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 체결한 핵합의 인증을 거부했다. 미국·이란과 국제사회가 함께 잘 이행하던 합의에 어깃장을 놓은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 등 핵합의에 서명한 국가 정상들의 만류도 귓등으로 넘겼다. 트럼프의 일방적 조치에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비판하고 나선 것은 당연하다.

 

로하니 이란 대통령(왼쪽),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불인증은 중동은 물론 전 세계의 안보 불안을 부추기는 심각한 행위다. 이란 핵합의는 2015년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정부가 이란과 ‘P5(5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1(독일)’ 간 협상을 통해 이란의 핵개발을 동결하는 대신 국제사회가 이란 제재를 해제한 것이다.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전범을 마련하면서 비핵화라는 인류의 목표를 향해 한발 다가가는 조치에 전 세계가 환영했다. 미 대통령은 이 합의에 근거해 석 달마다 이란의 핵합의 준수 여부를 검증해 의회에 보고해왔다. 그런데 트럼프가 취임 후 잘해오던 인증을 세 번째에서 갑자기 거부한 것이다. 트럼프는 이란 핵합의가 미국이 체결한 가장 일방적 거래라고 했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일방적인 미국우선주의로 평화를 파괴하는 장본인은 트럼프 자신이다. 트럼프는 이란이 몰래 핵을 개발하는 것처럼 주장했지만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조치에 우리가 주목하는 이유는 북핵 문제 해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불승인은 트럼프가 다자외교를 통해 이끌어낸 핵합의마저 언제든지 깰 수 있음을 확인해준 사건이다. 그 때문에 핵문제의 외교적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잘못된 신호를 북한에 줄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북한은 1994년 미국의 빌 클린턴 정부와 체결한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가 조지 W 부시 정부 들어 지켜지지 않자 “미국을 믿지 못하겠다”고 비난해왔다. 이번 일로 미국에 대한 불신이 더 커진 북한이 향후 미국과의 협상에 적극 나설지 의문이다. 이번 조치로 미국과 이란 간 갈등이 재점화하면서 북핵 문제가 뒷전으로 밀릴 것도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미국이 방치하는 동안 북핵 위협이 커졌다는 사실을 미국의 조야는 잊지 말아야 한다.

 

다행히 트럼프의 조치가 이란 핵합의 자체를 파기하는 것은 아니다. 이란도 합의를 계속 지켜 나가겠다고 했다. 핵합의의 최종 결정권자인 미 의회가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바라는 전 세계인을 위해 현명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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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 체결한 핵합의 인증을 거부했다. 미국·이란과 국제사회가 함께 잘 이행하던 합의에 어깃장을 놓은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 등 핵합의에 서명한 국가 정상들의 만류도 귓등으로 넘겼다. 트럼프의 일방적 조치에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비판하고 나선 것은 당연하다.

 

트럼프의 불인증은 중동은 물론 전 세계의 안보 불안을 부추기는 심각한 행위다. 이란 핵합의는 2015년 미국의 버락 오바마 정부가 이란과 ‘P5(5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1(독일)’ 간 협상을 통해 이란의 핵개발을 동결하는 대신 국제사회가 이란 제재를 해제한 것이다.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전범을 마련하면서 비핵화라는 인류의 목표를 향해 한발 다가가는 조치에 전 세계가 환영했다. 미 대통령은 이 합의에 근거해 석 달마다 이란의 핵합의 준수 여부를 검증해 의회에 보고해왔다. 그런데 트럼프가 취임 후 잘해오던 인증을 세 번째에서 갑자기 거부한 것이다. 트럼프는 이란 핵합의가 미국이 체결한 가장 일방적 거래라고 했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일방적인 미국우선주의로 평화를 파괴하는 장본인은 트럼프 자신이다. 트럼프는 이란이 몰래 핵을 개발하는 것처럼 주장했지만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다.

 

트럼프의 조치에 우리가 주목하는 이유는 북핵 문제 해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불승인은 트럼프가 다자외교를 통해 이끌어낸 핵합의마저 언제든지 깰 수 있음을 확인해준 사건이다. 그 때문에 핵문제의 외교적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잘못된 신호를 북한에 줄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북한은 1994년 미국의 빌 클린턴 정부와 체결한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가 조지 W 부시 정부 들어 지켜지지 않자 “미국을 믿지 못하겠다”고 비난해왔다. 이번 일로 미국에 대한 불신이 더 커진 북한이 향후 미국과의 협상에 적극 나설지 의문이다. 이번 조치로 미국과 이란 간 갈등이 재점화하면서 북핵 문제가 뒷전으로 밀릴 것도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미국이 방치하는 동안 북핵 위협이 커졌다는 사실을 미국의 조야는 잊지 말아야 한다.

 

다행히 트럼프의 조치가 이란 핵합의 자체를 파기하는 것은 아니다. 이란도 합의를 계속 지켜 나가겠다고 했다. 핵합의의 최종 결정권자인 미 의회가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바라는 전 세계인을 위해 현명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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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무기로 상대의 핵무기를 무력화시키고 전쟁을 막을 수 있을까. 북한의 6차 핵실험 감행 이후 북한의 위협을 상쇄시키기 위해 우리도 핵무장을 하거나 미국의 전술핵을 다시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도처에서 고개를 든다.

 

이 같은 주장을 가능케 하는 핵심적 근거는 ‘공포의 핵균형’이다. 상대를 절멸시킬 수 있는 능력을 서로 가짐으로써 심리적으로 상대의 선제공격을 제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북한이 핵무장 국가가 됐으니 우리도 핵으로 무장해 심리적 공포상태의 균형을 이뤄야만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논리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3일 1면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핵무기 병기화 사업'을 현지지도했다는 기사와 사진을 게재했다.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들은 최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탄두로 장착할 더 높은 단계의 수소폭탄을 개발했다고 이날 보도에서 주장했다. 연합뉴스

 

이게 사실이라면 한국은 그동안 ‘동반 핵무장’이라는 지극히 간단한 방법으로 북핵 문제를 풀 수 있는 초간편 해법을 놔두고 20년 동안 헛수고를 한 셈이다. 또한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도 아주 쉽다. 모든 나라가 핵무기를 하나씩 갖고 서로를 견제하면 세계 평화가 올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공포의 균형론’은 개념상으로만 존재하는 이론이며 지극히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적용 가능한 비현실적 해법이기 때문이다.

 

핵무기가 전쟁을 막아주지는 않는다.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 등 핵보유국도 전쟁에 휘말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로 인류는 핵전쟁에 가장 가까이 서기도 했다. 1982년 포클랜드 전쟁은 핵무기가 없는 아르헨티나가 핵보유국인 영국을 상대로 일으킨 경우다. 핵을 갖고 있으면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믿음은 잘못된 것임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들이다.

 

이론적으로나마 공포의 균형이 성립하려면 상대도 매우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사고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서른을 갓 넘긴 예측불가능한 지도자가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고 국제질서를 전혀 인정하지 않는, 지구상에서 가장 고립된 나라와 이성적으로 교감하면서 균형을 이룰 자신이 있는가. 동반 핵무장은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북한과 똑같은 수준의 나라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일 뿐 아니라 비핵화를 영구히 포기하는 것이며 분단을 고착화하는 길이기도 하다.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하고도 핵전쟁의 위험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핵전쟁은 면밀한 계산에 의해 벌어지지 않는다. 오판·우발적 충돌·사고 등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훨씬 높다. 핵무기가 늘어날수록, 핵보유국이 증가할수록, 핵통제 체제가 느슨해질수록 핵전쟁 확률은 높아진다. 남북 동반 핵무장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공멸 가능성을 높일 뿐이다.

 

핵무장 주장은 날로 고도화되는 북한 핵프로그램에 대한 무력감의 다른 표현일 뿐 북핵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북핵 문제의 엄중함을 진실로 인식하고 있다면 충동적이고 무책임한 주장으로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지 말고 국가의 미래를 위해 한번 더 숙고해줄 것을 당부하고 싶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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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 나아가 전 세계는 6번째 핵실험으로 한껏 높아진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한·미 양국은 즉각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를 결정, 군사적 압박의 수위를 높이면서 경제제재를 강화하는 쪽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어제 트위터에서 북한의 핵실험을 언급한 뒤 “내가 한국에 말했듯, 한국은 북한에 대한 유화적 발언이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알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과 북핵 대응책을 협의하기도 전에 평화적 해결을 주장한 동맹국을 공개 비판한 것이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책임전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멜라니아 트럼프 부인은 트럼프 강좌에 참석 한 후 북한 공격에 관한 질문을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의 한국 비판은 부적절한 수준을 넘어선 적전분열로까지 비칠 수 있는 심각한 전략적 실패다. 북한의 핵 및 미사일 개발로 한반도에서 위기가 조성되고 있지만, 이 문제는 본질적으로 북·미 간의 일이다. 북한은 미국의 위협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핵개발에 나섰고, 협상력 제고를 위해 핵 개발에 박차를 가해온 것은 객관적 사실이다. 트럼프 자신도 미국의 역대 정권들이 북한을 잘못 다뤄 북핵 위기가 고조됐다고 비판했다. 그렇다면 미국이 할 일은 정책을 재점검하고 한국과 함께 북핵 문제를 풀 새로운 해법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엉뚱하게도 북한의 핵실험 책임을 한국 정부 탓으로 돌렸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을 뿐 아니라 한·미관계를 소원하게 만들어 이득을 취하려는 북한의 전술에 놀아나는 꼴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인들은 ‘협상가’ 트럼프가 북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보고받는 점에 주목했다. 그러나 트럼프가 지금까지 보여준 북핵 대응은 실망스럽다. 군사적 해결 방안과 대화를 통한 해법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일관성을 잃었다. 북핵의 본질을 잘못 파악했을 뿐 아니라 자칫 호도하려는 태도마저 엿보였다. 북한의 도발 와중에 한·미 자유무역협정 폐기를 언급한 것은 정상적인 판단으로 보기 어렵다. 그의 잘못된 북핵 인식에 모험적 대응이 겹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북핵은 확고한 대북정책을 바탕으로 냉정하게 접근해도 풀기 어렵다. 군사적 해결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해 북한을 압박하는 게 정상이다. 그러려면 미국과 그 자신의 책임과 역할을 인식하는 게 먼저다. 트럼프가 진정 책임있는 지도자가 되려면 동맹국을 탓하고 엉뚱하게 압박하려는 태도부터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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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미국 주요 방송과 신문들은 매일 북한과 미국의 전쟁 가능성을 보도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괌 포위사격 발언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 경고로 위기의식은 최고조에 달했다. 온라인에서는 핵전쟁 대피시설과 비상식량 등 전쟁 대비 물품들의 판매가 급증했다. 곧 전쟁이라도 날 것 같던 미국 언론들의 호들갑은 한순간에 잠잠해졌다. 트럼프의 백인 우월주의자 폭력사태 두둔 발언 이후 북한 뉴스는 찾기 어려워졌고 화제는 미국 사회의 현존하는 병폐인 인종주의 문제로 급반전됐다.

 

미국 입장에선 한국 시민들의 반응이 더 인상적이었을 수도 있다. 뉴욕타임스 서울 주재기자는 최근 이번 사태를 회고하는 기사에서 “북핵 위기에 대해 보도할 때마다 마치 두 개의 현실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고 적었다. 전쟁 위기를 전하는 긴박한 뉴스에 비해 서울 시민들의 반응은 너무나 차분하고 심지어 무관심했다는 것이다. 한국 시민들은 20년 넘게 반복되는 북핵 위기를 한반도 현실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모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월10일 뉴저지주 베드민스터 내셔널골프클럽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 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베드민스터_AP연합뉴스

 

미국 사회의 위기감은 흙탕물 가라앉듯이 진정되고 있지만 물밑의 현실은 변한 게 없다. 오히려 위기는 이제 본격화됐다는 게 맞는 말이다. 빈센트 브룩스 한·미 연합사령관의 말처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 발사는 “게임 체인저”였을 수 있다. 미국은 이제 북핵을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자국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북한이 임박한 위협으로 다가오면서 미국 당국자들과 전문가들은 북핵 문제에 대한 속내를 상당 부분 드러냈다. 한국 입장에선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의 순간’에 직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은 이 때문이다.

 

2년 후라고 가정해보자.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핵탄두 소형화와 대기권 재진입 기술까지 터득하고 활용 가능한 ICBM을 모처에 실전배치했다고 발표한다. 미 국방정보국(DIA)은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북한의 ICBM 완성까지 2년으로 예상했다가 1년 앞당겼다고 하니 내년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 순간 한·미는 어떻게 대응할까. 트럼프 정부의 군사적 옵션은 더 이상 공허한 협박이 아닐지 모른다. 군사적 긴장은 극에 달할 것이고 각종 군사적 옵션이 거론될 것이다. 한반도는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에 빠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가 “거기(한국)서 죽는 것이지 여기(미국)서 죽는 게 아니다”라며 북한과의 전쟁불사론을 폈다는 공화당 의원의 전언은 새삼 공포스럽다.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도 이미 공격 징후가 없어도 예방타격 가능성까지 거론한다. 뉴욕타임스의 데이비드 생어는 지난 20일 “2002년 이라크전 이후 백악관에서 적국에 대한 선제적 군사행동의 장단점에 대해 이렇게 많은 토론이 이뤄진 적이 없다”고 전했다.

 

다른 선택도 있다. 북한을 파키스탄처럼 법적으로는 아니지만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미국 전문가들 중 일부는 이미 북핵을 현실로 받아들이자고 말한다.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DNI 국장을 지낸 제임스 클래퍼는 “이제 우리는 북핵을 받아들이고 한계를 정하거나 통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머리에 핵을 이고 살아야 한다. 내부적으로 전술핵 도입, 핵개발 등 핵으로 핵을 대응하자는 요구도 이어질 것이다.

 

한·미 연합훈련을 시작으로 며칠 잠잠하던 한반도는 다시 시끄러워질 조짐이다. 미국 언론들이 호들갑을 떨 북핵 위기가 몇 번 더 찾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한반도 전쟁이냐 북핵 인정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진실의 순간’만은 피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는 20년을 넘게 끌어온 북핵 외교에서 한·미의 완패를 의미한다. 서울 시민들은 무관심하지만 한국 정부 당국자들과 외교관들은 어느 때보다 긴장한 채 현장을 뛰어다니고 있을 것이다. 아직은 시간이 있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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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키는 1차적 책임은 북한에 있지만 미국의 도발적 행태 역시 군사적 불안을 부추기는 주요 요인이다. 미국은 연일 일관성 없는 거친 발언으로 북한을 자극하고 있다. 지난주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이 잇따라 북한에 대한 ‘군사적 옵션’ ‘예방전쟁’을 언급했다. 북한이 도발하지 않더라도 미국이 먼저 북한을 공격할 수 있다는 의미다.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각료들과 북한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북한은 미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방편으로 핵개발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핵과 미사일 개발 문제를 풀어야 할 과제를 미국이 안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군사 대국이자 국제사회의 지도적 국가로 전쟁 위험에 대해 신중하고 책임있게 행동해야 할 책무가 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은 지금껏 세계가 보지 못한 ‘화염과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한술 더 떴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도 9일 ‘정권의 종말과 파멸’ 운운했다. 북한을 자극해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가기로 작정한 듯한 발언이다.

 

인류 역사에서 지도자의 우발적 행동이 전쟁에 단초를 제공한 경우가 적지 않다. 트럼프 리스크를 걱정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강대국인 미국의 대통령이고 “핵 무기를 왜 사용하지 못하느냐”는 트럼프라 해도 남의 나라 운명까지 결정할 자격은 없다. 그런데 어제 그의 측근들은 트럼프의 대북 경고가 즉흥적인 발언이었다며 주워 담았다. 초군사강국의 지도자가 이처럼 경거망동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건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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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문재인 정부의 첫 한·미 정상회담 이후 국내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말 중 하나가 ‘한반도 문제에 대한 한국의 주도적 역할’이다. 한국에 사활적 문제인 북핵·북한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한국의 의지를 관철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한국의 주도적 역할 확보’를 한·미 정상회담의 최대 성과로 꼽는 데 별로 이견이 없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그런데 ‘주도적 역할’을 한국 외교의 금과옥조이며 최대 가치인 것처럼 여기는 인식이 만연하는 상황은 왠지 불편하다. 화려한 겉모습에 비해 실제 내용은 빈약한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없지 않다. 남들이 다 잘했다고 하는 것을 한번 비틀어 보고 싶은 삐딱한 신문쟁이 근성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북핵·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데 주력한 나머지 내용 면에서는 손해를 본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6일 오후(현지시간) G20 정상회의 참석차 독일을 공식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주함부르크 미국총영사관 에서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미·일 3국 정상만찬에 앞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북한 문제에 관한 한 예나 지금이나 국내에서 가장 부정적인 현상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통미봉남(通美封南)’이다. 북한이 한국을 상대하지 않고 미국과 직거래를 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때는 합의문에 한국의 요구 사항인 ‘남북대화를 재개한다’는 문구를 포함시키는 문제를 놓고 북·미가 충돌해 다 된 협상이 거의 결렬 직전까지 갔다.

 

북핵 문제 해결 바이블로 불리는 9·19 공동성명에도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 있다. 한·미·중·일·러 등이 북한에 에너지 지원을 한다는 내용 뒤에 따라붙은 “대한민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200만킬로와트 전력 공급에 관한 2005년 7월12일자 제안을 재확인하였다”는 대목이다. 당시 정부가 교착상태에 빠진 6자회담을 재가동시키기 위해 북한에 제시한 이른바 ‘중대제안’에 대한 언급이다. 이 제안은 북한이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이어서 협상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9·19 공동성명에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과시하기 위해 자칫 에너지 지원 덤터기를 쓸 수도 있는 위험한 내용을 ‘재확인했다’는 애매한 표현으로 삽입시켰다. 이 문구를 넣기 위해 쏟아부은 외교적 자산과 문안 협상에서 ‘트레이드오프’ 등을 감안하면 이게 얼마나 부질없는 짓이었는지 알 수 있다.

 

북·미가 뭔가 접촉을 가질 기미가 보이면 한국이 소외되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국내에서 어김없이 고개를 든다. 이명박 정부 시절 미국이 북한과 고위급 접촉을 통해 탐색적 대화를 시작하려 하자 정부는 남북대화가 먼저 선행되지 않으면 북·미 접촉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텼다. 결국 아무 의미도 없는 억지춘향식 남북대화를 형식적으로 가진 뒤에야 북·미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다. 당시 이명박 정부가 미국의 발목을 잡지 않고 몇 개월만 빨리 북·미 접촉이 시작됐더라면 2012년 ‘2·29 합의’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이전에 나왔을 것이고 북핵 문제 양상도 지금과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통미봉남은 최근들어 ‘코리아 패싱’이라는 약간 변형된 형태로 많이 유통되고 있지만, 한국이 북한 문제 논의에서 어떤 식으로든 소외되거나 판을 주도하지 못하면 큰일난다는 인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본질은 같다고 볼 수 있다.

 

한반도 문제에 주인의식을 갖고 대처해야 한다는 것은 백번 지당한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한국이 판을 좌지우지하면서 끌고 나가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국은 그만 한 외교적 역량이 없다. 특히 한반도 문제가 국제적 이슈로 변하면서 한국 입지는 더 좁아졌다. 미·중·러 등은 한반도 문제를 서로 견제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한반도 사안은 강대국 패권 전략의 일부분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의 주도적 역할이란 정확히 말하면 강대국의 논의 구조 속에서 우리의 목소리가 실종되지 않고 국익에 반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 것이다. 북핵 문제를 다루는 다자구도의 속성상 어느 한 나라가 주도권을 잡으려 하면 그 논의는 반드시 깨진다.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자가 다자외교에서는 진정한 승자다. 한국처럼 강대국에 둘러싸인 외교 현실 속에서는 이 같은 태도가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남북관계에서도 북한에 끌려다니면 안되겠지만 우리가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각시키면 북한의 호응을 얻을 수 없다.

 

한국의 목표는 한반도 문제를 주도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이 문제가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평화를 정착시키고 비핵화 논의를 진전시키는 방향으로 한반도 문제가 진행될 수만 있다면 그 과정에서 한국의 존재감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부를 비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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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북극성 2형’ 시험발사 이후 미국의 대북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어제는 취임 후 처음으로 북한을 직접 거론, “분명히 북한은 크고 큰 문제”라며 “북한을 아주 강력히 다룰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달 한반도에서 실시되는 사상 최대 규모의 한·미 연합훈련에 미국의 전략자산을 전개하는 데 양국이 합의했다. 북한도 연일 초강경 대응을 공언하고 있다. 협상 한 번 없이 북·미가 충돌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게 무리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11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팜비치 _ AFP연합뉴스

 

이런 와중에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그제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발언은 예사로 넘길 일이 아니다. 윤 장관은 “(대북 선제타격론이) 과거보다 미 의회, 학계 등을 중심으로 커지고 있고 일부 행정부 내에서도 그런 데 대한 검토나 분석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한민구 국방장관도 어제 “미국 조야에서 북한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여러 옵션 중 하나로 선제타격을 거론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러나 국방장관회담을 포함해 양국 간 이야기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실제 미 행정부 외교안보 담당자들의 언행은 대북 강경 분위기를 반영한다. 스티븐 밀러 백악관 수석 정책고문은 그제 “(미국이) 곧 다른 신호를 북한에 보낼 것”이라며 “상상을 뛰어넘어 의심의 여지 없는 수준의 군사력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미 국방부 대변인도 “북한의 위협을 단념시키고 격퇴하는 데 필요한 모든 조치를 다할 것”이라고 했다.

 

선제타격이 눈앞에 있지 않다고 해도 윤, 한 두 장관의 처신은 주무장관답지 않다. 북한과 미국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대책은 내놓지 못하면서 여과없이 선제타격론을 전하는 것은 혼란과 불안을 낳을 뿐이다. 북한의 미사일 능력을 과장하며 상황을 위기로 몰고가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오해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조기 배치 명분을 찾기 위해 상황을 방치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북한을 상대로 한 선제타격은 전면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인들의 명운이 걸린 사안을 마치 남 얘기하듯이 말하는 것은 대단히 부적절한 일이다.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론에 편승하는 외교안보정책으로는 결코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정부는 한반도 상황을 능동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대북 압박은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오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미국을 향해 한국의 의사에 반하는 대북 정책, 특히 북한에 대한 예방적 선제타격은 절대 안된다는 점을 주지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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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어제 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들어 첫번째 군사적 도발이다. 한반도를 넘어 아시아 평화와 안녕을 위협하는 행위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북한 미사일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아니고, ‘무수단급(사거리 3000~3500㎞)’ 개량형 미사일로 추정된다. 획기적으로 사거리를 늘리거나 운반 능력을 높인 미사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본격적인 도발이라기보다는 트럼프 미 신임 대통령이 꾸린 행정부의 반응을 떠보려는 시험적 성격이 짙다. 그렇다고 미사일 발사의 부당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핵·미사일 실험을 금지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들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다. 선제 북한 타격론까지 운위되는 미국 새 행정부의 정책 점검 및 조정 시기에서 북한이 도발로 얻을 이익은 사실상 전무하다. 오히려 격동하는 동아시아 정세 속에서 스스로를 험지로 몰 가능성이 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11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팜비치 _ AFP연합뉴스

 

이는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10일(현지시간)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간 정상회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양국은 북핵과 미사일 위협 대처, 미·일동맹 등 안보 및 통상 협력 방안 등을 골자로 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이를 통해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영향력 확대를, 일본은 군사력 확대를 상호 보장하며 중국 견제라는 공동의 이익에 뜻을 같이했다. 북 미사일 발사는 이런 양국 주장에 정당성을 더해준 셈이다.

 

북한은 우방인 중국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미·중관계는 냉랭했으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트럼프 대통령 간 통화를 계기로 정상회담까지 거론되고 있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를 통해 중국의 대북지원 명분을 약화시켰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문제는 한국 정부의 대응이다. 정부는 어제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어 북 도발을 규탄하고 강력하게 대응키로 의견을 모았다. 북 미사일 발사의 부당함을 규탄하고 도발 억제 의지를 천명하는 것은 당연한 조처다. 그러나 강경 대응만 고집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당장 효율적인 강경 대응 수단도 없는 상황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면서 한반도 정세는 엄중해졌다. 더구나 한국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사태로 리더십 공백 상황이다. 무엇보다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의 안정적 관리가 중요한 시점이다. 북한의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하면서 주변 국가들과 함께 역내 불안정성을 완화하기 위한 노력을 벌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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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트위터에서 “북한이 미국 일부 지역에 닿을 수 있는 핵무기 개발의 최종 단계에 이르렀다는 주장을 했다.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가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고 주장한 데 따른 반응으로 해석된다. 한편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중국 공산당 이론지 기고문을 통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한반도 배치 반대가 올해 중국의 핵심 외교방침이라고 공개 천명했다. 이런 움직임은 올해 한반도 정세가 미국·중국 갈등 속에서 북핵과 사드 중심으로 전개될 것임을 예고한다.

 

트럼프의 트위터 글은 북핵 해결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트럼프가 미국 정보기관에 처음으로 요청한 기밀 브리핑이 북한 핵무기 프로그램에 관한 것이었다는 보도에서도 이런 태도가 엿보인다. 하지만 트럼프는 구체적인 대응방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내용만으로는 단순히 북핵 능력을 의심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북핵 개발을 막겠다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물론 새 행정부가 출범하기 전이므로 대북정책이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이 같은 불확실한 행보가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성을 더해주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3일(현지시간)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 대(對) 중국 강경파인 로버트 라이시저 전 USTR 부대표를 지명했다. 사진은 트럼프가 지난달 28일 플로리다주 팜비치에서 기자들에게 말하고 있는 모습. (워싱턴 AFP=연합뉴스)

 

왕이 부장의 사드 언급은 올해 한국을 더욱 압박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나 다름없다. 한류 제재와 전세기 불허 등의 조치에 이어 중국이 또 어떤 보복카드를 내놓을지 우려된다. 한국으로서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는 처지에서 벗어날 길이 요원해 보인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환경은 어느 때보다 엄혹하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의 등장으로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은 더욱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이미 지난 연말 대만총통과의 통화로 중국이 핵심이익으로 간주하는 ‘하나의 중국’ 정책을 흔들었다. 북핵 문제 역시 한층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국 외교는 어느 때보다 선제적 조치로 출로를 찾아야 할 시점인데도 불구하고 이중고에 빠져 있다. 잇단 전략실패로 독자적 외교공간이 좁아지고, 국내 정치 리더십 공백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여야, 국회가 지혜를 모아 외교적 난국 대처를 위한 공동의 대안을 마련하는 일이 절실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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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한반도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는 기존 한·미동맹과 대북정책 기조를 흔드는 발언을 거듭해왔다. 미국의 한반도 정책이 단순한 궤도 수정이 아니라 한반도 안보질서를 뿌리째 흔들 만큼 근본적으로 변화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정작 한반도 문제에 대한 구상을 밝힌 적이 없다. 그의 한반도 관련 언급들도 확정된 정책으로 간주하기에는 단편적이고 논리적으로 허술하다. 대외정책 방향이나 외교 역량을 가늠할 만한 자료나 근거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은 해방 후 미국 대통령 가운데 가장 논란이 많고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대면하게 된 것이다.

 

트럼프가 표방하는 대외정책 기조는 미국이익 우선주의다. 그는 한·미동맹도 이 원칙에 따라 재조정될 가능성을 언급했다. 한국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이 거부할 경우 주한미군은 철수할 수 있다는 주장도 했다. 북한의 핵 위협이 문제라면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하면 되지 않겠느냐고도 했다. 한반도 안보질서는 물론 지구적 핵확산방지체제를 송두리째 흔드는 발상이다. 핵확산방지체제를 미국이 주도해온 것을 고려하면 실현 가능성이 의심스럽기도 하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6년 11월10일 (출처: 경향신문DB)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중국을 통해 북한을 압박하겠다며 기존 정책과 다르지 않은 주장을 했지만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 만나서 대화할 수 있다는 견해도 밝혔다. 과거엔 북한 원자로 정밀 타격을 주장한 적도 있다. 극단을 오가는 그의 대북 발언으로는 그 방향과 내용을 가늠할 수 없다. 그러나 선거 승리를 위해 도 넘는 발언을 했을 뿐 실제 대통령직을 수행할 때는 합리적인 정책을 채택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트럼프도 당선 직후 “미국을 우선하지만 모든 국가를 공정하게 대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유세 과정에서 여러 차례 모순적인 언급을 한 것을 고려하면 이 발언 역시 믿을 만한지 두고 봐야 한다.

 

한국은 이 예측 불가능성이란 새로운 도전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의 등장은 한반도 안보를 미국의 대북정책에 종속시키고 미·중 갈등의 하위 변수로 전락시킨 박근혜 대통령의 실책을 바로잡을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대안을 마련, 주변국을 설득하는 주도적 역할은 바로 한국이 해야 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국정마비 상태지만 정치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회복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마침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이나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도 트럼프 당선에 호의적인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이를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적극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트럼프에게 한반도 평화를 맡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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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1990년대 중반부터 ‘고난의 행군’이라고 부르는 혹독한 시련기를 거쳤다. 냉전 종식과 소련·동구권의 몰락, 중국의 개혁·개방 등 국제환경이 급변하고 김일성 주석 사망, 경제난 심화 등으로 체제가 위기에 봉착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주민들의 희생을 감수하며 펼친 대중 노력동원 캠페인이다.

북한은 고난의 행군을 시작하면서 외부세력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군정치와 강성대국을 주창했다. 북한은 이 시기를 거쳐 핵무기 개발에 성공했다. 지금 북한에서 핵무기는 선군정치를 통한 강성대국의 상징이며 김정일 정권의 가장 큰 위업으로 간주된다.

북한의 고난의 행군은 2000년대 초반에 끝났다. 하지만 북한은 지금 ‘제2의 고난의 행군’을 시작하고 있다. 이번 행군은 간난신고(艱難辛苦) 끝에 개발에 성공한 핵무기를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기나긴 여정이다. 북한은 이를 ‘핵·경제 병진 노선의 추구’라고 표현한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국제법상 엄연한 불법이므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수반한다. 북한이 경제발전을 이루려면 이 제재에서 벗어나야 하고 이는 곧 핵을 포기해야 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고 제재를 벗어나려 한다. 인도나 파키스탄처럼 예외를 인정받아 ‘사실상의 핵보유국’이 되는 것이 목표다. 사실상의 핵보유국이란 ‘불법적으로 핵무장을 했지만 제재는 받지 않는 나라’를 뜻한다.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각국과 우호적 여건을 조성하고 국제사회가 자신들의 핵무장을 묵인하도록 해 제재를 완화시켜야 한다. 북한이 지금 핵을 갖지 않은 여타 국가처럼 행동하면서 국제사회와 접촉면을 넓히고 외교영역을 확대하는 것도 자신들의 핵보유를 국제적으로 기정사실화하기 위한 장기 전략에 따른 것이다.

북한이 올해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발전을 목표로 설정하고 각종 대남 성명을 통해 지속적으로 남측에 대화를 제의하고 있는 것도 핵·경제 병진 노선의 일환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남북관계 개선은 핵·경제 병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직접적인 경제 협력을 유도할 수 있고 남북대화를 매개로 미국의 관여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 한·미가 주도하는 국제 대북제재의 균열을 노릴 수 있는 고리이기도 하다. 북한이 지난 4일 황병서·최룡해·김양건 등 권력 핵심 실세들을 대거 남측에 보낸 것은 핵·경제 병진을 위한 대남 전략의 결정판이다.

북핵에 대해 단호히 대처할 것을 요구하는 박 대통령 (출처 : 경향DB)


북한의 전략은 무모해 보인다. 한·미는 물론 중국·러시아도 북한의 핵보유에 반대한다.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이미지는 막무가내식 불법 핵무장국,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인권탄압국으로 각인돼 있다. 북한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미국은 공공연히 “핵·경제 병진 노선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한다. 이 말 속에는 “실패하도록 만들어주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 제2의 고난의 행군은 1차 때처럼 비참하지는 않겠지만 성공 가능성은 훨씬 낮다.

이 같은 상황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나라는 단연 한국이다. 남북 간 긴장 완화와 동질성 회복을 위해 북한과 대화하고 교류를 넓히는 것은 필수적이다. 북한이 개혁·개방에 나서고 주민생활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것도 지지해줘야 한다.

하지만 북한의 이런 움직임들이 궁극적으로 핵보유를 인정받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을 딜레마에 빠뜨린다. 그렇다고 대화를 거부하고 핵포기만을 주장하는 것은 북한의 핵보유 정당성만을 강화시켜 준다.

지금 한국은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고 한반도 평화·안정을 도모하는 동시에 북한을 핵포기로 유도하면서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을 적절하게 조절해야 하는 어려운 임무를 안고 있다. 다른 어떤 나라도 대신해줄 수 없는, 한국이 처한 가장 시급한 외교과제다.


유신모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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