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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2.08 ‘검은 금요일’과 소비의 덫

1월말이 되자 세계적인 브랜드숍들이 모여 있는 호놀룰루의 ‘알라 모아나’ 쇼핑몰 풍경이 바뀌었다. 상점가를 도매하다시피 붙어있던 연말 세일 포스터는 다 떨어지고 대신 “봄 신상품 입고” 선전물이 나붙었다. 소위 ‘블랙 프라이데이’, 검은 금요일로 시작했던 연말연시 세일의 막은 내리고 상가도 고객도 ‘정상’으로 돌아온 분위기다.  

일반적으로 서양 풍속에서 ‘블랙 프라이데이’는 악운이 깃들었다는 ‘13일의 금요일’을 말한다.

하지만 쇼핑과 관련해서는 11월 넷째 주 금요일, 즉 추수감사절 다음 날을 말한다.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이날부터 가게 운영이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서고 빨간 잉크 대신 검은 잉크로 장부를 기재하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아무튼 이날을 기점으로 미국의 백화점과 상점들은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특수를 노린 대대적인 장기 바겐세일에 들어간다. 새벽에 상점 문을 열고 한정수량의 몇 가지 핵심 상품을 무지하게 싼 가격으로 내놓고 전체적으로도 추가 할인을 제시하면서 사람들을 모은다.
 

2010년 11월 26일 금요일 이른 아침 밖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베스트바이” 매장 안으로 밀려들어가는 쇼퍼들 (AP 사진, Peter Pereira)

이렇게 시작되는 ‘홀리데이 세일’의 기세는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12월 26일에 최고조에 달한다.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가 지난 직후인 이때가 미국에서는 일 년 중 가장 싸게 물건을 살 수 있는 날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구나 전자제품, 보석 등 단가가 높은 물품의 구매희망 목록을 만들어 놓고 기다리다 이때 사기도 한다. 새해로 접어들면 재고상품이 줄어들면서 세일의 기세는 한풀 꺾이지만 매장에 따라서는 1월말까지 홀리데이 세일을 진행한다. 광고회사에 다니는 지인의 말에 의하면, 미국 시장에서 연말연시 두 달간의 매출액이 일 년 전체의 30%를 차지한다고 한다. 실제 2009년 미국 백화점의 12월 매출액은 전달에 비해 45% 증가하였고, 12월 한 달간의 매출액은 일 년의 14%를 차지하였다 (www.census.gov/retail).

11월말이면 미국 대부분의 지역은 이미 겨울인데, 할인상품을 건지려는 사람들은 새벽에 매장문이 열리면 먼저 들어가기 위해 추위를 무릅쓰고 밤부터 줄을 선다. 그러다가 심심치 않게 폭력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2008년에는 최초로 상점 직원이 사망하는 사건도 발생하였다. 새벽 5시에 문을 연 뉴욕 주의 한 “월마트”매장에서 물밀 듯이 덮쳐들어오는 고객들에게 밟혀, 34세의 직원이 사망한 것이다. 작년에도 총기가 등장하는 폭력사건이 보도되었다. 위스콘신 주의 한 “토이져러스” 매장에서 새치기를 하려던 21세의 여성이 항의를 듣자 줄 선 사람들에게 권총을 발사하여 체포된 것이다. 토이져서스 매장은 작년부터 블랙 프라이데이 개점 시간을 추수감사절날인 목요일 밤 10시로 더욱 앞당겼고, 사건은 매장 문을 열자마자 발생하였다.

2010년 11월 26일 금요일, “타겟” 매장 계산대에 줄 선 고객들 (AP 사진/ Jeff Chiu)


미국에는 왜, 이렇게 폭력사태까지 유발되는 홀리데이 쇼핑 관행이 자리 잡은 것일까? 실제로 미끼상품은 얼마 되지 않고 한정 판매를 하기 때문에 얻을 확률도 매우 낮지만, 사람들은 밤새워 줄을 서고 새벽부터 쇼핑을 시작하여 계획에 없던 다른 많은 물건들을 사게 된다. 경제적 관점에서 쇼핑에 들이는 시간과 차량 연료, 스트레스 등을 생각한다면 온라인 쇼핑이 훨씬 더 합리적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특정한 날 몰려나가서 북새통을 이루는 것일까? 언론 보도에서 학자들은 ‘블랙 프라이데이’의 쇼핑관행을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한다는) 모방 심리이고 자신의 소비에 자부심을 가지기 위한 (나는 할인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득을 보는 소비자라는) 경쟁 심리라고 설명한다. 한편 쇼퍼들, 특히 여성 쇼퍼들은 ‘이날’의 쇼핑은 오래전부터 여자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함께 해온 관행이고 전통이며, 휴가 후에 주변사람들과 나눌 주요 화젯거리라고 답한다.  

미국 밖의 시선에서 보자면 미국식 자본주의의 대량생산과 대중소비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판매 상술이 극적으로 구현된 광경으로 보인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상품 가격의 본질이 무엇인지는 (또는 무엇이어야 하는지는) 오래된 고전적 논쟁 주제이다. 투입된 자본과 노동력의 가치로 계산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소위 자유 시장에서 형성되는 수요와 공급 곡선의 접점이어야 하는지 말이다. 미국의 홀리데이 세일은 후자의 논리에 따라 가격이 형성되어야 한다는 믿음에 대한 대사회적 합의이자 천명이다. 이 시기는 주기적으로 공급가격을 내려 기존 소비 수준을 유지할 뿐 아니라 새로운 소비 패턴을 창출하는 식으로 시장체계를 보강한다. 이러한 시스템의 재건과 보강은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라는 의례와 결합하여 도덕적 동기가 수반되는 전통과 관습으로 자리 잡았다.

심심치 않게 보도되는 폭력사태는 자본주의 시장시스템이 전통적 의례 가치와 결합하면서 생겨나는 긴장을 대변한다. 미국에서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는 파티를 열고 선물을 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주변관계를 유지하고 확인하는 시기이며 이는 기본적으로 쇼핑을 통해 실현된다. 작년 총기사건의 주인공인 21세 여성도 어린 딸이 원하는 장난감을 사주기 위해 생긴 일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쇼핑을 통한 사회적 위치 확인의 시대가 수요공급 곡선의 시장가격 체제에 대한 믿음에 기반할 때, ‘싸게 산다’는 것의 의미는 모호해진다. 가격의 실체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고 그래프상의 시장가격 변화가 싸다와 비싸다를 상대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쇼퍼들은 어떤 제품이 기존 가격보다 싸졌다고 판단되면 필요와 무관하게 구매에 대한 심리적 압박을 받으며, 여전히 비싸다고 판단되면 그 희소성으로 인해 물품의 구매와 소유를 더욱 갈망하게 된다. 가히 소비의 덫이라 할 만한 시대를 이끌고 있는 미국 연말연시의 풍경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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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Hro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