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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에서 생활하다 보면 난처한 일 중 하나가 병원을 찾아야 할 때다. 최근 한인 거주지역인 왕징(望京) 부근에 있는 중국 병원을 찾았다 적잖이 놀랐다. 겉으로는 멀쩡한 대형 종합병원이었으나 의료기기 수준, 청결도 등에서 한국 대도시의 웬만한 병원과 비교가 안됐다. 의료진의 수준 역시 한국보다 많이 떨어진다는 것이 교민들의 평가다. 외국인을 위한 전용 창구가 개설된 병원도 있지만 등록비만 1000위안(약 18만원)이 넘고 의사들은 중국인 환자들을 진료하는 같은 의사들이다. 외국인들이 빨리 진찰을 받을 수 있도록 급행비 명목으로 돈을 받는 것일 뿐이다. 병원 찾을 일이 있으면 한국으로 빨리 들어가는 게 낫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중국은 의사들의 사회적 지위도 한국과 비교해 높지 않다. 한국 학부모들처럼 자녀들의 의대 진학에 목을 매지도 않는다.

2009년 우리나라에서 외국인환자 진료가 허용된 후 중국에서 한국 의료기관을 찾는 환자는 매년 늘고 있다. 성형을 중심으로 의료분야에서 한국의 브랜드 가치는 중국인들 사이에서 매우 높다. 하지만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대처 과정에서 보여준 한국 정부의 어설픈 대응이 앞으로 많은 것을 바꿔 놓을지 모른다.

메르스 의심환자 한국인이 홍콩을 거쳐 광둥(廣東)성 후이저우(惠州)시로 입국해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이나, 이 남성과 밀접 접촉했던 한국인이 귀국했다 다시 홍콩으로 입국하려 했던 것이나 참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고위험 의심환자를 중국으로 내보낸 것이니 한·중관계에 악재로 작용하지 않을까 외교당국은 조마조마하게 지켜봐야 했다. 중국인들이 메르스를 중동호흡기증후군이 아니라 ‘한국호흡기증후군’으로 불러도 할 말이 없게 됐다. 한국의 의료적 수준은 우수하지만 정부의 질병 관리 방식은 중국에 충격을 줬다.

메르스 바이러스 감염 부위와 전파력·치사율 (출처 : 경향DB)


면적이 좁고 외국인 방문객이 많아 전염병에 극도로 민감한 홍콩에서는 한국 정부에 격앙된 반응을 드러내고 있다. 홍콩 언론에선 “한국이 2003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사태 당시 타격이 심하지 않았고 현실에 안주해 왔기 때문에 이번 대응이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아시아의 경제강국 한국이 의외로 치명적인 질병에 방어 능력이 취약하다는 점은 놀랍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호팍렁 홍콩대 교수는 현지 언론에 “한국 정부가 24곳의 병원 명단을 뒤늦게 공개한 것도 웃기는 일이며 홍콩에서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면 공중의 분노를 샀을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 당국자들의 말에서 한국 정부가 국제사회에 대한 최소한의 도덕적 의무마저 외면한 것 아니냐는 분노도 읽힌다. 메르스 사태 대처과정에서 중국 당국의 대응은 침착·신속하면서 투명했다. 한국인 확진환자가 후이저우 중심인민병원에서 치료 중이라며 병원 이름을 일찌감치 공개했고 국민들의 협조를 통해 밀접 접촉자들을 모두 찾아냈다. 사스 사태 당시 큰 교훈을 얻었기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일본 언론도 사스 사태의 교훈을 살린 중국이 한국보다 더 제대로 대처하고 있다고 지적했을 정도다. 중국 당국은 2003년 4월 베이징에서 사스로 사망자가 속출하는 상황에서도 “베이징은 안전하며 사스는 곧 억제될 것”이라고 선전했다. 몇 달이나 사스 발생 사실을 감췄고 사스가 다른 나라로 확산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이미지가 큰 손상을 입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홍콩 역시 사스 사태를 통해 투명한 정보 공개와 국가 간 정보 공유, 격리 치료만이 전염병을 막을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고 행동으로 옮겼다.

메르스 사태에 직면해 한국 보건 당국이 보여준 모습은 마치 사스 사태 당시 중국 관료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제 중국인들에게 한국이 의료 선진국이란 말을 하기 어렵게 됐다. 일부 누리꾼들을 제외하고 중국 주류 언론들이 ‘혐한증’(한국을 혐오함)을 드러내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이다.


오관철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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