의 한반도 정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탁견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출처:경향신문DB

 

민족의 회복은 어디에서 오나. 경제다. 민족의 번영은 어디에서 오나. 그 역시 경제다. 한때는 분단이 모든 것을 지배했다. 상대를 패망시키는 것 외에는 답이 없었다. 역설적으로 북한이 망하더라도 남한만 잘살면 된다는 사고도 지배했다. 박근혜 정권기에는 북한 급변론(멸망론)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상황이 전변했다. 4·27 판문점선언과 6·12 북·미 센토사 합의가 그것이고, 향후 완전한 비핵화와 종전선언 이후 벌어질 새로운 지평이 있어서다.

 

한국경제는 성장판이 닫혔다. 박정희 경제패러다임은 이제 수명을 다했다. 워싱턴 컨센서스와의 조합은 더더욱 한국경제를 수렁으로 빠져들게 했다. 낡은 성장제일주의와 정경유착, 탐욕의 자유와 노동인권 말살, 저성장과 양극화는 대한민국 경제를 구조적 위기로 몰아넣었다. 과연 한국경제의 탈출구, 새로운 성장의 기회는 무엇인가?

2007년 10월4일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선언)’이 발표되었다. 10·4는 다르다. 6·15선언을 이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경제협력 단계로 나아가는 로드맵을 합의했다. 선언 발표 후 노무현 전 대통령은 가장 핵심적 성과로 새로운 경제협력사업을 꼽은 바 있다. 민족경제의 목표와 운영원칙을 합의한 것은 10·4선언의 중요한 성과였다. 10·4선언의 다양한 경제협력 방안은 남북 간 단순 교역 증가가 아닌 경제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특히 경제협력추진위원회의 위상과 폭이 대폭 강화되었다.

 

2018년 4월27일, 남북의 문재인·김정은 두 정상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번영의 시대가 열렸음을 전 세계에 천명했다. 무엇보다도 판문점선언의 의의는 ‘평화번영을 향한 연합적 거버넌스’를 제창한 것이다. 그래서 한반도신경제는 다르다. 평화체제 없는 긴장완화형 경협이 아니고 흡수통합형 경협도 아니다.

 

한반도신경제는 네가지 개념축이 상호작용한다. 먼저 ‘평화’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통한 한반도의 정치군사적 안정 확보, 북한의 비핵화와 북한체제 안정 보장,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완화 및 해소는 경제를 위한 안전판이다. 둘째 ‘자주’다. 미국과 중국의 입김에 의존하는 불완전하고 불안한 평화가 아니라, 남북한이 직접 평화와 경제를 경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공영’이다. 북한에 대한 일방적 지원이 아니라 북한경제 발전 과정에서 남한경제도 발전의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다. 넷째 ‘번영’이다. 북한이라는 경제 블랙홀이 사라지면, 작게는 동북아시아 경제협력이 크게는 동아시아 경제공동체가 자리하게 된다. 여기에 한국경제의 일대 도약의 기회가 있다.

 

EU의 발단이 독일이 제창한 ‘석탄공동체’였다면, 동아시아 경제공동체의 발단은 문재인 대통령이 제창한 ‘철도공동체’가 될 것이다. 10년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유라시아 대륙은 노다지판’이라고 내다본 것처럼 말이다. 6·15가 통일에 이르는 과도적 단계를 논했다. 10·4는 남북 경제공동체를 논했다. 4·27은 한반도신경제를 통한 동아시아 경제공동체를 논하고 있다. 이것이 유능한 진보의 진일보다.

 

<최민식 |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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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판문점선언의 핵심 합의사항인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14일 개성공단 내 청사에서 개소식을 열고 즉시 가동에 들어간다. 천해성 통일부 차관이 남측 소장, 북측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이 소장을 맡아 교섭·연락, 당국 간 회담·협의, 민간교류 지원, 왕래 인원 편의보장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고 통일부가 12일 밝혔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로 남북이 24시간, 365일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을 갖게 됐다. 남북관계의 상시화·제도화 토대가 마련되는 획기적이고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다.

 

통일부는 연락사무소장이 책임 연락관이자 대북 교섭·협상 대표의 기능을 병행하며, 필요시 쌍방 최고책임자의 메시지를 직접 전달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메시지를 대면 협의로 전달할 수 있다는 의미여서 연락사무소 설치는 특사의 상시 파견과 맞먹는 효과를 갖는 셈이다. 남북의 책임자들이 한 건물에 상주하면서 얼굴을 맞대고 남북관계 현안을 조율하게 되면 불필요한 오해를 줄일 수 있다. 서로 전통문을 주고받으며 날짜를 정해야 열릴 수 있는 남북 당국 간 회담에 비춰보면 시간과 공간을 절약할 수 있는 상주체제가 남북관계의 안정화에 기여하는 효과는 클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세번째 남북정상회담을 엿새 앞둔 12일 서울 중구 서울도서관 건물 외벽에 ‘남북정상회담 성공 기원’ 대형 현수막이 설치돼 있다.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연락사무소의 당면과제는 철도·도로의 연결 및 현대화와 산림협력 등 판문점선언 이행과 관련한 실무적인 논의들이다. 하지만 북·미 비핵화 협상이 진전되면서 제재가 해제되면 남북경협의 명실상부한 거점이 될 수 있다. 남북관계가 좀 더 진전되면 연락사무소 체제에서 서울·평양 상호대표부 체제로 확대될 수 있다. 정권의 성향이나 정세 변화에 따라 부침을 거듭해온 남북관계가 제도적 도약을 하는 출발점이 연락사무소인 셈이다.

 

국내 보수세력과 미국 내 일각에서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대북 제재에 저촉된다고 하거나, 남북관계의 독주 사례로 꼽는다. 연락사무소 개소를 위한 유류 등 대북 물자 반출을 놓고 한때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다시 강조하지만 연락사무소 설치는 주권국가의 외교활동으로 대북 제재에 해당되지 않는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는 남북관계 발전만이 아니라 비핵화와 북·미관계를 촉진하는 창구로 활용될 가능성에도 주목해야 한다. 과거와 달리 북측은 비핵화 등 북·미 현안을 남측과 협의할 정도로 태도가 유연해졌다. 통일부가 연락사무소가 “비핵화 협의의 진전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한 것은 이를 염두에 둔 판단일 것이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선순환을 지원하는 거점이 되도록 남북이 노력하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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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북한과 미국의 ‘정상 담판 카드’가 재등장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친서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공식 요청하고 백악관은 이를 수용하는 분위기다. 두 정상이 교착상태를 뚫으려면 다시 한 번 직접 협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재의 북·미 교착상황은 협상에서 흔히 발생하는 일시적인 장애가 아니다. 협상의 의미가 퇴색될 만큼 장기화되거나 아예 협상 실패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만일 협상이 파탄난다면 한반도는 70년 냉전이 기약없이 연장되고 전쟁 분위기로 흉흉했던 과거로 회귀할 수 밖에 없다. 트럼프와 김정은도 정치 생명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돌이켜보면 싱가포르 1차 정상회담 후 북·미 관계는 답보를 거듭했다. 정상회담이 압박과 제재의 기존 비핵화 문법을 뛰어넘는 인식의 대전환을 보여준 것이 무색할 정도였다. 북핵 문제를 양국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으로 풀자는 방식은 창의적이고 대담한 발상이었지만 미국 내 반발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최고지도자들이 북핵 해결의 원칙과 방향을 정했으면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실무 시스템이 작동해야 했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특히 미국에서는 트럼프의 생각을 보좌하기는 커녕 그에 반하는 현상이 자주 나타났다.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6월 12일 오전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 호텔에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악수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를테면 미 재무부는 지난달 15일과 21일 중국과 러시아 기업들이 유엔의 대북제재를 위반했다며 제재 조치를 취했다. 지난 6일엔 미 법무부가 사이버공격을 주도한 혐의로 북한 해커를 처음 기소하고 제재 리스트에 올렸다. 이는 “북한과 미국이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기로 약속한다”는 싱가포르 합의문 제1항의 정신에 대한 도전이나 다름없다.

 

북한은 정상회담을 전후로 풍계리 핵실험장 파괴와 장거리미사일실험장 해체, 미군유해 송환 등 미국에 대한 선제적 조치들을 취했다. 지난해 시작한 핵·미사일 실험 중단은 10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북한으로서는 하나하나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무력 중시의 통치 철학에 반하는데다 수십년 핵개발 논리를 부정하는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의 상응조치는 한·미연합군사훈련 유예가 전부였다. 등가성도 상호성도 떨어진다. 미국 일각에서는 북한의 경제노선 채택을 약점 삼아 제재·압박의 실효성을 높이는 기회로 활용하려는 분위기마저 엄존한다.

 

미국의 이런 자세는 북한에 대한 불신과 오만에서 나온다. 도덕적으로 패륜국가, 정치적으로 깡패국가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항복을 받을 순 있어도 협상 상대로 존중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제재·압박 만능심리도 이와 관련이 깊다. 미국 강경파 입장에서 제재·압박은 북한의 항복을 받아내거나 고사시키는 수단일 뿐이다. 협상에서도 양보와 타협보다는 제재와 압박으로 북한을 굴복시키려 하고 있다.

 

북한 역시 70년 적대 역사의 무게감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협상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으면 시대착오적인 벼랑끝전술을 내놓았다. 김계관의 미국 비난 성명, 김영철의 편지는 협상을 막다른 골목으로 몰았다.

 

최고지도자들이 합의한 내용을 측근과 실무자가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 나타날 것이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원은 트럼프와 김정은의 인간적 신뢰 뿐이다. 두 사람은 비핵화 협상을 통해 상호 의존성을 높여가며 공생관계를 형성해왔다. 국내정치적으로 사면초가에 빠졌던 트럼프는 북·미정상회담 후 지지율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2차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익명기고문’ 위기는 물론 11월 중간 선거에서 원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김정은도 국제지도자로 부상했다. 모두 비핵화 협상 아니면 얻을 수 없는 선물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역사적인 무게는 1차 못지 않다. 반드시 성공시켜야 할 사변이지만 그러려면 상식과 관성을 뛰어넘는 대담한 결단이 요구된다. 김정은은 이미 ‘트럼프 임기내 비핵화’를 제안했다. 절대적인 북한의 핵의존도와 촉박한 시간을 감안하면 정권과 자신의 운명을 건 결단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는 상응하는 조치로 호응해야 한다. 먼저 ‘임기내 북·미 수교’ 제안은 필수다. ‘비핵화-체제보장 프레임’의 출구 시한 완성을 위해서다. 하지만 북·미 실무자들을 추동하고 비핵화협상을 불가역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중간 단계의 깜짝 이벤트도 필요하다. 연내 평양-워싱턴 연락사무소 개설과 일부 핵탄두 폐기의 교환이 하나의 방법이다. 둘다 현재로서는 불가능의 영역으로 간주되지만 최고지도자의 결단이 있으면 가능한 일이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건투를 빈다.

 

<조호연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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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북한 간 지루한 비핵화 협상을 지켜보며 문득 떠오른 장면 하나. 18년 전 이맘때 방영된 미니시리즈 <가을동화>에서 원빈이 송혜교에게 “사랑? 웃기지마. 이젠 돈으로 사겠어. 돈으로 사면 될 거 아냐. 얼마면 될까. 얼마면 되겠냐?”고 하자, 송혜교는 창백한 얼굴로 “얼마… 얼마나 줄 수 있는데요? 나… 돈 필요해요. 정말 많이 필요해요”라고 말하곤 도망치듯 방을 뛰쳐나간다.

 

이번 9·9절 행사에 대륙간탄도미사일도 등장시키지 않은 북한이 핵포기 대가로 얼마를 받으려고 할까. 2012년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핵개발에 11억~15억달러, 미사일 개발에 17억4000만달러, 총 28억~32억달러를 쏟아부었다. 지금까지 100억달러 이상을 투입했을 것이라는 연구보고서도 있다. 심지어 북한이 핵개발로 잃어버린 기회비용까지 요구할 것임을 감안하면 비핵화 비용 최대 추정치가 2조달러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북한이 지난 9일 정권수립 70주년(9·9절)을 맞아 평양 5월1일 경기장에서 집단체조 ‘빛나는 조국’개막 공연이 열렸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0일 보도했다. 인간 카드섹션으로 만든 ‘조선아 영원무궁 만만세’ 문구가 보인다. 연합뉴스

 

금권정치가 도널드 트럼프에게 돈은 복음이자 만능의 보검이다. 민주주의, 언론자유, 인권 등 미국의 전통적 가치들도 물신화된 ‘아메리카 퍼스트’ 앞에서 처참하게 무너진다. 충동적 분노의 화신은 자신의 믿음이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고 있다고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 비핵화도 (한국과 일본이 내는) 돈으로 손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트럼프 특유의 즉흥적 도박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판돈이 올라간 싱가포르 선언은 애당초 불가능했다.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도 2차 방북(5·9) 후 미국 CBS 방송 인터뷰(5·13)를 통해 비핵화를 할 경우 제재를 풀어 민간자본이 북한에 유입되어 주민들도 고기를 먹고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영철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에게는 자본주의 심장부 뉴욕의 휘황찬란한 스카이라인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렇듯 오만한 부자는 빈자(貧者)에게 ‘아메리칸드림’을 집요하게 설파하지만 ‘주체 조선’은 요지부동이다.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을 기념해 9일 평양에서 열린 열병식에서 전투기가 불꽃으로 숫자 70을 형상화하고 있다. 평양 _ AP연합뉴스

 

그렇다고 강대국을 감정만으로 대할 순 없는 일. 때로는 굴욕적 감정조차 속으로 삼킨 채 짐짓 실사구시적 행동을 해야 하는 게 곤핍한 북한의 운명이자 비애임을 김정은이라고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궁핍한 세습 독재국가가 고진(苦盡) 끝에 낳은 자식인 핵무기는 비현실적이다. ‘절대무기’가 북한의 미래를 밝힐 등불이 되리라 믿는 것은 환상이다. 북한 희망의 빛은 핵무기 프로그램을 완전히 연소시켜 나오는 에너지로만 밝힐 수가 있다. 관건은 전인미답 비핵화의 길로 북한을 어떻게 인도할 것인가이다.

 

우선은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하는 일이다. 물론 조건이 있다. 북한의 핵물질 생산 동결과 일체의 핵·미사일 시험 및 발사 중지 그리고 이에 대한 충분한 검증 수용 등 ‘선행비핵화’ 조치와 맞바꾸는 일이다. 선행 조치에 대한 검증은 기술적으로도 어렵지 않다. 연락사무소가 설치된다면 북한에는 ‘승냥이 미제국주의’가 사라지고, 북한으로 흘러가는 개혁·개방의 수문을 열 수 있다. 미국으로서도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 또 있다. 종전선언이 유엔사 해체 및 주한미군 철수와 무관함을, 그리고 평화협정이 체결되기 전까지 동 종전선언이 유효함을 합의문에 넣어 서명하는 일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주한미군 주둔을 인정하는 이야기를 했다는 ‘설’만으로는 부족하다. 문 정부가 4·27 판문점선언에 애써 국회 비준이라는 대못을 박으려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국가 간에 말(言)이라는 것도 관계가 좋을 때만 통할 뿐 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법적 효력도 없다.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합의문서라도 남아야 그걸로 남북 간 신뢰의 싹이 튼다. 이는 김 위원장의 비장하고 담대한 용기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역사는 가끔 어떤 문제의 해법을 정치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곳에다 얄궂게 던져놓곤 한다. 기다림이 점차 위험해지고 있다. 비핵화가 딱 그 모양이다. 결국 문 대통령이 풀어야 한다는 것으로 귀착된다. 역사만을 생각하겠다는 초심으로 돌아간다면 못할 것도 없다. 정권만을 생각했다면 지난봄 판문점선언과 같은 드라마는 쓸 수가 없었다. 가을에 또 하나의 동화 같은 극적인 합의를 기대한다.

 

<이병철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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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9일 정권수립 70주년(9·9절) 기념 열병식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등장시키지 않았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지난 2월8일 건군절 70주년 열병식에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화성14형’과 ‘화성15형’ 등 ICBM이 등장한 것과 비교하면 사뭇 절제된 모습을 보인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월 열병식에서 “침략자들이 우리 존엄과 자주권 0.001㎜도 침해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으나 이번엔 연설하지 않았다. 대신 연설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경제적 목표를 강조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북한 정권 수립 70주년 기념 열병식 참가자들이 9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진행된 대규모 집회에서 행진하고 있다. 행렬 가운데 군용전차에 ‘경제건설에 총력을’이라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AFP연합뉴스

 

북한이 지난 4월20일 노동당 전원회의 결정으로 핵·경제 병진노선을 폐기하고 경제건설에 집중한다는 노선전환을 채택했던 점에 비춰보면 9·9절의 ‘조용한’ 열병식은 어느 정도 예상됐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열병식을 통해 북한은 대내외에 약속한 노선전환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남북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으로 조성된 대화기조를 9월 이후에도 살려나가겠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된다. 아울러 판문점선언과 북·미 정상회담에서 밝힌 ‘비핵화’ 의지를 다시 한번 표명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때마침 평양 인근에 세워졌던 ICBM 조립시설이 완전히 해체됐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장기화되고 있는 북·미 협상 교착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달리 북한이 자제력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앞서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5일 방북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특사단에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내에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도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한 메시지가 담겼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도 9·9절 행사에 시진핑 국가주석이 직접 참석하는 대신 국가서열 3위인 리잔수 전국인민대표회의 상무위원을 보내는 등 ‘로키(low-key)’로 임했다. 중국의 대북접근 강화를 껄끄러워하는 미국을 의식해 중국 스스로가 북·미 협상의 ‘중국변수’ 가능성을 낮춘 셈이다.

 

이로써 9월 한반도 정세는 순탄한 흐름을 탈 가능성이 커졌다. 북·미가 다시 대좌할 환경이 최적화됐다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특사단 방북과 9·9절 열병식에서 드러난 북한의 대화 의지를 미국은 전향적으로 수용해 북·미 협상에 적극 나설 것을 희망한다. 양측이 비핵화 협상을 진전시킬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창의적인 대안이 나올 수 있다. 문재인 정부도 협상 재개를 위해 각고의 노력에 나서줄 것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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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5일 평양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사단과 만나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까지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북특사단장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6일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내에 북한과 미국 간 70년간 적대역사를 청산하고 북·미관계를 개선하면서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 일정에 대한 구상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처음이다. 더 이상 의심하기 어려울 만큼 강력한 비핵화 의지 표명이라고 본다.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협상의 촉진제가 되리라고 기대한다.

 

남북이 이달 18~20일 평양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한 것도 의미가 크다. 개최 합의는 이미 이뤄졌고 이번에 일정이 확정된 것이지만 남북관계가 순조롭게 발전하고 있다는 징표로 충분하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세번째 정상회담이 군사적 긴장 완화 등 신뢰구축을 구체화하도록 남북 모두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당장 눈앞의 최대 과제는 역시 비핵화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5일 인도 뉴델리 팔람 공군기지에 도착해 손을 흔들고 있다. 뉴델리 _ AFP연합뉴스

 

김 위원장이 제시한 비핵화 시간표는 지난달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거론한 ‘1년 내 비핵화’와는 1년가량 차이가 있다. 하지만 ‘1년 내 비핵화’는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의 제안에 김 위원장이 답한 형식이어서 동일하게 비교하기는 어렵다. 이번 시간표는 비핵화에 소요되는 시간과 검증 등 여러 변수들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제시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현실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 임기는 2021년 1월까지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제시했던 비핵화 시간표와도 일치한다.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는 북한 매체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조선중앙통신은 6일 김 위원장이 특사단에 “이 땅을 핵무기도, 핵위협도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자는 것이 우리의 확고한 입장”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비핵화에 대한 진전된 표현을 통해 진정성을 거듭 표출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미국이 먼저 종전선언에 나서야 비핵화 조치를 하겠다는 취지의 종전 입장에 변화가 없는 것을 문제 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큰 틀에서 김 위원장의 의중을 파악하지 않고 이 점만을 떼어내 문제시한다면 단견이 아닐 수 없다.  

 

김 위원장도 자신의 비핵화 의지를 국제사회가 의심하는 것에 답답함을 토로했다고 특사단은 전했다. “여러 차례 분명하게 비핵화 의지를 천명하고 비핵화에 필요한 조치들을 선제적으로 실천해 왔는데 이를 선의로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이 특사단에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역할에 대한 기대감을 에둘러 표시한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임하는 문 대통령의 어깨가 더 무거워지게 됐다. 정 실장은 “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면 비핵화 진전을 위한 남북 협력의 구체적 방안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정상회담에서 비핵화를 위한 실천방안을 도출한 뒤 이를 토대로 북·미 협상을 재가동시키고, 제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빅딜’이 이뤄지도록 하는 임무가 주어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 4일 통화에서 문 대통령에게 북·미를 대표하는 수석협상가 역할을 요청한 바 있다.

 

이제 공은 미국으로 넘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를 언급한 것을 거론하며 “김 위원장에 감사한다. 우리는 잘해낼 것”이라고 화답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김 위원장이 ‘종전선언이 주한미군 철수 및 한·미동맹 약화와 무관하다’고 직접 밝히며 미국 일각의 의심 해소에 나선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비핵화 협상을 조속히 재개하길 바란다. 연기했던 폼페이오 방북부터 재개하는 것이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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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비핵화 협상의 정체가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태도가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을 돌연 취소하더니 이번엔 북한이 가장 예민해하는 한·미 연합훈련 재개 가능성을 시사했다. 우려스러운 상황 전개인 데다 가까운 시일 내 교착국면이 풀릴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은 28일 한·미 연합훈련에 대해 “현재로선 더는 중단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한·미가 중단키로 한 것이 8월 훈련이고 이후의 훈련은 정해진 바 없다는 기존 입장에서 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비핵화협상 답보 상황에서 이 카드를 꺼낸 점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북한이 비핵화에 성의를 보이지 않을 경우 언제든 강경 대응으로 선회할 수 있다는 경고로 비치기 때문이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 AP연합뉴스

 

매티스 장관의 발언은 트럼프 행정부 내의 대북 협상에 대한 회의적인 기류를 반영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4일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취소하면서 비핵화에 충분한 진전이 없다고 밝혔다. 북·미 협상에 대해 시종 낙관론을 펴던 입장을 바꾼 것이다. 강경파로 분류되는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대사도 같은 날 “북한이 어쩌면 비핵화에 대한 생각을 바꿀지도 모른다”며 회의론을 꺼낸 것도 좋은 흐름은 아니다. 북한은 폼페이오의 방북 취소에 대해 아직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정권수립 70주년인 9·9절을 맞아 외교성과를 자랑해야 할 시점에서 미국이 보이고 있는 태도에 당혹감이 클 것 같다. 

 

문재인 정부 운신의 폭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미국 조야와 한국 내 일각에서는 북·미 협상이 답보상태인데 남북관계만 앞서 나가서는 안된다는 속도조절론이 나온다. 9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정부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 시점에서 한국 정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숙고할 필요가 있다. 북·미 협상은 최종적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의지에 따라 성사됐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가 메신저 역할과 분위기 조성 노력을 펴지 않았다면 애초 대화 자리가 마련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북·미관계가 한반도 정세를 규정지어온 역사를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의 처신에 따라 북·미관계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돌이켜 보면 한국이 이 역할을 능동적으로 수행할수록 한반도 문제 당사자로서 운신의 폭이 커졌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를 복기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북·미관계가 답보상태라고 한국마저 손놓고 있는다면 어렵사리 만든 비핵화와 평화구축의 기회가 날아가버릴 수 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29일 “북·미 교착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난관을 돌파하는 데 남북정상회담의 역할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정부가 현 시점에서 해야 할 역할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북·미 입장을 중재하고, 전략을 가다듬어 9월 남북정상회담을 반전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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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협상이 종전선언에 가로막혔다. 북한의 종전선언 요구와 미국의 비핵화 요구가 팽팽하게 맞서 있다. 형식 논리상 북한의 주장이 더 설득력 있다. 북·미 협상의 최종 목표는 비핵화와 체제보장이다. 그런데 체제보장은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 북·미 수교로 달성된다. 그 과정에서 종전선언은 체제보장으로 가기 위한 출발점에 해당한다. 따라서 종전선언을 최종적 조치인 비핵화와 교환하자는 요구는 불공평하다. 1만원 걸 테니 10만원 걸라는 식 아닌가. 더구나 미국은 8개월 내 핵탄두의 60~70%를 없애야 종전선언에 응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북한이 “강도적 요구”라고 발끈할 만하다.

 

미국은 종전선언의 개념과 방향에 대한 의견을 밝힌 적이 없다. 하지만 고위 인사들의 발언을 통해 드러난 인식을 보면 매우 완고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번 종전선언을 하면 후퇴할 수 없다”는 해리 해리스 주한 미대사의 언급이 대표적이다. 종전선언을 대단히 무겁게 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오류에 기반하고 있다. 먼저 종전선언은 후퇴할 수 없는 조치가 아니다. 통상적인 의미의 종전선언은 한반도 전쟁을 종료하겠다는 정치적 메시지로, 법적 구속력이 없다. 종전선언 후 북한이 상응하는 비핵화 조치를 하지 않는다?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약속을 어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그렇게 함으로써 얻을 편익이 없는데 왜 그렇게 하겠는가. 그래도 만에 하나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비핵화 협상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미국은 북한이 종전선언 후 주한미군 철수나 한·미동맹 역할 변화 등의 문제를 제기할 것으로 우려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는 평화체제 구축 과정에서나 다룰 사안이지, 그전 단계인 종전선언 과정에서 거론할 이유가 없다. 특히 주한미군의 경우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한국 주둔을 용인하는 발언을 한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미국이 불안하다면 종전선언에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방법도 있다.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일정표를 담는 것이다. 아예 종전선언 명칭에 ‘한반도 비핵화’를 담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예컨대 ‘한반도 전쟁종식과 비핵화를 위한 선언’은 어떤가. 북한과 미국의 요구가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북한도 종전선언을 “한갓 정치적 선언”이라며 의미를 낮춘 바 있으니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종전선언은 ‘한갓 정치적 선언’이 아니다. 지구상 최후의 냉전 지역인 한반도의 전쟁 상태를 종료시킬 이 선언은 정치·군사적으로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한국전쟁 종결을 선언함과 동시에 한반도 평화협정 논의를 시작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반도 평화체제에 실질적으로 기여하는 효과도 각별하다. 먼저 미국이 북한을 외교관계를 맺고 경제협력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인정하는 수단이 된다. 북한 체제보장의 증표가 될 수 있다. ‘비핵화-체제보장 프로세스’ 도중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종전선언이 그 과도기의 안전을 보장하는 담보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종전선언은 북한에 비핵화의 명분도 제공해줄 것이다. 북한은 종전선언을 9·9절을 맞아 김정은 위원장의 성과로 삼을 작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점에서 9·9절 방북을 검토 중이라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행보가 주목된다. 시 주석 스스로 선물이 된다면 김 위원장의 마음을 흔들 수 있다. 미국에도 아직 시간은 남아 있다.

 

사실 종전선언의 ‘저작권’은 미국에 있다. 2006년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이 처음으로 제안했다. 그 덕에 노무현·김정일의 ‘10·4 남북공동선언’에도 담을 수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사실상 종전선언에 합의했다. 앞서 미국은 ‘연내 종전선언’을 담은 4·27 판문점선언을 지지했다. 미국이 종전선언을 수락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미국이 멈칫거리는 것은 주류 정치인 등이 진을 친 반트럼프, 반북 세력의 반발과 공세 탓이 크다. 여야, 진보·보수를 넘어서는 이들은 북한과의 협상이 아니라 완전항복을 요구한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북·미 간의 불신 때문이다. 상대가 더 큰 이익을 보게 될 것이란 생각, 상대가 속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국가 간 협력을 어렵게 만든다는 미어샤이머의 법칙이 북·미 간에도 작용하는 것이다. 그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공식 또는 비공식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북·미는 핵실험장 폐기와 군사훈련 중단 등 신뢰조치들을 교환해왔다. 앞으로도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조치들을 지속적으로 주고받는 수밖에 없다. 종전선언도 그중 하나다.

 

<조호연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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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북·미 정상 공동선언을 역사적 의미나 상징성을 제외한 ‘북핵 협상’이라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논의해야 할 의제의 순서를 바꾸기로 합의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싱가포르 공동선언은 신뢰구축을 통해 북·미 간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고,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 노력하면서 그 결과물로 비핵화에 이르게 한다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진전시키면 이에 상응하는 경제·정치적 조치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왔던 그동안의 ‘선(先) 비핵화’ 논의 구조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은 2008년 12월 6자회담이 중단된 이후 북한이 줄곧 요구해왔던 것이었다.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좋은 합의를 해도 이행이 안된다는 것이 증명됐으니 비핵화보다 신뢰구축을 통한 평화체제 논의를 먼저 해보자는 주장이었다. 북한은 2010년 1월11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이 같은 제안을 공식화했다. 당시 북한은 성명에서 “조선반도 비핵화 과정을 다시 궤도 위에 올려세우기 위해서는 조·미 사이의 신뢰를 조성하는 데 선차적인 주목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 우리가 도달한 결론”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조·미 사이에 신뢰를 조성하자면 적대관계의 근원인 전쟁상태를 종식시키기 위한 평화협정부터 체결되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지금 주장도 8년 전 이 성명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이에 대해 한·미는 ‘비핵화 논의가 상당히 진행되어 궤도에 오르고, 평화체제 논의를 시작해도 비핵화 진행이 방해받지 않는 상태에 이르면 평화체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기본 입장을 유지해왔다. 그런데 싱가포르 합의에서 미국은 비핵화보다 신뢰구축을 앞세워야 한다는 북한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북한의 입장에서 싱가포르 합의는 외교적 승리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싱가포르 합의를 ‘독특한 방식’이라고 표현하면서 “훌륭한 결실을 맺을 것”이라고 한 것은 비핵화보다 신뢰구축과 평화체제 논의를 먼저 하기로 한 약속을 잊지 말라는 의미다.

 

그러나 싱가포르 합의 이후 진행되는 상황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은 여전히 북한에 의미 있는 비핵화 조치를 먼저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미국의 이 같은 태도는 약속 위반이다. 지난달 7일 북한 외무성이 평양을 방문했다가 돌아가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뒤통수에 대고 “싱가포르 수뇌상봉과 회담의 정신에 배치되게 CVID요, 신고요, 검증이요 하면서 일방적이고 강도적인 비핵화 요구만을 들고나왔다”고 거칠게 쏘아붙인 것도 이 때문이다. 신뢰구축 조치를 비핵화보다 앞세우기로 한 ‘조·미 수뇌분들의 약속’을 미국이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합의를 할 때 북한의 요구를 ‘통 크게’ 수용하고 새로운 협상의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보기로 결정했다가 나중에 생각이 바뀐 것인지, 아니면 협상 방식의 변화가 갖는 의미를 간과한 채 합의를 한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함으로써 북한이 비난할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 평화구축 작업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비핵화가 먼저냐 신뢰구축이 먼저냐’의 논쟁이 아니다. 이 같은 논쟁은 현재 한반도 현실 앞에서는 의미가 없다. 비핵화와 신뢰구축은 선후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꼬리를 물고 있는 순환적 관계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상호 신뢰를 먼저 쌓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북한에 대한 미국의 신뢰는 비핵화 진전이 있어야만 생긴다. 애초부터 미국이 북한과 협상을 시작한 이유도 북한의 핵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북한이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종전선언 문제만 봐도, 신뢰구축과 비핵화가 동전의 앞뒷면 같은 관계임을 알 수 있다. 북한은 종전선언이 신뢰구축을 위한 선차적 요소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북한이 종전선언을 강하게 주장하면 할수록 미국의 비핵화 요구도 강해진다.

 

북한의 핵능력이 고도화된 지금 ‘선 비핵화’를 내세운 협상은 가능하지 않다. 또한 북한 핵미사일이 미국의 직접적인 안보위협으로 떠오른 상태에서 핵문제를 그대로 두고 북·미 간 신뢰를 조성하겠다는 것도 비현실적 발상이다. 결국 비핵화와 평화체제 논의를 낮은 단계부터 병행추진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 외에는 다른 해법이 없다. 국제정세와 동북아시아 역학 구도의 문제점이 고스란히 응축된 북핵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한반도 평화정착은 매우 길고 험난한 여정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해야 할 시점이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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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스바흐와 배스케즈는 개별국가의 제안이나 요구가 글로벌 의제로 등장하기 위해서는 그 의제가 강대국에 아주 중요한 문제로 인식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 과정을 의제정치(agenda politics)로 명명했다. 북한 비핵화에 앞서 종전선언과 평화체제 문제가 미국, 중국에 주요 의제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종전선언의 주체로 휴전협정 당사국인 중국을 포함시킬 것인가를 두고 이해 당사국들 간 밀고 당기는 물밑 외교전이 치열하다.

 

평화협정이 결혼식이라면 종전선언은 약혼식이다. 연내까지 종전선언을 하겠다고 천명했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약혼식이 여차하면 무산될 기미도 보인다. 그렇다면 결혼식도 장담하기가 어려운 것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다. 사실 ‘전쟁이 끝났다’는 종전선언은 하지 않아도 된다. ‘전쟁을 끝내자’는 평화선언이 적확하다. 미래 어느 시점에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참여하는 4자체제의 평화협정만 체결되면 그것으로 족하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오른쪽)과 리선권 북측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13일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진행된 남북 고위급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회담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북한이 미국에 평화협정을 체결하자고 처음 제시한 때는 1974년 3월 최고인민회의 5기 3차 회의에서 채택된 ‘미국 의회에 보내는 편지’에서였다. 내용을 보면 당시 북한은 닉슨 독트린 발표(1969) 이후 주한 7사단 철수와 닉슨의 방중(1972) 및 일본·중공 국교수립(1972), 그리고 미국이 월맹과 파리평화협정 체결(1973)에 따라 베트남 주둔 미군을 철수한 후 베트남이 공산화된 것 등에 고무됐다.

 

이후 북한은 1984년 1월에 ‘남북불가침공동선언 및 대미 평화협정의 동시 체결’이라는 3자회담을 제시했다. 이는 베트남 문제 해결을 위한 파리회담 방식을 원용한 것으로 북한이 미국과 회담의 주당사자가 되어 평화협정 문제를 처리하고 그 과정에서 ‘종속적 당사자’인 한국과는 불가침 체결로 돌파하겠다는 책략이었다. 이에 대해 노태우 대통령은 1988년 10월 유엔총회에서 정전협정을 항구적 평화체제로 대체하는 문제를 논의하자고 제안했다. 평화협정에 대한 한국 정부 최초의 공식제안이었다.

 

북한이 종전선언에 집착하는 이유 중 하나는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과 무관치 않다. 정부는 주한미군 철수 여부는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른 동맹의 문제로 종전선언과 무관한 것으로 선을 그었지만 북한이 현상타파 차원에서 종전선언 후 끈질기게 이를 문제 삼을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분담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등이 여의치 않을 경우 미군 철수를 고려할 수 있다고 언급한 사실을 북한이 잊을 리가 없다.

 

여기에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지난 9일 이란에 가서 ‘핵 지식은 보존하겠다’고 했다. 이는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 해체 이외에 6·12 북·미 공동합의문 4항 미군 유해 일부를 송환했으니 선행 조항인 새로운 북·미관계의 수립(1항)과 평화체제 구축(2항)을 미국이 준수하라는 압박차원의 대미(對美) 메시지로 해석됐다. 그럼에도 핵 지식 보존 운운은 해서는 안될 이야기였다. 민감한 시점에 고위 당국자가 할 말 못할 말을 모두 내뱉을 경우 신뢰구축은 불가능하다.

 

이쯤에서 정리하자. 중국을 포함하는 4자 형태의 종전선언이 금상첨화지만 미국의 중국 견제가 만만치 않다면 차선책으로 북한과 미국 간 양자 종전선언도 고려해봄 직하다. 북한의 등거리 외교노선을 감안하면 김정은이 중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다. 관건은 미국이 중국의 대체재가 될 수 있음을 어떻게 선명하게 보여주느냐에 달려있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다면 종전선언을 없던 일로 하는 것이다. 신뢰구축 후 군축을 하고서 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이 통상적인 평화체제 순서이기 때문이다.

 

서울, 평양, 워싱턴 모두 조바심이 나있다. 북·미는 비핵화라는 같은 책을 갖고 서로 다른 쪽만 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서둘러 북·미가 같은 쪽을 보도록 유도해야 한다. 미국의 11월 중간선거를 감안하면 시간이 많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합의문에 따라 과감하게 톱다운 조치를 취하는 게 꼬일 때로 꼬인 매듭을 푸는 최선의 방법인 듯하다.

 

<이병철 | 평화협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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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지 한 달이 됐다. 한국전쟁 이후 68년간 적대관계를 벗어나지 못했던 북·미의 정상이 처음으로 만나 새로운 관계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비핵화에 합의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의 시대를 여는 ‘세기의 회담’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1개월이 지난 현재 국면은 기대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듯하다. 후속협상에서 ‘비핵화 일정표’ 같은 성과물이 나오지 않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의 ‘선의’를 믿고 성급하게 나섰던 것 아니냐는 비판도 일고 있다. 특히 지난 6~7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 결과가 미국 언론들의 혹평을 받았고, 미 의회에서는 한·미 연합훈련 카드를 다시 꺼내라는 강경론이 불거졌다. 북한은 북한대로 미국이 “강도 같은 비핵화 요구”만을 했다고 비판했다. 북한은 폼페이오가 ‘비핵화’ 요구만 내놨을 뿐 종전선언 등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방안을 내놓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았다. 이런 흐름을 보면 ‘이번에도 또 잘 안되는 것 아니냐’는 비관론에 빠질 수도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오른쪽)이 7일(현지시간) 이틀 간에 걸친 고위급 회담을 마치고 북한을 떠나기 직전 평양 순안국제공항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이 시점에서 북·미 공동성명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공동성명의 첫번째 항목은 새로운 북·미관계의 수립, 두번째가 한반도의 평화체제 구축이고, ‘한반도의 비핵화’는 세번째에 배치돼 있다. 북·미 정상이 서명해 전 세계에 공개한 공동성명이 이런 순서로 구성돼 있다면 후속협상에서도 각 항목에 최소한 동등한 무게감을 갖고 다룰 필요가 있다. 비핵화에 대한 상응조치로 최소한 종전선언을 해야 한다는 북한의 문제 제기는 이유가 있는 셈이다. 종전선언은 잠정적인 대북 안전보장책이자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을 위한 예비조치의 성격이 있는 만큼 북한이 비핵화로 나서는 발걸음을 가볍게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싱가포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이 되는 올해 종전을 선언하는 것이 목표”라며 연내 종전선언 추진에 나선 것은 시의적절하다. 미국도 그간 종전선언에 찬성 입장을 표명해온 만큼 더 이상 미룰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북한도 비핵화 문제에서 국제 사회의 의구심을 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협상의 교착을 풀기 위해 북·미에 지금 필요한 것은 ‘역지사지’의 자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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