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어제 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들어 첫번째 군사적 도발이다. 한반도를 넘어 아시아 평화와 안녕을 위협하는 행위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북한 미사일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아니고, ‘무수단급(사거리 3000~3500㎞)’ 개량형 미사일로 추정된다. 획기적으로 사거리를 늘리거나 운반 능력을 높인 미사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본격적인 도발이라기보다는 트럼프 미 신임 대통령이 꾸린 행정부의 반응을 떠보려는 시험적 성격이 짙다. 그렇다고 미사일 발사의 부당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핵·미사일 실험을 금지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들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다. 선제 북한 타격론까지 운위되는 미국 새 행정부의 정책 점검 및 조정 시기에서 북한이 도발로 얻을 이익은 사실상 전무하다. 오히려 격동하는 동아시아 정세 속에서 스스로를 험지로 몰 가능성이 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11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 탄도미사일 발사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팜비치 _ AFP연합뉴스

 

이는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10일(현지시간)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간 정상회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양국은 북핵과 미사일 위협 대처, 미·일동맹 등 안보 및 통상 협력 방안 등을 골자로 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이를 통해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영향력 확대를, 일본은 군사력 확대를 상호 보장하며 중국 견제라는 공동의 이익에 뜻을 같이했다. 북 미사일 발사는 이런 양국 주장에 정당성을 더해준 셈이다.

 

북한은 우방인 중국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미·중관계는 냉랭했으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트럼프 대통령 간 통화를 계기로 정상회담까지 거론되고 있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를 통해 중국의 대북지원 명분을 약화시켰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문제는 한국 정부의 대응이다. 정부는 어제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어 북 도발을 규탄하고 강력하게 대응키로 의견을 모았다. 북 미사일 발사의 부당함을 규탄하고 도발 억제 의지를 천명하는 것은 당연한 조처다. 그러나 강경 대응만 고집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당장 효율적인 강경 대응 수단도 없는 상황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면서 한반도 정세는 엄중해졌다. 더구나 한국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사태로 리더십 공백 상황이다. 무엇보다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의 안정적 관리가 중요한 시점이다. 북한의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하면서 주변 국가들과 함께 역내 불안정성을 완화하기 위한 노력을 벌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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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던 시국에 한 줄기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짙은 안개가 완전히 걷힌 것은 아니고 여전히 혼란스럽다. 왜 안 그렇겠는가.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밝히는 것이 웬 말이냐며 정부의 앵무새 역할을 자처하던 보수언론이 철저한 규명을 요구하고 있고, 보수진영조차도 들고일어나 대통령을 탄핵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한국은 뒤숭숭한 혼란의 아노미 상태다. 그런데 이것은 미국도 매한가지다. 미국에선 극빈층으로 하릴없이 추락해가는 중산층이 그것을 막아달라며 보수당의 부동산 재벌 트럼프를 뽑은 것이 모순처럼 보인다. 한마디로 정상과 비정상, 정의와 비정의, 그리고 민주주의적인 것과 반민주주의적인 것이 심히 헷갈리고 있는 시점이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을 일거에 정리해주는 아주 명쾌한 잣대가 있다. 민주주의는 민심의 충분한 반영을 보장한다. 미국과 한국에서의 민심은 공히 서민들의 삶을 갈수록 피폐하게 만드는 부패 기득권 세력의 척결을 요구한다. 현시점에서 미국과 한국에서의 민주주의와 반민주주의를 판별하는 쾌도난마의 잣대는 무엇일까?

 

먼저 미국이다. 미국에서 부패 기득권 세력은 바로 월가를 필두로 한 금권세력이다. 해서 미국에서 민주주의와 반민주주의를 가르는 잣대는 바로 월가 편을 드느냐이다. 그래서 월가가 더 이상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지 못하게 월가를 쪼개 버리겠다는 샌더스야말로 확실한 민주세력이다. 트럼프도 당선 이전 상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누가 봐도 월가와 척지는 것같이 보인 반월가 인사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월가를 대대적으로 손보겠다며 선전포고를 했었고, 그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트럼프는 월가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 미국 연방선거관리위원회가 공개한 트럼프의 금융 관련 기록만 봐도 트럼프는 월가의 대형 금융기관과 어떤 관계도 맺고 있지 않았다. 전직 골드만삭스 직원이었다가 지금은 뉴욕대 재정학 교수인 로이 스미스가 “월가와의 연고나 연계성을 트럼프에게서 거의 찾을 수 없다”고 ‘뉴욕타임스’에서 말하는 것을 보면 그것은 신빙성이 높다. 물론 지금도 그런지는 다시 따져야 할 문제다. 어쨌든 당시에는 그랬기에, 월가를 철천지원수처럼 여기는 미국의 대다수 서민들이 클린턴에게 등을 지고 비록 출신이 자신들과 한참이나 거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에게 한 가닥 희망을 걸었던 것이다. 즉 미국의 성난 민심은 월가와의 밀착관계 여부를 민주주의자의 가늠자로 여겼던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나는 현시점에서 민주와 반민주를 판별하는 잣대는 개헌론이라고 생각한다. 탄핵 이후 혼미한 정국을 틈타 개헌론이 또다시 고개를 들 것이다. 조기대선이 가시화된 현시점에서 시간상, 그리고 여건상 개헌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개헌론자들의 속셈은 뻔하다.

 

개헌론을 고리로 인위적인 정계개편을 꾀하고 그것을 통해 기사회생, 심지어 정권연장을 도모하려는 간교한 정치공학적 술책이다. 단언하건대 그들은 개헌을 입에 올리기보다 자신들이 저지른 죗값으로 석고대죄와 정계은퇴를 해야 마땅하다. 무엇보다 국민은 개헌론을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먼저 들고나왔음을 잊어버려서는 안된다. 지금 국민이 원하는 것은 바로 해방 이후의 반민주주의적 적폐의 청산이다. 암 덩어리 환부를 완전히 도려내고 정의로운 나라를 다시 세우는 것이다. 이 마당에 썩어 문드러진 현 체제 고수를 위한 정략적 꼼수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우리는 수술대 위에 암 환자를 이제 막 올려놓았다. 개헌론자는 정밀한 수술 없이 얼렁뚱땅 얼른 봉합하고 싶어 안달하는 세력이다. 지금은 적폐의 근원을 뿌리째 뽑아 버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성공적 수술의 관건은 개헌이 아니다. 이 시점에 개헌을 입에 올리는 자, 그는 그 소중한 기회를 박탈하고자 하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적이다.

 

김광기 | 경북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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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나 경쟁자와 불가피하게 손을 잡아야 할 때가 있다. 어제는 적이었지만 오늘은 친구로 지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영원한 친구는 아니고 언제든 다시 적이 될 수 있다. 소위 ‘프레너미(Frenemy)’이다. 친구라는 뜻의 ‘프렌드(Friend)’와 적을 의미하는 ‘에너미(Enemy)’를 합쳐 만든 말이다. 철천지원수인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한배에 타서 풍랑을 만난 오월동주(吳越同舟) 상황, 한 남성을 차지하기 위해 격렬하게 다투다가 어느새 함께 웃고 수다를 떠는 여성, 대기업에 맞서기 위해 경쟁 관계인 중소기업끼리 구축한 연합 전선 등을 설명할 때 사용된다.

 

전 세계를 상대로 패권 경쟁을 벌이면서도 필요에 따라서는 보조를 맞추는 미국과 중국도 대표적인 프레너미 관계이다. 2012년 2월 당시 중국 국가부주석인 시진핑이 미국을 방문하자 미 언론은 “프레너미가 왔다”고 표현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관계를 ‘프레너미’로 분석하기도 한다. 박 대통령과 최씨는 40년 지기지만 국정농단 사건의 죗값을 덜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책임을 떠넘겨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원수지간이 됐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뒤편 왼쪽에서 두번째)가 선거본부장을 맡았던 켈리언 콘웨이(뒤편 왼쪽) 등과 함께 2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 본사를 방문해 경영진과 칼럼니스트, 기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뉴욕 _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엊그제 뉴욕타임스를 방문해 이 신문을 ‘세계의 보석’이라고 극찬했다. 함께 만난 20여명의 기자에게는 “내가 잘못하면 언제든 전화해 달라. 기쁘게 들을 것”이라고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대선 동안 힐러리 클린턴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반면 트럼프에 대해서는 여성 편력과 세금 탈루 의혹 등을 거론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트럼프도 대선 기간 뉴욕타임스를 망해가는 신문사라고 부르는 등 적대감을 표출했다. 미국 정가에서는 트럼프가 뉴욕타임스를 프레너미로 삼으려 한다며 우호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위정자라면 언론의 선의 있는 비판은 수용해야 한다. 민의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프레너미와 어감이 다르지만 한국에서는 정치인 등 취재원과 언론의 이상적인 관계를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너무 가까워 유착이 생겨도 안되고, 너무 떨어져 소통이 불가능해도 안된다는 의미다.

 

오창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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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말 필자는 한 학술 포럼에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20세기 라틴아메리카의 변혁을 대표하는 멕시코와 쿠바의 혁명이 남긴 성과와 의미를 서양 세계에서 발생한 혁명과 비교하면서 두 혁명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논의했다. 8월 말 이 학술 포럼을 기획할 때 한국 사회에서 ‘혁명’이라는 단어는 무척 낯설어 보이거나 다양한 각도에서 그 의미를 되새길 기회가 크게 줄었다는 느낌뿐이었다. 물론 현실 이면에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잠재되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순 없었다.

 

그런데 지난주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은 이렇게 선언했다. “구체제를 넘어설 강력한 정치혁명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100만 촛불, 시민혁명의 뜻입니다.” 시국선언이 일상화되고, 드라마보다 뉴스가 인기를 끌고 있으며, 시민혁명 선언까지 나왔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시민혁명 운운하며 법 불복종 운동을 전개했다는 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사유 중 하나로 지적된 사실을 떠올린다면 상전벽해라 할까.

 

무능, 불통, 속임수로 국민에게 고통과 절망을 안겨준 박근혜 정권 4년의 마각(馬脚)이 드러나고 있다. 박근혜 정권은 경제 침체, 청년 실업, 세월호 참사 은폐와 조사 방해, 위안부 문제 졸속 협상, 역사교과서 국정화 등 폭정으로 나라를 결딴내면서도 대북 강경책과 반대자들에 대한 종북 낙인찍기로 기득권층과 정권의 이익을 지키기에 급급했다. 박근혜 정권은 비선 실세의 국정 유린과 더불어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대변되는 공작·사찰 정치를 드러냈다. 1970년대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의 피해자로 정신이상증세에 시달려온 김승효씨가 영화 <자백>에서 “난 무죄야”를 외치며 항변한 대로 그것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수단도 가리지 않은 박정희, 청와대, 중앙정보부 정치”의 욕된 유산이다.

 

내전 중에도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에 참가한 시리아 축구팀이 보여준 ‘늪 축구’에 비견할 만한 엉망진창의 ‘늪 정치’가 한국에서 펼쳐지고 있다. 노골적인 버티기와 시간 끌기 작전 속에 상대방의 실책에 편승한 요행수 한 방으로 국면이 전환되면 더 좋다는 식의 치졸한 속내가 엿보인다. 비선의 존재와 국정 유린을 눈감아온 불의하고 기만적인 고위 공직자, 친박 집단 등 ‘부역자’들은 일벌백계해야 할 법적·역사적 심판의 대상일 뿐이다. 1944년 8월 말 파리가 해방된 이후 비시(Vichy) 정부의 최고위급 인사들에게 줄줄이 중형을 내리는 등 대독 협력자 10만명에게 유죄를 선고한 프랑스의 과거사 정리 사례를 상기한다면 과격한 발상일까. 그 엄격하고 단호한 성격에 공감하는 이들의 정서를 이해하고도 남는다.

 

바야흐로 역사의 신은 한국인을 중요한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다. 주권자인 국민이 참여자와 책임자로서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변화의 방향이 어떠해야 할지 고민하고 더 강력하게 의사를 표출해야 할 상황이다. 후진적이기 짝이 없는 구태로 결코 후퇴하지 못하도록 임계점을 넘어야 한다. 각자의 상상력을 익숙한 틀, 이른바 합법의 틀에 가둘 필요는 없다. 구체제를 무너뜨린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이나 독재체제에 저항한 20세기의 멕시코·쿠바 혁명은 모두 제한과 합법의 틀을 뛰어넘었기에 획기적인 역사를 만들어냈다.

 

2016년 11월 한국의 상황은 아직 1960년 4·19 혁명과 1987년 6월 항쟁의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대규모 촛불 집회에서 국민의 성숙한 의식이 돋보이고 평화적인 시위가 정착되었다는 데 안도할 수만 없다. 이 순간 우리에겐 정말 시민혁명이 필요하다. 그것은 구체제의 타도만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민혁명이란 제대로 된 통합적 국가를 만들고 정비해가는 험난하고 장기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그런 방향을 향해 발길을 옮겨야 한다. 이번 국정 유린 사태가 한국의 지배 집단이 활개 치던 모든 영역을 철저히 재구성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요란한 경고음을 내고 있으니 말이다.

 

박구병 | 아주대 교수·서양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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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한반도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는 기존 한·미동맹과 대북정책 기조를 흔드는 발언을 거듭해왔다. 미국의 한반도 정책이 단순한 궤도 수정이 아니라 한반도 안보질서를 뿌리째 흔들 만큼 근본적으로 변화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정작 한반도 문제에 대한 구상을 밝힌 적이 없다. 그의 한반도 관련 언급들도 확정된 정책으로 간주하기에는 단편적이고 논리적으로 허술하다. 대외정책 방향이나 외교 역량을 가늠할 만한 자료나 근거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은 해방 후 미국 대통령 가운데 가장 논란이 많고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대면하게 된 것이다.

 

트럼프가 표방하는 대외정책 기조는 미국이익 우선주의다. 그는 한·미동맹도 이 원칙에 따라 재조정될 가능성을 언급했다. 한국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이 거부할 경우 주한미군은 철수할 수 있다는 주장도 했다. 북한의 핵 위협이 문제라면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하면 되지 않겠느냐고도 했다. 한반도 안보질서는 물론 지구적 핵확산방지체제를 송두리째 흔드는 발상이다. 핵확산방지체제를 미국이 주도해온 것을 고려하면 실현 가능성이 의심스럽기도 하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6년 11월10일 (출처: 경향신문DB)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중국을 통해 북한을 압박하겠다며 기존 정책과 다르지 않은 주장을 했지만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 만나서 대화할 수 있다는 견해도 밝혔다. 과거엔 북한 원자로 정밀 타격을 주장한 적도 있다. 극단을 오가는 그의 대북 발언으로는 그 방향과 내용을 가늠할 수 없다. 그러나 선거 승리를 위해 도 넘는 발언을 했을 뿐 실제 대통령직을 수행할 때는 합리적인 정책을 채택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트럼프도 당선 직후 “미국을 우선하지만 모든 국가를 공정하게 대하겠다”고 밝혔다. 물론 유세 과정에서 여러 차례 모순적인 언급을 한 것을 고려하면 이 발언 역시 믿을 만한지 두고 봐야 한다.

 

한국은 이 예측 불가능성이란 새로운 도전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의 등장은 한반도 안보를 미국의 대북정책에 종속시키고 미·중 갈등의 하위 변수로 전락시킨 박근혜 대통령의 실책을 바로잡을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대안을 마련, 주변국을 설득하는 주도적 역할은 바로 한국이 해야 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국정마비 상태지만 정치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회복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마침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이나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도 트럼프 당선에 호의적인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이를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적극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트럼프에게 한반도 평화를 맡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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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뉴욕의 클린턴재단 앞에서는 성난 아이티인들의 항의 시위가 있었다. 클린턴재단이 왜 아이티인들의 분노의 대상이 되었을까? 2010년 1월 아이티는 7.0의 강진으로 아수라장이 됐다. 힐러리는 국무장관, 남편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파견한 특사 자격으로 각기 아이티를 방문해 지원과 재건을 약속했다.

 

그러나 말처럼 안 된 것이 문제다. 요지는 이렇다. 아이티를 위한 지원금 1달러당 실질적으로 아이티 국민들을 위한 지원에 쓰인 것은 1센트 미만이다. 나머지 돈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이른바 ‘대박 사업’에 조달됐다. 그 사업을 딴 사람들은 돈방석에 앉았다. 그런데 그 계약을 따낸 자들은 진작부터 클린턴재단에 그리고 힐러리와 남편에게 돈으로 기름칠을 잔뜩 한 자들만이 수혜를 입을 수 있었다.

 

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가 연설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재민을 위한 임시 대피소를 만드는 계약엔 클린턴재단의 충실한 기부자인 워런 버핏이 소유한 클레이턴 홈스가 최저가로 응찰해 낙찰됐다. 클린턴재단의 또 다른 기부자 오소리오가 회장인 이노비다란 회사도 주택을 건설한다는 명목으로 1000만달러의 정부융자를 받는다. 그 보답으로 오소리오는 클린턴 부부의 지인들을 이사진으로 앉힌다. 정부융자를 받으려면 까다로운 검증 절차로 수년이 걸리는데 이노비다는 단 2주 만에 융자를 따낸다.

 

해외 기업도 마찬가지다. 브라질의 OAS도 도로건설 명목으로 지원금을 받았는데, 건설비는 부풀려졌고 하라는 도로 건설은 안 하고 아이티 전 대통령 프레발의 사유지에 건물만 지었다. 프레발은 클린턴의 오랜 친구이고, OAS는 클린턴재단의 기부자다. 압권은 디지셀이다.

 

디지셀은 아일랜드인 오브라이언의 기업이다. 클린턴 부부는 국민세금 수백만달러까지 그에게 대주며 아이티의 무선전화사업권을 따준다. 힐러리의 문고리 권력으로 알려진 셰릴 밀스 국무장관 비서실장이 정부지원금으로 무선전화기를 아이티 국민들에게 무상 제공하는 것으로 이 사업은 운을 뗐다. 오브라이언은 클린턴재단에 2010~11년 사이 500만달러의 기부금을 냈을 뿐만 아니라 빌 클린턴이 아일랜드에서 행한 세 차례의 강연료 60만달러도 충당했다. 이 강연이 있었을 때는, 디지셀이 힐러리가 장관으로 있는 국무부로부터 아이티의 무선전화사업권 허가를 따내느냐 마느냐 하는 민감한 시기였다. 클린턴재단의 오랜 기부자인 한국 기업 ‘세아’도 아이티에서 사업권을 따낸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친·인척이 빠질 수는 없는 법. 교도관 출신인 힐러리의 동생은 아이티에서 50년 금광채굴권을 따냈다. <힐러리의 미국>의 저자 드소자는 아이티재건 사업권은 “클린턴 집안의 돈궤를 채우는 대가로 주어진 것”이라고 요약한다.

 

힐러리가 국무장관으로 재직 시 직접 만났거나 통화한 민간인 154명 중 85명이 클린턴재단에 총 1억5600만달러를 기부했다고 AP통신은 보도했다. 한 마디로 클린턴재단은 힐러리가 국무장관으로 있는 동안 은밀히 돈을 받고 대신 각종 민원 해결과 특혜 수여의 창구역할을 한 것이다. 이는 비선을 통한 명백한 패거리 정치와 타락한 정경유착의 전형이다. 이에 보스턴글로브는 “클린턴재단은 모금활동과 정치적 활동을 당장 멈추어야 한다”고 일갈했다.

 

클린턴재단이라는 비선조직을 통한 힐러리의 국정 농단과 사익추구는 최근 TV조선과 한겨레신문이 단독 보도한 미르·K스포츠재단과 비선실세 최순실을 떠올리게 한다. 야당은 박근혜 정부의 권력형 비리라며 총공세를 펼치고 있고, 청와대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찍어 누를 태세다. 태평양을 사이에 둔 두 여제(女帝)가 수상한 재단 문제로 곤경에 처했다. 힐러리는 이 때문에 대선가도에 빨간불이, 박근혜 대통령은 레임덕 가속화라는 비상등이 켜졌다. 그러나 어쩌면 곤경은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단 법과 정의가 살아 있다면 말이다.

 

김광기 | 경북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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