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미국 주요 방송과 신문들은 매일 북한과 미국의 전쟁 가능성을 보도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괌 포위사격 발언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 경고로 위기의식은 최고조에 달했다. 온라인에서는 핵전쟁 대피시설과 비상식량 등 전쟁 대비 물품들의 판매가 급증했다. 곧 전쟁이라도 날 것 같던 미국 언론들의 호들갑은 한순간에 잠잠해졌다. 트럼프의 백인 우월주의자 폭력사태 두둔 발언 이후 북한 뉴스는 찾기 어려워졌고 화제는 미국 사회의 현존하는 병폐인 인종주의 문제로 급반전됐다.

 

미국 입장에선 한국 시민들의 반응이 더 인상적이었을 수도 있다. 뉴욕타임스 서울 주재기자는 최근 이번 사태를 회고하는 기사에서 “북핵 위기에 대해 보도할 때마다 마치 두 개의 현실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고 적었다. 전쟁 위기를 전하는 긴박한 뉴스에 비해 서울 시민들의 반응은 너무나 차분하고 심지어 무관심했다는 것이다. 한국 시민들은 20년 넘게 반복되는 북핵 위기를 한반도 현실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모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월10일 뉴저지주 베드민스터 내셔널골프클럽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 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베드민스터_AP연합뉴스

 

미국 사회의 위기감은 흙탕물 가라앉듯이 진정되고 있지만 물밑의 현실은 변한 게 없다. 오히려 위기는 이제 본격화됐다는 게 맞는 말이다. 빈센트 브룩스 한·미 연합사령관의 말처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 발사는 “게임 체인저”였을 수 있다. 미국은 이제 북핵을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자국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북한이 임박한 위협으로 다가오면서 미국 당국자들과 전문가들은 북핵 문제에 대한 속내를 상당 부분 드러냈다. 한국 입장에선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의 순간’에 직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은 이 때문이다.

 

2년 후라고 가정해보자.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핵탄두 소형화와 대기권 재진입 기술까지 터득하고 활용 가능한 ICBM을 모처에 실전배치했다고 발표한다. 미 국방정보국(DIA)은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북한의 ICBM 완성까지 2년으로 예상했다가 1년 앞당겼다고 하니 내년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 순간 한·미는 어떻게 대응할까. 트럼프 정부의 군사적 옵션은 더 이상 공허한 협박이 아닐지 모른다. 군사적 긴장은 극에 달할 것이고 각종 군사적 옵션이 거론될 것이다. 한반도는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에 빠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가 “거기(한국)서 죽는 것이지 여기(미국)서 죽는 게 아니다”라며 북한과의 전쟁불사론을 폈다는 공화당 의원의 전언은 새삼 공포스럽다.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도 이미 공격 징후가 없어도 예방타격 가능성까지 거론한다. 뉴욕타임스의 데이비드 생어는 지난 20일 “2002년 이라크전 이후 백악관에서 적국에 대한 선제적 군사행동의 장단점에 대해 이렇게 많은 토론이 이뤄진 적이 없다”고 전했다.

 

다른 선택도 있다. 북한을 파키스탄처럼 법적으로는 아니지만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미국 전문가들 중 일부는 이미 북핵을 현실로 받아들이자고 말한다.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DNI 국장을 지낸 제임스 클래퍼는 “이제 우리는 북핵을 받아들이고 한계를 정하거나 통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머리에 핵을 이고 살아야 한다. 내부적으로 전술핵 도입, 핵개발 등 핵으로 핵을 대응하자는 요구도 이어질 것이다.

 

한·미 연합훈련을 시작으로 며칠 잠잠하던 한반도는 다시 시끄러워질 조짐이다. 미국 언론들이 호들갑을 떨 북핵 위기가 몇 번 더 찾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한반도 전쟁이냐 북핵 인정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진실의 순간’만은 피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는 20년을 넘게 끌어온 북핵 외교에서 한·미의 완패를 의미한다. 서울 시민들은 무관심하지만 한국 정부 당국자들과 외교관들은 어느 때보다 긴장한 채 현장을 뛰어다니고 있을 것이다. 아직은 시간이 있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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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키는 1차적 책임은 북한에 있지만 미국의 도발적 행태 역시 군사적 불안을 부추기는 주요 요인이다. 미국은 연일 일관성 없는 거친 발언으로 북한을 자극하고 있다. 지난주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이 잇따라 북한에 대한 ‘군사적 옵션’ ‘예방전쟁’을 언급했다. 북한이 도발하지 않더라도 미국이 먼저 북한을 공격할 수 있다는 의미다.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각료들과 북한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북한은 미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방편으로 핵개발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핵과 미사일 개발 문제를 풀어야 할 과제를 미국이 안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군사 대국이자 국제사회의 지도적 국가로 전쟁 위험에 대해 신중하고 책임있게 행동해야 할 책무가 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은 지금껏 세계가 보지 못한 ‘화염과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한술 더 떴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도 9일 ‘정권의 종말과 파멸’ 운운했다. 북한을 자극해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가기로 작정한 듯한 발언이다.

 

인류 역사에서 지도자의 우발적 행동이 전쟁에 단초를 제공한 경우가 적지 않다. 트럼프 리스크를 걱정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강대국인 미국의 대통령이고 “핵 무기를 왜 사용하지 못하느냐”는 트럼프라 해도 남의 나라 운명까지 결정할 자격은 없다. 그런데 어제 그의 측근들은 트럼프의 대북 경고가 즉흥적인 발언이었다며 주워 담았다. 초군사강국의 지도자가 이처럼 경거망동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건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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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후 유럽 역사는 독일, 영국, 프랑스, 러시아 간 견제와 균형의 역사였다. 네 나라가 서로 물고 물리면서 세력 균형자 노릇을 했다. 독일은 공포이자 비난의 대상이었다. 어느 누구도 강력한 독일도, 분열된 독일도 원치 않았다. 어떤 경우든 유럽의 세력 균형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독일 입장으로서는 영향력을 행사해도, 하지 않아도 욕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것이 국제관계 속에서 형성된 ‘독일 딜레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8일(현지시간) 뮌헨에서 열린 기민·기사당 합동 행사에 참가해 연설 도중 맥주잔을 들어보이며 웃고 있다. 뮌헨 _ AFP연합뉴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독일 딜레마’ 속으로 뛰어들려는 걸까. 메르켈이 지난 28일 “유럽의 운명은 우리의 손에 맡겨야 한다”고 한 발언을 보며 든 생각이다. 메르켈은 맥주파티 형식의 정당행사에서 “이것이 지난 며칠간 경험한 것”이라고 말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및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집단방위를 규정한 나토협약 5조 준수를 거부하고 파리기후협정을 반대한 데 대한 불만으로 해석됐다. 파장이 컸다. 유럽과 미국의 결별선언으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외교협회(CFR) 리처드 하스 회장은 “분수령”이라고 표현했다. 파이낸셜타임스 칼럼니스트 기드온 라흐만은 4개월여 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70년 된 대서양동맹에 의문을 품게 한 점 등을 들어 “메르켈의 실수”라고 했다.

 

메르켈 측은 다음날 진화에 나섰지만 파문이 가라앉을지 불투명하다. 분명한 것은 그의 발언이 맥주를 마시며 늘어놓을 넋두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국제정세를 분석한 끝에 내린 자신감의 표현일 수 있다. 영국은 지난해 유럽연합 탈퇴로 대륙에서 멀어졌다. 풋내기 정부 프랑스는 독일과 손잡고 러시아에 대항할 태세다. 미국은 유럽을 버리려고 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그의 몸속에서 세력 균형자로 나서야 한다는 욕구가 일렁이지 않을까.

 

실제로 유럽에서 독일의 영향력에 비례해 그의 위상은 높아가고 있다. 오는 가을이면 4선 총리도 가능하다.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나, ‘라인강의 기적’ 콘라트 아데나워 총리에 견줄 만하다. 메르켈의 발언은 주워담을 수 없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나머지 국가 지도자들의 견제가 불을 보듯 뻔하다. ‘메르켈 딜레마’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조찬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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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는 2006년 장 출혈로 물러난 뒤 애용하던 군복을 벗고 독일산 아디다스 운동복을 입고 다녔다. 왜 아디다스인가에 대해서는 쿠바 서민들이 좋아하는 브랜드이고 올림픽 때 쿠바 대표팀을 후원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부터 적대국인 미국산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얘기까지 설이 분분하다.

 

카스트로가 스포츠를 국위 선양의 도구로 활용했다는 것은 알려진 얘기다. 쿠바는 야구와 복싱 강국이다. 1992년 LA올림픽에서는 야구에서 금메달을 땄다. 이런 영웅들이 고액연봉을 위해 목숨을 걸고 미국으로 망명한 것은 카스트로에게는 아이러니였을 것이다.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2006년 7월21일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 정상회의에 대항해 만들어진 대안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아르헨티나 코르도바를 찾아 대중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코르도바 _ AFP연합뉴스

 

북한과의 관계도 빼놓을 수 없다. 카스트로는 2013년 당 기관지 ‘그란마’ 기고에서 “1982년 소련 서기장에 취임한 유리 안드로포프가 우리에게 미국 공격 시 자력으로 싸워야 한다고 얘기했다. 다른 친구에게 무기 제공을 부탁했다. ‘경험 많고 나무랄 데 없는’ 김일성 동지는 1센트도 요구하지 않고 AK소총 10만정과 탄약을 보내왔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2013년 봄 북한의 휴전협정 파기 선언으로 한반도 긴장이 높아지자 “전쟁 회피 의무는 미국에 있다”고 한 것도 카스트로였다.

 

이런 카스트로가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체 게바라 등 동지들이 타계한 터라 남미 좌파 마지막 혁명가의 죽음이라 할 만하다. 1953년 정부군을 습격하다 체포된 뒤 혁명의 권리에 대해 일갈한 법정진술은 유명하다. 그는 ‘정치적 권력은 인민에게 있다, 인민은 폭군을 몰아낼 의무가 있다’(존 밀턴), ‘정부가 권리를 침해할 때 불복종은 인민의 신성한 권리이자 절박한 의무’(프랑스혁명 인권선언) 등을 예시하며 “폭정에 항거한 반란은 권리”라고 주장했다. 2년 복역 뒤 석방된 그는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권력을 장악했다. 이후 그 자신 장기독재의 길에 빠진 것 또한 아이러니다.

 

한국에선 매주 토요일 전국의 광장에 시민들이 모여 혼군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전 세대의 혁명이 몇몇 혁명가 주도로 이뤄졌다면 지금은 다수 시민들에 의한 비폭력·평화혁명이 진행 중이다. 카스트로가 하늘에서 한국의 ‘피플파워’ 풍경을 보고 있다면 어떤 평가를 내릴까.

 

박용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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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나 경쟁자와 불가피하게 손을 잡아야 할 때가 있다. 어제는 적이었지만 오늘은 친구로 지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영원한 친구는 아니고 언제든 다시 적이 될 수 있다. 소위 ‘프레너미(Frenemy)’이다. 친구라는 뜻의 ‘프렌드(Friend)’와 적을 의미하는 ‘에너미(Enemy)’를 합쳐 만든 말이다. 철천지원수인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한배에 타서 풍랑을 만난 오월동주(吳越同舟) 상황, 한 남성을 차지하기 위해 격렬하게 다투다가 어느새 함께 웃고 수다를 떠는 여성, 대기업에 맞서기 위해 경쟁 관계인 중소기업끼리 구축한 연합 전선 등을 설명할 때 사용된다.

 

전 세계를 상대로 패권 경쟁을 벌이면서도 필요에 따라서는 보조를 맞추는 미국과 중국도 대표적인 프레너미 관계이다. 2012년 2월 당시 중국 국가부주석인 시진핑이 미국을 방문하자 미 언론은 “프레너미가 왔다”고 표현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관계를 ‘프레너미’로 분석하기도 한다. 박 대통령과 최씨는 40년 지기지만 국정농단 사건의 죗값을 덜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책임을 떠넘겨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원수지간이 됐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뒤편 왼쪽에서 두번째)가 선거본부장을 맡았던 켈리언 콘웨이(뒤편 왼쪽) 등과 함께 22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 본사를 방문해 경영진과 칼럼니스트, 기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뉴욕 _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엊그제 뉴욕타임스를 방문해 이 신문을 ‘세계의 보석’이라고 극찬했다. 함께 만난 20여명의 기자에게는 “내가 잘못하면 언제든 전화해 달라. 기쁘게 들을 것”이라고도 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대선 동안 힐러리 클린턴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반면 트럼프에 대해서는 여성 편력과 세금 탈루 의혹 등을 거론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트럼프도 대선 기간 뉴욕타임스를 망해가는 신문사라고 부르는 등 적대감을 표출했다. 미국 정가에서는 트럼프가 뉴욕타임스를 프레너미로 삼으려 한다며 우호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다. 위정자라면 언론의 선의 있는 비판은 수용해야 한다. 민의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프레너미와 어감이 다르지만 한국에서는 정치인 등 취재원과 언론의 이상적인 관계를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너무 가까워 유착이 생겨도 안되고, 너무 떨어져 소통이 불가능해도 안된다는 의미다.

 

오창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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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또다시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15일 보스턴 국제마라톤 대회에서 폭탄 2개가 터져 3명이 숨지고 여러 사람이 다쳤습니다. 다친 이들에 대한 기사를 보니, 다리를 절단당한 사람들이 최소 11명이라고 하네요. 그 중엔 아홉 살 어린 여자아이도 있고요. 숨진 사람 중에도 어린 소년이 있었습니다. 

중요한 건 나이가 아니겠지요. 이 사람들에게 이런 짓을 한 건 대체 누구이며 목적은 무엇이었을까요.



18일(한국시간으로는 18일 오후, 미국 시간으로는 18일 새벽) 보스턴 현지 일간지인 보스턴글로브의 홈페이지입니다. 수사당국이 동영상을 판독해 용의자로 보이는 인물을 찾아냈고,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뉴스입니다. 



CNN 방송 웹사이트에는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예쁜 아가씨의 얼굴이 메인으로 올라와 있습니다. 보스턴대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던 뤼링쯔(呂令子)는 결승선 부근에서 마라톤을 관람하다가 참변을 당했습니다. 



이제 신문은 내지 않고 온라인 버전과 주말판 잡지만 내는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

크리스천과도, 사이언스와도 관련이 없는 '고급' 언론입니다. 여기 웹사이트도 한번 보시죠.



왼쪽 윗부분, 'Editors's picks'라는 코너에서 보스턴 피해자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 지를 소개하고 있네요. 


사실 18일 미국 언론들 보도는 요동을 쳤습니다. 연방수사국(FBI)이 보스턴 공격 용의자를 잡았다고 CNN 속보가 떴는데 잠시 뒤 FBI는 이를 부인했습니다. 전날 백악관과 미 의회에 독극물인 '리친'이 들어있는 편지가 배달됐지요. 그 리친 사건의 용의자를 체포했다는 소식과 맞물려 혼선을 빚은 모양입니다. 

경향신문을 비롯해 한국 언론들도 "보스턴 테러 용의자 신원 확인" 기사를 내보냈다가 허둥지둥 철회했습니다. FBI가 동영상을 분석해 용의자로 보이는 사람을 찾아냈다는 것이지, 이 사람의 '신원'을 '확인'했다거나 '체포'했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급기야 FBI가 미국 언론들에게 자제를 요청했습니다. 


CNN·폭스 등 美 언론, 보스턴 테러 속보 경쟁 도마 위


FBI는 이날 오후 성명을 발표해 “(보스턴 테러 이후)지난 하루 반 동안 많은 기사들이 쏟아졌으나 이는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틀린 내용이 많았다”며 “이 같은 오보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초기 수사가 이뤄지고 있어 조심해야 할 시점”이라며 “보도 전 당국에 사실 확인을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사실은 보스턴 사건을 '테러'라고 불러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약간 논란이 있었습니다. 테러라는 말 자체가 공포를 뜻하면서, 동시에 공포를 더욱 유포하는 효과를 내니까요. 백악관이 사건 직후 이 사건을 테러로 규정했다가 '섣부른 판단'이라는 지적을 받았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를 의식했는지 기자회견에서 의도적으로 '테러'라는 표현을 피했습니다. 저희도 기사에서 되도록이면 '테러'보다는 '폭탄공격' 등으로 쓰려고 하는데,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군요.


다시 미국 신문들로 돌아가보죠.



뉴욕타임스입니다. 보스턴 사건 기사는 가운데에 사진과 함께 처리했고, 온라인판의 '톱'이라 할 수 있는 왼쪽 위 자리는 총기규제를 결국 무위로 돌린 미 상원의 행태를 다룬 기사로 채웠군요.



워싱턴포스트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총기규제 제안이 상원에서 무위로 돌아간다"는 비판을 담았습니다. 보스턴 사건 용의자를 비디오에서 찾아냈다는 기사는 그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가운데에는 17일 밤 일어난 텍사스 주 비료공장 폭발사고 사진과 기사가 실렸군요.



이래 저래 미국은 어수선한 4월을 보내고 있는 듯합니다. 


국제부 구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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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러스 러미스 | 미국 정치학자, 오키나와 거주


 

몇년 전, 기밀 해제된 미국 전략사령부의 한 문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우리가 수용할 수 없는 행동 또는 피해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소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대응을 너무 구체적으로 밝혀서는 안된다. 우리가 억지하려는 적의 행동이 나타나려 할 때 미국이 적에게 가할 수 있는 조치의 모호성에서 비롯되는 장점 때문에 우리가 너무 충분히 합리적이고 냉정한 존재로 그려지는 것은 손해이다. 일부 요소는 잠재적으로 ‘통제 불가능’해질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적국 정책 결정자들의 마음 속에 두려움과 의구심을 만들고 강화시키는데 이로울 수 있다. 두려움의 본질은 실제로 작동하는 억지력에 있다. 핵심 이익이 공격받을 경우 미국도 ‘비합리적이고 복수심에 가득찰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우리가 모든 적들에게 투사하고자 하는 국가적 페르소나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


리처드 닉슨과 헨리 키신저는 이를 ‘미치광이 전략’이라고 불렀다. 핵무기가 억지력으로 작용하려면 단순히 핵무기를 보유하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문제는 보통의 인간적 감정이나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실제로 그걸 사용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핵무기에 의한 첫번째 타격은 도덕적으로 매우 꺼림칙한 일이 될 것이고, 두번째 타격은 이미 때가 너무 늦은 뒤의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핵무기가 효과적인 억지력을 갖기 위해서는 정부는 적들에게 자국 지도자가 핵무기를 쓸 정도로 미치광이라는-위 문서 표현에 따르자면 ‘통제 불가능한’ 또는 ‘비이성적이고 복수심이 강한’-점을 납득시켜야 한다.


미국 핵잠수함 부산입항 (경향DB)


따라서 이것은 미국 대통령이 누구냐의 문제는 아니다. 누가 대통령이든, 미치광이 전략은 미국 정책의 한 부분이다. 미국은 실제 핵무기를 사용할 정도로 정부 내에 미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적국들에 납득시켰다는 점에서, 그러한 미치광이 전략은 성공했다. 적국뿐만 아니라 나 역시 그렇게 이해하고 있다. 어쨌든 미국은 핵무기를 실제 사용함으로써 언제든 그걸 쓸 수 있음을 입증한 유일한 나라다.


의도했건 안 했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역시 적들에게 이러한 (미치광이) 국가적 페르소나를 투사하는데 성공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4월7일 현재 미국과 북한은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가장 위험한 핵 대치를 벌이고 있다. 북한 당국은 핵 공격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한다. 미국 당국은 북한은 핵 공격이 자살행위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러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자살’이란 표현에서 보듯, 미국 역시 보복 타격을 할 때는 핵으로 할 것임을 시사한다.


북한은 지난 60년간 미국의 핵 공격 위협 아래서 살아왔다. 그 기간 대부분 북한은 어떠한 핵 억지력도 갖추지 못한 채였다. 그러한 경험이 그 나라의 합리성을 증진시켰을까, 아니면 서서히 나타나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피해망상증과 분노에 찬 공격, 돌발적인 통제불능한 폭력-를 가져왔을까. 후자이기를 바라지는 말자.


대한민국의 햇볕정책이 막 닻을 올린 2000년 9월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미국 네오콘 싱크탱크는 ‘미국 방위의 재건’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거기엔 이런 문장이 있다. 


“(…) 어떠한 현실적인 (한반도) 통일 이후 시나리오에서도 미군은 북한에서 안정화 작전의 한 역할을 담당할 것 같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반도 통일’은 “한반도 북부에 대한 미군의 군사적 점령”을 의미했다. 2개월 뒤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이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많은 이들이 미 행정부에 기용됐다. 


2년 뒤인 2002년 1월29일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이란, 북한을 ‘악의 축’으로 선언했다. 당시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할 준비를 시작했다. 의미심장하게도 유엔 무기감시단이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없다고 확인한 뒤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했다. 이라크에는 어떠한 억지력도 없었다.


훈련하는 북한군인들 (경향DB)


북한 관리들은 이러한 사태 전개를 주시했다. 짐작컨대 북한 사람들이 이 일에서 얻은 교훈은 ‘악의 축’ 명단에 있는 나라 중에 핵 억지력을 갖고 있지 않으면 미국에 침공당한다는 것일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다는 게 분명해졌을 때인 2003년 1월 북한은 핵확산방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다. ‘악의 축’은 부시의 구호였다. 하지만 다시 말하건대 누가 대통령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지난달 미군과 한국군은 북한에 대한 모의 핵공격 훈련 및 북한 침공 시나리오에 기반을 둔 워게임을 수행했다. 침공은 여전히 미국의 한반도 통일 모델의 하나이고, 핵 공포는 여전히 하나의 옵션으로 남아있다. 북한의 반응이 미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미치광이 전략을 오용하는 것인가, 아니면 60년간 미국의 핵 위협 아래 살아오면서 진짜로 미쳐버린 것인가.



 
Nuclear Terrorism


A US Strategic Command document declassified a few years ago contains the following passage:


(...) While it is crucial to explicitly define and communicate the acts or damage that we would find unacceptable, we should not be too specific about our responses. Because of the value that comes from the ambiguity of what the US might do to an adversary if the acts we seek to deter are carried out, it hurts to portray ourselves as too fully rational and cool - headed. The fact that some elements may appear to be potentially “out of control” can be beneficial to creating and reinforcing fears and doubts within the minds of an adversary‘s decision makers. This essential sense of fear is the working force of deterrence. That the US may become irrational and vindictive if its vital interests are attacked should be a part of the national persona we project to all adversaries. (...)


Richard Nixon and Henry Kissinger called this the Madman Strategy. For nuclear weapons to serve as a deterrent, it’s not enough simply to possess them. The problem is, no person of ordinary human feeling or rationality would actually use them. A first strike would be a moral abomination; a second strike would be too late. For nuclear weapons to be an effective deterrent, a government must persuade adversaries that its leaders are crazy enough to use them - as the document says, “out of control”, “irrational and vindictive”.


Thus it‘s not a question of who is the US president. Whoever is president, the Madman Strategy is US policy. And it has succeeded, in that the US’s adversaries are persuaded that there are people in the US government mentally deranged enough to use the Bomb. I am also persuaded. After all, the US is the only country to prove itself capable of doing it by actually doing it. Twice. 


Whether intentional or not, the government of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has also been successful in projecting this national persona to its adversaries. As I write (7 April) the US and the DPRK are engaged in the most dangerous nuclear standoff since the Cuban missile crisis. DPRK representatives are saying they are ready to launch a nuclear attack. US representatives are saying, probably they won’t do it, because they are rational enough to understand that it would mean suicide. By “suicide” they mean that the US would take revenge by launching a nuclear attack. 


The DPRK has been under threat of US nuclear attack for six decades, most of that time without any nuclear deterrent capability. Does such an experience improve one‘s rationality, or does it bring on a slow version of PTSD: paranoia, attacks of rage, sudden uncontrollable violence? Let’s hope not the latter.


In September 2000, as the ROK‘s Sunshine Policy was just getting started, a neoconservative US think tank called The Project for the New American Century published a paper titled “Rebuilding America’s Defenses.” It contained the sentence,


“…in any realistic post-unification scenario, U.S. forces are likely to have some role in stability operations in North Korea.”


In this view, “reunification of Korea” meant “US military occupation of the North”. After George W. Bush was elected president two months later, many of the authors of this document joined his administration.


Two years later, on 29 January, 2002, President Bush declared that Iraq, Iran, and North Korea formed an “axis of evil”. Then the US began preparations to invade Iraq. Significantly, it invaded Iraq only after it was assured by the UN Weapons Inspection Team that Iraq had no weapons of mass 

destruction: no “deterrent”.


Surely the DPRK officials watched these developments closely. Presumably the lesson they drew from them was, countries on the “axis of evil” list that have no nuclear deterrent get invaded by the US.


In January, 2003, when it had become clear that the US was going to invade Iraq, the DPRK announced its withdrawal from the 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Axis of evil” was a GW Bush slogan, but again it seems not to matter who is president. Last month the US military in the ROK staged a mock nuclear attack on the DPRK, and carried out a war game on the scenario of invading that country. Invasion is still the US model for reunification, and nuclear terror is still an option. The response of the North appears to be mad, but is it an overuse of the Madman Strategy, or have six decades of living under US nuclear threat driven them genuinely mad?






<번역 | 손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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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 등이 리비아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의 민간인 학살을 막기 위한 공습을 했습니다. 리비아 반군은 마침내 8월 트리폴리를 장악했습니다. 리비아 사태 진행과정을 시간 역순으로 모아둡니다.
리비아 민주화 시위 전과정은 별도로 모아놨으니 참고하십시오. 



10월 카다피 사망


20일

알자지라 방송 등은 리비아 카다피 원수가 그의 고향인 시르테에서 잡혔다고 보도했습니다.
카다피는 부상을 입고 사망했습니다. 

20일 리비아 시르테에서 과도정부군에 체포되던 순간의 카다피 전 국가원수.
머리에 총상을 입은 카다피는 생포된 후 곧 사망했다. 사진은 과도정부군 병사가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한 것.  | AFP





9월 반군의 리비아 장악, 카다피 측 도피


9일

과도국가위원회는 카다피가 국외로 탈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7일
 

반군이 리비아 전역을 거의 장악하고 카다피 거점 바니 왈리드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뉴스라운드업] 리비아 민주화혁명 
[구정은의 ‘오들오들매거진’] 카다피의 행방과 리비아 시나리오 
 
6일

[이지선 기자 리비아 9신] 국경 넘자 나도 모르게 환호… ‘제1수칙’은 지켰다 

사람이라는 게 참 간사하다. 국경을 건너자마자 ‘아, 이제 전화가 되는 곳으로 나왔구나’라는 생각에 긴장이 풀리고 환호성이 터졌다. 그동안 좋은 친구가 된 리비아인 운전기사 유세프 파토리(34)가 우리 앞에서 뻔히 운전하고 있는데도, 그는 리비아로 돌아가야 하는데도 리비아를 벗어났다는 안도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우리가 벗어나 마침내 안도감을 느낄 수 있던 그곳이 파토리에게는 사랑하는 임신한 아내와 세 살배기 딸이 있는 가정이자 고향일 텐데 말이다.



3일 


[이지선 기자 리비아 취재기](8신) 고국도 리비아도 못 가지만… 난민캠프엔 새 삶이 
로울리는 “적어도 리비아에 있지 않다는 사실만으로도 행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갓난아기가 더운 날씨를 이겨낼지 은근히 걱정이다. 이날 기온은 42도. 캠프에 설치된 수도를 틀자 뜨거운 물이 쏟아졌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으니 돌은 손사래를 치며 자리를 피했지만 로울리는 다정한 모습으로 카메라를 향해 웃어 보였다. 로울리와 돌 부부는 지난달 11일부터 난민지위 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난민 지위를 받으면 유럽이나 미국과 같은 제3국으로 갈 생각이다. 부부는 “세상의 모든 돈을 다 준다고 해도 위험한 리비아에 들어가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2일
 
리비아 반군의 대표기구인 과도국가위원회(NTC)가 새 정부 구성을 위한 민주화 로드맵을 내놨습니다. 
향후 8개월 안에 헌법을 제정할 위원회를 구성하고, 2013년 초까지 총선과 대선을 모두 마치겠다는 것입니다.
 

[이지선 기자 리비아 취재기](7신) 떠난다고 하자 “수영장에 물 채우면 안갈 것” 


반군이 들어오기 전까지 4층 스위트룸은 모두 카다피군과 용병들의 차지였다고 한다. 자신의 동료들을 죽인 바로 그 총을 보고 그는 많이 울었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은 반군을 도와 호텔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엘테리키는 “물과 음식은 물론 뭐든 힘이 닿는 대로 반군을 돕고 있고 매우 행복하다”고 말했다. 우리가 신세를 졌던 이프라트 음식이나 간간이 마련됐던 차나 주스도 엘테리키의 동료인 호텔 요리사가 호텔에 저장돼 있던 재료로 만든 것이라고 했다. 지금은 반군이 4층 스위트룸을 쓰고 있다.
튀니지로 건너갈 것이라는 말에 엘테리키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얼른 수영장에 물을 채워야겠다. 물이 채워진 수영장을 보면 너무 좋아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농담을 건네면서 “언제라도 다시 자유로운 리비아를 방문해달라”고 했다.


 
 
한 리비아 남자가 1일 수도 트리폴리의 코린시아 호텔 입구에 놓인 카다피 사진을 밟고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 AFP

[이지선 기자 리비아 취재기](6신) 리비아 반군·카다피군·시민 한 병원서 치료

병원 한쪽에는 교전 중 다친 카다피군과 수단, 나이지리아, 우간다 등에서 온 아프리카 용병들도 함께 치료를 받고 있다. 치열한 교전을 벌인 양쪽이 같은 병동에서 치료를 받는 상황이었다. 이들 만나기 위해 6층으로 올라갔다. 이 층에만 40명, 전체적으로는 100여명의 카다피 지원군이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한국계 미국 청년이 리비아 반군으로 활동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습니다. 

 
 
8월 반군의 공세, 카다피 정권 축출

31일

[이지선 기자 리비아 취재기](5신) 라마단 축제 참석기

"누군가 내 손을 당겼다… 얼떨결에 신발을 벗었다… 2만여명에 섞여 몸을 숙였다" 
한 여성이 여성기도구역 앞으로 나와 V자를 그리며 ‘리비아는 자유다’라고 외치기 시작하자 다른 여성들이 환호성으로 화답했다. 옆에서 지켜보며 취재하고 있던 내 손목을 이 여성이 잡아끌더니 기도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양탄자 위로 올라오라고 했다. 얼떨결에 신발을 벗고 이들 사이로 들어갔다.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본 이들 하나하나의 표정은 살아 있었다. 기도회의 엄숙함과 신성함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저마다 카메라를 들고 서로 사진을 찍거나, 반군의 깃발을 들고 있는 장면에서 이들이 얼마나 자유와 민주주의에 갈증을 느껴왔는지 나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는 듯했다.


29일

[이지선 기자 리비아 취재기](4신) 라마단 끝나도 식사는 고역 
 
각 지역의 종교 지도자가 달을 보고 “달을 보았다”는 공식선언을 하면, 라마단이 끝나고 그 다음달 첫날 5일간의 이드 연휴가 시작된다. 대부분 고향의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큰 명절이다. 그래서인지 29일 트리폴리 시내에는 생기가 돌고 있었다. 트리폴리 서쪽의 구트샤알 거리는 전날만 해도 상점이 모두 철시하고 인적이 없던 거리가 맞나 싶게 북적였다.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이곳에서는 옷가게, 빵집 등 생필품 상점은 물론이고 보석상까지 문을 열었다. 사람과 노점상, 차들이 뒤엉켜 상점가 앞 도로를 가득 메웠다. 신발가게에 들어가 “언제부터 문을 열었느냐”고 물어봤더니 “오늘부터”라고 답했다. 트리폴리가 하루가 다르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거리를 지나는 한 여성이 두 손을 번쩍 들더니 “리비아는 자유다”라고 외쳤다. 



트리폴리의 중심가 라시드 거리에서 29일 시민들이 이슬람의 최대 명절인 이드 알 피트르 때 쓸 식료품을 사고 있다. | AFP


‘순교자의 광장’은 혁명의 해방구였다. 무아마르 카다피의 42년 독재를 자신들의 손으로 끝낸 시민들은 축포의 의미로 총과 자동화기를 하늘로 쏘아댔다. 귀청이 떨어질 듯한 총소리는 트리폴리 사람들에게 이미 공포가 아니라 ‘영광과 자유의 소리’였다. 
이탈리아 식민지배 당시 지어진 광장은 카다피 집권 시기인 1951~1969년 그의 사상과 이념을 강조하는 의미로 ‘녹색광장’이라고 불렸다. 카다피는 자신의 통치 철학을 담은 책을 그린북이라고 부르고 단색의 녹색기를 리비아 국기로 채택하는 등 녹색을 선호해왔다. 지난 22일 트리폴리를 장악한 반정부군은 녹색광장을 약 6개월간 친카다피군과의 충돌 과정에서 사망한 희생자들을 기리는 의미에서 순교자의 광장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뉴스라운드업] 리비아 민주화혁명 
[구정은의 ‘오들오들매거진’] 리비아와 카다피에 대하여 

28일


“환영합니다. 리비아는 이제 자유입니다(Welcome to Libya, Libya is free now).”
튀니지 국경을 건너 처음 만나는 리비아의 작은 도시 날루트(Nalut)에서 트리폴리까지 향하는 여정은 희망과 불안의 교차점이었다. 무아마르 카다피의 42년 철권통치를 몰아낸 리비아 국민들의 사기는 어느 때보다 하늘을 찔렀지만 폐허가 된 트리폴리 시내 풍경이 말해주듯 현실의 시계(視界)는 잔뜩 흐림이었다. 


28일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 시내에 도착한 이지선 기자.


경향신문 국제부 이지선 기자가 리비아에 갔습니다. 
 

[이지선 기자 리비아 취재기](1신) 방탄조끼·무장경호원 없인 갈 수 없는 트리폴리 
 
꼬박 24시간가량이 걸린 이 여정에서 “왜 위험한 리비아로 가려 하는가”라는 질문을 되새김질했다. 그것은 “왜 기자가 되려 하는가”라는 질문만큼이나 복잡한 것이었다. 다른 언론사들이 다 가니까 하는 막연한 경쟁심은 그 대답이 아니다. 트리폴리로 무조건 들어가야지 하는 의무감이나 남들 다 들어갔는데 이제 튀니지로 가서 뭐하겠느냐라는 자괴감도 상황을 정확히 설명해 주지 못한다. 그러던 중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 기사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리비아에서 진실은 보기 힘든 일용품’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신문은 반군이 들어선 지금도 카다피 지지자, 경쟁 부족들, 서부의 게릴라, 동부의 반군, 나토 지지자 등으로 갈라진 여러 세력이 자신들의 주장만을 쏟아놓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 뿌연 모호함을 헤치고 사실을 눈으로 보기 위해 수많은 기자들이 전장으로 향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 어쩌면 그들이 없었다면 잊혀졌을지도 모를 ‘모호함의 존재 자체’를 알아내기 위해 현장으로 가는 것이 아닐까.


  
21일
리비아 반군이 카다피 국가원수의 최후거점인 수도 트리폴리의 대부분을 장악했습니다.


Libyan rebels in Tripoli‘s central square /알자지라 



카다피 정권의 붕괴는 초읽기에 들어갔습니다.
반군 측은 카다피의 차남인 사이프 알-이슬람과 3남인 알-사디를 생포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날 반군의 트리폴리 입성 작전의 작전명은 ‘인어의 새벽’이었다는군요. 원래는 트리폴리의 별명이랍니다.

리비아 반군이 21일 트리폴리로 가는 주요 길목인 서부 가다옘 숲에서 정부군과 교전을 벌이고 있다. 이날 정부군을 밀어내고 가다옘 숲을 확보한 반군은 트리폴리 공세를 강화했다. (AFP연합뉴스)



21일 트리폴리로 가는 물자수송로를 장악했던 리비아 반군이 트리폴리 인근 요충지 3곳을 점령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리비아 정부 측은 "수도를 지키려는 수 천명이 트리폴리를 에워싸고 있어 상황은 곧 진정될 것"이라고 부인했지만 외신들은 이번 교전이카다피의 최후 결전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리비아 반군, 트리폴리 진격 ‘최후의 일전’


환호하는 반군들. 리비아 반군들이 15일 트리폴리로 가는 관문인 브레가를 점령한 뒤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반군들은 트리폴리의 또 다른 관문인 자위야의 상당 부분도 장악했다고 주장했다. (AP연합뉴스)

17일 리비아 내전이 중대 고비를 맞고 있습니다. 리비아 반군이 물자수송로와 송유관을 차단하는 등 압박수위를 높이면서 내전의 갈등이 최고조로 이르고 있습니다.  


7월


18일 리비아 반군의 대표기구인 국가위원회(TNC)가 ‘합법적인 정부’로 국제사회의 공식 인정을 받았습니다. 미국, 유럽, 아랍권 30개국이 참여한 리비아 연락그룹이 지난 15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4차회의 폐막성명을 통해 밝힌 내용입니다. 성명은 또 “카다피 정권은 더는 리비아 내에서 합법적 권위를 갖지 않는다”면서 “평화로운 권력 이양을 확보하는 과도정부 구성을 위해 모든 세력이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따라 카다피 축출을 위한 군사압력이 거세지고, 리비아 동결자산 중 일부가 국가위원회로 이전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으며 각국의 지원자금도 집중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습니다.

30일 리비아 반정부군이 사령관 피살로 인해 위기를 맞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반정부군의 최고사령관인 압델 파타 유니스(67)가 28일 의문의 죽음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리비아 반정부군의 최고사령관인 압델 파타 유니스


리비아 반군 대표기구인 과도국가위원회(TNC)는 이날 유니스 사령관이 반군의 거점 벵가지로 오는 길에 보좌관 2명과 함께 총격을 받아 숨졌다고 밝혔습니다. 

살해범은 잡혔지만 범인의 신원 및 범행의 배후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아 정부군의 소행인지, 반군 내 갈등으로 인한 유니스 반대세력의 범행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유니스의 피살과 그 과정에서 드러난 반군 내 갈등이 서방 국가들의 향후 지원에 장애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6월 지지부진한 리비아 군사개입


1일 리비아군 장성 등 120여명이 유럽에 망명했습니다. 카다피는 ‘사면초가’에 몰렸습니다.
 
3일 유엔 인권이사회 산하 리비아 인권위원회는 “리비아, 정부군·반정부군 모두 전범”이라는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리비아 유혈사태로 인한 사망자는 1만명 이상으로 집계됐습니다. 
 
서방은 ‘카다피 축출’ 공세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나토군은 9일 트리폴리를 맹폭했습니다. 
 
국제형사재판소(ICC) 검사는 카다피 측이 정부군에 비아그라를 주고 조직적으로 성폭행을 지시했다고 밝혔습니다. 
 
카다피측이 리비아 내 문화유산에 무기를 숨겨놓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982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북아프리카 최대의 로마유적지 렙티스 마그나에 무기를 은닉했다는 겁니다. 나토는 유적에도 폭격을 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기원전 200년 고대 로마의 해상무역 중심지였던 렙티스 마그나.

나토의 리비아 군사작전이 계속되는데도 카다피 축출이라는 가시적인 성과가 없자 공습 회의론이 퍼지고 있습니다.
공격이 시작된 지 100일 무렵이 되자 나토 내에서 공습의 실효성을 놓고 내분이 벌어질 조짐마저 일었습니다.

ICC는 28일 “반인도적 범죄자” 카다피에 대해 체포 영장을 발부했지만, 집행될 수 있을지는 회의적입니다. 
 


5월 난민 참사... 리비아 공습 '타깃' 논란


1일 나토군의 공습으로 카다피의 막내아들 사이프 알 아랍이 사망했습니다.
'표적살해' 논란을 불러일으킬만한 사건입니다. 리비아 민간인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적 공습'이 아니라 카다피 측을 겨냥한 계획적인 공습이니까요. 알자지라방송은 "카다피가 '공식 타깃'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계속되는 공습에, 트리폴리에서는 카다피 지지자들의 '공습반대' 시위가 열렸습니다. 

6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카다피 동결자산 300억달러 리비아 반군 지원에 쓰겠다”고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전략회의에서 발표했습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주요국들도 리비아 반군을 위한 기금에 동참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반 카다피 군의 집결지가 된  항구도시 미스라타에 반정부군을 응원, 지지하는 내용의 뉴스와 메세지로 채워진 라디오방송 '라디오 자유 리비아 미스라타'가 인기랍니다. 특히 희망의 주파수 ‘굿모닝 리비아’라는 프로그램은  뉴스는 물론이고 식량과 물을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다른 도시로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는지 등 중요한 정보들을 제공한다고 합니다. 로빈 윌리암스 주연의 영화 '굿모닝 베트남'을 떠올리게 하네요. 
 
리비아 피난민들을 태운 배가 조난을 당해 탑승자 대부분이 사망하는 참사도 일어났습니다. 지난 3월 리비아 트리폴리를 떠난 배에 아프리카 난민 72명이 탑승했지만 그가운데 61명이 굶어죽었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이탈리아 해안경비대와 북대서양조약기구에 소속된 프랑스 전투기 등을 향해 도움을 호소했지만 거절당했다는 겁니다. 리비아의 국민 보호를 위해 공습을 시행했으나 정작 리비아 국민들을 외면한 나토의 행태에대해 인권단체들이 항의하고 있습니다. 

11일에는 리비아 난민을 태운 배가 트리폴리 근처에서 침몰해 600여명이 수장됐다고, 유엔난민기구(UNHCR)가 발표했습니다. 수장된 이들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들이 대부분으로, 이들은 리비아의 정치상황이 불안해지자 리비아를 떠나려고 하고 있지만 국제사회가 이들을 포용하는데 소극적입니다.  


4월 다국적군 고민 가중



미국 등은 리비아 반정부세력과의 연대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브릭스(BRICs)는 정상회의에서 리비아 무력개입에 재차 반대했습니다.

고통의 리비아 ... 국제사회가 힘겨루기와 논란을 거듭하는 사이에도, 미스라타에서는 민간인들이 희생되고 있습니다.

EU는 아무도 책임지지 못하는 이 '리비아 공격'을 결국 미국이 주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포토뉴스] 거리에 뒹구는 탄피들

나토 폭격… 카다피 막내아들·손자 사망 



긴박했던 3월, 리비아 일지

3.24 리비아 표정

리비아 국민들은 다국적군의 공습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을까요.
트리폴리에 사는 한 여성은 "공습은 무고한 리비아인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필요하지만 외국군의 점령은 반대한다"고 밝혔습니다.
이라크전을 떠올리며 다국적군의 개입을 불쾌하게 여기는 주민도 있었습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공습이후 트리폴리 주민들이 슈퍼마켓이나 정유소 앞에 긴 차량행렬을 만들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영국, 프랑스와 전화통화를 거쳐 조만간 리비아 작전권을 나토에 넘기기로 합의했다는 점을 밝혔습니다.
다국적군은 23일 새벽 트리폴리 일대를 재공습했지만 규모는 줄어들었습니다.
반정부 세력의 구심인 국가위원회는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개혁주의자 마무드 지브릴을 총리로 선출했습니다.
미. 터키에'리비아 개입' 설득 총력

국제유가가 리비아에 대한 추가공격 등 아랍지역의 불안이 가속화되면서 30개월래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3.23 다국적군, 4차 공습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 22일 밤 거대한 폭발음이 들린 가운데 대공포가 치솟았습니다.
미국,영국 등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의 4차 공습이 시작된 모양입니다.

3.22 다국적군, 3차 공습 감행


리비아에서 취재하던 방송기자 4명과 사진기자 2명, 뉴스통신사 기자 1명 21일 현재 실종 상태.
치안 혼란 와중에 교민 피해도. 외교부 관계자는 “다행히 아직 한국인의 인명 피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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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 다국적군, 리비아 방공망 파괴

다국적군 공습 이틀째 계속. 대형 폭발음이 트리폴리 시내 뒤흔들고 총성도 잇따라
군지휘센터·레이더망 초토화… 미 “리비아 방공망 파괴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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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 다국적군, 리비아 공습 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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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8 유엔 리비아 군사개입 초읽기

리비아 안보리 결의 표결 이후 자국 내 민간인 보호와 유엔의 결의 준수를 위해 정전을 결정.
유엔, 리비아 군사개입 초읽기… 카다피 측 즉각 휴전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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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북한주민을 생각하며 2011.10.26 12:55 신고
    카다피도 한 때는 존경받던 지도자였지... 김일성처럼...
    경향이 한겨레보다는 낫네. 이런 비싼 기사도 실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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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이 오인공격으로 파키스탄 병사들이 숨진 것과 관련해 이례적으로 파키스탄에 공식 사과를 했다는데, 그 이유가 뭘까요?

  지난달 30일 아프간 주둔 나토군 헬기가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 초소를 폭격해 병사 2명이 숨지고 4명이 다치는 사건이 있었는데요, 이와 관련해 6일 앤 패터슨 파키스탄 주재 미국대사는  “미군 헬기가 파키스탄 국경 수비대원을 자신들이 쫓던 탈레반 무장전사로 오인한 데 따라 이 같은 ‘끔찍한 사고’가 벌어졌다”고 밝히고, “파키스탄과 이번 사건으로 숨지거나 부상당한 국경수비대원들의 가족에게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고 말했습니다. 파키스탄이 미군의 오인 폭격으로 자국 병사들이 숨진 것을 계기로 아프간으로 통하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의 주요 물자 수송로를 폐쇄한 데다, 파키스탄 탈레반이 나토의 연료 운송차량을 타깃으로 연쇄 공격을 퍼부으면서 아프간전 수행에 차질이 올까 우려한 까닭입니다. 알자지라 방송은 미국과 파키스탄 양국 모두 이날 미국이 보여준 ‘저자세’로 일단 폐쇄됐던 아프팍 국경 지대의 운송로는 곧 다시 열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A Pakistani policemen stands guard beside burning NATO supplies oil tankers in Nowshera on October 7, 2010 following a late night an attack by the Taliban. More than 40 NATO vehicles were destroyed in two separate Taliban attacks in Pakistan on October 6 as the militants stepped up their efforts to disrupt supply routes into Afghanistan. AFP PHOTO / A. MAJEED


2. 하지만 운송료가 다시 열린다고 해서 두 나라의 근본적인 긴장은 풀리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데요.  파키스탄이 ‘완전한 미국의 동맹국’인지에 대한 회의적인 분석이 많다면서요?


 파키스탄 주재 미국대사가 파키스탄에 사과한 이날, 미국 백악관은 정례보고서에서 “파키스탄이 탈레반이나 알카에다와의 직접적인 무력충돌을 피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파키스탄군이 남와지스리스탄에서 무장세력과 전투를 벌이고 있지만, 병사들이 공격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번 보고서는 최근 양국의 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동맹국인 파키스탄의 역할에 대한 미국의 의구심이 반영된 것인데요.

 오늘(7일)이 아프간 개전 9주년입니다. 전쟁이 10년째로 접어들면서 버락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중대 국면을 맞고 있습니다. 탈레반과의 화해 정책을 추구하고 있는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은 파키스탄과 관계 강화에 나서고 있고, 파키스탄은 미군 철수 이후에 아프간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노리고 있어 탈레반 소통에 미온적입니다. 파키스탄 정보당국이 무장세력과 연계돼 있다고 알려져 미국 입장에서는 파키스탄이 영 탐탁지 않은데요, 아프간전에 있어서 전략상 매우 중요해서 외교적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3. 아프간 주둔 나토군으로 가는 물자 수송로는 파키스탄에서 어느 정도 차지 하나요?

 아프간 주둔 미군과 나토군의 보급품 가운데 절반 가량이 파키스탄을 거쳐 공급되기 때문에 파키스탄 보급로는 전략상 매우 중요합니다. 현재 아프간 주둔 미군의 물품 중 30%가 러시아와 옛소련 독립국을 포함한 ‘북부 보급망’을 통해 운송되고 있는데 미 국방부 대변인인 데이브 레이펀 대령은 토르캄 보급로 폐쇄가 길어지면 대안을 더 찾아볼 것이라면서 지금으로서는 다른 보급로들이 열려 있어 영향이 크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Pakistani firefighters try to extinguish burning NATO oil tankers following a Taliban attack in Nowshera on October 7, 2010. More than 40 NATO vehicles were destroyed in two separate Taliban attacks in Pakistan on October 6 as the militants stepped up their efforts to disrupt supply routes into Afghanistan. AFP PHOTO / A. MAJEED


4. 파키스탄과 아프간 국경 지대에서 탈레반의 공격과 미군의 공습이 더 거세지고 있다구요?

 탈레반 측은 파키스탄 내 나토군의 보급로를 마비시키겠다면서 알-카에다와 탈레반에 대해 무인기 공격을 가하는 데 대한 보복 공격을 계속하겠다고 경고했습니다. 이날에만 파키스탄 두 지역에서 나타군의 아프간 물자 수송을 막으려는 탈레반으로 공격으로 1명이 숨지고 최소 55개의 연료 탱크가 불탔습니다. 미군은 이날 파키스탄 북서부 부족지역을 미사일로 공격, 5명이 숨졌습니다. 파키스탄 북서 부족지구는 유럽 테러 공격 계획의 근거지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부족지구 북(北)와지리스탄 주의 주요 도시 미란샤의 무장기지에 2발의 미사일 공격이 가해졌다고 밝혔는데요,  미란샤에서는 (탈레반의) 외국인 전사들이 유럽에 대해 뭄바이식 테러 공격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Fuel tankers, which were carrying supplies to foreign forces in Afghanistan, explode after they were attacked in the outskirts of Quetta October 6, 2010. Gunmen in Pakistan attacked and set fire to 20 trucks transporting supplies to NATO troops in Afghanistan on Wednesday, police said. REUTERS/Stringer




5. 지난 4월에 미국 멕시코만에서 기름유출 사고가 있었죠. 당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멕시코만 유정 기름 유출 사고에 대한 대응이 미숙했다는 보고서가 나왔다구요?

 미국 BP 기름유출 조사위원회는 5일 오바마 행정부가 BP를 지나치게 신뢰한 데다 유출 초기 관련 정보를 공개하는 것을 막는 등 유출사고에 부적절하게 대응했다고 비판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보고서는 “사고가 일어난 후 열흘 동안 응답자들(미 정부 관리들) 지나치게 낙관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며 “응답자들은 한결같이 대규모의 기름유출을 맞닥뜨린 순간에도 ‘BP가 알아서 잘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6. 미국 행정부가 초기에 기름 유출 규모를 실제보다 적게 파악했다는 보도가 나왔었는데, 이번 보고서에도 그 내용이 담겼나요?

 보고서는 미 행정부가 정보를 시민들에게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유출 규모를 실제보다 적게 파악하면서 국민의 신뢰를 저하시켰다고 지적했는데요. 기름유출이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것이 드러나기 전인 4월 말이나 5월 초 미국해양대기청(NOAA)가 ‘최악의 경우의 유출 수치’를 발표할 것을 요청했으나 백악관 예산관리국(OMB)이 거부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당시 여러 과학자들이 유출 정도가 심각하다고 경고했지만 미 행정부는 하루 유출 추정량의 10분의 1 정도인 하루 5000배럴 정도가 유출되고 있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내용도 포함됐습니다. 백악관 담당자는 지난 8월 ‘기름의 4분의 3 이상은 해당 지역에서 없어졌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보고서는 “자연분해됐을 가능성도 있지만 없어진 것은 아니다”라며 바다 속에는 기름이 여전히 존재할 것이고, 증발한 기름은 대기 중에도 잠시 동안 남아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멕시코만의 사고 유정은 지난 19일 BP에 의해 밀봉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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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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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에 무엇에 대해 글을 써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 질문에 돌아온 대답이 ‘밖에서 본 안’ 혹은 ‘안에서 못 느꼈던 밖’ 이라는 것에 꽤나 당혹스러웠다는 걸 인정해야 겠다. 외국에서 살고 공부하면서 한국에 대해 생각해보고, 공부하는 내용(내 경우는 ‘환경’이다. 환경을 파괴하지 못해 안달난 나라에서 살다가 온 내가 지금 이 곳에서 ‘환경을 파괴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를 공부하고 있다)을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어려울 수도 있고 쉬울 수도 있다. “왜 이런 거 있잖아, 완전 희한하지 않냐?” 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은 많다. 책임지지 않아도 되니, 그런 이야기를 꺼내 놓는 것은 쉽다.
하지만 나라는 한 인간이 느끼거나 배울 수 있는 절대적인 경험치는 분명히 존재하고, 그것을 단순히 어떻더라 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이건 이렇다’라고 단순화시키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스스로 피하고자 하는 부분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재미는 있다. 파시즘도 원래 모든 것을 단순화 시키고 흥미롭고 왠지 나름의 논리가 개인적인 체험과 맞물려 말이 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니까. 아, 너무 멀리 나갔다. 그저 앞으로 내가 말하는 것이 때로는 자의식 과잉에 편견 섞인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점을 먼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 뿐이다. 약간은 불친절할지도 모르는 글에 대해 ‘이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하는 정도의 포용을 바라는, 미리 드리는 사과문으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다.


나는 현재 뉴욕주립대에서 환경공부를 하고 있다. 시러큐스(Syracuse) 라는 작은 도시에 있는 환경산림대학원에서 논문과 고군분투하는 중이다. 시라큐스는 어감이 예뻐 좋아했는데 근처 로마(Rome)나 트로이(troy) 같은 지명으로 짐작해보건대 이탈리아 어딘가의 마을 이름이지 않을까 싶다.
인구대비 공원 수가 가장 많은 도시 중에 하나라고도 한다. 뉴욕이 세계 무역의 중심지였을 무렵, 뉴욕과 캐나다를 잊는 수로가 지나가는 주요도시 중 하나가 이 곳이었고, 그 시절의 잠시 동안 깜짝 번성기간이 있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할 얘기가 정해졌다. 대 호수(Great Lake)와 뉴욕시티(NYC)를 잇는 Erie canal, 이리 수로 혹은 운하.

무려 1825년에 완공된 이리(Erie) 운하는 위에서 잠시 말했듯, 뉴욕과 맞물려 있는 대서양으로 물건을 운송하기 위해 만든 교통시설이다. 미국은 땅덩이가 실제로 보고 느껴봐야 정말 크구나 하고 체감하게 될 정도의 넓은 나라라 내륙에서 해안으로 물건을 운송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택배를 신청하면 아주 빨라야 3일, 평균 일주일, 늦으면 한 달도 걸리는 곳이니까.
그런 지역에 있으면 좀 더 빠른 운송수단을 찾는 일은 ‘그렇게 이상하지 않은’ 일이 된다. 어딘가의 ‘정비’ 사업과는 다르게.



어쨌든 1807년에 사업을 신청한 이 새로운 운하는 뉴욕시티를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콘크리트의 정글로 만드는데 이바지했다. 그리고 그 다른 쪽 끝인 그레이트 레이크의 도시 버팔로(Buffalo), 수로가 지나가는 도시들, 로마, 유티카(Utica), 시러큐) 그리고 마지막 알바니(Albany) 또한 호황을 누렸다.
그 호황은 190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덕분에 미국의 많은 인구가 뉴욕 주로 이주하게 되었고, 많은 관련 산업들이 발전했다. 그 때 이주했던 사람들의 후손들은 이 초록이 많은 곳을 떠나지 않고, 그 산업의 아주 일부 역시 남아있다.
그 때의 사람과 그리고 주인이 떠난 산업 현장들은 아직도 그 때의 영광을 되살리기 위해 아직도 노력하고 있다. 이미 이리 운하를 대신한 뉴욕주 바지 운하(New York State Barge Canal)도 그 쓰임새가 사라졌지만 말이다.

그래서 지금은 어떤가. 이리 수로의 물은 거의 다 말라붙었고, 말라 붙지 않은 물이 남아 있는 역사적(!)인 곳들은 주민들이 찾는 관광지가 되었다. 실제로 운송이 행해졌던 곳들은, 마치 이란의 페르세폴리스 같은, 그 정도의 아우라는 없지만 당연하게도, 그런 유적지 같은 느낌만 남아 있다.

사실 페르세폴리스는 좀 과장이지만, 길을 잃어 버팔로 시내 어딘가를 지나갈 때, 그 항구의 모습은, 몇해 전 페르세폴리스의 폐허에 야생화만 피어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와 같은 애잔함이 느껴졌다.
그 잠깐의 호황은 황홀했었고, 인간의 기술력에는 한계가 없는 듯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운송의 어려움과 동시에 실업률까지 해결한 그 곳에 남은 것은 후광조차 없는 쓸쓸함이라니. (그럼 대체 이 정도의 이유도 없이 진행될 많은 사업들은 어떤 종말을 맞을까.)



환경공부를 하고 있자면 이런 폐허의 이미지를 자주 떠올리게 된다. 개발(Development)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은 무엇을 말하는 건가? 과연 지속가능한 개발(sustainable development)은 양립 가능한 말인가?
세상을 이렇게 만든 원인은 뭔가? 세상을 움직이고 있는 경제(economy)는 뭔가? 그렇다면 대안으로 나온 생태적 경제(ecological economy)는 어떤 점에서 대안인가?

이런 물음에 부딪칠 때면 나는 언제나, 현 체제에 문제가 있어 나온 대안 역시 인간이 만든 제한적인 것들이고, 이미 존재하는 문제 많은 프레임에 다른 재료만을 슬쩍 올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은 저렇게 전부 폐허가 되고 말 텐데.

하지만 그래서야 세상이 멸망할 때 사과나무를 하나 더 심는 마음가짐이 되겠냔 말이다. 수송이 필요했던 이 곳에서도 남은 것이 애잔함뿐이라면, 필요하지 않은 곳에서의 이유 없는 파괴 정도는 막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가능성이 보이지 않지만 옳다고 여기는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것, 바로 이익이 오지 않더라도 전체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그게 어쩌면 환경을 공부하며 혹은 세상을 알아가며 희망이 없다고 여겨질 때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아닌가 싶다. 나부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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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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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영아 재밌다. 기대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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